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실록10권, 중종 5년 1월 19일 丙子 6/6 기사 / 1510년 명 정덕(正德) 5년
이자견 등이 임금의 납간 등에 대해 상소하다
국역
홍문관 부제학 이자견(李自堅) 등이 상소하였다.
"신 등이 듣건대, 간함을 받아들이는 길이 넷이 있다 합니다. 마음과 행동에 과실이 없고 다스리는 도리에 결함이 없는데도, 오히려 경계하는 말을 듣고자 하여, 충성을 바치도록 인도하고 말을 다하도록 권장하는 것은, 이를 낙간(樂諫)이라 하는데, 낙간하는 자는 흥합니다. 마음과 행동에 과실이 없지 않고 다스리는 도리에 결함이 없지 않으나, 말하면 곧 깨닫고 들으면 곧 고치는 것을 납간(納諫)이라 하는데, 납간하는 자는 창성합니다. 마음과 행동에 과실이 있어서 바로 잡아주면 기뻐하지 않고, 다스리는 도리에 결함이 있어서 간하여 다투어도 고치기를 싫어하는 것은 이를 염간(厭諫)이라 하는데, 염간하는 자는 쇠합니다. 허물과 악이 날로 드러나는데도 말하는 사람을 미워하고, 국사가 날로 글러 가는데도 강경하게 다투는 사람을 미워하여 간하는 말을 행하지 않고 반드시 주벌(誅罰)을 주는 것은 이를 노간(怒諫)이라 하는데, 노간하는 자는 망합니다.
생각하옵건대, 주상 전하께서 경적(經籍)에 유심하시어 경연(經筵)에 부지런히 나오시고, 풍악과 여색(女色)과 유연(遊宴)과 사냥 같은 사치스러운 행락을 가까이 하지 않으시며, 정성을 다하여 정치에 힘써 부지런히 백성을 구휼하여, 마음을 해이하게 하지 않으시니, 훌륭한 임금[懿主]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즉위하신 지 5년이 되는 지금, 마음을 가다듬고 옛날의 성제 명왕(聖帝明王)을 기약하는 중에도, 재상이 진견(進見)할 때에 일찍이 나라 다스리는 방법을 묻지 않고, 시종(侍從)이 둘러있는 자리에서도 일찍이 도를 이루는 학문을 묻지 않고, 대간이 나아가 말하는데도 다만 더듬더듬하면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모습을 보이실 뿐입니다. 그렇다면 전하께서는 간하는 말에 대하여 이미 즐거워하지 않으시고, 또 받아들이지도 아니하시니, 듣기 싫어함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아직 노하는 데는 이르지 않았으나 그것은 작은 간격일 뿐입니다. 마음과 행동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닦아지며, 치도(治道)가 무엇으로 말미암아 나오겠습니까? 전하께서는, 간언을 듣는 것이 치란(治亂)에 관계가 있는 줄 모르십니까? 신 등은 사리를 헤아리고 옛일을 증험하여, 전하을 위하여 그 효험을 말하겠습니다. 요(堯)임금에게는 착한 이를 나오게 하는 깃발이 있었고, 순(舜)임금은 묻기와 살피기를 좋아하였고, 우(禹)임금은 착한 말[昌言]을 들으면 절했으니, 이것이 낙간(樂諫)하는 자의 흥함이 아닙니까? 이윤(伊尹)이 훈계050) 하니 태갑(太甲)이 허물을 뉘우치고, 주공(周公)이 무일편(無逸篇)051) 을 바치매 성왕(成王)이 덕을 성취하였습니다. 한 문제(漢文帝)는 치안의 계책052) 을 얻어 거의 형벌을 쓰지 않게 되었고, 태종(太宗)이 십점소(十漸疏)053) 를 받아들여 당(唐)나라 황실이 더욱 융창하였습니다. 이것이 납간하는 자의 창성함이 아니겠습니까? 한 무제(漢武帝)가 급암(汲黯)054) 의 엄함을 꺼리니 국내가 공허하고, 당(唐)나라 현종(玄宗)이 한휴(韓休)의 곧은 말을 꺼리니 얼호(孽胡)055) 가 창광(猖狂)하였습니다. 효원(孝元)056) 이 경생(京生)057) 의 말을 소원하니 효선(孝宣)의 사업이 떨치지 못하고, 송(宋)나라 철종(哲宗)이 순인(純仁)058) 의 말을 거절하니, 원우(元祐)의 정치가 점점 무너졌습니다. 이것이 염간(厭諫)하는 자의 쇠함이 아니겠습니까? 걸(桀)059) 이 관용봉(關龍逢)을 죽이고, 주(紂)060) 가 왕자 비간(比干)을 죽였습니다. 자서(子胥)061) 가 죽음을 받으니 부차(夫差)가 망하고, 설치(洩治)062) 가 살해당하니 진 영공(陳靈公)이 시해(弑害)되었습니다. 이것이 노간(怒諫)하는 자의 망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대저 간하는 것을 즐거워하지 않으면 그 폐해가 반드시 받아들이지 않는 데 이르고, 간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폐해가 반드시 듣기 싫어하는 데 이르고, 간하는 것을 들기 싫어하면 그 폐해가 반드시 노하여 미워하는 데에 이릅니다. 노하여 미워하게 되면, 악과 허물이 날로 드러나도 듣지 못하고, 패망이 반드시 이르는데도 알지 못하게 되니, 두려운 일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옛 제왕(帝王)은 자신의 허물이 있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을 근심하고, 알면 곧 고치며, 정치의 잘못이 있는 것을 듣지 못하는 것을 근심하고, 들으면 곧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일의 크고 작음이 없이, 간원(諫院)이 논란하여도 들어 주지 않고, 헌부(憲府)가 논란하여도 들어 주지 않으며, 합사(合司)하여 궐문을 지켜도 들어 주지 않고, 피직(避職)하여 굳게 다투어도 들어 주지 않으매, 시종(侍從)이 부득불 그 잘못을 간하고, 대신이 부득불 그 폐해를 말하여도, 막연히 고집하여 들어 주지 않고, 반드시 육조(六曹)가 합사(合辭)하고 정부가 동계(同啓)한 뒤에야, 마지못하여 좇습니다. 이것은 근일에 있어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즉위하신 뒤로 이미 예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렇다면 전하께서 간함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 말이 이치에 합당하여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보아 들어 주고, 그 형세를 보아서 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말이 진실로 이치에 합당하면, 추요(芻蕘)063) 의 말이라도 취하고 광부(狂夫)의 말이라도 택하여야 합니다. 어찌 반드시 대간의 말을 거절하고, 시종의 말을 물리치고, 은인(隱忍)하여 듣지 않고, 이럭저럭 결단하지 아니하여 그럭저럭 몇 달이 지나는 동안에, 공론(公論)이 오래 굴(屈)하고 인정이 억울하여, 일국의 힘을 움직이고 만민의 청문(聽聞)을 놀라게 한 뒤에야 비로소 받아들이니, 전하가 간언을 싫어하시는 것이 여기서 극도에 달하였습니다.
