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실록17권, 중종 7년 11월 23일 癸巳 3/3 기사 / 1512년 명 정덕(正德) 7년
대사헌 이자건의 상소문
국역
대사헌(大司憲) 이자건(李自健) 등이 상소하기를,
"삼가 살피건대, 천지가 만물을 내게 되는 까닭이나, 사시(四時)가 한 해를 이루게 되는 것이 오직 그 실지뿐입니다. 그러므로 임금이 하늘을 이어받아 정사할 적에, 능히 그와 같이 실지로 하면 모든 직무가 오직 닦아지고 만백성이 모두 화목하게 되어, 천지의 화기가 감응(感應)하게 되고, 능히 실지로 하지 못하면, 온갖 하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아 걸핏하면 원망과 한탄을 불러일으켜서, 천지의 감응이 어그러질 것은 필연한 이치입니다.
그윽이 생각하건대, 전하께서 마음을 단단히 차리고 다스리기를 도모하시어 무릇 병폐 있는 정사를 일체 제거하되, 오직 큰 화기를 보합(保合)하시니 능히 그 실지를 쓰신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6년 동안에 재변이 자주 일고 성신(星辰)이 낮에 나타나며, 도리(桃李)가 겨울에 꽃을 피워 겨울 날씨가 봄날같이 따뜻하고, 때 아닌 우레가 일며, 흉년이 연거푸 들어 올해는 더욱 심한데, 항양(亢陽)495) 이 극도에 달하여 내와 못이 모두 말랐으니, 《춘추(春秋)》 2백 년 간의 기록에도 어찌 이보다 더한 것이 있습니까!
신 등은, 하늘이 인애(仁愛)하는 생각으로 성상의 마음을 계발(啓發)하려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 원인을 따져 보매, 신 등의 우매한 소견으로는 적실하게 지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나, 그윽이 지금의 일을 보건대, 한갓 그 겉치레만 하고 그 실지는 없으며, 그 시작은 있으되 그 결과는 없는 듯하며, 진위가 혼동되고 명실이 어그러져서 조정의 정사가 마땅함을 잃고 민생들이 곤궁하여 고생하니, 여기(戾氣)의 감응이 어찌 까닭이 없이 그러하겠습니까!
옛적에는 관직에 사람을 가려서 두되, 관직의 경중을 참작하고 사람의 현부(賢否)를 헤아려 한 관직을 제수하여, 반드시 그 직임을 다하도록 하였는데, 지금은 사람을 위하여 관직을 가려서, 처음에는 핑계하기를 ‘아무 관직이 낮으니 어찌 이루 다 가릴 수 있느냐.’ 하니, 임관되면 상례에 따라 차차 올라가게 되어, 서울이나 외방(外方)에 널려 있는 자가 모두 전에 가려서 제수하지 않은 사람이니, 어려운 소임을 가려서 맡길 때에 미쳐서는 또한 적격자가 없다고 하니 되겠습니까? 지식과 재능이 한 시대에 쓸 만한 사람이 있어도 스스로 나아갈 길이 없어 집안에서 늙어 죽는 사람이 많습니다.
지난번에 조신(朝臣)들로 하여금 각기 아는 사람들을 추천하여 전조(銓曹)에 돌리도록 하였는데, 한 경(卿)이 집정(執政) 중에 겨우 한두 사람을 의망(擬望)하여 그 책임만 미봉했고, 그 나머지는 모두 소위 자제(子弟)의 유(類)였기 때문에, 가는 곳마다 직무(職務)는 게을리하고 한갓 자기의 이익만 일삼으니, 이는 사람 쓰는 실지가 없는 것입니다. 백성의 기쁨과 슬픔이 수령(守令)에게 달린 것인데, 명색이 재간 있다는 자는 거개 번잡하여 마음대로 탐오(貪汚)하고 잔학한 짓을 하며, 더러 마음이 안정한 사람이 있으나 일을 처리하기에는 부족하므로 아전들이 연줄삼아 간계를 부리게 되니, 백성들이 그 피해를 입음이 한결같습니다.
경비(經費)와 공상(貢上)은 그 수량이 일정한데, 이를 빙자하고 징수하여 자기의 차지로 하고, 더러는 권세 있는 사람에게 아첨하여 섬기느라 낭비가 매우 많은데, 무엇이나 백성에게서 나오지 않는 것이 있겠습니까? 체임(遞任)될 때에 이르러서는 해유(解由)에 방해될까 두려워하여, 곡물(穀物) 수량을 허위로 불려 문서에 기록하되 민간에 나누어 준 것처럼 하는데, 다음에 온 사람이 즉시 받아들이되 그 수량이 넘게 하니, 이는 백성을 돌보는 실지가 없는 것입니다.
형옥(刑獄)을 설치함은, 옛사람들이 어찌 시행하여 쓰기에 즐거워서였겠습니까! 하늘이 죄 있는 사람을 처벌하는 것이어서 부득이한 것이니, 진실로 가엾게 여길 것이지 좋아할 것은 없습니다. 지금의 옥사(獄事) 결단하는 사람들은 간교한 지혜를 과시하며, 총명하다고 여기고, 남의 말에 의혹되어 경중을 정하며, 그 실정을 다 밝히지 못하고 한결같이 위엄으로 두려워하게 하고, 그 동기는 구명(究明)하지 않고 한결같이 법으로만 다스리되 편리한 율문(律文)으로 자신만 도모하는 계책을 합니다. 이같이 공평하게 되지 못하는 일이 많고, 또한 분간하여 가리기에 어두워 무고한 사람을 잡아들이는 일이 많으며, 삼목(三木)496) 으로 구금하여 시일을 끌며 지체하니, 그 원망이 극도에 달합니다.
형벌을 관대히 하라[恤刑]는 분부가 한 번이라도 내리게 되면, 형벌을 관대히 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죄를 관대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내보내기만 하면 된다고 여겨 더러는 죄 있는 사람도 요행히 면하게 하니, 또한 전도(顚倒)된 일이 아니겠습니까? 사형에 있어서는 자세히 복심(覆審)하여 죄를 조사해야 하는데, 정부가 태만하여 살피지 아니하고 심상하게 내 버려 두어 세월만 가게 하므로 옥중(獄中)에서 늙게 하는 폐단이 이미 오래되었으며, 태연히 괴이하게 여기지 않으니, 이는 형벌을 관대히 하는 실지가 없는 것입니다.
