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일기3권, 연산 1년 2월 2일 丙辰 3/6 기사 / 1495년 명 홍치(弘治) 8년
부제학 성세명 등이 정사하는 방법으로 선왕을 따르기를 상소하다
국역
부제학(副提學) 성세명(成世明) 등이 상소하기를,
"신 등이 엎드려 뵙건대, 전하께서 상성(上聖)의 자품과 지효(至孝)의 정성으로써 바야흐로 양암(諒闇)154) 중에 계시니, 애통하시고 사모하시어 심기가 평온하지 못하실 줄 아옵는데, 아마도 문·무(文武)155) 의 업을 성취하고 대화(大化)의 근본을 높이시려는 까닭이실 것입니다. 신 등이 듣기로는, 《주역(周易)》에 ‘일을 시작함에는 처음부터 계획을 잘해야 한다.’ 하였고, 《서경(書經)》에 ‘이제 사왕(嗣王)은 새로 천명(天命)을 받드시니 오직 그 덕을 새롭게 하소서.’ 하고, 또 ‘나은 자식이 그 갓낳을 적부터 스스로 철명(哲命)을 끼치지 아니함이 없는 것과 같다.’ 하였습니다.
전하께서 바로 일을 시작함에 처음을 꾀하여야 할 주인이시고, 오늘날이 바로 그 덕을 새롭게 하고 그 철명(哲命)을 끼치는 기초일 터이니, 전하의 한 마음에 또한 천명과 인심이 떠나고 머물음이 달려있고, 치란(治亂)·흥쇠(興衰)·길흉(吉凶)·영욕(榮辱)이 그로부터 나옵니다. 왜냐 하면 천하의 일은 천변 만화하여 그 끝이 무궁하나, 하나도 임금의 마음에서 나오지 않는 것이 없으므로, 임금이 마음이 바르면 바른 데서 나오지 않는 것이 없고, 임금의 마음이 부정하면 부정한 데서 나오지 않는 것이 없으니, 순(舜)임금의 ‘오직 정(精)하고 오직 한결같아야 한다.’는 경계와 공자(孔子)의 ‘자기를 극복하여 예로 회복하라.’는 말씀이 다 내 마음을 바르게 하여 천하 만사의 근본이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예로부터 임금으로서 누가 총명 강단(聰明剛斷)하며, 하느님을 공경하고 백성의 일에 부지런하며, 어진 이를 구하고 간언(諫言)을 받아들이며, 검박(儉朴)을 숭상하고 간사(姦邪)를 배격하며, 편폐(便嬖)156) 를 멀리하고 충직한 자를 등용하며, 사사로운 은혜를 억제하고 공도(公道)를 드높이며, 좋아하는 것을 삼가서 교화를 융성히 하며, 기강을 떨쳐서 풍속을 격려하고자 아니하겠습니까마는 본심의 선(善)은 그 체(體)됨이 심히 미약한데 공격하는 자는 많으니, 추향(趨向)이 만 갈래로 갈라지면 어떻게 마음을 바르게 하여, 사리 사욕을 이기고 사물의 무궁한 변동에 대응하리까. 사람의 말을 듣고서 능히 그 옳고 그름을 아는 것을 총(聰)이라 이르고, 사람의 행동을 보아서 능히 그 간사하고 정직함을 가리는 것을 명(明)이라 이르고, 옳고 그름이 이미 분변되고 간사와 정직이 이미 판명되어 간신이 능히 현혹시키지 못하고 영신(佞臣)이 능히 변동시키지 못하는 것을 강(剛)이라 이르고, 옳은 것을 취하고 그른 것을 버리고 간신을 베고 정직한 사람을 등용하되 확고하여 의심이 없음을 단(斷)이라 이름니다. 그렇다면 총명 강단이란 마음이 바른 자가 아니면 능히 하지 못하는 것이니, 〈하느님을〉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얼마 못가서 태만과 소홀이 뒤를 잇고, 〈백성을〉 돌보고 걱정하는 마음이 얼마 못가서 주구(誅求)157) 가 따르고, 간사한 자를 좋아하면서도 거짓으로 어진 이를 구하는 양하며, 아첨하는 자를 즐기면서도 겉으로는 간언(諫言)을 받아들이는 척하고, 사치를 숭상하면서도 검소한 척하며, 심지어 태정(太庭)158) 의 여러 사람 가운데서는 수식(修飾)을 하면서 깊은 궁중의 한적한 사이에서는 방자하고 군자를 가까이 할 적에는 바로 가다가 소인을 친근히 할 적에 〈본색이〉 드러나서, 형세가 스스로 말지 못하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무릇 임금의 한 몸으로 깊숙이 구중 궁궐 속에 처해 있으니, 그 마음의 사정(邪正)을 엿볼 길이 없을 것 같지만, 보고 느끼는 사이에 바람 같이 움직이고 신처럼 빨라서 그 징험이 밖으로 나타나는 것을 스스로 가릴 수가 없게 되므로, 옛날 성왕(聖王)은 정일(精一)하고 극복(克復)하여, 비록 분화(紛華)와 파동 속에서나 깊숙하고 단독이어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처지에 있어도, 조심하고 또 조심하여 일찍이 잠깐도 게을리 하지 않았음은 바로 이때문이었습니다.
