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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 15권, 중종 7년 1월 15일 辛酉 8번째기사 1512년 명 정덕(正德) 7년

평안도 절도사 이장곤이 변방 수비에 대해 포괄적으로 건의 요청하다

평안도 절도사(平安道節度使) 이장곤(李長坤)이 치계(馳啓)한 비변 사의(備邊事宜)026) 에,

"신이 삼가 내리신 유서(諭書)를 보건대, ‘산동(山東)027) 에 사단이 생겼으니 창졸의 변란을 미리 염려하라.’ 하셨습니다. 신이 그윽이 생각하건대, 중국[中原]이 편안치 못하여 산동에 도적이 일어났으나, 산동은 우리 국경과 거리가 매우 가까우므로 창졸의 변을 조석에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고려 말엽에 거란[契丹]홍군(紅軍)028) 의 변 때도 먼저 소식을 통하고 미리 온다는 소문을 놓지 않았으므로 편안하게 여겨 경계하지 않은 것이 마치 오늘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뭇 도적이 졸지에 들이닥치자 창황 망조(蒼皇罔措)하여, 조련하지 않은 군사와 완비하지 못한 군기(軍器)로 엄청난 기세의 도적을 당하게 되어, 적의 칼날이 지향하는 곳에 새가 달아나고 짐승이 도망치듯 하여 마침내 예측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예로부터 중원에 사변이 있으면 우리 나라가 병화(兵禍)를 입지 않는 때가 없었는데, 듣건대 ‘산동의 온 지역이 도적이 되었으므로 대병(大兵)이 사방에서 친다.’고 하니, 이 말이 사실이라면, 극도로 궁박(窮迫)해질수록 도적은 반드시 구름이 몰리고 물길이 터지듯이 우리의 지경으로 뛰어들기를 거란홍군의 난폭한 것과 같이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외로운 성(城)의 잔약한 군사로써 어찌 죽기로 날뛰는 도적의 돌격(突擊)하는 칼날을 당해내겠습니까.

성과 참호(塹壕)를 수축하고 병기와 수레는 정비하는 일들을 다시 거듭 밝히되, 의주(義州)에서는 항시 적이 오는 것같이 하여 불의의 일에 대비하도록 하고, 또한 강변의 군사와 모든 진(鎭)의 장수와 사졸들에게는 갑주(甲胄)를 갖추고 전투에 나갈 수 있도록 하여 언제나 일정한 명령을 두고 군기에 정한 수를 두면, 적을 대항하는 일에 익숙하여 풍문만 듣고 놀라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리 위·대(衛隊)를 만들어 장차 선봉(先鋒)이 된다는 것을 삼령 오신(三令五申)029) 하였다가, 만약 의주 등지에 사변이 생긴 것을 듣게 되면 각기 노약(老弱)들로 하여금 성을 지키게 하고 정병(精兵)만 거느리고 달려가 구원하도록 해야 합니다.

