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실록281권, 성종 24년 8월 10일 壬申 4/4 기사 / 1493년 명 홍치(弘治) 6년
대간의 추국에 관한 허침 등의 상소
국역
사헌부 대사헌(司憲府大司憲) 허침(許琛)과 사간원 대사간(司諫院大司諫) 허계(許誡) 등이 상소하기를,
"신 등이 그윽이 보건대, 삼대(三代)1142) 이상은 간관(諫官)이 없고 위로 공경 대부(公卿大夫)로부터 아래로 백공(百工)1143) 에 이르기까지 간하지 못하는 이가 없었는데, 진(秦)·한(漢) 이하로부터 인심이 옛과 같지 아니하여 충성을 다해 임금을 섬기는 자가 대개 적고 각각 사국(司局)이 있어 서로 침월(侵越)하지 못하므로 사람마다 감히 규간(規諫)할 수 없으니, 이에 비로소 간관(諫官)을 두어 조정의 이목(耳目)과 백관의 승묵(繩墨)1144) 으로 삼았습니다. 이러므로 전폐(殿陛) 밑에 서서 임금과 더불어 옳고 그름을 다투고 보고 들음에 따라서 비위(非違)를 규찰(糾察)하니, 진실로 국가의 원기(元氣)인데, 하루라도 없을 수 없습니다. 이로써 밝은 임금과 바른 왕은 반드시 높은 예(禮)로 이를 대접하고 비록 간혹 지나치는 일이 있더라도 다시 너그럽게 용서함을 더하고 안색을 화(和)하게 하여 이를 접하는 것은, 그 사람을 위함이 아니라 바로 국가를 위하는 것입니다. 만약 위엄과 노여움으로써 이를 위협하고 죄책으로써 이에 가하면, 이른바 벼락이 치는 곳에 꺾어지지 아니하는 바가 없고 만균(萬鈞)1145) 의 누르는 바에 부서지지 아니하는 것이 없는데, 누가 즐겨서 용린(龍鱗)1146) 을 거스리고 옷자락을 끌어당기면서 만 번 죽음을 무릅쓰고 감히 간하겠습니까? 전하께서는 총명 인지(聰明仁智)하사 허심 탄회하게 간하는 말을 받아들여서 천고(千古)에 우뚝하게 높으시니, 즉위(卽位)하신 이래로 20여 년 동안 일을 말함으로써 국문을 당한 자가 있지 아니하였는데, 어찌 오늘날에 언관(言官)을 추국(推鞫)하라는 명령을 고집하심이 이에 이를 것을 헤아렸겠습니까? 대간(臺諫) 윤은로(尹殷老)의 경윤(京尹)1147) 에 적당하지 못함과 이창신(李昌臣)의 종정(宗正)1148) 에 적당하지 못함을 논한 것은 진실로 사체(事體)에 합당한데, 전하께서 고집하시고 들어주지 아니하시면서 대간(臺諫)을 외직에 보임(補任)하는 명령이 마침 내리자, 전조(銓曹)에서는 이를 인해 주의(注擬)하고 전하께서는 이를 따라 제배(除拜)하여 사간(司諫)과 대사헌(大司憲)이 함께 외직으로 나갔으니, 전하께서 여기에 비록 일호(一毫)의 사사로움이 없다고 하시더라도 바야흐로 조정의 일을 논하는데 갑자기 외직에 서임(敍任)하였으니, 일이 개운하지 못하기 때문에 대간이 이를 말한 것입니다. 이는 그 말하는 책임을 다하여 임금을 허물없는 땅으로 인도하려고 하는 것뿐인데, 무슨 다른 뜻이 있겠습니까? 전하께서는 다른 뜻이 있다고 하시고 위를 업신여긴다고 하시어 추국(推鞫)하여 죄주려고 하시면서 비록 대신과 대간의 말이라 하더라도 모두 들어주지 아니하시니, 신 등은 한갓 전하를 위하여 애석해 할 뿐만 아니라, 또한 국가를 위하여 애석해하며 종사(宗社)를 위하여 애석해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조정의 언로(言路)가 막힘이 오늘에서 비롯될 것이며 대간의 입을 닫고 혀를 붙임이 또한 오늘에서 비롯될 것이니, 이제부터 나라 일이 과연 어떻게 될 것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가히 통곡하고 눈물을 흘릴 만하다고 하겠습니다.