대저 벼슬을 설치하고 직책을 나누는 데에는 각각 그 소임이 있습니다. 대간(臺諫)은 말하는 것이 책임이니, 그 말이 이치에 거슬리지 않으면 본디 따라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여러 달을 고집하여 다투었는데도 들어 주지 않고, 반드시 육조와 정부가 함께 아뢰기를 기다리시므로, 말하는 책임이 있는 자는 그 이름만을 지키고 그 일을 맡아 하지 못하게 되니, 이것은 나라의 체통(體統)을 잃은 것입니다. 전하께서 간쟁을 싫어하시는 마음이 있으므로, 국시(國是)가 정하여지지 않고 의논이 화목하지 않으니, 이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데에 있어서의 큰 병통입니다. 신 등이 듣건대 천하의 사변은 무궁하나, 그 이치를 찾아 보면 시(是)와 비(非)에 지나지 않을 따름이니, 옳으면 천하가 다 옳다 하고, 그르면 천하가 다 그르다는 것입니다. 어찌 여기서는 옳고, 저기서는 그를 수가 있겠습니까? 지금 조정에서 한 일을 의논하게 되면 대간은 옳다 하는데 재상은 반드시 옳지 않다 하여, 옳음과 옳지 않음이 서로 맞서니, 그 중에는 반드시 참으로 옳은 것과 참으로 그른 것이 있어 정론(定論)이 있을 것입니다. 한 사람을 의논하면, 대간이 그르다 하는데, 재상은 반드시 그르지 않다고 하여, 그름과 그르지 않음이 서로 맞서니, 그 중에는 반드시 참그름과 참그르지 않음이 있고, 정론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옳음과 옳지 않음의 사이와, 그름과 그르지 않음의 가운데가, 여러 사람의 마음의 시기가 쌓이고 노여움이 자라나는 곳입니다. 임금이 만약 밝게 살피고 굳게 결단하지 못하여,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좇고 스스로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좇지 않으며, 스스로 그르다고 생각하는 것을 물리치고 스스로 그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물리치지 않는다면, 그 해는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아아, 이미 성실을 발해서 곧게 간하지 못하고, 은밀히 공론을 억제하여 자기의 사사로움을 이루려는 자는 그것이 무슨 마음이겠습니까? 신 등은 멀리 옛일을 인용할 것 없이 바로 눈앞의 보고 듣는 것으로 밝히겠습니다. 을묘년064) 이후로 대신들중에 대개 이기기를 좋아하는 자가 많아, 대간의 말이 혹시라도 그 뜻에 거슬리면 옳고 그른 것을 생각하지 않고, 반드시 큰 소리로 꺾으면서 제 스스로 그른 것을 옳다 하여, 조정에 분쟁을 일으키고 언로를 막아서, 임금이 위태롭고 제 몸이 살육되기에 이르렀으니, 은감(殷鑑)이 될 만한 일입니다. 옛날 우(禹)임금은 밖에 나갔다가 죄인을 보면 수레에서 내려 울며 말하기를, ‘요(堯)·순(舜) 때 사람은 요·순의 마음으로 마음을 삼았는데, 과인(寡人)이 임금이 되어서는 백성이 각자 그 마음으로 마음을 삼으니, 이래서 마음 아프다.’ 하였습니다. 우임금은 백성이 마음을 달리하는 것을 보고 마음 아파하며 울었습니다. 지금은 조정이 각각 그 마음을 달리하는데, 전하께서는 마음 아프지 않으십니까? 유향(劉向)이 말하기를, ‘여러 어진이가 조정에서 화목하면 만백성이 들에서 화목한다.’ 하였으며, 동중서(董仲舒)는 말하기를, ‘사람의 하는 일이 미(美)와 악이 극하면, 천·지(天地)와 서로 유통(流通)한다.’ 하였습니다. 지금 재상과 대간이 제각기 다른 의논을 지키고, 전하는 좇을 바를 알지 못하시니, 조정이 불화한다 하겠습니다. 조정이 불화한데, 만민을 화육(化育)하고 천지를 화합하게 하려 한들, 또한 먼 일이 아니겠습니까? 근자에 천문(天文)이 차서를 잃어서, 태백성(太白星)이 낮에 보이고, 곡식이 이상을 보이고, 돌림병이 크게 일어나고, 홍수·가뭄·바람·우박이 함께 곡식을 상하니, 이것은 음양이 고르지 못하고 천지가 화합하지 못한 징험입니다. 신 등은 전하의 하늘에 응하는 어짊은 보지 못하였고, 간함을 싫어하는 단서는 이미 원근에 알려졌으니, 신 등은 매우 애석함을 이기지 못합니다. 시비가 끝내 정해지지 않고, 조정이 끝내 화목하지 못하기야 하겠습니까? 신 등이 듣건대, 저울이 바르면 가볍고 무거움이 틀리지 않고, 거울이 맑으면 곱고 미움이 어지럽지 않다 합니다. 임금은 진실로 그 본원(本源)을 다스려 평평하기 저울 같고 맑기를 거울같이 하고서, 서로 다른 의논이 일어나면 반드시 마음에 생각하여 보기를, ‘누구는 옳고, 누구는 옳지 않다.’ 하고 만일 그 말이 공정하면 허심탄회(虛心坦懷)하게 받아들이고, 공정하지 않으면 단연 거절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국시가 어찌 정하여지지 않겠습니까? 국시가 정해지면 여러 아랫사람들이 자연 마음을 같이하여 정사를 보좌해서 만사가 각각 그 이치에 맞을 것이니, 정치를 하는 도는 이렇게 하는 데 지나지 않을 뿐입니다.
