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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12권, 중종 5년 10월 17일 庚子 2/3 기사 / 1510년 명 정덕(正德) 5년

이라다라 등 왜인의 왜국 귀환에 대해 의논하다

국역

유순(柳洵)이 의논드리기를,

"제포(薺浦) 사람들이 다 말하기를, ‘이라다라(而羅多羅)는 간교하여, 자주 왕래하면서 혹 오래도록 포소(浦所)에 살기도 하여 항거왜(恒居倭)들과 통정(通情)한 자이니 돌려보내는 것은 마땅치 않다.’고 하므로, 관찰사가 이 말을 근거로 하여 계문하였습니다. 신의 생각에 간인(奸人)이 적(敵)에게 있는 것은 우리의 이(利)가 아니라고 하여, 다만 이 한 사람만을 유치(留置)하고 나머지는 다 돌려보내라고 청하였더니, 그 뒤에 정광필의 아뢴 바에 따라 유치한 것이 이제 이미 두어 달이 되었습니다. 이 무리가 비록 수금(囚禁) 중에 있으나, 경군관(京軍官)을 연속하여 보내서 방어하는 등의 일과 같은 것을 어찌 듣지 못하였겠습니까? 이제 만약 놓아 보낸다면 우리의 국사를 저희 나라 안에 전파할 것은 과연 정원(政院)의 논의와 같습니다. 더구나 평시라(平時羅) 등은 처음에는 변고(變故)를 보고한다고 말했다가 말을 바꾸어 청화(請和)하고 있으니, 말이 한결 같지 않고 간교함도 심하니, 실로 우리의 허실을 엿보러 왔을 뿐입니다. 적인의 간첩으로 온 자를 놓아 보내어 적국으로 하여금 국가의 경중(輕重)을 알게 하여, 경모(輕侮)하는 마음을 더욱 조장시키는 것은 가장 옳지 않습니다."

하였다.

유순정(柳順汀)·권균(權鈞)·성세정(成世貞)·민효증(閔孝曾)·강혼(姜渾)·이계남(李季男)·남곤(南衮)·한숙창(韓淑昌)·정광필(鄭光弼)·홍숙(洪淑)·경세창(慶世昌)·박열(朴說)·한세환(韓世桓)·민상안(閔祥安)·이병정(李秉正)·황맹헌(黃孟獻)·유인호(柳仁濠)·이양(李良)·유세침(柳世琛)·김관(金寬)·유인귀(柳仁貴)·김굉(金硡)·송호의(宋好義)·어득강(魚得江)·최숙생(崔淑生)·이철균(李鐵鈞)·성세창(成世昌)·이여(李膂)·권벌(權橃)·김세필(金世弼)·김극핍(金克愊)·허굉(許硡)·신엄(申儼)·서후(徐厚)·홍언필(洪彦弼)·김희수(金希壽)·황여헌(黃汝獻)·정사룡(鄭士龍)·김응벽(金應璧)·유돈(柳墩)·반석평(潘碩枰)·유중익(愈仲翼)·이수영(李守英)·유윤덕(柳潤德)·정전(鄭荃)·이효언(李孝彦)·채침(蔡枕) 등의 의논도 같았고, 성희안(成希顔)은 의논드리기를,

"이라다라(而羅多羅)·평시라 등 전후하여 우리 나라에 온 왜인은 모두 37인입니다. 앞서 온 왜인은 처음부터 반란에 참여하지 않았으니 무죄한 자들이며, 뒤에 온 왜인들은 뜻이 우리의 내정을 엿보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보변(報變)한다고 칭탁하였으니 실로 교사(狡詐)하고 반복(反覆)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이 무리들은 사람의 탈을 쓴 짐승 같은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많이 책망할 것은 없습니다. 저 섬의 왜인들이 배은 망덕(背恩忘德)한 죄를 스스로 알고, 이 전후해 온 왜인들이 오래도록 돌아가지 않으면 필시 모두 이미 죽임을 당하였다고 생각할 것이니, 그 부모·처자의 애통하는 정상은 눈으로 보는 듯 상상할 수 있습니다. 이제 돌아가는 것을 허락한다면, 다만 섬 안의 왜인들이 다 우리의 천지같이 포용하는 덕택에 감복할 뿐만 아니라, 그의 부모·형제·처자들은 우리의 덕(德)을 우러름이 반드시 깊을 것이니, 다른 날 얼굴을 고치고 마음을 돌려서 관(關) 문을 두드리며 화친을 비는 마음이 반드시 여기에서 말미암지 않음이 없을 것입니다. 왜로 하여금 우리의 위엄을 두려워하고 덕을 회앙(懷仰)하게 하는 것은 바로 오늘에 있습니다. 저들의 내구(來寇)를 우리가 제지함이 매우 엄하면 저들은 비겁하게 되고 우리는 용감할 것이며, 우리는 이기고 저들은 패할 것이요, 우리에게 훌륭한 장수와 용맹한 사졸이 있어서 수어(守禦)하기를 견고하게 한다면 저들이 마침내 강화를 청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지금의 사세를 살펴보니 조종(操縱)의 주도권이 우리에게 있어 한 번 이 기회를 잃어버리면 두 번 다시 때를 얻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만약 돌아가는 길을 허락하여 그 마음을 감격시키지 않고 정성을 마치는 길을 막아, 벌이 쏘는 듯한 독기를 양성(釀成)한다면 세월이 지나가는 사이에 우리의 수졸(戍卒)이 피곤하게 될 것이며, 병가(兵家)의 승패 또한 헤아리기 어려울 것입니다. 틈을 타서 가만히 발병(發兵)하여 침노해 소요함이 그치지 않을 때에 만에 하나라도 실수하는 일이 있게 된다면, 해를 입음이 참혹할 것입니다. 그리 되면 저들의 기세는 점차 펴지고 우리 군사는 위축할 것인데, 혹시나 다시 양계(兩界)에 일이라도 생겨서 장사(將士)를 나누어 지키게 되면 병력은 약하게 덜어질 것입니다. 이러한 때를 만나서 비로소 그 온[來] 왜인을 돌려보내 정성을 바칠 것을 유도(誘導)할 계획을 한들, 일찍이 규획(規畫)하지 못한 후회를 어찌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가령 저들이 속히 청화(請和)한다면 반드시 하나같이 전일의 접대 절목(接待節目)과 같이하여 조금도 차감(差減)하지 말아서 저들의 마음을 쾌하게 할 것이며, 그들이 다시 와서 살기를 원할지라도 우리는 단연코 허락해서는 안 됩니다. 또 접대 절목 중에도 또한 바꾸고 없앨 일이 많으므로 저들이 비록 청화하여도 우리는 즉시 허락해서는 안 되며, 저들도 또한 우리의 조건을 즐겨하지 않을 것이니, 이것은 일조 일석에 결정될 것이 아니고 세월만 경과하게 될 것입니다. 저들이 어찌할 수 없는 사세에 절박하게 된 뒤라야 혹 이루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그 무리를 오래도록 유치하여 저들의 평화를 원하는 시기를 늦출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온 왜인의 수가 37인에 이릅니다. 만약 저들이 향읍에 섞여 살면서 영원히 우리 백성되는 것을 허락한다면 모든 의지해 살아갈 기구를 갖추어 주지 않을 수 없으며, 이 땅의 부녀자로써 아내를 삼게 해야 할 것이고, 세월이 오래되면 자식들이 반드시 많아질 것이니, 이족의 무리가 불어나 퍼지는 것은 진실로 작은 사고가 아닙니다.

만약 천천히 그 사세를 살펴서 때를 기다려 돌아가는 것을 허락한다면, 우리 나라 여러 곳의 허실을 다 알고 가서, 본도(本島)에 전파하게 되어, 사체가 온편치 않을 것입니다. 이해를 깊이 따져보니 속히 석방하여 돌려보내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평시라와 같은 자는 본래 귀화한 왜로서, 국도(國都)에 와서 살면서 나라의 은혜를 입은 것이 심중(深重)한데, 서계(書契)를 가지고 가서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았으며, 이제 또 보변을 거짓 칭탁하니 기만하고 간사함이 막심합니다. 이라다라는 흉칙하고 교활하여 측정할 수 없어서, 평소부터 변민(邊民)들이 꺼리는 자이니, 저들과 우리 사이에 바야흐로 흔단이 생긴 이때에 이들을 함께 돌아가게 하는 것은 좋은 계책이 아니니, 그대로 계속 유치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신의 의견이 이와 같으므로 전일에도 이렇게 논의하였던 것입니다."

하고, 정미수(鄭眉壽)는 의논드리기를,

"본도(本島)는 땅이 메마르고 백성이 가난하여 그들이 살아가는 길은 오로지 우리에게 의뢰하고 있습니다. 혹은 청화하고 혹은 보변(報變)하는 것을 인연하여 잇달아 나오는 자의 수가 천백 명에 이르러, 죽이려면 명목이 없고 대접하려니 감당하기 어려우니, 후일의 계책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난전(亂前)에 내조(來朝)한 이라다라 등은 나누어 두어서 종을 삼고, 금번에 온 평시라는 다시 변경해 속인 상황을 물어서 법에 따른 형벌을 바르게 밝힐 것이며, 나머지 왜인들은 돌려보내서 오랑캐들로 하여금 위무(威武)에 외복(畏服)하여 뒷날 우리의 허실을 엿보는 간사함을 끊어 버리게 하면 매우 다행하겠습니다."