고적(考績)하는 법은 그 유래가 오래인데, 여러 관원들로 하여금 각기 그 직(職)을 삼가게 하려면 이것이 아니고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나라의 한 해에 두 번 고적하는 법이 그 취지는 아름답습니다마는 전최(殿最)의 권한을 잡는 사람들이 거개는 모두 공정하지도 못하고 분명하지도 못하여, 그 현명하고 우매함을 분별하거나 그 근실하고 태만함을 고찰함도 없이, 으레 상등의 고적으로 하고, 그 중에 더러 중이나 하로 매겨진 자도 반드시 우매하거나 태만해서가 아니라 더러는 불행한 허물에 따라 된 것입니다. 이러므로 모든 관원들이 그 직사(職事)에는 부지런하지 않고 한갓 공름(公稟)만 허비하며, 수령들이 백성의 고통은 돌보지 아니하고 자기 욕심 채우기만 힘쓰게 되니, 출척(黜陟)하는 효과가 과연 어디에 있습니까? 이는 전최를 성실하게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역경(易經)》에 ‘선갑삼일 후갑삼일’(先甲三日後甲三日)497) 이라 하였는데, 무릇 일을 도모하고 계책을 헤아리려면 반드시 시작을 깊이 연구하고 결과를 잘 알아서 해야 오래 갈 수 있고 폐단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건의(建議)하는 사람들은 목전의 사태만 보고 원대한 계책은 생각하지 않으므로, 그 시행하게 되는 일이 사리에 합당하지 못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복종되지 아니하여 떠들썩하게 비방합니다. 이러므로 아침에 영을 내렸다가 저녁에 번복하고, 어제 법을 세웠다가 오늘 폐지하게 되는데, 요사이 마천령(磨天嶺)에 관(關)을 설치하려는 것과, 동해(東海)로 쌀을 전운(轉運)하려 한 것 같은 일들도 그 종말을 헤아리지 않고 경솔하게 한 일입니다. 속담(俗談)에 ‘조선 법은 사흘이면 폐지된다.’고 하는데, 이 말이 이언(俚言)이기는 하지만 또한 족히 나라의 법령이 시끄럽게 고쳐짐을 나타낸 것이며, 이는 호령(號令)이 한결같지 못하여 실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신 등이 또한 듣건대, 대신은 임금의 팔다리요, 대간(臺諫)은 임금의 이목(耳目)이라 합니다. 어찌 이목이 그 보고 듣는 임무를 맡아 하지 않고서 팔다리가 쓰일 수 있겠습니까! 대신이 대간에게 마땅히 그 곧은 기운과 정도(正道)를 배양해 주어, 비록 위태한 말과 곧은 논의로 그때의 정사를 비방하고 자기의 과실을 배척하더라도, 마땅히 장로(長老)가 어린애를 보호하듯이 하여 배우는 말이 잘 나오고 좋아하기를 끊임 없도록 한 뒤에야, 일체가 되어 서로 의뢰하는 의의가 있게 되고, 임금이 간언을 따르는 미덕을 이룰 수 있는 것인데, 지금은 대간이 한 번이라도 조정의 기휘(忌諱)를 범하게 되면, 떼 지어 괴이하게 여기고 입을 모아 나무라며, 노기(怒氣)와 시기가 쌓이니, 어찌 때가 되면 터지지 않으리라고 보증하겠습니까? 여기에 사림(士林)의 화가 숨어 있고 국가의 위란(危亂)이 관계됩니다.
폐조(廢朝)가 아직 혼란하기 전에, 재상(宰相)이 대간을 나쁘게 말하여 임금의 노여움을 격동시켜서 참혹한 화를 일으켰는데, 자신도 화를 면하지 못하였습니다. 앞 수레가 이미 빠졌으니, 반드시 먼 일을 인용할 것도 없습니다. 지금 이 지경에는 이르지 않았으나, 국사의 가부를 논할 때마다 어그러지기만 하고 서로 타협하는 뜻이 없으니, 이는 조정이 서로 화목하는 실지가 없는 것입니다.
아아! 그린 용(龍)은 비가 오게 할 수 없고, 그림의 떡은 요기(療飢)할 수 없는 것이니, 한갓 그 형식만 있고 그 실지가 없으면, 나랏일이 날로 글러져 어떻게 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공도(公道)를 밝혀서 재질을 헤아려 벼슬을 제수(除授)함은 사람을 쓰는 실지요, 순리(循吏)498) 를 가려 뽑아 곤궁한 사람을 사랑함은 휼민(恤民)하는 실지요, 현량(賢良)한 사람을 가려 옥사(獄事)를 맡겨서 경중을 알맞게 함은 휼형(恤刑)하는 실지요, 공로를 고찰하고 출척(黜陟)을 분명하게 하여 백공(百工)을 잘 다스림은 전최(殿最)의 실지요, 일을 함에 처음을 잘 도모하여 시행하며 번복하지 않아 믿음성이 한결같이 함은 정령(政令)을 시행하는 실지요, 옳고 그름을 서로 논쟁하고, 가부(可否)를 도와 성취하여 〈군신간에〉 다같이 경외(敬畏)하고 합심하여 공경(恭敬)함은 서로 화목하는 실지입니다.
앞에 나열한 실(實)하지 못한 병폐의 깊은 뿌리와 굳은 꼭지가 이미 오랜 풍습이 되어, 정령으로도 고칠 수 없고 형벌로도 금할 수 없게 되어, 그 형세가 강하(江河)가 터진 것 같아 만회할 수가 없게 되었으니, 임금과 대신들이 서로 닦으며 몸소 실천하여, 실지로써 개정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방지하겠습니까? 삼가 살피건대, 전하께서 즉위하신 이래로 언로(言路)를 넓게 여셨으나, 대간(臺諫)이 진언(進言)한 것을 반드시 수십 일을 논집(論執)하여야만 윤허를 얻되 그 윤허한 것도 심상하고 세쇄한 일뿐이요, 큰 경륜(經綸)과 쌓인 폐단에 있어서는 막연하게 굳이 거절하시면서 더러는 뇌정(雷霆) 같은 위엄을 내리어 사기(士氣)를 저지(沮止)하시니, 남을 따르고 선을 하는 실지가 지극하지 못한 바가 있는 것입니다.
