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실록13권, 중종 6년 3월 5일 乙卯 2/3 기사 / 1511년 명 정덕(正德) 6년
경상좌도 병마 절도사 황형에게 유시하다
국역
상이 명하여 경상좌도 병마 절도사(慶尙左道兵馬節度使) 황형에게 유시하게 하였는데, 그 글은 이러하였다.
"전권으로 위임하여 성공하기를 권하는 것은 임금의 일이요, 법도에 어긋나지 않고 힘을 다하여 보답하는 것은 신하의 직분이다. 전권으로 맡기지 아니하고 책임 지우기를 중히 하면 공을 이루지 못하고 일만 실패하게 될 것이니, 이것은 임금의 허물이거니와, 위임하기를 중히 하고 맡기기를 전권으로 하는데도 감히 법도에 어긋나거나 국법을 범하여 그 직무를 실패하게 된다면 견책(譴責)하는 법이 과연 어디로 돌아갈 것인가.
이즈음 국가의 액운을 만나 남방이 편안하지 못하다. 조그만 왜구(倭寇)가 난육(卵育)한 은혜를 생각하지 않고, 감히 봉채(蜂蠆)088) 의 독을 뿜어, 우리 변진(邊鎭)을 도함(屠陷)하고 우리 장병을 살해하며, 방자하게 날뛰어 그칠 줄을 모른다. 영남(嶺南)의 온 백성들이 소연히 그 화를 입어, 백여 년 태평 부서(富庶)089) 한 지역이 한 번 곤하여 소식(蘇息)하지 못하게 되었다. 말이 여기에 미치니 가슴이 아프고 쓰려, 잠을 못 이루고 일어나며 밥상을 물리고 탄식한다. 그때 조정 의논이 다함께 경에게 큰 일을 맡길 만하다 하여, 드디어 퇴곡의 부탁[推轂之寄]090) 을 위임하였더니, 과연 능히 적을 치는 데 힘을 써서 요사스러운 기운을 소탕하였다. 그 아름다운 공적을 가상히 여겨 곧 경에게 좌도 절도사를 제수하니, 이것은 경이 상처 입은 군졸을 어루만져 달래고, 지친 백성을 은휼(隱恤)하여 다소나마 소복할 수 있게 하려 함이었다. 먼저 그 근본을 굳건히 하고, 다음 그 제방을 완전히 하여 도적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편안하고 여유있는 형세로 곤궁한 적을 대적한다면, 저 잔얼(孱孼)이 어찌 그 침독(侵毒)의 해를 드러낼 수 있을 것이며 나의 남쪽을 염려하는 근심이 어찌 좀 풀리지 않겠는가.
그런데 지금 물의가 비등하여 여러 사람이 모두 경을 나무라고, 일을 말하는 관원이 논집하기를 더욱 확고히 하며, 경의 허물을 말하는 것이 하나 둘 아니나, 그 중에서도 중한 것을 말하면,
1. 갑옷에 칠하는 옻[漆]을 민력으로 내게 하면 준비하기가 매우 어려운데, 경이 각박한 법으로 배나 거두어서 민생을 곤폐하게 한다.
2. 밀봉해서 보고하라는 영[密封之令]을 창안하여 사졸로 하여금 각기 무재(武才) 있는 사람을 천거하게 하고 문득 여러 고을에서 징집하므로, 사람들이 혐의와 원한이 있으면 모두 무함하여 천거하니, 징집 문서를 가진 자가 길을 메운다. 그리하여 결국은 뇌물이 있으면 재능이 있더라도 반드시 퇴하고, 뇌물이 없으면 재능이 없어도 도리어 징집되어, 한 사람이 혹 수십 차씩 징집을 당하는 자도 있다. 따라서 재물이 뇌물 때문에 다할 뿐 아니라 왕래하는 중에 생업을 폐하고 때를 어기며 사람과 말이 다 함께 지쳐 흩어져 도망하는 자가 줄을 잇는다.
