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검색

중종실록19권, 중종 8년 10월 25일 己未 2/4 기사 / 1513년 명 정덕(正德) 8년

추관들이 상받기를 사양하였으나 윤허하지 않다

국역

정원(政院)이 아뢰기를,

"신윤무·박영문 등은 무신(武臣)의 우두머리라 거사하기가 매우 쉬었는데, 더구나 사냥할 때는 윤무가 원유사(苑囿司), 영문이 대장(大將)이 되었으니 그 형편이 더욱 쉬웠습니다. 다행히 천우신조(天佑神助)로 모반(謀反)477) 한 자가 다 복주(伏誅)478) 하였으나, 그렇지 않았으면 대단히 위험한 것이어서, 이과(李顆)의 일과 비교하면 그 화가 더욱 참혹하였을 것입니다. 이과 때에는 견성군(甄城君)이 애당초 모의에 참여하지 않았는데도 대의(大義)로써 처단하였거니와, 이번에도 영산군(寧山君)이 간사한 모의에 참여하지 않은 것을 조정이 다 알면서 죄주기를 청하는 것은 종사(宗社)의 대계(大計)를 위해서입니다. 성상께서 우애(友愛)의 정이 돈독하실지라도, 견성과 영산은 다같이 동기간인데, 견성은 복죄(伏罪)하였으니, 영산만이 어떻게 온전할 수 있겠습니까? 어제 대신(大臣)이 죄를 청할 때에 신 등은 결정나기를 바라고 기다렸으나, 상께서 뜻을 돌리지 않으셨으므로 아룁니다. 죄의 경중은 상께서 스스로 재결하실 일이나, 영산의 죄를 온전히 벗겨 줄 수는 없습니다."

하니, 정원에 전교하기를,

"내가 즉위한 뒤로 간흉(奸兇)이 자주 일어났으나 스스로 패하여 복주(伏誅)한 것은 다 신기(神祇)479) 의 도움과 종사(宗社)의 음덕(陰德)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대변(大變)이 자주 있는 것은, 내가 덕이 없는 몸으로 대통(大統)을 이어받으매, 인심이 좋지 않아 충의(忠義)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뜻밖에 역당(逆黨)이 원훈(元勳) 가운데에서 나왔으니, 국은(國恩)이 부족해서 그러한가? 부귀(富貴)가 맞지 못해서 그러한가? 울분이 치솟아서 그러한가? 이런 이유가 아닌데도 불궤를 도모하였으니,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영문이 공론(公論)에 용납하지 않으므로, 그가 윤무도 불평하는 뜻을 가졌으리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그의 화심(禍心)을 부려서 혐의 둔 문사를 제거하여 제 뜻을 쾌하게 하려고 위에 저촉되는 말을 하기까지 하였으리라. 종사(宗社)에 관계될 뿐 아니라 조정(朝廷)의 대화(大禍)임을 어찌 이루 다 말할 수 있으랴마는, 하늘이 먼저 알아서 요즈음에 겨울 천둥의 변이 있었으니, 그 감응이 이와 같다.

지난번의 견성(甄城)의 일은 비록 뚜렷하지 않기가 이번 영산(寧山)의 일만 못하였으나, 그때는 반정(反正)한 지 얼마되지 않아서 인심이 안정되지 않았으므로 군신(群臣)의 청에 마지못해 동기(同氣)를 용서하지 못한 것을 이제껏 후회하는데, 하물며 영산으로 말하면 도무지 미리 알 리가 없음에랴! 간인(奸人)의 말에는 ‘영산은 궁마(弓馬)에 능하다.’ 하였으나, 이는 인심을 공동(恐動)하여 제 간악한 술수에 빠뜨리려는 것이요, 실은 그렇지 않았다.

폐조(廢朝)480) 때에 내가 잠저(潛邸)에 있을 적481) 에, 폐조가 금표(禁標)482) 안에서 사냥을 하면, 나와 영산은 함께 수행한 적이 많았다. 그때는 한 사람의 구사(丘史)483) 도 없이 나와 영산만이 산과 들에서 말을 달렸는데, 영산은 하루에도 두어 번 말에서 떨어지는 때가 있었으니, 어찌 말을 잘 탄다고 할 수가 있으랴! 그때에도 자주 관사(觀射)484) 가 있었으므로 나와 영산이 참예하여 활 쏜 적이 많았다. 이 사람과 함께 모의하려고 하랴? 이는 나만이 아는 일이요, 조신(朝臣)들은 잘 알지 못하는 일이다.

