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일기50권, 연산 9년 6월 13일 戊申 5/8 기사 / 1503년 명 홍치(弘治) 16년
수월사의 중 신해와 진성군의 종 금산이 거짓 문서를 만들어 예조에 바치다
국역
일찍이 수월사(水月寺) 중 신해(信海)와 진성군(甄城君)215) 의 종 금산(今山)이 거짓 문서를 만들어 예조에 바치기를,
"수월사는 성화(成化)216) 6년217) 에 왕패(王牌)를 받고 또 병진년218) 에 전교(傳敎)하여 잡역(雜役)을 면제하게 하였는데, 본관(本官)이 왕패와 전교를 불고하고 절 집을 철거하며 잡역을 시킨다……"
하고, 정장(呈狀)의 후면에 거짓으로 ‘예조의 관문(關文)이다.’고 쓰고,
"수월사는 진성군의 원당(願堂)이요 왕패와 전교가 있으니 잡역을 시키지 말라."
하고, 가짜로 당상과 낭청(郞廳)의 수결(手訣) 및 인장을 눌렀으므로, 금부(禁府)에서 국문하도록 하였었는데, 이때 와서 금부에서 아뢰기를,
"신해는 공초하기를 ‘금산의 이름과 인장은 모두 자기가 한 것이고, 정장은 진성군이 쓴 것.’이라 하며, 금산도 역시 공초하기를 ‘정장은 상전 진성군이 썼으며, 그외의 것은 제가 알지 못한다.’ 하였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금산의 서명과 문건을 다른 종이에 옮겨 쓰되 신해로 하여금 쓰게 하고, 그 정장(呈狀) 역시 등사(謄寫)하되 진성군에게 쓰게 하라."
하였다. 써 들이니, 전교하기를,
"과연 진성이 쓴 것이다. 무릇 종친(宗親)으로서 제 스스로 지친(至親)임을 믿고 방자하게 불의의 짓을 행하여 꺼림이 없으니, 이 어찌 된 일이냐? 지금 진성군 이돈(李惇)이 신해의 위조 일에 관계되었으니, 옛사람의 ‘이것을 차마 하면 무엇을 차마 하지 못하랴?’는 말이 그대로니 어찌 왕실의 지친이라고 법을 폐할 수 있을 것이냐? 종부시(宗簿寺)에서 국문하게 하라. 또 회암사(檜巖寺) 같은 절들 외에는, 왕패가 있더라도 그 전지를 다 몰수하여 능침 수호군(陵寢守護軍)과 백성 중 전지 없는 자들에게 주게 하라. 중 역시 백성이니 다 베일 수는 없고, 그 사람들은 그 사람대로 두어 농사터로 몰아내는 것이 가하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3책 50권 3장 A면【국편영인본】 13책 565면
- 【분류】사법-탄핵(彈劾) / 왕실-종친(宗親) / 사상-불교(佛敎) / 신분-천인(賤人) / 농업-전제(田制)
- [註 215] 진성군(甄城君) : 성종의 일곱째 아들.
- [註 216] 성화(成化) : 명나라 헌종(憲宗) 연호.
- [註 217] 6년 : 1470 성종 원년.
- [註 218] 병진년 : 1496 연산군 2년.
원문
○初, 水月寺僧信海、甄城君奴今山詐造書, 呈禮曹云: "水月寺 成化六年受王牌。 又於丙辰年, 敎除雜役, 而本官不顧王牌、傳敎, 撤取寺舍, 加以雜役。" 云云, 仍於狀背, 詐書禮曹關云: "水月寺 甄城君願堂, 而有王牌、傳敎, 勿役雜事。" 詐着堂上、郞廳署押及印信。 命禁府鞫之, 至是, 禁府啓: "信海供云: ‘今山名及印信, 皆自爲之, 而其狀則甄城君所書。’ 今山亦供云: ‘狀則主甄城君書之, 其他己所不知。’" 傳曰: "今山着名及立案, 謄他紙, 使信海書之。 其狀亦謄寫, 使甄城君書之。" 書入, 傳曰: "果甄城所書也。 凡宗親自恃至親, 恣行不義, 無所忌憚, 是豈可乎? 今甄城君 惇干於信海僞造事。 古人所謂: ‘是可忍也, 孰不可忍也?’ 豈可以王室至親, 廢其法乎? 其令宗簿寺鞫之。 且如檜巖等寺外, 雖有王牌, 盡籍其田, 以許陵寢守護軍與百姓之無田者。 僧亦民也, 不可盡誅, 將人其人轉驅之南畝可也。"
- 【태백산사고본】 13책 50권 3장 A면【국편영인본】 13책 565면
- 【분류】사법-탄핵(彈劾) / 왕실-종친(宗親) / 사상-불교(佛敎) / 신분-천인(賤人) / 농업-전제(田制)
연산군일기50권, 연산 9년 6월 13일 戊申 5/8 기사 / 1503년 명 홍치(弘治) 16년
수월사의 중 신해와 진성군의 종 금산이 거짓 문서를 만들어 예조에 바치다
국역
일찍이 수월사(水月寺) 중 신해(信海)와 진성군(甄城君)215) 의 종 금산(今山)이 거짓 문서를 만들어 예조에 바치기를,
"수월사는 성화(成化)216) 6년217) 에 왕패(王牌)를 받고 또 병진년218) 에 전교(傳敎)하여 잡역(雜役)을 면제하게 하였는데, 본관(本官)이 왕패와 전교를 불고하고 절 집을 철거하며 잡역을 시킨다……"
하고, 정장(呈狀)의 후면에 거짓으로 ‘예조의 관문(關文)이다.’고 쓰고,
"수월사는 진성군의 원당(願堂)이요 왕패와 전교가 있으니 잡역을 시키지 말라."