하고, 박안성(朴安性)은 의논드리기를,

"전후(前後) 왜인 등이 혹은 난(亂)이 일어난 까닭은 모른다고 말하고 고변하러 왔다고 말하는데, 다 거짓 꾸민 믿을 수 없는 말이며, 반드시 허실을 엿보려고 하는 음모인 것이니, 본도(本島)에 돌아가게 하여 후환을 남기게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그 죄를 알아듣도록 타이른 뒤에 혈유(孑遺)가 없게 하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하고, 김응기(金應箕)는 의논드리기를,

"오랑캐를 대하는 방법은 와서 도적질하면 토벌(討伐)하고, 무고(無辜)하면 즉시 돌려보내서 은혜와 위엄[恩威]을 분명히 보여야 합니다. 지금 이 왜인들을 만약 돌려보내지 않는다면 도주(島主)가 반드시 그들이 모조리 죽임을 당하였다고 하여 원한을 품음이 더욱 심하여 성심을 바칠 마음이 영구히 끊어질 것입니다. 싸움이 연달고 화(禍)가 맺어져 동쪽에 충돌하고 서쪽에 공격하여 도적질과 약탈을 그치지 않는다면 변방의 백성이 반드시 그 해를 입을 것입니다. 또 변경을 지키는 군졸들이 두어 달 만에 서로 교대할 때면, 반드시 보졸(步卒)을 침탈(侵奪)하게 되며, 가산(家産)을 다 팔아서, 가는 자는 행자(行資)를 싸 갖고 가야 하고, 있는 자는 전송해야 할 것이니, 1년도 못 되어 재물은 다하고 힘은 없어져 지탱할 수 없게 된다면, 국가가 장차 무슨 방법으로 구제하겠습니까. 또 장사(將士) 중 무재(武才)가 있는 자는 대개 다 나누어 남방을 지키게 될 것이니, 서북이 비어 위급한 일이라도 있으면 또한 장차 어떻게 대응(對應)하겠습니까. 전일의 논의에 따라 모두를 속히 석방해 돌려보내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고, 이손(李蓀)·신윤무(辛允武)·박영문(朴永文)의 논의도 이와 같았고, 홍경주(洪景舟)는 의논드리기를,

"오랑캐를 대하는 방도는 은혜와 위엄을 병행함에 있으니, 지금 마땅히 다만 이라다라와 평시라 두 사람만을 유치하고 나머지는 다 돌려보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다만 이것이 국가의 큰 일이므로 한 번 그 기회를 잃으면 후회하여도 장차 미치지 못할 것이니, 너무 고집하여 반드시 그럴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지금 또 침모(侵侮)하는 기세가 다 없어지지 않았는데, 간첩질하는 무리를 갑자기 돌려보내는 것은 적(敵)에 대처하는 계엄(戒嚴)의 뜻이 아니니, 마땅히 모두를 구류하여 두고 죽지 않을 정도로 대접하다가, 명년 봄에 이르러 오랑캐의 정상을 자세히 살핀 뒤에 처치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고, 신용개(申用漑)는 의논드리기를,

"평시라 등이 도주(島主)의 지시를 받고 와서 우리의 얕고 깊음을 탐지하고 허실을 엿보며, 또 고변한다고 빙자하고 이어 위협하여 화친을 맺고자 하니, 그 교활하고 간사함이 더할 수 없습니다. 전후에 온 왜인 수를 계산하니 30여 인이나 되어 지금 만약 모두를 보내 준다면 그것은 도적의 군사를 도와서 그 세력을 신장(伸張)하게 하는 것이니 매우 옳지 않은 일입니다. 이 왜인들이 생명을 보전하여 옛땅으로 돌아가게 되면 은혜에 감복함이 깊을 것이지만, 그들의 섬에 돌아간 뒤에는, 반드시 섬 오랑캐들과 같이 될 것이니, 어찌 그들이 우리의 성은(聖恩)을 생각하여 홀로 그 무리를 배반하고 우리에게 성심을 바칠 것이라고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또 섬의 왜인들이, 우리 나라가 나온 왜인을 죽이지 않고 모두 돌려보낸 것을 보면, 비록 성조(聖朝)의 거칠고 더러운 것을 포용하여 교계하지 않는 도량에 감복할지라도, 그 사세(事勢)는 반드시 저절로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비록 혹 이로 인하여 다시 도둑질하지 않고 전심(專心)으로 화친을 빌지라도, 삼포(三浦)319) 에 왜인이 다시 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그 강화는 속히 이루어질 수 없고 입구(入寇)와 약탈은 그치지 않을 것이며, 삼포는 끝까지 허락할 수 없게 될 것이니, 그렇다면 이제 이 여러 왜인들을 돌려보내는 것은 그들의 원심(怨心)을 풀어 그들의 반란을 지식(止息)시키는 데 유익함이 없고 다만 그의 병력만을 보탤 뿐이니, 마땅히 벽읍(僻邑)에 나누어 유치하고 모두를 돌려보내지 말아서, 저들로 하여금 막막(漠漠)히 우리의 천심(淺深)을 알지 못하여 계책을 세우지 못하게 만드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이렇게 하고는 변방을 더욱 엄중하게 하고 조금이라도 이완(弛緩)하는 일이 없어서 그들의 침모(侵侮)를 막는다면, 저들은 장차 와도 얻는 것이 없고, 가서는 먹을 것이 없어서 그의 사세는 더욱 군색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화친을 빌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성의에서 나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니, 이때에 이르러 배로만 사신을 통할 것을 하락하고 또 내려보내 줄 물품의 수량을 정한다면, 저들은 장차 손을 거두어 잡고 명령을 들을 것입니다. 그래야만 화친을 오래도록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니, 그렇게 한 뒤에 이 왜인들의 귀환 여부를 다시 의논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신(臣)의 생각하는 바는 이와 같습니다.

그런데 여러 사람들의 의논은 말하기를 ‘우리 나라는 남방(南方)의 방수(防戍)가 허술한데, 왜노(倭奴)는 교활하고 경박하여 항상 도둑질을 일삼고 있으니, 어루만져 제어(制禦)하기가 가장 어렵습니다. 만약 방어가 그 방법을 그르치면 연해변(沿海邊)의 여러 곳을 드나들면서 도적질과 약탈을 감행하여, 백성이 미처 피하지 못하고 장수가 미처 구원하지 못하면 그 피해가 막심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종조(祖宗朝)에서 왜인을 대우함이 매우 후하였습니다. 근자에 삼포(三浦)의 반란은, 그들이 은혜를 배반하고 포악을 자행함이 심하였으니, 남김없이 다 죽일지라도 아까울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결국 화친하지 않을 수 없으니, 화친하지 않으면 해 끼침을 막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지금 평시라(平時羅) 등이 고변한다고 칭탁하고 있으나, 실은 우리에게서 화친할 수 있는 단서를 탐지하러 온 것입니다. 이제 만약 그를 유치(留置)하고 먼저 온 왜인들도 아울러 돌려보내지 않는다면, 저들은 장차, 우리가 그들을 다 죽였다고 하여 더욱 원망하는 마음을 품을 것이며, 또 우리의 대우가 엄중한 것을 보고 스스로 화친은 마침내 이루지 못할 것이라고 하여, 드디어 침구(侵寇)와 약탈의 계략을 일으켜 아침 저녁으로 변경을 침범하여 해를 잇달아 그치지 않는다면, 우리의 피해는 더욱 심각할 것입니다. 왜노(倭奴)의 반란을 겪은 뒤로부터 방비에 대한 일이 조금은 완비된 것 같으나, 스스로 믿을 수는 없습니다. 만약 불행하게 서북에 위난의 급보가 있으면 남방을 지키고 있던 장졸을 서북방에 나누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니, 그렇게 되면 적은 강하고 우리 군사는 약하여, 아마 계책을 세우기 어려울 것입니다. 지금 다만 평시라와 이라다라(而羅多羅)만을 유치하고 나머지는 다 돌려보낸다면, 도주(島主) 이하가, 스스로 반란을 일으킨 것을 국가가 조금도 용서하지 않을 것으로 알았는데, 이제 국가가 대우하는 것이 엄히 다스리는 데 이르지 않고, 왜노 중 온 자를 모두 돌아가게 허락한 것을 보고, 장차 성조(聖朝)의 천지 같은 큰 덕을 감대(感戴)하여 거의 화친할 수 있는 단서(端緖)가 있게 되어, 그들의 막다른 골목에 이른 개나 쥐가 물어뜯는 것과 같은 마음을 소화(消化)시킬 수 있을 것이며, 이렇게 하여 그들의 성심을 담아 화친을 비는 데 따라 그들과 통사(通使)를 허락한다면 변방의 근심을 늦출 수 있을 것입니다. 저들이 만약 반드시 침구(侵寇)하고 포악하고자 한다면, 이 35명의 왜인이 없더라도 어찌 스스로 횡포하지 못하고 이 35명의 왜인을 기다린 뒤에야 비로소 더욱 그 기세를 신장할 수 있겠습니까. 보내더라도 도적을 돕는 데 이르지 않고, 그 날카로운 마음을 해소시키기에 넉넉할 것입니다.’고 하였습니다.

