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실록31권, 중종 12년 12월 15일 丙辰 7/7 기사 / 1517년 명 정덕(正德) 12년
근래의 재변으로 구언하고, 공구 수성하기를 아뢰는 사간원 대사간 이성동 등의 상소
국역
사간원 대사간 이성동(李成童) 등이 상소하였다.
"생각하옵건대, 하늘은 위에 있고 땅은 아래에 있으니 형체가 격절하여 막연히 서로 관련되지 않은 것 같으나, 사람에게 한 가지 선한 일이 있거나 한 가지 악한 일이 있을 적에는 하늘과 유통하지 않음이 없어 마치 형체에 그림자가 따르고 소리에 메아리가 응하는 것처럼 빠르게 응하니 대개 하늘과 사람은 기운이 같아서 이미 서로 통하고 있으므로 느낌이 있으면 반드시 응하게 됨은 자연의 이치입니다. 더구나 임금은 천위(天位)에 거하여 하늘의 일을 대신하는 것이라 출입하고 유람하는 즈음이나 사려(思慮)의 은미한 일까지 하늘의 밝은 살핌이 따르지 않는 곳이 없으니, 휴구(休咎)의 조짐이 진실로 헛되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삼가 논하건대, 상서(祥瑞)는 곧 하늘의 기쁨이요, 변이(變異)는 곧 하늘의 노여움입니다. 하늘의 희노(喜怒)는 하늘이 기뻐하고 노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천하 사람이 기뻐하고 노하는 것입니다.
천하 사람의 희노는 임금의 하는 바에 달려 있는 것이니, 임금의 하는 바가 지극히 선하면 천하의 사람이 반드시 기뻐할 것이요, 기뻐하면 그 마음이 반드시 화평할 것이요, 화기(和氣)가 상하에 충만하면 천지도 자연 화기로 그에 응할 것입니다. 천지의 기운이 화평하면 음양(陰陽)이 순하고 풍우(風雨)가 제때에 있고, 만물이 잘 이루어지고 요얼(妖孽)이 일어나지 않아, 세상이 태평하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선하지 않으면 천하의 사람이 반드시 기뻐하지 않을 것이요, 기뻐하지 않으면 그 마음이 반드시 화평하지 못할 것이니, 화평하지 못한 기운이 가득차면 천지가 자연 화평하지 못한 기운으로 그에 응할 것입니다. 천지의 기운이 화평하지 못하면 음양이 차서(次序)를 잃고, 풍우가 시기를 어기고, 만물이 이루어지지 않고, 재해(災害)가 따라서 생겨 마침내 위망(危亡)하게 될 것입니다.
아! 임금의 하는 바가 그 사단(事端)은 매우 미세하나 치란(治亂) 안위(安危)의 갈림이 결국 이렇게까지 되는 것이니, 매우 두렵습니다. 이런 까닭에 명군(明君)은 하늘의 성냄을 만나면 더욱더 수성(修省)하여 성(誠)으로써 그에 응하고 덕(德)으로써 감동케 하여, 감히 경홀하거나 태만한 뜻은 조금도 갖지 않습니다.
이는 마치 효자는 그 어버이가 기뻐하지 않으면 반드시 자신을 반성하여 무슨 일에 잘못이 있기에 그러실까를 통절하게 자책하여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다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하늘의 뜻을 능히 맞추어서 재변을 돌려 복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성인이라 해도 능히 세상에 재변이 전혀 없게 하지는 못하는 것이요, 오직 두려운 마음을 잘 가질 뿐입니다. 두려운 마음을 잘 갖는 것은 바로 공경하는 마음을 잘 갖는 것이요, 공경한 마음만 가져서도 안 되므로 감선(減膳)·철악(撤樂)·책기(責己)·구언(求言)으로 공경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나, 그것도 오히려 부족합니다.
곡례(曲禮)에 ‘공경치 아니함이 없다.’ 하였으니, 그것은 심신(心身)의 전체가 털끝만큼도 공경하지 않을 수가 없음을 말한 것입니다. 이렇게 한 후에야 하늘을 섬기는 공경에 해당할 수 있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구차하게 구구한 말절(末節)의 일을 하는 것을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전하는 강학(講學)의 부지런함과 사예(思睿)의 밝으심으로 모든 것을 본디 잘 살피셨다 할 수 있고, 또 예의(銳意)도 치도(治道)를 구하심이 거의 12년이 되었으니, 공경은 족히 위를 감격시키고 덕은 족히 아래를 미덥게 했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도 하늘의 견고(譴告)가 처음부터 심하여 수재(水災)와 한재(旱災)가 잇따르고, 성문(星文)이 자주 변하고, 물괴(物怪)가 연달아 생기고, 기근(飢饉)이 계속 듭니다. 이밖의 놀랄 만한 재변은, 비록 《춘추(春秋)》에 실린 것도 이보다 더하지 않았습니다.
근래에 또 동뢰(冬雷)·지진(地震)을 여러 도에서 다투어 아뢰고, 무지개가 나타나고 꽃이 피는 것이 모두 제철이 아닌 때에 생겼으니, 이것은 모두 음양이 심히 괴려(乖戾)한 것입니다. 달은 태음(太陰)의 정(精)이요, 태미(太微)는 인군이 거하는 곳의 상(象)입니다. 달이 행도(行道)를 잃어 임금의 거소를 범하는 것은 옛적에 드물게 있는 일인데, 이제 마침 그것을 보게 되니 하늘의 성냄을 보임이 이렇게까지 극도에 이르렀습니다.
천지에 있어서 범하지 못할 것은 강상(綱常)입니다. 금수(禽獸)도 오히려 그 어미 아비를 차마 해치지 못하는데, 사람으로서 아비를 구타하여 마치 구적(寇賊)을 죽이듯 하고 후회하지 않으니 일찍이 성치(聖治)의 세상에도 이같은 백성이 있었습니까? 이것은 더욱 인도(人道)의 큰 변란이라, 말을 함에 부지중 한심함을 금치 못합니다.
알지 못하겠지만 전하에게 무슨 잘못이 있기에 이런 혹심한 재화(災禍)를 당하신 것입니까? 신 등이 들으니 아버지가 아들에 대하여 사랑함이 깊으면 가르침이 지극하고 하늘이 임금에 대하여 사랑함이 두터우면 꾸지람이 크다 합니다. 그러니 지금은 바로 전하께서 소심(小心)하여 덕을 닦으며 사심을 이기고 일을 바르게 해야 할 때입니다.
신 등은 모두 못난 자질로 간쟁(諫諍)하는 지위에 있어서 시폐를 바로잡을 계책은 얻지 못하나, 그래도 한갓 격동하는 생각이 있으므로 감히 묵묵히 있을 수 없어서 갑자기 부질없는 말을 올리오니, 전하께서 채택하시기 바랍니다.
신 등이 삼가 생각하옵건대, 제왕(帝王)의 덕은 학문을 힘쓰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고, 학문을 힘쓰는 것은 성명(性命)을 바르게 함을 근거로 하고 선악(善惡)의 귀추를 밝히고 충사(忠邪)의 구분을 분변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고, 원대한 뜻을 세우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일이라 여겨집니다.
이른바 뜻을 세운다는 것은, 마음을 한결같이 하고 뜻을 성실히 하며, 선(善)을 택해 굳게 가져 고명(高明)·정대(正大)한 지경에 있게 하고 부의(浮議)·속견(俗見)에 흔들리지 않기를 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도(道)를 믿음이 독실하고 스스로 앎이 밝지 못한 자라면 어떻게 능히 이에 미치겠습니까? 의리(義理)가 정(精)하지 못한 자는 문견이 많되 의혹되기 쉽고, 뜻을 먼저 정하지 못한 자는 선(善)을 지키되 혹시 옮기게 됩니다. 자고로 능히 그 덕(德)을 높이고 업(業)을 넓혀 지치(至治)를 이루지 못하는 원인이 항상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오직 선왕의 정치를 표적(標的)으로 삼고 성인의 훈계를 모범(模範)으로 삼아, 의연히 스스로 강건(强健)하여 게으르지 않고, 덕량(德量)을 키워 포용성 있게 하며, 규모(規模)를 넓혀 좁지 않게 하여, 행해지지 않으면 계속해서 포기하지 말고 이르지 못하면 중단하지 마시어, 박잡(駁雜)하고 속루(俗陋)한 말과 편사(偏邪)하고 험피(險陂)한 의론으로 하여금 그 사이에 입을 놀려 뜻을 어지럽히지 못하게 한 다음에야, 몸을 닦으매 몸이 닦이지 않음이 없고, 집을 바르게 하매 집이 바르지 않음이 없고, 말을 들으매 말이 그 사실을 감출 수 없게 되고, 사람을 관찰하매 사람이 그 진정을 속일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간언(諫言) 듣기를 물흐르듯 하고, 어진이에게 책임을 맡기되 의심치 않으면, 호오(好惡)가 바르게 되고 시비(是非)가 정해져서 왕도(王道)가 이루어지게 될 것이니, 어찌 위대하지 않겠습니까?
신 등이 가만히 보옵건대, 전하께서는 청명한 덕이 몸에 있고 천품이 탁이하여 기욕(嗜慾)와 완호(玩好)의 일을 즐기지 않고, 성리(性理)의 학에 잠심하고, 날마다 유신(儒臣)을 접하여 학문을 깊이 궁구하시며, 사문(斯文)을 부식(扶植)하고 사기(士氣)를 흥발(興發)하는 것을 자기 임무로 삼으시니, 전하의 유위(有爲)한 뜻이 진실로 큽니다. 그러나 근자에 일을 조처하시는 과정에 있어 천착되는 일이 많고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상도에 어긋납니다.
대간이 시사(時事)를 숨김없이 다 말해서 상소한 것은 전하께서 기꺼이 받아들여 곧 대신과 함께 그 이유를 깊이 궁구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과연 그 말이 옳다고 생각될 때에는 서로 힘써서 재앙을 미연에 막아야 하고, 그렇지 않다고 여길 때에도 또한 일에 앞서서 경계해야 합니다. 그리고 어진이를 좋아하고 선한 사람을 포용하는 도량을 더욱 넓혀야 합니다. 이것이 진실로 치조(治朝)의 일입니다.
전하께서 먼저 대간을 싫어하는 마음을 가지고 대신을 연방(延訪)한 뒤에 갑자기 모두 체직하였습니다. 그때 대신이 만일 흔연히 그에 영합(迎合)하면 도리어 지나친 일이라 여겨질까 생각하여 전하를 유도하여 체직하게 하고, 물러나서는 으레 ‘체직해서는 안 됩니다.’고 청합니다. 또 대간이 능히 직언(直言)·정론(正論)으로 공의(公議)의 억울함을 풀고 사기(士氣)의 저상(沮喪)함을 붙잡는 것은 전하께서 마땅히 들어주셔야 할 것이요, 양쪽을 다 부드럽게 대함으로써 대간의 기풍을 훼상하고 직사(直士)의 사기를 저상시키는 것은 전하께서 마땅히 받아들이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그 시비 득실은 대신에게 물을 필요도 없이 밝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전하께서 먼저 의심스런 기색을 보이시면 대신은 문득 어름한 의논을 드림으로써, 도리어 정론(正論)을 낸 사람을 배척하고 실체(失體)한 자를 두둔하니 이 어쩐 일입니까? 저 대신들이 전하께서 고례(古禮)를 행하고 고사(古事)를 회복하려 하시는 일 같은 것은, 반드시 그 좋은 점을 받들어 행하지 않으면서 오늘날에 알맞은 것이 아니라고 하여, 이 같은 일은 거개 유도해서 성사시키니, 신 등은 실로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충신(忠臣)이 세상을 돕는 것이 본디 이와 같겠습니까?
신 등이 가만히 생각하옵건대, 사람이 능히 오래 살고 강녕하는 것은 원기(元氣)가 일신에 왕성하기 때문이요, 나라가 능히 오래 치세를 유지하는 것은 국시(國是)가 일국에 확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원기가 쇠하면 그 몸이 반드시 위태하고, 국시가 정해지지 못하면 나라가 반드시 어지럽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치에 통달한 자는 그 방법을 가까이 일신에서 구하는 것이니, 나라를 다스리는 도(道)도 이와 통하매 선악을 힘써 구분하고 시비를 통렬하게 분변하여 국시를 정하고 원기를 보존해야 합니다.
국시는 바로 나라의 원기요, 국시가 정해지면 공도(公道)가 행해지고 공도가 행해지면 군자가 진출되고, 군자가 진출되어 그의 충성을 행하면 간사한 자는 기가 꺾이고 아첨한 자는 자취를 감추게 되어 감히 틈을 타서 꾀를 부리지 못할 것입니다. 이것이 진실로 인주(人主)와 보상(輔相)의 책임이요, 인주 한 사람의 생각이 혹 미치지 못함이 있으면 좌우에 있는 대신들은 마땅히 힘과 마음을 다해서 인도하여 임금으로 하여금 사정(邪正)을 분변하는 데 어둡지 않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류(士類)가 그를 힘입어서 튼튼한 국가의 기반을 수립하는 것입니다.
국론(國論)이 오비(汚卑)한 데로 휩쓸리고 원기(元氣)가 쓸쓸하게 막히는 것을 어찌 가만히 앉아서 보기만 하고 구제하지 않겠습니까? 오늘날의 병통은 바로 여기에 있으니, 그것을 생각하면 한심합니다. 이것은 다름이 아니라 이성언(李誠彦) 한 사람이 어지럽힌 것입니다.
신 등은 전하께서 치도(治道)를 구하시는 뜻이 아직 확연 자립(確然自立)되는 지경에 이르지 못하고 전일에 혹 성실하지 못한 바가 있기 때문에, 소인이 술책을 써서 요탈(搖奪)하려고 할까 적이 염려됩니다. 자고로 소인이 간사한 지혜를 써서 술책을 행사하려고 할 때는 반드시 언사(言辭)를 여러 모로 꾸미되, 임금과 정승을 의혹시킬 수 있는 것이면 어떤 짓이고 못하는 일이 없습니다. 공사를 전도하고 시비를 현란시켜 마음이 어지러워 무엇을 따라야 할지 모르게 만든 다음에 임금의 총명을 가리고 선량한 사람을 해치되, 오직 그들 자신의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됩니다. 대저 임금의 밝음은 소인들이 좋아하는 바가 아니요, 시대의 맑음은 본디 간악한 자들이 미워하는 바입니다.
근래로 전하께서 정치를 잘 해보려는 마음이 더욱 간절하시고 어진이를 친근함이 더욱 돈독하시며, 성학(聖學)이 점점 높아지시고 사정(邪正)이 차츰 구분되어, 조정의 기상이 장차 정숙(正肅)해지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간혹 간사한 자가 이에 불평하는 마음을 품고 질투하는 뜻을 가져서 기회를 타려 하나 그 길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성언(誠彦)이 나라를 그르치게 하는 계책을 올려 전하를 시험하게 된 것입니다.