그렇더라도 진실로 학문을 강론한 공이 그 마음을 개명시켜서 참으로 이치가 나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 시비 사정의 소재에 미혹되지 않음이 없다면, 어찌 능히 본체의 바름을 지켜서 홀로 자득(自得)하는 묘한 경지에 나아갈 수 있으리까. 선유(先儒)가 말하기를 ‘밝은 임금은 학문을 힘쓰는 것으로 근본을 삼고, 성인의 학문은 마음을 바르게 갖는 것으로 요점을 삼는다.’ 하였거니와, 옛날 성왕이 사부(師傅)의 관(官)을 설립하고 빈우(賓友)의 위치를 마련하고 간쟁(諫諍)의 직을 두고 널리 어질고 덕 있는 선비를 구하는 까닭은 권강(勸講)에 대비하게 하여 반드시 격물 치지(格物致知)로부터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정하는 거룩한 사업을 다하게 한다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전하는 경전(經傳)에 주력하시고 예전 역사를 통달하시어, 성현의 말을 음미하여 의리의 당연함을 궁구하고, 고금의 변천을 관찰하여 득실의 기미를 징험하며, 마음에서 체득하여 몸에 돌려 그 실지를 밟아서, 요·순의 지경에 이르기를 구하셔야 하옵고, 진실로 차례를 건너뛰거나, 기록하고 외울 뿐이거나, 구절을 떼어다가 문장을 엮어내는 습성으로써 오늘의 성학(聖學)을 삼아서는 안 됩니다. 지금 전하께서 춘추가 아직 장성하시어 친히 만기(萬機)를 총람하고 만변(萬變)을 수작하시니, 진실로 전일의 문안 드리고 수라를 살피는 외에 오직 강독하는 것을 일삼던 것과 비할 바 아니므로, 함양(涵養)하고 훈도(薰陶)하는 방법을 더욱 지극히 하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선유(先儒)가 말하기를 ‘임금 한 몸이 어진 사대부를 대할 때가 많고 내시나 궁녀를 가까이 할 때가 적으면, 기질이 변화되고 인격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어서 그렇게 되려고 기약하지 않아도 그렇게 된다.’ 하였으니, 엎드려 바라옵건대, 전하는 날로 경연(經筵)에 납시고 밤에도 소대(召對)하시어, 의리를 설명하고 치도(治道)를 강마(講劘)하여 절차(切磋)159) 에 공급하며 방문(訪問)에 대비하기를 마치 대행왕(大行王)의 고사(故事)와 같이 하소서. 이렇게 하여 날이 오래되면 자연 통달하여 예지가 더욱 밝아질 것이니, 옛날 성왕(聖王)의 학문도 이에 지나지 아니할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동궁(東宮) 시절에 덕을 길러 인(仁)과 효(孝)로 소문이 드날려 일국의 운명이 전하에게 매인 지 여러 해였거니와, 하루아침에 대통(大統)을 담당하시어 위로는 종묘(宗廟) 사직의 중책과 아래로는 자손 장구의 계획이 있으니, 전하의 오늘날은 이른바 ‘한없는 아름다움인 동시에 한없는 근심이다.’는 것이라, 이 까닭에 지극히 어렵고 지극히 위태롭게 되어서 마치 범의 꼬리를 밟는 것과도 같고 봄 얼음을 밟는 것과도 같으시리니, 몸소 받으시어 고통이 어떠하시겠습니까. 