신이 여러 사람의 논의를 보니, 계책하는 바가 신의 생각보다 더 나은 것 같았습니다. 그런 까닭에 신이 전일에 저의 의견을 고집하지 않고 또한 여러 사람의 의견에 따라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계책에는 장단이 있고 생각에는 잘잘못이 있어, 적의 책략을 헤아리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어렵게 여기는 바이니, 지금 이 논의는 관계되는 바가 실로 중대합니다. 널리 여러 사람의 계책을 채납하면 반드시 그중에 가장 좋은 것이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김수동(金壽童)·김봉(金崶)·최탁(崔濯)·노공필(盧公弼) 등의 의논도 이와 비슷하였다. 한위(韓衛)는 의논드리기를,

"전후의 왜인을 모두 돌려보내지 않는 것이 마땅할 것 같습니다만, 모두 돌려보내지 않는다면 도주(島主)가 청화 사신(請和使臣)을 반드시 다 죽였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니, 한갓 다시는 통신(通信)할 가망이 없을 뿐 아니라, 또한 반드시 원한을 품게 되어 이로 인하여 도적질할 꾀를 더욱 펴게 되면 변방의 백성이 생업에 안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중에서 도주가 사자로 보내 온 한두 사람은 돌려보내서 조정의 포용하는 뜻을 보이고, 그 나머지는 모두 유치하여 사세의 변천을 살펴보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고, 성몽정(成夢井)은 의논드리기를,

"신은 생각하기를, 이적(夷狄)과 강화하는 것은 중국의 불행인데, 더구나 화의(和議)가 우리에게서 먼저 나오고서 능히 오래도록 화친하였다는 것은 예전부터 듣지 못하였습니다. 전조(前朝) 말기에 나라 안에는 정치가 없고 연해변에는 방비가 없어서, 왜구(倭寇)가 빈 고을을 지나는 것처럼 들어왔으나, 그것을 가지고 오늘의 일을 논할 수는 없습니다. 태조께서 왜구를 토멸하고 세종(世宗)께서 대마도를 정벌한 뒤부터 위령(威靈)이 여러번 떨쳐서, 그들이 볼모되기를 청하고 주거의 터전을 받았을 때 70호로 한계를 정하였는데, 태평한 세상이 오래되면서 호령이 점차 너그러워져서 뱀과 살무사 같은 무리를 양성하여 이미 제어하기가 어렵게 되었었는데, 이제 다행히 저들이 화란을 일으켜 취락(聚落)이 아주 비게 되었습니다. 마땅히 이때에 힘써 나라의 위엄을 떨쳐 저들로 하여금 우리 땅을 엿보거나 염탐질하지 못하게 해서, 영원히 다시 우리 나라에 살 생각을 끊게 해야 할 것인데, 이에 도리어 배를 수리하고 식량을 갖추어서 적(賊)을 보호하여 위로해 돌려보낸다 하니, 그 사리와 형세를 살펴보건대, 화친하자는 단서가 먼저 우리에게서 나오면 복구(復舊)하고자 하는 생각이 저들에게 더욱 간절하여질 것입니다. 이 무리를 돌려보내는 것이 약함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제 남방은 성지(城池)가 점차 완성되어가고 사졸들이 분발할 줄 알게 되었으니, 만약 장수를 잘 선택하고 군사를 훈련하며, 봉화(烽火)와 후망(候望)을 신중히 한다면, 한 척의 배가 오는 것도 분명히 볼 수 있을 것이며, 그들이 오는 것을 미리 알고 미리 대비한다면 승리를 얻는 것은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저 적(賊)은 기일을 약속하여 군사를 모아야 하고 바람을 기다려서 바다를 건너와 입구(入寇)해야 하는데, 우리 군사는 육지에 있으면서 그들의 가는 방향을 살펴서 곳에 따라 변에 대응한다면, 노고와 비력(費力)은 저들에게 있고 승리는 우리편에 있을 것인데, 무엇이 두려워서 돌려보내고 강화를 요구하자는 논의가 이같이 급급합니까. 들으니, 바다의 도적에 대한 방비는 육지로 오는 도적보다 쉽다고 합니다. 그들이 배를 출발시키는 데는 반드시 바람을 살펴야 하니 역풍이 불면 배가 떠날 수 없고, 비나 눈이 오면 배가 떠날 수 없으며, 배를 멈추는 데는 반드시 처소가 있으니, 바위 벼랑 밑이면 정박할 수 없고 얕은 물가면 정박할 수 없습니다. 이러하니 우리 군사는 휴식할 때가 있고, 적로(賊路)의 요해처(要害處)를 쉽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에 제로(諸路)에서 왜인에게 주던 요(料)로써 군수(軍需)에 충당하고, 남쪽 지방의 젊은이들로서 유학을 업(業)으로 하지 않는 자를 토병(土兵)으로 하여, 번(番)을 고쳐 자주 쉬게 하고 쓸데없이 많기에 힘쓰지 말 것입니다. 만약 적이 변경에 들어오면 잡아 죽이지는 못할지라도 이르는 곳마다 뒤따라 쫓는다면 저들이 반드시 여러번 분심(忿心)의 군사를 일으켜 도적질을 그치지 않을 것이나, 우리는 그들의 오는 때를 타서 혹 나가 공격하기도 하고 혹 들어와 지키기도 하여, 사기(事機)의 편의에 따라 저들로 하여금 자주 불리(不利)를 초래하게 한다면, 두어 해를 넘기지 않아 그 병력은 저절로 곤고(困苦)하게 되고 자용(資用)은 자연히 다하게 되어서, 그 사세는 장차 백계(百計)를 내어 항복하고 먼저 화친할 뜻을 갖기에 여가가 없을 것입니다. 신은 또 들으니, 남방은 평소에 왜를 겁내어 풍문만 듣고도 무너져 달아났는데, 한 번 제포(薺浦)의 승첩을 겪고서는 돌을 들고 막대를 메고 쫓기를 원치 않는 자가 없다고 합니다. 이제 왜노를 보호해 돌려보낸다는 영(令)을 들으면, 반드시 투지가 저절로 쇠해지고 용기가 저절로 풀릴 것이니 또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이라다라의 무리는 전번의 논의에 따라서 나누어 구류해 두고, 섬 오랑캐들이 복종하는 날을 기다려서 다시 논의하여 처치하고, 평시라의 무리는 바로 전일 함성(陷城)하던 날, 함께 우리 백성을 죽이고 우리의 관고(官庫)를 노략질하고 관사를 불태웠으며 이제 또 간첩의 정상이 드러났으니, 비록 차마 다 죽이지는 못할지라도 마땅히 평시라는 쾌히 베어 죽이고 그 나머지 각인(各人)은 군공이 있는 집에 나누어 주어서 노예로 삼게 한다면, 마침내 우리의 백성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호랑이가 사나우나 굶주리고 피곤하면 사람이 시키는 대로 따릅니다. 왜인의 본성이 배반을 잘하나 역무(役務)에 복종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도적을 놓아 주는 것도 옳지 않은 일이거늘, 적을 보호하여 그 소굴로 돌려보내는 일이겠습니까. 신은 실로 온당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니, 상이 희안의 의논을 따랐다.

  • [註 319] 삼포(三浦) : 왜란이 있던 염포(鹽浦)·제포(薺浦)·부산포(釜山浦).

