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실록18권, 중종 8년 5월 14일 辛巳 1/3 기사 / 1513년 명 정덕(正德) 8년
성희안이 함경도의 구황을 의논하다
국역
성희안이 의논드리기를,
"함경도의 구황(救荒)을 느슨히 할 수 없습니다. 도에 곡식이 없어 백성들이 굶어 죽고 있으니, 그를 구제하는 방책은 다만 곡식을 수운하는 데 있습니다. 수운의 폐단은 노비(勞費)에 있으나, 이미 굶어 죽은 뒤에는 다시 살려 낼 수 없는 것입니다. 남도는 전에 풍년이 들었으니 그 백성은 곡식을 수운하는 데 부릴 수 있겠습니다만 농사일이 한창이라 짐바리가 왕래하면 제때에 농사를 짓지 못하게 될 것이니, 실로 양전(兩全)의 계책이 아닙니다. 예부터 구황에는 권술(權術)을 썼습니다. 지금 남도 백성 중 포실한 자에게 얼마의 전결(田結)에 한하여 목면(木綿) 1필씩 내게 하여 그 전수를 호조에 수납하고, 호조에서는 바리당 태가(駄價)가 얼마라는 것을 약정한 다음에, 군자창의 곡식을 풀어 놓고, 혹은 사람을 모집하여 안변(安邊)에 수입하게 하고 혹은 결채인(結彩人)을 시켜 각각 1석씩 수송하게 하기도 하고, 혹은 동·서 양강(兩江)의 마부(馬夫)를 시켜 각각 2석씩 수송하게 하기도 하고, 혹은 시정 사람 3명씩을 한 바리로 만들어 각각 1석씩 소송하게 하기도 하되, 모두 그 댓가를 주어서 그들로 하여금 원망하지 않게 할 것이며, 유위(留衛)하는 보군(步軍) 같은 것은 모두 부릴 수 있으니, 각각 목면 1필씩을 주어 노자로 쓰게 하면 기뻐하여 부리기가 쉬울 것 같습니다. 그 속수무책으로 한 도의 백성을 다 죽게 하는 것보다는 어찌 잡다한 일을 일소하고 억지로라도 시행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또 남도 백성이 목면 납입하기를 기다리자면 늦어져 제때에 미치지 못하리니, 곧 해조(該曹)로 하여금 사섬시(司贍寺)에 간직한 목면을 쓰게 하되, 그 수운하는 절목(節目)은 전운사(轉運使)와 함께 급히 작성해 마련하여 시행하게 하소서."
하고, 송일·김응기·이손·장순손·임유겸·이맥이 의논드리기를,
"함경도 백성이 무수히 굶어죽으니 부득이 농업에 관계없이 사람으로 곡식을 수운하여 구제해야 되겠는데 그 농업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이 정한 수가 있으니 6∼7일 길의 험로를 발섭하여 곡식을 운반함에 어찌 폐단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이 일은 폐단을 논하여 중지할 수 없는 것이니, 병조로 하여금 당번 보병(當番步兵)·유위(留衛) 전수와, 기병(騎兵)으로 숙위(宿衛)하는 자를 제외하고 경기·황해·강원도 등의 당령 수군(當領水軍)에서 요량해 뽑아서 계획을 짜고 서계(書啓)한 뒤에 경창미를 풀어 기병은 매인당 20두씩 맡기고 보군은 매인당 10두씩 맡기되, 전운청(轉運廳)의 낭관(郞官)이나 부장(部將)이 인솔하여 오는 6월 초순에 안변부(安邊府)에서 두량하여 교부하게 할 것이며, 황해도와 강원도는 번을 서는 수군이 경창으로 올라오려면 폐단이 있으리니, 각각 그 머물러 지키고 있는 포소(浦所) 근처 고을에 있는 군자미를 두량해 나누어 맡기되 차사원(差使員)이 인솔하여 역시 안변부에 교부하게 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니, 상이 송일 등의 의논을 좇았다.