옛날 주공(周公)·소공(召公)이 성왕(成王)을 경계함에 있어, 첫째 ‘엄하며 공손하며 공경하며 두려워하여 천명(天命)으로써 자신을 검속하소서.’ 하였고 둘째는 ‘백성을 다스림에 있어서도 공경하고 두려워하여 감히 게으르고 편안하게 하지 마소서.’ 하였고, 셋째는 ‘스스로 덕을 공경하소서.’ 하였고, 넷째는 ‘아! 어찌 공경하지 아니하리까.’ 하였고, 다섯째는 ‘왕은 빨리 덕을 공경하소서.’ 하였고, 여섯째는 그 덕을 공경하지 아니하여 마침내 그 명(命)을 떨어뜨렸습니다.’ 하였습니다. 저 주공과 소공은 다 옛날 성현으로서 그 임금을 계적(啓迪)160) 함에 있어 정녕하고 반목하여 되풀이한 것이 이에 지나지 않았으니, 어찌 임금의 한 마음으로 성(聖)과 광(狂)이 나누어지고 치(治)와 난(亂)이 판가름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신 등은 모두 용렬한 몸으로 시종(侍從)의 자리에서 대죄(待罪)하고 있으나, 행여 성총(聖聰)에 보탬이 되어 만분의 일이나마 죄를 메워 볼까 하는 생각이 어찌 없겠습니까. 전하께서 이로 인하여 소득이 있으시다면, 다음날 집희(緝熙)161) 광명(光明)의 학문과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의 효과에 대하여는 신 등의 말이 능히 미칠 바 아닙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전하는 유의하소서."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책 3권 2장 A면【국편영인본】 12책 643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註 154] 양암(諒闇) : 양음(亮陰)이라고도 하는데, 천자(天子)의 거상(居喪)하는 집을 이른 것임. 《서경(書經)》에 "왕이 양음에 택우하기를 3년이었다.[王宅憂亮陰三祀]"라 하였음.
- [註 155] 문·무(文武) : 주 문왕 무왕.
- [註 156] 편폐(便嬖) : 늘 임금 곁에 모시고 있어 귀염 받는 사람.
- [註 157] 주구(誅求) : 《좌전(左傳)》 양공(襄公) 31년에 "조그마한 폐읍(敝邑)이 대국의 사이에 끼어 있어 때가 없이 주구(誅求)를 당한다." 하였고, 그 주에 "주(誅)는 책(責)의 뜻인데, 남에게 책하여 욕망을 구한다는 뜻이다." 하였음.
- [註 158] 태정(太庭) : 임금이 국정을 의논 집행하는 곳. 외조(外朝) 외정(外廷).
- [註 159] 절차(切磋) : 《시경(詩經)》의 위풍(衛風) 기욱(淇澳) 장에 있는 여절 여차(如切如磋)의 준말임. 절(切)은 오린다는 뜻이요, 차(磋)는 다듬는다는 뜻인데, 골품(骨品)을 다루는 자는 반드시 먼저 오리고 나중에 다듬기 때문임. 그래서 탁마(琢磨)와 함께 학문을 닦는다는 뜻으로 쓰임.
- [註 160] 계적(啓迪) : 길을 열어 인도한다는 뜻.
- [註 161] 집희(緝熙) : 《시경(詩經)》 대아(大雅) 문왕(文王)편에 "아름답다, 집희하고 공경하심이여![於緝熙敬止]"하였고, 그 주에 집희(緝熙)는 광명(光明)의 뜻이라 하였음.
