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일기7권, 연산 1년 7월 12일 癸巳 2/2 기사 / 1495년 명 홍치(弘治) 8년
대간·홍문관이 노사신이 직언을 막으려 한다 하고 국문하기를 청하다
국역
대간·홍문관에 전교하기를,
"노사신(盧思愼)이 나의 물음에 따라 사정을 진술하여 대답한 것이니, 그 말이 허물될 것이 없다. 이러한 말을 반드시 탄핵하려 한다면 대신이 어찌 마음을 놓을 수 있겠느냐."
하니, 홍문관에서 아뢰기를,
"대신의 말이 옳다면, 신들이 어찌 감히 따지겠습니까. 예로부터 큰 간신이 어두운 임금을 우롱하는 것도 반드시 이처럼 혹심하지는 않았습니다. 사신이 나라를 망칠 말을 하기 때문에 신들이 감히 아뢴 것이오며, 또 언사가 서로 전달(轉達)되는 사이에 행여 착오가 생겨서 신들의 뜻을 다하지 못할까 두려우므로 친대(親對)하여 쌓인 소회를 다 아뢰려는 것입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경들이 사신을 국문하고 싶거든 마음대로 하라."
하매, 대간이 아뢰기를,
"사신이 마침내 전하께서 즉위하신 처음에 대간·시종이 재(齋) 지낸 것을 논하니, 사신이 말하기를 ‘무릇 재 지낸 것을 논하는 일이라면 전달(轉達)하게 하지 말라.’ 하였으므로, 그 당시 국인들이 모두 전하의 총명을 가리우는 일이라 하여 통분히 여기지 않는 자가 없었으며, 지난번에 전하께서 대간을 잡아 가두라고 하교하시는데, 사신이 곧 말하기를 ‘지당하신 분부입니다.’ 하였고, 또 ‘영주(英主)의 위단이라 기뻐서 치하하기에 겨를이 없습니다.’ 하였으니, 전하께서 참으로 이 말을 옳게 여기신다면 신들이 더욱 통분하옵니다."
하고, 또 윤탕로(尹湯老)의 일과 불경 박아내는 일을 논하였으나, 듣지 않고, 홍문관에서 다시 사신(思愼)의 죄상을 논하였으나, 듣지 않으매, 대간(臺諫)이 상소하기를,
"사람을 알아보기란 그야말로 어렵지 않사옵니까. 대간(大奸)은 충성스러운 것 같고, 대사(大詐)는 미더운 것 같고, 대교(大巧)는 졸한 것 같고, 대변(大辨)은 더듬는 것 같으므로, 요(堯)임금은 공공(共工)을 버리지 못했고, 공자(孔子)는 재여(宰予)를 잘못 보았으니, 이는 항상 그들의 힘쓰는 것만 보았고, 그들의 소홀한 점을 미쳐 살피지 못했던 까닭이므로, 비록 성인(聖人)이라 하더라도 알지 못하는 것이 있사옵니다. 예전에 왕안석(王安石)이 속으로는 간사하고 교활하면서 겉으로는 질박한 척하며 스스로 도덕과 경술(經術)을 자기의 소임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한림 학사(翰林學士)로 뽑히게 되매 천하 사람이 모두 흡족하게 여기어 정승이 되기를 바랐고, 정권을 잡게 되어서는 천자가 그를 의지하여 정치를 해서 요(堯)·순(舜)의 다스림을 일으키려 하는데, 여회(呂誨)만이 ‘이 사람이 반드시 천하의 창생을 그르칠 것이다.’ 하니, 당시 사람이 믿지 아니하였으며, 비록 사마광(司馬光) 같은 어진 이로도 오히려 여회의 말이 과하다고 여겼습니다. 그 후 얼마 안 되어 과연 신법(新法)을 만들어 성헌(成憲)을 고쳐 어지럽히며 자기 주장만 집요(執拗)하더니, 곧 말하기를 ‘천변(天變)도 두려워 할 것이 없고, 조종(祖宗)도 본받을 것이 없다.’ 하며, 뭇 어진 이를 쫓아내고 간사한 소인들을 등용하여 천하 사람들로 하여금 그 생을 즐기는 마음을 잃게 하니, 사마광도 그 화에 걸리자 한탄하며 하는 말이 ‘여헌가(呂獻可)471) 의 선견지명은 따라갈 수가 없다.’ 하였습니다.