- 【태백산사고본】 9책 18권 27장 B면【국편영인본】 14책 659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물가-운임(運賃) /
원문
○辛巳/成希顔議: "咸鏡救荒, 不可緩也。 道無米穀, 民方餓死, 救活之策, 只在輸運。 輸運之弊, 雖有勞費, 已餓死之後, 不可復生。 南方在前豐稔, 其民可役以輸米。 但農務方劇, 駄馬往來, 廢業失時, 固非兩全之計。 自古荒政, 當用權術, 今宜令南民之有實者, 限田若干結, 出木緜一匹, 總數輸納戶曹。 戶曹酌定一駄馬價若干, 發軍資穀食, 或募人輸入于安邊, 或令結彩人, 各輸一石, 或令東西兩江馬夫, 各輸二石, 或以市里人三人爲一駄, 各輸一石, 皆給價, 俾無生怨。 如留衛步軍, 皆可役, 各給木緜一匹, 爲裹糧之資, 悅而使之似便。 與其束手無策, 使一道民生, 死亡殆盡, 曷若掃除雜故, 勉强而行之乎? 且必待商民所納木緜, 則緩不及事, 卽令該曹, 用司贍寺所藏木緜, 其輸運節目, 同轉運使, 作急磨鍊施行。" 宋軼、金應箕、李蓀、張順孫、任由謙、李陌議: "咸鏡之民, 餓死者數多, 不得已以不干農作者, 輸穀救活, 其不事農業之人有數, 六七日程途, 涉險運米, 豈無其弊? 然此事不可論弊而止之。 令兵曹當番步兵, 留衛全數, 騎兵宿衛外, 量抄京畿、黃海、江原等道, 當領水軍, 劃卽書啓後, 發京倉米, 騎兵則人授二十斗, 步軍則人授十斗, 轉運廳郞官部將押領, 來六月初旬前, 安邊府斗量交付。 黃海道、江原道立番水軍, 京倉上來有弊, 各其留防浦所近官所在軍資米, 斗量分授, 差使員押領同府交付何如?" 上從軼等議。
- 【태백산사고본】 9책 18권 27장 B면【국편영인본】 14책 659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물가-운임(運賃) /
중종 8년 (1513) 5월 14일
중종실록18권, 중종 8년 5월 14일 辛巳 1/3 기사 / 1513년 명 정덕(正德) 8년
성희안이 함경도의 구황을 의논하다
국역
성희안이 의논드리기를,
"함경도의 구황(救荒)을 느슨히 할 수 없습니다. 도에 곡식이 없어 백성들이 굶어 죽고 있으니, 그를 구제하는 방책은 다만 곡식을 수운하는 데 있습니다. 수운의 폐단은 노비(勞費)에 있으나, 이미 굶어 죽은 뒤에는 다시 살려 낼 수 없는 것입니다. 남도는 전에 풍년이 들었으니 그 백성은 곡식을 수운하는 데 부릴 수 있겠습니다만 농사일이 한창이라 짐바리가 왕래하면 제때에 농사를 짓지 못하게 될 것이니, 실로 양전(兩全)의 계책이 아닙니다. 예부터 구황에는 권술(權術)을 썼습니다. 지금 남도 백성 중 포실한 자에게 얼마의 전결(田結)에 한하여 목면(木綿) 1필씩 내게 하여 그 전수를 호조에 수납하고, 호조에서는 바리당 태가(駄價)가 얼마라는 것을 약정한 다음에, 군자창의 곡식을 풀어 놓고, 혹은 사람을 모집하여 안변(安邊)에 수입하게 하고 혹은 결채인(結彩人)을 시켜 각각 1석씩 수송하게 하기도 하고, 혹은 동·서 양강(兩江)의 마부(馬夫)를 시켜 각각 2석씩 수송하게 하기도 하고, 혹은 시정 사람 3명씩을 한 바리로 만들어 각각 1석씩 소송하게 하기도 하되, 모두 그 댓가를 주어서 그들로 하여금 원망하지 않게 할 것이며, 유위(留衛)하는 보군(步軍) 같은 것은 모두 부릴 수 있으니, 각각 목면 1필씩을 주어 노자로 쓰게 하면 기뻐하여 부리기가 쉬울 것 같습니다. 그 속수무책으로 한 도의 백성을 다 죽게 하는 것보다는 어찌 잡다한 일을 일소하고 억지로라도 시행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또 남도 백성이 목면 납입하기를 기다리자면 늦어져 제때에 미치지 못하리니, 곧 해조(該曹)로 하여금 사섬시(司贍寺)에 간직한 목면을 쓰게 하되, 그 수운하는 절목(節目)은 전운사(轉運使)와 함께 급히 작성해 마련하여 시행하게 하소서."