원문
○副提學成世明等上疏曰:
臣等伏覩 殿下躬上聖之資; 秉至孝之誠, 方居諒闇之中, 哀傷思慕, 意氣未能平也。 蓋所以就文武之業, 崇大化之本也。 臣等聞, 《易》曰: "作事謀始。" 《書》曰: "今嗣王, 新服厥命, 惟新厥德。" 又曰 "若生子, 罔不在厥初生, 自貽哲命。" 蓋殿下, 是作事謀始之主也; 今日, 是新厥德、貽哲命之基也。 殿下一心, 又天命人心之去留, 治亂興衰, 吉凶榮辱之所由取途也。 何者, 天下之事, 千變萬化, 其端無窮, 無一不出於人主之心。 故人主之心正, 則無不出於正; 不正, 則無不出於不正。 大舜惟精惟一之戒, 孔子克已復禮之云, 皆所以正吾此心, 而爲天下萬事之本也。 自古人主, 孰不欲聰明剛斷也, 敬天勤民也; 求賢納諫也, 崇儉去邪也; 遠便嬖以進忠直也, 抑私恩以抗公道也; 謹好尙以隆敎化也, 振紀綱以勵風俗也。 然而本心之善, 其體甚微, 攻之者衆, 趨向萬端, 則何以得此心之正, 勝利欲之私, 而應事物無窮之變乎? 聞人之言, 能識其是非, 謂之聰; 觀人之行, 能察其邪正, 謂之明; 是非旣辨, 邪正旣分, 奸不能惑, 侫不能移, 謂之剛; 取是而舍非, 誅奸而用正, 確然無所疑, 謂之斷。 然則聰明剛斷, 非心得其正者, 不能也。 敬畏未幾, 而慢忽繼之; 勤恤未幾, 而誅求隨之; 所愛者姦邪, 而謬爲求賢之貌; 所樂者諛謟, 而外爲納諫之容; 所崇者奢泰, 而文之以節儉之名, 甚至修飾於(太)〔大〕 庭廣衆之中, 而放肆於深宮燕(間)〔閒〕 之間; 矯揉於近君子之際, 而發露於昵小人之時, 勢有所不能自已者。 夫以人主眇然之身, 而深居九重之邃, 其心之邪正, 若不可得而窺者, 而觀感之間, 風動神速, 符驗之著於外者, 自不可得而掩焉。 古之聖王, 所以精之一之, 克之復之, 雖在紛華波動之中, 幽獨得肆之地, 而兢兢業業, 未嘗有須臾之怠者, 此也。 雖然, 苟無講學之功, 有以開明其心, 眞知理之在我, 而不迷於是非邪正之所在, 則亦安能守其本體之正, 而有獨詣自得之妙乎? 先儒曰: "明君以務學爲本, 聖學以正心爲要。" 古之聖王, 所以立師傅之官、設賓友之位、置諫諍之職, 博求賢德之士, 以待勸講, 而必自格物致知, 以極夫治國平天下之盛者, 此也。 伏願殿下, 沈潛經傳、洞覽前史, 味聖賢之言, 以究義理之當; 察古今之變, 以驗得失之幾, 會之心, 而反之身, 以踐其實, 以求造乎堯、舜之域, 固不可以涉獵記誦、割裂粧綴之習, 爲今日之聖學也。 今殿下富於春秋, 親攬萬幾, 酬酢萬變, 固非前日問安、視膳之外, 唯以講讀爲事之比也。 涵養薰陶之方, 尤不可不至也。 先儒曰: "人主一身, 接賢士大夫之時多, 親宦官宮妾之時少, 則氣質變化, 德器自成, 有不期然而然者矣。" 伏願 殿下, 日御經筵, 夜又召對, 陳說義理, 講劘治道, 以資切磋、以備訪問, 如 大行王故事, 日積旣久, 則自然通達, 睿智益明, 雖古聖王之學, 不過是矣。 殿下毓德春宮, 仁孝著聞, 一國之命, 繫於殿下者, 有年矣。 一朝當大一之統, 上有 宗廟、社稷之重, 下有子孫長久之計。 殿下今日所謂, 無(彊)〔疆〕 惟休, 亦無(彊)〔疆〕 惟恤, 而其所以爲至艱至危, 如蹈虎尾, 如履春氷, 恫瘝乃身者, 宜如何哉? 昔周公、召公之戒成王也, 一則曰, 嚴恭寅畏, 天命自度。 二則曰, 治民祗懼, 不敢遑寧。 三則曰, 皇自敬德。 四則曰, 嗚呼! 乃何不敬? 五則曰, (皇)〔王〕 其疾敬德。 六則曰, 惟不敬厥德, 乃〔早〕 (隊)〔墜〕 厥命。 夫周公、召公, 皆古聖賢, 而所以啓迪其君者, 丁寧反覆, 不過如此, 豈非以人主一心, 聖狂之所以分, 治亂之所由判乎? 臣等俱以庸劣, 待罪侍從, 思有以裨益聖聰, 補萬分一者, 容有旣耶? 殿下由此而有得焉, 則他日, 緝熙光明之學, 修齊治平之效, 有非臣等之言所能及也。 伏願殿下, 潛心焉。
傳曰: "知道。"
- 【태백산사고본】 1책 3권 2장 A면【국편영인본】 12책 643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연산군일기3권, 연산 1년 2월 2일 丙辰 3/6 기사 / 1495년 명 홍치(弘治) 8년
부제학 성세명 등이 정사하는 방법으로 선왕을 따르기를 상소하다
국역
부제학(副提學) 성세명(成世明) 등이 상소하기를,
"신 등이 엎드려 뵙건대, 전하께서 상성(上聖)의 자품과 지효(至孝)의 정성으로써 바야흐로 양암(諒闇)154) 중에 계시니, 애통하시고 사모하시어 심기가 평온하지 못하실 줄 아옵는데, 아마도 문·무(文武)155) 의 업을 성취하고 대화(大化)의 근본을 높이시려는 까닭이실 것입니다. 신 등이 듣기로는, 《주역(周易)》에 ‘일을 시작함에는 처음부터 계획을 잘해야 한다.’ 하였고, 《서경(書經)》에 ‘이제 사왕(嗣王)은 새로 천명(天命)을 받드시니 오직 그 덕을 새롭게 하소서.’ 하고, 또 ‘나은 자식이 그 갓낳을 적부터 스스로 철명(哲命)을 끼치지 아니함이 없는 것과 같다.’ 하였습니다.