3. 여러 고을의 향교 유생들을 불러 모아 경서로 시험하여, 조금이라도 잘 알지 못하는 것이 있으면 ‘재주가 모자란다.’ 칭탁하고 모두 군정(軍丁)에 충당하는데, 뇌물을 쓰지 않으면 면하지 못하니, 온 도내가 떠들어 소요하고 원망하는 소리가 귀에 가득하다.
4. 거느린 사졸이 조금이라도 과오가 있으면 중한 벌을 주니, 지팡이를 가진 자가 항오(行伍) 간에 잇달아 있으므로, 적변(賊變)을 만나더라도 말을 탈 수 없어 군중으로 하여금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하여, 다들 이반(離叛)하는 마음을 품게 한다는 것 등이다.
아아! 과연 들리는 말과 같다면, 온 도내의 백성들이 도적이 오기 전에 먼저 도탄에 빠진 것이니, 그 책벌(責罰)의 돌아갈 것을 장차 누가 맡을 것인가. 아, 경이 과연 그런 일이 있는가? 대저 장수가 되는 도리는 폭력과 위맹(威猛)에 있지 않고 어루만져 그 은혜를 다함에 있는 것이다. 항상 사졸과 더불어 그 고락을 함께 하여서 사람마다 윗사람을 친히 하고, 관장을 위하여 죽을 마음을 가지게 한 뒤라야, 위급한 곳에 투입하여 그 사력(死力)을 다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혹 횡포하며 은혜가 없거나 탐람하여 법을 더럽히면 패하지 않는 자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베어 벌주는 형벌이 위에서 있지 않으면 반란하는 화가 반드시 아래에서 있게 되는 것이다. 장비(張飛)는 한(漢)나라의 명장이지만 사졸을 무휼(撫恤)하지 않다가 나중에 그 아랫사람에게 해를 당하였으며, 사만세(史萬歲)091) ·조한(曹翰)092) 은 수(隋)나라·송(宋)나라의 명장이지만, 탐람 포학의 자취가 한 번 나타나자, 공이 있다 하여 용서를 받지는 못하였다. 이것만이 아니다. 역대를 상고해 봐도, 장수가 되어 탐람 잔학하고 자패하지 않은 자가 일찍이 없었으니, 이것이 넉넉히 귀감이 될 만한 것이다.
경은 조정에 벼슬한 지 오래고 경력이 많으니, 반드시 고금 성패의 자취와 화복의 연유를 살폈을 것인데, 경이 과연 그런 일을 한 것인가? 더구나 내가 위임하기를 성의로 하고 총우(寵遇)하기를 후히 하는데, 경이 어찌 차마 시달린 백성을 거듭 곤하게 하여 나의 기대하는 마음을 저버릴 것인가.
처음 내가 경을 맡길 때에 ‘경이 전에 절도사가 되었다가 논박을 당하여 체임되었으니, 지금 다시 맡기는데도 전의 잘못을 고치지 않는다면 내가 잘못 맡긴 책임을 면하지 못하게 된다. 그렇지만 사람으로서 허물이 없을 수야 있는가. 허물이 있어도 고친다면 이것이 선이 되는 것이다.’ 하였으니, 어찌 경의 옛날의 과오가 이미 변화와 함께 사라져 버리지 않았겠는가. 그러므로 내가 전의 허물을 버리고 후의 효과를 책임지워 다시 경을 침체 중에서 발탁하여 곤외(閫外)의 중임을 맡겼는데, 경이 어찌 감격 분발하여 새 절개(節介)에 효과를 보일 것을 바라지 않고 감히 차마 그런 일을 하는가? 임금으로서는 신하에게 중한 소임을 맡겼으니, 사람들의 말이 있다 하여 갑자기 바꿀 수는 없는 일이다. 경은 나의 위임의 돈독함을 체득하여 더욱 그 직무에 충실하며, 예전 것을 고치고 새것을 도모하여 전공(前功)을 폐하는 일이 없게 하라. 만일 너그럽게 보아줌을 다행으로 여겨 전의 그름을 뉘우치지 않고, 군민을 여전히 고통스럽게 하여 도로 물의가 비등하게 된다면, 공도는 굽히기 어렵고 국법은 흔들기 어려운 일이니, 내가 비록 경에게 사정을 두려 한들 되겠는가. 경은 경계하여 스스로 슬픔을 끼치는 일이 없게 하라."