날마다 경연(經筵)에 납시고 밤에도 소대(召對)하시어 성학(聖學)이 이미 고명(高明)해지셨으나, 그 사이에 어찌 한 마디 말이라도 의심스러운 것이 없었겠으며 한 가지 일이라도 강론해야 할 것이 없었겠습니까마는, 일찍이 의심을 내며 묻고 논란하여 깊이 의리를 탐구하지 않으시니, 그 마음으로 체득한, 정밀하고 전일한 실지가 지극하지 못한 바가 있는 것입니다.
대신들이 계옥(啓沃)하기를 자신의 책임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국가 일을 자신의 근심으로 여기지 아니하여, 오래 된 폐습을 대단찮은 일같이 보아 한갓 말단의 일에만 구구하고 기틀을 바꾸려는 데는 뜻이 없으니, 임금을 보필(輔弼)하고 나라를 다스리는 실지를 궐하고 있습니다. 이러고서 정사가 바로잡히기를 바란다면 이는 마치 판자를 아교(阿膠)로 붙여 배를 만들고, 썩은 새끼로 밧줄을 만들어 허수아비를 시켜 배를 부리게 하는 것과 같은 일이니, 그러고도 어떻게 물 건너기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 깊이 생각하시고 살펴서 받아들여 간언(諫言)을 따르기를 물 흐르듯이 하시며, 총명과 지혜를 천근(淺近)한 옛 예(例) 속에서만 허비하지 말고 정신과 심술(心術)을 항상 풍교(風敎)의 근본을 세우기에 두시며, 임금이 행할 실지를 체득하고 힘써 실행하는 공을 이루시며, 성현의 말씀을 익혀서 모든 이치의 정당한 데를 구명(究明)하고 고금의 사변(事變)을 살펴서 득실의 계책을 궁극히 하시어, 반드시 성상께서 몸소 실천하여 사위(私僞)의 생각이 싹틀 틈이 없고, 화순한 아름다움이 속에 쌓여서, 발로되어 천만 가지 일에 응하게 되면, 실(實)하지 않은 것이 없을 것입니다. 대신들 또한 반드시 각자 스스로 분발하여 서로들 힘쓰고 권면하여 마음을 다해 보도(輔導)하기를 저절로 말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대저 이렇게 되면, 세도의 만회와 풍수의 변혁을 날을 꼽아 기대할 수 있고, 전일의 이른바 허위의 폐단은 제거할 것도 없고, 음양(陰陽)의 조화와 만물의 성취가 여기에서 나오게 될 것입니다.
옛 제왕(帝王)들이 천재(天災)를 만나면 두려워하며, 변하여 상서가 되게 한 이가 하나만이 아닌데, 상(商)나라 중종(中宗)은 상곡(桑穀)의 재변499) 이 있자 능히 무함(巫咸)의 말을 받아들여 감히 방탕하거나 안일한 짓을 하지 않으므로써 상나라의 도(道)가 다시 일어나게 되었으며, 고종(高宗)은 꿩이 우는[雊雉] 변500) 이 있자 조기(祖己)의 말을 받아들여 능히 정사를 바로잡음으로써 나라가 편안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전하께서 이 두어 임금들이 경계하고 두려워한 실지를 본받아 밤낮으로 조심하고 두려워하여 안일할 겨를이 없게 하신다면, 어찌 하늘이 이 두어 임금들에게 보인 것을 성상께 보이지 않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유의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지금 상소의 뜻을 보건대, 위아래 사람들의 과실을 갖추 진술함이, 참으로 지금의 병폐에 맞으니, 내가 매우 아름답게 받아 들이노라."
하였다.
- [註 495] 항양(亢陽) : 가뭄.
- [註 496] 삼목(三木) : 옛날의 형구. 손과 발에 채우는 틀·수갑·족쇄 따위.
- [註 497] ‘선갑삼일 후갑삼일’(先甲三日後甲三日) : 무슨 일이든 미리 주의를 깊이 해서 과오가 없도록 하는 뜻으로 쓰이는 말. 《역경(易經)》 고괘(蠱卦)에 "갑(甲)은 곧 법령을 뜻하는데, 법을 제정하여 반포하기 3일 전에 백성에게 은근히 알려주고, 반포한 3일 뒤에 분명하게 말해 준다." 하였다.
- [註 498] 순리(循吏) : 법을 잘 지키는 성실한 관원.
- [註 499] 상곡(桑穀)의 재변 : 중국 상대(商代) 태무(太戊) 때에, 나무 두 그루가 뜰에 돋아나 하루 사이에 두 손아귀에 차도록 자라므로, 태무가 두렵게 여겨 신하 이척(伊陟)의 말을 듣고 덕을 닦으니 두 나무가 한꺼번에 말라 죽었다는 고사. 이때 무함은 왕실을 잘 다스려 온 나라의 중흥을 이룩하게 했다.《사기(史記)》 은기(殷紀).
- [註 500] 꿩이 우는[雊雉] 변 : 상대(商代) 고종(高宗) 때에 제사를 지내려 하는데, 꿩이 솥귀에 앉아 울므로 상서롭지 못하게 여겨, 신하 조기(祖己)가 고종에게 간하여 덕을 닦게 하였더니, 이로 인하여 상나라가 중흥하였다는 고사. 《서경(書經)》 고종융일(高宗肜日).