선유(先儒)가 이르기를, ‘간(諫)하는 것은 하정(下情)을 상달(上達)하게 하는 것이 혈기(血氣)가 한 몸에 두루 유통하게 하는 것과 같아서 혈기가 막히면 사망하고 언로가 막히면 어지러워진다.’고 하였으니, 원컨대, 전하께서는 이 말을 깊게 체득하여 국문하지 말게 하는 명령을 빨리 내려서 여정(輿情)을 쾌하게 하시면, 진실로 국가의 큰 다행이겠습니다. 신 등이 또 보건대, 집정(執政)의 잘못을 대간(臺諫)이 공격하기 때문에 역대 이래로 사사로움을 품고 간사함을 행하는 자는 반드시 언관(言官)을 미워하여 한 번 곧은 말이 자기에게 미치면 문득 물리쳐 버리니, 왕안석(王安石)1149) 이 집정하자 여(呂)1150) ·소(蘇)1151) 여러 무리가 일망타진(一網打盡)된 것과 같으니, 이는 그 심한 것으로 국가의 화란(禍亂)이 곧 따라서 이르렀습니다. 방금 성명(聖明)하신 밑에서 어찌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요사이 전조(銓曹)에서 바야흐로 대간의 탄핵을 입었는데 따로 전지(傳旨)를 받듦이 없으면서 성현(成俔)을 외직으로 내어 보내고 황계옥(黃啓沃)을 다른 직으로 옮겼으니, 이는 곧 자기를 탄핵한 혐의로움을 피하지 아니하고서 가슴 속의 생각을 함부로 행한 것입니다. 그 마음의 깊은 속은 비록 알지 못하더라도 그 자취를 보면 송조(宋朝)의 일과 비슷함이 있습니다. 빨리 추국하기를 명하사 죄를 주어 그 조짐을 막는 것이 가합니다. 또 이창신(李昌臣)은 자신이 탐오(貪汚)를 범하여 행실이 음사(陰邪)에 가까운데 두소(斗筲)의 작은 그릇을 청현(淸顯)의 지위에 둘 수 없습니다.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일체 《대전(大典)》에 따라서 서경(署經)하는 임무에 서용(敍用)하지 마는 것이 가합니다. 신 등이 엎드려 보건대, 전하께서 근년 이래로 간하는 말에 따르시는 아름다움이 점점 처음과 같지 아니하시나 오히려 억지로 따르시는 것이 많으셨는데, 지금은 간신(諫臣)을 국문하여 이를 죄주려고 하시면서 신 등의 간함을 굳게 거절하시고 따르지 아니하시니, 이를 책(策)1152) 에 쓰면 천년 후에 전하를 어떻다고 이르겠습니까? 옛사람은 다스려진 세대를 근심하고 밝은 임금을 위태롭게 여겼습니다. 대개 밝은 임금은 남보다 뛰어난 자질(資質)이 있고 다스려진 세대에는 두려워할 만한 방비가 없으니, 납보다 뛰어난 자질이 있으면 반드시 그 신하를 가볍게 여기고 두려워할 만한 방비가 없으면 반드시 그 간함을 소홀히 합니다. 이는 옛사람이 근심하고 위태롭게 여기는 까닭입니다. 신 등이 오늘에 또한 근심하고 위태롭게 여기는 지극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전하를 위해 간절히 말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엎드려 원하건대, 가볍게 여기지 마시고 소홀히 하지 마시며 정신을 머물러 살피소서."
하였는데, 전교하기를,
"경 등이 나를 믿어서 말함이 이에 이르렀으니, 경 등의 말이 비록 혹시 실정에 지나치더라도 내가 어찌 허물하겠는가? 전의 대간(臺諫)은 내가 뜻하지 아니한 일을 먼저 스스로 억탁(臆度)하여 말한 때문에 국문하기를 명한 것이다. 이창신의 일은 그 때에 단지 가장(家長)으로써 죄에 연좌된 것이다. 법은 비록 이와 같다 하더라도 정상(情狀)은 용서할 만하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4책 281권 20장 B면【국편영인본】 12책 383면
- 【분류】역사-고사(故事) / 정론-간쟁(諫諍) / 사법-탄핵(彈劾) / 인사-임면(任免)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註 1142] 삼대(三代) : 하(夏)·은(殷)·주(周).
- [註 1143] 백공(百工) : 백관(百官).
- [註 1144] 승묵(繩墨) : 먹줄. 곧 법도(法度).
- [註 1145] 만균(萬鈞) : 매우 무거움을 뜻함. 균(鈞)은 30근(斤).
- [註 1146] 용린(龍鱗) : 임금의 위엄.