전하께서 바로 일을 시작함에 처음을 꾀하여야 할 주인이시고, 오늘날이 바로 그 덕을 새롭게 하고 그 철명(哲命)을 끼치는 기초일 터이니, 전하의 한 마음에 또한 천명과 인심이 떠나고 머물음이 달려있고, 치란(治亂)·흥쇠(興衰)·길흉(吉凶)·영욕(榮辱)이 그로부터 나옵니다. 왜냐 하면 천하의 일은 천변 만화하여 그 끝이 무궁하나, 하나도 임금의 마음에서 나오지 않는 것이 없으므로, 임금이 마음이 바르면 바른 데서 나오지 않는 것이 없고, 임금의 마음이 부정하면 부정한 데서 나오지 않는 것이 없으니, 순(舜)임금의 ‘오직 정(精)하고 오직 한결같아야 한다.’는 경계와 공자(孔子)의 ‘자기를 극복하여 예로 회복하라.’는 말씀이 다 내 마음을 바르게 하여 천하 만사의 근본이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예로부터 임금으로서 누가 총명 강단(聰明剛斷)하며, 하느님을 공경하고 백성의 일에 부지런하며, 어진 이를 구하고 간언(諫言)을 받아들이며, 검박(儉朴)을 숭상하고 간사(姦邪)를 배격하며, 편폐(便嬖)156) 를 멀리하고 충직한 자를 등용하며, 사사로운 은혜를 억제하고 공도(公道)를 드높이며, 좋아하는 것을 삼가서 교화를 융성히 하며, 기강을 떨쳐서 풍속을 격려하고자 아니하겠습니까마는 본심의 선(善)은 그 체(體)됨이 심히 미약한데 공격하는 자는 많으니, 추향(趨向)이 만 갈래로 갈라지면 어떻게 마음을 바르게 하여, 사리 사욕을 이기고 사물의 무궁한 변동에 대응하리까. 사람의 말을 듣고서 능히 그 옳고 그름을 아는 것을 총(聰)이라 이르고, 사람의 행동을 보아서 능히 그 간사하고 정직함을 가리는 것을 명(明)이라 이르고, 옳고 그름이 이미 분변되고 간사와 정직이 이미 판명되어 간신이 능히 현혹시키지 못하고 영신(佞臣)이 능히 변동시키지 못하는 것을 강(剛)이라 이르고, 옳은 것을 취하고 그른 것을 버리고 간신을 베고 정직한 사람을 등용하되 확고하여 의심이 없음을 단(斷)이라 이름니다. 그렇다면 총명 강단이란 마음이 바른 자가 아니면 능히 하지 못하는 것이니, 〈하느님을〉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얼마 못가서 태만과 소홀이 뒤를 잇고, 〈백성을〉 돌보고 걱정하는 마음이 얼마 못가서 주구(誅求)157) 가 따르고, 간사한 자를 좋아하면서도 거짓으로 어진 이를 구하는 양하며, 아첨하는 자를 즐기면서도 겉으로는 간언(諫言)을 받아들이는 척하고, 사치를 숭상하면서도 검소한 척하며, 심지어 태정(太庭)158) 의 여러 사람 가운데서는 수식(修飾)을 하면서 깊은 궁중의 한적한 사이에서는 방자하고 군자를 가까이 할 적에는 바로 가다가 소인을 친근히 할 적에 〈본색이〉 드러나서, 형세가 스스로 말지 못하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무릇 임금의 한 몸으로 깊숙이 구중 궁궐 속에 처해 있으니, 그 마음의 사정(邪正)을 엿볼 길이 없을 것 같지만, 보고 느끼는 사이에 바람 같이 움직이고 신처럼 빨라서 그 징험이 밖으로 나타나는 것을 스스로 가릴 수가 없게 되므로, 옛날 성왕(聖王)은 정일(精一)하고 극복(克復)하여, 비록 분화(紛華)와 파동 속에서나 깊숙하고 단독이어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처지에 있어도, 조심하고 또 조심하여 일찍이 잠깐도 게을리 하지 않았음은 바로 이때문이었습니다.