신 등이 가까이 경악(經幄)에 있으면서, 전하께서 확실히 노간(怒諫)의 조짐이 없음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염간(厭諫)하시는 과실은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말을 받아들이는 도량을 넓히시어, 납간(納諫)할 뿐만 아니라 반드시 낙간(樂諫)하는 데 이르시게 된다면, 종묘 사직에 다행하겠습니다."
전교하기를,
"상소의 뜻이 나의 병통을 바로 맞혔다. 그 중에, ‘재상이 진견하여도 나라 다스리는 방법을 묻지 않고, 시종이 둘러 있어도 도에 나가는 학문을 묻지 않는다.’ 하였는데, 물어야 할 일이 있으면 어찌 묻지 않을 것이냐? 근자에 대신과 시종이 인군을 사랑하고 백성을 근심하여, 정사의 득실과 민간의 폐막(弊瘼)을 다 말하지 않음이 없으니, 물을 일이 없다. 신하가 입시할 때에 품은 생각이 있으면 어찌 반드시 묻기를 기다려서 말할 것이냐? 마땅히 무엇이든지 말할 줄 알아야 한다. 또 조정이 불화하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크게 놀랄 일이다. 재상과 대간이 말을 달리하여 왈가왈부하더라도 무엇이 해로우랴? 상소의 뜻이 매우 마땅하니, 이 글을 조정에 보이라."
하였다.
- [註 050] 이윤(伊尹)이 훈계 : 《서경(書經)》 상서(商書) 이훈(伊訓)에 전한다. 은(殷)나라의 어진 신하 이윤이 임금 태갑(太甲)에게 은나라 역대의 치적(治績)을 말하고, 하늘은 선한 일을 하면 돕고 악한 일을 하면 벌을 준다는 것을 말한 내용이다.
- [註 051] 무일편(無逸篇) : 《서경(書經)》 주서(周書)의 편명. 주(周)나라의 주공(周公)이 어린 조카 성왕(成王)을 경계하기 위하여 지은 글. 즉 전 왕조인 은(殷)나라가 망하게 된 원인과 주나라가 흥하게 된 경로를 들어서 임금이 안일하면 나라가 망하고, 무일(無逸), 즉 편안함이 없이 부지런하면 국가가 흥한다는 내용을 담은 것이다.
- [註 052] 치안의 계책 : 한(漢)나라의 문신 가의(賈誼)가 건의한 시국 광제(匡濟)의 대책을 말한 것이다. 한나라 문제(文帝)는 여러 가지로 선한 정치를 계획, 시행하던 중, 특히 신진 문신 가의의 시국 구제를 위한 치안 계책을 받아들여 시행하여 거의 죄인이 없는 평화 사회를 이루게 되었다. 《한서(漢書)》 가의전(賈誼傳).
- [註 053] 십점소(十漸疏) : 당(唐)나라의 어진 신하 위징(魏徵)이 당 태종(太宗)에게 올린 상소. 태종의 정치가 중간에 점점 태만해지자 위징이 임금의 태만해지는 열 가지의 조짐을 열거하여, 태종의 반성을 촉구한 내용임. 《당서(唐書)》 위징전(魏徵傳).
- [註 054] 급암(汲黯) : 한나라 때 임금 앞에서도 직언(直言)하기로 유명한 사람.
- [註 055] 얼호(孽胡) : 안녹산(安祿山)을 지칭. 녹산은 본래 잡호(雜胡) 출신이라 함.
- [註 056] 효원(孝元) : 서한(西漢) 말기의 황제.
- [註 057] 경생(京生) : 한(漢)나라 효원제(孝元帝) 때의 문신 경방(京房). 이 때 권신 석현(石顯)이 홍공(弘恭)을 대신하여 중서령(中書令)이 되어, 유약한 임금 원제를 제쳐놓고 국정을 마음대로 하였는데, 경방이 황제에게 재변이 자주 나타나는 것은 이유가 있다 하고, 은밀히 석현의 제거를 건의하였지만, 원제가 듣지 않았기 때문에, 경방은 석현에 의하여 살해되고, 효선제(孝先帝)가 힘써 이룩한 사업은 위미 부진(萎微不振)하게 되었다. 《한서(漢書)》 경방전(京房傳).
- [註 058] 순인(純仁) : 송대의 어진 대신 범중엄(范仲淹)의 아들. 송(宋)나라 철종(哲宗) 때 우복야(右僕射)로 국정을 보좌하였는데, 어진이의 등용을 힘써 주장하였지만 철종이 듣지 않았기 때문에, 나중에는 장돈(章惇) 등 권신의 전횡(專橫)으로 많은 어진 관원이 축출되어, 원우(元祐) 연간 즉 철종 즉위 초 8년 간의 업적이 모두 무너지고 말았다. 《송사(宋史)》 권314.
- [註 059] 걸(桀) : 하(夏)나라의 폭군.
- [註 060] 주(紂) : 은(殷)나라의 폭군.
- [註 061] 자서(子胥) : 오(吳)나라의 충신.
- [註 062] 설치(洩治) : 춘추(春秋) 때 진(陳)나라의 충신.
- [註 063] 추요(芻蕘) : 꼴 베고 나무 베는 사람.
- [註 064] 을묘년 : 1495 연산군 1년.