영문과 윤무는 영산과는 동류(同類)가 아니니 도무지 교분이 있을 리 없는데, 갑자기 어떻게 불측한 화를 멋대로 만들 수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간인(奸人)들이 그럴 듯한 말로 뜻을 같이하도록 위협한 것을 알 수가 있는데, 내가 이미 그 일을 알면서도 굳이 의심을 두고 무고한 자를 죄주겠는가? 나는, 인심이 바뀔 때에는 힘써 탐오(貪汚)한 사람을 제거하고 절의(節義)의 기풍을 권장하여, 만세의 강상(綱常)을 끼치고 일대(一代)의 사습(邪習)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본성은 귀천(貴賤)에 따라 다른 것이 아니므로, 충심(忠心)이 한낱 천부(賤夫)에서도 나오고, 간흉(奸兇)이 원훈(元勳) 중에서도 나오니, 절의의 기풍을 일으키지 않을 수 없다."

하매, 정원이 아뢰기를,

"신 등은, 형제의 도리를 지키고 절의를 존중하시는 하서(下書)를 보았습니다. 성상의 이 마음은, 절의를 세우고 우애(友愛)를 다하는 데로 천의(天意)485) 를 돌릴 수 있는 것이니, 감격을 금할 수 없습니다. 영산(寧山)이 궁마(弓馬) 등의 일에 능하지 못하다는 것은 신 등이 지금 상교(上敎)를 보고 알았거니와, 설사 영산에게 궁마의 기예가 있을지라도 이는 필부(匹夫)의 재주일 따름입니다. 자고로 제왕이라 천명이 있는 사람에게 돌아가는 것이니, 그렇지 않으면 절세의 재주가 있을지라도 어찌 감히 하늘을 거스릴 수 있으리까! 대저 간신이 역모할 때에는 반드시 구실이 되는 자가 있는데, 미리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그 구실이 된 사람을 대의(大義)로 처단하는 것은, 대개 간인의 반측(反側)하는 마음을 없애기 위해서입니다. 신 등이 감히 영산에게 죄주기를 다시 청하는 것은, 영산이 미리 알았다고 해서가 아니라, 후인들로 하여금 경계할 바를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영문과 윤무가 논박은 받았었으나 그들은 부귀가 이미 극하였고, 상은(上恩)이 망극하였는데도 스스로 만족하지 않고서 흉악을 부렸으니, 이는 비부(鄙夫)의 다 빼앗지 않고는 만족하지 않는 마음이요, 충의(忠義)가 있는 사람이라면 황야(荒野)에 있을지라도 태평 세월의 일민(逸民)임을 스스로 즐겨서 세상에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사람의 선악(善惡)이 어찌 부귀·빈천에 따라 다름이 있으리까! 상교에 ‘절의(節義)를 일으키지 않을 수 없다’고 하셨는데, 이는 실로 일세를 고무하고 반측하는 마음을 없애는 것이므로 신 등은 더욱 감격합니다."

하였다. 좌의정 송일(宋軼)·우의정 정광필(鄭光弼)·예조 판서 김응기(金應箕)·형조 판서 윤순(尹珣)·병조 판서 신용개(申用漑)·좌참찬 윤금손(尹金孫)·호조 판서 장순손(張順孫)·공조 판서 정광세(鄭光世)·이조 판서 김전(金詮)·우참찬 이자건(李自健)·한성부 좌윤(漢城府左尹) 성몽정(成夢井)·우윤(右尹) 이자견(李自堅) 등에게 전교하기를,

"어제 공신을 기록하는 일을 의논할 때에, 추관(推官)이 말하기를 ‘한 가지 일에 따라 녹공할 수 없습니다.’ 하기에 내가 다시 말하지 않았으나, 이번 일을 이과(李顆)보다도 심하고, 예전에도 공신을 추록(追錄)한 예가 있으니, 고자(告者)를 정난 공신(定難功臣) 1등으로 기록하는 것이 어떠한가? 예전에도 이런 큰 변을 고하고서 공신으로 기록되지 않은 자가 있었는가?"

하매, 송일 등이 아뢰기를,

"고자의 공은 매우 크니, 그 공을 추록하여도 괜찮으나, 노영손(盧永孫)보다 못한 데가 있습니다. 13일에 그 모의를 듣고서 16일 전에 고하였다면 참으로 큰 공이 되나, 곧 와서 고하지 않고 이때까지 천연하였으니, 이는 그 상을 영손과 같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공을 추록하는 것은, 신 등은 지나치다고 생각합니다. 또, 이와 같이 고변하고서도 공신이 되지 못한 자가 있는지를 신 등이 알지 못합니다. 영산군(寧山君)이 두 번 간인(奸人)의 구실이 되어 조정의 반열에 참예하지 못하므로 그 마음도 편안치 못할 것이니, 외방(外方)에 두고 너그러이 보살피소서."