내지(內地)의 수령들은 무사한 데에 편안히 여겨, 거개 모두 활쏘고 말달리기를 일삼지 않고 군사를 단속도 하지 않아, 고식적인 생각만 가져 정신이 해이해졌으므로 도무지 쓸만한 자가 없어서, 창졸의 사변에 투입한다면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역시 모두 미리 나누어 위·대(衛隊)의 장수를 삼아 각기 그 군졸을 거느리도록 하되, 어느 주(州)와 부(府)의 수령은 어느 위의 장수가 되고, 어느 군(郡)과 현(縣)의 수령은 어느 대의 장수가 되게 하여, 대소(大小)가 서로 통합해서 군마(軍馬)를 정비하고 군기(軍器)를 예리하게 하며 각기 낡고 무딘 것을 손질해서 불의의 변에 대비하게 하였다가, 만일 의주 등지에 사변이 발생했다는 것을 들으면 어느 위는 달려 가서 구원하며 어느 위는 둔치고 수비하되, 한결같이 주장(主將)의 약속만을 준행하고 어기지 못하게 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사변이 나타나지도 않았는데 먼저 스스로 소요하여 우리 군민(軍民)들을 곤란하게 해서는 안 되므로, 대비하고 있도록만 하고, 놀라 소요하지 말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가령 변고가 있게 된다면 의주의 성이나 참호는 진실로 믿을 만하지 못하고 용천군(龍川郡)의주와 거리가 60리인데, 성 터가 높고 넓으며 사방이 험악하게 막혀 한 사람이 관문(關門)을 지킨다면 만 명을 대항 할 수 있고, 안에 우물이 99개처나 있으며 또한 근원 있는 내[川]가 있어 가물더라도 마르지 아니하며, 성안이 넓고 산세가 서리어 만 명의 군사를 간직할 만하나, 다만 성이 무너진 것을 수축하지 않은 지가 오래되어, 비록 적변(賊變)이 있게 되더라도 의지하여 거점(據點)으로 삼을 수가 없습니다. 허물어진 성의 사방에 못[釘鍊]과 네모나게 다듬은 돌이 산더미 같이 쌓여 있고, 북쪽 봉우리와 서쪽 묏부리에는 옛 성이 더러 완전하여 수축하는 공력이 그다지 크지 않을 듯하므로, 올해 가을부터 본군(本郡) 군수 기준(奇浚)으로 하여금 본군의 조번(助番) 보병(步兵) 및 인리(人吏)030) 들을 시켜 다소 수축하도록 하였으나, 일이 절반도 이루워지기 전에 얼음이 얼어 역사를 정지하였습니다. 박천(博川)에서 서쪽은 농사가 잘 되어 백성들의 양식이 다소 여유가 있으니, 수량을 헤아려서 군사를 차출하되 역사를 내년 2월 그믐에 시작한다면, 한 달 안에 수축을 끝낼 수 있습니다.

만일 뭇 도적이 내달아 내지로 몰려 온다면, 대정강(大定江) 이남은 영변(寧邊)만이 험한 요충지로서 거점이 될 수 있고, 살수(薩水) 이남은 안주(安州)가 지킬 만하나 성곽(城郭)이 완전하지 못합니다. 영변은 금년 봄부터 본영(本營)의 아전과 군졸들을 역사시켜 서성(西城)을 수축하고 돌 문을 만들고 사방 성의 무너진 곳을 수축하게 하여 일이 거의 다 되었고, 안주의 성은 무너진 데가 절반이 넘어 초동(樵童)과 목수(牧竪)의 길이 되었으니, 이는 옛날 수(隋)나라의 백만 군사도 함락하지 못했던 요지건만 지금은 이렇게 되었으니, 혹시 사변이 있게 된다면 결코 지켜낼 수 없습니다. 안주 이남 및 노상(路上)의 여러 고을이 올해 농사가 비록 풍년은 아니나 또한 흉년도 아니니, 역사를 헤아려 군사를 차출하되 그 인원수를 여유 있게 하여, 역시 내년 2월에 수축을 시작하면 한 달 안에 끝낼 수 있습니다.

성곽이 완전하여진 다음에, 본도(本道) 내지의 군량을 안주영변 두 진(鎭)으로 옮겨 먹으면서 지키게 한다면, 비록 깊이 들어오는 도적이 있더라도 두 진이 서로 의지하고 강을 사이에 두고 응거하여 그 목[喉]를 누르며 제어할 수 있으니, 그 기세를 막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대개 연사가 비록 풍년이 들고 성들이 먹을 것이 유족하더라도 시키지 않고서 편안하게 하는 것이 진실로 왕정(王政)의 근본을 다지는 큰 도리인 것인데, 더구나 본도(本道)의 군인들은 한 해에 두 차례 방수(防戍)하는 괴로움이 있고, 또한 북경(北京)에 가는 사신(使臣)들이 오고가는 폐해가 있으니, 더욱 토목[土石]의 역사를 시켜서 백성의 힘을 피곤하게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러나 생각건대 불행히 홍적(紅賊)이나 거란[契丹]과 같은 사변이 있게 된다면, 오늘에 있어서 차마 백성의 힘을 손상하지 않는 것이 도리어 고식(姑息)이 되어 후회와 한탄을 한없이 남기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 수축하는 일을 늦추어서는 안 될 듯합니다.