원문
○大司憲李自健等上疏曰:
伏以天地之所以生物, 四時之所以成歲, 唯其實而已。 故人君繼天而出治也, 能用其實, 則庶職惟熙, 萬民咸和, 而天地之和應之, 不能用其實, 則百爲不成, 動致怨咨, 天地之乖應之, 此必然之理也。 恭惟殿下, 銳意圖治, 凡有疵政, 一切去之, 惟務保合大和, 可謂能用其實矣。 然而六年之間, 災變屢作, 星辰晝見, 桃李冬華, 冬暖如春, 雷發不時, 凶歉相連。 今年尤甚, 亢陽已極, 川澤俱渴, 雖《春秋》二百年所書, 何以加此? 臣等不識天將仁愛, 而啓聖心耶? 究厥所召, 非臣等愚昧所可的指。 然竊觀當今之事, 徒有其物而無其實, 似有其始而無其終, 眞僞相混, 名實乖戾, 朝政失當, 民生困苦, 戾氣之應, 豈無所自而然也? 古者爲官而擇人, 酌官之輕重, 量人之賢否, 授一官之職, 必盡一官之任, 今也爲人而擇官, 始則諉之曰: "某官卑, 安可盡擇乎?" 循常漸陞, 布列中外者, 皆前日不擇之人也。 及其選授盤錯之任, 又以爲無其人可乎? 雖有知識才能之爲一世用, 而無路自進, 老死牖下者多矣。 頃者令朝臣, 各擧所知, 付之銓曹, 而一卿執政之間, 僅擬其一二, 以塞其責, 其餘皆所謂子弟之類也。 故所至曠職, 徒事利己, 此用人之無其實也。 生民休戚, 係於守令, 而名爲幹能者, 率爲煩劇, 肆行貪殘, 或有恬靜者, 短於治事, 吏緣爲奸, 民受其害則一也。 經費上貢, 其數有常, 而憑此徵歛, 以爲己用, 或媚事權勢, 橫費甚濫, 孰有不出於民者乎? 至於遞任之時, 恐妨解由, 虛張穀數, 錄諸券冊, 以爲散在民間, 而後來者輒徵之, 以贍其數, 是則恤民之無其實也。 刑獄之設, 古人豈樂於施用哉? 天討有罪, 不得不已, 固當哀矜而勿喜也。 今之折獄者, 矜智巧以爲聰明, 惑人言以爲輕重, 不盡其情, 而一以威怵之, 不原其初, 而一以法繩之, 以爲便文自營之計, 如是而不得其平者多矣。 抑有暗於辨別, 多逮無辜, 拘攣三木, 淹延留滯, 其怨極矣。 恤刑之敎一下, 則不知所恤爲何事。 以爲寬人之罪, 而出之斯可矣, 或使有罪者幸免, 不亦顚乎? 至於死刑, 詳覆勘過, 政府慢不之察, 委諸尋常, 積有歲月, 使老於獄中。 流弊已久, 恬不爲怪, 此恤刑之無其實也。 考績之法, 其來尙矣。 欲使庶官, 各敬其職, 捨是無以爲也。 我朝一年再考之法, 其意美矣。 然秉殿最之權者, 類皆不公不明, 無有辨其賢愚, 考其勤慢, 例爲上考, 其或置諸中下者, 未必愚慢, 而或出於不幸之辜。 是以百僚不勤乃事, 而徒費公廩, 守令不恤民隱, 而務成己欲, 黜陟之效, 果安在哉? 此則殿最之無其實也。 《易》曰: "先甲三日, 後甲三日。" 凡圖事揆策, 必須原始要終, 可以恒久而無弊也。 今之建議者, 只見目前之事, 不爲經遠之慮, 其所施爲, 不合事宜, 人心不服, 譁然非之。 是以朝令而夕反, 昨建而今廢。 如近日磨天設關, 東海運米等事, 此亦不要其終而輕擧也。 諺曰: "朝鮮之法, 三日而止。" 此言雖俚, 亦足以見國法之紛更也。 是則號令之不一而無其實也。 臣等又聞大臣, 人君之股肱, 臺諫, 人君之耳目。 安有耳目不司其視聽, 而股肱得以施用乎? 大臣於臺諫, 當養其直氣, 培其正道。 雖危言讜論, 謗其時政, 斥其己過, 宜如長老之保嬰兒, 學語善發, 喜好無已, 然後庶可以得一體相須之義, 成人主從諫之美矣。 今臺諫一犯朝廷之所忌, 則群怪聚罵, 畜怒積猜, 安保其不待時而發耶? 此士林之所隱禍, 而邦家之危亂係焉。 當廢朝未昏亂之時, 宰相訟臺諫, 以激主怒, 以致慘酷之禍, 而身亦不免, 前車已陷, 不必遠引也。 今雖不至於此, 其於國事可否之際, 便有乖隔, 而無相濟之意。 是則朝廷無相和之實也。 嗚呼! 畫龍不足以致雨, 畫餠不足以療飢, 徒有其名而無其實, 則國事日非, 將不可爲矣。 昭明公道, 量才授官, 用人之實也; 遴選循吏, 子惠困窮, 恤民之實也; 擇惟良審折獄, 輕重得當, 恤刑之實也; 考功能明黜陟百工允, 釐殿最之實也; 作事謀始, 惟行不反, 信如四時, 施令之實也; 是非相爭, 可否相濟, 同寅協恭, 相和之實也。 而前所陳列不實之病, 深根固蔕, 已爲積習, 政令所不能改, 刑罰所不能禁, 其勢如江河之潰, 而莫之能回。 若非人主、大臣, 交修躬率, 以實改紀, 則其何以堤防之乎? 伏見殿下, 自卽位以來, 廣開言路, 而臺諫進言, 必連旬論執, 乃蒙允可, 而其所允可, 特尋常細碎之事耳。 其於大經積弊, 邈然固拒, 或示雷霆之威, 以沮士氣, 其取人爲善之實, 有未至也。 日御經筵, 夜又召對, 聖學雖已高明。 然其間豈無一言之可疑, 一事之可講? 而未嘗生疑問難, 深究義理, 其內得精專之實, 有未至也。 大臣不以啓沃爲己任, 不以國家爲巳憂, 積習之弊, 視爲餘事, 徒區區於事爲之末, 無意於轉移之機, 輔君醫國之實, 蓋闕如也。 如是而欲求其治, 正如膠板爲舟, 朽索爲維, 使偶人駕之, 尙何望濟川之利乎? 伏願殿下, 深惟察納, 從諫如流, 聰明智慮, 勿用於淺近舊例之間, 精神心術, 恒存於扶植風敎之源, 體乾健之實, 致力行之功, 味聖賢之言, 以究萬理之當, 察古今之變, 以極得失之策, 必反諸聖躬以踐履之。 私僞之念, 無隙可萌, 和順之美, 充積於中, 發而爲萬變之應, 豈無不實者乎? 大臣亦必各自矜奮, 爭相勉勵, 盡心輔導, 不能自已。 夫如是, 則挽回世道, 丕變風俗, 指日可待。 前所謂虛僞之弊者, 不足祛也, 陰陽之和, 萬物之遂, 於是乎在矣。 古之帝王遇災而懼, 能變爲祥者非一。 商中宗有桑穀之異, 而能用巫咸之言, 不敢荒寧, 而商道復興, 高宗有雊雉之異, 而能用祖己之言, 克正厥事, 邦用嘉靖。 今殿下法數君戒懼之實, 夙夜兢惕, 不遑寧處, 則安知上天, 不以啓數君者, 啓聖上乎? 伏惟殿下留神焉。
傳曰: "今觀疏意, 備陳上下之過失, 正中時病。 予甚嘉納。"
중종 7년 (1512) 11월 23일
중종실록17권, 중종 7년 11월 23일 癸巳 3/3 기사 / 1512년 명 정덕(正德) 7년
대사헌 이자건의 상소문
국역
대사헌(大司憲) 이자건(李自健) 등이 상소하기를,
"삼가 살피건대, 천지가 만물을 내게 되는 까닭이나, 사시(四時)가 한 해를 이루게 되는 것이 오직 그 실지뿐입니다. 그러므로 임금이 하늘을 이어받아 정사할 적에, 능히 그와 같이 실지로 하면 모든 직무가 오직 닦아지고 만백성이 모두 화목하게 되어, 천지의 화기가 감응(感應)하게 되고, 능히 실지로 하지 못하면, 온갖 하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아 걸핏하면 원망과 한탄을 불러일으켜서, 천지의 감응이 어그러질 것은 필연한 이치입니다.