사신이 그와 무엇이 다르오리까. 사신이 노산조(魯山朝)472) 에 석갈(釋褐)473) 하여 5대의 조정을 내리 섬기면서 몸가짐을 깨끗이 하여 훌륭한 명신이 되니, 진신 벼슬아치들이 그 풍채를 우러러 보며, 선풍 도골(仙風道骨)의 멋이 있다고 일렀습니다. 대개 그 가슴 속이 깨끗하여 터럭끝 만큼도 간사한 마음이 없는 것처럼 보였으므로, 이 때문에 지위가 신하로서 최상의 자리에 올랐으나 시의(時議)가 그르게 여기지 않았사온데, 오늘에 와서는 도리어 나라를 그르치는 노간(老奸)이 되었으니, 이는 다름 아니라, 거짓으로 꾸며대는 힘이 늘그막에 와서 쇠해지고 진정이 드러나서 억제할 수 없는 까닭입니다. 온 나라 사람이 그에게 속아서 스스로 알지 못한 것이 40여 년이었으니, 어찌 통분하지 아니하오리까. 그가 보기에는 전하께서 처음으로 대위(大位)에 오르시고, 춘추(春秋)도 젊으신데 자기가 원로(元老) 대신이 되었으니, 대정(大政)을 마음대로 하여 위엄도 부리고 복도 줄 수 있을 것이나 사람들이 자기를 비난할까 두려워서 직언(直言)하는 길을 막으려 하나 기회를 얻지 못하다가 하루아침에 전하의 천둥 같은 노기를 타서 일망 타진하려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임금의 위세를 떨치지 않을 수 없다.’ 또는 ‘이것이 영특한 임금의 위단(威斷)이다.’라고 한 것이니, 이 한 마디 말이 족히 나라를 망칠 수 있습니다. 설사 본심이 비록 이 지경에까지 이르지 않았다 할지라도 화가 되는 것은 다름이 없으니, 어찌 그 책임을 면하리까. 전하께서 양암(諒闇)474) 하신 처음으로부터 그는 이미 바깥 말을 들여 보내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한 적이 있어, 청의(淸議)의 공박을 받게 되매 눈물을 흘리면서 사과하였으니, 마땅히 예전 버릇을 고침직도 하온데, 여전히 그 사람 그대로 있사오니, 하늘이 이미 넋을 빼앗아서 시비의 사이에 흐리멍덩하게 된 것 같으므로 깊이 다스릴 것이 못될 듯하나, 애석한 것은 구첨(具瞻)475) 의 자리에 있어 모든 백성의 소망을 짊어졌으니, 조정의 경중이 따르고 국가의 치란(治亂)이 달렸으므로 그 사람됨은 천하지만 관계되는 바는 크오니, 결단코 국문하여 후일을 깨우치지 않아서는 안 될 것이오며, 탕로(湯老)의 죄와 불경 박아내는 잘못은 전번 상소에 이미 다 말씀드렸사오니, 역시 받아들여야겠습니다."
하고, 홍문관에서 상소하기를,
"전(傳)에 남의 말이라 일컬으며 말하기를 ‘오직 내 말을 어김이 없으라 한다면 거의 그 한 마디 말로 나라를 잃는 것이 아니냐.’ 하였는데, 해석하는 자가 말하기를 ‘충언(忠言)이 귀에 들리지 아니하면 임금은 절로 교만해지고 신하는 절로 아첨하게 되는데, 이러고서는 나라를 잃지 않는 자가 없다.’ 하였습니다. 신들이 사신의 한 말을 되풀이해 보면 참으로 이른바 ‘한 마디 말로 나라를 잃는다’는 그것이 아니옵니까. 그의 말이 ‘신하로서 무례하고 불경함이 이보다 더할 수 없다.’ 하였는데, 신들은 듣자오니 ‘임금에게 어려운 것을 권고하는 것을 공(恭)이라 이르고, 선(善)을 진술하고 사(邪)를 막는 것을 경(敬)이라 이른다.’ 하였으니, 대개 신하가 어려운 일로써 임금에게 권면하여 그 임금으로 하여금 요(堯)·순(舜) 같은 임금이 되게 하는 것은 임금을 존숭함에 있어 보다 큰 것이 없고, 선도(善道)를 아뢰고 사심(邪心)을 막으면서도 그 임금이 혹시 허물 있는 지경에 빠질까 저어하는 것은 임금을 공경함에 있어 보다 지극한 것이 없습니다.
하나의 탕로(湯老)를 두둔하기 위하여 법을 무너뜨리고 기강을 어지럽게 하였으니, 이는 실로 전하의 잘못된 처사입니다. 대간이 논주(論奏)하기에 급하여 내시(內侍)를 국문할 것을 청했으니, 이는 어려운 것을 권면하고 선한 도를 아뢰는 것을 자기 책임으로 삼아서, 그 예도와 공경을 다하여 임금을 섬긴 것인데, 사신(思愼)이 도리어 무례하고 불경하다 하였으니, 그 마음이 반드시 임금의 뜻을 순종하여 아유 구용만 하는 것을 예도와 공경으로 삼은 것이므로 너무도 천총(天聰)을 기만한 것입니다. 그의 말에 ‘죄주기를 청하려다 그만두었다.’ 하였으니, 신들은 더욱 사신의 간사한 정상을 알 수 있습니다. 대간이 과연 죄가 있다면, 청하려다가 그만두는 것이 어찌 대신이 임금을 사랑하는 충성이겠습니까. 대간이 과연 죄가 없다면 전하께서 비록 죄를 주려 하실지라도 부당하다는 점을 말씀 드려서 옳게 처리해야 할 것인데, 어찌하여 또 순종하며 죄주기를 청해서 되겠습니까. 사신이 아유 구용하여 간사한 꾀를 부리려 하다가 여러번 대간에게 좌절되었으므로, 그가 죄주기를 청하려 한 것은 모함을 가하여 장차 사사 분풀이를 하려는 것이니, 그 공론이 있고 조정이 있고 군상(君上)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서 아무런 기탄이 없이 방자하게 구는 것이 이와 같습니다. 그의 말에 ‘대간이 임금과 논쟁을 벌이면 반드시 이긴 뒤라야 만다.’ 한 것은 전하께서 일찍이 ‘반드시 이기려 한다.’는 한 마디 말씀으로 대간을 꺾으셨기 때문에 사신이 위의 뜻에 영합하기 위하여 이런 말이 있은 것입니다.
