중종실록59권, 중종 22년 7월 11일 丙戌 7/7 기사 / 1527년 명 가정(嘉靖) 6년
충청도 관찰사 유여림이 충주·옥천·덕성·결성의 효자 열부를 아뢰다
국역
충청도 관찰사 유여림(兪汝霖)이 장계하기를,
"충주(忠州) 사는 전(前) 혜민서 참봉(惠民署參奉) 하숙륜(河叔崙)은 어머니가 악질(惡疾)에 걸리자 다리 살을 베고 손가락을 잘라 불에 태워 약에 타서 드리니 그 병이 쾌차하였고, 지성으로 봉양하였습니다. 옥천(沃川) 사는 순양역(順陽驛)의 역리(驛吏) 양녹(梁綠)의 아내 막장(莫莊)은 그 남편이 죽은 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상복을 벗지 않고 밤낮으로 통곡하면서 아침 저녁으로 제사드리고 있습니다. 같은 고을에 사는 유학(幼學) 임세화(林世華)는 아버지 상을 당하여 여막을 떠나지 않았고 처자도 돌보지 않으면서 3년간 죽만 먹었습니다.
덕산(德山) 사는 양녀(良女) 보덕(寶德)은 그 남편이 기묘년에 죽었는데 사당을 짓고 신주를 모시면서 지금까지 상복을 입고 있습니다. 홍산(鴻山) 사는 수군(水軍) 김원손(金元孫)은 그 부모가 살아 있을 적에는 마음을 다하여 효도로 봉양하였고, 죽은 뒤에는 따로 사당을 지어 모든 제사를 예문(禮文)에 의하여 거행하였습니다.
결성(結城) 사는 유학 유항(兪恒)은 그 어미가 죽자 슬피 울면서 사모하였고 몸소 흙을 체로 처서 분묘를 만들었으며 그 곁에 여막을 만든 다음 거적에서 흙덩이를 베고 잤습니다. 그리고 손수 음식을 만들어 제사드렸고 3년이 지난 뒤에도 또 3년간 묘소를 지키려 하였으나 그 아비가 중지시켰기 때문에 심상(心喪) 1년을 더 입었으며, 평소에도 항상 통곡하였으므로 듣는 이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아비를 섬김에 있어서도 효도를 극진히 하였고 아비가 병들어서는 아침 저녁 약수발을 정성껏 하였으며 부드러운 안색으로 아비의 뜻을 잘 받들어 드렸습니다."
하였는데, 예조에 내렸다.
- 【태백산사고본】 30책 59권 25장 B면【국편영인본】 16책 584면
- 【분류】윤리-강상(綱常)
원문
○忠淸道觀察使兪汝霖狀啓:
忠州居前惠民署參奉河叔崙, 母得惡疾, 割股、斷脂而燒進, 其病快愈, 奉養出於至誠。 沃川居順陽驛吏梁緣妻莫莊, 其夫死, 至今十年, 不脫喪服, 晝夜哭泣, 朝夕行祭。 同郡居幼學林世華, 居父喪, 不離苫次, 不顧妻孥, 餟粥三年。 德山居良女寶德, 其夫死於己卯年, 作祠堂爲主, 至今蒙白。 鴻山居水軍金元孫, 其父母生時, 盡情孝養, 死後別作祠堂, 一應祭祀, 幷依禮文。 結城居幼學兪恒, 其母死, 哀慕哭泣, 躬親篩土成墳, 設幕其側, 寢苫枕塊, 手自熟饌而行祭。 過三年後, 又欲守墓三年, 其父止之, 乃心喪一年, 居常痛哭, 聞者莫不下淚。 事父亦盡孝, 父病, 朝夕奉藥, 養志承順事。
下禮曹。
- 【태백산사고본】 30책 59권 25장 B면【국편영인본】 16책 584면
- 【분류】윤리-강상(綱常)
중종실록59권, 중종 22년 7월 11일 丙戌 7/7 기사 / 1527년 명 가정(嘉靖) 6년
충청도 관찰사 유여림이 충주·옥천·덕성·결성의 효자 열부를 아뢰다
국역
충청도 관찰사 유여림(兪汝霖)이 장계하기를,
"충주(忠州) 사는 전(前) 혜민서 참봉(惠民署參奉) 하숙륜(河叔崙)은 어머니가 악질(惡疾)에 걸리자 다리 살을 베고 손가락을 잘라 불에 태워 약에 타서 드리니 그 병이 쾌차하였고, 지성으로 봉양하였습니다. 옥천(沃川) 사는 순양역(順陽驛)의 역리(驛吏) 양녹(梁綠)의 아내 막장(莫莊)은 그 남편이 죽은 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상복을 벗지 않고 밤낮으로 통곡하면서 아침 저녁으로 제사드리고 있습니다. 같은 고을에 사는 유학(幼學) 임세화(林世華)는 아버지 상을 당하여 여막을 떠나지 않았고 처자도 돌보지 않으면서 3년간 죽만 먹었습니다.
덕산(德山) 사는 양녀(良女) 보덕(寶德)은 그 남편이 기묘년에 죽었는데 사당을 짓고 신주를 모시면서 지금까지 상복을 입고 있습니다. 홍산(鴻山) 사는 수군(水軍) 김원손(金元孫)은 그 부모가 살아 있을 적에는 마음을 다하여 효도로 봉양하였고, 죽은 뒤에는 따로 사당을 지어 모든 제사를 예문(禮文)에 의하여 거행하였습니다.
결성(結城) 사는 유학 유항(兪恒)은 그 어미가 죽자 슬피 울면서 사모하였고 몸소 흙을 체로 처서 분묘를 만들었으며 그 곁에 여막을 만든 다음 거적에서 흙덩이를 베고 잤습니다. 그리고 손수 음식을 만들어 제사드렸고 3년이 지난 뒤에도 또 3년간 묘소를 지키려 하였으나 그 아비가 중지시켰기 때문에 심상(心喪) 1년을 더 입었으며, 평소에도 항상 통곡하였으므로 듣는 이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아비를 섬김에 있어서도 효도를 극진히 하였고 아비가 병들어서는 아침 저녁 약수발을 정성껏 하였으며 부드러운 안색으로 아비의 뜻을 잘 받들어 드렸습니다."
하였는데, 예조에 내렸다.
- 【태백산사고본】 30책 59권 25장 B면【국편영인본】 16책 584면
- 【분류】윤리-강상(綱常)
원문
○忠淸道觀察使兪汝霖狀啓:
忠州居前惠民署參奉河叔崙, 母得惡疾, 割股、斷脂而燒進, 其病快愈, 奉養出於至誠。 沃川居順陽驛吏梁緣妻莫莊, 其夫死, 至今十年, 不脫喪服, 晝夜哭泣, 朝夕行祭。 同郡居幼學林世華, 居父喪, 不離苫次, 不顧妻孥, 餟粥三年。 德山居良女寶德, 其夫死於己卯年, 作祠堂爲主, 至今蒙白。 鴻山居水軍金元孫, 其父母生時, 盡情孝養, 死後別作祠堂, 一應祭祀, 幷依禮文。 結城居幼學兪恒, 其母死, 哀慕哭泣, 躬親篩土成墳, 設幕其側, 寢苫枕塊, 手自熟饌而行祭。 過三年後, 又欲守墓三年, 其父止之, 乃心喪一年, 居常痛哭, 聞者莫不下淚。 事父亦盡孝, 父病, 朝夕奉藥, 養志承順事。
下禮曹。
- 【태백산사고본】 30책 59권 25장 B면【국편영인본】 16책 584면
- 【분류】윤리-강상(綱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