그윽이 생각하건대, 전하께서 마음을 단단히 차리고 다스리기를 도모하시어 무릇 병폐 있는 정사를 일체 제거하되, 오직 큰 화기를 보합(保合)하시니 능히 그 실지를 쓰신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6년 동안에 재변이 자주 일고 성신(星辰)이 낮에 나타나며, 도리(桃李)가 겨울에 꽃을 피워 겨울 날씨가 봄날같이 따뜻하고, 때 아닌 우레가 일며, 흉년이 연거푸 들어 올해는 더욱 심한데, 항양(亢陽)495) 이 극도에 달하여 내와 못이 모두 말랐으니, 《춘추(春秋)》 2백 년 간의 기록에도 어찌 이보다 더한 것이 있습니까!
신 등은, 하늘이 인애(仁愛)하는 생각으로 성상의 마음을 계발(啓發)하려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 원인을 따져 보매, 신 등의 우매한 소견으로는 적실하게 지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나, 그윽이 지금의 일을 보건대, 한갓 그 겉치레만 하고 그 실지는 없으며, 그 시작은 있으되 그 결과는 없는 듯하며, 진위가 혼동되고 명실이 어그러져서 조정의 정사가 마땅함을 잃고 민생들이 곤궁하여 고생하니, 여기(戾氣)의 감응이 어찌 까닭이 없이 그러하겠습니까!
옛적에는 관직에 사람을 가려서 두되, 관직의 경중을 참작하고 사람의 현부(賢否)를 헤아려 한 관직을 제수하여, 반드시 그 직임을 다하도록 하였는데, 지금은 사람을 위하여 관직을 가려서, 처음에는 핑계하기를 ‘아무 관직이 낮으니 어찌 이루 다 가릴 수 있느냐.’ 하니, 임관되면 상례에 따라 차차 올라가게 되어, 서울이나 외방(外方)에 널려 있는 자가 모두 전에 가려서 제수하지 않은 사람이니, 어려운 소임을 가려서 맡길 때에 미쳐서는 또한 적격자가 없다고 하니 되겠습니까? 지식과 재능이 한 시대에 쓸 만한 사람이 있어도 스스로 나아갈 길이 없어 집안에서 늙어 죽는 사람이 많습니다.
지난번에 조신(朝臣)들로 하여금 각기 아는 사람들을 추천하여 전조(銓曹)에 돌리도록 하였는데, 한 경(卿)이 집정(執政) 중에 겨우 한두 사람을 의망(擬望)하여 그 책임만 미봉했고, 그 나머지는 모두 소위 자제(子弟)의 유(類)였기 때문에, 가는 곳마다 직무(職務)는 게을리하고 한갓 자기의 이익만 일삼으니, 이는 사람 쓰는 실지가 없는 것입니다. 백성의 기쁨과 슬픔이 수령(守令)에게 달린 것인데, 명색이 재간 있다는 자는 거개 번잡하여 마음대로 탐오(貪汚)하고 잔학한 짓을 하며, 더러 마음이 안정한 사람이 있으나 일을 처리하기에는 부족하므로 아전들이 연줄삼아 간계를 부리게 되니, 백성들이 그 피해를 입음이 한결같습니다.
경비(經費)와 공상(貢上)은 그 수량이 일정한데, 이를 빙자하고 징수하여 자기의 차지로 하고, 더러는 권세 있는 사람에게 아첨하여 섬기느라 낭비가 매우 많은데, 무엇이나 백성에게서 나오지 않는 것이 있겠습니까? 체임(遞任)될 때에 이르러서는 해유(解由)에 방해될까 두려워하여, 곡물(穀物) 수량을 허위로 불려 문서에 기록하되 민간에 나누어 준 것처럼 하는데, 다음에 온 사람이 즉시 받아들이되 그 수량이 넘게 하니, 이는 백성을 돌보는 실지가 없는 것입니다.
형옥(刑獄)을 설치함은, 옛사람들이 어찌 시행하여 쓰기에 즐거워서였겠습니까! 하늘이 죄 있는 사람을 처벌하는 것이어서 부득이한 것이니, 진실로 가엾게 여길 것이지 좋아할 것은 없습니다. 지금의 옥사(獄事) 결단하는 사람들은 간교한 지혜를 과시하며, 총명하다고 여기고, 남의 말에 의혹되어 경중을 정하며, 그 실정을 다 밝히지 못하고 한결같이 위엄으로 두려워하게 하고, 그 동기는 구명(究明)하지 않고 한결같이 법으로만 다스리되 편리한 율문(律文)으로 자신만 도모하는 계책을 합니다. 이같이 공평하게 되지 못하는 일이 많고, 또한 분간하여 가리기에 어두워 무고한 사람을 잡아들이는 일이 많으며, 삼목(三木)496) 으로 구금하여 시일을 끌며 지체하니, 그 원망이 극도에 달합니다.
형벌을 관대히 하라[恤刑]는 분부가 한 번이라도 내리게 되면, 형벌을 관대히 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죄를 관대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내보내기만 하면 된다고 여겨 더러는 죄 있는 사람도 요행히 면하게 하니, 또한 전도(顚倒)된 일이 아니겠습니까? 사형에 있어서는 자세히 복심(覆審)하여 죄를 조사해야 하는데, 정부가 태만하여 살피지 아니하고 심상하게 내 버려 두어 세월만 가게 하므로 옥중(獄中)에서 늙게 하는 폐단이 이미 오래되었으며, 태연히 괴이하게 여기지 않으니, 이는 형벌을 관대히 하는 실지가 없는 것입니다.