원문

○柳洵議: "薺浦人皆言, 而羅多羅奸狡, 頻數往來, 或久居浦所, 與恒居倭通情者也, 不宜還送。 觀察使據此以聞。 臣意以謂奸人在敵, 非我之利, 請但留此一人, 餘皆還送, 其後因鄭光弼所啓, 留置至今, 已數朔矣。 此輩雖在囚中, 如京軍官連續發遣防禦等事, 豈無所聞? 今若縱遣, 則將國事傳播國中, 果如政院之議。 況平時羅等, 初言報變, 變言請和, 言端不一, 奸狡亦甚, 其實不過窺覘我虛實而已。 敵人來諜者, 縱遣之, 使敵國知國家輕重, 益長輕侮之心, 尤爲不可。" 柳順汀、權鈞、成世貞、閔孝曾、姜渾、李季男、南袞、韓淑昌、鄭光弼、洪淑、慶世昌、朴說、韓世桓、閔祥安、李秉正、黃孟獻、柳仁濠、李良、柳世琛、金寬、柳仁貴、金硡、宋好義、魚得江、崔淑生、李鐵鈞、成世昌、李膂、權橃、金世弼、金克愊、許硡、申嚴、徐厚、洪彦弼、金希壽、黃汝獻、鄭士龍、金應璧、柳墩、潘碩枰、兪仲翼、李守英、柳潤德、鄭荃、李孝彦、蔡忱等議同。 成希顔議: "而羅多羅、平時羅等, 前後來倭, 總三十七人, 前來倭, 初不與叛亂, 無罪者也, 後來倭, 意在窺覘, 而托言報變, 實狡詐反覆者也。 然是輩人面獸心, 不足多責。 彼島背恩忘德, 自知其罪, 謂此前後倭, 久不回還, 必皆已置大戮, 其父母妻子, 哀慟之狀, 森然可想。 今若許還, 則不唯島中, 咸服我天地包容之德, 其父母兄弟妻子, 德我必深, 他日革面回心, 叩關乞和之念, 未必不由此而生也。 使倭畏威懷德, 正在今日。 彼之來寇, 我制之甚嚴, 彼㤼我勇, 我勝彼破。 我有良將猛卒, 守禦之固, 彼終有不得已講和之請。 觀今事勢, 操縱在我, 一失其機, 時難再得。 若不許還其類, 感激其心, 杜絶納款之路, 釀成蜂螫之毒, 經年歷歲, 戍卒疲倦。 兵家勝敗, 亦或難料, 乘間竊發, 侵擾不止。 萬有蹉跌, 受害慘酷, 彼勢漸張, 我軍畏縮。 幸復兩界有事, 將士分戍, 兵力弱損。 遇此之時, 始爲之計, 還其來倭, 誘以投誠, 則其早不規畫之悔, 何可勝言? 假如彼速請和, 必一如前日接待節目, 少無差減, 乃快於心, 其復來居者之願, 斷不可許。 且於接待節目之中, 亦多有改絃易轍之事, 以故彼雖請和, 我不可卽許, 我雖許和, 彼亦不肯。 卽從此非朝夕可決, 動經歲月, 彼迫於無可奈何之勢, 然後庶或有成。 安可久留其類, 以緩彼輸平之期乎? 況來倭, 多至三十七數, 如雜處郡邑, 永許爲民, 則凡所賴生理之具, 無不備給, 妻以此土之婦。 歲月積多, 生齒必繁, 異類滋蔓, 誠非細故。 如徐觀其勢, 待時許還, 則諳盡我國諸處虛實, 傳播本島, 事體不便。 詳究利害, 孰如賜環之速也。 若平時羅, 本以向化倭, 來居國都, 蒙被國恩深重, 齎書契而去, 久不來歸, 今又假托報變, 欺詐莫甚。 而羅多羅, 凶狡有餘, 包藏難測, 素爲邊氓所忌。 方當彼我構釁之時, 竝令回歸, 非計之得, 仍留之爲當。 臣意如是, 前日亦以此議啓。" 鄭眉壽議: "本島地瘠民貧, 其所生生, 專賴我國。 或因請和報邊, 連緜繼出者, 數至千百。 殺之則無名, 待接則難當, 後日之計, 不可不慮。 臣意以爲, 亂前來朝而羅多羅等, 分置爲奴, 今來平時羅, 更問變詐之狀, 明正典刑, 餘倭還送, 使虜輩服其威武, 而以絶後日窺覘之奸, 幸甚。" 朴安性議: "前後倭人等, 或云不知亂作之由, 或云報變而來, 皆飾詐不信之言也。 必窺覘虛實之謀也, 不可使還本島, 以貽後患。 臣意以謂開諭其罪, 使無孑遺何如?" 金應箕議: "待夷之道, 來寇則討之, 其無辜則旋卽發還, 以明示恩威可也。 今此倭人, 若不遣還, 島主必以爲盡殲, 構怨益深, 永絶納款之心。 兵連禍結, 衝東擊西, 寇抄不已, 則邊氓必被其害。 且守邊軍卒, 越數朔相代之時, 必侵漁步卒, 盡賣家産, 行齎居送, 曾未一期, 財殫力竭, 將不能支, 國家將何術而救之? 且將士有武才者, 類皆分戍南方, 西北脫有緩急, 亦將何以應之? 請依前議, 竝速放還何如?" 李蓀、辛允武、朴永文議類此。 洪景舟議: "待夷之道, 要在恩威竝行。 今宜只留而羅多羅、平時羅二人, 而餘可還送。 但此國家大事, 一失其機, 悔將無及, 不可偏執以爲必然也。 今又侵陵之勢未殄, 而反間之徒遽還, 非待敵戒嚴之意也。 宜竝拘留, 待以不死, 至明春, 審察虜情, 然後處置何如?" 申用漑議: "平時羅等, 受島主指揮, 來探我淺深, 以覘虛實, 且憑告變, 仍欲刼和, 其狡詐奸譎莫甚。 計倭前後來者三十餘人, 今若竝送, 則是藉(冠)〔寇〕 兵而張其勢, 不可之甚也。 此倭雖得全性命, 還于舊土, 感恩之深, 而反還其島, 則必與島倭爲同, 豈能保其念我聖恩, 獨自違其類, 而效誠於我乎? 且島倭, 見國家不誅來倭, 竝許送還, 雖感服聖朝包荒不較之量, 然其勢必不自戢也。 雖或因此而不更作寇, 專心乞和, 然不得許還三浦, 則其和不可速成。 寇抄將不已, 而三浦終不可許。 然則今此諸倭之還, 無益於消其心止其怨弭其亂, 而祗益其兵耳。 宜分置僻邑, 竝勿送還, 令彼漠然莫知我淺深, 無以爲計可也。 如是而益嚴邊鄙, 無或小弛, 以御其侮, 則彼將來無所得, 去無所食, 其勢益窘, 而乞和之心, 不得不出於誠懇也。 至是只許約船通使, 且定賫送數, 則彼將斂手聽命, 而和可保其久也。 然後此倭可還與否, 方可更議。 臣所料如是, 群議乃曰: ‘我國南方防戍虛疎, 而倭奴狡詐輕僄, 常以寇次爲事, 撫禦最難。 若禦失其方, 則沿邊諸地, 出入寇抄, 民不及避, 將不及救, 其爲害莫甚。 以此祖宗待倭甚厚。 頃者三浦叛亂, 其背恩逞惡甚矣, 雖殲之, 無足惜。 然終不可不和, 不和則爲害難防。 今平時羅等, 雖托以告變, 實欲探我可和之端而來也。 今若留置, 竝與前來諸倭而不還, 則彼將謂我盡殺, 而益懷怨情。 且見我待之之嚴, 自謂和終不成, 遂起寇掠之計。 朝夕犯邊, 連年不止, 則我之受害益深。 自經倭奴叛亂之後, 防備之事, 雖似粗完, 然不可自恃。 若不幸有西北之警, 則將卒之南戍者, 不得不分於西北, 敵鉅而兵弱, 恐難爲計。 今只留平時羅、而羅多羅, 而餘皆送還, 則島主以下, 自知造亂, 恐國家不少容貸。 今見國家所以待之者, 不至深治, 倭奴之來者, 竝許還歸, 將感戴聖朝天地之大德, 庶幾有可和之端, 而消化其狗鼠噬囓之心。 如是而因其投誠乞和, 許其通使, 則邊患可紓也。 彼若必欲寇暴, 則雖無此三十五倭, 豈不能自橫, 而待此三十五倭, 然後始得益張其勢乎? 送之不至資寇, 而足以消其心鋒。’ 臣觀群議所策, 似有長於臣之所料, 故臣於前日, 不執己見, 亦從群議獻說焉。 策有長短, 慮有得失, 料敵之策, 古今所難。 今此之議, 所關實重, 博採群策, 必有得其最長者。" 金壽童、金崶、崔灌、盧公弼等議類此。 韓偉議: "前後倭人, 竝不還送似當, 然若皆不送, 則島主以爲請和使臣, 必皆殺之, 非徒更無通信之望, 亦必生怨。 因此作賊之謀益張, 邊氓未得安業。 其中稱島主使送一二人還送, 以示朝廷包容之意, 其餘竝留置觀變何如?" 成夢井議: "臣謂與夷狄講和, 中國之不幸。 況和議, 先出於我, 而能久和者, 自古未聞。 前朝末, 國內無政, 沿海無備, 倭寇之來, 如乘虛邑, 不可以此論今日也。 自太祖滅倭寇, 世宗征馬島, 威靈累振, 請質受廩, 以七十戶爲定。 昇平日久, 號令浸寬, 養成蛇虺, 已至難制。 今幸自作禍亂, 聚落一空, (常)〔當〕 及是時, 務振國威, 使彼不得窺諜我境, 永絶復居我土之念, 乃反修舟楫具糧餉, 護賊慰還。 觀其理勢, 請和之端, 先出於復舊之念, 益切於彼, 遣還此類, 非弱而何? 今南方城(地)〔池〕 漸完, 士卒知奮, 若能選將鍊兵, 謹烽火候望, 則隻船之來, 歷歷可見。 知其來而預爲之備, 是制勝在我。 彼賊約期聚兵, 待風渡海入寇, 我軍在陸, 審其去向, 隨處應變, 是勞費在彼, 制勝在我。 有何所懼, 而遣還求和之議, 如是汲汲乎? 聞海寇之備, 易於陸寇。 其發船必候風, 風逆則不能發, 雨雪則不能發。 其泊舟必有處, 巖崖則不得泊, 淺渚則不得泊, 是則吾軍休息有時, 賊路要害易知。 於是以諸路倭料之費, 爲軍需, 以南方子弟不業儒者, 爲土兵, 更番數休, 不務冗多。 賊若進邊, 雖不得檢殺, 到處追逐, 彼必屢興忿兵, 爲寇不已。 我乘其來, 或出擊或入保, 任事機便宜, 使彼數致不利, 則不出數年, 其兵力自困, 資用自竭, 其勢將百計投降, 不暇先意和親。 臣又聞南方, 素怯倭變, 聞風奔潰, 一經薺浦之捷, 莫不欲握石荷杖從之。 今聞倭奴護還之命, 則必鬪志自衰, 勇氣自解, 亦不可不慮。 臣愚意以爲, 而羅多羅之類, 依前臣議, 分置拘留, 以待島夷革面之日, 更議處置, 平時羅之徒, 乃前日陷城之時, 與殺吾民, 與賊官庫, 與焚官舍, 今又諜狀已露, 雖不忍盡殺, 當快誅平時羅, 其餘各人, 給付有軍功之家, 使做奴隷, 可終爲吾民矣。 虎狼雖惡, 飢困則從人, 倭性雖反側, 有可以服役。 縱賊尙不可, 況護賊還窟穴乎? 臣實以爲未便。" 上從希顔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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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12권, 중종 5년 10월 17일 庚子 2/3 기사 / 1510년 명 정덕(正德) 5년