그 글이 처음 들어가서 여러 날 내려지지 않으니, 그때부터 이미 머리를 치켜들고 엿보는 자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대신까지도 혹 마음이 가상하다고 일컫기도 하고, 혹 사실에 의거하여 직서(直書)한 것이라고 칭하기도 하여, 모르는 사이에 사기가 저상되고 공론이 억울하게 됨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언의 계책은 이행(李荇)을 위해서 발설한 것일 뿐만 아니라, 그로써 임금을 의혹시키고 대신을 요동시켜 선류(善類)를 무함하려 한 것입니다. 옛글에 이르기를, ‘오직 인인(仁人)이어야 그들을 방류(放流)하여 사이(四夷)에 내쳐서 중국에 함께 있지 못하게 한다.’ 하였는데, 주자(朱子)가 해석하기를, ‘이 말은 이처럼 아첨하고 투기하는 사람이 있어 어진이를 해치고 나라를 병들게 하면, 인인은 반드시 깊이 미워하여 통렬히 끊는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신 등이 처음에 멀리 귀양보내 시비를 정하게 하자고 청한 것은 경중의 중간을 참작해서 한 것이요, 본시 지나치게 논집(論執)하여 전하께서 들어 주시기를 기대한 것이 아닙니다. 전하께서 특명으로 파출(罷黜)하여 책벌(責罰)의 일단을 밝게 보이셨는데, 그것은 성언은 죄악이 너무 커서 다시는 조정 반열에 끼어 있을 수 없는 자이기 때문에 정직(停職)시킨 것이요, 성언의 죄가 이 정도의 처벌로서 족하다고 한 것은 아닙니다.
신 등은 적이 생각하옵건대, 성종께서 문(文)을 높이고 선비를 좋아하심은 천성에서 우러나신 것이라 일시에 선류들이 많이 배출되었습니다. 그들이 기절(氣節)을 높이고 염치(廉恥)를 숭상하고 할 말을 다하여 극력 간하되 권세(權勢)를 피하지 아니한 것은, 오직 선왕(先王)에게는 그 은혜를 갚고 남은 충성을 사군(嗣君)에 다하려 한 것뿐이었으며, 간흉(奸兇)들이 곁에서 곁눈질하여 몰래 서로 도모할 뜻을 품었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연산(燕山)이 실도(失道)할 때에 미쳐서 흔연히 그 때를 만나 여러 수단을 부렸으니, 특히 무오년의 화(禍)는 참혹하였습니다. 말이 여기에까지 이르매 부지중 통탄스러움을 금치 못합니다. 한번 열린 화란은 갑자년에 극도에 달하여 막중한 종묘 사직을 거의 지킬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전하께서 잠저(潛邸)에 계실 때의 덕이 하늘에까지 들려 포학함 대신 너그러움을 쓰고, 무고한 사람을 위로하여 인(仁)이 죽은 사람에까지 미치고 언론하는 사람을 포장하시게 됨에 힘입어, 거의 사기가 진작되고 언로가 확장되었습니다. 그러나 부형(父兄)과 사우(師友)들은 서로 무오년과 갑자년의 일을 가지고 경계하며 선비들의 마음은 아직도 크게 풀리지 못하여 몸조심하는 자들이 많은데, 지금 전하께서 대신과 함께 만일 참소하는 말과 간사한 의논에 흔들려 선비를 용납할 수 있는 상황을 보이지 않는다면, 누가 감히 남의 거리낌을 무릅쓰고 남의 미움을 받아가면서 화를 취하려 하겠습니까?
신 등은 반드시 지금 재상 중에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모질(媢嫉)한 자가 있다는 것이 아니요, 재상으로서도 또한 누가 ‘나는 선한 사람을 꺼리고 선비를 싫어하는 마음이 없다.’고 말하지 않겠으며, 또 전일의 난을 목격한 지 오래지 않은데 어찌 다시 그 전철을 밟으려 하겠습니까? 그러나 털끝만한 생각이 한번 은미한 사이에 싹트게 되면 시의(猜疑)가 천리 밖에 나타나는 것이니 어찌 은미한 데를 삼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모르겠으나 지금 대신이 하는 것이 무슨 일입니까? 과연 능히 대인(大人)의 덕을 가지고 임금의 마음이 그릇됨을 바로잡고 있습니까? 너그러운 국량을 가지고 일국의 선을 포용합니까? 사(邪)를 억제하고 정(正)을 두둔하여 선비의 추향을 정합니까? 재물을 풍부하게 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여 정치 교화를 일으킵니까? 전하께서는 대신에 대하여 대우함을 후히 하고 위임함을 오로지 하시며, 때로는 명령이나 정사하는 사이에서 보필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여 그침이 없습니다. 그런데 대신이 된 자는 책임이 그 얼마나 중한데 어진 사람을 천거하라고 하면 아는 사람이 없다 하고, 일을 보라 하면 일할 것이 없다 하고, 당참(堂參)이나 받고 계목(啓目)에 도장 찍는 일일 뿐, 섭리(燮理)하는 일을 도외시하고 경방(經邦)이 무슨 일인지도 모르며 재앙을 만나면 상례(常例)대로 피혐이나 할 뿐, 몸을 자책하는 실상이나 하늘에 응하는 성의가 있는 것을 보지 못하겠습니다. 도리어 말해서는 아니될 것을 말하고 논할 필요가 없는 것을 논하는데 재앙을 그치게 하는 방법이 과연 이래야 옳겠습니까? 만일 대신이 해야 할 일을 알고서도 즐겨 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바로 ‘우리 임금은 능력이 없다.’941) 라는 것이고, 알지 못해서 능히 하지 못한다면 이것은 바로 ‘저 정승을 장차 어디에 쓸꼬?’942) 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 등은 오히려, 전하께서 그들을 대우하는 데나 그들을 위임하는 데에 혹 미진한 바가 있기 때문에, 그들이 심중에 쌓인 것을 토로하지 못하고 이처럼 형적에 혐의스런 일을 남기게 되었는가 싶습니다. 전하께서도 또한 자신을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진서(秦誓)943) 에 이르기를 ‘만약 어떤 신하가 순수하기만 하고 특별한 재주는 없어도 그 마음이 너그러워 남을 포용할 수 있는지라, 남이 가진 재능을 자기가 가진 것처럼 여기고 남의 어진 것을 마음으로 좋아하되, 그것이 말로만 좋아할 뿐만이 아니라면, 이는 진정으로 포용하는 사람이라, 능히 자손과 백성을 보존할 뿐 아니라 또한 거의 이로움을 기대할 수 있다.’ 하였으니, 우리 대신들로 하여금 이와 같이 마음을 쓰도록 하게 한다면 이는 참으로 국가의 큰 복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되는 것도 모두 전하께서 그 도리를 얻느냐의 여부에 달렸으니,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유의하소서.
신 등은 ‘천하의 근본은 나라에 있고 나라의 근본은 집에 있다.’라고 들었습니다. 이 말은 나라를 다스리려 하는 자는 반드시 먼저 집을 달 다스려야 한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또 ‘궁중(宮中)과 부중(府中)이 모두 일체(一體)이니, 상주고 벌주는데 차별을 두어서는 안 된다.’944) 는 이 말은 왕자(王者)는 마땅히 마음을 공정하게 가져야지 털끝만큼이라도 사심을 그 사이에 써서 구별을 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고로 국가의 치란과 안위는 항상 가도(家道)의 바르고 바르지 못함에 근원합니다. 가도의 바르고 바르지 못함은 밝게 나타난 데에서 가려지는 것이 아니고 항시 소홀하고 은미한 데에서 갈라지는 것입니다. 대개 규문(閨門)의 안은 은(恩)이 의(義)를 가리우고, 상자(床第) 위에서는 정욕이 흐르기 쉬운 것이라, 보통 사람도 마땅히 삼가야 할 것입니다. 하물며 임금은 구중궁궐에 깊숙이 거처하여 빈어(嬪御)가 앞에 가득히 앉아 여러 가지 말과 행동으로 은연중에 서로 뜻을 빼앗는 것이 진실로 한두 가지뿐이 아니어서, 어진 신하가 좌우에 있지 않고 올바른 사람이 간언할 수 없게 되는 경우에리까?
예컨대 물은 졸졸 흐를 때 막지 않으면 결국은 홍수가 하늘에 닿을 듯이 범람하게 될 것이요, 불은 막 타오르기 시작할 때 끄지 않으면 마침내는 요원의 불길처럼 타오르게 될 것입니다. 아, 인주가 능히 홀로 있을 적을 삼가고 몸을 진실하게 가져 정치를 발하는 근본에 처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이런 까닭에 군자는 장차 궁위(宮闈)가 어지러워질 것을 알고 선뜻 떠나버리는 자가 있으며, 소인은 반드시 내정(內庭)이 바르지 못한 틈을 타서 서로 결탁하여 그 사이에 농간을 부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밝은 임금은 이러한 것을 알아서 위엄으로 대하고 의(義)로 제재하여 사알(私謁)을 끊고 요행을 노리는 길을 막으며, 언제나 조심하여 미연에 막아, 부수지소(膚受之愬)945) 가 좌우에서 행할 수 없게 하고 침윤지참(浸潤之譖)946) 이 들어올 수 없게 해야 합니다.
우리 성조(聖朝)는 가법이 올바르니 전하께서는 그를 준수하되 더욱 삼가고 엄중히 하여, 멀리는 옛날의 것을 본받고 가까이는 요즈음을 경계로 하소서. 집안을 바르게 하는 도리는 반드시 신 등의 말을 기다릴 것이 아니오나, 사람의 마음이란 무상한 것이므로 경각에 추향이 달라져서 천지의 차이가 생겨도 스스로 능히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물며 지금은 중위(中闈)의 위치가 처음 바르게 될 때이므로 더욱 근신하지 않을 수 없음에리까? 궁위(宮闈)의 엄밀(嚴密)에 대해서는 신 등이 알 바 아니오나, 사람을 들여보내고 내보내고 하는 일만은 외간(外間)에서도 오히려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비복(婢僕)은 비록 미미한 것이지만 궁적(宮籍)에 예속시킬 경우에는 한 번 들이고 한 번 내보내는 것을 경홀히 넘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임용절차에 있어서 정원(政院)과 해사(該司)를 거치지 않고 내수(內豎)가 간접으로 불러서 마음대로 대내에 들여보냈다가 법관이 함문(緘問)947) 하자 즉시 내보냈습니다. 내보내고 들여보내는 일이 애매하여 위에 관계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중간에서 처리하였습니다. 범람한 자의 하는 일은 대방(大防)을 무너뜨리고 자기의 사욕을 행하였으니, 끝내는 말할 수 없는 일을 빚을 것입니다.
이 여비는 전일에 사물(私物)을 가지고 외람되이 궁위를 통하였으니 법을 범함이 이미 심하였는데 이제 또 엄시(閹寺)를 인연하여 수신(修身)·제가(齊家)의 정치를 더럽히어, 지천(至賤)한 자의 이름이 지존(至尊)에게 알려지게 되었으니, 이보다 더 놀랍고 괴상한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전하께서는 예사로 여기시어 놀라지 않으시고 정원은 미세한 일로 생각하고 시정하지 않으니 어찌 능히 은미한 즈음에 조심하여 우환을 싹트기 전에 소각하고 화를 미연에 방지한다고 할 수 있습니까? 이 조짐이 날로 자라면 그 말류(末流)를 막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 한 가지를 보아 그 밖의 것도 알 수 있으니, 신 등이 미리 염려하는 바입니다. 삼가 원하옵건대, 전하께서는 유의하소서.
신 등은 적이 생각하옵건대, 왕세자는 천하 국가의 근본이므로 그 중함이 비할 데 없고 그 책임이 막대합니다. 그러므로 책임이 돌아갈 곳에는 먼저 그것을 받을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선해지느냐 악해지느냐 하는 것은 어릴 때에 판별되는 것이므로 후일의 흥망과 치란이 이에 관계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리 길러야 하고 일찍 가르쳐야 하니 옛사람은 태중(胎中)에 있을 때부터 이미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이미 출생한 뒤에는 비록 포대기를 받드는 일을 하는 천한 자까지도 정대(正大)한 사람을 택하지 않을 수 없는데, 하물며 보부(保傅)를 삼을 자이겠습니까? 비록 심상한 언어(言語)와 고첨(顧瞻)에 있어서도 감히 함부로 희롱하지 못하게 해야 하는데 하물며 학습하는 일이겠습니까?
더구나 지금은 종사가 영험을 내리고 신명이 복을 베풀어서 원자의 기질이 범상에서 뛰어나 겨우 세 살 될 나이에 이미 학문을 알고 희완(戲玩)의 일을 즐기지 않으며, 동정에 법도가 있으니, 이는 참으로 상지(上智)의 자질입니다. 만일 교양(敎養)에 방법을 잃지 않고 사부(師傅)에 올바른 사람을 얻는다면 후일의 진덕(進德)이 무한할 것입니다.
신 등이 전하께서 원자를 경계하기 위해 지은 글을 가만히 보옵건대, 성상의 뜻이 정녕 반복하여 기대하시고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여, 몸을 닦고 집안을 정돈하고 임금으로서 백성을 다스리는 도리가 모두 그 글에 있으니, 신 등은 전하께서 매우 자신(自信)하시고 아들을 가르치심을 올바르게 하신 데 대해 경하해 마지않습니다.
다만 우리 나라는 왕자를 보양(保養)하는 데 고례(古禮)를 잃고 있어서, 왕자가 탄생하자마자 곧 궁밖에 내보내 여시(女侍)의 손에 맡겨 놓아 항시 여염의 사이에 있게 하는데, 아보(阿保)된 자는 안정(安靜)하게 위호(衛護)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고 편리만을 따라 이리저리 옮기니, 이로 말미암아 슬하(膝下)의 정이 결여되고 몽양(蒙養)의 도가 없어질 뿐더러, 귀는 비리(鄙俚)의 소리에 물들고 눈은 오예(汚濊)한 빛에 익숙하여 그대로 습성이 됩니다. 비록 왕의 제자(諸子)나 서녀(庶女)라 해도 오히려 이와같이 할 수 없거늘, 하물며 원자(元子)이겠습니까?
지금 곤위(坤位)가 갓 정해졌으니, 눈앞에서 무양(撫養)하여 은애(恩愛)의 돈독함을 더하는 것이 더욱 마땅합니다. 모자는 천성이라, 비록 가르치지 않더라도 돈후(敦厚)한 정을 잘 쏟는 것이라 하지만 또한 무양에는 바탕이 있는 것입니다. 삼가 원하옵건대, 전하께서는 유의하소서.
또 전하께서는 대신 2∼3명을 이미 골라서 원자의 처소에 교대로 가게 하여 교양(敎養)의 책임을 맡기셨으니, 이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러나 신 등의 생각에는 널리 사부될 사람을 선택하되, 벼슬의 고하에 구애하지 말고 오직 돈정(敦正)하고 순덕(順德)한 사람인가를 보아 널리 구하여 대신과 함께 오래도록 서로 뫼시게 하여, 차츰 그에 감화됨으로써 덕성(德性)을 기르고 현사(賢士)를 친할 수 있게 했으면 합니다. 필부(匹夫)도 아들을 가지면 오히려 그의 덕이 이루어지기를 바라 그를 가르치는 방법이면 무엇이나 다 하는데 하물며 조종의 중책을 이어받아 전하의 몸을 계승할 원자이겠습니까? 삼가 원하옵건대 전하께서는 유의하소서.