고적(考績)하는 법은 그 유래가 오래인데, 여러 관원들로 하여금 각기 그 직(職)을 삼가게 하려면 이것이 아니고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나라의 한 해에 두 번 고적하는 법이 그 취지는 아름답습니다마는 전최(殿最)의 권한을 잡는 사람들이 거개는 모두 공정하지도 못하고 분명하지도 못하여, 그 현명하고 우매함을 분별하거나 그 근실하고 태만함을 고찰함도 없이, 으레 상등의 고적으로 하고, 그 중에 더러 중이나 하로 매겨진 자도 반드시 우매하거나 태만해서가 아니라 더러는 불행한 허물에 따라 된 것입니다. 이러므로 모든 관원들이 그 직사(職事)에는 부지런하지 않고 한갓 공름(公稟)만 허비하며, 수령들이 백성의 고통은 돌보지 아니하고 자기 욕심 채우기만 힘쓰게 되니, 출척(黜陟)하는 효과가 과연 어디에 있습니까? 이는 전최를 성실하게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역경(易經)》에 ‘선갑삼일 후갑삼일’(先甲三日後甲三日)497) 이라 하였는데, 무릇 일을 도모하고 계책을 헤아리려면 반드시 시작을 깊이 연구하고 결과를 잘 알아서 해야 오래 갈 수 있고 폐단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건의(建議)하는 사람들은 목전의 사태만 보고 원대한 계책은 생각하지 않으므로, 그 시행하게 되는 일이 사리에 합당하지 못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복종되지 아니하여 떠들썩하게 비방합니다. 이러므로 아침에 영을 내렸다가 저녁에 번복하고, 어제 법을 세웠다가 오늘 폐지하게 되는데, 요사이 마천령(磨天嶺)에 관(關)을 설치하려는 것과, 동해(東海)로 쌀을 전운(轉運)하려 한 것 같은 일들도 그 종말을 헤아리지 않고 경솔하게 한 일입니다. 속담(俗談)에 ‘조선 법은 사흘이면 폐지된다.’고 하는데, 이 말이 이언(俚言)이기는 하지만 또한 족히 나라의 법령이 시끄럽게 고쳐짐을 나타낸 것이며, 이는 호령(號令)이 한결같지 못하여 실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신 등이 또한 듣건대, 대신은 임금의 팔다리요, 대간(臺諫)은 임금의 이목(耳目)이라 합니다. 어찌 이목이 그 보고 듣는 임무를 맡아 하지 않고서 팔다리가 쓰일 수 있겠습니까! 대신이 대간에게 마땅히 그 곧은 기운과 정도(正道)를 배양해 주어, 비록 위태한 말과 곧은 논의로 그때의 정사를 비방하고 자기의 과실을 배척하더라도, 마땅히 장로(長老)가 어린애를 보호하듯이 하여 배우는 말이 잘 나오고 좋아하기를 끊임 없도록 한 뒤에야, 일체가 되어 서로 의뢰하는 의의가 있게 되고, 임금이 간언을 따르는 미덕을 이룰 수 있는 것인데, 지금은 대간이 한 번이라도 조정의 기휘(忌諱)를 범하게 되면, 떼 지어 괴이하게 여기고 입을 모아 나무라며, 노기(怒氣)와 시기가 쌓이니, 어찌 때가 되면 터지지 않으리라고 보증하겠습니까? 여기에 사림(士林)의 화가 숨어 있고 국가의 위란(危亂)이 관계됩니다.
폐조(廢朝)가 아직 혼란하기 전에, 재상(宰相)이 대간을 나쁘게 말하여 임금의 노여움을 격동시켜서 참혹한 화를 일으켰는데, 자신도 화를 면하지 못하였습니다. 앞 수레가 이미 빠졌으니, 반드시 먼 일을 인용할 것도 없습니다. 지금 이 지경에는 이르지 않았으나, 국사의 가부를 논할 때마다 어그러지기만 하고 서로 타협하는 뜻이 없으니, 이는 조정이 서로 화목하는 실지가 없는 것입니다.
아아! 그린 용(龍)은 비가 오게 할 수 없고, 그림의 떡은 요기(療飢)할 수 없는 것이니, 한갓 그 형식만 있고 그 실지가 없으면, 나랏일이 날로 글러져 어떻게 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공도(公道)를 밝혀서 재질을 헤아려 벼슬을 제수(除授)함은 사람을 쓰는 실지요, 순리(循吏)498) 를 가려 뽑아 곤궁한 사람을 사랑함은 휼민(恤民)하는 실지요, 현량(賢良)한 사람을 가려 옥사(獄事)를 맡겨서 경중을 알맞게 함은 휼형(恤刑)하는 실지요, 공로를 고찰하고 출척(黜陟)을 분명하게 하여 백공(百工)을 잘 다스림은 전최(殿最)의 실지요, 일을 함에 처음을 잘 도모하여 시행하며 번복하지 않아 믿음성이 한결같이 함은 정령(政令)을 시행하는 실지요, 옳고 그름을 서로 논쟁하고, 가부(可否)를 도와 성취하여 〈군신간에〉 다같이 경외(敬畏)하고 합심하여 공경(恭敬)함은 서로 화목하는 실지입니다.
앞에 나열한 실(實)하지 못한 병폐의 깊은 뿌리와 굳은 꼭지가 이미 오랜 풍습이 되어, 정령으로도 고칠 수 없고 형벌로도 금할 수 없게 되어, 그 형세가 강하(江河)가 터진 것 같아 만회할 수가 없게 되었으니, 임금과 대신들이 서로 닦으며 몸소 실천하여, 실지로써 개정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방지하겠습니까? 삼가 살피건대, 전하께서 즉위하신 이래로 언로(言路)를 넓게 여셨으나, 대간(臺諫)이 진언(進言)한 것을 반드시 수십 일을 논집(論執)하여야만 윤허를 얻되 그 윤허한 것도 심상하고 세쇄한 일뿐이요, 큰 경륜(經綸)과 쌓인 폐단에 있어서는 막연하게 굳이 거절하시면서 더러는 뇌정(雷霆) 같은 위엄을 내리어 사기(士氣)를 저지(沮止)하시니, 남을 따르고 선을 하는 실지가 지극하지 못한 바가 있는 것입니다.