하고, 추관(推官)들이 아뢰기를,

"이제 듣건대, 신 등에게 가사(家舍)와 노비를 나누어 내리신다 합니다. 신 등이 재상의 반열에 참예하여 나라에 큰일이 있으면 추국(推鞫)에 입참(入參)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직분(職分)인데, 이 은전(恩典)을 보면 공신에게 보답하는 예(例)입니다. 신 등은 입시(入侍)하여 상께서 추국하실 때에 눈으로 보기만 했을 뿐인데, 무슨 공로가 있으리까? 그런데도 중상(重賞)을 받으면 조정에서 듣고서 반드시 ‘상의 은전이 공이 없는 사람에게까지 지나치게 미쳤다.’ 할 것이니, 신 등도 감히 뻔뻔스레 받을 수가 없습니다. 사양하기를 청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정막개(鄭莫介)를 공신에 추록하는 일은, 전의 일을 상고해 보니 과연 동일하지 않다. 상사(賞賜)하는 물건은 사양하지 말라. 영산군의 일은 혹 구실은 되었을지라도 도무지 친교할 리가 없고 저들도 모른다고 하니, 이 때문에 죄줄 수는 없다."

하였다. 또 영산군의 죄를 청하고 상사를 사양하였으나, 모두 윤허하지 않았다.

  • [註 477] 모반(謀反) : 십악(十惡)의 하나. 본국을 배반하고 타국에 몰래 통하여 반란을 꾀한 것. 처벌에 관한 법규는 《대명률(大明律)》 형률(刑律) 모반(謀叛)에 보인다.
  • [註 478] 복주(伏誅) : 처형되다.
  • [註 479] 신기(神祇) : 천신(天神)과 지신(地神).
  • [註 480] 폐조(廢朝) : 연산군 또는 그때를 가리킨다.
  • [註 481] 잠저(潛邸)에 있을 적 : 임금이 되기 전. 잠저는 용(龍:임금을 상징)이 아직 세상에 나오기 전에 있던 곳.
  • [註 482] 금표(禁標) : 잡인의 출입을 금하는 푯말. 연산군은, 임금이 전용으로 하는 사냥터를 서울 교외까지 확장하여 금표를 설치하였었다.
  • [註 483] 구사(丘史) : 종친(宗親)·공신(功臣)에게 구종(丘從:관원을 모시고 다니는 하인)으로 쓰도록 국가에서 내린 노비(奴婢).
  • [註 484] 관사(觀射) : 임금이 친림(親臨)하여 사예(射藝)를 보는 것. 이때에 성적이 좋은 자가 있으면 상을 내리는 것이 관례이다.
  • [註 485] 천의(天意) : 임금의 뜻.