그렇더라도 진실로 학문을 강론한 공이 그 마음을 개명시켜서 참으로 이치가 나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 시비 사정의 소재에 미혹되지 않음이 없다면, 어찌 능히 본체의 바름을 지켜서 홀로 자득(自得)하는 묘한 경지에 나아갈 수 있으리까. 선유(先儒)가 말하기를 ‘밝은 임금은 학문을 힘쓰는 것으로 근본을 삼고, 성인의 학문은 마음을 바르게 갖는 것으로 요점을 삼는다.’ 하였거니와, 옛날 성왕이 사부(師傅)의 관(官)을 설립하고 빈우(賓友)의 위치를 마련하고 간쟁(諫諍)의 직을 두고 널리 어질고 덕 있는 선비를 구하는 까닭은 권강(勸講)에 대비하게 하여 반드시 격물 치지(格物致知)로부터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정하는 거룩한 사업을 다하게 한다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전하는 경전(經傳)에 주력하시고 예전 역사를 통달하시어, 성현의 말을 음미하여 의리의 당연함을 궁구하고, 고금의 변천을 관찰하여 득실의 기미를 징험하며, 마음에서 체득하여 몸에 돌려 그 실지를 밟아서, 요·순의 지경에 이르기를 구하셔야 하옵고, 진실로 차례를 건너뛰거나, 기록하고 외울 뿐이거나, 구절을 떼어다가 문장을 엮어내는 습성으로써 오늘의 성학(聖學)을 삼아서는 안 됩니다. 지금 전하께서 춘추가 아직 장성하시어 친히 만기(萬機)를 총람하고 만변(萬變)을 수작하시니, 진실로 전일의 문안 드리고 수라를 살피는 외에 오직 강독하는 것을 일삼던 것과 비할 바 아니므로, 함양(涵養)하고 훈도(薰陶)하는 방법을 더욱 지극히 하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선유(先儒)가 말하기를 ‘임금 한 몸이 어진 사대부를 대할 때가 많고 내시나 궁녀를 가까이 할 때가 적으면, 기질이 변화되고 인격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어서 그렇게 되려고 기약하지 않아도 그렇게 된다.’ 하였으니, 엎드려 바라옵건대, 전하는 날로 경연(經筵)에 납시고 밤에도 소대(召對)하시어, 의리를 설명하고 치도(治道)를 강마(講劘)하여 절차(切磋)159) 에 공급하며 방문(訪問)에 대비하기를 마치 대행왕(大行王)의 고사(故事)와 같이 하소서. 이렇게 하여 날이 오래되면 자연 통달하여 예지가 더욱 밝아질 것이니, 옛날 성왕(聖王)의 학문도 이에 지나지 아니할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동궁(東宮) 시절에 덕을 길러 인(仁)과 효(孝)로 소문이 드날려 일국의 운명이 전하에게 매인 지 여러 해였거니와, 하루아침에 대통(大統)을 담당하시어 위로는 종묘(宗廟) 사직의 중책과 아래로는 자손 장구의 계획이 있으니, 전하의 오늘날은 이른바 ‘한없는 아름다움인 동시에 한없는 근심이다.’는 것이라, 이 까닭에 지극히 어렵고 지극히 위태롭게 되어서 마치 범의 꼬리를 밟는 것과도 같고 봄 얼음을 밟는 것과도 같으시리니, 몸소 받으시어 고통이 어떠하시겠습니까. 