신 등이 삼가 생각하옵건대, 옛날에는 간언하는 데 특정한 벼슬이 없었습니다. 직책을 가진 자만이 간언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서인(庶人)이 길에서 하는 의논이나 상려(商旅)가 저자에서 비방하는 것까지 그 말을 채택하므로 상하의 정이 통하지 않은 데가 없게 하였는데, 후세에 와서는 간언의 책임이 대간에만 있으니, 비록 임금이 곧은 말을 듣기를 절실히 갈구한다 하더라도 오히려 길이 좁으므로 많은 좋은 말들이 통하지 못할 것이 염려됩니다. 더구나 깊은 궁궐에 들어앉아만 있고 조정에 나와 정무 보는 일을 게을리하며, 정치상의 번다한 일들을 오직 간독(簡牘)으로만 통하고 왕언(王言)을 출납하는 중임을 환시(宦寺)에게만 맡겨서야 되겠습니까? 곧은 간언을 멀리하고 듣지 않으며 오직 나의 말을 어기지 말라고 하면 참간(讒姦)이 옹폐(壅蔽)하고, 곧은 사람이 입을 함봉하여 물정(物情)이 폐색(閉塞)되고, 임금의 세력이 외롭게 되어 당하(堂下)의 거리가 천리나 멀게 될 뿐 아니라 현무(眩誣)하고 참구(讒構)하는 변이 반드시 측근에서 일어나게 되어, 여지없이 무너지는 환(患)을 끝내 구제할 수 없게 될 터이니, 어찌 두렵지 않습니까?
전하께서는 언로(言路)를 통하게 해 놓았다고 할 수 있으나, 그것이 또한 능히 상하의 뜻을 통하여 간격이 없게 했다 할 수 있겠습니까? 사방의 사정을 통달하여 막힘이 없다 하겠습니까? 혹시 총명(聰明)이 미치지 못한 바가 있고 정의(情意)에 미덥지 못한 바가 있다면, 전하께서 들어 주는 일이나 감응하는 성의에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런데 근래에는 대간의 말에 대하여 싫어하거나 거절하는 뜻을 가지시어, 한 일을 의논하고 한 사람을 탄핵하는 것까지도 걸핏하면 열흘이나 한 달을 끌어서 겨우 한두 가지만을 들어 주실 뿐입니다. 아무리 지나친 일이더라도 스스로 반성하고 뉘우쳐 깨닫는 뜻을 가지셨다는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으레 모든 것을 글로만 답하고, 허심탄회하게 성의를 베풀기를 즐겨하지 않으십니다.
이런 때문에 선비들은 침묵을 지키는 버릇이 많고 나라에는 퇴폐하고 태만한 형상이 드러나는데, 대신이 이에 약석(藥石) 같은 말을 올려서 그를 구제한 일이 있다는 것을 일찍이 듣지 못했습니다. 전하께서는 오늘날 이미 안치(安治)가 이루어져서 한가지 일도 말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신 등이 볼 때에는 서정(庶政)이 거행되지 않고, 기강(紀綱)이 서지 않고, 현우(賢愚)가 구별되지 않고, 탐비(貪鄙)가 풍속을 이루고, 민생이 곤궁하고, 변경에 소요가 많으니, 말해야 할 일과 해야 할 정사가 참으로 많다고 여겨집니다. 이미 대간으로 이목의 구실을 하는 벼슬을 삼았으니, 곧은 의논과 바른말을 들어 결점을 보충하고 막힌 데를 통하게 해야 할 것인데, 오히려 막연히 들어 주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시니, 다른 신하에게야 어찌 바람이 있겠습니까?
옛날 진공(晉公)이 숙향(叔向)에게 묻기를948) ‘국가의 환(患)은 그 무엇이 큰가?’ 하니, 대답하기를, ‘대신은 녹만 받아먹고 말하지 않고, 소신은 죄가 두려워서 말하지 아니하여, 아랫사람의 실정이 통할 수 없게 되는 것이 가장 큰 환입니다.’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의 실정을 두고 한 말입니다. 만일 이와 같은 일이 계속된다면 나라가 지탱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전하께서 어찌 생각해 보시지 않으십니까? 일폭 십한(一曝十寒)949) 은 선현(先賢)의 경계한 바요, 중초독제(衆楚獨齊)950) 는 자고로 근심이 되는 바입니다.
대저 큰 계략을 품고서도 겨우 두세 가지를 진언하고 충언(忠言)을 많이 가지고도 겨우 한두 가지를 주달할 수 있는 기회는 오직 경연(經筵)이 있을 뿐인데, 요즘은 성상의 편치 못함으로 인하여 경사(卿士)들을 대하지 않으신 지가 이미 열흘이나 되었습니다. 접촉하는 자들은 경사들이 아니라 곧 빈어(嬪御)들이니, 모르겠습니다만 전하의 심지(心志)가 능히 그 떳떳함을 보전하여 으슥한 속에서도 청정(淸淨)함을 온전히 보존하시는 것입니까? 이것이 신 등이 염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전하께서는 유의하소서.
이상 몇 가지 일들은 모두 지금의 큰 병통이요, 정치(政治)의 대강(大綱)이 되는 것입니다. 대강이 이미 잘되면 기타 절목(節目)은 반드시 바루지 않아도 저절로 잘 되는 것입니다.
전하께서 참으로 지난 잘못을 통렬하게 반성하고 오는 장래를 삼가시며, 도학(道學)을 힘써 몸을 닦고 호오(好惡)를 밝혀 국시(國是)를 정하시며, 큰 뜻을 세워 제왕의 정치를 회복하고 현신(賢臣)을 친히 하여 감응(感應)의 이치를 통달하시며, 추향(趨向)을 한결같이 하여 사습(士習)의 귀추(歸趨)를 바르게 하시되, 오래 힘써 행하고 차츰 순치(馴致)하시며, 또 궁위(宮闈)의 규범을 엄하게 하여 집안을 바르게 하는 도리를 다하고, 천지와 같은 국량을 넓혀 간언을 받아들이는 아름다움을 보이신다면, 대신은 자연 전하의 뜻을 본받아 착한 선비를 포용하고 간사한 사람을 내칠 것이며, 여러 벼슬아치들은 서로 좋은 점을 배우고 공경하고 화협하여 화선(和善)한 기풍을 이룰 것이며, 하늘은 감응하지 않음이 없고 백성은 감동하지 않음이 없으며 모든 복되는 물건과 나타날 만한 상서는 다 집중될 것이니, 전하의 학문의 공이 이에 이르러 지극할 것입니다.
신 등은 들으매, 칠실(漆室)의 여자도 나라를 근심하는 마음을 가지고 기둥에 의지해서 탄식했다951) 합니다. 하물며 신 등은 언관(言官)이 된 자임에리까? 임금이 주시는 옷을 입고 임금이 주시는 밥을 먹으면서, 구구한 회포나마 전하를 위해 한 번 진언하지 않는다면 칠실의 여자만 못할 것입니다.
삼가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신 등의 말이 오활하다고 천하게 여기지 마시고 조금 살펴 주소서." 【정언(正言) 이약빙(李若氷)이 지은 것이다.】
- 【태백산사고본】 16책 31권 5장 B면【국편영인본】 15책 366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인사-선발(選拔) / 인사-임면(任免) / 과학-천기(天氣) / 과학-생물(生物) / 과학-지학(地學) / 윤리-강상(綱常) / 역사-고사(故事) / 왕실-종사(宗社) / 왕실-궁관(宮官) / 왕실-종친(宗親) / 왕실-의식(儀式)
- [註 941] ‘우리 임금은 능력이 없다.’ : 《맹자(孟子)》 이누(離婁) 상(上)에 "착한 것을 펴고 간사함을 막는 것을 공경이라 하고, 우리 임금은 능력이 없다고 하는 것을 적이라 한다."고 하였다.
- [註 942] ‘저 정승을 장차 어디에 쓸꼬?’ : 《논어(論語)》 계씨(季氏)에 "나라가 위태할 때에 붙들지 않으면, 그런 정승을 장차 어디에 쓸꼬?" 하였다.
- [註 943] 진서(秦誓) : 《서경(書經)》의 편명(篇名).
- [註 944] ‘궁중(宮中)과 부중(府中)이 모두 일체(一體)이니, 상주고 벌주는데 차별을 두어서는 안 된다.’ : 제갈양(諸葛亮)의 출사표(出師表)에 보인다.
- [註 945] 부수지소(膚受之愬) : 갑작스레 아픈 곳을 다친 듯 절박하게 호소하는 일. 《논어(論語)》 안연(顔淵)에 보인다.
- [註 946] 침윤지참(浸潤之譖) : 남이 깨닫지 못하게 슬쩍슬쩍 참소하는 일. 역시 《논어(論語)》 안연(顔淵)에 보인다.
- [註 947] 함문(緘問) : 법관이 과오를 범한 벼슬아치에게 서독(書牘)으로 문책하는 일.
- [註 948] 진공(晉公)이 숙향(叔向)에게 묻기를 : 출전 미상.
- [註 949] 일폭 십한(一曝十寒) : 하루만 부지런하고 열흘은 게으르다는 말. 《맹자(孟子)》 고자(告子) 상(上).
- [註 950] 중초독제(衆楚獨齊) : 제(齊)나라 사람 한 명이 제나라 말을 가르치고, 초(楚)나라 사람 여러 명이 곁에서 떠든다는 말로, 착한 사람 한 명이 여러 명의 나쁜 사람을 당해내지 못한다는 뜻이다. 《맹자(孟子)》 등문공(滕交公) 하(下).
- [註 951] 칠실(漆室)의 여자도 나라를 근심하는 마음을 가지고 기둥에 의지해서 탄식했다 : 《열녀전(列女傳)》 인지(仁智) 노칠실녀전(魯漆室女傳)에 "노(魯)나라 칠실(漆室)이란 고을에 사는 아직 시집가지 못한 처녀가 하루는 걱정하기를 ‘우리 나라는 임금이 늙었고 태자는 어리니 만일 국란이 있으면 임금이나 백성이 모두 욕을 당할 것인데 여자들은 어디로 피할까?’ 했다." 하였다.
원문
○司諫院大司諫李成童等上疏曰:
伏以茫茫在上, 渺渺在下, 形躰隔絶, 邈乎其不相關矣, 而人有一善一惡, 莫不與天流通, 應若影響。 蓋天人一氣, 氣旣相貫, 有感必應, 自然之理也。 而況人君居天之位, 代天之事, 而出(王)〔入〕 遊衍之頃, 念慮意思之微, 明明之監, 無乎不在, 休咎之徵, 固不虛矣。 嘗論祥瑞, 卽天之喜也; 變異, 卽天之怒也。 天之喜怒, 非天之喜怒, 乃天下人之喜怒也。 天下人之喜怒, 係於人主之所爲。 人主之所爲, 無非至善, 則天下之人必喜, 喜則其心必和。 和氣旣生, 充乎上下, 則天地自然以和氣應之。 天地氣和, 則陰陽順、風雨時、百物遂, 妖孽不作, 而世躋熙皞之域矣。 苟爲不善, 則天下之人必不喜, 不喜則其心必不和。 不和之氣旣盈, 則天地自然以不和之氣應之, 天地之氣不和, 則陰陽失序, 風雨愆期, 百物不遂, 災害竝至, 終底於危亡而已。 嗚呼! 人主之所爲, 其端甚微, 而治亂安危之分, 遂至於此, 可畏之甚也。 是故明君遭天之怒, 益自修省, 應之以誠, 感之以德, 不敢少有輕忽弛慢之意, 有如孝子, 其親不悅, 必反求吾身有何事之失, 痛自刻責而盡吾之所當爲也。 玆所以克享天心, 轉災爲福也。 然則雖聖人, 不能使災變必無於世, 而惟幸其能懼耳。 能懼者, 能敬者也。 敬非徒敬, 夫減膳、撤樂、責己、求言, 皆其示敬者而猶未也。 《曲禮》曰: "無不敬。" 謂心身內外, 不可使一毫之不敬也。 如此然後, 可以當事天之敬矣。 不然, 不免於因循苟且, 區區然末節之歸矣。 以殿下講學之勤, 睿思之明, 可謂察之有素, 而殿下之銳意求治, 殆一紀于玆, 敬足以上格, 德足以下孚, 而天之譴告, 自初彌甚, 水旱頻仍, 星文屢變, 物怪疊至, 飢饉荐臻, 其他可愕之變, 可驚之災, 雖《春秋》所載, 無以踰此。 近又冬雷、地震, 諸道競報, 虹見、花開, 竝非其時。 此皆陰陽乖戾之極, 而月, 太陰之精也, 太微, 人君所居之象也。 月行失道, 犯入帝居, 自古罕有, 而通見於今, 上穹示怒, 至此極焉。 在天地澟然不可犯者, 綱常也。 禽獸猶不忍害其所生, 人而加手於父, 視之如殺寇賊而不悔, 曾謂聖治之世, 乃有如是之民耶? 此又人變之大者, 言之不覺寒心。 未審殿下有何闕遺, 而遭此災禍之酷? 臣等聞父之於子, 愛之深則敎之至; 天之於君, 眷之厚則譴之重。 政宜殿下小心修德, 克己正事之時也。 臣等俱以譾薄, 叨居諫諍之地, 未得匡時之策, 徒有激昻之懷, 不敢容默, 輒陳瞽說, 惟殿下裁擇之。 臣等伏念帝王之德, 莫大於務學, 務學莫大於根性命之正, 明善惡之歸, 辨忠邪之分, 而尤貴乎立遠大之志。 所謂志立者, 一心誠意, 擇善固執, 期在於高明、正大之域, 而不易於浮議、俗見也。 