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일기47권, 연산 8년 11월 3일 壬申 2/4 기사 / 1502년 명 홍치(弘治) 15년
지평 권조가 아뢴 구례현을 다시 설치하는 일 등을 묻다
국역
좌의정·우의정·경연(經筵) 당상관들에게 묻기를,
"지평이 아뢴, 구례현을 다시 설치하는 일과 삼포 왜인들의 배에 붉은 칠을 새기는 일은, 나의 생각으로는, 시행함이 불가하겠고, 내금위로써 만호를 삼는 일은 지평의 말이 옳은데, 경 등의 뜻은 어떠하오?"
"삼포의 왜인들은 오랫동안 우리 땅에 살았는데, 하루아침에 다른 법을 제정한다면 변고가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니, 우리 변방의 방어를 튼튼히 하는 것만 같지 못할 것입니다. 또 왜인들이 도둑질을 하는 것은 형체를 감추거나 자취를 숨기는 것이 아니고 공공연하게 소란을 일으키는 것이니, 만약 다행히 사로잡는다면 비록 배에 새기지 않더라도 무엇이 해롭겠으며, 만약 협박하여 약탈해 간다면 아무리 배에 새기더라도 무엇이 이익되겠습니까? 다만 흔단(釁端)만 생기고 백성들에게 화(禍)만 얻게 하는 것이니, 하지 않는 것만 못합니다.
구례현은 국가의 관방(關防)이 있는 곳이므로 복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월이 오래되면 관아가 무너지고 백성들과 아전들이 흩어져 도망할 것이니, 빨리 회복하는 것이 온당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 등은 전일에 벌써 계청(啓請)했는데, 지평의 말도 신 등의 생각과 같으니 그대로 따르기를 청합니다.
또 만호는 매우 많고 내금위는 일정한 수효가 있으니, 만약 만호를 모두 내금위로써 차출한다면 서울의 군사가 아마 부족할 것입니다. 만약 만호를 병조(兵曹)에서 가려 임명한다면 내금위에서만 임명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2책 47권 2장 B면【국편영인본】 13책 525면
- 【분류】군사-군정(軍政)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외교-왜(倭)
원문
○問于左右議政、經筵堂上曰: "持平所啓求禮復立事、三浦倭人船隻刻漆事, 予意不可行也。 以內禁衛爲萬戶事, 持平之言可也。 於卿等意何如?" 成俊、李克均啓: "三浦倭人久居我土, 一朝立異法, 則變生不測, 不若固我邊禦耳。 且倭人作賊, 非潛形匿跡, 公然作耗。 若幸而取擒, 則雖不刻舟何害, 若驅掠而去, 則雖刻舟何益? 徒生釁端, 賈禍生民, 不若不爲之愈也。 若求禮則國家關防所在, 不可不復。 歲月旣久, 官舍頹圯、人吏散亡, 莫若速復之便也。 故臣等前日已啓請之, 持平之言, 與臣等意同, 請從之。 且萬戶甚多, 內禁衛有數。 若萬戶皆以內禁衛差之, 則京中軍士恐不足。 若萬戶在兵曹擇差, 不須專以內禁衛爲之。"
- 【태백산사고본】 12책 47권 2장 B면【국편영인본】 13책 525면
- 【분류】군사-군정(軍政)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외교-왜(倭)
연산군일기47권, 연산 8년 11월 3일 壬申 2/4 기사 / 1502년 명 홍치(弘治) 15년
지평 권조가 아뢴 구례현을 다시 설치하는 일 등을 묻다
국역
좌의정·우의정·경연(經筵) 당상관들에게 묻기를,
"지평이 아뢴, 구례현을 다시 설치하는 일과 삼포 왜인들의 배에 붉은 칠을 새기는 일은, 나의 생각으로는, 시행함이 불가하겠고, 내금위로써 만호를 삼는 일은 지평의 말이 옳은데, 경 등의 뜻은 어떠하오?"
"삼포의 왜인들은 오랫동안 우리 땅에 살았는데, 하루아침에 다른 법을 제정한다면 변고가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니, 우리 변방의 방어를 튼튼히 하는 것만 같지 못할 것입니다. 또 왜인들이 도둑질을 하는 것은 형체를 감추거나 자취를 숨기는 것이 아니고 공공연하게 소란을 일으키는 것이니, 만약 다행히 사로잡는다면 비록 배에 새기지 않더라도 무엇이 해롭겠으며, 만약 협박하여 약탈해 간다면 아무리 배에 새기더라도 무엇이 이익되겠습니까? 다만 흔단(釁端)만 생기고 백성들에게 화(禍)만 얻게 하는 것이니, 하지 않는 것만 못합니다.
구례현은 국가의 관방(關防)이 있는 곳이므로 복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월이 오래되면 관아가 무너지고 백성들과 아전들이 흩어져 도망할 것이니, 빨리 회복하는 것이 온당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 등은 전일에 벌써 계청(啓請)했는데, 지평의 말도 신 등의 생각과 같으니 그대로 따르기를 청합니다.
또 만호는 매우 많고 내금위는 일정한 수효가 있으니, 만약 만호를 모두 내금위로써 차출한다면 서울의 군사가 아마 부족할 것입니다. 만약 만호를 병조(兵曹)에서 가려 임명한다면 내금위에서만 임명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2책 47권 2장 B면【국편영인본】 13책 525면
- 【분류】군사-군정(軍政)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외교-왜(倭)
원문
○問于左右議政、經筵堂上曰: "持平所啓求禮復立事、三浦倭人船隻刻漆事, 予意不可行也。 以內禁衛爲萬戶事, 持平之言可也。 於卿等意何如?" 成俊、李克均啓: "三浦倭人久居我土, 一朝立異法, 則變生不測, 不若固我邊禦耳。 且倭人作賊, 非潛形匿跡, 公然作耗。 若幸而取擒, 則雖不刻舟何害, 若驅掠而去, 則雖刻舟何益? 徒生釁端, 賈禍生民, 不若不爲之愈也。 若求禮則國家關防所在, 不可不復。 歲月旣久, 官舍頹圯、人吏散亡, 莫若速復之便也。 故臣等前日已啓請之, 持平之言, 與臣等意同, 請從之。 且萬戶甚多, 內禁衛有數。 若萬戶皆以內禁衛差之, 則京中軍士恐不足。 若萬戶在兵曹擇差, 不須專以內禁衛爲之。"
- 【태백산사고본】 12책 47권 2장 B면【국편영인본】 13책 525면
- 【분류】군사-군정(軍政)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외교-왜(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