원문

○政院啓曰: "辛允武、朴永文等, 武臣之魁, 擧事甚易, 況打圍時, 允武爲苑囿司, 永文爲大將, 其勢甚易。 幸賴天佑神助, 謀反伏誅。 不然, 危不容髮, 以李顆之事比之, 其禍益慘。 李顆時, 甄城君初不與謀, 猶斷以大義。 今寧山君, 不與奸謀, 朝廷皆知, 而請罪者, 爲宗社大計。 聖上友愛之情雖篤, 而甄城、寧山, 同是同氣之親, 甄城伏罪, 則寧山何能獨全? 昨日大臣方請罪, 臣等欲待發落, 上意猶不回, 故啓之。 罪之輕重, 裁自上意。 然寧山不可全免罪譴也。" 傳于政院曰: "予卽位以後, 奸兇數出, 自敗伏誅, 是非神祗之默佑宗社之陰騭乎? 然數有大變, 此予以否德, 叨承丕緖, 人心不服, 忠義泯滅故也。 不意逆黨, 出於元勳之中, 國恩不足而然耶? 富貴不協而然耶? 怏憤向上而然耶? 不出於此, 而圖爲不軌之事。 予思永文不容於公論, 其計以爲, 允武亦被必有不協之意, 故售其禍心, 欲剪有嫌文士, 以快其志, 至發觸上之言。 非徒關係宗社, 朝廷大禍, 何可勝言? 而天必先知, 近有冬雷之變, 其應如是。 前者甄城之事, 雖不顯顯然, 不如今日寧山之事。 然其時反正未久, 人心不定, 迫於群臣之請, 不得已不能容同氣, 至今恨之。 況如寧山, 頓無預知之理乎? 奸人有言曰: ‘寧山善弓馬。’ 此恐動人心, 欲陷其奸術也, 其實則不然。 廢朝予在潛邸, 廢朝出獵於禁標之中, 予與寧山, 一時隨行者多矣。 其時無丘史一人, 而予與寧山, 獨馳馬於山間及郊外, 寧山一日之內, 猶數有墜馬之時, 豈得謂善馳馬乎? 其時亦數觀射, 故予與寧山, 參射者多矣。 此人之心之事, 予已明知, 亦未聞有學識。 誰肯與此人共謀乎? 此予所獨知, 朝臣未之詳知。 永文、允武, 與寧山非類, 頓無交分之理, 倉卒之間, 何得逞不測之禍乎? 由是可知奸人擧疑似之言, 脅制同心者。 予已知其事, 敢有疑慮, 罪無辜者乎? 予意以謂人心反覆之時, 務去貪穢之人, 崇奬節義之風, 垂萬世之綱常, 矯一代之邪習可也。 人之秉彝, 不以貴賤而異, 故忠心出於一賤夫, 而奸兇出於元勳之中, 節義之風, 不可不興。" 政院啓曰: "臣等伏覩下書, 處兄弟之道, 崇節義之風。 聖上此心, 可以回天意、立節義、盡友于, 不勝感激。 寧山短於弓馬等事, 臣等今因上敎知之。 設使寧山有弓馬之技, 此特匹夫之能。 自古帝王, 必天命之人歸之, 不然, 才雖絶世, 安敢逆天? 夫奸臣逆謀, 必有(籍)〔藉〕 口者, 其(籍)〔藉〕 口者, 雖不預知, 斷以大義者, 蓋杜奸人反側之心。 臣等敢更請罪寧山者, 非以寧山爲預知, 欲使後人, 知戒矣。 永文、允武, 雖被駁, 彼富貴已極, 上恩罔極, 猶不自滿, 欲逞其兇, 此鄙夫不奪不厭之心。 若忠義之士, 則雖在荒野, 自樂爲(大)〔太〕 平逸民, 無望於世。 然則人之善惡, 豈以富貴貧賤而有異哉? 上敎有云: ‘節義不可不興。’ 此實鼓舞一世, 潛消反側之意, 臣等尤爲感激。" 傳于左議政宋軼、右議政鄭光弼、禮曹判書金應箕、刑曹判書尹珣、兵曹判書申用漑、(左贊參)〔左參贊〕 尹金孫、戶曹判書張順孫、工曹判書鄭光世、吏曹判書金詮、右參贊李自健、漢城府左尹成夢井、右尹李自堅等曰: "昨日議錄功臣, 推官以謂因一事, 而不可錄功, 予不更言。 此事甚於李顆, 而古有追錄功臣之例, 錄告者于定難功臣一等何如? 古亦有告如是大變, 而不錄功臣者乎?" 宋軼等啓曰: "告者功則至重, 雖追錄其功可也。 但下於盧永孫處有之。 十三日聞其謀, 十六日前告之, 則誠大功也, 不卽來告, 遷延至是, 此不可與永孫, 同其賞矣。 追錄其功, 則臣等意以爲過也。 且如是告變, 而不得爲功臣者有無, 臣等未之知也。 寧山君再爲奸人藉口, 不得隨參朝列, 而其心亦不自安, 請出置外方優恤。" 推官等啓曰: "今聞分賜家舍奴婢于臣等。 臣等參宰相之列, 國有大事, 入參推鞫, 乃職分所當爲。 觀此恩典, 是乃報答功臣之例。 臣等入侍, 上推鞫時, 但目見而已, 有何功勞? 如是而受重賞, 則朝廷聞之, 必以爲上之恩典, 濫及無功之人, 而臣等亦不敢靦然安受之, 請辭。" 傳曰: "莫介追錄功臣之事, 考諸前事, 果不同也。 賞賜之物, 其勿辭。 寧山君事, 雖或藉口, 頓無交親之理, 而彼亦謂之不知, 則不可以此而罪之也。" 又請寧山君罪, 辭賞賜, 竝不允。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중종실록19권, 중종 8년 10월 25일 己未 2/4 기사 / 1513년 명 정덕(正德) 8년