苟非信道篤, 自知明者, 其何能及此? 義理不精者, 多聽而易惑; 志先定者, 守善而或移。 自古不能崇其德廣其業, 以成至治, 患常在此。 惟以先王之治爲標的, 聖人之訓爲模範, 毅然自强健而不怠, 弘德量而有容, 闊規模而不隘, 不行不措, 不至不已, 使駁雜俗陋之言, 偏邪險陂之論, 無所容喙於其間, 以亂其志, 然後修己而己無不修, 正家而家無不正, 聽言而言不得逃其實, 觀人而人不得遁其情, 從諫如流, 任賢不貳, 好惡以正, 是非以定, 而王道終矣。 豈非韙歟? 臣等竊觀 殿下, 淸明在躬, 天稟卓異, 無嗜慾玩好之娛, 潛心於性理之學, 日接儒臣, 講劘硏窮, 扶植斯文, 興發士氣爲己任, 殿下有爲之志, 固大矣。 然近者施措之間, 事多舛錯, 好惡乖常。 臺諫之不諱時事, 盡言陳疏者, 殿下(之)所宜喜聞樂聽, 乃與大臣深究厥因, 果如其言, 務要交相勑勵, 消患於未然, 如其不然, 亦當先事而戒, 益恢好賢容善之量, 是誠治朝之事也。 殿下先有厭惡之心, 延訪之餘, 遽命盡遞。 大臣若欣然迎合之, 反謂過越, 導之使遞, 而退則例請曰不可遞。 且臺諫之能直言、正論, 以伸公議之鬱抑, 以扶士氣之摧沮者, 殿下之所宜與也; 未免脂韋兩間, 毁臺諫之風, 沮直士之氣者, 殿下之所宜不與也。 其是非得失, 不必問諸大臣而灼然可知。 殿下先示疑難之色, 大臣遽進謬悠之議, 反去正論之人, 而存其失體者, 是何意耶? 殿下如欲行古禮復古事, 則必不將順其美, 以爲不宜於今, 而如此事, 類皆縱臾成之, 臣等實未解焉。 忠臣輔世者, 固如是乎? 臣等竊惟, 人之能壽考康寧, 以元氣壯盛於一身也; 國之能長治久安, 以國是明定乎一國也。 元氣之衰索者, 其身未必不危; 國是之不定者, 其國未必不亂。 是以達乎理者, 卽乎一身之近, 而通乎爲治之道, 務分善惡, 痛辨是非, 以定國是, 以保元氣。 國是, 其惟國之元氣乎! 國是定而公道行, 公道行而君子進, 君于進而得行其忠, 則憸邪屛氣, 邪侫遁跡, 莫敢投隙抵罅, 以逞其術, 此固人主與輔相之責也。 一人之慮, 如或不逮, 爲左右大臣者, 當戮力盡心而導之, 使吾君不迷於辨別邪正, 士類得有所依庇, 以樹國家不拔之基, 豈忍坐視國論靡然趨於汚卑, 元氣蕭然歸於痞塞而莫之救也? 當今之病, 正在於此, 思之可謂寒心。 此無他, 一李誠彦亂之也。
臣等竊恐殿下求治之志, 尙未至於確然自立之地, 而前日或有所不誠不實, 故小人欲以其術搖奪之耳。 自古小人之欲舞奸弄智, 以售其術者, 必造言飾辭, 萋斐萬端, 可以移惑時君與相者, 無所不用其極, 使之顚倒公私, 眩亂是非, 心疑志潰, 莫適所從, 然後蒙蔽聰明, 戕害善良, 而惟吾之所欲爲也。 夫君之明, 非小人之所喜; 時之淸, 固奸(究)〔宄〕 之所惡。 自近世以來, 殿下圖治益切, 親賢愈篤, 聖學漸高, 邪正稍分, 朝廷氣象, 將至於整肅矣, 間有憸邪之人, 懷不平之心, 有嫉妬之志, 欲乘其釁, 而未得其路, 誠彦因進誤國之計, 以試殿下, 而其書初入, 累日不下, 固已有引領而窺測者矣。 至如大臣, 或稱心事可嘉, 或稱據事直書, 潛使士志消沮, 公論鬱抑, 而不自覺也。 誠彦之計, 非但爲李荇而發也, 因欲熒惑人主, 搖動大臣, 誣陷善類而已。 傳曰: "唯仁人放流之, 逬諸四夷, 不與同中國。" 朱子釋之曰: "言有如此媢嫉之人, 妨賢病國, 則仁人必深惡而痛絶之。" 臣等之初請遠竄, 以定是非者, 酌輕重之中而爲之, 固非過當論執, 期回天聽。 殿下特命罷黜, 顯示責罰之端, 而誠彦罪大惡極而不可更齒於朝列, 故停之耳, 非謂誠彦之罪, 止是而足也。 臣等竊念成宗大王, 右文好士, 出於天性, 一時善類, 彬彬輩出, 莫不崇氣節尙廉恥, 盡言極諫, 不避權勢, 惟欲報主恩於先王, 竭餘忠於嗣君, 不知兇奸, 從傍側目, 陰有相圖之志。 及其燕山失道, 欣得其時, 以肆其手。 戊午之禍, 慘且酷矣。 言至於此, 不覺殞痛。 一啓禍亂, 極於甲子, 宗社之重, 殆無以守之。 幸賴殿下龍潛之德, 升聞于天, 代虐以寬, 慰弔非辜, 仁及朽首, 褒奬言者, 庶可以振張士氣, 開廣言路, 而爲父兄、師友者, 交相以戊、甲年事戒之, 士心尙未大釋, 而多有自謀之計。 今者殿下與大臣, 若又爲讒言邪論所動, 不見容許, 則孰敢冒人所忌, 拂人所惡, 以取禍哉? 臣等非必謂今之宰相, 亦有媢嫉者, 如上所云, 而爲宰相者, 亦誰不曰我無忌善厭士之心, 而且前日之亂, 目經未久, 豈欲復蹈其轍? 然絲毫之念, 一萌於幾微之間, 而猜徂形於千里之外, 可不愼之於微乎? 第未知今之大臣, 所爲何事? 果能有大人之德而格君心之非乎? 有(木)〔休〕 休之量而容一國之善乎? 抑邪與正而定其士趨耶? 阜物安民而興其治化耶? 殿下之於大臣, 待之非不重也, 任之非不專也, 時於命令、政事之間, 望其啓沃輔弼之意, 惓惓不已, 勤且至矣。 爲大臣者, 當何如也, 而命之薦賢, 則曰我無所知, 命之署事也, 則曰我無所事, 不過受堂參署啓目而已, 置燮理於度外, 昧經邦爲何事, 遇災引嫌, 循常仍例, 不見有責躬之實, 應天之誠, 而反以不當言者言之, 不必論者論之。 弭災之道, 誠若是而可乎? 若知其大臣之事而不肯爲也, 是謂吾君不能也; 不知而不能爲也, 將焉用彼相哉? 然臣等猶恐殿下之所以待之也, 任之也, 或有所未盡, 故不能吐露底蘊, 乃有形迹嫌疑之事也。 殿下亦宜反求於己。 《秦誓》曰: "若有一介臣, 斷斷兮無他技, 其心休休焉, 其如有容焉, 人之有技, 若己有之, 人之彦聖, 其心好之, 不啻若自其口出, 是能容之, 以能保我子孫, 黎民尙亦有利哉!" 如使吾大臣, 用心能如是焉, 則誠國家無疆之福也, 而其所以致此者, 亦在於殿下之能得其道, 伏願殿下留意焉。 臣等聞天下之本在國, 國之本在家。 此言欲治其國者, 必先齊其家也。 宮中、府中, 俱爲一體, 陟罰臧否, 不宜異同, 此言王者, 當公其心, 不可使絲毫偏係, 或累於其間而爲之畦畛也。 自古國家治亂安危, 常源於家道之正、不正。 家道之正、不正, 不在著現明顯, 而恒分於抄忽毫微之頃。 蓋閨門之內, 恩常掩義; 床笫之上, 情欲易流。 在凡人亦所當謹, 而況人君深居九重, 嬪御滿前, 甘言悲辭, 潛相奪志者, 固非一端, 拂士不在於左右, 正人無得以規警? 涓涓不霖, 遂至滔天, 炎炎不滅, 終至燎原。 吁! 人主之能謹獨誠身, 以處出治之本者, 難矣哉! 是故君子有知宮闈之將亂, 而望望然去之者, 小人必因內治之不正, 攀結締交, 以行其間。 明君知其然, 嚴以莅之, 義以制之, 杜私謁之門, 塞僥倖之途, 兢兢業業, 日愼一日, 防微謹漸, 使膚受之愬, 不行於左右, (侵潤)〔浸潤〕 之譖, 無得以入焉。
惟我聖朝, 家法聿正, 殿下遵而勿失, 益自謹嚴, 遠法於古, 近戒於今, 正家之道, 不必待臣等之言, 然人心無常, 頃刻異向, 天壤之判, 不自能覺。 況今中闈初正, 尤不可不致其謹, 而宮闈嚴密, 非臣等所得聞知, 第以出納之際, 外間尙不能無疑。 婢僕雖微, 顧隷宮籍, 則一人一出, 不可視之爲忽易, 而命不由政院, 事不下該司, 內竪徑招, 擅入大內, 法官緘問, 旋卽出之。 或出或入, 形迹暗秘, 似若不關於上, 而出於中間泛濫者之所爲, 其毁大防而行已私, 終有所不可言者。 是婢前日猥將私物, 濫通宮闈, 干憲固已甚矣, 而今又緣互閹寺, 用溷修齊之政。 至賤之名, 達于至尊, 可駭可愕, 莫此爲甚。 殿下委之例事而不驚, 政院以爲微事而不救, 其可謂能愼於微, 消患於未萌, 弭禍於未形乎? 此漸日長, 末流難防, 而擧一隅, 可知其三。 此臣等之所以預爲之慮也。 伏願殿下留意焉。 臣等竊惟儲貳, 天下國家之根本, 其重無比, 其責莫大。 責之所歸, 須先有可受之地, 善惡之分, 判於糿穉之時, 而他日興亡治亂, 於是乎係焉。 是故養之宜豫, 敎之宜早, 古人自在於胎, 已有敎焉, 及其旣生, 雖至奉褓服事之賤者, 莫不求擇其正大之人, 而況於爲保傅者乎? 雖尋常言語顧瞻之際, 使之莫敢狂且戲焉, 而況於府習乎? 矧令宗社降靈, 神明垂祐, 元子氣質, 超凡卓群, 纔及三歲, 已知學問, 不嗜戲玩, 動靜有法, 是誠上智之資也。 若因以敎養不失其方, 師傅得其正人, 則異日進德, 曷有窮已? 臣等竊見御製, 以戒元子, 天意丁寧反覆, 冀望懇到, 而修身齊家君國字民之道, 盡在於是。 臣等不勝賀殿下自信之篤, 敎子之得其正也。 但我國保養王子, 殊失古禮, 誕生之初, 卽出于外, 只委女侍之手, 恒寓閭閻之間, 爲阿保者, 不知安衛靜護之方, 遷徙靡常, 唯利是視, 由是膝下情缺, 蒙養道廢, 耳染鄙俚之聲, 目慣汚穢之色, 因與習成。 雖王之諸子、庶女, 尙不可如是, 而況元子乎? 厥今坤位初定, 尤宜撫之於眼前, 以加恩愛之篤。 母子天性, 雖曰不敎而能, 情之敦厚, 亦由於撫養之有素。 伏願殿下留意焉。 且殿下旣擇二三大臣, 命替往元子所付。 敎養之責, 玆固美事, 然臣等意以爲, 當廣選可爲師傅者, 不拘爵序之高下, 惟觀敦正、順德之人, 使與大臣, 悠久相侍, 優游浸漬, 以養德性, 以親賢士夫。 匹夫有子, 尙冀其成德, 敎之之術, 無所不至, 而況承祖宗之重, 繼殿下之體者乎? 伏願殿下留意焉。 臣等伏念古者諫無官, 非特有職守者得以言, 至于庶人議於道, 商旅謗於市, 莫不採而用之, 使上下之情, 無所不通。 逮後世, 言責之寄, 只在臺諫, 雖人主渴聞讜論, 猶恐不及, 尙慮爲途隘窄, 衆多之善, 壹鬱有鉗滯患之。 而況屛處深宮, 不勤視朝, 萬幾之煩, 唯寄乎簡牘, 出納之重, 只委於宦寺, 遠直諫而不聞, 惟予言而莫違, 則讒姦壅蔽, 鯁士咋舌, 則物情閉塞, 主勢暌孤, 不唯堂下遠於千里, 眩誣讒構之變, 必起於袵席肘腋之間, 而土崩之患, 終莫能救, 可不懼哉? 殿下之於言路, 可謂通矣, 然其亦能通上下之志而無間歟? 達四方之情而無壅歟? 其或聰明有所不逮, 情意有所未孚, 則殿下之於聽受之際, 感應之誠, 當如何也? 近年以來, 其於臺諫之言, 頗有厭倦固拒之意, 至於論一事彈一人, 動經旬月, 僅從一二, 雖有過擧, 而未聞有自省悔悟之志, 例皆文以答之, 不肯虛懷布誠, 以來言者。 由是士多循默之習, 國有頹惰之形, 而未嘗聞有大臣進藥石而鍼之。 殿下其謂今之時, 已安已治, 而無一事可言耶? 以臣等見之, 庶政不擧, 紀綱不立, 賢愚混淆, 貪鄙成俗, 民生困窮, 邊圉多虞, 可言之事, 可爲之政, 固亦多矣。 旣以臺諫爲耳目之官, 欲聞直論、正言, 以補闕失, 以通阻隔, 而猶邈然不納, 慢忽自用, 則自餘臣工, 曷有望焉? 昔晋公問叔向曰: "國家之患, 孰爲大?" 對曰: "大臣持祿而不言, 小臣畏罪而不講, 下情不得相通, 此患之大者。" 今日之謂也。 若此不已, 國無類矣。 殿下胡不思之也? 且一曝十寒, 先賢所戒, 衆楚獨齊, 終古攸患。 夫懷宏圖而得進數三, 蘊忠言而得達一二者, 唯有經筵, 而近緣聖躬靡寧, 曠視卿士, 已浹旬日, 而所嘗接御者, 非貂璫之輩, 卽嬪御之徒, 未知殿下之心志, 能保其常, 淵然全淨蜎涓蠖濩之中耶? 此臣等之不得不慮也。 伏願殿下留意焉。 凡此數事, 皆當今之巨病, 而爲治之大綱也。 大綱旣擧, 則其他節目, 不必正之而自擧矣。 殿下誠能痛省往愆, 克謹將來, 務道學以修厥躬, 明好惡以定國是, 立大志以復帝王之治, 親賢臣以達孚感之理, 一趨向以正士習之歸, 力行以久, 馴致以漸, 又能嚴宮闈之政, 以盡正家之道, 廓天地之量, 以示納諫之美, 則大臣自然體殿下之志, 容善好士, 黜奸去邪, 百僚師師同寅協恭, 以致和衷之效, 而天無不應, 民無不感, 諸福之物, 可致之祥, 莫不畢至, 而殿下學問之功, 至是極矣。 臣等聞漆室之女, 有憂國之心, 倚柱而嘆, 而況臣等以言爲官, 衣君之衣, 食君之食, 而區區之懷, 不爲殿下一陳, 則曾漆室之不若也。 伏願殿下, 勿以臣等之言, 爲迂而賤之, 少垂覽焉。 【正言李若冰所製。】
- 【태백산사고본】 16책 31권 5장 B면【국편영인본】 15책 366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인사-선발(選拔) / 인사-임면(任免) / 과학-천기(天氣) / 과학-생물(生物) / 과학-지학(地學) / 윤리-강상(綱常) / 역사-고사(故事) / 왕실-종사(宗社) / 왕실-궁관(宮官) / 왕실-종친(宗親) / 왕실-의식(儀式)
중종 12년 (1517) 12월 15일
중종실록31권, 중종 12년 12월 15일 丙辰 7/7 기사 / 1517년 명 정덕(正德) 12년
근래의 재변으로 구언하고, 공구 수성하기를 아뢰는 사간원 대사간 이성동 등의 상소
국역
사간원 대사간 이성동(李成童) 등이 상소하였다.
