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실록276권, 성종 24년 4월 28일 壬戌 3/5 기사 / 1493년 명 홍치(弘治) 6년
총관들의 추문에 관한 조문숙의 상소
국역
사헌부 집의(司憲府執義) 조문숙(趙文琡) 등이 상소(上疏)하기를,
"가만히 생각해 보건대 《우서(虞書)》에서는, 인주(人主)와 대신(大臣)으로써 일체(一體)를 삼았고, 《춘추(春秋)》에서는 천왕(天王)과 재상(宰相)이 한 마음을 삼았으니, 임금은 신하에게 대하여 의심하지 아니하고, 신하는 임금에게 대하여 미혹되지 아니하며, 바른 도리로 섬기어, 그 뜻을 숨기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윗사람이 되어서는 바라는 바를 알고, 아랫사람이 되어서는 그 뜻을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옛날의 대부(大夫)는 견책(譴責)을 당하게 되면, 백관(白冠)에 갓끈을 졸라매고, 반수(盤水)에 칼을 얹어 궐문(闕門)에 나아가 스스로 죄(罪)를 청했던 것입니다. 이는 다름이 아니고, 대부가 된 자는 염치(廉恥)와 예의(禮義)로써 그 자신을 다스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임금의 녹(祿)을 먹으면서도 임금의 은혜를 잊고 이(利)를 앞세우고 의(義)를 뒤로 하며, 사사로움을 도모하여 공도(公道)를 폐(廢)하고, 남이 자신을 칭찬하는 것을 기뻐하고 남이 자신을 비방하는 것은 싫어하여, 동료들끼리 헐뜯고 서로 잘 지내지 아니하면서 더러운 곳으로 나아가며, 임금이 들은 바가 있어서 물으면 바른 말로 대답하지 아니하니 이른바 말을 들을까 하여 대하나 말을 외대고 취한 듯이 한다고 하니, 이것은 곧 절행(節行)으로써 윗사람에게 보답하는 것이 아니니, 사람의 무리라고 할 수 없습니다. 지금 총관(摠管)들은 혹은 자신이 재상이기도 하고 혹은 총애를 받은 척속(戚屬)이기도 하니, 주석(柱石)과 폐부(肺腑)의 신하라고 이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가지라도 관직(官職)에서 다스리지 못했다는 허물이 있으면 문을 닫고 나오지 아니해야 할 것이며, 과연 죄가 있다면 부복하는 것을 달게 여겨 핑계대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과연 죄가 없다고 한다면 족히 총명(聰明) 아래에서 폭백(曝白)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하지 않고 오직 원망하는 것만을 도모하여 오늘 정성근(鄭誠謹)의 한 가지 허물을 찾아내고 내일 또 정성근의 허물을 찾아내어 그 말을 꾸며대어 달려가 전하(殿下)께 고(告)하는데, 그 말의 근거를 물으면, 서로 숨기고 명백하게 하지 아니하니, 일찍이 대신이라 이르고서 이러한 행동을 한 일이 있었습니까? 인신(人臣)의 죄는 기망(欺罔)보다 큰 것이 없는데 기망한 실상은 오직 이철견(李鐵堅) 등이 떠맡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저들이 이미 대신으로 자처(自處)하지 아니하니 전하께서 어찌 대신으로 대우하겠습니까? 추국(推鞫)으로 철저히 힐문하여 끝까지 살피는 것이 옳을 것인데, 버려두고 묻지 아니한다면 교만하고 방자스러움이 더욱 심하여 죄가 구(救)하지 못할 때까지 이를 것이며, 또한 대신의 도리도 온전히 하지 못할 것입니다. 