원문
○弘文館副提學李自堅等上疏曰:
臣等聞聽諫之道有四。 心行無失, 治道無虧, 而猶欲聞箴警, 開道以獻忠, 誘奬以盡說, 是謂樂諫, 樂諫者興。 心行不能無失, 治道不能無虧, 言之而卽悟, 聽之而卽改, 是謂納諫, 納諫者昌。 心行有過, 正之而不喜, 治道有虧, 爭之而吝改, 是謂厭諫, 厭諫者衰。 過惡日彰, 而惡人有言, 國事日非, 而疾人强爭, 聽諫不行, 而誅罰必加, 是謂怒諫, 怒諫者亡。 恭惟主上殿下留心經籍, 勤御經筵, 聲、色、遊、田, 侈靡之樂, 不接於身, 勵精圖治, 勤恤之志, 不弛於心, 可謂懿主矣。 然臨御以來, 五年于玆, 孜孜焉銳意勵志, 以古聖帝明王自期, 而宰相之進見, 未嘗訪理國之術, 侍從之環列, 未嘗問造道之學, 臺諫之進說, 徒見吃吃乎難入。 然則殿下之於諫言, 旣不能樂, 又不能納, 非厭聞而何? 其不至於怒, 特一間耳, 心行何由而修, 治道何由而隆? 殿下未知聽諫之有關於治亂歟? 臣等揆之事理, 驗之於古昔, 爲殿下深言其效。 堯有進善之旌, 舜好問好察, 禹聞昌言則拜, 此非樂諫者興歟? 伊尹有訓戒, 而太甲悔過, 周公獻無逸, 而成王成德, 漢 文得治安策, 而幾致刑措, 太宗受十漸疏, 而唐室益隆, 此非納諫者昌歟? 漢 武憚汲黯之嚴, 而海內虛耗, 玄宗忌韓休之直, 而孽胡猖狂, 孝元疎更生之說, 而孝宣之業不振, 哲宗拒純仁之言, 而元祐之治陵夷, 此非厭諫者衰歟? 桀殺關龍(逢)逄, 紂殺王子比干, 子胥賜死, 而夫差就亡, 洩治見殺, 而陳靈被弑, 此非怒諫者亡歟? 大抵諫之而不樂, 則其弊必至於不納, 諫之而不納, 則其弊必至於厭聞, 諫之而厭聞, 則其弊必至於怒惡, 怒惡則惡過日彰而不聞, 喪亡必至而不知, 可不懼哉? 是故古之帝王, 患不知身之有過, 知之卽改, 患不聞治之有失, 聞之卽聽。 今則不然。 事無大小, 諫院論之而不聽, 憲府論之而不聽, 合司守闕而不聽, 避職固爭而不聽。 侍從不得不諫其失, 大臣不得不言其弊, 而猶邈然堅執不聽, 必待六曹合辭, 政府同啓後, 黽勉從之。 非徒近日爲然, 臨御以後, 已爲成例。 然則殿下之聽諫, 非聽其言之當理, 聽其人而已, 聽其勢而已。 言苟當理, 芻蕘可採, 狂夫可擇。 何必拒臺諫之言, 退侍從之說, 隱忍不聽, 優游不斷, 動經數月, 公論久屈, 人情鬱抑, 至動一國之力, 駭萬民之聽而後, 始納焉, 殿下之厭諫, 於此極矣。 夫設官分職, 各有其任, 則臺諫者, 以言爲責, 其言若不悖於理, 固當曲從。 今累月固爭而不聽, 必待六曹政府之同啓, 使有言責者, 徒守其名, 而不任其事, 此爲國失其體統者也。 殿下有厭諫之心, 故國是不定, 議論不和, 此有國之大病也。 臣等聞天下之事變, 雖無窮, 原其理, 則不過是與非而已。 是則天下皆是也。 非則天下皆非也, 安有是於此, 而非於彼乎? 今之朝廷, 議一事則臺諫以爲是, 而宰相必以爲不是, 是與不是相對, 其中必有眞是眞不是, 而定論存焉。 論一人則臺諫以爲非, 而宰相必以爲不非, 非與不非相對, 其中必有眞非眞不非, 而定論存焉。 然而是與不是之間, 非與不非之中, 此衆心積猜蓄怒之地, 人君若不明以察之, 剛以斷之, 從其是而不從其不是, 退其非而不退其不非, 則其害有不可勝言矣。 嗚呼! 已不能奮忠直諫, 而陰抑公論, 以濟己私者, 顧何心哉? 臣等不暇遠引古昔, 直以耳目之所睹記明之。 自乙卯以後, 爲大臣者, 率多好勝。 臺諫所言, 或忤其意, 不顧是非, 欲大言折之, 以自是其非, 馴致朝廷乖爭, 言路閉塞, 至於主危身戮, 足爲殷鑑。 昔者大禹出見罪人, 下車而泣曰: "堯、舜之人, 以堯、舜之心爲心, 寡人爲君, 百姓各自以其心爲心、 是以痛之也。" 禹見百姓之異心, 猶爲之痛泣, 今則朝廷各異其心, 殿下猶不足痛心乎? 劉向曰: "衆賢和於朝, 則萬民和於野。" 董仲舒曰: "人之所爲, 其美惡之極, 乃與天地, 相爲流通。" 今宰相、臺諫, 各守異論, 殿下莫適所從, 朝廷可謂不和矣。 朝廷不和, 而欲萬民之育, 天地之和, 不亦遠乎? 近者天文失序, 太白晝見, 禾稼示異, (厲疫)〔癘疫〕 大興, 水旱風雹, 俱爲傷穀, 此陰陽失調, 天地不和之驗也。 臣等未見殿下應天之賢, 而厭諫之端, 已聞遠近, 臣等不勝痛惜。 是非其終不定, 朝廷其終不睦乎? 臣等聞衡正而輕重不差, 鑑空而姸媸不亂。 人主苟能治其本源之地, 平如衡空如鑑, 而異論之起, 必思於心曰, 孰爲是孰爲不是, 若其言公, 虛懷受之, 如其不公, 斷然拒之, 則國是何患不定? 國是旣定, 則群下自然同心輔政, 萬事各當其理, 爲治之道, 不過如斯而已。 臣等昵侍經幄, 非不知殿下保無怒諫之兆, 而厭諫之失, 不得不慮。 伏願殿下, 恢弘受言之量, 不徒納諫, 而必至於樂諫, 宗社幸甚。
傳曰: "上疏之意, 正中我病。 其曰: ‘宰相進見, 不訪理國之術, 侍從環列, 不問造道之學。’ 有可問之事, 則豈不問乎? 近者大臣、侍從, 愛君憂〔國〕 , 時政得失, 民間弊瘼, 無不盡言, 無有所問事也。 人臣入侍於前, 有懷抱, 則何必待訪而言之耶? 當知無不言也。 且以爲 ‘朝廷不和。’ 此可驚駭。 雖宰相、臺諫異言, 曰可曰否, 庸何傷乎? 疏(忌)〔意〕 甚當, 其以此疏, 示諸朝廷。"
중종 5년 (1510) 1월 19일
중종실록10권, 중종 5년 1월 19일 丙子 6/6 기사 / 1510년 명 정덕(正德) 5년
이자견 등이 임금의 납간 등에 대해 상소하다
국역
홍문관 부제학 이자견(李自堅) 등이 상소하였다.