대간이 임금에게는 과감하고 강직한 말로써 천위(天威)476) 를 저촉하여 들어 주기를 바라며, 비록 정확(鼎鑊)477) 이 앞에 있더라도 피하지 않는 것은 어찌 반드시 이기기 위하여 그렇겠습니까. 전하께서 대간은 반드시 이기려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 자못 실언인 것입니다. 사신이 몸이 수상이 되어 임금의 그름을 바로잡지 못하고 영합하기만 힘써서 아첨하는 것만을 일삼으니, 신들은 통 마음이 아픔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의 말에 ‘차츰 임금의 위세가 떨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러 가니 신이 항상 이 점을 근심합니다.’ 하였는데, 신들의 생각으로는 대간이 일을 논하는 것은 대개 임금의 마음을 바르게 하고, 조정을 바르게 하고, 기강을 바르게 하여 명교(名敎)를 붙들려는 것이므로, 임금의 그 말을 받아들여서, 그 마음을 바로 잡고 조정을 바로 잡고 기강을 바로 잡아서 명교를 붙든다면 자연히 듣고 보는 것은 사방으로 뻗치고 권세와 기강은 위에 있어, 임금의 위세가 떨치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떨칠 것인데, 지금 사신이 대간의 논쟁으로써 임금의 위세가 떨치지 않는다고 하니, 이 무슨 말이 이처럼 이치에 벗어납니까. 그는 생각하기를 임금의 위세가 떨치지 못하는 것은 임금으로서 가장 싫어하는 것이니, 만약 이것으로써 임금을 종용한다면 한 마디 말로 온 나라 사람의 입을 다 막아서 자기의 가슴속에 간직된 꾀를 부릴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니, 어찌 깊이 두려워 해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의 말에 ‘대간이 명령을 거역해서 하옥(下獄)시켰으니, 이는 실로 영명한 임금의 위단이라, 바야흐로 기뻐서 치하하기에 겨를이 없다.’ 하였으니, 신들의 생각으로는, 대간이 면대하여 부딪고 궐정(闕庭)에서 항쟁하여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며, 조서(詔書)를 도로 봉하여 돌려 보내기도 하고, 촛불을 가져다가 조서를 불태우기도 하는 것은 다 임금 섬기는 도리를 극진히 하려는 것이니, 어찌 명령을 거역한 것이라 이르리까. 전하께서 하루아침의 분노로써 대간을 옥에 가두시니, 이는 성광(聖狂) 안위(安危)의 분기점이라, 일국의 신민이 오히려 모두 놀라는 터이온데, 하물며 구첨(具瞻)의 지위에 있는 처지임에리까. 이에 대하여 사신은 놀라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힘껏 찬양하여 위단(威斷)이라 하며, 힘껏 찬양할 뿐만 아니라 도리어 기뻐서 치하하기에 겨를이 없다 하였으니, 저 진(秦)나라 조고(趙高)가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하는 그 마음이 있지 않다면 어찌 차마 이런 말을 하겠습니까.
신들이 비록 보잘것없사오나, 오랫동안 논사(論思)의 처지에 있어 대강 시비를 아는데, 만약 일이 종묘 사직에 관계되지 않는다면 어찌 감히 가벼이 대신의 죄를 논하겠습니까. 신들의 구구하게 감히 아뢰는 것은 국가의 대계를 위함이니,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간사한 자를 버리시되 의심하지 마시고 먼 지방으로 내쳐서 뭇사람의 바람을 시원하게 하시면, 국가의 다행이요, 종묘 사직의 다행입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책 7권 17장 A면【국편영인본】 13책 9면
- 【분류】역사-고사(故事) / 정론-간쟁(諫諍) / 사법-탄핵(彈劾) / 윤리-강상(綱常) / 왕실-비빈(妃嬪) / 사상-불교(佛敎)
- [註 471] 여헌가(呂獻可) : 여회의 자임.
- [註 472] 노산조(魯山朝) : 단종조.
- [註 473] 석갈(釋褐) : 천민(賤民)의 의복을 벗고 관복을 입는다는 것임. 그래서 진사(進士) 급제(及第)하여 벼슬을 제수 받은 자에게 쓰는 말임. 《송조회요(宋朝會要)》에 보임.
- [註 474] 양암(諒闇) : 즉 양음(亮陰)과 같은 뜻.
- [註 475] 구첨(具瞻) : 정승을 지칭하는 대명사.
- [註 476] 천위(天威) : 임금을 존칭하는 말임. 좌전(左傳)에, "천위가 지척에 임했다.[天威不違顔呎尺]" 하였음.
- [註 477] 정확(鼎鑊) : 옛날의 혹독한 형은 가마솥[鼎鑊]에 죄인을 넣어 삶아 죽였음. 《사기(史記)》 염파전(廉頗傳)에, "신이 대왕을 속인 죄가 죽음에 해당되는 것을 아오니, 신은 가마솥[鼎鑊]으로 들어가겠습니다." 하였음.