- [註 1147] 경윤(京尹) : 한성부 좌윤.
- [註 1148] 종정(宗正) : 종부시 정.
- [註 1149] 왕안석(王安石) : 송(宋)나라 때 정치가.
- [註 1150] 여(呂) : 여회(呂誨).
- [註 1151] 소(蘇) : 소식(蘇軾).
- [註 1152] 책(策) : 역사.
원문
臣等竊觀, 三代以上諫無官, 上自公卿大夫, 下至於百工, 無不得諫。 自秦、漢以下, 人心不古, 盡忠事君者蓋寡, 而各有司局, 不相侵越, 而無敢人得而規諫矣。 於是始置諫官, 以爲朝廷之耳目, 百官之繩墨, 故立殿陛之下, 與人主爭是非, 隨所聞見, 糾察非違, 誠國家之元氣, 而不可一日無也。 是以明君誼辟, 必隆禮以待之, 雖間有過當之事, 更加優容, 和顔色而接之者, 非爲其人也, 乃爲國家也。 若震之以威怒, 加之以罪責, 則所謂雷霆之所擊, 無不摧折; 萬鈞之所壓, 無不糜滅, 孰肯批鱗牽裾, 出萬死而敢諫乎? 殿下聰明仁智, 虛懷納諫, 卓冠千古, 踐祚以來二十餘年間, 罕有以言事見鞫者, 何圖今日推鞫言官之命堅執至此乎? 臺諫論殷老之不宜京尹, 昌臣之不宜宗正, 誠合事體, 而殿下固執不聽, 臺諫補外之命適下, 銓曹因之以注擬, 殿下從之, 除拜司諫、大憲俱出于外, 殿下於此雖無毫髮之私, 方論朝事而遽敍外官, 事未稱快, 故臺諫言之, 是欲盡其言責而致君於無過之地耳, 有何情乎? 殿下以爲有情, 以爲慢上, 推鞫欲罪, 雖大臣、臺諫之言, 皆莫之聽, 臣等非徒爲殿下惜之, 抑亦爲國家惜之, 爲宗社惜之。 何則? 朝廷之壅塞言路, 自今日始, 而臺諫之緘口結舌, 亦自今日始, 未知自今國事果如何也? 可謂痛哭流涕矣。 先儒云: "諫者使下情上達, 如血氣之周流一身, 血氣壅則亡, 言路塞則亂。" 願殿下深體此言, 亟下勿鞫之命, 以(怏)〔快〕 輿情, 誠國家之大幸也。 臣等且觀, 執政之失, 臺諫攻之, 故歷代以來, 其懷私售奸者, 則必嫉惡言官, 一有直言及己, 則輒斥去之。 如王安石執政而呂、蘇諸輩一網打盡, 此其甚者也, 而國家之禍亂旋踵而至, 方今聖明之下, 豈有是哉? 然近日銓曹方被臺諫之劾, 而別無奉旨, 出成俔於外, 移啓沃於他, 是乃不避劾己之嫌, 而恣行胸臆也。 其心之奧, 雖未可知, 觀其跡則有類於宋朝之事矣。 亟命推鞫抵罪, 以杜其漸可也。 且昌臣, 身犯貪汚, 行涉陰邪, 乃斗筲小器, 不可置諸淸顯之地, 願殿下一遵《大典》, 勿敍署經之任可也。 臣等伏覩, 殿下頃年以來從諫之美, 浸不如初, 然猶勉强從之者多矣。 今乃欲鞫諫臣而罪之, 固拒臣等之諫而不從, 以此書之於策, 則千載之下, 謂殿下何如也? 古之人憂治世而危明主, 蓋明主有絶人之資, 治世無可畏之防, 有絶人之資則必輕其臣, 無可畏之防則必易其諫, 此古人所以憂之危之也。 臣等於今日亦不勝憂危之至, 而爲殿下懇懇言之者, 正以此也。 伏願殿下, 勿輕勿易, 而留神省察。
傳曰: "卿等恃予言之至此, 卿等之言, 雖或過情, 予豈過之哉? 前臺諫, 以予所不意之事, 先自臆度言之, 故命鞫之。 昌臣事, 其時只以家長坐罪耳, 法雖如是, 情有可恕。"
- 【태백산사고본】 44책 281권 20장 B면【국편영인본】 12책 383면
- 【분류】역사-고사(故事) / 정론-간쟁(諫諍) / 사법-탄핵(彈劾) / 인사-임면(任免)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성종 24년 (1493) 8월 10일
성종실록281권, 성종 24년 8월 10일 壬申 4/4 기사 / 1493년 명 홍치(弘治) 6년
대간의 추국에 관한 허침 등의 상소
국역