"생각하옵건대, 하늘은 위에 있고 땅은 아래에 있으니 형체가 격절하여 막연히 서로 관련되지 않은 것 같으나, 사람에게 한 가지 선한 일이 있거나 한 가지 악한 일이 있을 적에는 하늘과 유통하지 않음이 없어 마치 형체에 그림자가 따르고 소리에 메아리가 응하는 것처럼 빠르게 응하니 대개 하늘과 사람은 기운이 같아서 이미 서로 통하고 있으므로 느낌이 있으면 반드시 응하게 됨은 자연의 이치입니다. 더구나 임금은 천위(天位)에 거하여 하늘의 일을 대신하는 것이라 출입하고 유람하는 즈음이나 사려(思慮)의 은미한 일까지 하늘의 밝은 살핌이 따르지 않는 곳이 없으니, 휴구(休咎)의 조짐이 진실로 헛되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삼가 논하건대, 상서(祥瑞)는 곧 하늘의 기쁨이요, 변이(變異)는 곧 하늘의 노여움입니다. 하늘의 희노(喜怒)는 하늘이 기뻐하고 노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천하 사람이 기뻐하고 노하는 것입니다.
천하 사람의 희노는 임금의 하는 바에 달려 있는 것이니, 임금의 하는 바가 지극히 선하면 천하의 사람이 반드시 기뻐할 것이요, 기뻐하면 그 마음이 반드시 화평할 것이요, 화기(和氣)가 상하에 충만하면 천지도 자연 화기로 그에 응할 것입니다. 천지의 기운이 화평하면 음양(陰陽)이 순하고 풍우(風雨)가 제때에 있고, 만물이 잘 이루어지고 요얼(妖孽)이 일어나지 않아, 세상이 태평하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선하지 않으면 천하의 사람이 반드시 기뻐하지 않을 것이요, 기뻐하지 않으면 그 마음이 반드시 화평하지 못할 것이니, 화평하지 못한 기운이 가득차면 천지가 자연 화평하지 못한 기운으로 그에 응할 것입니다. 천지의 기운이 화평하지 못하면 음양이 차서(次序)를 잃고, 풍우가 시기를 어기고, 만물이 이루어지지 않고, 재해(災害)가 따라서 생겨 마침내 위망(危亡)하게 될 것입니다.
아! 임금의 하는 바가 그 사단(事端)은 매우 미세하나 치란(治亂) 안위(安危)의 갈림이 결국 이렇게까지 되는 것이니, 매우 두렵습니다. 이런 까닭에 명군(明君)은 하늘의 성냄을 만나면 더욱더 수성(修省)하여 성(誠)으로써 그에 응하고 덕(德)으로써 감동케 하여, 감히 경홀하거나 태만한 뜻은 조금도 갖지 않습니다.
이는 마치 효자는 그 어버이가 기뻐하지 않으면 반드시 자신을 반성하여 무슨 일에 잘못이 있기에 그러실까를 통절하게 자책하여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다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하늘의 뜻을 능히 맞추어서 재변을 돌려 복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성인이라 해도 능히 세상에 재변이 전혀 없게 하지는 못하는 것이요, 오직 두려운 마음을 잘 가질 뿐입니다. 두려운 마음을 잘 갖는 것은 바로 공경하는 마음을 잘 갖는 것이요, 공경한 마음만 가져서도 안 되므로 감선(減膳)·철악(撤樂)·책기(責己)·구언(求言)으로 공경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나, 그것도 오히려 부족합니다.
곡례(曲禮)에 ‘공경치 아니함이 없다.’ 하였으니, 그것은 심신(心身)의 전체가 털끝만큼도 공경하지 않을 수가 없음을 말한 것입니다. 이렇게 한 후에야 하늘을 섬기는 공경에 해당할 수 있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구차하게 구구한 말절(末節)의 일을 하는 것을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전하는 강학(講學)의 부지런함과 사예(思睿)의 밝으심으로 모든 것을 본디 잘 살피셨다 할 수 있고, 또 예의(銳意)도 치도(治道)를 구하심이 거의 12년이 되었으니, 공경은 족히 위를 감격시키고 덕은 족히 아래를 미덥게 했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도 하늘의 견고(譴告)가 처음부터 심하여 수재(水災)와 한재(旱災)가 잇따르고, 성문(星文)이 자주 변하고, 물괴(物怪)가 연달아 생기고, 기근(飢饉)이 계속 듭니다. 이밖의 놀랄 만한 재변은, 비록 《춘추(春秋)》에 실린 것도 이보다 더하지 않았습니다.
근래에 또 동뢰(冬雷)·지진(地震)을 여러 도에서 다투어 아뢰고, 무지개가 나타나고 꽃이 피는 것이 모두 제철이 아닌 때에 생겼으니, 이것은 모두 음양이 심히 괴려(乖戾)한 것입니다. 달은 태음(太陰)의 정(精)이요, 태미(太微)는 인군이 거하는 곳의 상(象)입니다. 달이 행도(行道)를 잃어 임금의 거소를 범하는 것은 옛적에 드물게 있는 일인데, 이제 마침 그것을 보게 되니 하늘의 성냄을 보임이 이렇게까지 극도에 이르렀습니다.
천지에 있어서 범하지 못할 것은 강상(綱常)입니다. 금수(禽獸)도 오히려 그 어미 아비를 차마 해치지 못하는데, 사람으로서 아비를 구타하여 마치 구적(寇賊)을 죽이듯 하고 후회하지 않으니 일찍이 성치(聖治)의 세상에도 이같은 백성이 있었습니까? 이것은 더욱 인도(人道)의 큰 변란이라, 말을 함에 부지중 한심함을 금치 못합니다.
알지 못하겠지만 전하에게 무슨 잘못이 있기에 이런 혹심한 재화(災禍)를 당하신 것입니까? 신 등이 들으니 아버지가 아들에 대하여 사랑함이 깊으면 가르침이 지극하고 하늘이 임금에 대하여 사랑함이 두터우면 꾸지람이 크다 합니다. 그러니 지금은 바로 전하께서 소심(小心)하여 덕을 닦으며 사심을 이기고 일을 바르게 해야 할 때입니다.
신 등은 모두 못난 자질로 간쟁(諫諍)하는 지위에 있어서 시폐를 바로잡을 계책은 얻지 못하나, 그래도 한갓 격동하는 생각이 있으므로 감히 묵묵히 있을 수 없어서 갑자기 부질없는 말을 올리오니, 전하께서 채택하시기 바랍니다.
신 등이 삼가 생각하옵건대, 제왕(帝王)의 덕은 학문을 힘쓰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고, 학문을 힘쓰는 것은 성명(性命)을 바르게 함을 근거로 하고 선악(善惡)의 귀추를 밝히고 충사(忠邪)의 구분을 분변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고, 원대한 뜻을 세우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일이라 여겨집니다.
이른바 뜻을 세운다는 것은, 마음을 한결같이 하고 뜻을 성실히 하며, 선(善)을 택해 굳게 가져 고명(高明)·정대(正大)한 지경에 있게 하고 부의(浮議)·속견(俗見)에 흔들리지 않기를 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도(道)를 믿음이 독실하고 스스로 앎이 밝지 못한 자라면 어떻게 능히 이에 미치겠습니까? 의리(義理)가 정(精)하지 못한 자는 문견이 많되 의혹되기 쉽고, 뜻을 먼저 정하지 못한 자는 선(善)을 지키되 혹시 옮기게 됩니다. 자고로 능히 그 덕(德)을 높이고 업(業)을 넓혀 지치(至治)를 이루지 못하는 원인이 항상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오직 선왕의 정치를 표적(標的)으로 삼고 성인의 훈계를 모범(模範)으로 삼아, 의연히 스스로 강건(强健)하여 게으르지 않고, 덕량(德量)을 키워 포용성 있게 하며, 규모(規模)를 넓혀 좁지 않게 하여, 행해지지 않으면 계속해서 포기하지 말고 이르지 못하면 중단하지 마시어, 박잡(駁雜)하고 속루(俗陋)한 말과 편사(偏邪)하고 험피(險陂)한 의론으로 하여금 그 사이에 입을 놀려 뜻을 어지럽히지 못하게 한 다음에야, 몸을 닦으매 몸이 닦이지 않음이 없고, 집을 바르게 하매 집이 바르지 않음이 없고, 말을 들으매 말이 그 사실을 감출 수 없게 되고, 사람을 관찰하매 사람이 그 진정을 속일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간언(諫言) 듣기를 물흐르듯 하고, 어진이에게 책임을 맡기되 의심치 않으면, 호오(好惡)가 바르게 되고 시비(是非)가 정해져서 왕도(王道)가 이루어지게 될 것이니, 어찌 위대하지 않겠습니까?
신 등이 가만히 보옵건대, 전하께서는 청명한 덕이 몸에 있고 천품이 탁이하여 기욕(嗜慾)와 완호(玩好)의 일을 즐기지 않고, 성리(性理)의 학에 잠심하고, 날마다 유신(儒臣)을 접하여 학문을 깊이 궁구하시며, 사문(斯文)을 부식(扶植)하고 사기(士氣)를 흥발(興發)하는 것을 자기 임무로 삼으시니, 전하의 유위(有爲)한 뜻이 진실로 큽니다. 그러나 근자에 일을 조처하시는 과정에 있어 천착되는 일이 많고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상도에 어긋납니다.
대간이 시사(時事)를 숨김없이 다 말해서 상소한 것은 전하께서 기꺼이 받아들여 곧 대신과 함께 그 이유를 깊이 궁구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과연 그 말이 옳다고 생각될 때에는 서로 힘써서 재앙을 미연에 막아야 하고, 그렇지 않다고 여길 때에도 또한 일에 앞서서 경계해야 합니다. 그리고 어진이를 좋아하고 선한 사람을 포용하는 도량을 더욱 넓혀야 합니다. 이것이 진실로 치조(治朝)의 일입니다.
전하께서 먼저 대간을 싫어하는 마음을 가지고 대신을 연방(延訪)한 뒤에 갑자기 모두 체직하였습니다. 그때 대신이 만일 흔연히 그에 영합(迎合)하면 도리어 지나친 일이라 여겨질까 생각하여 전하를 유도하여 체직하게 하고, 물러나서는 으레 ‘체직해서는 안 됩니다.’고 청합니다. 또 대간이 능히 직언(直言)·정론(正論)으로 공의(公議)의 억울함을 풀고 사기(士氣)의 저상(沮喪)함을 붙잡는 것은 전하께서 마땅히 들어주셔야 할 것이요, 양쪽을 다 부드럽게 대함으로써 대간의 기풍을 훼상하고 직사(直士)의 사기를 저상시키는 것은 전하께서 마땅히 받아들이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그 시비 득실은 대신에게 물을 필요도 없이 밝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전하께서 먼저 의심스런 기색을 보이시면 대신은 문득 어름한 의논을 드림으로써, 도리어 정론(正論)을 낸 사람을 배척하고 실체(失體)한 자를 두둔하니 이 어쩐 일입니까? 저 대신들이 전하께서 고례(古禮)를 행하고 고사(古事)를 회복하려 하시는 일 같은 것은, 반드시 그 좋은 점을 받들어 행하지 않으면서 오늘날에 알맞은 것이 아니라고 하여, 이 같은 일은 거개 유도해서 성사시키니, 신 등은 실로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충신(忠臣)이 세상을 돕는 것이 본디 이와 같겠습니까?
신 등이 가만히 생각하옵건대, 사람이 능히 오래 살고 강녕하는 것은 원기(元氣)가 일신에 왕성하기 때문이요, 나라가 능히 오래 치세를 유지하는 것은 국시(國是)가 일국에 확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원기가 쇠하면 그 몸이 반드시 위태하고, 국시가 정해지지 못하면 나라가 반드시 어지럽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치에 통달한 자는 그 방법을 가까이 일신에서 구하는 것이니, 나라를 다스리는 도(道)도 이와 통하매 선악을 힘써 구분하고 시비를 통렬하게 분변하여 국시를 정하고 원기를 보존해야 합니다.
국시는 바로 나라의 원기요, 국시가 정해지면 공도(公道)가 행해지고 공도가 행해지면 군자가 진출되고, 군자가 진출되어 그의 충성을 행하면 간사한 자는 기가 꺾이고 아첨한 자는 자취를 감추게 되어 감히 틈을 타서 꾀를 부리지 못할 것입니다. 이것이 진실로 인주(人主)와 보상(輔相)의 책임이요, 인주 한 사람의 생각이 혹 미치지 못함이 있으면 좌우에 있는 대신들은 마땅히 힘과 마음을 다해서 인도하여 임금으로 하여금 사정(邪正)을 분변하는 데 어둡지 않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류(士類)가 그를 힘입어서 튼튼한 국가의 기반을 수립하는 것입니다.
국론(國論)이 오비(汚卑)한 데로 휩쓸리고 원기(元氣)가 쓸쓸하게 막히는 것을 어찌 가만히 앉아서 보기만 하고 구제하지 않겠습니까? 오늘날의 병통은 바로 여기에 있으니, 그것을 생각하면 한심합니다. 이것은 다름이 아니라 이성언(李誠彦) 한 사람이 어지럽힌 것입니다.
신 등은 전하께서 치도(治道)를 구하시는 뜻이 아직 확연 자립(確然自立)되는 지경에 이르지 못하고 전일에 혹 성실하지 못한 바가 있기 때문에, 소인이 술책을 써서 요탈(搖奪)하려고 할까 적이 염려됩니다. 자고로 소인이 간사한 지혜를 써서 술책을 행사하려고 할 때는 반드시 언사(言辭)를 여러 모로 꾸미되, 임금과 정승을 의혹시킬 수 있는 것이면 어떤 짓이고 못하는 일이 없습니다. 공사를 전도하고 시비를 현란시켜 마음이 어지러워 무엇을 따라야 할지 모르게 만든 다음에 임금의 총명을 가리고 선량한 사람을 해치되, 오직 그들 자신의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됩니다. 대저 임금의 밝음은 소인들이 좋아하는 바가 아니요, 시대의 맑음은 본디 간악한 자들이 미워하는 바입니다.
근래로 전하께서 정치를 잘 해보려는 마음이 더욱 간절하시고 어진이를 친근함이 더욱 돈독하시며, 성학(聖學)이 점점 높아지시고 사정(邪正)이 차츰 구분되어, 조정의 기상이 장차 정숙(正肅)해지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간혹 간사한 자가 이에 불평하는 마음을 품고 질투하는 뜻을 가져서 기회를 타려 하나 그 길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성언(誠彦)이 나라를 그르치게 하는 계책을 올려 전하를 시험하게 된 것입니다.