원문
○傳于臺諫、弘文館曰: "思愼因我之問, 述其情以對, 而其言未爲過矣。 如此之言, 必欲彈之, 則大臣豈能安心乎?" 弘文館啓: "大臣之言是, 則臣等何敢論請乎? 自古大奸人愚弄昏主, 未必如是之酷也。 思愼有亡國之言, 故臣等敢啓。 且言語相傳之間, 恐有差失, 未盡臣等之意, 故欲親對, 悉吐情蘊耳。" 傳曰: "卿等欲鞫思愼, 任自爲之。" 臺諫啓: "思愼, 卽位之初, 臺諫、侍從論設齋, 思愼乃曰: ‘凡論設齋者, 勿令轉達。’ 其時國人皆以爲壅蔽聰明, 莫不痛憤。 頃者以囚係臺諫下敎, 而乃曰: ‘上敎允當。’ 又以爲: ‘英主威斷, 喜賀不暇。’ 殿下眞以此言爲是, 則臣等尤爲痛憤。" 又論湯老、印經事, 不聽。 弘文館更論思愼, 不聽。 臺諫上疏曰:
知人不其難乎? 大奸似忠, 大詐似信, 大巧若拙, 大辨若訥。 帝堯不去共工, 孔子失於宰予。 此恒觀於其所勉, 而不察於所忽, 故雖聖人亦有所不知。 昔, 王安石中藏奸狡, 外示朴野, 自以道德經術爲己任。 擢爲翰林學士, 天下洽然稱之, 望以爲相。 及爲執政, 天子倚以爲政, 欲興堯、舜之理, 呂誨獨以爲: "必誤天下蒼生。" 時論不信。 雖司馬光之賢, 猶以誨言爲過。 未幾, 果建新法, 變亂成憲, 執拗自是, 乃曰: "天變不足畏, 祖宗不足法。" 屛黜群賢, 引進憸邪, 使天下之人, 囂然喪其樂生之心。 司馬光亦罹其禍, 嘆曰: "呂獻可之先見, 不可及已。" 思愼何以異哉? 思愼釋褐於魯山之朝, 歷事五世, 砥礪名檢, 蔚爲名臣。 搢紳想望風采, 謂有仙風道骨, 蓋許胸中灑落, 若無一毫邪念。 以此, 位極人臣, 而議者不以爲非, 至於今日, 反成誤國之老奸。 此無他, 修飾矯僞之力, 至老而衰, 眞情發見, 而無以制之故爾。 一國之人爲其所欺, 而不自知者, 四十餘年, 豈不痛哉? 彼見殿下初卽大寶, 富於春秋, 己爲元老, 可以擅大政、作威福, 而恐人之議己, 欲杜直言之路, 而不得間, 一朝乘殿下雷霆之怒, 欲一網打去。 故曰: "主威不可不振也。" 又曰: "此英主之威斷也。" 此一言足以亡國。 借曰: "本心縱不至是, 而爲禍則不異。" 豈能免其責哉? 自殿下諒闇之初, 已有勿入外言之說, 爲淸議所攻, 涕泣而自謝。 宜若有所懲艾, 而猶夫人也則恐天已奪魄, 懜於是非之際, 宜若不足深治, 而所可惜者, 居具瞻之地, 爲萬民之望, 朝廷輕重隨之, 國家治亂係焉。 其人可賤, 所關者大, 斷不可不鞫, 以警于後。 湯老之罪、印經之非, 前疏盡之, 亦宜採納。
弘文館上疏曰:
《傳》稱人之言曰: "惟其言而莫予違也。 不幾乎一言而喪邦乎?" 釋之者曰: "忠言不至於耳, 君自驕, 而臣自諂, 未有不喪邦者也。" 臣等反覆思愼所言, 眞所謂一言而喪邦者乎! 其言曰: "人臣而無禮、不敬, 莫大於此。" 臣等聞, 責難於君謂之恭, 陳善閉邪謂之敬。 蓋人臣以難事責於君, 使其君爲堯、舜之君者, 尊君之大也; 開陳善道, 禁閉邪心, 猶恐其君或陷於有過之地者, 敬君之至也。 庇一湯老, 毁法亂紀, 此實殿下之過擧。 臺諫急於論奏, 請鞫寺人, 是以責難陳善爲己任, 而事君盡其禮敬者也。 思愼反以爲無禮不敬, 其心必以阿意順旨, 諂諛苟悅爲禮爲敬, 甚矣其欺罔天聰也。 其言曰: "欲請罪而未果。" 臣等益見思愼奸詭之情狀矣。 臺諫果有罪也則 ‘欲請而不果’ 豈大臣愛君之忠乎; 臺諫果無罪也則殿下雖欲罪之, 當獻其否, 以濟其可, 豈可又從而請罪之乎? 思愼諛說, 欲售奸術, 屢爲臺諫所挫。 其欲請罪者, 誣加陷害, 將以快私憤也。 其不復知有公論、有朝廷、有君上, 而恣行無忌憚也如是。 其言曰: "臺諫爭論於上, 必勝而後已。" 殿下嘗以必勝一語折臺諫, 故思愼迎合上意, 而有是言也。 臺諫於人主, 直言敢諫, 觸冒天威, 冀回宸聽, 雖鼎鑊在前而不避者, 是豈必勝而然耶? 殿下以臺諫必勝, 殆失言矣。 思愼身居首相, 不能格非, 務爲迎合, 專事諂諛, 臣等, 不勝痛心。 其言曰: "漸至於主威不振。" 臣常憂之。 臣等以爲: "臺諫論事, 蓋欲正君心也, 正朝廷也, 正紀綱而扶名敎也。 人主聽納其言, 正其心, 正朝廷, 正紀綱, 而扶名敎, 則聰明四達, 權綱在上, 主威不期振而自振矣。 今思愼以臺諫之爭論爲主威不振, 是何言之悖理, 至此極也? 其意謂: "主威不振, 人主之所深惡。" 若以此中之, 則可一言而盡杜國人之口, 得以逞其胸臆, 豈不深可懼哉? 其言曰: "臺諫逆命下獄, 此實英主之威斷, 方喜賀不暇。" 臣等謂: "臺諫面折庭爭, 不惜身命, 如封還詔書, 如引燭焚詔。" 皆所以盡事君之道, 豈可謂逆命哉? 殿下以一朝之怒, 下臺諫于獄。 此聖狂、安危之所由分, 一國臣民尙皆駭愕, 況居具瞻之位乎? 思愼不唯不爲之駭愕, 反力贊以爲威斷, 不唯力贊而已, 反爲喜賀不暇, 非有指鹿之心, 其忍出此言乎? 臣等雖無似, 久在論思之地, 粗識是非。 若事非關於宗社, 則安敢輕論大臣之罪乎? 臣等之區區敢陳者, 爲國家大計也。 伏望殿下, 去邪勿疑, 投諸遠裔, 以快輿望, 國家幸甚, 宗社幸甚。
- 【태백산사고본】 2책 7권 17장 A면【국편영인본】 13책 9면
- 【분류】역사-고사(故事) / 정론-간쟁(諫諍) / 사법-탄핵(彈劾) / 윤리-강상(綱常) / 왕실-비빈(妃嬪) / 사상-불교(佛敎)
연산 1년 (1495) 7월 12일
연산군일기7권, 연산 1년 7월 12일 癸巳 2/2 기사 / 1495년 명 홍치(弘治) 8년
대간·홍문관이 노사신이 직언을 막으려 한다 하고 국문하기를 청하다
국역
대간·홍문관에 전교하기를,
"노사신(盧思愼)이 나의 물음에 따라 사정을 진술하여 대답한 것이니, 그 말이 허물될 것이 없다. 이러한 말을 반드시 탄핵하려 한다면 대신이 어찌 마음을 놓을 수 있겠느냐."