이라다라 등 왜인의 왜국 귀환에 대해 의논하다

국역

유순(柳洵)이 의논드리기를,

"제포(薺浦) 사람들이 다 말하기를, ‘이라다라(而羅多羅)는 간교하여, 자주 왕래하면서 혹 오래도록 포소(浦所)에 살기도 하여 항거왜(恒居倭)들과 통정(通情)한 자이니 돌려보내는 것은 마땅치 않다.’고 하므로, 관찰사가 이 말을 근거로 하여 계문하였습니다. 신의 생각에 간인(奸人)이 적(敵)에게 있는 것은 우리의 이(利)가 아니라고 하여, 다만 이 한 사람만을 유치(留置)하고 나머지는 다 돌려보내라고 청하였더니, 그 뒤에 정광필의 아뢴 바에 따라 유치한 것이 이제 이미 두어 달이 되었습니다. 이 무리가 비록 수금(囚禁) 중에 있으나, 경군관(京軍官)을 연속하여 보내서 방어하는 등의 일과 같은 것을 어찌 듣지 못하였겠습니까? 이제 만약 놓아 보낸다면 우리의 국사를 저희 나라 안에 전파할 것은 과연 정원(政院)의 논의와 같습니다. 더구나 평시라(平時羅) 등은 처음에는 변고(變故)를 보고한다고 말했다가 말을 바꾸어 청화(請和)하고 있으니, 말이 한결 같지 않고 간교함도 심하니, 실로 우리의 허실을 엿보러 왔을 뿐입니다. 적인의 간첩으로 온 자를 놓아 보내어 적국으로 하여금 국가의 경중(輕重)을 알게 하여, 경모(輕侮)하는 마음을 더욱 조장시키는 것은 가장 옳지 않습니다."

하였다.

유순정(柳順汀)·권균(權鈞)·성세정(成世貞)·민효증(閔孝曾)·강혼(姜渾)·이계남(李季男)·남곤(南衮)·한숙창(韓淑昌)·정광필(鄭光弼)·홍숙(洪淑)·경세창(慶世昌)·박열(朴說)·한세환(韓世桓)·민상안(閔祥安)·이병정(李秉正)·황맹헌(黃孟獻)·유인호(柳仁濠)·이양(李良)·유세침(柳世琛)·김관(金寬)·유인귀(柳仁貴)·김굉(金硡)·송호의(宋好義)·어득강(魚得江)·최숙생(崔淑生)·이철균(李鐵鈞)·성세창(成世昌)·이여(李膂)·권벌(權橃)·김세필(金世弼)·김극핍(金克愊)·허굉(許硡)·신엄(申儼)·서후(徐厚)·홍언필(洪彦弼)·김희수(金希壽)·황여헌(黃汝獻)·정사룡(鄭士龍)·김응벽(金應璧)·유돈(柳墩)·반석평(潘碩枰)·유중익(愈仲翼)·이수영(李守英)·유윤덕(柳潤德)·정전(鄭荃)·이효언(李孝彦)·채침(蔡枕) 등의 의논도 같았고, 성희안(成希顔)은 의논드리기를,

"이라다라(而羅多羅)·평시라 등 전후하여 우리 나라에 온 왜인은 모두 37인입니다. 앞서 온 왜인은 처음부터 반란에 참여하지 않았으니 무죄한 자들이며, 뒤에 온 왜인들은 뜻이 우리의 내정을 엿보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보변(報變)한다고 칭탁하였으니 실로 교사(狡詐)하고 반복(反覆)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이 무리들은 사람의 탈을 쓴 짐승 같은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많이 책망할 것은 없습니다. 저 섬의 왜인들이 배은 망덕(背恩忘德)한 죄를 스스로 알고, 이 전후해 온 왜인들이 오래도록 돌아가지 않으면 필시 모두 이미 죽임을 당하였다고 생각할 것이니, 그 부모·처자의 애통하는 정상은 눈으로 보는 듯 상상할 수 있습니다. 이제 돌아가는 것을 허락한다면, 다만 섬 안의 왜인들이 다 우리의 천지같이 포용하는 덕택에 감복할 뿐만 아니라, 그의 부모·형제·처자들은 우리의 덕(德)을 우러름이 반드시 깊을 것이니, 다른 날 얼굴을 고치고 마음을 돌려서 관(關) 문을 두드리며 화친을 비는 마음이 반드시 여기에서 말미암지 않음이 없을 것입니다. 왜로 하여금 우리의 위엄을 두려워하고 덕을 회앙(懷仰)하게 하는 것은 바로 오늘에 있습니다. 저들의 내구(來寇)를 우리가 제지함이 매우 엄하면 저들은 비겁하게 되고 우리는 용감할 것이며, 우리는 이기고 저들은 패할 것이요, 우리에게 훌륭한 장수와 용맹한 사졸이 있어서 수어(守禦)하기를 견고하게 한다면 저들이 마침내 강화를 청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지금의 사세를 살펴보니 조종(操縱)의 주도권이 우리에게 있어 한 번 이 기회를 잃어버리면 두 번 다시 때를 얻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만약 돌아가는 길을 허락하여 그 마음을 감격시키지 않고 정성을 마치는 길을 막아, 벌이 쏘는 듯한 독기를 양성(釀成)한다면 세월이 지나가는 사이에 우리의 수졸(戍卒)이 피곤하게 될 것이며, 병가(兵家)의 승패 또한 헤아리기 어려울 것입니다. 틈을 타서 가만히 발병(發兵)하여 침노해 소요함이 그치지 않을 때에 만에 하나라도 실수하는 일이 있게 된다면, 해를 입음이 참혹할 것입니다. 그리 되면 저들의 기세는 점차 펴지고 우리 군사는 위축할 것인데, 혹시나 다시 양계(兩界)에 일이라도 생겨서 장사(將士)를 나누어 지키게 되면 병력은 약하게 덜어질 것입니다. 이러한 때를 만나서 비로소 그 온[來] 왜인을 돌려보내 정성을 바칠 것을 유도(誘導)할 계획을 한들, 일찍이 규획(規畫)하지 못한 후회를 어찌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가령 저들이 속히 청화(請和)한다면 반드시 하나같이 전일의 접대 절목(接待節目)과 같이하여 조금도 차감(差減)하지 말아서 저들의 마음을 쾌하게 할 것이며, 그들이 다시 와서 살기를 원할지라도 우리는 단연코 허락해서는 안 됩니다. 또 접대 절목 중에도 또한 바꾸고 없앨 일이 많으므로 저들이 비록 청화하여도 우리는 즉시 허락해서는 안 되며, 저들도 또한 우리의 조건을 즐겨하지 않을 것이니, 이것은 일조 일석에 결정될 것이 아니고 세월만 경과하게 될 것입니다. 저들이 어찌할 수 없는 사세에 절박하게 된 뒤라야 혹 이루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그 무리를 오래도록 유치하여 저들의 평화를 원하는 시기를 늦출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온 왜인의 수가 37인에 이릅니다. 만약 저들이 향읍에 섞여 살면서 영원히 우리 백성되는 것을 허락한다면 모든 의지해 살아갈 기구를 갖추어 주지 않을 수 없으며, 이 땅의 부녀자로써 아내를 삼게 해야 할 것이고, 세월이 오래되면 자식들이 반드시 많아질 것이니, 이족의 무리가 불어나 퍼지는 것은 진실로 작은 사고가 아닙니다.

만약 천천히 그 사세를 살펴서 때를 기다려 돌아가는 것을 허락한다면, 우리 나라 여러 곳의 허실을 다 알고 가서, 본도(本島)에 전파하게 되어, 사체가 온편치 않을 것입니다. 이해를 깊이 따져보니 속히 석방하여 돌려보내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평시라와 같은 자는 본래 귀화한 왜로서, 국도(國都)에 와서 살면서 나라의 은혜를 입은 것이 심중(深重)한데, 서계(書契)를 가지고 가서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았으며, 이제 또 보변을 거짓 칭탁하니 기만하고 간사함이 막심합니다. 이라다라는 흉칙하고 교활하여 측정할 수 없어서, 평소부터 변민(邊民)들이 꺼리는 자이니, 저들과 우리 사이에 바야흐로 흔단이 생긴 이때에 이들을 함께 돌아가게 하는 것은 좋은 계책이 아니니, 그대로 계속 유치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신의 의견이 이와 같으므로 전일에도 이렇게 논의하였던 것입니다."

하고, 정미수(鄭眉壽)는 의논드리기를,

"본도(本島)는 땅이 메마르고 백성이 가난하여 그들이 살아가는 길은 오로지 우리에게 의뢰하고 있습니다. 혹은 청화하고 혹은 보변(報變)하는 것을 인연하여 잇달아 나오는 자의 수가 천백 명에 이르러, 죽이려면 명목이 없고 대접하려니 감당하기 어려우니, 후일의 계책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난전(亂前)에 내조(來朝)한 이라다라 등은 나누어 두어서 종을 삼고, 금번에 온 평시라는 다시 변경해 속인 상황을 물어서 법에 따른 형벌을 바르게 밝힐 것이며, 나머지 왜인들은 돌려보내서 오랑캐들로 하여금 위무(威武)에 외복(畏服)하여 뒷날 우리의 허실을 엿보는 간사함을 끊어 버리게 하면 매우 다행하겠습니다."