사헌부 대사헌(司憲府大司憲) 허침(許琛)과 사간원 대사간(司諫院大司諫) 허계(許誡) 등이 상소하기를,
"신 등이 그윽이 보건대, 삼대(三代)1142) 이상은 간관(諫官)이 없고 위로 공경 대부(公卿大夫)로부터 아래로 백공(百工)1143) 에 이르기까지 간하지 못하는 이가 없었는데, 진(秦)·한(漢) 이하로부터 인심이 옛과 같지 아니하여 충성을 다해 임금을 섬기는 자가 대개 적고 각각 사국(司局)이 있어 서로 침월(侵越)하지 못하므로 사람마다 감히 규간(規諫)할 수 없으니, 이에 비로소 간관(諫官)을 두어 조정의 이목(耳目)과 백관의 승묵(繩墨)1144) 으로 삼았습니다. 이러므로 전폐(殿陛) 밑에 서서 임금과 더불어 옳고 그름을 다투고 보고 들음에 따라서 비위(非違)를 규찰(糾察)하니, 진실로 국가의 원기(元氣)인데, 하루라도 없을 수 없습니다. 이로써 밝은 임금과 바른 왕은 반드시 높은 예(禮)로 이를 대접하고 비록 간혹 지나치는 일이 있더라도 다시 너그럽게 용서함을 더하고 안색을 화(和)하게 하여 이를 접하는 것은, 그 사람을 위함이 아니라 바로 국가를 위하는 것입니다. 만약 위엄과 노여움으로써 이를 위협하고 죄책으로써 이에 가하면, 이른바 벼락이 치는 곳에 꺾어지지 아니하는 바가 없고 만균(萬鈞)1145) 의 누르는 바에 부서지지 아니하는 것이 없는데, 누가 즐겨서 용린(龍鱗)1146) 을 거스리고 옷자락을 끌어당기면서 만 번 죽음을 무릅쓰고 감히 간하겠습니까? 전하께서는 총명 인지(聰明仁智)하사 허심 탄회하게 간하는 말을 받아들여서 천고(千古)에 우뚝하게 높으시니, 즉위(卽位)하신 이래로 20여 년 동안 일을 말함으로써 국문을 당한 자가 있지 아니하였는데, 어찌 오늘날에 언관(言官)을 추국(推鞫)하라는 명령을 고집하심이 이에 이를 것을 헤아렸겠습니까? 대간(臺諫) 윤은로(尹殷老)의 경윤(京尹)1147) 에 적당하지 못함과 이창신(李昌臣)의 종정(宗正)1148) 에 적당하지 못함을 논한 것은 진실로 사체(事體)에 합당한데, 전하께서 고집하시고 들어주지 아니하시면서 대간(臺諫)을 외직에 보임(補任)하는 명령이 마침 내리자, 전조(銓曹)에서는 이를 인해 주의(注擬)하고 전하께서는 이를 따라 제배(除拜)하여 사간(司諫)과 대사헌(大司憲)이 함께 외직으로 나갔으니, 전하께서 여기에 비록 일호(一毫)의 사사로움이 없다고 하시더라도 바야흐로 조정의 일을 논하는데 갑자기 외직에 서임(敍任)하였으니, 일이 개운하지 못하기 때문에 대간이 이를 말한 것입니다. 이는 그 말하는 책임을 다하여 임금을 허물없는 땅으로 인도하려고 하는 것뿐인데, 무슨 다른 뜻이 있겠습니까? 전하께서는 다른 뜻이 있다고 하시고 위를 업신여긴다고 하시어 추국(推鞫)하여 죄주려고 하시면서 비록 대신과 대간의 말이라 하더라도 모두 들어주지 아니하시니, 신 등은 한갓 전하를 위하여 애석해 할 뿐만 아니라, 또한 국가를 위하여 애석해하며 종사(宗社)를 위하여 애석해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조정의 언로(言路)가 막힘이 오늘에서 비롯될 것이며 대간의 입을 닫고 혀를 붙임이 또한 오늘에서 비롯될 것이니, 이제부터 나라 일이 과연 어떻게 될 것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가히 통곡하고 눈물을 흘릴 만하다고 하겠습니다.