- 【태백산사고본】 7책 13권 25장 A면【국편영인본】 14책 498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사법-탄핵(彈劾) / 역사-고사(故事)
- [註 088] 봉채(蜂蠆) : 벌과 쏘는 벌레.
- [註 089] 부서(富庶) : 부유하고 번영하다.
- [註 090] 퇴곡의 부탁[推轂之寄] : 임금이 출정하는 장수에게 일을 맡기는 것. 옛날, 천자가 출정하는 장수를 전송할 때에는 몸소 장수가 탄 수레를 밀어 나가게 하면서 ‘곤외(閫外:조정 밖, 경계 밖)는 장군이 맡으라 곤내의 일은 내가 맡으리라’ 하고 전수(戰守) 대책의 전임 실행을 부탁하였다. 《한서(漢書)》 풍당전(溤唐傳).
- [註 091] 사만세(史萬歲) : 수(隋)나라의 명장.
- [註 092] 조한(曹翰) : 후주(後周)에 벼슬하다가 송나라 태조와 태종을 도와 천하 통일에 공이 많았다.
원문
○上命諭慶尙左道兵馬節度使黃衡, 其書曰:
委任之專, 而責其成功者, 人主之事也。 不愆于度, 而竭力圖報者, 臣子之職也。 任之貳而責之重, 功不足成, 而祗以敗事, 是則人主之過也。 委之之重, 任之之專, 而取或愆于度, 干于憲, 用敗厥職者, 則譴責之罰, 果何所歸? 近値邦家厄會, 南方不靖, 蕞爾倭寇, 不思卵育之恩, 敢肆蜂蠆之毒, 屠陷我邊鎭, 殺害我將士, 恣其陸梁, 罔或止遏, 嶺南一道之民, 騷然被其禍, 使百餘年昇平富庶之地, 一困而不得蘇息。 興言及此, 痛怛于中, 廢寢而起, 輟食而吁。 當時朝議, 共擧卿可任大事, 遂委推轂之寄。 果能宣力敵愾, 掃蕩妖氛。 嘉乃休績, 卽授卿爲左道節度使者, 蓋欲卿拊循瘡痍之卒, 隱恤困瘁之民, 俾得以少蘇。 先固其本根, 次完其隄防, 以待寇賊之至, 逸以當困, 樂以敵窮, 則彼孱孽, 豈得逞其侵毒之害, 而予一人南顧之憂, 豈不少(紵)〔紓〕 哉? 今者物論沸騰, 萬口咎卿, 言事之官, 論執(兪)〔愈〕 固。 數卿之咎, 不一而足, 就其重者言之。 一曰, 塗甲之漆, 出於民力, 備之甚難, 卿, 刻法倍歛, 困弊生民。 二曰, 創爲密封之令, 令士卒, 各擧有武才人, 輒徵于諸邑。 人有嫌怨, 無不誣擧, 執徵文者, 交午道路。 及其至也, 有賄則雖才必退, 無賄則無才反拘, 或有一人而累十被徵者, 非惟財困於賄賂, 往來之際, 廢業愆時, 人馬俱瘁, 散亡相續。 三曰, 徵招諸邑校生, 試以經書, 少未淹貫, 托爲才疎, 盡充軍丁。 非行賄焉, 則不得免, 闔道訩擾, 怨讟盈耳。 四曰, 所統士卒, 少有過差, 重罰, 扶杖者相望于行伍之間。 脫遇賊變, 不能任騎乘, 使軍中, 不堪其苦, 盡懷離叛之心。 嗚呼! 果若人言, 則一道之民, 不待寇賊, 先墜塗炭矣, 責罰之歸, 將誰任哉! 噫, 卿果有是事乎! 夫爲將之道, 不在暴猛, 在乎撫養之盡其恩, 常與士卒, 同其甘苦, 使人人懷親上死長之心, 然後投之緩急, 得其死力。 苟或暴而無恩, 貪以黷法, 未有不敗者, 誅罰之刑, 不在乎上, 則叛亂之禍, 必在乎下矣。 張飛, 漢之名將也, 而不恤士卒, 終爲其下所害, 史萬歲、曹翰, 隋、宋之名將也, 貪暴之迹一露, 不以有功而見貸。 非獨此也, 攷之歷代, 其爲將而貪黷殘虐者, 則未嘗不敗, 足爲昭鑑。 