"신 등이 듣건대, 간함을 받아들이는 길이 넷이 있다 합니다. 마음과 행동에 과실이 없고 다스리는 도리에 결함이 없는데도, 오히려 경계하는 말을 듣고자 하여, 충성을 바치도록 인도하고 말을 다하도록 권장하는 것은, 이를 낙간(樂諫)이라 하는데, 낙간하는 자는 흥합니다. 마음과 행동에 과실이 없지 않고 다스리는 도리에 결함이 없지 않으나, 말하면 곧 깨닫고 들으면 곧 고치는 것을 납간(納諫)이라 하는데, 납간하는 자는 창성합니다. 마음과 행동에 과실이 있어서 바로 잡아주면 기뻐하지 않고, 다스리는 도리에 결함이 있어서 간하여 다투어도 고치기를 싫어하는 것은 이를 염간(厭諫)이라 하는데, 염간하는 자는 쇠합니다. 허물과 악이 날로 드러나는데도 말하는 사람을 미워하고, 국사가 날로 글러 가는데도 강경하게 다투는 사람을 미워하여 간하는 말을 행하지 않고 반드시 주벌(誅罰)을 주는 것은 이를 노간(怒諫)이라 하는데, 노간하는 자는 망합니다.
생각하옵건대, 주상 전하께서 경적(經籍)에 유심하시어 경연(經筵)에 부지런히 나오시고, 풍악과 여색(女色)과 유연(遊宴)과 사냥 같은 사치스러운 행락을 가까이 하지 않으시며, 정성을 다하여 정치에 힘써 부지런히 백성을 구휼하여, 마음을 해이하게 하지 않으시니, 훌륭한 임금[懿主]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즉위하신 지 5년이 되는 지금, 마음을 가다듬고 옛날의 성제 명왕(聖帝明王)을 기약하는 중에도, 재상이 진견(進見)할 때에 일찍이 나라 다스리는 방법을 묻지 않고, 시종(侍從)이 둘러있는 자리에서도 일찍이 도를 이루는 학문을 묻지 않고, 대간이 나아가 말하는데도 다만 더듬더듬하면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모습을 보이실 뿐입니다. 그렇다면 전하께서는 간하는 말에 대하여 이미 즐거워하지 않으시고, 또 받아들이지도 아니하시니, 듣기 싫어함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아직 노하는 데는 이르지 않았으나 그것은 작은 간격일 뿐입니다. 마음과 행동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닦아지며, 치도(治道)가 무엇으로 말미암아 나오겠습니까? 전하께서는, 간언을 듣는 것이 치란(治亂)에 관계가 있는 줄 모르십니까? 신 등은 사리를 헤아리고 옛일을 증험하여, 전하을 위하여 그 효험을 말하겠습니다. 요(堯)임금에게는 착한 이를 나오게 하는 깃발이 있었고, 순(舜)임금은 묻기와 살피기를 좋아하였고, 우(禹)임금은 착한 말[昌言]을 들으면 절했으니, 이것이 낙간(樂諫)하는 자의 흥함이 아닙니까? 이윤(伊尹)이 훈계050) 하니 태갑(太甲)이 허물을 뉘우치고, 주공(周公)이 무일편(無逸篇)051) 을 바치매 성왕(成王)이 덕을 성취하였습니다. 한 문제(漢文帝)는 치안의 계책052) 을 얻어 거의 형벌을 쓰지 않게 되었고, 태종(太宗)이 십점소(十漸疏)053) 를 받아들여 당(唐)나라 황실이 더욱 융창하였습니다. 이것이 납간하는 자의 창성함이 아니겠습니까? 한 무제(漢武帝)가 급암(汲黯)054) 의 엄함을 꺼리니 국내가 공허하고, 당(唐)나라 현종(玄宗)이 한휴(韓休)의 곧은 말을 꺼리니 얼호(孽胡)055) 가 창광(猖狂)하였습니다. 효원(孝元)056) 이 경생(京生)057) 의 말을 소원하니 효선(孝宣)의 사업이 떨치지 못하고, 송(宋)나라 철종(哲宗)이 순인(純仁)058) 의 말을 거절하니, 원우(元祐)의 정치가 점점 무너졌습니다. 이것이 염간(厭諫)하는 자의 쇠함이 아니겠습니까? 걸(桀)059) 이 관용봉(關龍逢)을 죽이고, 주(紂)060) 가 왕자 비간(比干)을 죽였습니다. 자서(子胥)061) 가 죽음을 받으니 부차(夫差)가 망하고, 설치(洩治)062) 가 살해당하니 진 영공(陳靈公)이 시해(弑害)되었습니다. 이것이 노간(怒諫)하는 자의 망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대저 간하는 것을 즐거워하지 않으면 그 폐해가 반드시 받아들이지 않는 데 이르고, 간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폐해가 반드시 듣기 싫어하는 데 이르고, 간하는 것을 들기 싫어하면 그 폐해가 반드시 노하여 미워하는 데에 이릅니다. 노하여 미워하게 되면, 악과 허물이 날로 드러나도 듣지 못하고, 패망이 반드시 이르는데도 알지 못하게 되니, 두려운 일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옛 제왕(帝王)은 자신의 허물이 있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을 근심하고, 알면 곧 고치며, 정치의 잘못이 있는 것을 듣지 못하는 것을 근심하고, 들으면 곧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일의 크고 작음이 없이, 간원(諫院)이 논란하여도 들어 주지 않고, 헌부(憲府)가 논란하여도 들어 주지 않으며, 합사(合司)하여 궐문을 지켜도 들어 주지 않고, 피직(避職)하여 굳게 다투어도 들어 주지 않으매, 시종(侍從)이 부득불 그 잘못을 간하고, 대신이 부득불 그 폐해를 말하여도, 막연히 고집하여 들어 주지 않고, 반드시 육조(六曹)가 합사(合辭)하고 정부가 동계(同啓)한 뒤에야, 마지못하여 좇습니다. 이것은 근일에 있어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즉위하신 뒤로 이미 예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렇다면 전하께서 간함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 말이 이치에 합당하여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보아 들어 주고, 그 형세를 보아서 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말이 진실로 이치에 합당하면, 추요(芻蕘)063) 의 말이라도 취하고 광부(狂夫)의 말이라도 택하여야 합니다. 어찌 반드시 대간의 말을 거절하고, 시종의 말을 물리치고, 은인(隱忍)하여 듣지 않고, 이럭저럭 결단하지 아니하여 그럭저럭 몇 달이 지나는 동안에, 공론(公論)이 오래 굴(屈)하고 인정이 억울하여, 일국의 힘을 움직이고 만민의 청문(聽聞)을 놀라게 한 뒤에야 비로소 받아들이니, 전하가 간언을 싫어하시는 것이 여기서 극도에 달하였습니다.