선유(先儒)가 이르기를, ‘간(諫)하는 것은 하정(下情)을 상달(上達)하게 하는 것이 혈기(血氣)가 한 몸에 두루 유통하게 하는 것과 같아서 혈기가 막히면 사망하고 언로가 막히면 어지러워진다.’고 하였으니, 원컨대, 전하께서는 이 말을 깊게 체득하여 국문하지 말게 하는 명령을 빨리 내려서 여정(輿情)을 쾌하게 하시면, 진실로 국가의 큰 다행이겠습니다. 신 등이 또 보건대, 집정(執政)의 잘못을 대간(臺諫)이 공격하기 때문에 역대 이래로 사사로움을 품고 간사함을 행하는 자는 반드시 언관(言官)을 미워하여 한 번 곧은 말이 자기에게 미치면 문득 물리쳐 버리니, 왕안석(王安石)1149) 이 집정하자 여(呂)1150) ·소(蘇)1151) 여러 무리가 일망타진(一網打盡)된 것과 같으니, 이는 그 심한 것으로 국가의 화란(禍亂)이 곧 따라서 이르렀습니다. 방금 성명(聖明)하신 밑에서 어찌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요사이 전조(銓曹)에서 바야흐로 대간의 탄핵을 입었는데 따로 전지(傳旨)를 받듦이 없으면서 성현(成俔)을 외직으로 내어 보내고 황계옥(黃啓沃)을 다른 직으로 옮겼으니, 이는 곧 자기를 탄핵한 혐의로움을 피하지 아니하고서 가슴 속의 생각을 함부로 행한 것입니다. 그 마음의 깊은 속은 비록 알지 못하더라도 그 자취를 보면 송조(宋朝)의 일과 비슷함이 있습니다. 빨리 추국하기를 명하사 죄를 주어 그 조짐을 막는 것이 가합니다. 또 이창신(李昌臣)은 자신이 탐오(貪汚)를 범하여 행실이 음사(陰邪)에 가까운데 두소(斗筲)의 작은 그릇을 청현(淸顯)의 지위에 둘 수 없습니다.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일체 《대전(大典)》에 따라서 서경(署經)하는 임무에 서용(敍用)하지 마는 것이 가합니다. 신 등이 엎드려 보건대, 전하께서 근년 이래로 간하는 말에 따르시는 아름다움이 점점 처음과 같지 아니하시나 오히려 억지로 따르시는 것이 많으셨는데, 지금은 간신(諫臣)을 국문하여 이를 죄주려고 하시면서 신 등의 간함을 굳게 거절하시고 따르지 아니하시니, 이를 책(策)1152) 에 쓰면 천년 후에 전하를 어떻다고 이르겠습니까? 옛사람은 다스려진 세대를 근심하고 밝은 임금을 위태롭게 여겼습니다. 대개 밝은 임금은 남보다 뛰어난 자질(資質)이 있고 다스려진 세대에는 두려워할 만한 방비가 없으니, 납보다 뛰어난 자질이 있으면 반드시 그 신하를 가볍게 여기고 두려워할 만한 방비가 없으면 반드시 그 간함을 소홀히 합니다. 이는 옛사람이 근심하고 위태롭게 여기는 까닭입니다. 신 등이 오늘에 또한 근심하고 위태롭게 여기는 지극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전하를 위해 간절히 말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엎드려 원하건대, 가볍게 여기지 마시고 소홀히 하지 마시며 정신을 머물러 살피소서."
하였는데, 전교하기를,
"경 등이 나를 믿어서 말함이 이에 이르렀으니, 경 등의 말이 비록 혹시 실정에 지나치더라도 내가 어찌 허물하겠는가? 전의 대간(臺諫)은 내가 뜻하지 아니한 일을 먼저 스스로 억탁(臆度)하여 말한 때문에 국문하기를 명한 것이다. 이창신의 일은 그 때에 단지 가장(家長)으로써 죄에 연좌된 것이다. 법은 비록 이와 같다 하더라도 정상(情狀)은 용서할 만하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4책 281권 20장 B면【국편영인본】 12책 383면
- 【분류】역사-고사(故事) / 정론-간쟁(諫諍) / 사법-탄핵(彈劾) / 인사-임면(任免)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註 1142] 삼대(三代) : 하(夏)·은(殷)·주(周).
- [註 1143] 백공(百工) : 백관(百官).
- [註 1144] 승묵(繩墨) : 먹줄. 곧 법도(法度).
- [註 1145] 만균(萬鈞) : 매우 무거움을 뜻함. 균(鈞)은 30근(斤).
- [註 1146] 용린(龍鱗) : 임금의 위엄.