저들이 정상(情狀)을 전하께서는 알고 계시면서 물으시지 않는 것입니까, 알지 못하시기 때문에 묻지 않는 것입니까? 전하께서는 반드시 불을 보듯이 환히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 간사함을 알고서도 용서하신다면 악한 짓을 하는 자를 무엇으로 징계하겠습니까? 잔에 부은 술과 제기에 담은 고기를 사양하고 나쁜 것을 먹는다 하더라도 백성은 오히려 나이의 차례를 범하게 될 것이고, 임석(衽席)의 위에서 사양하고 아래에 앉는다 하더라도, 백성들은 오히려 귀한 이를 범하게 될 것이며, 조정(朝廷)의 지위를 사양하고 천한 데로 나아간다고 하더라도 백성들은 오히려 임금을 범할 것인데, 지금 이 대신들이 조정에서 화목하지 못하여 다투어 먼저 고알(告訐)한다면 이치와 형세로 보아 하민(下民)들도 서로 비방(誹謗)하게 될 것입니다. 상하(上下)에서 예양(禮讓)의 기풍이 없고, 조야(朝野)에서 쟁투(爭鬪)할 마음을 일으킨다면, 나라가 나라답지 않게 되어 크게 두려워할 만한 일이 닥칠 것입니다. 엎드려 원하건대 빨리 추문하라는 명령을 내리시어, 더욱 염치의 도(道)를 권려하신다면 작은 일에서 큰 일을 이룰 수 있고 쉬운 일에서 어려운 일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니, 나라가 몹시 다행할 것입니다."
하니, 어서(御書)로 이르기를,
"근자에 도총관(都摠管)들의 소위(所爲)를 보니, 과연 대체(大體)를 잃었다. 그러나 그 뜻을 깊이 살펴보면 발명(發明)하고자 한 데에 지나지 아니할 따름이다. 정성근의 허물이 실지로 임광재(任光載)의 군박(窘迫)한 입에서 나왔지만, 정성근을 미워하여 드러나지 않은 일을 가지고 원한을 갚고자 한 것이 아니다. 정성근의 아뢴 바가 이미 부실(不實)하다고 하면 총관의 허물 또한 용서할 만하다. 또 인군(人君)이 대신에게 묻는 일이 있는데도 직대(直對)하지 아니하였다면 그것이 옳겠는가? 그러나 만약 오래 되어 잊었다고 한다면 그 정직하지 못한 바를 어떻게 허물로 삼겠는가? 이제 비록 추국한다고 하더라도 일은 이에 지나지 아니하니, 가령 전과 같이 형신하며 국문하겠는가?"
하고, 들어주지 아니하였다. 지평(持平) 홍한(洪瀚)이 아뢰기를,
"어서에 ‘군박한 입에서 나왔다.’라고 하셨는데, 총관들은 유사(有司)가 급박(急迫)하게 추문하고 힐책한다고 하여 말한 것이 아니고 정성근의 일을 천천히 의논하고자 하여 아뢴 것일 뿐입니다. 만약 정성근의 말을 발명하고자 한 것이라면, 다만 그 구사(丘史)의 일만을 아뢸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술맛과 요전상(澆奠床)의 사실이 없었던 일을 가지고 배척하였으니, 그것은 원한을 갚고자 한 것임에 분명합니다. 그런데 하문(下問)하실 때를 당해서도 바른 대로 대답하지 아니하였으니, 그 기망한 것도 또한 분명합니다. 그리고 정성근이 총관의 일을 말하자, 총관들이 보복하려고 모의하여 숨겨진 일들을 주워 모아 곧바로 정원(政院)에 나아가 아뢰었던 것이니, 오래 되어 잊은 것이 아닌 것입니다. 무사(誣詐)한 정상이 이와 같이 확연히 드러났으니, 결단코 형벌로 묻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하였으나, 들어주지 아니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3책 276권 30장 A면【국편영인본】 12책 305면
