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일기53권, 연산 10년 윤4월 27일 丁亥 7/9 기사 / 1504년 명 홍치(弘治) 17년
허침 등이 승전색이 더디 드나든 일 등을 간한 자들을 아뢰다
국역
허침(許琛) 등이 글로 아뢰기를,
"승전색(承傳色)이 더디게 출입한다고 말한 것은, 이철균(李鐵鈞)·곽종번(郭宗蕃)이요, 내관이 말 탄 것을 말한 것은 한치형(韓致亨)·성준(成俊)·이극균(李克均)입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곽종번·이철균은 옥에 가두라. 내가 일찍이 사복시(司僕寺)로 하여금 잘 걷고 잘 달리는 말을 구하게 하였는데, 기르는 사람이 사복시에서 들이라고 독촉할 것을 꺼려서 극균에게 청탁하였기 때문에 극균이 아뢴 것이니, 극균과 친하게 지내는 자가 반드시 말을 사복시에 들였을 것이다. 급히 말 문서[馬籍]를 상고하여 아뢰고, 또 극균의 머리를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에게 보이게 하라.
또 대궐을 눌러 내려다보는 인가를 철거하게 하였는데, 외간에서 민폐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도로 중지하고 행하지 않는다. 내 생각으로는, 사섬시(司贍寺) 이북의 인가를 철거하는 것이 어떨까 한다."
하자, 허침·박숭질 등이 아뢰기를,
"철거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였다. 전교하기를,
"궁궐 담 밑에 사는 자가 궁중 일을 누설하는데, 정승[三公]이 듣고 들어와서 아뢰는 것은, 사실 정승이 할 일이 아니다. 옛사람은 온실성(溫室省) 중의 나무도 말하지 않은 자161) 가 있었다. 임금된 자가 경궁 요대(瓊宮瑤臺)·주지 육림(酒池肉林)을 하여 걸(桀)·주(紂) 같은 행동을 한다든가, 위수(渭水) 가에서 죄수를 논죄하는데 위수물이 다 붉어지기 한 상앙(商鞅)162) 의 혹독한 일 같다면 논하여도 가하거니와 이런 말타는 것 같은 일은, 일시적인 심심풀이며 기운을 차리려 하는 것인데, 어찌 감히 논할 것이냐? 사람이 말한다고 하여 그만 둘 수 없다."
하였다.
허침(許琛) 등이 또 상고하여 아뢰기를,
"전곶전(箭串田)은 본시 무예를 사열하는 곳으로서 밭갈이를 못하게 한 것은, 최숙생(崔淑生)이 지평(指平)이었을 때, 아뢴 것입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무예를 사열하는 장소는 나라 땅이다. 내농포(內農圃)이 넣어, 외나 과일을 심어 바치게 하는 것도 역시 위를 위하는 일인데, 무슨 경하고 중한 것이 있어 이렇게 아뢴단 말이냐? 반드시 정실이 있을 것이니, 잡아다 국문하라."
하였다. 정승들이 또 서계하기를,
"박한주(朴漢柱)·신징(申澄)·이윤번(李允蕃)이 휘장 두르는 일을 간하였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신하가 인군에게 대하여는 원래 악을 숨기고 선을 드러내어 지성으로 섬기는 것이 당연하며, 정전(正殿)에 휘장을 두르는 일 같은 것은 말할 것이 아닌데, 이 사람들이 내가 한 것으로 의심하고 엿보아 말하였으니, 역시 위를 업신여기는 것이다. 지금 풍속을 개혁하여 바로하는 때에 있어서 궁중 일을 지레 짐작하고 아뢴 자는 죽여도 남은 죄가 있다. 추문할 것 없이, 빨리 옥에 가두라. 또 옛말에 ‘왕의 땅 아닌 곳이 없고 왕의 신하가 아닌 사람이 없다.’고 하였으니, 전곶장(箭串場) 역시 우리 땅인데, 내포(內圃)에 넣는 것이 무엇이 해가 되어, ‘무예를 사열하는 땅이다.’, ‘마장(馬場)이다.’ 하며 간쟁(諫諍)하는 것인가? 대저 내포는 외나 과일을 심어 위에 진상하는 곳이다. 신하로서는 위에 바치는 일에 대하여 원래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밭을 빨리 내포로 돌리라."