그 글이 처음 들어가서 여러 날 내려지지 않으니, 그때부터 이미 머리를 치켜들고 엿보는 자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대신까지도 혹 마음이 가상하다고 일컫기도 하고, 혹 사실에 의거하여 직서(直書)한 것이라고 칭하기도 하여, 모르는 사이에 사기가 저상되고 공론이 억울하게 됨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언의 계책은 이행(李荇)을 위해서 발설한 것일 뿐만 아니라, 그로써 임금을 의혹시키고 대신을 요동시켜 선류(善類)를 무함하려 한 것입니다. 옛글에 이르기를, ‘오직 인인(仁人)이어야 그들을 방류(放流)하여 사이(四夷)에 내쳐서 중국에 함께 있지 못하게 한다.’ 하였는데, 주자(朱子)가 해석하기를, ‘이 말은 이처럼 아첨하고 투기하는 사람이 있어 어진이를 해치고 나라를 병들게 하면, 인인은 반드시 깊이 미워하여 통렬히 끊는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신 등이 처음에 멀리 귀양보내 시비를 정하게 하자고 청한 것은 경중의 중간을 참작해서 한 것이요, 본시 지나치게 논집(論執)하여 전하께서 들어 주시기를 기대한 것이 아닙니다. 전하께서 특명으로 파출(罷黜)하여 책벌(責罰)의 일단을 밝게 보이셨는데, 그것은 성언은 죄악이 너무 커서 다시는 조정 반열에 끼어 있을 수 없는 자이기 때문에 정직(停職)시킨 것이요, 성언의 죄가 이 정도의 처벌로서 족하다고 한 것은 아닙니다.
신 등은 적이 생각하옵건대, 성종께서 문(文)을 높이고 선비를 좋아하심은 천성에서 우러나신 것이라 일시에 선류들이 많이 배출되었습니다. 그들이 기절(氣節)을 높이고 염치(廉恥)를 숭상하고 할 말을 다하여 극력 간하되 권세(權勢)를 피하지 아니한 것은, 오직 선왕(先王)에게는 그 은혜를 갚고 남은 충성을 사군(嗣君)에 다하려 한 것뿐이었으며, 간흉(奸兇)들이 곁에서 곁눈질하여 몰래 서로 도모할 뜻을 품었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연산(燕山)이 실도(失道)할 때에 미쳐서 흔연히 그 때를 만나 여러 수단을 부렸으니, 특히 무오년의 화(禍)는 참혹하였습니다. 말이 여기에까지 이르매 부지중 통탄스러움을 금치 못합니다. 한번 열린 화란은 갑자년에 극도에 달하여 막중한 종묘 사직을 거의 지킬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전하께서 잠저(潛邸)에 계실 때의 덕이 하늘에까지 들려 포학함 대신 너그러움을 쓰고, 무고한 사람을 위로하여 인(仁)이 죽은 사람에까지 미치고 언론하는 사람을 포장하시게 됨에 힘입어, 거의 사기가 진작되고 언로가 확장되었습니다. 그러나 부형(父兄)과 사우(師友)들은 서로 무오년과 갑자년의 일을 가지고 경계하며 선비들의 마음은 아직도 크게 풀리지 못하여 몸조심하는 자들이 많은데, 지금 전하께서 대신과 함께 만일 참소하는 말과 간사한 의논에 흔들려 선비를 용납할 수 있는 상황을 보이지 않는다면, 누가 감히 남의 거리낌을 무릅쓰고 남의 미움을 받아가면서 화를 취하려 하겠습니까?
신 등은 반드시 지금 재상 중에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모질(媢嫉)한 자가 있다는 것이 아니요, 재상으로서도 또한 누가 ‘나는 선한 사람을 꺼리고 선비를 싫어하는 마음이 없다.’고 말하지 않겠으며, 또 전일의 난을 목격한 지 오래지 않은데 어찌 다시 그 전철을 밟으려 하겠습니까? 그러나 털끝만한 생각이 한번 은미한 사이에 싹트게 되면 시의(猜疑)가 천리 밖에 나타나는 것이니 어찌 은미한 데를 삼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모르겠으나 지금 대신이 하는 것이 무슨 일입니까? 과연 능히 대인(大人)의 덕을 가지고 임금의 마음이 그릇됨을 바로잡고 있습니까? 너그러운 국량을 가지고 일국의 선을 포용합니까? 사(邪)를 억제하고 정(正)을 두둔하여 선비의 추향을 정합니까? 재물을 풍부하게 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여 정치 교화를 일으킵니까? 전하께서는 대신에 대하여 대우함을 후히 하고 위임함을 오로지 하시며, 때로는 명령이나 정사하는 사이에서 보필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여 그침이 없습니다. 그런데 대신이 된 자는 책임이 그 얼마나 중한데 어진 사람을 천거하라고 하면 아는 사람이 없다 하고, 일을 보라 하면 일할 것이 없다 하고, 당참(堂參)이나 받고 계목(啓目)에 도장 찍는 일일 뿐, 섭리(燮理)하는 일을 도외시하고 경방(經邦)이 무슨 일인지도 모르며 재앙을 만나면 상례(常例)대로 피혐이나 할 뿐, 몸을 자책하는 실상이나 하늘에 응하는 성의가 있는 것을 보지 못하겠습니다. 도리어 말해서는 아니될 것을 말하고 논할 필요가 없는 것을 논하는데 재앙을 그치게 하는 방법이 과연 이래야 옳겠습니까? 만일 대신이 해야 할 일을 알고서도 즐겨 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바로 ‘우리 임금은 능력이 없다.’941) 라는 것이고, 알지 못해서 능히 하지 못한다면 이것은 바로 ‘저 정승을 장차 어디에 쓸꼬?’942) 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 등은 오히려, 전하께서 그들을 대우하는 데나 그들을 위임하는 데에 혹 미진한 바가 있기 때문에, 그들이 심중에 쌓인 것을 토로하지 못하고 이처럼 형적에 혐의스런 일을 남기게 되었는가 싶습니다. 전하께서도 또한 자신을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진서(秦誓)943) 에 이르기를 ‘만약 어떤 신하가 순수하기만 하고 특별한 재주는 없어도 그 마음이 너그러워 남을 포용할 수 있는지라, 남이 가진 재능을 자기가 가진 것처럼 여기고 남의 어진 것을 마음으로 좋아하되, 그것이 말로만 좋아할 뿐만이 아니라면, 이는 진정으로 포용하는 사람이라, 능히 자손과 백성을 보존할 뿐 아니라 또한 거의 이로움을 기대할 수 있다.’ 하였으니, 우리 대신들로 하여금 이와 같이 마음을 쓰도록 하게 한다면 이는 참으로 국가의 큰 복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되는 것도 모두 전하께서 그 도리를 얻느냐의 여부에 달렸으니,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유의하소서.
신 등은 ‘천하의 근본은 나라에 있고 나라의 근본은 집에 있다.’라고 들었습니다. 이 말은 나라를 다스리려 하는 자는 반드시 먼저 집을 달 다스려야 한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또 ‘궁중(宮中)과 부중(府中)이 모두 일체(一體)이니, 상주고 벌주는데 차별을 두어서는 안 된다.’944) 는 이 말은 왕자(王者)는 마땅히 마음을 공정하게 가져야지 털끝만큼이라도 사심을 그 사이에 써서 구별을 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고로 국가의 치란과 안위는 항상 가도(家道)의 바르고 바르지 못함에 근원합니다. 가도의 바르고 바르지 못함은 밝게 나타난 데에서 가려지는 것이 아니고 항시 소홀하고 은미한 데에서 갈라지는 것입니다. 대개 규문(閨門)의 안은 은(恩)이 의(義)를 가리우고, 상자(床第) 위에서는 정욕이 흐르기 쉬운 것이라, 보통 사람도 마땅히 삼가야 할 것입니다. 하물며 임금은 구중궁궐에 깊숙이 거처하여 빈어(嬪御)가 앞에 가득히 앉아 여러 가지 말과 행동으로 은연중에 서로 뜻을 빼앗는 것이 진실로 한두 가지뿐이 아니어서, 어진 신하가 좌우에 있지 않고 올바른 사람이 간언할 수 없게 되는 경우에리까?
예컨대 물은 졸졸 흐를 때 막지 않으면 결국은 홍수가 하늘에 닿을 듯이 범람하게 될 것이요, 불은 막 타오르기 시작할 때 끄지 않으면 마침내는 요원의 불길처럼 타오르게 될 것입니다. 아, 인주가 능히 홀로 있을 적을 삼가고 몸을 진실하게 가져 정치를 발하는 근본에 처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이런 까닭에 군자는 장차 궁위(宮闈)가 어지러워질 것을 알고 선뜻 떠나버리는 자가 있으며, 소인은 반드시 내정(內庭)이 바르지 못한 틈을 타서 서로 결탁하여 그 사이에 농간을 부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밝은 임금은 이러한 것을 알아서 위엄으로 대하고 의(義)로 제재하여 사알(私謁)을 끊고 요행을 노리는 길을 막으며, 언제나 조심하여 미연에 막아, 부수지소(膚受之愬)945) 가 좌우에서 행할 수 없게 하고 침윤지참(浸潤之譖)946) 이 들어올 수 없게 해야 합니다.
우리 성조(聖朝)는 가법이 올바르니 전하께서는 그를 준수하되 더욱 삼가고 엄중히 하여, 멀리는 옛날의 것을 본받고 가까이는 요즈음을 경계로 하소서. 집안을 바르게 하는 도리는 반드시 신 등의 말을 기다릴 것이 아니오나, 사람의 마음이란 무상한 것이므로 경각에 추향이 달라져서 천지의 차이가 생겨도 스스로 능히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물며 지금은 중위(中闈)의 위치가 처음 바르게 될 때이므로 더욱 근신하지 않을 수 없음에리까? 궁위(宮闈)의 엄밀(嚴密)에 대해서는 신 등이 알 바 아니오나, 사람을 들여보내고 내보내고 하는 일만은 외간(外間)에서도 오히려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비복(婢僕)은 비록 미미한 것이지만 궁적(宮籍)에 예속시킬 경우에는 한 번 들이고 한 번 내보내는 것을 경홀히 넘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임용절차에 있어서 정원(政院)과 해사(該司)를 거치지 않고 내수(內豎)가 간접으로 불러서 마음대로 대내에 들여보냈다가 법관이 함문(緘問)947) 하자 즉시 내보냈습니다. 내보내고 들여보내는 일이 애매하여 위에 관계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중간에서 처리하였습니다. 범람한 자의 하는 일은 대방(大防)을 무너뜨리고 자기의 사욕을 행하였으니, 끝내는 말할 수 없는 일을 빚을 것입니다.
이 여비는 전일에 사물(私物)을 가지고 외람되이 궁위를 통하였으니 법을 범함이 이미 심하였는데 이제 또 엄시(閹寺)를 인연하여 수신(修身)·제가(齊家)의 정치를 더럽히어, 지천(至賤)한 자의 이름이 지존(至尊)에게 알려지게 되었으니, 이보다 더 놀랍고 괴상한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전하께서는 예사로 여기시어 놀라지 않으시고 정원은 미세한 일로 생각하고 시정하지 않으니 어찌 능히 은미한 즈음에 조심하여 우환을 싹트기 전에 소각하고 화를 미연에 방지한다고 할 수 있습니까? 이 조짐이 날로 자라면 그 말류(末流)를 막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 한 가지를 보아 그 밖의 것도 알 수 있으니, 신 등이 미리 염려하는 바입니다. 삼가 원하옵건대, 전하께서는 유의하소서.
신 등은 적이 생각하옵건대, 왕세자는 천하 국가의 근본이므로 그 중함이 비할 데 없고 그 책임이 막대합니다. 그러므로 책임이 돌아갈 곳에는 먼저 그것을 받을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선해지느냐 악해지느냐 하는 것은 어릴 때에 판별되는 것이므로 후일의 흥망과 치란이 이에 관계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리 길러야 하고 일찍 가르쳐야 하니 옛사람은 태중(胎中)에 있을 때부터 이미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이미 출생한 뒤에는 비록 포대기를 받드는 일을 하는 천한 자까지도 정대(正大)한 사람을 택하지 않을 수 없는데, 하물며 보부(保傅)를 삼을 자이겠습니까? 비록 심상한 언어(言語)와 고첨(顧瞻)에 있어서도 감히 함부로 희롱하지 못하게 해야 하는데 하물며 학습하는 일이겠습니까?
더구나 지금은 종사가 영험을 내리고 신명이 복을 베풀어서 원자의 기질이 범상에서 뛰어나 겨우 세 살 될 나이에 이미 학문을 알고 희완(戲玩)의 일을 즐기지 않으며, 동정에 법도가 있으니, 이는 참으로 상지(上智)의 자질입니다. 만일 교양(敎養)에 방법을 잃지 않고 사부(師傅)에 올바른 사람을 얻는다면 후일의 진덕(進德)이 무한할 것입니다.
신 등이 전하께서 원자를 경계하기 위해 지은 글을 가만히 보옵건대, 성상의 뜻이 정녕 반복하여 기대하시고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여, 몸을 닦고 집안을 정돈하고 임금으로서 백성을 다스리는 도리가 모두 그 글에 있으니, 신 등은 전하께서 매우 자신(自信)하시고 아들을 가르치심을 올바르게 하신 데 대해 경하해 마지않습니다.
다만 우리 나라는 왕자를 보양(保養)하는 데 고례(古禮)를 잃고 있어서, 왕자가 탄생하자마자 곧 궁밖에 내보내 여시(女侍)의 손에 맡겨 놓아 항시 여염의 사이에 있게 하는데, 아보(阿保)된 자는 안정(安靜)하게 위호(衛護)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고 편리만을 따라 이리저리 옮기니, 이로 말미암아 슬하(膝下)의 정이 결여되고 몽양(蒙養)의 도가 없어질 뿐더러, 귀는 비리(鄙俚)의 소리에 물들고 눈은 오예(汚濊)한 빛에 익숙하여 그대로 습성이 됩니다. 비록 왕의 제자(諸子)나 서녀(庶女)라 해도 오히려 이와같이 할 수 없거늘, 하물며 원자(元子)이겠습니까?
지금 곤위(坤位)가 갓 정해졌으니, 눈앞에서 무양(撫養)하여 은애(恩愛)의 돈독함을 더하는 것이 더욱 마땅합니다. 모자는 천성이라, 비록 가르치지 않더라도 돈후(敦厚)한 정을 잘 쏟는 것이라 하지만 또한 무양에는 바탕이 있는 것입니다. 삼가 원하옵건대, 전하께서는 유의하소서.
또 전하께서는 대신 2∼3명을 이미 골라서 원자의 처소에 교대로 가게 하여 교양(敎養)의 책임을 맡기셨으니, 이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러나 신 등의 생각에는 널리 사부될 사람을 선택하되, 벼슬의 고하에 구애하지 말고 오직 돈정(敦正)하고 순덕(順德)한 사람인가를 보아 널리 구하여 대신과 함께 오래도록 서로 뫼시게 하여, 차츰 그에 감화됨으로써 덕성(德性)을 기르고 현사(賢士)를 친할 수 있게 했으면 합니다. 필부(匹夫)도 아들을 가지면 오히려 그의 덕이 이루어지기를 바라 그를 가르치는 방법이면 무엇이나 다 하는데 하물며 조종의 중책을 이어받아 전하의 몸을 계승할 원자이겠습니까? 삼가 원하옵건대 전하께서는 유의하소서.