하고, 가짜로 당상과 낭청(郞廳)의 수결(手訣) 및 인장을 눌렀으므로, 금부(禁府)에서 국문하도록 하였었는데, 이때 와서 금부에서 아뢰기를,
"신해는 공초하기를 ‘금산의 이름과 인장은 모두 자기가 한 것이고, 정장은 진성군이 쓴 것.’이라 하며, 금산도 역시 공초하기를 ‘정장은 상전 진성군이 썼으며, 그외의 것은 제가 알지 못한다.’ 하였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금산의 서명과 문건을 다른 종이에 옮겨 쓰되 신해로 하여금 쓰게 하고, 그 정장(呈狀) 역시 등사(謄寫)하되 진성군에게 쓰게 하라."
하였다. 써 들이니, 전교하기를,
"과연 진성이 쓴 것이다. 무릇 종친(宗親)으로서 제 스스로 지친(至親)임을 믿고 방자하게 불의의 짓을 행하여 꺼림이 없으니, 이 어찌 된 일이냐? 지금 진성군 이돈(李惇)이 신해의 위조 일에 관계되었으니, 옛사람의 ‘이것을 차마 하면 무엇을 차마 하지 못하랴?’는 말이 그대로니 어찌 왕실의 지친이라고 법을 폐할 수 있을 것이냐? 종부시(宗簿寺)에서 국문하게 하라. 또 회암사(檜巖寺) 같은 절들 외에는, 왕패가 있더라도 그 전지를 다 몰수하여 능침 수호군(陵寢守護軍)과 백성 중 전지 없는 자들에게 주게 하라. 중 역시 백성이니 다 베일 수는 없고, 그 사람들은 그 사람대로 두어 농사터로 몰아내는 것이 가하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3책 50권 3장 A면【국편영인본】 13책 565면
- 【분류】사법-탄핵(彈劾) / 왕실-종친(宗親) / 사상-불교(佛敎) / 신분-천인(賤人) / 농업-전제(田制)
- [註 215] 진성군(甄城君) : 성종의 일곱째 아들.
- [註 216] 성화(成化) : 명나라 헌종(憲宗) 연호.
- [註 217] 6년 : 1470 성종 원년.
- [註 218] 병진년 : 1496 연산군 2년.
원문
○初, 水月寺僧信海、甄城君奴今山詐造書, 呈禮曹云: "水月寺 成化六年受王牌。 又於丙辰年, 敎除雜役, 而本官不顧王牌、傳敎, 撤取寺舍, 加以雜役。" 云云, 仍於狀背, 詐書禮曹關云: "水月寺 甄城君願堂, 而有王牌、傳敎, 勿役雜事。" 詐着堂上、郞廳署押及印信。 命禁府鞫之, 至是, 禁府啓: "信海供云: ‘今山名及印信, 皆自爲之, 而其狀則甄城君所書。’ 今山亦供云: ‘狀則主甄城君書之, 其他己所不知。’" 傳曰: "今山着名及立案, 謄他紙, 使信海書之。 其狀亦謄寫, 使甄城君書之。" 書入, 傳曰: "果甄城所書也。 凡宗親自恃至親, 恣行不義, 無所忌憚, 是豈可乎? 今甄城君 惇干於信海僞造事。 古人所謂: ‘是可忍也, 孰不可忍也?’ 豈可以王室至親, 廢其法乎? 其令宗簿寺鞫之。 且如檜巖等寺外, 雖有王牌, 盡籍其田, 以許陵寢守護軍與百姓之無田者。 僧亦民也, 不可盡誅, 將人其人轉驅之南畝可也。"
- 【태백산사고본】 13책 50권 3장 A면【국편영인본】 13책 565면
- 【분류】사법-탄핵(彈劾) / 왕실-종친(宗親) / 사상-불교(佛敎) / 신분-천인(賤人) / 농업-전제(田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