以卿立朝之久, 更歷之多, 必審夫古今成敗之迹, 禍福之故矣, 卿果爲是事乎? 況以予委任之誠, 寵遇之厚, 卿安忍重困憔悴之民, 以負予待之之意乎? 初予之任卿也, 謂卿前爲節度使, 被駁而遞, 今任之而不改其轍, 則予未免謬任。 雖然人豈能無過? 過而能改, 斯爲善矣。 安知卿昔日之過, 已與化俱徂乎? 故予棄前之愆, 責後之效, 復拔卿於沈滯之中, 委以閫外之重。 卿豈不感激思奮, 以自冀效於新節, 而敢忍爲此乎? 人君旣委臣以重任, 則不可以人言而遽易, 卿其體予委任之篤, 益虔乃職, 改其舊而新是圖, 以無替前功。 若夫幸其優容, 罔悔前非, 以致軍民之猶苦, 復起物論之騰沸, 則公道難屈, 邦憲難撓, 予雖欲私卿得乎? 卿其戒哉, 毋自貽慼。
- 【태백산사고본】 7책 13권 25장 A면【국편영인본】 14책 498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사법-탄핵(彈劾) / 역사-고사(故事)
중종 6년 (1511) 3월 5일
중종실록13권, 중종 6년 3월 5일 乙卯 2/3 기사 / 1511년 명 정덕(正德) 6년
경상좌도 병마 절도사 황형에게 유시하다
국역
상이 명하여 경상좌도 병마 절도사(慶尙左道兵馬節度使) 황형에게 유시하게 하였는데, 그 글은 이러하였다.
"전권으로 위임하여 성공하기를 권하는 것은 임금의 일이요, 법도에 어긋나지 않고 힘을 다하여 보답하는 것은 신하의 직분이다. 전권으로 맡기지 아니하고 책임 지우기를 중히 하면 공을 이루지 못하고 일만 실패하게 될 것이니, 이것은 임금의 허물이거니와, 위임하기를 중히 하고 맡기기를 전권으로 하는데도 감히 법도에 어긋나거나 국법을 범하여 그 직무를 실패하게 된다면 견책(譴責)하는 법이 과연 어디로 돌아갈 것인가.
이즈음 국가의 액운을 만나 남방이 편안하지 못하다. 조그만 왜구(倭寇)가 난육(卵育)한 은혜를 생각하지 않고, 감히 봉채(蜂蠆)088) 의 독을 뿜어, 우리 변진(邊鎭)을 도함(屠陷)하고 우리 장병을 살해하며, 방자하게 날뛰어 그칠 줄을 모른다. 영남(嶺南)의 온 백성들이 소연히 그 화를 입어, 백여 년 태평 부서(富庶)089) 한 지역이 한 번 곤하여 소식(蘇息)하지 못하게 되었다. 말이 여기에 미치니 가슴이 아프고 쓰려, 잠을 못 이루고 일어나며 밥상을 물리고 탄식한다. 그때 조정 의논이 다함께 경에게 큰 일을 맡길 만하다 하여, 드디어 퇴곡의 부탁[推轂之寄]090) 을 위임하였더니, 과연 능히 적을 치는 데 힘을 써서 요사스러운 기운을 소탕하였다. 그 아름다운 공적을 가상히 여겨 곧 경에게 좌도 절도사를 제수하니, 이것은 경이 상처 입은 군졸을 어루만져 달래고, 지친 백성을 은휼(隱恤)하여 다소나마 소복할 수 있게 하려 함이었다. 먼저 그 근본을 굳건히 하고, 다음 그 제방을 완전히 하여 도적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편안하고 여유있는 형세로 곤궁한 적을 대적한다면, 저 잔얼(孱孼)이 어찌 그 침독(侵毒)의 해를 드러낼 수 있을 것이며 나의 남쪽을 염려하는 근심이 어찌 좀 풀리지 않겠는가.