하고, 박안성(朴安性)은 의논드리기를,

"전후(前後) 왜인 등이 혹은 난(亂)이 일어난 까닭은 모른다고 말하고 고변하러 왔다고 말하는데, 다 거짓 꾸민 믿을 수 없는 말이며, 반드시 허실을 엿보려고 하는 음모인 것이니, 본도(本島)에 돌아가게 하여 후환을 남기게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그 죄를 알아듣도록 타이른 뒤에 혈유(孑遺)가 없게 하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하고, 김응기(金應箕)는 의논드리기를,

"오랑캐를 대하는 방법은 와서 도적질하면 토벌(討伐)하고, 무고(無辜)하면 즉시 돌려보내서 은혜와 위엄[恩威]을 분명히 보여야 합니다. 지금 이 왜인들을 만약 돌려보내지 않는다면 도주(島主)가 반드시 그들이 모조리 죽임을 당하였다고 하여 원한을 품음이 더욱 심하여 성심을 바칠 마음이 영구히 끊어질 것입니다. 싸움이 연달고 화(禍)가 맺어져 동쪽에 충돌하고 서쪽에 공격하여 도적질과 약탈을 그치지 않는다면 변방의 백성이 반드시 그 해를 입을 것입니다. 또 변경을 지키는 군졸들이 두어 달 만에 서로 교대할 때면, 반드시 보졸(步卒)을 침탈(侵奪)하게 되며, 가산(家産)을 다 팔아서, 가는 자는 행자(行資)를 싸 갖고 가야 하고, 있는 자는 전송해야 할 것이니, 1년도 못 되어 재물은 다하고 힘은 없어져 지탱할 수 없게 된다면, 국가가 장차 무슨 방법으로 구제하겠습니까. 또 장사(將士) 중 무재(武才)가 있는 자는 대개 다 나누어 남방을 지키게 될 것이니, 서북이 비어 위급한 일이라도 있으면 또한 장차 어떻게 대응(對應)하겠습니까. 전일의 논의에 따라 모두를 속히 석방해 돌려보내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고, 이손(李蓀)·신윤무(辛允武)·박영문(朴永文)의 논의도 이와 같았고, 홍경주(洪景舟)는 의논드리기를,

"오랑캐를 대하는 방도는 은혜와 위엄을 병행함에 있으니, 지금 마땅히 다만 이라다라와 평시라 두 사람만을 유치하고 나머지는 다 돌려보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다만 이것이 국가의 큰 일이므로 한 번 그 기회를 잃으면 후회하여도 장차 미치지 못할 것이니, 너무 고집하여 반드시 그럴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지금 또 침모(侵侮)하는 기세가 다 없어지지 않았는데, 간첩질하는 무리를 갑자기 돌려보내는 것은 적(敵)에 대처하는 계엄(戒嚴)의 뜻이 아니니, 마땅히 모두를 구류하여 두고 죽지 않을 정도로 대접하다가, 명년 봄에 이르러 오랑캐의 정상을 자세히 살핀 뒤에 처치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고, 신용개(申用漑)는 의논드리기를,

"평시라 등이 도주(島主)의 지시를 받고 와서 우리의 얕고 깊음을 탐지하고 허실을 엿보며, 또 고변한다고 빙자하고 이어 위협하여 화친을 맺고자 하니, 그 교활하고 간사함이 더할 수 없습니다. 전후에 온 왜인 수를 계산하니 30여 인이나 되어 지금 만약 모두를 보내 준다면 그것은 도적의 군사를 도와서 그 세력을 신장(伸張)하게 하는 것이니 매우 옳지 않은 일입니다. 이 왜인들이 생명을 보전하여 옛땅으로 돌아가게 되면 은혜에 감복함이 깊을 것이지만, 그들의 섬에 돌아간 뒤에는, 반드시 섬 오랑캐들과 같이 될 것이니, 어찌 그들이 우리의 성은(聖恩)을 생각하여 홀로 그 무리를 배반하고 우리에게 성심을 바칠 것이라고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또 섬의 왜인들이, 우리 나라가 나온 왜인을 죽이지 않고 모두 돌려보낸 것을 보면, 비록 성조(聖朝)의 거칠고 더러운 것을 포용하여 교계하지 않는 도량에 감복할지라도, 그 사세(事勢)는 반드시 저절로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비록 혹 이로 인하여 다시 도둑질하지 않고 전심(專心)으로 화친을 빌지라도, 삼포(三浦)319) 에 왜인이 다시 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그 강화는 속히 이루어질 수 없고 입구(入寇)와 약탈은 그치지 않을 것이며, 삼포는 끝까지 허락할 수 없게 될 것이니, 그렇다면 이제 이 여러 왜인들을 돌려보내는 것은 그들의 원심(怨心)을 풀어 그들의 반란을 지식(止息)시키는 데 유익함이 없고 다만 그의 병력만을 보탤 뿐이니, 마땅히 벽읍(僻邑)에 나누어 유치하고 모두를 돌려보내지 말아서, 저들로 하여금 막막(漠漠)히 우리의 천심(淺深)을 알지 못하여 계책을 세우지 못하게 만드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이렇게 하고는 변방을 더욱 엄중하게 하고 조금이라도 이완(弛緩)하는 일이 없어서 그들의 침모(侵侮)를 막는다면, 저들은 장차 와도 얻는 것이 없고, 가서는 먹을 것이 없어서 그의 사세는 더욱 군색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화친을 빌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성의에서 나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니, 이때에 이르러 배로만 사신을 통할 것을 하락하고 또 내려보내 줄 물품의 수량을 정한다면, 저들은 장차 손을 거두어 잡고 명령을 들을 것입니다. 그래야만 화친을 오래도록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니, 그렇게 한 뒤에 이 왜인들의 귀환 여부를 다시 의논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신(臣)의 생각하는 바는 이와 같습니다.

그런데 여러 사람들의 의논은 말하기를 ‘우리 나라는 남방(南方)의 방수(防戍)가 허술한데, 왜노(倭奴)는 교활하고 경박하여 항상 도둑질을 일삼고 있으니, 어루만져 제어(制禦)하기가 가장 어렵습니다. 만약 방어가 그 방법을 그르치면 연해변(沿海邊)의 여러 곳을 드나들면서 도적질과 약탈을 감행하여, 백성이 미처 피하지 못하고 장수가 미처 구원하지 못하면 그 피해가 막심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종조(祖宗朝)에서 왜인을 대우함이 매우 후하였습니다. 근자에 삼포(三浦)의 반란은, 그들이 은혜를 배반하고 포악을 자행함이 심하였으니, 남김없이 다 죽일지라도 아까울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결국 화친하지 않을 수 없으니, 화친하지 않으면 해 끼침을 막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지금 평시라(平時羅) 등이 고변한다고 칭탁하고 있으나, 실은 우리에게서 화친할 수 있는 단서를 탐지하러 온 것입니다. 이제 만약 그를 유치(留置)하고 먼저 온 왜인들도 아울러 돌려보내지 않는다면, 저들은 장차, 우리가 그들을 다 죽였다고 하여 더욱 원망하는 마음을 품을 것이며, 또 우리의 대우가 엄중한 것을 보고 스스로 화친은 마침내 이루지 못할 것이라고 하여, 드디어 침구(侵寇)와 약탈의 계략을 일으켜 아침 저녁으로 변경을 침범하여 해를 잇달아 그치지 않는다면, 우리의 피해는 더욱 심각할 것입니다. 왜노(倭奴)의 반란을 겪은 뒤로부터 방비에 대한 일이 조금은 완비된 것 같으나, 스스로 믿을 수는 없습니다. 만약 불행하게 서북에 위난의 급보가 있으면 남방을 지키고 있던 장졸을 서북방에 나누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니, 그렇게 되면 적은 강하고 우리 군사는 약하여, 아마 계책을 세우기 어려울 것입니다. 지금 다만 평시라와 이라다라(而羅多羅)만을 유치하고 나머지는 다 돌려보낸다면, 도주(島主) 이하가, 스스로 반란을 일으킨 것을 국가가 조금도 용서하지 않을 것으로 알았는데, 이제 국가가 대우하는 것이 엄히 다스리는 데 이르지 않고, 왜노 중 온 자를 모두 돌아가게 허락한 것을 보고, 장차 성조(聖朝)의 천지 같은 큰 덕을 감대(感戴)하여 거의 화친할 수 있는 단서(端緖)가 있게 되어, 그들의 막다른 골목에 이른 개나 쥐가 물어뜯는 것과 같은 마음을 소화(消化)시킬 수 있을 것이며, 이렇게 하여 그들의 성심을 담아 화친을 비는 데 따라 그들과 통사(通使)를 허락한다면 변방의 근심을 늦출 수 있을 것입니다. 저들이 만약 반드시 침구(侵寇)하고 포악하고자 한다면, 이 35명의 왜인이 없더라도 어찌 스스로 횡포하지 못하고 이 35명의 왜인을 기다린 뒤에야 비로소 더욱 그 기세를 신장할 수 있겠습니까. 보내더라도 도적을 돕는 데 이르지 않고, 그 날카로운 마음을 해소시키기에 넉넉할 것입니다.’고 하였습니다.

