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실록44권, 중종 17년 2월 23일 庚子 2/4 기사 / 1522년 명 가정(嘉靖) 1년
심사손이 밀양에서 친부 살해와 중국 유학에 관해 아뢰다
국역
주강에 나아갔다. 《고려사》를 진강했는데, 검토관 심사손(沈思遜)이 아뢰기를,
"김문현(金文鉉)이 그의 아비를 시해(弑害)했으니 천지 사이에 용납되지 못할 사람으로서 법이 마땅히 베어야 할 바이므로, 당시의 대간들이 법대로 논죄(論罪)하기를 청하여 항쟁하였으나 되지 않았습니다. 공민왕(恭愍王)은 말할 것이 없지만 지금도 역사를 보노라면 마음이 아프게 됩니다. 오늘날 밀양(密陽) 박군효(朴君孝)가 아비를 시해한 죄가 이미 나타났기 때문에 그의 고을 명칭을 강등하여 그 악을 징계한 것인데, 10년도 못 되어 그 명칭을 복구했습니다. 만일 의옥(疑獄)으로 여긴다면 마땅히 다시 그 사실을 핵실하여 그의 죄가 아님을 밝힌 다음에 그 명칭을 복구해야 할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박군효의 죄에 대한 일은 대신들의 의논이, 그 부(府)는 곧 한 도(道)를 통괄하는 자리인데 잔약 피폐하게 되었고, 또한 명칭을 강등한 지 6∼7년이나 되어 오래되었다고 여겼기 때문에 옛 명칭으로 복구하기를 청한 것이고, 군효의 죄를 의옥이라 여겨 그런 것이 아니다."
하매, 사손이 아뢰기를,
"후세에 보고서 아비 시해하는 죄를 가볍게 여길까 싶습니다. 한 고을이 잔약 피폐한 것과 아비 시해한 죄악을 징계함은 반드시 경중이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지금 《고려사》를 보건대, 자제들을 중국에 보내 입학(入學)시켰었다. 예와 지금이 비록 다르기는 하지만 전일에도 이런 의논이 있었으니, 이는 아름다운 일이다."
하매, 사손이 이르기를,
"옛 당 태종(唐太宗) 시절에도 자제들을 보내 입학하도록 했었습니다. 다만 부모된 사람은 반드시 자식들을 생각하고 자식된 사람은 반드시 어버이를 생각하는 법인데, 이는 사람들의 상정(常情)인 것이므로 이제도 자원(自願)에 따라 보내야 합니다. 우리 나라는 옛적부터 이런 예가 있었는데 근래에 폐지한 지 오랩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2책 44권 9장 A면【국편영인본】 16책 100면
- 【분류】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역사-전사(前史) / 왕실-경연(經筵)
원문
○御晝講, 講《高麗史》。 檢討官沈思遜曰: "金文鉉弑其父, 此, 天地所不容人, 法所必誅。 當時, 臺諫請論如法, 爭之不得。 恭愍不足道, 至今觀史, 可爲痛心。 在今密陽 朴君孝弑父之罪旣著, 故降其邑號以懲其惡, 不十年而復其號。 若以爲疑獄則當更覈其實, 明其非罪, 然後復其號, 可也。" 上曰: "朴君孝之罪, 大臣議爲, 是府居一道控制之地, 而至於殘弊, 且降號至於六、七年之久, 故請復舊號, 非以君孝之罪爲疑獄而然也。" 思遜曰: "自後世觀之, 則恐以弑父之罪爲輕也。 一邑之殘弊與夫懲弑父之惡, 必有輕重。" 上曰: "今見《高麗史》, 遣子弟入學。 今古雖異, 然前亦有是議, 此, 美事也。" 思孫曰: "昔唐 太宗時, 亦令遣子入學。 但爲父母, 必思其子, 爲人子, 必思其親, 此, 人之常情。 故今從自願以遣。 我國自古有此例, 而近來廢之久矣。"
- 【태백산사고본】 22책 44권 9장 A면【국편영인본】 16책 100면
- 【분류】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역사-전사(前史) / 왕실-경연(經筵)
중종 17년 (1522) 2월 23일