신 등이 삼가 생각하옵건대, 옛날에는 간언하는 데 특정한 벼슬이 없었습니다. 직책을 가진 자만이 간언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서인(庶人)이 길에서 하는 의논이나 상려(商旅)가 저자에서 비방하는 것까지 그 말을 채택하므로 상하의 정이 통하지 않은 데가 없게 하였는데, 후세에 와서는 간언의 책임이 대간에만 있으니, 비록 임금이 곧은 말을 듣기를 절실히 갈구한다 하더라도 오히려 길이 좁으므로 많은 좋은 말들이 통하지 못할 것이 염려됩니다. 더구나 깊은 궁궐에 들어앉아만 있고 조정에 나와 정무 보는 일을 게을리하며, 정치상의 번다한 일들을 오직 간독(簡牘)으로만 통하고 왕언(王言)을 출납하는 중임을 환시(宦寺)에게만 맡겨서야 되겠습니까? 곧은 간언을 멀리하고 듣지 않으며 오직 나의 말을 어기지 말라고 하면 참간(讒姦)이 옹폐(壅蔽)하고, 곧은 사람이 입을 함봉하여 물정(物情)이 폐색(閉塞)되고, 임금의 세력이 외롭게 되어 당하(堂下)의 거리가 천리나 멀게 될 뿐 아니라 현무(眩誣)하고 참구(讒構)하는 변이 반드시 측근에서 일어나게 되어, 여지없이 무너지는 환(患)을 끝내 구제할 수 없게 될 터이니, 어찌 두렵지 않습니까?
전하께서는 언로(言路)를 통하게 해 놓았다고 할 수 있으나, 그것이 또한 능히 상하의 뜻을 통하여 간격이 없게 했다 할 수 있겠습니까? 사방의 사정을 통달하여 막힘이 없다 하겠습니까? 혹시 총명(聰明)이 미치지 못한 바가 있고 정의(情意)에 미덥지 못한 바가 있다면, 전하께서 들어 주는 일이나 감응하는 성의에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런데 근래에는 대간의 말에 대하여 싫어하거나 거절하는 뜻을 가지시어, 한 일을 의논하고 한 사람을 탄핵하는 것까지도 걸핏하면 열흘이나 한 달을 끌어서 겨우 한두 가지만을 들어 주실 뿐입니다. 아무리 지나친 일이더라도 스스로 반성하고 뉘우쳐 깨닫는 뜻을 가지셨다는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으레 모든 것을 글로만 답하고, 허심탄회하게 성의를 베풀기를 즐겨하지 않으십니다.
이런 때문에 선비들은 침묵을 지키는 버릇이 많고 나라에는 퇴폐하고 태만한 형상이 드러나는데, 대신이 이에 약석(藥石) 같은 말을 올려서 그를 구제한 일이 있다는 것을 일찍이 듣지 못했습니다. 전하께서는 오늘날 이미 안치(安治)가 이루어져서 한가지 일도 말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신 등이 볼 때에는 서정(庶政)이 거행되지 않고, 기강(紀綱)이 서지 않고, 현우(賢愚)가 구별되지 않고, 탐비(貪鄙)가 풍속을 이루고, 민생이 곤궁하고, 변경에 소요가 많으니, 말해야 할 일과 해야 할 정사가 참으로 많다고 여겨집니다. 이미 대간으로 이목의 구실을 하는 벼슬을 삼았으니, 곧은 의논과 바른말을 들어 결점을 보충하고 막힌 데를 통하게 해야 할 것인데, 오히려 막연히 들어 주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시니, 다른 신하에게야 어찌 바람이 있겠습니까?
옛날 진공(晉公)이 숙향(叔向)에게 묻기를948) ‘국가의 환(患)은 그 무엇이 큰가?’ 하니, 대답하기를, ‘대신은 녹만 받아먹고 말하지 않고, 소신은 죄가 두려워서 말하지 아니하여, 아랫사람의 실정이 통할 수 없게 되는 것이 가장 큰 환입니다.’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의 실정을 두고 한 말입니다. 만일 이와 같은 일이 계속된다면 나라가 지탱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전하께서 어찌 생각해 보시지 않으십니까? 일폭 십한(一曝十寒)949) 은 선현(先賢)의 경계한 바요, 중초독제(衆楚獨齊)950) 는 자고로 근심이 되는 바입니다.
대저 큰 계략을 품고서도 겨우 두세 가지를 진언하고 충언(忠言)을 많이 가지고도 겨우 한두 가지를 주달할 수 있는 기회는 오직 경연(經筵)이 있을 뿐인데, 요즘은 성상의 편치 못함으로 인하여 경사(卿士)들을 대하지 않으신 지가 이미 열흘이나 되었습니다. 접촉하는 자들은 경사들이 아니라 곧 빈어(嬪御)들이니, 모르겠습니다만 전하의 심지(心志)가 능히 그 떳떳함을 보전하여 으슥한 속에서도 청정(淸淨)함을 온전히 보존하시는 것입니까? 이것이 신 등이 염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전하께서는 유의하소서.
이상 몇 가지 일들은 모두 지금의 큰 병통이요, 정치(政治)의 대강(大綱)이 되는 것입니다. 대강이 이미 잘되면 기타 절목(節目)은 반드시 바루지 않아도 저절로 잘 되는 것입니다.
전하께서 참으로 지난 잘못을 통렬하게 반성하고 오는 장래를 삼가시며, 도학(道學)을 힘써 몸을 닦고 호오(好惡)를 밝혀 국시(國是)를 정하시며, 큰 뜻을 세워 제왕의 정치를 회복하고 현신(賢臣)을 친히 하여 감응(感應)의 이치를 통달하시며, 추향(趨向)을 한결같이 하여 사습(士習)의 귀추(歸趨)를 바르게 하시되, 오래 힘써 행하고 차츰 순치(馴致)하시며, 또 궁위(宮闈)의 규범을 엄하게 하여 집안을 바르게 하는 도리를 다하고, 천지와 같은 국량을 넓혀 간언을 받아들이는 아름다움을 보이신다면, 대신은 자연 전하의 뜻을 본받아 착한 선비를 포용하고 간사한 사람을 내칠 것이며, 여러 벼슬아치들은 서로 좋은 점을 배우고 공경하고 화협하여 화선(和善)한 기풍을 이룰 것이며, 하늘은 감응하지 않음이 없고 백성은 감동하지 않음이 없으며 모든 복되는 물건과 나타날 만한 상서는 다 집중될 것이니, 전하의 학문의 공이 이에 이르러 지극할 것입니다.
신 등은 들으매, 칠실(漆室)의 여자도 나라를 근심하는 마음을 가지고 기둥에 의지해서 탄식했다951) 합니다. 하물며 신 등은 언관(言官)이 된 자임에리까? 임금이 주시는 옷을 입고 임금이 주시는 밥을 먹으면서, 구구한 회포나마 전하를 위해 한 번 진언하지 않는다면 칠실의 여자만 못할 것입니다.
삼가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신 등의 말이 오활하다고 천하게 여기지 마시고 조금 살펴 주소서." 【정언(正言) 이약빙(李若氷)이 지은 것이다.】
- 【태백산사고본】 16책 31권 5장 B면【국편영인본】 15책 366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인사-선발(選拔) / 인사-임면(任免) / 과학-천기(天氣) / 과학-생물(生物) / 과학-지학(地學) / 윤리-강상(綱常) / 역사-고사(故事) / 왕실-종사(宗社) / 왕실-궁관(宮官) / 왕실-종친(宗親) / 왕실-의식(儀式)
- [註 941] ‘우리 임금은 능력이 없다.’ : 《맹자(孟子)》 이누(離婁) 상(上)에 "착한 것을 펴고 간사함을 막는 것을 공경이라 하고, 우리 임금은 능력이 없다고 하는 것을 적이라 한다."고 하였다.
- [註 942] ‘저 정승을 장차 어디에 쓸꼬?’ : 《논어(論語)》 계씨(季氏)에 "나라가 위태할 때에 붙들지 않으면, 그런 정승을 장차 어디에 쓸꼬?" 하였다.
- [註 943] 진서(秦誓) : 《서경(書經)》의 편명(篇名).
- [註 944] ‘궁중(宮中)과 부중(府中)이 모두 일체(一體)이니, 상주고 벌주는데 차별을 두어서는 안 된다.’ : 제갈양(諸葛亮)의 출사표(出師表)에 보인다.
- [註 945] 부수지소(膚受之愬) : 갑작스레 아픈 곳을 다친 듯 절박하게 호소하는 일. 《논어(論語)》 안연(顔淵)에 보인다.
- [註 946] 침윤지참(浸潤之譖) : 남이 깨닫지 못하게 슬쩍슬쩍 참소하는 일. 역시 《논어(論語)》 안연(顔淵)에 보인다.
- [註 947] 함문(緘問) : 법관이 과오를 범한 벼슬아치에게 서독(書牘)으로 문책하는 일.
- [註 948] 진공(晉公)이 숙향(叔向)에게 묻기를 : 출전 미상.
- [註 949] 일폭 십한(一曝十寒) : 하루만 부지런하고 열흘은 게으르다는 말. 《맹자(孟子)》 고자(告子) 상(上).
- [註 950] 중초독제(衆楚獨齊) : 제(齊)나라 사람 한 명이 제나라 말을 가르치고, 초(楚)나라 사람 여러 명이 곁에서 떠든다는 말로, 착한 사람 한 명이 여러 명의 나쁜 사람을 당해내지 못한다는 뜻이다. 《맹자(孟子)》 등문공(滕交公) 하(下).
- [註 951] 칠실(漆室)의 여자도 나라를 근심하는 마음을 가지고 기둥에 의지해서 탄식했다 : 《열녀전(列女傳)》 인지(仁智) 노칠실녀전(魯漆室女傳)에 "노(魯)나라 칠실(漆室)이란 고을에 사는 아직 시집가지 못한 처녀가 하루는 걱정하기를 ‘우리 나라는 임금이 늙었고 태자는 어리니 만일 국란이 있으면 임금이나 백성이 모두 욕을 당할 것인데 여자들은 어디로 피할까?’ 했다." 하였다.
원문
○司諫院大司諫李成童等上疏曰:
伏以茫茫在上, 渺渺在下, 形躰隔絶, 邈乎其不相關矣, 而人有一善一惡, 莫不與天流通, 應若影響。 蓋天人一氣, 氣旣相貫, 有感必應, 自然之理也。 而況人君居天之位, 代天之事, 而出(王)〔入〕 遊衍之頃, 念慮意思之微, 明明之監, 無乎不在, 休咎之徵, 固不虛矣。 嘗論祥瑞, 卽天之喜也; 變異, 卽天之怒也。 天之喜怒, 非天之喜怒, 乃天下人之喜怒也。 天下人之喜怒, 係於人主之所爲。 人主之所爲, 無非至善, 則天下之人必喜, 喜則其心必和。 和氣旣生, 充乎上下, 則天地自然以和氣應之。 天地氣和, 則陰陽順、風雨時、百物遂, 妖孽不作, 而世躋熙皞之域矣。 苟爲不善, 則天下之人必不喜, 不喜則其心必不和。 不和之氣旣盈, 則天地自然以不和之氣應之, 天地之氣不和, 則陰陽失序, 風雨愆期, 百物不遂, 災害竝至, 終底於危亡而已。 嗚呼! 人主之所爲, 其端甚微, 而治亂安危之分, 遂至於此, 可畏之甚也。 是故明君遭天之怒, 益自修省, 應之以誠, 感之以德, 不敢少有輕忽弛慢之意, 有如孝子, 其親不悅, 必反求吾身有何事之失, 痛自刻責而盡吾之所當爲也。 玆所以克享天心, 轉災爲福也。 然則雖聖人, 不能使災變必無於世, 而惟幸其能懼耳。 能懼者, 能敬者也。 敬非徒敬, 夫減膳、撤樂、責己、求言, 皆其示敬者而猶未也。 《曲禮》曰: "無不敬。" 謂心身內外, 不可使一毫之不敬也。 如此然後, 可以當事天之敬矣。 不然, 不免於因循苟且, 區區然末節之歸矣。 以殿下講學之勤, 睿思之明, 可謂察之有素, 而殿下之銳意求治, 殆一紀于玆, 敬足以上格, 德足以下孚, 而天之譴告, 自初彌甚, 水旱頻仍, 星文屢變, 物怪疊至, 飢饉荐臻, 其他可愕之變, 可驚之災, 雖《春秋》所載, 無以踰此。 近又冬雷、地震, 諸道競報, 虹見、花開, 竝非其時。 此皆陰陽乖戾之極, 而月, 太陰之精也, 太微, 人君所居之象也。 月行失道, 犯入帝居, 自古罕有, 而通見於今, 上穹示怒, 至此極焉。 在天地澟然不可犯者, 綱常也。 禽獸猶不忍害其所生, 人而加手於父, 視之如殺寇賊而不悔, 曾謂聖治之世, 乃有如是之民耶? 此又人變之大者, 言之不覺寒心。 未審殿下有何闕遺, 而遭此災禍之酷? 臣等聞父之於子, 愛之深則敎之至; 天之於君, 眷之厚則譴之重。 政宜殿下小心修德, 克己正事之時也。 臣等俱以譾薄, 叨居諫諍之地, 未得匡時之策, 徒有激昻之懷, 不敢容默, 輒陳瞽說, 惟殿下裁擇之。 臣等伏念帝王之德, 莫大於務學, 務學莫大於根性命之正, 明善惡之歸, 辨忠邪之分, 而尤貴乎立遠大之志。 