그런데 지금 물의가 비등하여 여러 사람이 모두 경을 나무라고, 일을 말하는 관원이 논집하기를 더욱 확고히 하며, 경의 허물을 말하는 것이 하나 둘 아니나, 그 중에서도 중한 것을 말하면,
1. 갑옷에 칠하는 옻[漆]을 민력으로 내게 하면 준비하기가 매우 어려운데, 경이 각박한 법으로 배나 거두어서 민생을 곤폐하게 한다.
2. 밀봉해서 보고하라는 영[密封之令]을 창안하여 사졸로 하여금 각기 무재(武才) 있는 사람을 천거하게 하고 문득 여러 고을에서 징집하므로, 사람들이 혐의와 원한이 있으면 모두 무함하여 천거하니, 징집 문서를 가진 자가 길을 메운다. 그리하여 결국은 뇌물이 있으면 재능이 있더라도 반드시 퇴하고, 뇌물이 없으면 재능이 없어도 도리어 징집되어, 한 사람이 혹 수십 차씩 징집을 당하는 자도 있다. 따라서 재물이 뇌물 때문에 다할 뿐 아니라 왕래하는 중에 생업을 폐하고 때를 어기며 사람과 말이 다 함께 지쳐 흩어져 도망하는 자가 줄을 잇는다.
3. 여러 고을의 향교 유생들을 불러 모아 경서로 시험하여, 조금이라도 잘 알지 못하는 것이 있으면 ‘재주가 모자란다.’ 칭탁하고 모두 군정(軍丁)에 충당하는데, 뇌물을 쓰지 않으면 면하지 못하니, 온 도내가 떠들어 소요하고 원망하는 소리가 귀에 가득하다.
4. 거느린 사졸이 조금이라도 과오가 있으면 중한 벌을 주니, 지팡이를 가진 자가 항오(行伍) 간에 잇달아 있으므로, 적변(賊變)을 만나더라도 말을 탈 수 없어 군중으로 하여금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하여, 다들 이반(離叛)하는 마음을 품게 한다는 것 등이다.
아아! 과연 들리는 말과 같다면, 온 도내의 백성들이 도적이 오기 전에 먼저 도탄에 빠진 것이니, 그 책벌(責罰)의 돌아갈 것을 장차 누가 맡을 것인가. 아, 경이 과연 그런 일이 있는가? 대저 장수가 되는 도리는 폭력과 위맹(威猛)에 있지 않고 어루만져 그 은혜를 다함에 있는 것이다. 항상 사졸과 더불어 그 고락을 함께 하여서 사람마다 윗사람을 친히 하고, 관장을 위하여 죽을 마음을 가지게 한 뒤라야, 위급한 곳에 투입하여 그 사력(死力)을 다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혹 횡포하며 은혜가 없거나 탐람하여 법을 더럽히면 패하지 않는 자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베어 벌주는 형벌이 위에서 있지 않으면 반란하는 화가 반드시 아래에서 있게 되는 것이다. 장비(張飛)는 한(漢)나라의 명장이지만 사졸을 무휼(撫恤)하지 않다가 나중에 그 아랫사람에게 해를 당하였으며, 사만세(史萬歲)091) ·조한(曹翰)092) 은 수(隋)나라·송(宋)나라의 명장이지만, 탐람 포학의 자취가 한 번 나타나자, 공이 있다 하여 용서를 받지는 못하였다. 이것만이 아니다. 역대를 상고해 봐도, 장수가 되어 탐람 잔학하고 자패하지 않은 자가 일찍이 없었으니, 이것이 넉넉히 귀감이 될 만한 것이다.