대저 벼슬을 설치하고 직책을 나누는 데에는 각각 그 소임이 있습니다. 대간(臺諫)은 말하는 것이 책임이니, 그 말이 이치에 거슬리지 않으면 본디 따라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여러 달을 고집하여 다투었는데도 들어 주지 않고, 반드시 육조와 정부가 함께 아뢰기를 기다리시므로, 말하는 책임이 있는 자는 그 이름만을 지키고 그 일을 맡아 하지 못하게 되니, 이것은 나라의 체통(體統)을 잃은 것입니다. 전하께서 간쟁을 싫어하시는 마음이 있으므로, 국시(國是)가 정하여지지 않고 의논이 화목하지 않으니, 이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데에 있어서의 큰 병통입니다. 신 등이 듣건대 천하의 사변은 무궁하나, 그 이치를 찾아 보면 시(是)와 비(非)에 지나지 않을 따름이니, 옳으면 천하가 다 옳다 하고, 그르면 천하가 다 그르다는 것입니다. 어찌 여기서는 옳고, 저기서는 그를 수가 있겠습니까? 지금 조정에서 한 일을 의논하게 되면 대간은 옳다 하는데 재상은 반드시 옳지 않다 하여, 옳음과 옳지 않음이 서로 맞서니, 그 중에는 반드시 참으로 옳은 것과 참으로 그른 것이 있어 정론(定論)이 있을 것입니다. 한 사람을 의논하면, 대간이 그르다 하는데, 재상은 반드시 그르지 않다고 하여, 그름과 그르지 않음이 서로 맞서니, 그 중에는 반드시 참그름과 참그르지 않음이 있고, 정론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옳음과 옳지 않음의 사이와, 그름과 그르지 않음의 가운데가, 여러 사람의 마음의 시기가 쌓이고 노여움이 자라나는 곳입니다. 임금이 만약 밝게 살피고 굳게 결단하지 못하여,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좇고 스스로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좇지 않으며, 스스로 그르다고 생각하는 것을 물리치고 스스로 그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물리치지 않는다면, 그 해는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아아, 이미 성실을 발해서 곧게 간하지 못하고, 은밀히 공론을 억제하여 자기의 사사로움을 이루려는 자는 그것이 무슨 마음이겠습니까? 신 등은 멀리 옛일을 인용할 것 없이 바로 눈앞의 보고 듣는 것으로 밝히겠습니다. 을묘년064) 이후로 대신들중에 대개 이기기를 좋아하는 자가 많아, 대간의 말이 혹시라도 그 뜻에 거슬리면 옳고 그른 것을 생각하지 않고, 반드시 큰 소리로 꺾으면서 제 스스로 그른 것을 옳다 하여, 조정에 분쟁을 일으키고 언로를 막아서, 임금이 위태롭고 제 몸이 살육되기에 이르렀으니, 은감(殷鑑)이 될 만한 일입니다. 옛날 우(禹)임금은 밖에 나갔다가 죄인을 보면 수레에서 내려 울며 말하기를, ‘요(堯)·순(舜) 때 사람은 요·순의 마음으로 마음을 삼았는데, 과인(寡人)이 임금이 되어서는 백성이 각자 그 마음으로 마음을 삼으니, 이래서 마음 아프다.’ 하였습니다. 우임금은 백성이 마음을 달리하는 것을 보고 마음 아파하며 울었습니다. 지금은 조정이 각각 그 마음을 달리하는데, 전하께서는 마음 아프지 않으십니까? 유향(劉向)이 말하기를, ‘여러 어진이가 조정에서 화목하면 만백성이 들에서 화목한다.’ 하였으며, 동중서(董仲舒)는 말하기를, ‘사람의 하는 일이 미(美)와 악이 극하면, 천·지(天地)와 서로 유통(流通)한다.’ 하였습니다. 지금 재상과 대간이 제각기 다른 의논을 지키고, 전하는 좇을 바를 알지 못하시니, 조정이 불화한다 하겠습니다. 조정이 불화한데, 만민을 화육(化育)하고 천지를 화합하게 하려 한들, 또한 먼 일이 아니겠습니까? 근자에 천문(天文)이 차서를 잃어서, 태백성(太白星)이 낮에 보이고, 곡식이 이상을 보이고, 돌림병이 크게 일어나고, 홍수·가뭄·바람·우박이 함께 곡식을 상하니, 이것은 음양이 고르지 못하고 천지가 화합하지 못한 징험입니다. 신 등은 전하의 하늘에 응하는 어짊은 보지 못하였고, 간함을 싫어하는 단서는 이미 원근에 알려졌으니, 신 등은 매우 애석함을 이기지 못합니다. 시비가 끝내 정해지지 않고, 조정이 끝내 화목하지 못하기야 하겠습니까? 신 등이 듣건대, 저울이 바르면 가볍고 무거움이 틀리지 않고, 거울이 맑으면 곱고 미움이 어지럽지 않다 합니다. 임금은 진실로 그 본원(本源)을 다스려 평평하기 저울 같고 맑기를 거울같이 하고서, 서로 다른 의논이 일어나면 반드시 마음에 생각하여 보기를, ‘누구는 옳고, 누구는 옳지 않다.’ 하고 만일 그 말이 공정하면 허심탄회(虛心坦懷)하게 받아들이고, 공정하지 않으면 단연 거절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국시가 어찌 정하여지지 않겠습니까? 국시가 정해지면 여러 아랫사람들이 자연 마음을 같이하여 정사를 보좌해서 만사가 각각 그 이치에 맞을 것이니, 정치를 하는 도는 이렇게 하는 데 지나지 않을 뿐입니다.