하고, 송일·김응기·이손·장순손·임유겸·이맥이 의논드리기를,
"함경도 백성이 무수히 굶어죽으니 부득이 농업에 관계없이 사람으로 곡식을 수운하여 구제해야 되겠는데 그 농업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이 정한 수가 있으니 6∼7일 길의 험로를 발섭하여 곡식을 운반함에 어찌 폐단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이 일은 폐단을 논하여 중지할 수 없는 것이니, 병조로 하여금 당번 보병(當番步兵)·유위(留衛) 전수와, 기병(騎兵)으로 숙위(宿衛)하는 자를 제외하고 경기·황해·강원도 등의 당령 수군(當領水軍)에서 요량해 뽑아서 계획을 짜고 서계(書啓)한 뒤에 경창미를 풀어 기병은 매인당 20두씩 맡기고 보군은 매인당 10두씩 맡기되, 전운청(轉運廳)의 낭관(郞官)이나 부장(部將)이 인솔하여 오는 6월 초순에 안변부(安邊府)에서 두량하여 교부하게 할 것이며, 황해도와 강원도는 번을 서는 수군이 경창으로 올라오려면 폐단이 있으리니, 각각 그 머물러 지키고 있는 포소(浦所) 근처 고을에 있는 군자미를 두량해 나누어 맡기되 차사원(差使員)이 인솔하여 역시 안변부에 교부하게 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니, 상이 송일 등의 의논을 좇았다.
- 【태백산사고본】 9책 18권 27장 B면【국편영인본】 14책 659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물가-운임(運賃) /
원문
○辛巳/成希顔議: "咸鏡救荒, 不可緩也。 道無米穀, 民方餓死, 救活之策, 只在輸運。 輸運之弊, 雖有勞費, 已餓死之後, 不可復生。 南方在前豐稔, 其民可役以輸米。 但農務方劇, 駄馬往來, 廢業失時, 固非兩全之計。 自古荒政, 當用權術, 今宜令南民之有實者, 限田若干結, 出木緜一匹, 總數輸納戶曹。 戶曹酌定一駄馬價若干, 發軍資穀食, 或募人輸入于安邊, 或令結彩人, 各輸一石, 或令東西兩江馬夫, 各輸二石, 或以市里人三人爲一駄, 各輸一石, 皆給價, 俾無生怨。 如留衛步軍, 皆可役, 各給木緜一匹, 爲裹糧之資, 悅而使之似便。 與其束手無策, 使一道民生, 死亡殆盡, 曷若掃除雜故, 勉强而行之乎? 且必待商民所納木緜, 則緩不及事, 卽令該曹, 用司贍寺所藏木緜, 其輸運節目, 同轉運使, 作急磨鍊施行。" 宋軼、金應箕、李蓀、張順孫、任由謙、李陌議: "咸鏡之民, 餓死者數多, 不得已以不干農作者, 輸穀救活, 其不事農業之人有數, 六七日程途, 涉險運米, 豈無其弊? 然此事不可論弊而止之。 令兵曹當番步兵, 留衛全數, 騎兵宿衛外, 量抄京畿、黃海、江原等道, 當領水軍, 劃卽書啓後, 發京倉米, 騎兵則人授二十斗, 步軍則人授十斗, 轉運廳郞官部將押領, 來六月初旬前, 安邊府斗量交付。 黃海道、江原道立番水軍, 京倉上來有弊, 各其留防浦所近官所在軍資米, 斗量分授, 差使員押領同府交付何如?" 上從軼等議。
- 【태백산사고본】 9책 18권 27장 B면【국편영인본】 14책 659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물가-운임(運賃) /
원본
중종 8년 (1513) 5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