추관들이 상받기를 사양하였으나 윤허하지 않다

국역

정원(政院)이 아뢰기를,

"신윤무·박영문 등은 무신(武臣)의 우두머리라 거사하기가 매우 쉬었는데, 더구나 사냥할 때는 윤무가 원유사(苑囿司), 영문이 대장(大將)이 되었으니 그 형편이 더욱 쉬웠습니다. 다행히 천우신조(天佑神助)로 모반(謀反)477) 한 자가 다 복주(伏誅)478) 하였으나, 그렇지 않았으면 대단히 위험한 것이어서, 이과(李顆)의 일과 비교하면 그 화가 더욱 참혹하였을 것입니다. 이과 때에는 견성군(甄城君)이 애당초 모의에 참여하지 않았는데도 대의(大義)로써 처단하였거니와, 이번에도 영산군(寧山君)이 간사한 모의에 참여하지 않은 것을 조정이 다 알면서 죄주기를 청하는 것은 종사(宗社)의 대계(大計)를 위해서입니다. 성상께서 우애(友愛)의 정이 돈독하실지라도, 견성과 영산은 다같이 동기간인데, 견성은 복죄(伏罪)하였으니, 영산만이 어떻게 온전할 수 있겠습니까? 어제 대신(大臣)이 죄를 청할 때에 신 등은 결정나기를 바라고 기다렸으나, 상께서 뜻을 돌리지 않으셨으므로 아룁니다. 죄의 경중은 상께서 스스로 재결하실 일이나, 영산의 죄를 온전히 벗겨 줄 수는 없습니다."

하니, 정원에 전교하기를,

"내가 즉위한 뒤로 간흉(奸兇)이 자주 일어났으나 스스로 패하여 복주(伏誅)한 것은 다 신기(神祇)479) 의 도움과 종사(宗社)의 음덕(陰德)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대변(大變)이 자주 있는 것은, 내가 덕이 없는 몸으로 대통(大統)을 이어받으매, 인심이 좋지 않아 충의(忠義)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뜻밖에 역당(逆黨)이 원훈(元勳) 가운데에서 나왔으니, 국은(國恩)이 부족해서 그러한가? 부귀(富貴)가 맞지 못해서 그러한가? 울분이 치솟아서 그러한가? 이런 이유가 아닌데도 불궤를 도모하였으니,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영문이 공론(公論)에 용납하지 않으므로, 그가 윤무도 불평하는 뜻을 가졌으리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그의 화심(禍心)을 부려서 혐의 둔 문사를 제거하여 제 뜻을 쾌하게 하려고 위에 저촉되는 말을 하기까지 하였으리라. 종사(宗社)에 관계될 뿐 아니라 조정(朝廷)의 대화(大禍)임을 어찌 이루 다 말할 수 있으랴마는, 하늘이 먼저 알아서 요즈음에 겨울 천둥의 변이 있었으니, 그 감응이 이와 같다.

지난번의 견성(甄城)의 일은 비록 뚜렷하지 않기가 이번 영산(寧山)의 일만 못하였으나, 그때는 반정(反正)한 지 얼마되지 않아서 인심이 안정되지 않았으므로 군신(群臣)의 청에 마지못해 동기(同氣)를 용서하지 못한 것을 이제껏 후회하는데, 하물며 영산으로 말하면 도무지 미리 알 리가 없음에랴! 간인(奸人)의 말에는 ‘영산은 궁마(弓馬)에 능하다.’ 하였으나, 이는 인심을 공동(恐動)하여 제 간악한 술수에 빠뜨리려는 것이요, 실은 그렇지 않았다.

폐조(廢朝)480) 때에 내가 잠저(潛邸)에 있을 적481) 에, 폐조가 금표(禁標)482) 안에서 사냥을 하면, 나와 영산은 함께 수행한 적이 많았다. 그때는 한 사람의 구사(丘史)483) 도 없이 나와 영산만이 산과 들에서 말을 달렸는데, 영산은 하루에도 두어 번 말에서 떨어지는 때가 있었으니, 어찌 말을 잘 탄다고 할 수가 있으랴! 그때에도 자주 관사(觀射)484) 가 있었으므로 나와 영산이 참예하여 활 쏜 적이 많았다. 이 사람과 함께 모의하려고 하랴? 이는 나만이 아는 일이요, 조신(朝臣)들은 잘 알지 못하는 일이다.