날마다 경연(經筵)에 납시고 밤에도 소대(召對)하시어 성학(聖學)이 이미 고명(高明)해지셨으나, 그 사이에 어찌 한 마디 말이라도 의심스러운 것이 없었겠으며 한 가지 일이라도 강론해야 할 것이 없었겠습니까마는, 일찍이 의심을 내며 묻고 논란하여 깊이 의리를 탐구하지 않으시니, 그 마음으로 체득한, 정밀하고 전일한 실지가 지극하지 못한 바가 있는 것입니다.
대신들이 계옥(啓沃)하기를 자신의 책임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국가 일을 자신의 근심으로 여기지 아니하여, 오래 된 폐습을 대단찮은 일같이 보아 한갓 말단의 일에만 구구하고 기틀을 바꾸려는 데는 뜻이 없으니, 임금을 보필(輔弼)하고 나라를 다스리는 실지를 궐하고 있습니다. 이러고서 정사가 바로잡히기를 바란다면 이는 마치 판자를 아교(阿膠)로 붙여 배를 만들고, 썩은 새끼로 밧줄을 만들어 허수아비를 시켜 배를 부리게 하는 것과 같은 일이니, 그러고도 어떻게 물 건너기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 깊이 생각하시고 살펴서 받아들여 간언(諫言)을 따르기를 물 흐르듯이 하시며, 총명과 지혜를 천근(淺近)한 옛 예(例) 속에서만 허비하지 말고 정신과 심술(心術)을 항상 풍교(風敎)의 근본을 세우기에 두시며, 임금이 행할 실지를 체득하고 힘써 실행하는 공을 이루시며, 성현의 말씀을 익혀서 모든 이치의 정당한 데를 구명(究明)하고 고금의 사변(事變)을 살펴서 득실의 계책을 궁극히 하시어, 반드시 성상께서 몸소 실천하여 사위(私僞)의 생각이 싹틀 틈이 없고, 화순한 아름다움이 속에 쌓여서, 발로되어 천만 가지 일에 응하게 되면, 실(實)하지 않은 것이 없을 것입니다. 대신들 또한 반드시 각자 스스로 분발하여 서로들 힘쓰고 권면하여 마음을 다해 보도(輔導)하기를 저절로 말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대저 이렇게 되면, 세도의 만회와 풍수의 변혁을 날을 꼽아 기대할 수 있고, 전일의 이른바 허위의 폐단은 제거할 것도 없고, 음양(陰陽)의 조화와 만물의 성취가 여기에서 나오게 될 것입니다.
옛 제왕(帝王)들이 천재(天災)를 만나면 두려워하며, 변하여 상서가 되게 한 이가 하나만이 아닌데, 상(商)나라 중종(中宗)은 상곡(桑穀)의 재변499) 이 있자 능히 무함(巫咸)의 말을 받아들여 감히 방탕하거나 안일한 짓을 하지 않으므로써 상나라의 도(道)가 다시 일어나게 되었으며, 고종(高宗)은 꿩이 우는[雊雉] 변500) 이 있자 조기(祖己)의 말을 받아들여 능히 정사를 바로잡음으로써 나라가 편안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전하께서 이 두어 임금들이 경계하고 두려워한 실지를 본받아 밤낮으로 조심하고 두려워하여 안일할 겨를이 없게 하신다면, 어찌 하늘이 이 두어 임금들에게 보인 것을 성상께 보이지 않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유의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지금 상소의 뜻을 보건대, 위아래 사람들의 과실을 갖추 진술함이, 참으로 지금의 병폐에 맞으니, 내가 매우 아름답게 받아 들이노라."
하였다.
- [註 495] 항양(亢陽) : 가뭄.
- [註 496] 삼목(三木) : 옛날의 형구. 손과 발에 채우는 틀·수갑·족쇄 따위.
- [註 497] ‘선갑삼일 후갑삼일’(先甲三日後甲三日) : 무슨 일이든 미리 주의를 깊이 해서 과오가 없도록 하는 뜻으로 쓰이는 말. 《역경(易經)》 고괘(蠱卦)에 "갑(甲)은 곧 법령을 뜻하는데, 법을 제정하여 반포하기 3일 전에 백성에게 은근히 알려주고, 반포한 3일 뒤에 분명하게 말해 준다." 하였다.
- [註 498] 순리(循吏) : 법을 잘 지키는 성실한 관원.
- [註 499] 상곡(桑穀)의 재변 : 중국 상대(商代) 태무(太戊) 때에, 나무 두 그루가 뜰에 돋아나 하루 사이에 두 손아귀에 차도록 자라므로, 태무가 두렵게 여겨 신하 이척(伊陟)의 말을 듣고 덕을 닦으니 두 나무가 한꺼번에 말라 죽었다는 고사. 이때 무함은 왕실을 잘 다스려 온 나라의 중흥을 이룩하게 했다.《사기(史記)》 은기(殷紀).
- [註 500] 꿩이 우는[雊雉] 변 : 상대(商代) 고종(高宗) 때에 제사를 지내려 하는데, 꿩이 솥귀에 앉아 울므로 상서롭지 못하게 여겨, 신하 조기(祖己)가 고종에게 간하여 덕을 닦게 하였더니, 이로 인하여 상나라가 중흥하였다는 고사. 《서경(書經)》 고종융일(高宗肜日).