옛날 주공(周公)·소공(召公)이 성왕(成王)을 경계함에 있어, 첫째 ‘엄하며 공손하며 공경하며 두려워하여 천명(天命)으로써 자신을 검속하소서.’ 하였고 둘째는 ‘백성을 다스림에 있어서도 공경하고 두려워하여 감히 게으르고 편안하게 하지 마소서.’ 하였고, 셋째는 ‘스스로 덕을 공경하소서.’ 하였고, 넷째는 ‘아! 어찌 공경하지 아니하리까.’ 하였고, 다섯째는 ‘왕은 빨리 덕을 공경하소서.’ 하였고, 여섯째는 그 덕을 공경하지 아니하여 마침내 그 명(命)을 떨어뜨렸습니다.’ 하였습니다. 저 주공과 소공은 다 옛날 성현으로서 그 임금을 계적(啓迪)160) 함에 있어 정녕하고 반목하여 되풀이한 것이 이에 지나지 않았으니, 어찌 임금의 한 마음으로 성(聖)과 광(狂)이 나누어지고 치(治)와 난(亂)이 판가름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신 등은 모두 용렬한 몸으로 시종(侍從)의 자리에서 대죄(待罪)하고 있으나, 행여 성총(聖聰)에 보탬이 되어 만분의 일이나마 죄를 메워 볼까 하는 생각이 어찌 없겠습니까. 전하께서 이로 인하여 소득이 있으시다면, 다음날 집희(緝熙)161) 광명(光明)의 학문과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의 효과에 대하여는 신 등의 말이 능히 미칠 바 아닙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전하는 유의하소서."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책 3권 2장 A면【국편영인본】 12책 643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註 154] 양암(諒闇) : 양음(亮陰)이라고도 하는데, 천자(天子)의 거상(居喪)하는 집을 이른 것임. 《서경(書經)》에 "왕이 양음에 택우하기를 3년이었다.[王宅憂亮陰三祀]"라 하였음.
- [註 155] 문·무(文武) : 주 문왕 무왕.
- [註 156] 편폐(便嬖) : 늘 임금 곁에 모시고 있어 귀염 받는 사람.
- [註 157] 주구(誅求) : 《좌전(左傳)》 양공(襄公) 31년에 "조그마한 폐읍(敝邑)이 대국의 사이에 끼어 있어 때가 없이 주구(誅求)를 당한다." 하였고, 그 주에 "주(誅)는 책(責)의 뜻인데, 남에게 책하여 욕망을 구한다는 뜻이다." 하였음.
- [註 158] 태정(太庭) : 임금이 국정을 의논 집행하는 곳. 외조(外朝) 외정(外廷).
- [註 159] 절차(切磋) : 《시경(詩經)》의 위풍(衛風) 기욱(淇澳) 장에 있는 여절 여차(如切如磋)의 준말임. 절(切)은 오린다는 뜻이요, 차(磋)는 다듬는다는 뜻인데, 골품(骨品)을 다루는 자는 반드시 먼저 오리고 나중에 다듬기 때문임. 그래서 탁마(琢磨)와 함께 학문을 닦는다는 뜻으로 쓰임.
- [註 160] 계적(啓迪) : 길을 열어 인도한다는 뜻.
- [註 161] 집희(緝熙) : 《시경(詩經)》 대아(大雅) 문왕(文王)편에 "아름답다, 집희하고 공경하심이여![於緝熙敬止]"하였고, 그 주에 집희(緝熙)는 광명(光明)의 뜻이라 하였음.