하였다. 정승들이 아뢰기를,
"선비가 원래 오활하고, 옛날 문자에 막혀 사체를 생각하지 못하고 말하는 것이니, 과연 그릅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무릇 신하로서는 궁중 일에 대하여 지레 짐작함이 불가하다. 옛날 역사를 가지고 보더라도 이런 일은 없었다. 더구나 율문에 궁중 일을 지레 짐작하는 죄가 있다. 또 중국 조정에서는 원래부터 우리 나라를 예의의 나라라고 하였는데, 만일 위를 능멸하는 풍습이 있고 군신간의 분별이 없다면, 도리어 오랑캐가 되는 것이다. 정승된 자는 원래가 마음을 다하여 인군을 보필해야 하니, 이런 풍습은 아래서부터 먼저 바로하는 것이 가하리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4책 53권 18장 A면【국편영인본】 13책 617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왕실-궁관(宮官) / 사법-탄핵(彈劾) / 주생활-택지(宅地) / 농업-전제(田制)
- [註 161] 온실성(溫室省) 중의 나무도 말하지 않은 자 : 중국 한(漢)나라 무제(武帝)가 온실전(溫室殿)이라는 궁전을 지었는데, 겨울에도 따뜻하다고 하여 그렇게 이름하였다 한다. 이 온실전에 수목이 많은데, 어느 사람이 대신 공광(孔光)에게 ‘온실성(溫室省) 안이 모두 수림인데, 그 수림이 무슨 나무들인가?’ 하고 물으니, 광이 입을 다물고 대답하지 않았다 함. 《한서(漢書)》.
- [註 162] 상앙(商鞅) : 중국 전국 시대 진(秦)나라의 법률가.
원문
○許琛等書啓曰:
言承傳色遲遲出入者, 乃李鐵鈞、郭宗蕃; 言內官乘馬者, 韓致亨、成俊、李克均。
傳曰: "郭宗蕃、李鐵鈞囚于獄。 予嘗令司僕寺求能步、能走馬, 而人有畜之者, 憚司僕責納, 乃囑克均, 故克均啓之, 其交結克均者, 必有納馬於司僕寺矣, 急考馬簿以啓。 且克均之頭, 其示交結人。 且臨壓大內人家, 已令撤去, 而外間多藉言有民弊, 故還止不行爾。 予意以爲, 司贍寺以北人家, 撤去何如?" 許琛、朴崇質等啓: "撤去當矣。" 傳曰: "凡居宮墻底者, 漏洩宮禁之事。 爲三公者, 聞而入啓, 實非三公事也。 古人有不言溫室省中木者, 爲人君者, 若瓊宮瑤臺、酒池肉林, 而行桀 紂之行, 臨渭論囚, 渭水盡赤, 如商鞅刻酷之事, 則論之可矣。 若此乘馬, 特一時破寂行氣耳, 何敢論之? 不可以人言而止也。" 琛等又考啓: "箭串田本閱武之地, 勿令耕墾事, 崔淑生爲持平時所啓。" 傳曰: "閱武之場, 國土也。 屬於內農圃, 而種瓜菓供進, 亦爲上也。 有何輕重, 而如此啓之乎? 其必有情, 拿來鞫之。" 政丞等又書啓:
傳曰: "臣之於君, 固當隱惡楊善, 至誠事之。 如正殿圍帳, 非所當言, 而此人等疑予所爲, 窺伺而言, 是亦陵上也。 今當革正風俗之時, 揣度宮禁事, 而啓之者, 死有餘辜。 不須推問, 其亟囚于獄。 且古云: ‘莫非王土, 莫非王臣。’ 箭串場亦是吾土, 屬於內圃何害, 而曰閱武之地, 曰馬場以諍之哉? 夫內圃, 所以種瓜菓供進也。 爲人臣於供上之事, 固不當言之。 其田亟還內圃。" 政丞等啓: "儒士素迂闊, 徒泥古文, 不計事體而言之, 果非也。" 傳曰: "凡人臣不可揣度宮禁。 以古史觀之, 無有如此事者也。 況律文有揣度宮禁之罪, 且中朝素稱我國爲禮義之邦。 若有陵上之風, 而無君臣之分, 則反爲夷狄矣。 爲政丞者, 固當盡心輔君, 如此風俗, 自下先正可也。"
- 【태백산사고본】 14책 53권 18장 A면【국편영인본】 13책 617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왕실-궁관(宮官) / 사법-탄핵(彈劾) / 주생활-택지(宅地) / 농업-전제(田制)
연산군일기53권, 연산 10년 윤4월 27일 丁亥 7/9 기사 / 1504년 명 홍치(弘治) 17년
허침 등이 승전색이 더디 드나든 일 등을 간한 자들을 아뢰다
국역
허침(許琛) 등이 글로 아뢰기를,
"승전색(承傳色)이 더디게 출입한다고 말한 것은, 이철균(李鐵鈞)·곽종번(郭宗蕃)이요, 내관이 말 탄 것을 말한 것은 한치형(韓致亨)·성준(成俊)·이극균(李克均)입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곽종번·이철균은 옥에 가두라. 내가 일찍이 사복시(司僕寺)로 하여금 잘 걷고 잘 달리는 말을 구하게 하였는데, 기르는 사람이 사복시에서 들이라고 독촉할 것을 꺼려서 극균에게 청탁하였기 때문에 극균이 아뢴 것이니, 극균과 친하게 지내는 자가 반드시 말을 사복시에 들였을 것이다. 급히 말 문서[馬籍]를 상고하여 아뢰고, 또 극균의 머리를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에게 보이게 하라.