경은 조정에 벼슬한 지 오래고 경력이 많으니, 반드시 고금 성패의 자취와 화복의 연유를 살폈을 것인데, 경이 과연 그런 일을 한 것인가? 더구나 내가 위임하기를 성의로 하고 총우(寵遇)하기를 후히 하는데, 경이 어찌 차마 시달린 백성을 거듭 곤하게 하여 나의 기대하는 마음을 저버릴 것인가.
처음 내가 경을 맡길 때에 ‘경이 전에 절도사가 되었다가 논박을 당하여 체임되었으니, 지금 다시 맡기는데도 전의 잘못을 고치지 않는다면 내가 잘못 맡긴 책임을 면하지 못하게 된다. 그렇지만 사람으로서 허물이 없을 수야 있는가. 허물이 있어도 고친다면 이것이 선이 되는 것이다.’ 하였으니, 어찌 경의 옛날의 과오가 이미 변화와 함께 사라져 버리지 않았겠는가. 그러므로 내가 전의 허물을 버리고 후의 효과를 책임지워 다시 경을 침체 중에서 발탁하여 곤외(閫外)의 중임을 맡겼는데, 경이 어찌 감격 분발하여 새 절개(節介)에 효과를 보일 것을 바라지 않고 감히 차마 그런 일을 하는가? 임금으로서는 신하에게 중한 소임을 맡겼으니, 사람들의 말이 있다 하여 갑자기 바꿀 수는 없는 일이다. 경은 나의 위임의 돈독함을 체득하여 더욱 그 직무에 충실하며, 예전 것을 고치고 새것을 도모하여 전공(前功)을 폐하는 일이 없게 하라. 만일 너그럽게 보아줌을 다행으로 여겨 전의 그름을 뉘우치지 않고, 군민을 여전히 고통스럽게 하여 도로 물의가 비등하게 된다면, 공도는 굽히기 어렵고 국법은 흔들기 어려운 일이니, 내가 비록 경에게 사정을 두려 한들 되겠는가. 경은 경계하여 스스로 슬픔을 끼치는 일이 없게 하라."
- 【태백산사고본】 7책 13권 25장 A면【국편영인본】 14책 498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사법-탄핵(彈劾) / 역사-고사(故事)
- [註 088] 봉채(蜂蠆) : 벌과 쏘는 벌레.
- [註 089] 부서(富庶) : 부유하고 번영하다.
- [註 090] 퇴곡의 부탁[推轂之寄] : 임금이 출정하는 장수에게 일을 맡기는 것. 옛날, 천자가 출정하는 장수를 전송할 때에는 몸소 장수가 탄 수레를 밀어 나가게 하면서 ‘곤외(閫外:조정 밖, 경계 밖)는 장군이 맡으라 곤내의 일은 내가 맡으리라’ 하고 전수(戰守) 대책의 전임 실행을 부탁하였다. 《한서(漢書)》 풍당전(溤唐傳).
- [註 091] 사만세(史萬歲) : 수(隋)나라의 명장.
- [註 092] 조한(曹翰) : 후주(後周)에 벼슬하다가 송나라 태조와 태종을 도와 천하 통일에 공이 많았다.