신이 여러 사람의 논의를 보니, 계책하는 바가 신의 생각보다 더 나은 것 같았습니다. 그런 까닭에 신이 전일에 저의 의견을 고집하지 않고 또한 여러 사람의 의견에 따라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계책에는 장단이 있고 생각에는 잘잘못이 있어, 적의 책략을 헤아리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어렵게 여기는 바이니, 지금 이 논의는 관계되는 바가 실로 중대합니다. 널리 여러 사람의 계책을 채납하면 반드시 그중에 가장 좋은 것이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김수동(金壽童)·김봉(金崶)·최탁(崔濯)·노공필(盧公弼) 등의 의논도 이와 비슷하였다. 한위(韓衛)는 의논드리기를,

"전후의 왜인을 모두 돌려보내지 않는 것이 마땅할 것 같습니다만, 모두 돌려보내지 않는다면 도주(島主)가 청화 사신(請和使臣)을 반드시 다 죽였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니, 한갓 다시는 통신(通信)할 가망이 없을 뿐 아니라, 또한 반드시 원한을 품게 되어 이로 인하여 도적질할 꾀를 더욱 펴게 되면 변방의 백성이 생업에 안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중에서 도주가 사자로 보내 온 한두 사람은 돌려보내서 조정의 포용하는 뜻을 보이고, 그 나머지는 모두 유치하여 사세의 변천을 살펴보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고, 성몽정(成夢井)은 의논드리기를,

"신은 생각하기를, 이적(夷狄)과 강화하는 것은 중국의 불행인데, 더구나 화의(和議)가 우리에게서 먼저 나오고서 능히 오래도록 화친하였다는 것은 예전부터 듣지 못하였습니다. 전조(前朝) 말기에 나라 안에는 정치가 없고 연해변에는 방비가 없어서, 왜구(倭寇)가 빈 고을을 지나는 것처럼 들어왔으나, 그것을 가지고 오늘의 일을 논할 수는 없습니다. 태조께서 왜구를 토멸하고 세종(世宗)께서 대마도를 정벌한 뒤부터 위령(威靈)이 여러번 떨쳐서, 그들이 볼모되기를 청하고 주거의 터전을 받았을 때 70호로 한계를 정하였는데, 태평한 세상이 오래되면서 호령이 점차 너그러워져서 뱀과 살무사 같은 무리를 양성하여 이미 제어하기가 어렵게 되었었는데, 이제 다행히 저들이 화란을 일으켜 취락(聚落)이 아주 비게 되었습니다. 마땅히 이때에 힘써 나라의 위엄을 떨쳐 저들로 하여금 우리 땅을 엿보거나 염탐질하지 못하게 해서, 영원히 다시 우리 나라에 살 생각을 끊게 해야 할 것인데, 이에 도리어 배를 수리하고 식량을 갖추어서 적(賊)을 보호하여 위로해 돌려보낸다 하니, 그 사리와 형세를 살펴보건대, 화친하자는 단서가 먼저 우리에게서 나오면 복구(復舊)하고자 하는 생각이 저들에게 더욱 간절하여질 것입니다. 이 무리를 돌려보내는 것이 약함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제 남방은 성지(城池)가 점차 완성되어가고 사졸들이 분발할 줄 알게 되었으니, 만약 장수를 잘 선택하고 군사를 훈련하며, 봉화(烽火)와 후망(候望)을 신중히 한다면, 한 척의 배가 오는 것도 분명히 볼 수 있을 것이며, 그들이 오는 것을 미리 알고 미리 대비한다면 승리를 얻는 것은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저 적(賊)은 기일을 약속하여 군사를 모아야 하고 바람을 기다려서 바다를 건너와 입구(入寇)해야 하는데, 우리 군사는 육지에 있으면서 그들의 가는 방향을 살펴서 곳에 따라 변에 대응한다면, 노고와 비력(費力)은 저들에게 있고 승리는 우리편에 있을 것인데, 무엇이 두려워서 돌려보내고 강화를 요구하자는 논의가 이같이 급급합니까. 들으니, 바다의 도적에 대한 방비는 육지로 오는 도적보다 쉽다고 합니다. 그들이 배를 출발시키는 데는 반드시 바람을 살펴야 하니 역풍이 불면 배가 떠날 수 없고, 비나 눈이 오면 배가 떠날 수 없으며, 배를 멈추는 데는 반드시 처소가 있으니, 바위 벼랑 밑이면 정박할 수 없고 얕은 물가면 정박할 수 없습니다. 이러하니 우리 군사는 휴식할 때가 있고, 적로(賊路)의 요해처(要害處)를 쉽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에 제로(諸路)에서 왜인에게 주던 요(料)로써 군수(軍需)에 충당하고, 남쪽 지방의 젊은이들로서 유학을 업(業)으로 하지 않는 자를 토병(土兵)으로 하여, 번(番)을 고쳐 자주 쉬게 하고 쓸데없이 많기에 힘쓰지 말 것입니다. 만약 적이 변경에 들어오면 잡아 죽이지는 못할지라도 이르는 곳마다 뒤따라 쫓는다면 저들이 반드시 여러번 분심(忿心)의 군사를 일으켜 도적질을 그치지 않을 것이나, 우리는 그들의 오는 때를 타서 혹 나가 공격하기도 하고 혹 들어와 지키기도 하여, 사기(事機)의 편의에 따라 저들로 하여금 자주 불리(不利)를 초래하게 한다면, 두어 해를 넘기지 않아 그 병력은 저절로 곤고(困苦)하게 되고 자용(資用)은 자연히 다하게 되어서, 그 사세는 장차 백계(百計)를 내어 항복하고 먼저 화친할 뜻을 갖기에 여가가 없을 것입니다. 신은 또 들으니, 남방은 평소에 왜를 겁내어 풍문만 듣고도 무너져 달아났는데, 한 번 제포(薺浦)의 승첩을 겪고서는 돌을 들고 막대를 메고 쫓기를 원치 않는 자가 없다고 합니다. 이제 왜노를 보호해 돌려보낸다는 영(令)을 들으면, 반드시 투지가 저절로 쇠해지고 용기가 저절로 풀릴 것이니 또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이라다라의 무리는 전번의 논의에 따라서 나누어 구류해 두고, 섬 오랑캐들이 복종하는 날을 기다려서 다시 논의하여 처치하고, 평시라의 무리는 바로 전일 함성(陷城)하던 날, 함께 우리 백성을 죽이고 우리의 관고(官庫)를 노략질하고 관사를 불태웠으며 이제 또 간첩의 정상이 드러났으니, 비록 차마 다 죽이지는 못할지라도 마땅히 평시라는 쾌히 베어 죽이고 그 나머지 각인(各人)은 군공이 있는 집에 나누어 주어서 노예로 삼게 한다면, 마침내 우리의 백성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호랑이가 사나우나 굶주리고 피곤하면 사람이 시키는 대로 따릅니다. 왜인의 본성이 배반을 잘하나 역무(役務)에 복종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도적을 놓아 주는 것도 옳지 않은 일이거늘, 적을 보호하여 그 소굴로 돌려보내는 일이겠습니까. 신은 실로 온당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니, 상이 희안의 의논을 따랐다.

  • [註 319] 삼포(三浦) : 왜란이 있던 염포(鹽浦)·제포(薺浦)·부산포(釜山浦).