영문과 윤무는 영산과는 동류(同類)가 아니니 도무지 교분이 있을 리 없는데, 갑자기 어떻게 불측한 화를 멋대로 만들 수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간인(奸人)들이 그럴 듯한 말로 뜻을 같이하도록 위협한 것을 알 수가 있는데, 내가 이미 그 일을 알면서도 굳이 의심을 두고 무고한 자를 죄주겠는가? 나는, 인심이 바뀔 때에는 힘써 탐오(貪汚)한 사람을 제거하고 절의(節義)의 기풍을 권장하여, 만세의 강상(綱常)을 끼치고 일대(一代)의 사습(邪習)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본성은 귀천(貴賤)에 따라 다른 것이 아니므로, 충심(忠心)이 한낱 천부(賤夫)에서도 나오고, 간흉(奸兇)이 원훈(元勳) 중에서도 나오니, 절의의 기풍을 일으키지 않을 수 없다."

하매, 정원이 아뢰기를,

"신 등은, 형제의 도리를 지키고 절의를 존중하시는 하서(下書)를 보았습니다. 성상의 이 마음은, 절의를 세우고 우애(友愛)를 다하는 데로 천의(天意)485) 를 돌릴 수 있는 것이니, 감격을 금할 수 없습니다. 영산(寧山)이 궁마(弓馬) 등의 일에 능하지 못하다는 것은 신 등이 지금 상교(上敎)를 보고 알았거니와, 설사 영산에게 궁마의 기예가 있을지라도 이는 필부(匹夫)의 재주일 따름입니다. 자고로 제왕이라 천명이 있는 사람에게 돌아가는 것이니, 그렇지 않으면 절세의 재주가 있을지라도 어찌 감히 하늘을 거스릴 수 있으리까! 대저 간신이 역모할 때에는 반드시 구실이 되는 자가 있는데, 미리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그 구실이 된 사람을 대의(大義)로 처단하는 것은, 대개 간인의 반측(反側)하는 마음을 없애기 위해서입니다. 신 등이 감히 영산에게 죄주기를 다시 청하는 것은, 영산이 미리 알았다고 해서가 아니라, 후인들로 하여금 경계할 바를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영문과 윤무가 논박은 받았었으나 그들은 부귀가 이미 극하였고, 상은(上恩)이 망극하였는데도 스스로 만족하지 않고서 흉악을 부렸으니, 이는 비부(鄙夫)의 다 빼앗지 않고는 만족하지 않는 마음이요, 충의(忠義)가 있는 사람이라면 황야(荒野)에 있을지라도 태평 세월의 일민(逸民)임을 스스로 즐겨서 세상에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사람의 선악(善惡)이 어찌 부귀·빈천에 따라 다름이 있으리까! 상교에 ‘절의(節義)를 일으키지 않을 수 없다’고 하셨는데, 이는 실로 일세를 고무하고 반측하는 마음을 없애는 것이므로 신 등은 더욱 감격합니다."

하였다. 좌의정 송일(宋軼)·우의정 정광필(鄭光弼)·예조 판서 김응기(金應箕)·형조 판서 윤순(尹珣)·병조 판서 신용개(申用漑)·좌참찬 윤금손(尹金孫)·호조 판서 장순손(張順孫)·공조 판서 정광세(鄭光世)·이조 판서 김전(金詮)·우참찬 이자건(李自健)·한성부 좌윤(漢城府左尹) 성몽정(成夢井)·우윤(右尹) 이자견(李自堅) 등에게 전교하기를,

"어제 공신을 기록하는 일을 의논할 때에, 추관(推官)이 말하기를 ‘한 가지 일에 따라 녹공할 수 없습니다.’ 하기에 내가 다시 말하지 않았으나, 이번 일을 이과(李顆)보다도 심하고, 예전에도 공신을 추록(追錄)한 예가 있으니, 고자(告者)를 정난 공신(定難功臣) 1등으로 기록하는 것이 어떠한가? 예전에도 이런 큰 변을 고하고서 공신으로 기록되지 않은 자가 있었는가?"

하매, 송일 등이 아뢰기를,

"고자의 공은 매우 크니, 그 공을 추록하여도 괜찮으나, 노영손(盧永孫)보다 못한 데가 있습니다. 13일에 그 모의를 듣고서 16일 전에 고하였다면 참으로 큰 공이 되나, 곧 와서 고하지 않고 이때까지 천연하였으니, 이는 그 상을 영손과 같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공을 추록하는 것은, 신 등은 지나치다고 생각합니다. 또, 이와 같이 고변하고서도 공신이 되지 못한 자가 있는지를 신 등이 알지 못합니다. 영산군(寧山君)이 두 번 간인(奸人)의 구실이 되어 조정의 반열에 참예하지 못하므로 그 마음도 편안치 못할 것이니, 외방(外方)에 두고 너그러이 보살피소서."