신 등이 가까이 경악(經幄)에 있으면서, 전하께서 확실히 노간(怒諫)의 조짐이 없음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염간(厭諫)하시는 과실은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말을 받아들이는 도량을 넓히시어, 납간(納諫)할 뿐만 아니라 반드시 낙간(樂諫)하는 데 이르시게 된다면, 종묘 사직에 다행하겠습니다."
전교하기를,
"상소의 뜻이 나의 병통을 바로 맞혔다. 그 중에, ‘재상이 진견하여도 나라 다스리는 방법을 묻지 않고, 시종이 둘러 있어도 도에 나가는 학문을 묻지 않는다.’ 하였는데, 물어야 할 일이 있으면 어찌 묻지 않을 것이냐? 근자에 대신과 시종이 인군을 사랑하고 백성을 근심하여, 정사의 득실과 민간의 폐막(弊瘼)을 다 말하지 않음이 없으니, 물을 일이 없다. 신하가 입시할 때에 품은 생각이 있으면 어찌 반드시 묻기를 기다려서 말할 것이냐? 마땅히 무엇이든지 말할 줄 알아야 한다. 또 조정이 불화하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크게 놀랄 일이다. 재상과 대간이 말을 달리하여 왈가왈부하더라도 무엇이 해로우랴? 상소의 뜻이 매우 마땅하니, 이 글을 조정에 보이라."
하였다.
- [註 050] 이윤(伊尹)이 훈계 : 《서경(書經)》 상서(商書) 이훈(伊訓)에 전한다. 은(殷)나라의 어진 신하 이윤이 임금 태갑(太甲)에게 은나라 역대의 치적(治績)을 말하고, 하늘은 선한 일을 하면 돕고 악한 일을 하면 벌을 준다는 것을 말한 내용이다.
- [註 051] 무일편(無逸篇) : 《서경(書經)》 주서(周書)의 편명. 주(周)나라의 주공(周公)이 어린 조카 성왕(成王)을 경계하기 위하여 지은 글. 즉 전 왕조인 은(殷)나라가 망하게 된 원인과 주나라가 흥하게 된 경로를 들어서 임금이 안일하면 나라가 망하고, 무일(無逸), 즉 편안함이 없이 부지런하면 국가가 흥한다는 내용을 담은 것이다.
- [註 052] 치안의 계책 : 한(漢)나라의 문신 가의(賈誼)가 건의한 시국 광제(匡濟)의 대책을 말한 것이다. 한나라 문제(文帝)는 여러 가지로 선한 정치를 계획, 시행하던 중, 특히 신진 문신 가의의 시국 구제를 위한 치안 계책을 받아들여 시행하여 거의 죄인이 없는 평화 사회를 이루게 되었다. 《한서(漢書)》 가의전(賈誼傳).
- [註 053] 십점소(十漸疏) : 당(唐)나라의 어진 신하 위징(魏徵)이 당 태종(太宗)에게 올린 상소. 태종의 정치가 중간에 점점 태만해지자 위징이 임금의 태만해지는 열 가지의 조짐을 열거하여, 태종의 반성을 촉구한 내용임. 《당서(唐書)》 위징전(魏徵傳).
- [註 054] 급암(汲黯) : 한나라 때 임금 앞에서도 직언(直言)하기로 유명한 사람.
- [註 055] 얼호(孽胡) : 안녹산(安祿山)을 지칭. 녹산은 본래 잡호(雜胡) 출신이라 함.
- [註 056] 효원(孝元) : 서한(西漢) 말기의 황제.
- [註 057] 경생(京生) : 한(漢)나라 효원제(孝元帝) 때의 문신 경방(京房). 이 때 권신 석현(石顯)이 홍공(弘恭)을 대신하여 중서령(中書令)이 되어, 유약한 임금 원제를 제쳐놓고 국정을 마음대로 하였는데, 경방이 황제에게 재변이 자주 나타나는 것은 이유가 있다 하고, 은밀히 석현의 제거를 건의하였지만, 원제가 듣지 않았기 때문에, 경방은 석현에 의하여 살해되고, 효선제(孝先帝)가 힘써 이룩한 사업은 위미 부진(萎微不振)하게 되었다. 《한서(漢書)》 경방전(京房傳).
- [註 058] 순인(純仁) : 송대의 어진 대신 범중엄(范仲淹)의 아들. 송(宋)나라 철종(哲宗) 때 우복야(右僕射)로 국정을 보좌하였는데, 어진이의 등용을 힘써 주장하였지만 철종이 듣지 않았기 때문에, 나중에는 장돈(章惇) 등 권신의 전횡(專橫)으로 많은 어진 관원이 축출되어, 원우(元祐) 연간 즉 철종 즉위 초 8년 간의 업적이 모두 무너지고 말았다. 《송사(宋史)》 권314.
- [註 059] 걸(桀) : 하(夏)나라의 폭군.
- [註 060] 주(紂) : 은(殷)나라의 폭군.
- [註 061] 자서(子胥) : 오(吳)나라의 충신.
- [註 062] 설치(洩治) : 춘추(春秋) 때 진(陳)나라의 충신.
- [註 063] 추요(芻蕘) : 꼴 베고 나무 베는 사람.
- [註 064] 을묘년 : 1495 연산군 1년.
