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실록18권, 중종 8년 3월 5일 甲戌 4/4 기사 / 1513년 명 정덕(正德) 8년
함경도 관찰사 정광필이 1품 가자를 사양하다
국역
함경도 관찰사 정광필(鄭光弼)이 장계(狀啓)를 올려 1품 가자를 사양하였다. 대략,
"이와 같은 차서(次序)를 뛰어 넘은 은혜는 실로 현능(賢能)하더라도 감당하기 어렵거늘, 하물며 보잘것없는 신이야 어찌 사양하지 않을 수 있으리까! 신이 어려서 문자(文字)를 익혔으나, 다만 경학(經學)을 입으로만 독송(讀誦)하여 과제(科第)를 얻었을 뿐이요, 달리 깊은 학술은 없습니다. 사판(仕版)에 올라 많은 직책을 역임했으나, 간 데마다 공효는 없었고, 다만 자급(資級)을 따라 옮겨 서임(敍任)되어 이제 통현(通顯)104) 에까지 올랐습니다.
반정(反正) 이후에는 더욱 한없이 뛰어올라 외람되이 육경(六卿)의 반열에 있게 되었으나, 스스로 합당치 못함을 아는지라, 도태되기를 날로 기대하였더니, 지난 해에 또 본직을 제수하셨습니다. 그러나 부임한 후 고질(痼疾)이 도져서 즉시 제읍(諸邑)을 순찰하지 못하였다가 이제서야 순찰을 마쳤습니다만, 원래 사람됨이 변변치 못하여 탐렴(貪廉)을 분별하지 못하니, 억울한 일들을 어찌 다 살폈으리까! 홍원(洪原) 이북은 더욱 흉년이 들어 부유한 자도 모두 초근 목피(草根木皮)로 간신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가을에 유리(流離)하였던 자가 간혹 돌아와 모였으나, 관름(官廩)이 또한 핍절되었으니, 수로(水路)로 운반하여 진휼(賑恤)함에 어찌 충분할 수 있으리까! 그러니, 기근(飢饉)을 구제함에도 효과를 거두지 못하였는데 외람히 숭반(崇班)에 올랐으니, 신 또한 후안(厚顔)이라 어찌 물망에 맞으리까! 청컨대 개정하시어 물론(物論)을 합당하게 하여 신의 마음을 편안케 하여 주소서."
하였는데, 글[書]을 내려 답하기를,
"나는 경의 기국이 순심(醇深)하고 지모가 원대(遠大)함을 가상히 여기어 이렇게 총애의 승직(陞職)을 베풀어 특별한 은전(恩典)을 보이는 것이니, 너무 사양하지 말고 더욱 충성의 보필을 더하여 나의 걱정하는 본뜻에 어긋남이 없이 끝까지 기근(飢饉)을 구제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9책 18권 5장 B면【국편영인본】 14책 648면
- 【분류】인사-관리(管理)
- [註 104] 통현(通顯) : 벼슬이 극히 현달하다.
원문
○咸鏡道觀察使鄭光弼狀啓, 辭一品加, 其略曰:
如此不次之恩, 雖實賢能, 亦難堪荷, 況臣無狀, 寧不殞越? 臣少習文字, 只誦經學口讀, 以取科第而已, 他無淵深學術。 旣登仕版, 歷職雖多, 而所在無效, 但循已遷敍, 乃躋通顯。 自反正後, 又極驟進, 猥居六卿之列。 自知不稱, 日竢汰去, 前年又授本職。 赴任而後, 痼疾又作, 未卽巡按諸邑, 今乃畢審。 素質庸懦, 貪廉尙未分辨, 冤枉豈盡得理? 洪原以北, 尤爲失稔, 有産業者, 皆茹草根木皮, 艱難生活。 況去秋流離者, 雖或還集, 官廩亦乏, 漕運賑恤, 豈能充飽? 然則救荒事, 亦無成效, 而濫陞崇班, 臣亦厚顔, 寧孚物望乎? 請命改正, 以愜物論, 以安臣心。
下書答之曰:
予嘉卿器醇而深, 猷遠而博, 玆加寵陟, 以示殊恩, 毋煩遜避, 益加忠輔, 以稱予憂悶元元之意, 竟濟于飢饉。
- 【태백산사고본】 9책 18권 5장 B면【국편영인본】 14책 648면
- 【분류】인사-관리(管理)
중종 8년 (1513) 3월 5일
중종실록18권, 중종 8년 3월 5일 甲戌 4/4 기사 / 1513년 명 정덕(正德) 8년
함경도 관찰사 정광필이 1품 가자를 사양하다
국역
함경도 관찰사 정광필(鄭光弼)이 장계(狀啓)를 올려 1품 가자를 사양하였다. 대략,
"이와 같은 차서(次序)를 뛰어 넘은 은혜는 실로 현능(賢能)하더라도 감당하기 어렵거늘, 하물며 보잘것없는 신이야 어찌 사양하지 않을 수 있으리까! 신이 어려서 문자(文字)를 익혔으나, 다만 경학(經學)을 입으로만 독송(讀誦)하여 과제(科第)를 얻었을 뿐이요, 달리 깊은 학술은 없습니다. 사판(仕版)에 올라 많은 직책을 역임했으나, 간 데마다 공효는 없었고, 다만 자급(資級)을 따라 옮겨 서임(敍任)되어 이제 통현(通顯)104) 에까지 올랐습니다.