원문
○上命諭慶尙左道兵馬節度使黃衡, 其書曰:
委任之專, 而責其成功者, 人主之事也。 不愆于度, 而竭力圖報者, 臣子之職也。 任之貳而責之重, 功不足成, 而祗以敗事, 是則人主之過也。 委之之重, 任之之專, 而取或愆于度, 干于憲, 用敗厥職者, 則譴責之罰, 果何所歸? 近値邦家厄會, 南方不靖, 蕞爾倭寇, 不思卵育之恩, 敢肆蜂蠆之毒, 屠陷我邊鎭, 殺害我將士, 恣其陸梁, 罔或止遏, 嶺南一道之民, 騷然被其禍, 使百餘年昇平富庶之地, 一困而不得蘇息。 興言及此, 痛怛于中, 廢寢而起, 輟食而吁。 當時朝議, 共擧卿可任大事, 遂委推轂之寄。 果能宣力敵愾, 掃蕩妖氛。 嘉乃休績, 卽授卿爲左道節度使者, 蓋欲卿拊循瘡痍之卒, 隱恤困瘁之民, 俾得以少蘇。 先固其本根, 次完其隄防, 以待寇賊之至, 逸以當困, 樂以敵窮, 則彼孱孽, 豈得逞其侵毒之害, 而予一人南顧之憂, 豈不少(紵)〔紓〕 哉? 今者物論沸騰, 萬口咎卿, 言事之官, 論執(兪)〔愈〕 固。 數卿之咎, 不一而足, 就其重者言之。 一曰, 塗甲之漆, 出於民力, 備之甚難, 卿, 刻法倍歛, 困弊生民。 二曰, 創爲密封之令, 令士卒, 各擧有武才人, 輒徵于諸邑。 人有嫌怨, 無不誣擧, 執徵文者, 交午道路。 及其至也, 有賄則雖才必退, 無賄則無才反拘, 或有一人而累十被徵者, 非惟財困於賄賂, 往來之際, 廢業愆時, 人馬俱瘁, 散亡相續。 三曰, 徵招諸邑校生, 試以經書, 少未淹貫, 托爲才疎, 盡充軍丁。 非行賄焉, 則不得免, 闔道訩擾, 怨讟盈耳。 四曰, 所統士卒, 少有過差, 重罰, 扶杖者相望于行伍之間。 脫遇賊變, 不能任騎乘, 使軍中, 不堪其苦, 盡懷離叛之心。 嗚呼! 果若人言, 則一道之民, 不待寇賊, 先墜塗炭矣, 責罰之歸, 將誰任哉! 噫, 卿果有是事乎! 夫爲將之道, 不在暴猛, 在乎撫養之盡其恩, 常與士卒, 同其甘苦, 使人人懷親上死長之心, 然後投之緩急, 得其死力。 苟或暴而無恩, 貪以黷法, 未有不敗者, 誅罰之刑, 不在乎上, 則叛亂之禍, 必在乎下矣。 張飛, 漢之名將也, 而不恤士卒, 終爲其下所害, 史萬歲、曹翰, 隋、宋之名將也, 貪暴之迹一露, 不以有功而見貸。 非獨此也, 攷之歷代, 其爲將而貪黷殘虐者, 則未嘗不敗, 足爲昭鑑。 以卿立朝之久, 更歷之多, 必審夫古今成敗之迹, 禍福之故矣, 卿果爲是事乎? 況以予委任之誠, 寵遇之厚, 卿安忍重困憔悴之民, 以負予待之之意乎? 初予之任卿也, 謂卿前爲節度使, 被駁而遞, 今任之而不改其轍, 則予未免謬任。 雖然人豈能無過? 過而能改, 斯爲善矣。 安知卿昔日之過, 已與化俱徂乎? 故予棄前之愆, 責後之效, 復拔卿於沈滯之中, 委以閫外之重。 卿豈不感激思奮, 以自冀效於新節, 而敢忍爲此乎? 人君旣委臣以重任, 則不可以人言而遽易, 卿其體予委任之篤, 益虔乃職, 改其舊而新是圖, 以無替前功。 若夫幸其優容, 罔悔前非, 以致軍民之猶苦, 復起物論之騰沸, 則公道難屈, 邦憲難撓, 予雖欲私卿得乎? 卿其戒哉, 毋自貽慼。
- 【태백산사고본】 7책 13권 25장 A면【국편영인본】 14책 498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사법-탄핵(彈劾) / 역사-고사(故事)
원본
중종 6년 (1511) 3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