- 【분류】역사-고사(故事) / 신분-천인(賤人) / 정론-간쟁(諫諍) / 사법-치안(治安) / 사법-탄핵(彈劾)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군사-군역(軍役)
원문
○司憲府執義趙文琡等上疏曰:
竊惟《虞書》, 以人主、大臣爲一體; 《春秋》以天王宰相爲一心, 君不疑於臣, 而臣不惑於君, 直道而事之, 不匿厥旨, 故爲上所望而知也, 爲下可述而志也。 古之大夫, 當譴責, 則白冠釐纓, 盤水加劍, 造乎闕而自請罪。 此無他, 爲大夫者, 不可不以廉恥禮義飭其躬也。 如或食君之祿而忘君之恩, 先利而後義, 植私而廢公, 悅人讃己, 惡人毁己, 朋友以讃, 不胥以穀, 而征以中垢。 君欲有所聞而問焉, 則不以直對, 所謂聽言則對誦言如醉, 斯乃不以節行報其上, 非人類也。 今摠管等, 或身爲宰相, 或寵居戚屬, 雖謂之柱石肺腑之臣可也。 一有官職不修之誚, 則闔門不出, 果有罪也, 甘伏而不辭, 果無罪也, 足以曝白於聰明之下矣。 此之不爲, 惟怨是圖, 今日覓誠謹一疵, 明日覓誠謹一疵, 詭其辭, 奔告于殿下, 問其言根也, 則相匿不白, 曾謂大臣而有是行哉? 人臣之罪, 莫大於欺罔, 欺罔之實, 惟鐵堅等當之。 彼旣不以大臣自處, 殿下安可以大臣遇之? 推鞫窮詰, 以謹罔極可也。 乃置而不問, 則祗益驕恣, 罪至不可救耳, 亦非全安大臣之道也。 彼之情狀, 殿下知而不問乎, 不知而不問乎? 殿下必明若觀火矣。 如知其奸而赦之, 則爲惡者何所懲艾? 觴酒豆肉, 讓而食惡, 民猶犯齒; 衽席之上, 讓而坐下, 民猶犯貴; 朝廷之位, 讓而就賤, 民猶犯君, 今此大臣, 不和於朝, 爭先告訐, 則下民之轉相誹謗, 理勢必至, 上下無禮讓之風, 朝野起爭鬪之心, 則國非國而大可畏者至矣。 伏願(丞)〔亟〕 下推問之命, 益勵廉恥之道, 爲大於其細, 圖難於其易, 國家幸甚。
御書: "近觀都摠管等所爲, 果失大體, 然深探其意, 不過欲發明而已。 誠謹之疵, 實出於光載窘迫之口, 非憎誠謹而欲將陰事以執怨也。 誠謹所啓, 旣爲不實, 則摠管之過, 亦可恕也。 且人君有問於大臣, 而不以直對, 其可乎? 然若久而忘之, 則其所不直, 亦何咎乎? 今雖推之, 事不過此, 假使如前用拷鞫之乎? 不聽。" 持平洪瀚啓曰: "御書以爲出乎窘迫之口, 摠管等非因有司急迫推詰而言之, 乃徐議誠謹之事以啓之耳。 若欲發明誠謹之言, 則只白其丘史事耳, 乃以酒味澆奠無實事斥之, 其欲報怨明矣。 自於垂問時, 不以直對, 其爲欺罔亦明矣。 誠謹言摠管之事, 摠管等謀欲報復, 捃摭陰事, 卽詣政院而啓之, 非久而忘之之事也。 誣詐之狀, 如此著現, 斷不可不刑訊。" 不聽。
- 【태백산사고본】 43책 276권 30장 A면【국편영인본】 12책 305면
- 【분류】역사-고사(故事) / 신분-천인(賤人) / 정론-간쟁(諫諍) / 사법-치안(治安) / 사법-탄핵(彈劾)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군사-군역(軍役)
성종 24년 (1493) 4월 28일
성종실록276권, 성종 24년 4월 28일 壬戌 3/5 기사 / 1493년 명 홍치(弘治) 6년
총관들의 추문에 관한 조문숙의 상소
국역
사헌부 집의(司憲府執義) 조문숙(趙文琡) 등이 상소(上疏)하기를,