원문
○弘文館副提學李自堅等上疏曰:
臣等聞聽諫之道有四。 心行無失, 治道無虧, 而猶欲聞箴警, 開道以獻忠, 誘奬以盡說, 是謂樂諫, 樂諫者興。 心行不能無失, 治道不能無虧, 言之而卽悟, 聽之而卽改, 是謂納諫, 納諫者昌。 心行有過, 正之而不喜, 治道有虧, 爭之而吝改, 是謂厭諫, 厭諫者衰。 過惡日彰, 而惡人有言, 國事日非, 而疾人强爭, 聽諫不行, 而誅罰必加, 是謂怒諫, 怒諫者亡。 恭惟主上殿下留心經籍, 勤御經筵, 聲、色、遊、田, 侈靡之樂, 不接於身, 勵精圖治, 勤恤之志, 不弛於心, 可謂懿主矣。 然臨御以來, 五年于玆, 孜孜焉銳意勵志, 以古聖帝明王自期, 而宰相之進見, 未嘗訪理國之術, 侍從之環列, 未嘗問造道之學, 臺諫之進說, 徒見吃吃乎難入。 然則殿下之於諫言, 旣不能樂, 又不能納, 非厭聞而何? 其不至於怒, 特一間耳, 心行何由而修, 治道何由而隆? 殿下未知聽諫之有關於治亂歟? 臣等揆之事理, 驗之於古昔, 爲殿下深言其效。 堯有進善之旌, 舜好問好察, 禹聞昌言則拜, 此非樂諫者興歟? 伊尹有訓戒, 而太甲悔過, 周公獻無逸, 而成王成德, 漢 文得治安策, 而幾致刑措, 太宗受十漸疏, 而唐室益隆, 此非納諫者昌歟? 漢 武憚汲黯之嚴, 而海內虛耗, 玄宗忌韓休之直, 而孽胡猖狂, 孝元疎更生之說, 而孝宣之業不振, 哲宗拒純仁之言, 而元祐之治陵夷, 此非厭諫者衰歟? 桀殺關龍(逢)逄, 紂殺王子比干, 子胥賜死, 而夫差就亡, 洩治見殺, 而陳靈被弑, 此非怒諫者亡歟? 大抵諫之而不樂, 則其弊必至於不納, 諫之而不納, 則其弊必至於厭聞, 諫之而厭聞, 則其弊必至於怒惡, 怒惡則惡過日彰而不聞, 喪亡必至而不知, 可不懼哉? 是故古之帝王, 患不知身之有過, 知之卽改, 患不聞治之有失, 聞之卽聽。 今則不然。 事無大小, 諫院論之而不聽, 憲府論之而不聽, 合司守闕而不聽, 避職固爭而不聽。 侍從不得不諫其失, 大臣不得不言其弊, 而猶邈然堅執不聽, 必待六曹合辭, 政府同啓後, 黽勉從之。 非徒近日爲然, 臨御以後, 已爲成例。 然則殿下之聽諫, 非聽其言之當理, 聽其人而已, 聽其勢而已。 言苟當理, 芻蕘可採, 狂夫可擇。 何必拒臺諫之言, 退侍從之說, 隱忍不聽, 優游不斷, 動經數月, 公論久屈, 人情鬱抑, 至動一國之力, 駭萬民之聽而後, 始納焉, 殿下之厭諫, 於此極矣。 夫設官分職, 各有其任, 則臺諫者, 以言爲責, 其言若不悖於理, 固當曲從。 今累月固爭而不聽, 必待六曹政府之同啓, 使有言責者, 徒守其名, 而不任其事, 此爲國失其體統者也。 殿下有厭諫之心, 故國是不定, 議論不和, 此有國之大病也。 臣等聞天下之事變, 雖無窮, 原其理, 則不過是與非而已。 是則天下皆是也。 非則天下皆非也, 安有是於此, 而非於彼乎? 今之朝廷, 議一事則臺諫以爲是, 而宰相必以爲不是, 是與不是相對, 其中必有眞是眞不是, 而定論存焉。 論一人則臺諫以爲非, 而宰相必以爲不非, 非與不非相對, 其中必有眞非眞不非, 而定論存焉。 然而是與不是之間, 非與不非之中, 此衆心積猜蓄怒之地, 人君若不明以察之, 剛以斷之, 從其是而不從其不是, 退其非而不退其不非, 則其害有不可勝言矣。 嗚呼! 已不能奮忠直諫, 而陰抑公論, 以濟己私者, 顧何心哉? 臣等不暇遠引古昔, 直以耳目之所睹記明之。 自乙卯以後, 爲大臣者, 率多好勝。 臺諫所言, 或忤其意, 不顧是非, 欲大言折之, 以自是其非, 馴致朝廷乖爭, 言路閉塞, 至於主危身戮, 足爲殷鑑。 昔者大禹出見罪人, 下車而泣曰: "堯、舜之人, 以堯、舜之心爲心, 寡人爲君, 百姓各自以其心爲心、 是以痛之也。" 禹見百姓之異心, 猶爲之痛泣, 今則朝廷各異其心, 殿下猶不足痛心乎? 劉向曰: "衆賢和於朝, 則萬民和於野。" 董仲舒曰: "人之所爲, 其美惡之極, 乃與天地, 相爲流通。" 今宰相、臺諫, 各守異論, 殿下莫適所從, 朝廷可謂不和矣。 朝廷不和, 而欲萬民之育, 天地之和, 不亦遠乎? 近者天文失序, 太白晝見, 禾稼示異, (厲疫)〔癘疫〕 大興, 水旱風雹, 俱爲傷穀, 此陰陽失調, 天地不和之驗也。 臣等未見殿下應天之賢, 而厭諫之端, 已聞遠近, 臣等不勝痛惜。 是非其終不定, 朝廷其終不睦乎? 臣等聞衡正而輕重不差, 鑑空而姸媸不亂。 人主苟能治其本源之地, 平如衡空如鑑, 而異論之起, 必思於心曰, 孰爲是孰爲不是, 若其言公, 虛懷受之, 如其不公, 斷然拒之, 則國是何患不定? 國是旣定, 則群下自然同心輔政, 萬事各當其理, 爲治之道, 不過如斯而已。 臣等昵侍經幄, 非不知殿下保無怒諫之兆, 而厭諫之失, 不得不慮。 伏願殿下, 恢弘受言之量, 不徒納諫, 而必至於樂諫, 宗社幸甚。
傳曰: "上疏之意, 正中我病。 其曰: ‘宰相進見, 不訪理國之術, 侍從環列, 不問造道之學。’ 有可問之事, 則豈不問乎? 近者大臣、侍從, 愛君憂〔國〕 , 時政得失, 民間弊瘼, 無不盡言, 無有所問事也。 人臣入侍於前, 有懷抱, 則何必待訪而言之耶? 當知無不言也。 且以爲 ‘朝廷不和。’ 此可驚駭。 雖宰相、臺諫異言, 曰可曰否, 庸何傷乎? 疏(忌)〔意〕 甚當, 其以此疏, 示諸朝廷。"
원본
중종 5년 (1510) 1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