옛말에 ‘비록 금성 탕지(金城湯池)031) 가 있더라도 곡식이 없으면 지키지 못한다.’고 하였는데, 도내 각 고을의 군자(軍資)가 부족하여, 비록 해마다 전세(田稅)를 거두어 보충하나 북경에 가는 사신과 수비하는 장수와 사졸들, 만포진(滿浦鎭)에 귀순(歸順)한 야인(野人)에게 드는 경비가 또한 많아, 겨우 해마다 거두는 새 곡식으로 이어가고, 구곡(舊穀)은 묵을대로 묵어 쌓여서 썩는데도 수령들이 인계 인수할 때에 거게 모두 ‘그 전에 번고(反庫)했고, 어사(御史)가 봉인(封印)했다.’ 하여 열어 보고 인수 인계하지 않으므로, 문서[文籍]에 기록된 것은 비록 천 석 만 석이 되나 모두 진토(塵土)가 되었으니, 창고에 가득한들 어떻게 시급한 때 쓰겠습니까.

황해도는 지경이 본도와 연접했고, 충청도는 비록 머나 수로(水路)로 통할 수 있으니, 만일 두 도의 곡식을 조운해 옮겨다가 의주·용천(龍川)·영변·안주 등의 진(鎭)에 나누어 두고 불의의 사변에 대비한다면, 창졸 간에 사변이 생기더라도 거의 굶주리게 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신의 생각한 바가 이와 같습니다."

하였는데, 대신들에게 수의(收議)하도록 명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8책 15권 5장 A면【국편영인본】 14책 552면
  • 【분류】
    군사-군정(軍政) / 군사-병참(兵站) / 군사-관방(關防) / 외교-명(明) / 재정-전세(田稅) / 교통-수운(水運)

  • [註 026]
    비변 사의(備邊事宜) : 변방 수비의 당면한 일.
  • [註 027]
    산동(山東) : 중국 동부의 황해 연안에 있는 한 성(省).
  • [註 028]
    홍군(紅軍) : 홍건적(紅巾賊).
  • [註 029]
    삼령 오신(三令五申) : 되풀이하여 자세히 명령하는 것.
  • [註 030]
    인리(人吏) : 아전.
  • [註 031]
    금성 탕지(金城湯池) : 아주 튼튼하고 잘된 성지(城地).

平安道節度使李長坤, 馳啓備邊事宜曰:

臣伏覩內降諭書, 山東生梗。 倉卒之變, 在所豫慮。 臣竊料中原不靖, 山東盜起, 山東之地, 去我境甚近, 倉卒之變, 朝夕難料。 契丹, 紅軍之變, 非有先通聲息, 豫聞其來, 其晏然無警, 正如今日, 而群盜卒至, 蒼皇罔措, 以不習之兵, 不備之械, 當滔天之賊。 兵鋒所指, 禽奔獸遁, 終至於不測。 自古中原有事, 則我國亦莫不受兵。 伏聞山東, 擧境爲盜, 大兵今方四合而攻之。 斯言若信, 則窮迫之極, 勢必雲奔橫潰, 闌入我境, 如契丹紅軍之暴矣。 然則孤城殘卒, 安能當死寇衝突之鋒乎? 修城坎整兵車等事, 更加申明, 令義州常如敵至, 以備不虞。 且以江邊軍士及諸鎭將士, 帶甲從戎, 自有常令, 器械有數。 且慣於賊, 無望風之驚, 故豫分爲衛隊, 將爲先鋒, 三令五申。 若聞義州等處有變, 各使其老弱守城, 率精兵馳救之。 內地守令, 狃於無事, 率皆不事弓馬, 不撿軍士, 因循解弛, 頓不可用, 投之蒼卒, 罔知攸措。 故亦皆豫分爲衛隊將, 各領其軍卒, 某州府爲某衛將, 某郡縣爲某隊將, 使大小相統, 整軍馬利器械。 各礪朽鈍, 以備不虞, 若聞義州等處有變, 某衛馳救, 某衛屯守, 一遵主將約束, 而使不得先後。 然事變未形, 不可先自騷動, 以困我軍民, 故但令有備, 勿令驚擾。 設有變故, 義州城池, 固不可恃。 龍川郡義州六十里, 城基高廣, 險阻四塞, 一夫當關, 可敵萬人。 中有九十九井, 且有源川, 雖旱不渴, 恢宏盤屈, 可藏萬兵。 第以城頹不修者已久, 雖有賊變, 不可依據。 毁城四傍, 釘錬方石, 積如丘山, 北峯西岳, 舊城或完。 修築之功, 不甚大矣, 故自今年秋, 令本郡郡守奇浚, 役本郡助番步兵及人吏, 稍稍修築, 事未半就, 而氷凍停役。 博川以西, 農事登稔, 民食稍裕, 量數出軍, 始役於來年二月之晦, 則一月之內, 可能畢築。 萬一群盜奔突, 長驅內地, 則大定江以南, 寧邊可據, 而有重阻之險, 薩水以南, 安州可守, 而城郭不完。 寧邊則自今年春, 役本營吏卒, 築西城, 造石門, 修築其四城頹處, 事幾就矣。 安州之城, 頹毁過半, 樵牧成逕。 是古之百萬兵, 不能拔之險, 而今則如是, 如或有變, 決不可守。 安州以南及路上諸邑, 今年農事, 雖不豐稔, 亦不凶歉。 量役出軍, 寬其夫數, 亦於來年二月始築, 則一月之內, 可能畢矣。 城郭旣完, 移本道內地軍糧於兩鎭, 使有食可守, 則雖有深入之賊, 兩鎭相倚, 隔江雄據, 扼其喉而控制之, 則可能沮遏其勢矣。 大抵歲雖豐稔, 民雖裕食, 勿役而安之, 是誠王政固本之大道。 況本道軍民, 有一年再戌之苦, 且有赴京使臣往來之弊, 尤不當赴土石之役, 以困民力。 第念不幸, 而有紅巾契丹之變, 則今日所以不忍傷民之力者, 反爲姑息, 而貽悔恨於無窮。 然則築城之擧, 似不可緩。 古云: ‘雖有金城湯(他)〔池〕 , 無粟則不能守。’ 道內各官, 軍資不敷, 雖歲收田稅以補之, 其於赴京使臣防禦將士, 滿浦鎭歸順野人, 其經費亦多, 僅以歲收新穀而繼供之。 其舊穀則陳陳積腐, 守令交承之際, 率皆以昔年反庫御史之封, 而不開閉授受。 文籍所錄, 雖至千萬, 而盡爲塵土, 盈倉滿庫, 何用於緩急哉? 黃海道境連本道, 忠淸道雖遠, 而水路可通, 若漕轉兩道穀, 分置義州龍川寧邊安州等鎭, 以備不虞, 則倉卒有變, 庶幾無告饑之變。 臣之所料如此。

命收議于大臣。


  • 【태백산사고본】 8책 15권 5장 A면【국편영인본】 14책 552면
  • 【분류】
    군사-군정(軍政) / 군사-병참(兵站) / 군사-관방(關防) / 외교-명(明) / 재정-전세(田稅) / 교통-수운(水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