하고, 추관(推官)들이 아뢰기를,

"이제 듣건대, 신 등에게 가사(家舍)와 노비를 나누어 내리신다 합니다. 신 등이 재상의 반열에 참예하여 나라에 큰일이 있으면 추국(推鞫)에 입참(入參)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직분(職分)인데, 이 은전(恩典)을 보면 공신에게 보답하는 예(例)입니다. 신 등은 입시(入侍)하여 상께서 추국하실 때에 눈으로 보기만 했을 뿐인데, 무슨 공로가 있으리까? 그런데도 중상(重賞)을 받으면 조정에서 듣고서 반드시 ‘상의 은전이 공이 없는 사람에게까지 지나치게 미쳤다.’ 할 것이니, 신 등도 감히 뻔뻔스레 받을 수가 없습니다. 사양하기를 청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정막개(鄭莫介)를 공신에 추록하는 일은, 전의 일을 상고해 보니 과연 동일하지 않다. 상사(賞賜)하는 물건은 사양하지 말라. 영산군의 일은 혹 구실은 되었을지라도 도무지 친교할 리가 없고 저들도 모른다고 하니, 이 때문에 죄줄 수는 없다."

하였다. 또 영산군의 죄를 청하고 상사를 사양하였으나, 모두 윤허하지 않았다.

  • [註 477] 모반(謀反) : 십악(十惡)의 하나. 본국을 배반하고 타국에 몰래 통하여 반란을 꾀한 것. 처벌에 관한 법규는 《대명률(大明律)》 형률(刑律) 모반(謀叛)에 보인다.
  • [註 478] 복주(伏誅) : 처형되다.
  • [註 479] 신기(神祇) : 천신(天神)과 지신(地神).
  • [註 480] 폐조(廢朝) : 연산군 또는 그때를 가리킨다.
  • [註 481] 잠저(潛邸)에 있을 적 : 임금이 되기 전. 잠저는 용(龍:임금을 상징)이 아직 세상에 나오기 전에 있던 곳.
  • [註 482] 금표(禁標) : 잡인의 출입을 금하는 푯말. 연산군은, 임금이 전용으로 하는 사냥터를 서울 교외까지 확장하여 금표를 설치하였었다.
  • [註 483] 구사(丘史) : 종친(宗親)·공신(功臣)에게 구종(丘從:관원을 모시고 다니는 하인)으로 쓰도록 국가에서 내린 노비(奴婢).
  • [註 484] 관사(觀射) : 임금이 친림(親臨)하여 사예(射藝)를 보는 것. 이때에 성적이 좋은 자가 있으면 상을 내리는 것이 관례이다.
  • [註 485] 천의(天意) : 임금의 뜻.