하니, 홍문관에서 아뢰기를,
"대신의 말이 옳다면, 신들이 어찌 감히 따지겠습니까. 예로부터 큰 간신이 어두운 임금을 우롱하는 것도 반드시 이처럼 혹심하지는 않았습니다. 사신이 나라를 망칠 말을 하기 때문에 신들이 감히 아뢴 것이오며, 또 언사가 서로 전달(轉達)되는 사이에 행여 착오가 생겨서 신들의 뜻을 다하지 못할까 두려우므로 친대(親對)하여 쌓인 소회를 다 아뢰려는 것입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경들이 사신을 국문하고 싶거든 마음대로 하라."
하매, 대간이 아뢰기를,
"사신이 마침내 전하께서 즉위하신 처음에 대간·시종이 재(齋) 지낸 것을 논하니, 사신이 말하기를 ‘무릇 재 지낸 것을 논하는 일이라면 전달(轉達)하게 하지 말라.’ 하였으므로, 그 당시 국인들이 모두 전하의 총명을 가리우는 일이라 하여 통분히 여기지 않는 자가 없었으며, 지난번에 전하께서 대간을 잡아 가두라고 하교하시는데, 사신이 곧 말하기를 ‘지당하신 분부입니다.’ 하였고, 또 ‘영주(英主)의 위단이라 기뻐서 치하하기에 겨를이 없습니다.’ 하였으니, 전하께서 참으로 이 말을 옳게 여기신다면 신들이 더욱 통분하옵니다."
하고, 또 윤탕로(尹湯老)의 일과 불경 박아내는 일을 논하였으나, 듣지 않고, 홍문관에서 다시 사신(思愼)의 죄상을 논하였으나, 듣지 않으매, 대간(臺諫)이 상소하기를,
"사람을 알아보기란 그야말로 어렵지 않사옵니까. 대간(大奸)은 충성스러운 것 같고, 대사(大詐)는 미더운 것 같고, 대교(大巧)는 졸한 것 같고, 대변(大辨)은 더듬는 것 같으므로, 요(堯)임금은 공공(共工)을 버리지 못했고, 공자(孔子)는 재여(宰予)를 잘못 보았으니, 이는 항상 그들의 힘쓰는 것만 보았고, 그들의 소홀한 점을 미쳐 살피지 못했던 까닭이므로, 비록 성인(聖人)이라 하더라도 알지 못하는 것이 있사옵니다. 예전에 왕안석(王安石)이 속으로는 간사하고 교활하면서 겉으로는 질박한 척하며 스스로 도덕과 경술(經術)을 자기의 소임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한림 학사(翰林學士)로 뽑히게 되매 천하 사람이 모두 흡족하게 여기어 정승이 되기를 바랐고, 정권을 잡게 되어서는 천자가 그를 의지하여 정치를 해서 요(堯)·순(舜)의 다스림을 일으키려 하는데, 여회(呂誨)만이 ‘이 사람이 반드시 천하의 창생을 그르칠 것이다.’ 하니, 당시 사람이 믿지 아니하였으며, 비록 사마광(司馬光) 같은 어진 이로도 오히려 여회의 말이 과하다고 여겼습니다. 그 후 얼마 안 되어 과연 신법(新法)을 만들어 성헌(成憲)을 고쳐 어지럽히며 자기 주장만 집요(執拗)하더니, 곧 말하기를 ‘천변(天變)도 두려워 할 것이 없고, 조종(祖宗)도 본받을 것이 없다.’ 하며, 뭇 어진 이를 쫓아내고 간사한 소인들을 등용하여 천하 사람들로 하여금 그 생을 즐기는 마음을 잃게 하니, 사마광도 그 화에 걸리자 한탄하며 하는 말이 ‘여헌가(呂獻可)471) 의 선견지명은 따라갈 수가 없다.’ 하였습니다.