원문

○柳洵議: "薺浦人皆言, 而羅多羅奸狡, 頻數往來, 或久居浦所, 與恒居倭通情者也, 不宜還送。 觀察使據此以聞。 臣意以謂奸人在敵, 非我之利, 請但留此一人, 餘皆還送, 其後因鄭光弼所啓, 留置至今, 已數朔矣。 此輩雖在囚中, 如京軍官連續發遣防禦等事, 豈無所聞? 今若縱遣, 則將國事傳播國中, 果如政院之議。 況平時羅等, 初言報變, 變言請和, 言端不一, 奸狡亦甚, 其實不過窺覘我虛實而已。 敵人來諜者, 縱遣之, 使敵國知國家輕重, 益長輕侮之心, 尤爲不可。" 柳順汀、權鈞、成世貞、閔孝曾、姜渾、李季男、南袞、韓淑昌、鄭光弼、洪淑、慶世昌、朴說、韓世桓、閔祥安、李秉正、黃孟獻、柳仁濠、李良、柳世琛、金寬、柳仁貴、金硡、宋好義、魚得江、崔淑生、李鐵鈞、成世昌、李膂、權橃、金世弼、金克愊、許硡、申嚴、徐厚、洪彦弼、金希壽、黃汝獻、鄭士龍、金應璧、柳墩、潘碩枰、兪仲翼、李守英、柳潤德、鄭荃、李孝彦、蔡忱等議同。 成希顔議: "而羅多羅、平時羅等, 前後來倭, 總三十七人, 前來倭, 初不與叛亂, 無罪者也, 後來倭, 意在窺覘, 而托言報變, 實狡詐反覆者也。 然是輩人面獸心, 不足多責。 彼島背恩忘德, 自知其罪, 謂此前後倭, 久不回還, 必皆已置大戮, 其父母妻子, 哀慟之狀, 森然可想。 今若許還, 則不唯島中, 咸服我天地包容之德, 其父母兄弟妻子, 德我必深, 他日革面回心, 叩關乞和之念, 未必不由此而生也。 使倭畏威懷德, 正在今日。 彼之來寇, 我制之甚嚴, 彼㤼我勇, 我勝彼破。 我有良將猛卒, 守禦之固, 彼終有不得已講和之請。 觀今事勢, 操縱在我, 一失其機, 時難再得。 若不許還其類, 感激其心, 杜絶納款之路, 釀成蜂螫之毒, 經年歷歲, 戍卒疲倦。 兵家勝敗, 亦或難料, 乘間竊發, 侵擾不止。 萬有蹉跌, 受害慘酷, 彼勢漸張, 我軍畏縮。 幸復兩界有事, 將士分戍, 兵力弱損。 遇此之時, 始爲之計, 還其來倭, 誘以投誠, 則其早不規畫之悔, 何可勝言? 假如彼速請和, 必一如前日接待節目, 少無差減, 乃快於心, 其復來居者之願, 斷不可許。 且於接待節目之中, 亦多有改絃易轍之事, 以故彼雖請和, 我不可卽許, 我雖許和, 彼亦不肯。 卽從此非朝夕可決, 動經歲月, 彼迫於無可奈何之勢, 然後庶或有成。 安可久留其類, 以緩彼輸平之期乎? 況來倭, 多至三十七數, 如雜處郡邑, 永許爲民, 則凡所賴生理之具, 無不備給, 妻以此土之婦。 歲月積多, 生齒必繁, 異類滋蔓, 誠非細故。 如徐觀其勢, 待時許還, 則諳盡我國諸處虛實, 傳播本島, 事體不便。 詳究利害, 孰如賜環之速也。 若平時羅, 本以向化倭, 來居國都, 蒙被國恩深重, 齎書契而去, 久不來歸, 今又假托報變, 欺詐莫甚。 而羅多羅, 凶狡有餘, 包藏難測, 素爲邊氓所忌。 方當彼我構釁之時, 竝令回歸, 非計之得, 仍留之爲當。 臣意如是, 前日亦以此議啓。" 鄭眉壽議: "本島地瘠民貧, 其所生生, 專賴我國。 或因請和報邊, 連緜繼出者, 數至千百。 殺之則無名, 待接則難當, 後日之計, 不可不慮。 臣意以爲, 亂前來朝而羅多羅等, 分置爲奴, 今來平時羅, 更問變詐之狀, 明正典刑, 餘倭還送, 使虜輩服其威武, 而以絶後日窺覘之奸, 幸甚。" 朴安性議: "前後倭人等, 或云不知亂作之由, 或云報變而來, 皆飾詐不信之言也。 必窺覘虛實之謀也, 不可使還本島, 以貽後患。 臣意以謂開諭其罪, 使無孑遺何如?" 金應箕議: "待夷之道, 來寇則討之, 其無辜則旋卽發還, 以明示恩威可也。 今此倭人, 若不遣還, 島主必以爲盡殲, 構怨益深, 永絶納款之心。 兵連禍結, 衝東擊西, 寇抄不已, 則邊氓必被其害。 且守邊軍卒, 越數朔相代之時, 必侵漁步卒, 盡賣家産, 行齎居送, 曾未一期, 財殫力竭, 將不能支, 國家將何術而救之? 且將士有武才者, 類皆分戍南方, 西北脫有緩急, 亦將何以應之? 請依前議, 竝速放還何如?" 李蓀、辛允武、朴永文議類此。 洪景舟議: "待夷之道, 要在恩威竝行。 今宜只留而羅多羅、平時羅二人, 而餘可還送。 但此國家大事, 一失其機, 悔將無及, 不可偏執以爲必然也。 今又侵陵之勢未殄, 而反間之徒遽還, 非待敵戒嚴之意也。 宜竝拘留, 待以不死, 至明春, 審察虜情, 然後處置何如?" 申用漑議: "平時羅等, 受島主指揮, 來探我淺深, 以覘虛實, 且憑告變, 仍欲刼和, 其狡詐奸譎莫甚。 計倭前後來者三十餘人, 今若竝送, 則是藉(冠)〔寇〕 兵而張其勢, 不可之甚也。 此倭雖得全性命, 還于舊土, 感恩之深, 而反還其島, 則必與島倭爲同, 豈能保其念我聖恩, 獨自違其類, 而效誠於我乎? 且島倭, 見國家不誅來倭, 竝許送還, 雖感服聖朝包荒不較之量, 然其勢必不自戢也。 雖或因此而不更作寇, 專心乞和, 然不得許還三浦, 則其和不可速成。 寇抄將不已, 而三浦終不可許。 然則今此諸倭之還, 無益於消其心止其怨弭其亂, 而祗益其兵耳。 宜分置僻邑, 竝勿送還, 令彼漠然莫知我淺深, 無以爲計可也。 如是而益嚴邊鄙, 無或小弛, 以御其侮, 則彼將來無所得, 去無所食, 其勢益窘, 而乞和之心, 不得不出於誠懇也。 至是只許約船通使, 且定賫送數, 則彼將斂手聽命, 而和可保其久也。 然後此倭可還與否, 方可更議。 臣所料如是, 群議乃曰: ‘我國南方防戍虛疎, 而倭奴狡詐輕僄, 常以寇次爲事, 撫禦最難。 若禦失其方, 則沿邊諸地, 出入寇抄, 民不及避, 將不及救, 其爲害莫甚。 以此祖宗待倭甚厚。 頃者三浦叛亂, 其背恩逞惡甚矣, 雖殲之, 無足惜。 然終不可不和, 不和則爲害難防。 今平時羅等, 雖托以告變, 實欲探我可和之端而來也。 今若留置, 竝與前來諸倭而不還, 則彼將謂我盡殺, 而益懷怨情。 且見我待之之嚴, 自謂和終不成, 遂起寇掠之計。 朝夕犯邊, 連年不止, 則我之受害益深。 自經倭奴叛亂之後, 防備之事, 雖似粗完, 然不可自恃。 若不幸有西北之警, 則將卒之南戍者, 不得不分於西北, 敵鉅而兵弱, 恐難爲計。 今只留平時羅、而羅多羅, 而餘皆送還, 則島主以下, 自知造亂, 恐國家不少容貸。 今見國家所以待之者, 不至深治, 倭奴之來者, 竝許還歸, 將感戴聖朝天地之大德, 庶幾有可和之端, 而消化其狗鼠噬囓之心。 如是而因其投誠乞和, 許其通使, 則邊患可紓也。 彼若必欲寇暴, 則雖無此三十五倭, 豈不能自橫, 而待此三十五倭, 然後始得益張其勢乎? 送之不至資寇, 而足以消其心鋒。’ 臣觀群議所策, 似有長於臣之所料, 故臣於前日, 不執己見, 亦從群議獻說焉。 策有長短, 慮有得失, 料敵之策, 古今所難。 今此之議, 所關實重, 博採群策, 必有得其最長者。" 金壽童、金崶、崔灌、盧公弼等議類此。 韓偉議: "前後倭人, 竝不還送似當, 然若皆不送, 則島主以爲請和使臣, 必皆殺之, 非徒更無通信之望, 亦必生怨。 因此作賊之謀益張, 邊氓未得安業。 其中稱島主使送一二人還送, 以示朝廷包容之意, 其餘竝留置觀變何如?" 成夢井議: "臣謂與夷狄講和, 中國之不幸。 況和議, 先出於我, 而能久和者, 自古未聞。 前朝末, 國內無政, 沿海無備, 倭寇之來, 如乘虛邑, 不可以此論今日也。 自太祖滅倭寇, 世宗征馬島, 威靈累振, 請質受廩, 以七十戶爲定。 昇平日久, 號令浸寬, 養成蛇虺, 已至難制。 今幸自作禍亂, 聚落一空, (常)〔當〕 及是時, 務振國威, 使彼不得窺諜我境, 永絶復居我土之念, 乃反修舟楫具糧餉, 護賊慰還。 觀其理勢, 請和之端, 先出於復舊之念, 益切於彼, 遣還此類, 非弱而何? 今南方城(地)〔池〕 漸完, 士卒知奮, 若能選將鍊兵, 謹烽火候望, 則隻船之來, 歷歷可見。 知其來而預爲之備, 是制勝在我。 彼賊約期聚兵, 待風渡海入寇, 我軍在陸, 審其去向, 隨處應變, 是勞費在彼, 制勝在我。 有何所懼, 而遣還求和之議, 如是汲汲乎? 聞海寇之備, 易於陸寇。 其發船必候風, 風逆則不能發, 雨雪則不能發。 其泊舟必有處, 巖崖則不得泊, 淺渚則不得泊, 是則吾軍休息有時, 賊路要害易知。 於是以諸路倭料之費, 爲軍需, 以南方子弟不業儒者, 爲土兵, 更番數休, 不務冗多。 賊若進邊, 雖不得檢殺, 到處追逐, 彼必屢興忿兵, 爲寇不已。 我乘其來, 或出擊或入保, 任事機便宜, 使彼數致不利, 則不出數年, 其兵力自困, 資用自竭, 其勢將百計投降, 不暇先意和親。 臣又聞南方, 素怯倭變, 聞風奔潰, 一經薺浦之捷, 莫不欲握石荷杖從之。 今聞倭奴護還之命, 則必鬪志自衰, 勇氣自解, 亦不可不慮。 臣愚意以爲, 而羅多羅之類, 依前臣議, 分置拘留, 以待島夷革面之日, 更議處置, 平時羅之徒, 乃前日陷城之時, 與殺吾民, 與賊官庫, 與焚官舍, 今又諜狀已露, 雖不忍盡殺, 當快誅平時羅, 其餘各人, 給付有軍功之家, 使做奴隷, 可終爲吾民矣。 虎狼雖惡, 飢困則從人, 倭性雖反側, 有可以服役。 縱賊尙不可, 況護賊還窟穴乎? 臣實以爲未便。" 上從希顔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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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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