원문

○政院啓曰: "辛允武、朴永文等, 武臣之魁, 擧事甚易, 況打圍時, 允武爲苑囿司, 永文爲大將, 其勢甚易。 幸賴天佑神助, 謀反伏誅。 不然, 危不容髮, 以李顆之事比之, 其禍益慘。 李顆時, 甄城君初不與謀, 猶斷以大義。 今寧山君, 不與奸謀, 朝廷皆知, 而請罪者, 爲宗社大計。 聖上友愛之情雖篤, 而甄城、寧山, 同是同氣之親, 甄城伏罪, 則寧山何能獨全? 昨日大臣方請罪, 臣等欲待發落, 上意猶不回, 故啓之。 罪之輕重, 裁自上意。 然寧山不可全免罪譴也。" 傳于政院曰: "予卽位以後, 奸兇數出, 自敗伏誅, 是非神祗之默佑宗社之陰騭乎? 然數有大變, 此予以否德, 叨承丕緖, 人心不服, 忠義泯滅故也。 不意逆黨, 出於元勳之中, 國恩不足而然耶? 富貴不協而然耶? 怏憤向上而然耶? 不出於此, 而圖爲不軌之事。 予思永文不容於公論, 其計以爲, 允武亦被必有不協之意, 故售其禍心, 欲剪有嫌文士, 以快其志, 至發觸上之言。 非徒關係宗社, 朝廷大禍, 何可勝言? 而天必先知, 近有冬雷之變, 其應如是。 前者甄城之事, 雖不顯顯然, 不如今日寧山之事。 然其時反正未久, 人心不定, 迫於群臣之請, 不得已不能容同氣, 至今恨之。 況如寧山, 頓無預知之理乎? 奸人有言曰: ‘寧山善弓馬。’ 此恐動人心, 欲陷其奸術也, 其實則不然。 廢朝予在潛邸, 廢朝出獵於禁標之中, 予與寧山, 一時隨行者多矣。 其時無丘史一人, 而予與寧山, 獨馳馬於山間及郊外, 寧山一日之內, 猶數有墜馬之時, 豈得謂善馳馬乎? 其時亦數觀射, 故予與寧山, 參射者多矣。 此人之心之事, 予已明知, 亦未聞有學識。 誰肯與此人共謀乎? 此予所獨知, 朝臣未之詳知。 永文、允武, 與寧山非類, 頓無交分之理, 倉卒之間, 何得逞不測之禍乎? 由是可知奸人擧疑似之言, 脅制同心者。 予已知其事, 敢有疑慮, 罪無辜者乎? 予意以謂人心反覆之時, 務去貪穢之人, 崇奬節義之風, 垂萬世之綱常, 矯一代之邪習可也。 人之秉彝, 不以貴賤而異, 故忠心出於一賤夫, 而奸兇出於元勳之中, 節義之風, 不可不興。" 政院啓曰: "臣等伏覩下書, 處兄弟之道, 崇節義之風。 聖上此心, 可以回天意、立節義、盡友于, 不勝感激。 寧山短於弓馬等事, 臣等今因上敎知之。 設使寧山有弓馬之技, 此特匹夫之能。 自古帝王, 必天命之人歸之, 不然, 才雖絶世, 安敢逆天? 夫奸臣逆謀, 必有(籍)〔藉〕 口者, 其(籍)〔藉〕 口者, 雖不預知, 斷以大義者, 蓋杜奸人反側之心。 臣等敢更請罪寧山者, 非以寧山爲預知, 欲使後人, 知戒矣。 永文、允武, 雖被駁, 彼富貴已極, 上恩罔極, 猶不自滿, 欲逞其兇, 此鄙夫不奪不厭之心。 若忠義之士, 則雖在荒野, 自樂爲(大)〔太〕 平逸民, 無望於世。 然則人之善惡, 豈以富貴貧賤而有異哉? 上敎有云: ‘節義不可不興。’ 此實鼓舞一世, 潛消反側之意, 臣等尤爲感激。" 傳于左議政宋軼、右議政鄭光弼、禮曹判書金應箕、刑曹判書尹珣、兵曹判書申用漑、(左贊參)〔左參贊〕 尹金孫、戶曹判書張順孫、工曹判書鄭光世、吏曹判書金詮、右參贊李自健、漢城府左尹成夢井、右尹李自堅等曰: "昨日議錄功臣, 推官以謂因一事, 而不可錄功, 予不更言。 此事甚於李顆, 而古有追錄功臣之例, 錄告者于定難功臣一等何如? 古亦有告如是大變, 而不錄功臣者乎?" 宋軼等啓曰: "告者功則至重, 雖追錄其功可也。 但下於盧永孫處有之。 十三日聞其謀, 十六日前告之, 則誠大功也, 不卽來告, 遷延至是, 此不可與永孫, 同其賞矣。 追錄其功, 則臣等意以爲過也。 且如是告變, 而不得爲功臣者有無, 臣等未之知也。 寧山君再爲奸人藉口, 不得隨參朝列, 而其心亦不自安, 請出置外方優恤。" 推官等啓曰: "今聞分賜家舍奴婢于臣等。 臣等參宰相之列, 國有大事, 入參推鞫, 乃職分所當爲。 觀此恩典, 是乃報答功臣之例。 臣等入侍, 上推鞫時, 但目見而已, 有何功勞? 如是而受重賞, 則朝廷聞之, 必以爲上之恩典, 濫及無功之人, 而臣等亦不敢靦然安受之, 請辭。" 傳曰: "莫介追錄功臣之事, 考諸前事, 果不同也。 賞賜之物, 其勿辭。 寧山君事, 雖或藉口, 頓無交親之理, 而彼亦謂之不知, 則不可以此而罪之也。" 又請寧山君罪, 辭賞賜, 竝不允。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원본

/ 1
태조-철종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고종-순종
                                                              • 이동
                                                                • 이동
                                                                  • 이동
                                                                    태조-철종
                                                                      고종-순종

                                                                        문자입력기

                                                                        한자목록

                                                                        문자영역
                                                                        한자목록 바로가기

                                                                        부수

                                                                        획수

                                                                        한자목록

                                                                        획수

                                                                        한자목록

                                                                        부수

                                                                        획수

                                                                        한자목록

                                                                        영문INDEX

                                                                        한어 병음

                                                                        한자목록

                                                                        영문INDEX

                                                                        일본어 음독

                                                                        한자목록

                                                                        책갈피목록

                                                                        책갈피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