사신이 그와 무엇이 다르오리까. 사신이 노산조(魯山朝)472) 에 석갈(釋褐)473) 하여 5대의 조정을 내리 섬기면서 몸가짐을 깨끗이 하여 훌륭한 명신이 되니, 진신 벼슬아치들이 그 풍채를 우러러 보며, 선풍 도골(仙風道骨)의 멋이 있다고 일렀습니다. 대개 그 가슴 속이 깨끗하여 터럭끝 만큼도 간사한 마음이 없는 것처럼 보였으므로, 이 때문에 지위가 신하로서 최상의 자리에 올랐으나 시의(時議)가 그르게 여기지 않았사온데, 오늘에 와서는 도리어 나라를 그르치는 노간(老奸)이 되었으니, 이는 다름 아니라, 거짓으로 꾸며대는 힘이 늘그막에 와서 쇠해지고 진정이 드러나서 억제할 수 없는 까닭입니다. 온 나라 사람이 그에게 속아서 스스로 알지 못한 것이 40여 년이었으니, 어찌 통분하지 아니하오리까. 그가 보기에는 전하께서 처음으로 대위(大位)에 오르시고, 춘추(春秋)도 젊으신데 자기가 원로(元老) 대신이 되었으니, 대정(大政)을 마음대로 하여 위엄도 부리고 복도 줄 수 있을 것이나 사람들이 자기를 비난할까 두려워서 직언(直言)하는 길을 막으려 하나 기회를 얻지 못하다가 하루아침에 전하의 천둥 같은 노기를 타서 일망 타진하려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임금의 위세를 떨치지 않을 수 없다.’ 또는 ‘이것이 영특한 임금의 위단(威斷)이다.’라고 한 것이니, 이 한 마디 말이 족히 나라를 망칠 수 있습니다. 설사 본심이 비록 이 지경에까지 이르지 않았다 할지라도 화가 되는 것은 다름이 없으니, 어찌 그 책임을 면하리까. 전하께서 양암(諒闇)474) 하신 처음으로부터 그는 이미 바깥 말을 들여 보내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한 적이 있어, 청의(淸議)의 공박을 받게 되매 눈물을 흘리면서 사과하였으니, 마땅히 예전 버릇을 고침직도 하온데, 여전히 그 사람 그대로 있사오니, 하늘이 이미 넋을 빼앗아서 시비의 사이에 흐리멍덩하게 된 것 같으므로 깊이 다스릴 것이 못될 듯하나, 애석한 것은 구첨(具瞻)475) 의 자리에 있어 모든 백성의 소망을 짊어졌으니, 조정의 경중이 따르고 국가의 치란(治亂)이 달렸으므로 그 사람됨은 천하지만 관계되는 바는 크오니, 결단코 국문하여 후일을 깨우치지 않아서는 안 될 것이오며, 탕로(湯老)의 죄와 불경 박아내는 잘못은 전번 상소에 이미 다 말씀드렸사오니, 역시 받아들여야겠습니다."
하고, 홍문관에서 상소하기를,
"전(傳)에 남의 말이라 일컬으며 말하기를 ‘오직 내 말을 어김이 없으라 한다면 거의 그 한 마디 말로 나라를 잃는 것이 아니냐.’ 하였는데, 해석하는 자가 말하기를 ‘충언(忠言)이 귀에 들리지 아니하면 임금은 절로 교만해지고 신하는 절로 아첨하게 되는데, 이러고서는 나라를 잃지 않는 자가 없다.’ 하였습니다. 신들이 사신의 한 말을 되풀이해 보면 참으로 이른바 ‘한 마디 말로 나라를 잃는다’는 그것이 아니옵니까. 그의 말이 ‘신하로서 무례하고 불경함이 이보다 더할 수 없다.’ 하였는데, 신들은 듣자오니 ‘임금에게 어려운 것을 권고하는 것을 공(恭)이라 이르고, 선(善)을 진술하고 사(邪)를 막는 것을 경(敬)이라 이른다.’ 하였으니, 대개 신하가 어려운 일로써 임금에게 권면하여 그 임금으로 하여금 요(堯)·순(舜) 같은 임금이 되게 하는 것은 임금을 존숭함에 있어 보다 큰 것이 없고, 선도(善道)를 아뢰고 사심(邪心)을 막으면서도 그 임금이 혹시 허물 있는 지경에 빠질까 저어하는 것은 임금을 공경함에 있어 보다 지극한 것이 없습니다.
하나의 탕로(湯老)를 두둔하기 위하여 법을 무너뜨리고 기강을 어지럽게 하였으니, 이는 실로 전하의 잘못된 처사입니다. 대간이 논주(論奏)하기에 급하여 내시(內侍)를 국문할 것을 청했으니, 이는 어려운 것을 권면하고 선한 도를 아뢰는 것을 자기 책임으로 삼아서, 그 예도와 공경을 다하여 임금을 섬긴 것인데, 사신(思愼)이 도리어 무례하고 불경하다 하였으니, 그 마음이 반드시 임금의 뜻을 순종하여 아유 구용만 하는 것을 예도와 공경으로 삼은 것이므로 너무도 천총(天聰)을 기만한 것입니다. 그의 말에 ‘죄주기를 청하려다 그만두었다.’ 하였으니, 신들은 더욱 사신의 간사한 정상을 알 수 있습니다. 대간이 과연 죄가 있다면, 청하려다가 그만두는 것이 어찌 대신이 임금을 사랑하는 충성이겠습니까. 대간이 과연 죄가 없다면 전하께서 비록 죄를 주려 하실지라도 부당하다는 점을 말씀 드려서 옳게 처리해야 할 것인데, 어찌하여 또 순종하며 죄주기를 청해서 되겠습니까. 사신이 아유 구용하여 간사한 꾀를 부리려 하다가 여러번 대간에게 좌절되었으므로, 그가 죄주기를 청하려 한 것은 모함을 가하여 장차 사사 분풀이를 하려는 것이니, 그 공론이 있고 조정이 있고 군상(君上)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서 아무런 기탄이 없이 방자하게 구는 것이 이와 같습니다. 그의 말에 ‘대간이 임금과 논쟁을 벌이면 반드시 이긴 뒤라야 만다.’ 한 것은 전하께서 일찍이 ‘반드시 이기려 한다.’는 한 마디 말씀으로 대간을 꺾으셨기 때문에 사신이 위의 뜻에 영합하기 위하여 이런 말이 있은 것입니다.