또 대궐을 눌러 내려다보는 인가를 철거하게 하였는데, 외간에서 민폐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도로 중지하고 행하지 않는다. 내 생각으로는, 사섬시(司贍寺) 이북의 인가를 철거하는 것이 어떨까 한다."
하자, 허침·박숭질 등이 아뢰기를,
"철거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였다. 전교하기를,
"궁궐 담 밑에 사는 자가 궁중 일을 누설하는데, 정승[三公]이 듣고 들어와서 아뢰는 것은, 사실 정승이 할 일이 아니다. 옛사람은 온실성(溫室省) 중의 나무도 말하지 않은 자161) 가 있었다. 임금된 자가 경궁 요대(瓊宮瑤臺)·주지 육림(酒池肉林)을 하여 걸(桀)·주(紂) 같은 행동을 한다든가, 위수(渭水) 가에서 죄수를 논죄하는데 위수물이 다 붉어지기 한 상앙(商鞅)162) 의 혹독한 일 같다면 논하여도 가하거니와 이런 말타는 것 같은 일은, 일시적인 심심풀이며 기운을 차리려 하는 것인데, 어찌 감히 논할 것이냐? 사람이 말한다고 하여 그만 둘 수 없다."
하였다.
허침(許琛) 등이 또 상고하여 아뢰기를,
"전곶전(箭串田)은 본시 무예를 사열하는 곳으로서 밭갈이를 못하게 한 것은, 최숙생(崔淑生)이 지평(指平)이었을 때, 아뢴 것입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무예를 사열하는 장소는 나라 땅이다. 내농포(內農圃)이 넣어, 외나 과일을 심어 바치게 하는 것도 역시 위를 위하는 일인데, 무슨 경하고 중한 것이 있어 이렇게 아뢴단 말이냐? 반드시 정실이 있을 것이니, 잡아다 국문하라."
하였다. 정승들이 또 서계하기를,
"박한주(朴漢柱)·신징(申澄)·이윤번(李允蕃)이 휘장 두르는 일을 간하였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신하가 인군에게 대하여는 원래 악을 숨기고 선을 드러내어 지성으로 섬기는 것이 당연하며, 정전(正殿)에 휘장을 두르는 일 같은 것은 말할 것이 아닌데, 이 사람들이 내가 한 것으로 의심하고 엿보아 말하였으니, 역시 위를 업신여기는 것이다. 지금 풍속을 개혁하여 바로하는 때에 있어서 궁중 일을 지레 짐작하고 아뢴 자는 죽여도 남은 죄가 있다. 추문할 것 없이, 빨리 옥에 가두라. 또 옛말에 ‘왕의 땅 아닌 곳이 없고 왕의 신하가 아닌 사람이 없다.’고 하였으니, 전곶장(箭串場) 역시 우리 땅인데, 내포(內圃)에 넣는 것이 무엇이 해가 되어, ‘무예를 사열하는 땅이다.’, ‘마장(馬場)이다.’ 하며 간쟁(諫諍)하는 것인가? 대저 내포는 외나 과일을 심어 위에 진상하는 곳이다. 신하로서는 위에 바치는 일에 대하여 원래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밭을 빨리 내포로 돌리라."