所謂志立者, 一心誠意, 擇善固執, 期在於高明、正大之域, 而不易於浮議、俗見也。 苟非信道篤, 自知明者, 其何能及此? 義理不精者, 多聽而易惑; 志先定者, 守善而或移。 自古不能崇其德廣其業, 以成至治, 患常在此。 惟以先王之治爲標的, 聖人之訓爲模範, 毅然自强健而不怠, 弘德量而有容, 闊規模而不隘, 不行不措, 不至不已, 使駁雜俗陋之言, 偏邪險陂之論, 無所容喙於其間, 以亂其志, 然後修己而己無不修, 正家而家無不正, 聽言而言不得逃其實, 觀人而人不得遁其情, 從諫如流, 任賢不貳, 好惡以正, 是非以定, 而王道終矣。 豈非韙歟? 臣等竊觀 殿下, 淸明在躬, 天稟卓異, 無嗜慾玩好之娛, 潛心於性理之學, 日接儒臣, 講劘硏窮, 扶植斯文, 興發士氣爲己任, 殿下有爲之志, 固大矣。 然近者施措之間, 事多舛錯, 好惡乖常。 臺諫之不諱時事, 盡言陳疏者, 殿下(之)所宜喜聞樂聽, 乃與大臣深究厥因, 果如其言, 務要交相勑勵, 消患於未然, 如其不然, 亦當先事而戒, 益恢好賢容善之量, 是誠治朝之事也。 殿下先有厭惡之心, 延訪之餘, 遽命盡遞。 大臣若欣然迎合之, 反謂過越, 導之使遞, 而退則例請曰不可遞。 且臺諫之能直言、正論, 以伸公議之鬱抑, 以扶士氣之摧沮者, 殿下之所宜與也; 未免脂韋兩間, 毁臺諫之風, 沮直士之氣者, 殿下之所宜不與也。 其是非得失, 不必問諸大臣而灼然可知。 殿下先示疑難之色, 大臣遽進謬悠之議, 反去正論之人, 而存其失體者, 是何意耶? 殿下如欲行古禮復古事, 則必不將順其美, 以爲不宜於今, 而如此事, 類皆縱臾成之, 臣等實未解焉。 忠臣輔世者, 固如是乎? 臣等竊惟, 人之能壽考康寧, 以元氣壯盛於一身也; 國之能長治久安, 以國是明定乎一國也。 元氣之衰索者, 其身未必不危; 國是之不定者, 其國未必不亂。 是以達乎理者, 卽乎一身之近, 而通乎爲治之道, 務分善惡, 痛辨是非, 以定國是, 以保元氣。 國是, 其惟國之元氣乎! 國是定而公道行, 公道行而君子進, 君于進而得行其忠, 則憸邪屛氣, 邪侫遁跡, 莫敢投隙抵罅, 以逞其術, 此固人主與輔相之責也。 一人之慮, 如或不逮, 爲左右大臣者, 當戮力盡心而導之, 使吾君不迷於辨別邪正, 士類得有所依庇, 以樹國家不拔之基, 豈忍坐視國論靡然趨於汚卑, 元氣蕭然歸於痞塞而莫之救也? 當今之病, 正在於此, 思之可謂寒心。 此無他, 一李誠彦亂之也。
臣等竊恐殿下求治之志, 尙未至於確然自立之地, 而前日或有所不誠不實, 故小人欲以其術搖奪之耳。 自古小人之欲舞奸弄智, 以售其術者, 必造言飾辭, 萋斐萬端, 可以移惑時君與相者, 無所不用其極, 使之顚倒公私, 眩亂是非, 心疑志潰, 莫適所從, 然後蒙蔽聰明, 戕害善良, 而惟吾之所欲爲也。 夫君之明, 非小人之所喜; 時之淸, 固奸(究)〔宄〕 之所惡。 自近世以來, 殿下圖治益切, 親賢愈篤, 聖學漸高, 邪正稍分, 朝廷氣象, 將至於整肅矣, 間有憸邪之人, 懷不平之心, 有嫉妬之志, 欲乘其釁, 而未得其路, 誠彦因進誤國之計, 以試殿下, 而其書初入, 累日不下, 固已有引領而窺測者矣。 至如大臣, 或稱心事可嘉, 或稱據事直書, 潛使士志消沮, 公論鬱抑, 而不自覺也。 誠彦之計, 非但爲李荇而發也, 因欲熒惑人主, 搖動大臣, 誣陷善類而已。 傳曰: "唯仁人放流之, 逬諸四夷, 不與同中國。" 朱子釋之曰: "言有如此媢嫉之人, 妨賢病國, 則仁人必深惡而痛絶之。" 臣等之初請遠竄, 以定是非者, 酌輕重之中而爲之, 固非過當論執, 期回天聽。 殿下特命罷黜, 顯示責罰之端, 而誠彦罪大惡極而不可更齒於朝列, 故停之耳, 非謂誠彦之罪, 止是而足也。 臣等竊念成宗大王, 右文好士, 出於天性, 一時善類, 彬彬輩出, 莫不崇氣節尙廉恥, 盡言極諫, 不避權勢, 惟欲報主恩於先王, 竭餘忠於嗣君, 不知兇奸, 從傍側目, 陰有相圖之志。 及其燕山失道, 欣得其時, 以肆其手。 戊午之禍, 慘且酷矣。 言至於此, 不覺殞痛。 一啓禍亂, 極於甲子, 宗社之重, 殆無以守之。 幸賴殿下龍潛之德, 升聞于天, 代虐以寬, 慰弔非辜, 仁及朽首, 褒奬言者, 庶可以振張士氣, 開廣言路, 而爲父兄、師友者, 交相以戊、甲年事戒之, 士心尙未大釋, 而多有自謀之計。 今者殿下與大臣, 若又爲讒言邪論所動, 不見容許, 則孰敢冒人所忌, 拂人所惡, 以取禍哉? 臣等非必謂今之宰相, 亦有媢嫉者, 如上所云, 而爲宰相者, 亦誰不曰我無忌善厭士之心, 而且前日之亂, 目經未久, 豈欲復蹈其轍? 然絲毫之念, 一萌於幾微之間, 而猜徂形於千里之外, 可不愼之於微乎? 第未知今之大臣, 所爲何事? 果能有大人之德而格君心之非乎? 有(木)〔休〕 休之量而容一國之善乎? 抑邪與正而定其士趨耶? 阜物安民而興其治化耶? 殿下之於大臣, 待之非不重也, 任之非不專也, 時於命令、政事之間, 望其啓沃輔弼之意, 惓惓不已, 勤且至矣。 爲大臣者, 當何如也, 而命之薦賢, 則曰我無所知, 命之署事也, 則曰我無所事, 不過受堂參署啓目而已, 置燮理於度外, 昧經邦爲何事, 遇災引嫌, 循常仍例, 不見有責躬之實, 應天之誠, 而反以不當言者言之, 不必論者論之。 弭災之道, 誠若是而可乎? 若知其大臣之事而不肯爲也, 是謂吾君不能也; 不知而不能爲也, 將焉用彼相哉? 然臣等猶恐殿下之所以待之也, 任之也, 或有所未盡, 故不能吐露底蘊, 乃有形迹嫌疑之事也。 殿下亦宜反求於己。 《秦誓》曰: "若有一介臣, 斷斷兮無他技, 其心休休焉, 其如有容焉, 人之有技, 若己有之, 人之彦聖, 其心好之, 不啻若自其口出, 是能容之, 以能保我子孫, 黎民尙亦有利哉!" 如使吾大臣, 用心能如是焉, 則誠國家無疆之福也, 而其所以致此者, 亦在於殿下之能得其道, 伏願殿下留意焉。 臣等聞天下之本在國, 國之本在家。 此言欲治其國者, 必先齊其家也。 宮中、府中, 俱爲一體, 陟罰臧否, 不宜異同, 此言王者, 當公其心, 不可使絲毫偏係, 或累於其間而爲之畦畛也。 自古國家治亂安危, 常源於家道之正、不正。 家道之正、不正, 不在著現明顯, 而恒分於抄忽毫微之頃。 蓋閨門之內, 恩常掩義; 床笫之上, 情欲易流。 在凡人亦所當謹, 而況人君深居九重, 嬪御滿前, 甘言悲辭, 潛相奪志者, 固非一端, 拂士不在於左右, 正人無得以規警? 涓涓不霖, 遂至滔天, 炎炎不滅, 終至燎原。 吁! 人主之能謹獨誠身, 以處出治之本者, 難矣哉! 是故君子有知宮闈之將亂, 而望望然去之者, 小人必因內治之不正, 攀結締交, 以行其間。 明君知其然, 嚴以莅之, 義以制之, 杜私謁之門, 塞僥倖之途, 兢兢業業, 日愼一日, 防微謹漸, 使膚受之愬, 不行於左右, (侵潤)〔浸潤〕 之譖, 無得以入焉。
惟我聖朝, 家法聿正, 殿下遵而勿失, 益自謹嚴, 遠法於古, 近戒於今, 正家之道, 不必待臣等之言, 然人心無常, 頃刻異向, 天壤之判, 不自能覺。 況今中闈初正, 尤不可不致其謹, 而宮闈嚴密, 非臣等所得聞知, 第以出納之際, 外間尙不能無疑。 婢僕雖微, 顧隷宮籍, 則一人一出, 不可視之爲忽易, 而命不由政院, 事不下該司, 內竪徑招, 擅入大內, 法官緘問, 旋卽出之。 或出或入, 形迹暗秘, 似若不關於上, 而出於中間泛濫者之所爲, 其毁大防而行已私, 終有所不可言者。 是婢前日猥將私物, 濫通宮闈, 干憲固已甚矣, 而今又緣互閹寺, 用溷修齊之政。 至賤之名, 達于至尊, 可駭可愕, 莫此爲甚。 殿下委之例事而不驚, 政院以爲微事而不救, 其可謂能愼於微, 消患於未萌, 弭禍於未形乎? 此漸日長, 末流難防, 而擧一隅, 可知其三。 此臣等之所以預爲之慮也。 伏願殿下留意焉。 臣等竊惟儲貳, 天下國家之根本, 其重無比, 其責莫大。 責之所歸, 須先有可受之地, 善惡之分, 判於糿穉之時, 而他日興亡治亂, 於是乎係焉。 是故養之宜豫, 敎之宜早, 古人自在於胎, 已有敎焉, 及其旣生, 雖至奉褓服事之賤者, 莫不求擇其正大之人, 而況於爲保傅者乎? 雖尋常言語顧瞻之際, 使之莫敢狂且戲焉, 而況於府習乎? 矧令宗社降靈, 神明垂祐, 元子氣質, 超凡卓群, 纔及三歲, 已知學問, 不嗜戲玩, 動靜有法, 是誠上智之資也。 若因以敎養不失其方, 師傅得其正人, 則異日進德, 曷有窮已? 臣等竊見御製, 以戒元子, 天意丁寧反覆, 冀望懇到, 而修身齊家君國字民之道, 盡在於是。 臣等不勝賀殿下自信之篤, 敎子之得其正也。 但我國保養王子, 殊失古禮, 誕生之初, 卽出于外, 只委女侍之手, 恒寓閭閻之間, 爲阿保者, 不知安衛靜護之方, 遷徙靡常, 唯利是視, 由是膝下情缺, 蒙養道廢, 耳染鄙俚之聲, 目慣汚穢之色, 因與習成。 雖王之諸子、庶女, 尙不可如是, 而況元子乎? 厥今坤位初定, 尤宜撫之於眼前, 以加恩愛之篤。 母子天性, 雖曰不敎而能, 情之敦厚, 亦由於撫養之有素。 伏願殿下留意焉。 且殿下旣擇二三大臣, 命替往元子所付。 敎養之責, 玆固美事, 然臣等意以爲, 當廣選可爲師傅者, 不拘爵序之高下, 惟觀敦正、順德之人, 使與大臣, 悠久相侍, 優游浸漬, 以養德性, 以親賢士夫。 匹夫有子, 尙冀其成德, 敎之之術, 無所不至, 而況承祖宗之重, 繼殿下之體者乎? 伏願殿下留意焉。 臣等伏念古者諫無官, 非特有職守者得以言, 至于庶人議於道, 商旅謗於市, 莫不採而用之, 使上下之情, 無所不通。 逮後世, 言責之寄, 只在臺諫, 雖人主渴聞讜論, 猶恐不及, 尙慮爲途隘窄, 衆多之善, 壹鬱有鉗滯患之。 而況屛處深宮, 不勤視朝, 萬幾之煩, 唯寄乎簡牘, 出納之重, 只委於宦寺, 遠直諫而不聞, 惟予言而莫違, 則讒姦壅蔽, 鯁士咋舌, 則物情閉塞, 主勢暌孤, 不唯堂下遠於千里, 眩誣讒構之變, 必起於袵席肘腋之間, 而土崩之患, 終莫能救, 可不懼哉? 殿下之於言路, 可謂通矣, 然其亦能通上下之志而無間歟? 達四方之情而無壅歟? 其或聰明有所不逮, 情意有所未孚, 則殿下之於聽受之際, 感應之誠, 當如何也? 近年以來, 其於臺諫之言, 頗有厭倦固拒之意, 至於論一事彈一人, 動經旬月, 僅從一二, 雖有過擧, 而未聞有自省悔悟之志, 例皆文以答之, 不肯虛懷布誠, 以來言者。 由是士多循默之習, 國有頹惰之形, 而未嘗聞有大臣進藥石而鍼之。 殿下其謂今之時, 已安已治, 而無一事可言耶? 以臣等見之, 庶政不擧, 紀綱不立, 賢愚混淆, 貪鄙成俗, 民生困窮, 邊圉多虞, 可言之事, 可爲之政, 固亦多矣。 旣以臺諫爲耳目之官, 欲聞直論、正言, 以補闕失, 以通阻隔, 而猶邈然不納, 慢忽自用, 則自餘臣工, 曷有望焉? 昔晋公問叔向曰: "國家之患, 孰爲大?" 對曰: "大臣持祿而不言, 小臣畏罪而不講, 下情不得相通, 此患之大者。" 今日之謂也。 若此不已, 國無類矣。 殿下胡不思之也? 且一曝十寒, 先賢所戒, 衆楚獨齊, 終古攸患。 夫懷宏圖而得進數三, 蘊忠言而得達一二者, 唯有經筵, 而近緣聖躬靡寧, 曠視卿士, 已浹旬日, 而所嘗接御者, 非貂璫之輩, 卽嬪御之徒, 未知殿下之心志, 能保其常, 淵然全淨蜎涓蠖濩之中耶? 此臣等之不得不慮也。 伏願殿下留意焉。 凡此數事, 皆當今之巨病, 而爲治之大綱也。 大綱旣擧, 則其他節目, 不必正之而自擧矣。 殿下誠能痛省往愆, 克謹將來, 務道學以修厥躬, 明好惡以定國是, 立大志以復帝王之治, 親賢臣以達孚感之理, 一趨向以正士習之歸, 力行以久, 馴致以漸, 又能嚴宮闈之政, 以盡正家之道, 廓天地之量, 以示納諫之美, 則大臣自然體殿下之志, 容善好士, 黜奸去邪, 百僚師師同寅協恭, 以致和衷之效, 而天無不應, 民無不感, 諸福之物, 可致之祥, 莫不畢至, 而殿下學問之功, 至是極矣。 臣等聞漆室之女, 有憂國之心, 倚柱而嘆, 而況臣等以言爲官, 衣君之衣, 食君之食, 而區區之懷, 不爲殿下一陳, 則曾漆室之不若也。 伏願殿下, 勿以臣等之言, 爲迂而賤之, 少垂覽焉。 【正言李若冰所製。】
- 【태백산사고본】 16책 31권 5장 B면【국편영인본】 15책 366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인사-선발(選拔) / 인사-임면(任免) / 과학-천기(天氣) / 과학-생물(生物) / 과학-지학(地學) / 윤리-강상(綱常) / 역사-고사(故事) / 왕실-종사(宗社) / 왕실-궁관(宮官) / 왕실-종친(宗親) / 왕실-의식(儀式)
원본
중종 12년 (1517) 12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