원문
○副提學成世明等上疏曰:
臣等伏覩 殿下躬上聖之資; 秉至孝之誠, 方居諒闇之中, 哀傷思慕, 意氣未能平也。 蓋所以就文武之業, 崇大化之本也。 臣等聞, 《易》曰: "作事謀始。" 《書》曰: "今嗣王, 新服厥命, 惟新厥德。" 又曰 "若生子, 罔不在厥初生, 自貽哲命。" 蓋殿下, 是作事謀始之主也; 今日, 是新厥德、貽哲命之基也。 殿下一心, 又天命人心之去留, 治亂興衰, 吉凶榮辱之所由取途也。 何者, 天下之事, 千變萬化, 其端無窮, 無一不出於人主之心。 故人主之心正, 則無不出於正; 不正, 則無不出於不正。 大舜惟精惟一之戒, 孔子克已復禮之云, 皆所以正吾此心, 而爲天下萬事之本也。 自古人主, 孰不欲聰明剛斷也, 敬天勤民也; 求賢納諫也, 崇儉去邪也; 遠便嬖以進忠直也, 抑私恩以抗公道也; 謹好尙以隆敎化也, 振紀綱以勵風俗也。 然而本心之善, 其體甚微, 攻之者衆, 趨向萬端, 則何以得此心之正, 勝利欲之私, 而應事物無窮之變乎? 聞人之言, 能識其是非, 謂之聰; 觀人之行, 能察其邪正, 謂之明; 是非旣辨, 邪正旣分, 奸不能惑, 侫不能移, 謂之剛; 取是而舍非, 誅奸而用正, 確然無所疑, 謂之斷。 然則聰明剛斷, 非心得其正者, 不能也。 敬畏未幾, 而慢忽繼之; 勤恤未幾, 而誅求隨之; 所愛者姦邪, 而謬爲求賢之貌; 所樂者諛謟, 而外爲納諫之容; 所崇者奢泰, 而文之以節儉之名, 甚至修飾於(太)〔大〕 庭廣衆之中, 而放肆於深宮燕(間)〔閒〕 之間; 矯揉於近君子之際, 而發露於昵小人之時, 勢有所不能自已者。 夫以人主眇然之身, 而深居九重之邃, 其心之邪正, 若不可得而窺者, 而觀感之間, 風動神速, 符驗之著於外者, 自不可得而掩焉。 古之聖王, 所以精之一之, 克之復之, 雖在紛華波動之中, 幽獨得肆之地, 而兢兢業業, 未嘗有須臾之怠者, 此也。 雖然, 苟無講學之功, 有以開明其心, 眞知理之在我, 而不迷於是非邪正之所在, 則亦安能守其本體之正, 而有獨詣自得之妙乎? 先儒曰: "明君以務學爲本, 聖學以正心爲要。" 古之聖王, 所以立師傅之官、設賓友之位、置諫諍之職, 博求賢德之士, 以待勸講, 而必自格物致知, 以極夫治國平天下之盛者, 此也。 伏願殿下, 沈潛經傳、洞覽前史, 味聖賢之言, 以究義理之當; 察古今之變, 以驗得失之幾, 會之心, 而反之身, 以踐其實, 以求造乎堯、舜之域, 固不可以涉獵記誦、割裂粧綴之習, 爲今日之聖學也。 今殿下富於春秋, 親攬萬幾, 酬酢萬變, 固非前日問安、視膳之外, 唯以講讀爲事之比也。 涵養薰陶之方, 尤不可不至也。 先儒曰: "人主一身, 接賢士大夫之時多, 親宦官宮妾之時少, 則氣質變化, 德器自成, 有不期然而然者矣。" 伏願 殿下, 日御經筵, 夜又召對, 陳說義理, 講劘治道, 以資切磋、以備訪問, 如 大行王故事, 日積旣久, 則自然通達, 睿智益明, 雖古聖王之學, 不過是矣。 殿下毓德春宮, 仁孝著聞, 一國之命, 繫於殿下者, 有年矣。 一朝當大一之統, 上有 宗廟、社稷之重, 下有子孫長久之計。 殿下今日所謂, 無(彊)〔疆〕 惟休, 亦無(彊)〔疆〕 惟恤, 而其所以爲至艱至危, 如蹈虎尾, 如履春氷, 恫瘝乃身者, 宜如何哉? 昔周公、召公之戒成王也, 一則曰, 嚴恭寅畏, 天命自度。 二則曰, 治民祗懼, 不敢遑寧。 三則曰, 皇自敬德。 四則曰, 嗚呼! 乃何不敬? 五則曰, (皇)〔王〕 其疾敬德。 六則曰, 惟不敬厥德, 乃〔早〕 (隊)〔墜〕 厥命。 夫周公、召公, 皆古聖賢, 而所以啓迪其君者, 丁寧反覆, 不過如此, 豈非以人主一心, 聖狂之所以分, 治亂之所由判乎? 臣等俱以庸劣, 待罪侍從, 思有以裨益聖聰, 補萬分一者, 容有旣耶? 殿下由此而有得焉, 則他日, 緝熙光明之學, 修齊治平之效, 有非臣等之言所能及也。 伏願殿下, 潛心焉。
傳曰: "知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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