반정(反正) 이후에는 더욱 한없이 뛰어올라 외람되이 육경(六卿)의 반열에 있게 되었으나, 스스로 합당치 못함을 아는지라, 도태되기를 날로 기대하였더니, 지난 해에 또 본직을 제수하셨습니다. 그러나 부임한 후 고질(痼疾)이 도져서 즉시 제읍(諸邑)을 순찰하지 못하였다가 이제서야 순찰을 마쳤습니다만, 원래 사람됨이 변변치 못하여 탐렴(貪廉)을 분별하지 못하니, 억울한 일들을 어찌 다 살폈으리까! 홍원(洪原) 이북은 더욱 흉년이 들어 부유한 자도 모두 초근 목피(草根木皮)로 간신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가을에 유리(流離)하였던 자가 간혹 돌아와 모였으나, 관름(官廩)이 또한 핍절되었으니, 수로(水路)로 운반하여 진휼(賑恤)함에 어찌 충분할 수 있으리까! 그러니, 기근(飢饉)을 구제함에도 효과를 거두지 못하였는데 외람히 숭반(崇班)에 올랐으니, 신 또한 후안(厚顔)이라 어찌 물망에 맞으리까! 청컨대 개정하시어 물론(物論)을 합당하게 하여 신의 마음을 편안케 하여 주소서."
하였는데, 글[書]을 내려 답하기를,
"나는 경의 기국이 순심(醇深)하고 지모가 원대(遠大)함을 가상히 여기어 이렇게 총애의 승직(陞職)을 베풀어 특별한 은전(恩典)을 보이는 것이니, 너무 사양하지 말고 더욱 충성의 보필을 더하여 나의 걱정하는 본뜻에 어긋남이 없이 끝까지 기근(飢饉)을 구제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9책 18권 5장 B면【국편영인본】 14책 648면
- 【분류】인사-관리(管理)
- [註 104] 통현(通顯) : 벼슬이 극히 현달하다.
원문
○咸鏡道觀察使鄭光弼狀啓, 辭一品加, 其略曰:
如此不次之恩, 雖實賢能, 亦難堪荷, 況臣無狀, 寧不殞越? 臣少習文字, 只誦經學口讀, 以取科第而已, 他無淵深學術。 旣登仕版, 歷職雖多, 而所在無效, 但循已遷敍, 乃躋通顯。 自反正後, 又極驟進, 猥居六卿之列。 自知不稱, 日竢汰去, 前年又授本職。 赴任而後, 痼疾又作, 未卽巡按諸邑, 今乃畢審。 素質庸懦, 貪廉尙未分辨, 冤枉豈盡得理? 洪原以北, 尤爲失稔, 有産業者, 皆茹草根木皮, 艱難生活。 況去秋流離者, 雖或還集, 官廩亦乏, 漕運賑恤, 豈能充飽? 然則救荒事, 亦無成效, 而濫陞崇班, 臣亦厚顔, 寧孚物望乎? 請命改正, 以愜物論, 以安臣心。
下書答之曰:
予嘉卿器醇而深, 猷遠而博, 玆加寵陟, 以示殊恩, 毋煩遜避, 益加忠輔, 以稱予憂悶元元之意, 竟濟于飢饉。
- 【태백산사고본】 9책 18권 5장 B면【국편영인본】 14책 648면
- 【분류】인사-관리(管理)
원본
중종 8년 (1513) 3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