대간이 임금에게는 과감하고 강직한 말로써 천위(天威)476) 를 저촉하여 들어 주기를 바라며, 비록 정확(鼎鑊)477) 이 앞에 있더라도 피하지 않는 것은 어찌 반드시 이기기 위하여 그렇겠습니까. 전하께서 대간은 반드시 이기려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 자못 실언인 것입니다. 사신이 몸이 수상이 되어 임금의 그름을 바로잡지 못하고 영합하기만 힘써서 아첨하는 것만을 일삼으니, 신들은 통 마음이 아픔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의 말에 ‘차츰 임금의 위세가 떨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러 가니 신이 항상 이 점을 근심합니다.’ 하였는데, 신들의 생각으로는 대간이 일을 논하는 것은 대개 임금의 마음을 바르게 하고, 조정을 바르게 하고, 기강을 바르게 하여 명교(名敎)를 붙들려는 것이므로, 임금의 그 말을 받아들여서, 그 마음을 바로 잡고 조정을 바로 잡고 기강을 바로 잡아서 명교를 붙든다면 자연히 듣고 보는 것은 사방으로 뻗치고 권세와 기강은 위에 있어, 임금의 위세가 떨치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떨칠 것인데, 지금 사신이 대간의 논쟁으로써 임금의 위세가 떨치지 않는다고 하니, 이 무슨 말이 이처럼 이치에 벗어납니까. 그는 생각하기를 임금의 위세가 떨치지 못하는 것은 임금으로서 가장 싫어하는 것이니, 만약 이것으로써 임금을 종용한다면 한 마디 말로 온 나라 사람의 입을 다 막아서 자기의 가슴속에 간직된 꾀를 부릴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니, 어찌 깊이 두려워 해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의 말에 ‘대간이 명령을 거역해서 하옥(下獄)시켰으니, 이는 실로 영명한 임금의 위단이라, 바야흐로 기뻐서 치하하기에 겨를이 없다.’ 하였으니, 신들의 생각으로는, 대간이 면대하여 부딪고 궐정(闕庭)에서 항쟁하여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며, 조서(詔書)를 도로 봉하여 돌려 보내기도 하고, 촛불을 가져다가 조서를 불태우기도 하는 것은 다 임금 섬기는 도리를 극진히 하려는 것이니, 어찌 명령을 거역한 것이라 이르리까. 전하께서 하루아침의 분노로써 대간을 옥에 가두시니, 이는 성광(聖狂) 안위(安危)의 분기점이라, 일국의 신민이 오히려 모두 놀라는 터이온데, 하물며 구첨(具瞻)의 지위에 있는 처지임에리까. 이에 대하여 사신은 놀라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힘껏 찬양하여 위단(威斷)이라 하며, 힘껏 찬양할 뿐만 아니라 도리어 기뻐서 치하하기에 겨를이 없다 하였으니, 저 진(秦)나라 조고(趙高)가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하는 그 마음이 있지 않다면 어찌 차마 이런 말을 하겠습니까.
신들이 비록 보잘것없사오나, 오랫동안 논사(論思)의 처지에 있어 대강 시비를 아는데, 만약 일이 종묘 사직에 관계되지 않는다면 어찌 감히 가벼이 대신의 죄를 논하겠습니까. 신들의 구구하게 감히 아뢰는 것은 국가의 대계를 위함이니,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간사한 자를 버리시되 의심하지 마시고 먼 지방으로 내쳐서 뭇사람의 바람을 시원하게 하시면, 국가의 다행이요, 종묘 사직의 다행입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책 7권 17장 A면【국편영인본】 13책 9면
- 【분류】역사-고사(故事) / 정론-간쟁(諫諍) / 사법-탄핵(彈劾) / 윤리-강상(綱常) / 왕실-비빈(妃嬪) / 사상-불교(佛敎)
- [註 471] 여헌가(呂獻可) : 여회의 자임.
- [註 472] 노산조(魯山朝) : 단종조.
- [註 473] 석갈(釋褐) : 천민(賤民)의 의복을 벗고 관복을 입는다는 것임. 그래서 진사(進士) 급제(及第)하여 벼슬을 제수 받은 자에게 쓰는 말임. 《송조회요(宋朝會要)》에 보임.
- [註 474] 양암(諒闇) : 즉 양음(亮陰)과 같은 뜻.
- [註 475] 구첨(具瞻) : 정승을 지칭하는 대명사.
- [註 476] 천위(天威) : 임금을 존칭하는 말임. 좌전(左傳)에, "천위가 지척에 임했다.[天威不違顔呎尺]" 하였음.
- [註 477] 정확(鼎鑊) : 옛날의 혹독한 형은 가마솥[鼎鑊]에 죄인을 넣어 삶아 죽였음. 《사기(史記)》 염파전(廉頗傳)에, "신이 대왕을 속인 죄가 죽음에 해당되는 것을 아오니, 신은 가마솥[鼎鑊]으로 들어가겠습니다." 하였음.