- [註 1147] 경윤(京尹) : 한성부 좌윤.
- [註 1148] 종정(宗正) : 종부시 정.
- [註 1149] 왕안석(王安石) : 송(宋)나라 때 정치가.
- [註 1150] 여(呂) : 여회(呂誨).
- [註 1151] 소(蘇) : 소식(蘇軾).
- [註 1152] 책(策) : 역사.
원문
臣等竊觀, 三代以上諫無官, 上自公卿大夫, 下至於百工, 無不得諫。 自秦、漢以下, 人心不古, 盡忠事君者蓋寡, 而各有司局, 不相侵越, 而無敢人得而規諫矣。 於是始置諫官, 以爲朝廷之耳目, 百官之繩墨, 故立殿陛之下, 與人主爭是非, 隨所聞見, 糾察非違, 誠國家之元氣, 而不可一日無也。 是以明君誼辟, 必隆禮以待之, 雖間有過當之事, 更加優容, 和顔色而接之者, 非爲其人也, 乃爲國家也。 若震之以威怒, 加之以罪責, 則所謂雷霆之所擊, 無不摧折; 萬鈞之所壓, 無不糜滅, 孰肯批鱗牽裾, 出萬死而敢諫乎? 殿下聰明仁智, 虛懷納諫, 卓冠千古, 踐祚以來二十餘年間, 罕有以言事見鞫者, 何圖今日推鞫言官之命堅執至此乎? 臺諫論殷老之不宜京尹, 昌臣之不宜宗正, 誠合事體, 而殿下固執不聽, 臺諫補外之命適下, 銓曹因之以注擬, 殿下從之, 除拜司諫、大憲俱出于外, 殿下於此雖無毫髮之私, 方論朝事而遽敍外官, 事未稱快, 故臺諫言之, 是欲盡其言責而致君於無過之地耳, 有何情乎? 殿下以爲有情, 以爲慢上, 推鞫欲罪, 雖大臣、臺諫之言, 皆莫之聽, 臣等非徒爲殿下惜之, 抑亦爲國家惜之, 爲宗社惜之。 何則? 朝廷之壅塞言路, 自今日始, 而臺諫之緘口結舌, 亦自今日始, 未知自今國事果如何也? 可謂痛哭流涕矣。 先儒云: "諫者使下情上達, 如血氣之周流一身, 血氣壅則亡, 言路塞則亂。" 願殿下深體此言, 亟下勿鞫之命, 以(怏)〔快〕 輿情, 誠國家之大幸也。 臣等且觀, 執政之失, 臺諫攻之, 故歷代以來, 其懷私售奸者, 則必嫉惡言官, 一有直言及己, 則輒斥去之。 如王安石執政而呂、蘇諸輩一網打盡, 此其甚者也, 而國家之禍亂旋踵而至, 方今聖明之下, 豈有是哉? 然近日銓曹方被臺諫之劾, 而別無奉旨, 出成俔於外, 移啓沃於他, 是乃不避劾己之嫌, 而恣行胸臆也。 其心之奧, 雖未可知, 觀其跡則有類於宋朝之事矣。 亟命推鞫抵罪, 以杜其漸可也。 且昌臣, 身犯貪汚, 行涉陰邪, 乃斗筲小器, 不可置諸淸顯之地, 願殿下一遵《大典》, 勿敍署經之任可也。 臣等伏覩, 殿下頃年以來從諫之美, 浸不如初, 然猶勉强從之者多矣。 今乃欲鞫諫臣而罪之, 固拒臣等之諫而不從, 以此書之於策, 則千載之下, 謂殿下何如也? 古之人憂治世而危明主, 蓋明主有絶人之資, 治世無可畏之防, 有絶人之資則必輕其臣, 無可畏之防則必易其諫, 此古人所以憂之危之也。 臣等於今日亦不勝憂危之至, 而爲殿下懇懇言之者, 正以此也。 伏願殿下, 勿輕勿易, 而留神省察。
傳曰: "卿等恃予言之至此, 卿等之言, 雖或過情, 予豈過之哉? 前臺諫, 以予所不意之事, 先自臆度言之, 故命鞫之。 昌臣事, 其時只以家長坐罪耳, 法雖如是, 情有可恕。"
- 【태백산사고본】 44책 281권 20장 B면【국편영인본】 12책 383면
- 【분류】역사-고사(故事) / 정론-간쟁(諫諍) / 사법-탄핵(彈劾) / 인사-임면(任免)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원본
성종 24년 (1493) 8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