원문
○大司憲李自健等上疏曰:
伏以天地之所以生物, 四時之所以成歲, 唯其實而已。 故人君繼天而出治也, 能用其實, 則庶職惟熙, 萬民咸和, 而天地之和應之, 不能用其實, 則百爲不成, 動致怨咨, 天地之乖應之, 此必然之理也。 恭惟殿下, 銳意圖治, 凡有疵政, 一切去之, 惟務保合大和, 可謂能用其實矣。 然而六年之間, 災變屢作, 星辰晝見, 桃李冬華, 冬暖如春, 雷發不時, 凶歉相連。 今年尤甚, 亢陽已極, 川澤俱渴, 雖《春秋》二百年所書, 何以加此? 臣等不識天將仁愛, 而啓聖心耶? 究厥所召, 非臣等愚昧所可的指。 然竊觀當今之事, 徒有其物而無其實, 似有其始而無其終, 眞僞相混, 名實乖戾, 朝政失當, 民生困苦, 戾氣之應, 豈無所自而然也? 古者爲官而擇人, 酌官之輕重, 量人之賢否, 授一官之職, 必盡一官之任, 今也爲人而擇官, 始則諉之曰: "某官卑, 安可盡擇乎?" 循常漸陞, 布列中外者, 皆前日不擇之人也。 及其選授盤錯之任, 又以爲無其人可乎? 雖有知識才能之爲一世用, 而無路自進, 老死牖下者多矣。 頃者令朝臣, 各擧所知, 付之銓曹, 而一卿執政之間, 僅擬其一二, 以塞其責, 其餘皆所謂子弟之類也。 故所至曠職, 徒事利己, 此用人之無其實也。 生民休戚, 係於守令, 而名爲幹能者, 率爲煩劇, 肆行貪殘, 或有恬靜者, 短於治事, 吏緣爲奸, 民受其害則一也。 經費上貢, 其數有常, 而憑此徵歛, 以爲己用, 或媚事權勢, 橫費甚濫, 孰有不出於民者乎? 至於遞任之時, 恐妨解由, 虛張穀數, 錄諸券冊, 以爲散在民間, 而後來者輒徵之, 以贍其數, 是則恤民之無其實也。 刑獄之設, 古人豈樂於施用哉? 天討有罪, 不得不已, 固當哀矜而勿喜也。 今之折獄者, 矜智巧以爲聰明, 惑人言以爲輕重, 不盡其情, 而一以威怵之, 不原其初, 而一以法繩之, 以爲便文自營之計, 如是而不得其平者多矣。 抑有暗於辨別, 多逮無辜, 拘攣三木, 淹延留滯, 其怨極矣。 恤刑之敎一下, 則不知所恤爲何事。 以爲寬人之罪, 而出之斯可矣, 或使有罪者幸免, 不亦顚乎? 至於死刑, 詳覆勘過, 政府慢不之察, 委諸尋常, 積有歲月, 使老於獄中。 流弊已久, 恬不爲怪, 此恤刑之無其實也。 考績之法, 其來尙矣。 欲使庶官, 各敬其職, 捨是無以爲也。 我朝一年再考之法, 其意美矣。 然秉殿最之權者, 類皆不公不明, 無有辨其賢愚, 考其勤慢, 例爲上考, 其或置諸中下者, 未必愚慢, 而或出於不幸之辜。 是以百僚不勤乃事, 而徒費公廩, 守令不恤民隱, 而務成己欲, 黜陟之效, 果安在哉? 此則殿最之無其實也。 《易》曰: "先甲三日, 後甲三日。" 凡圖事揆策, 必須原始要終, 可以恒久而無弊也。 今之建議者, 只見目前之事, 不爲經遠之慮, 其所施爲, 不合事宜, 人心不服, 譁然非之。 是以朝令而夕反, 昨建而今廢。 如近日磨天設關, 東海運米等事, 此亦不要其終而輕擧也。 諺曰: "朝鮮之法, 三日而止。" 此言雖俚, 亦足以見國法之紛更也。 是則號令之不一而無其實也。 臣等又聞大臣, 人君之股肱, 臺諫, 人君之耳目。 安有耳目不司其視聽, 而股肱得以施用乎? 大臣於臺諫, 當養其直氣, 培其正道。 雖危言讜論, 謗其時政, 斥其己過, 宜如長老之保嬰兒, 學語善發, 喜好無已, 然後庶可以得一體相須之義, 成人主從諫之美矣。 今臺諫一犯朝廷之所忌, 則群怪聚罵, 畜怒積猜, 安保其不待時而發耶? 此士林之所隱禍, 而邦家之危亂係焉。 當廢朝未昏亂之時, 宰相訟臺諫, 以激主怒, 以致慘酷之禍, 而身亦不免, 前車已陷, 不必遠引也。 今雖不至於此, 其於國事可否之際, 便有乖隔, 而無相濟之意。 是則朝廷無相和之實也。 嗚呼! 畫龍不足以致雨, 畫餠不足以療飢, 徒有其名而無其實, 則國事日非, 將不可爲矣。 昭明公道, 量才授官, 用人之實也; 遴選循吏, 子惠困窮, 恤民之實也; 擇惟良審折獄, 輕重得當, 恤刑之實也; 考功能明黜陟百工允, 釐殿最之實也; 作事謀始, 惟行不反, 信如四時, 施令之實也; 是非相爭, 可否相濟, 同寅協恭, 相和之實也。 而前所陳列不實之病, 深根固蔕, 已爲積習, 政令所不能改, 刑罰所不能禁, 其勢如江河之潰, 而莫之能回。 若非人主、大臣, 交修躬率, 以實改紀, 則其何以堤防之乎? 伏見殿下, 自卽位以來, 廣開言路, 而臺諫進言, 必連旬論執, 乃蒙允可, 而其所允可, 特尋常細碎之事耳。 其於大經積弊, 邈然固拒, 或示雷霆之威, 以沮士氣, 其取人爲善之實, 有未至也。 日御經筵, 夜又召對, 聖學雖已高明。 然其間豈無一言之可疑, 一事之可講? 而未嘗生疑問難, 深究義理, 其內得精專之實, 有未至也。 大臣不以啓沃爲己任, 不以國家爲巳憂, 積習之弊, 視爲餘事, 徒區區於事爲之末, 無意於轉移之機, 輔君醫國之實, 蓋闕如也。 如是而欲求其治, 正如膠板爲舟, 朽索爲維, 使偶人駕之, 尙何望濟川之利乎? 伏願殿下, 深惟察納, 從諫如流, 聰明智慮, 勿用於淺近舊例之間, 精神心術, 恒存於扶植風敎之源, 體乾健之實, 致力行之功, 味聖賢之言, 以究萬理之當, 察古今之變, 以極得失之策, 必反諸聖躬以踐履之。 私僞之念, 無隙可萌, 和順之美, 充積於中, 發而爲萬變之應, 豈無不實者乎? 大臣亦必各自矜奮, 爭相勉勵, 盡心輔導, 不能自已。 夫如是, 則挽回世道, 丕變風俗, 指日可待。 前所謂虛僞之弊者, 不足祛也, 陰陽之和, 萬物之遂, 於是乎在矣。 古之帝王遇災而懼, 能變爲祥者非一。 商中宗有桑穀之異, 而能用巫咸之言, 不敢荒寧, 而商道復興, 高宗有雊雉之異, 而能用祖己之言, 克正厥事, 邦用嘉靖。 今殿下法數君戒懼之實, 夙夜兢惕, 不遑寧處, 則安知上天, 不以啓數君者, 啓聖上乎? 伏惟殿下留神焉。
傳曰: "今觀疏意, 備陳上下之過失, 正中時病。 予甚嘉納。"
원본
중종 7년 (1512) 11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