원문
○傳于臺諫、弘文館曰: "思愼因我之問, 述其情以對, 而其言未爲過矣。 如此之言, 必欲彈之, 則大臣豈能安心乎?" 弘文館啓: "大臣之言是, 則臣等何敢論請乎? 自古大奸人愚弄昏主, 未必如是之酷也。 思愼有亡國之言, 故臣等敢啓。 且言語相傳之間, 恐有差失, 未盡臣等之意, 故欲親對, 悉吐情蘊耳。" 傳曰: "卿等欲鞫思愼, 任自爲之。" 臺諫啓: "思愼, 卽位之初, 臺諫、侍從論設齋, 思愼乃曰: ‘凡論設齋者, 勿令轉達。’ 其時國人皆以爲壅蔽聰明, 莫不痛憤。 頃者以囚係臺諫下敎, 而乃曰: ‘上敎允當。’ 又以爲: ‘英主威斷, 喜賀不暇。’ 殿下眞以此言爲是, 則臣等尤爲痛憤。" 又論湯老、印經事, 不聽。 弘文館更論思愼, 不聽。 臺諫上疏曰:
知人不其難乎? 大奸似忠, 大詐似信, 大巧若拙, 大辨若訥。 帝堯不去共工, 孔子失於宰予。 此恒觀於其所勉, 而不察於所忽, 故雖聖人亦有所不知。 昔, 王安石中藏奸狡, 外示朴野, 自以道德經術爲己任。 擢爲翰林學士, 天下洽然稱之, 望以爲相。 及爲執政, 天子倚以爲政, 欲興堯、舜之理, 呂誨獨以爲: "必誤天下蒼生。" 時論不信。 雖司馬光之賢, 猶以誨言爲過。 未幾, 果建新法, 變亂成憲, 執拗自是, 乃曰: "天變不足畏, 祖宗不足法。" 屛黜群賢, 引進憸邪, 使天下之人, 囂然喪其樂生之心。 司馬光亦罹其禍, 嘆曰: "呂獻可之先見, 不可及已。" 思愼何以異哉? 思愼釋褐於魯山之朝, 歷事五世, 砥礪名檢, 蔚爲名臣。 搢紳想望風采, 謂有仙風道骨, 蓋許胸中灑落, 若無一毫邪念。 以此, 位極人臣, 而議者不以爲非, 至於今日, 反成誤國之老奸。 此無他, 修飾矯僞之力, 至老而衰, 眞情發見, 而無以制之故爾。 一國之人爲其所欺, 而不自知者, 四十餘年, 豈不痛哉? 彼見殿下初卽大寶, 富於春秋, 己爲元老, 可以擅大政、作威福, 而恐人之議己, 欲杜直言之路, 而不得間, 一朝乘殿下雷霆之怒, 欲一網打去。 故曰: "主威不可不振也。" 又曰: "此英主之威斷也。" 此一言足以亡國。 借曰: "本心縱不至是, 而爲禍則不異。" 豈能免其責哉? 自殿下諒闇之初, 已有勿入外言之說, 爲淸議所攻, 涕泣而自謝。 宜若有所懲艾, 而猶夫人也則恐天已奪魄, 懜於是非之際, 宜若不足深治, 而所可惜者, 居具瞻之地, 爲萬民之望, 朝廷輕重隨之, 國家治亂係焉。 其人可賤, 所關者大, 斷不可不鞫, 以警于後。 湯老之罪、印經之非, 前疏盡之, 亦宜採納。
弘文館上疏曰:
《傳》稱人之言曰: "惟其言而莫予違也。 不幾乎一言而喪邦乎?" 釋之者曰: "忠言不至於耳, 君自驕, 而臣自諂, 未有不喪邦者也。" 臣等反覆思愼所言, 眞所謂一言而喪邦者乎! 其言曰: "人臣而無禮、不敬, 莫大於此。" 臣等聞, 責難於君謂之恭, 陳善閉邪謂之敬。 蓋人臣以難事責於君, 使其君爲堯、舜之君者, 尊君之大也; 開陳善道, 禁閉邪心, 猶恐其君或陷於有過之地者, 敬君之至也。 庇一湯老, 毁法亂紀, 此實殿下之過擧。 臺諫急於論奏, 請鞫寺人, 是以責難陳善爲己任, 而事君盡其禮敬者也。 思愼反以爲無禮不敬, 其心必以阿意順旨, 諂諛苟悅爲禮爲敬, 甚矣其欺罔天聰也。 其言曰: "欲請罪而未果。" 臣等益見思愼奸詭之情狀矣。 臺諫果有罪也則 ‘欲請而不果’ 豈大臣愛君之忠乎; 臺諫果無罪也則殿下雖欲罪之, 當獻其否, 以濟其可, 豈可又從而請罪之乎? 思愼諛說, 欲售奸術, 屢爲臺諫所挫。 其欲請罪者, 誣加陷害, 將以快私憤也。 其不復知有公論、有朝廷、有君上, 而恣行無忌憚也如是。 其言曰: "臺諫爭論於上, 必勝而後已。" 殿下嘗以必勝一語折臺諫, 故思愼迎合上意, 而有是言也。 臺諫於人主, 直言敢諫, 觸冒天威, 冀回宸聽, 雖鼎鑊在前而不避者, 是豈必勝而然耶? 殿下以臺諫必勝, 殆失言矣。 思愼身居首相, 不能格非, 務爲迎合, 專事諂諛, 臣等, 不勝痛心。 其言曰: "漸至於主威不振。" 臣常憂之。 臣等以爲: "臺諫論事, 蓋欲正君心也, 正朝廷也, 正紀綱而扶名敎也。 人主聽納其言, 正其心, 正朝廷, 正紀綱, 而扶名敎, 則聰明四達, 權綱在上, 主威不期振而自振矣。 今思愼以臺諫之爭論爲主威不振, 是何言之悖理, 至此極也? 其意謂: "主威不振, 人主之所深惡。" 若以此中之, 則可一言而盡杜國人之口, 得以逞其胸臆, 豈不深可懼哉? 其言曰: "臺諫逆命下獄, 此實英主之威斷, 方喜賀不暇。" 臣等謂: "臺諫面折庭爭, 不惜身命, 如封還詔書, 如引燭焚詔。" 皆所以盡事君之道, 豈可謂逆命哉? 殿下以一朝之怒, 下臺諫于獄。 此聖狂、安危之所由分, 一國臣民尙皆駭愕, 況居具瞻之位乎? 思愼不唯不爲之駭愕, 反力贊以爲威斷, 不唯力贊而已, 反爲喜賀不暇, 非有指鹿之心, 其忍出此言乎? 臣等雖無似, 久在論思之地, 粗識是非。 若事非關於宗社, 則安敢輕論大臣之罪乎? 臣等之區區敢陳者, 爲國家大計也。 伏望殿下, 去邪勿疑, 投諸遠裔, 以快輿望, 國家幸甚, 宗社幸甚。
- 【태백산사고본】 2책 7권 17장 A면【국편영인본】 13책 9면
- 【분류】역사-고사(故事) / 정론-간쟁(諫諍) / 사법-탄핵(彈劾) / 윤리-강상(綱常) / 왕실-비빈(妃嬪) / 사상-불교(佛敎)
원본
연산 1년 (1495) 7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