중종실록44권, 중종 17년 2월 23일 庚子 2/4 기사 / 1522년 명 가정(嘉靖) 1년
심사손이 밀양에서 친부 살해와 중국 유학에 관해 아뢰다
국역
주강에 나아갔다. 《고려사》를 진강했는데, 검토관 심사손(沈思遜)이 아뢰기를,
"김문현(金文鉉)이 그의 아비를 시해(弑害)했으니 천지 사이에 용납되지 못할 사람으로서 법이 마땅히 베어야 할 바이므로, 당시의 대간들이 법대로 논죄(論罪)하기를 청하여 항쟁하였으나 되지 않았습니다. 공민왕(恭愍王)은 말할 것이 없지만 지금도 역사를 보노라면 마음이 아프게 됩니다. 오늘날 밀양(密陽) 박군효(朴君孝)가 아비를 시해한 죄가 이미 나타났기 때문에 그의 고을 명칭을 강등하여 그 악을 징계한 것인데, 10년도 못 되어 그 명칭을 복구했습니다. 만일 의옥(疑獄)으로 여긴다면 마땅히 다시 그 사실을 핵실하여 그의 죄가 아님을 밝힌 다음에 그 명칭을 복구해야 할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박군효의 죄에 대한 일은 대신들의 의논이, 그 부(府)는 곧 한 도(道)를 통괄하는 자리인데 잔약 피폐하게 되었고, 또한 명칭을 강등한 지 6∼7년이나 되어 오래되었다고 여겼기 때문에 옛 명칭으로 복구하기를 청한 것이고, 군효의 죄를 의옥이라 여겨 그런 것이 아니다."
하매, 사손이 아뢰기를,
"후세에 보고서 아비 시해하는 죄를 가볍게 여길까 싶습니다. 한 고을이 잔약 피폐한 것과 아비 시해한 죄악을 징계함은 반드시 경중이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지금 《고려사》를 보건대, 자제들을 중국에 보내 입학(入學)시켰었다. 예와 지금이 비록 다르기는 하지만 전일에도 이런 의논이 있었으니, 이는 아름다운 일이다."
하매, 사손이 이르기를,
"옛 당 태종(唐太宗) 시절에도 자제들을 보내 입학하도록 했었습니다. 다만 부모된 사람은 반드시 자식들을 생각하고 자식된 사람은 반드시 어버이를 생각하는 법인데, 이는 사람들의 상정(常情)인 것이므로 이제도 자원(自願)에 따라 보내야 합니다. 우리 나라는 옛적부터 이런 예가 있었는데 근래에 폐지한 지 오랩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2책 44권 9장 A면【국편영인본】 16책 100면
- 【분류】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역사-전사(前史) / 왕실-경연(經筵)
원문
○御晝講, 講《高麗史》。 檢討官沈思遜曰: "金文鉉弑其父, 此, 天地所不容人, 法所必誅。 當時, 臺諫請論如法, 爭之不得。 恭愍不足道, 至今觀史, 可爲痛心。 在今密陽 朴君孝弑父之罪旣著, 故降其邑號以懲其惡, 不十年而復其號。 若以爲疑獄則當更覈其實, 明其非罪, 然後復其號, 可也。" 上曰: "朴君孝之罪, 大臣議爲, 是府居一道控制之地, 而至於殘弊, 且降號至於六、七年之久, 故請復舊號, 非以君孝之罪爲疑獄而然也。" 思遜曰: "自後世觀之, 則恐以弑父之罪爲輕也。 一邑之殘弊與夫懲弑父之惡, 必有輕重。" 上曰: "今見《高麗史》, 遣子弟入學。 今古雖異, 然前亦有是議, 此, 美事也。" 思孫曰: "昔唐 太宗時, 亦令遣子入學。 但爲父母, 必思其子, 爲人子, 必思其親, 此, 人之常情。 故今從自願以遣。 我國自古有此例, 而近來廢之久矣。"
- 【태백산사고본】 22책 44권 9장 A면【국편영인본】 16책 100면
- 【분류】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역사-전사(前史) / 왕실-경연(經筵)
원본
중종 17년 (1522) 2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