하였다. 정승들이 아뢰기를,
"선비가 원래 오활하고, 옛날 문자에 막혀 사체를 생각하지 못하고 말하는 것이니, 과연 그릅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무릇 신하로서는 궁중 일에 대하여 지레 짐작함이 불가하다. 옛날 역사를 가지고 보더라도 이런 일은 없었다. 더구나 율문에 궁중 일을 지레 짐작하는 죄가 있다. 또 중국 조정에서는 원래부터 우리 나라를 예의의 나라라고 하였는데, 만일 위를 능멸하는 풍습이 있고 군신간의 분별이 없다면, 도리어 오랑캐가 되는 것이다. 정승된 자는 원래가 마음을 다하여 인군을 보필해야 하니, 이런 풍습은 아래서부터 먼저 바로하는 것이 가하리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4책 53권 18장 A면【국편영인본】 13책 617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왕실-궁관(宮官) / 사법-탄핵(彈劾) / 주생활-택지(宅地) / 농업-전제(田制)
- [註 161] 온실성(溫室省) 중의 나무도 말하지 않은 자 : 중국 한(漢)나라 무제(武帝)가 온실전(溫室殿)이라는 궁전을 지었는데, 겨울에도 따뜻하다고 하여 그렇게 이름하였다 한다. 이 온실전에 수목이 많은데, 어느 사람이 대신 공광(孔光)에게 ‘온실성(溫室省) 안이 모두 수림인데, 그 수림이 무슨 나무들인가?’ 하고 물으니, 광이 입을 다물고 대답하지 않았다 함. 《한서(漢書)》.
- [註 162] 상앙(商鞅) : 중국 전국 시대 진(秦)나라의 법률가.
원문
○許琛等書啓曰:
言承傳色遲遲出入者, 乃李鐵鈞、郭宗蕃; 言內官乘馬者, 韓致亨、成俊、李克均。
傳曰: "郭宗蕃、李鐵鈞囚于獄。 予嘗令司僕寺求能步、能走馬, 而人有畜之者, 憚司僕責納, 乃囑克均, 故克均啓之, 其交結克均者, 必有納馬於司僕寺矣, 急考馬簿以啓。 且克均之頭, 其示交結人。 且臨壓大內人家, 已令撤去, 而外間多藉言有民弊, 故還止不行爾。 予意以爲, 司贍寺以北人家, 撤去何如?" 許琛、朴崇質等啓: "撤去當矣。" 傳曰: "凡居宮墻底者, 漏洩宮禁之事。 爲三公者, 聞而入啓, 實非三公事也。 古人有不言溫室省中木者, 爲人君者, 若瓊宮瑤臺、酒池肉林, 而行桀 紂之行, 臨渭論囚, 渭水盡赤, 如商鞅刻酷之事, 則論之可矣。 若此乘馬, 特一時破寂行氣耳, 何敢論之? 不可以人言而止也。" 琛等又考啓: "箭串田本閱武之地, 勿令耕墾事, 崔淑生爲持平時所啓。" 傳曰: "閱武之場, 國土也。 屬於內農圃, 而種瓜菓供進, 亦爲上也。 有何輕重, 而如此啓之乎? 其必有情, 拿來鞫之。" 政丞等又書啓:
傳曰: "臣之於君, 固當隱惡楊善, 至誠事之。 如正殿圍帳, 非所當言, 而此人等疑予所爲, 窺伺而言, 是亦陵上也。 今當革正風俗之時, 揣度宮禁事, 而啓之者, 死有餘辜。 不須推問, 其亟囚于獄。 且古云: ‘莫非王土, 莫非王臣。’ 箭串場亦是吾土, 屬於內圃何害, 而曰閱武之地, 曰馬場以諍之哉? 夫內圃, 所以種瓜菓供進也。 爲人臣於供上之事, 固不當言之。 其田亟還內圃。" 政丞等啓: "儒士素迂闊, 徒泥古文, 不計事體而言之, 果非也。" 傳曰: "凡人臣不可揣度宮禁。 以古史觀之, 無有如此事者也。 況律文有揣度宮禁之罪, 且中朝素稱我國爲禮義之邦。 若有陵上之風, 而無君臣之分, 則反爲夷狄矣。 爲政丞者, 固當盡心輔君, 如此風俗, 自下先正可也。"
- 【태백산사고본】 14책 53권 18장 A면【국편영인본】 13책 617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왕실-궁관(宮官) / 사법-탄핵(彈劾) / 주생활-택지(宅地) / 농업-전제(田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