"가만히 생각해 보건대 《우서(虞書)》에서는, 인주(人主)와 대신(大臣)으로써 일체(一體)를 삼았고, 《춘추(春秋)》에서는 천왕(天王)과 재상(宰相)이 한 마음을 삼았으니, 임금은 신하에게 대하여 의심하지 아니하고, 신하는 임금에게 대하여 미혹되지 아니하며, 바른 도리로 섬기어, 그 뜻을 숨기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윗사람이 되어서는 바라는 바를 알고, 아랫사람이 되어서는 그 뜻을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옛날의 대부(大夫)는 견책(譴責)을 당하게 되면, 백관(白冠)에 갓끈을 졸라매고, 반수(盤水)에 칼을 얹어 궐문(闕門)에 나아가 스스로 죄(罪)를 청했던 것입니다. 이는 다름이 아니고, 대부가 된 자는 염치(廉恥)와 예의(禮義)로써 그 자신을 다스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임금의 녹(祿)을 먹으면서도 임금의 은혜를 잊고 이(利)를 앞세우고 의(義)를 뒤로 하며, 사사로움을 도모하여 공도(公道)를 폐(廢)하고, 남이 자신을 칭찬하는 것을 기뻐하고 남이 자신을 비방하는 것은 싫어하여, 동료들끼리 헐뜯고 서로 잘 지내지 아니하면서 더러운 곳으로 나아가며, 임금이 들은 바가 있어서 물으면 바른 말로 대답하지 아니하니 이른바 말을 들을까 하여 대하나 말을 외대고 취한 듯이 한다고 하니, 이것은 곧 절행(節行)으로써 윗사람에게 보답하는 것이 아니니, 사람의 무리라고 할 수 없습니다. 지금 총관(摠管)들은 혹은 자신이 재상이기도 하고 혹은 총애를 받은 척속(戚屬)이기도 하니, 주석(柱石)과 폐부(肺腑)의 신하라고 이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가지라도 관직(官職)에서 다스리지 못했다는 허물이 있으면 문을 닫고 나오지 아니해야 할 것이며, 과연 죄가 있다면 부복하는 것을 달게 여겨 핑계대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과연 죄가 없다고 한다면 족히 총명(聰明) 아래에서 폭백(曝白)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하지 않고 오직 원망하는 것만을 도모하여 오늘 정성근(鄭誠謹)의 한 가지 허물을 찾아내고 내일 또 정성근의 허물을 찾아내어 그 말을 꾸며대어 달려가 전하(殿下)께 고(告)하는데, 그 말의 근거를 물으면, 서로 숨기고 명백하게 하지 아니하니, 일찍이 대신이라 이르고서 이러한 행동을 한 일이 있었습니까? 인신(人臣)의 죄는 기망(欺罔)보다 큰 것이 없는데 기망한 실상은 오직 이철견(李鐵堅) 등이 떠맡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저들이 이미 대신으로 자처(自處)하지 아니하니 전하께서 어찌 대신으로 대우하겠습니까? 추국(推鞫)으로 철저히 힐문하여 끝까지 살피는 것이 옳을 것인데, 버려두고 묻지 아니한다면 교만하고 방자스러움이 더욱 심하여 죄가 구(救)하지 못할 때까지 이를 것이며, 또한 대신의 도리도 온전히 하지 못할 것입니다. 저들이 정상(情狀)을 전하께서는 알고 계시면서 물으시지 않는 것입니까, 알지 못하시기 때문에 묻지 않는 것입니까? 전하께서는 반드시 불을 보듯이 환히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 간사함을 알고서도 용서하신다면 악한 짓을 하는 자를 무엇으로 징계하겠습니까? 잔에 부은 술과 제기에 담은 고기를 사양하고 나쁜 것을 먹는다 하더라도 백성은 오히려 나이의 차례를 범하게 될 것이고, 임석(衽席)의 위에서 사양하고 아래에 앉는다 하더라도, 백성들은 오히려 귀한 이를 범하게 될 것이며, 조정(朝廷)의 지위를 사양하고 천한 데로 나아간다고 하더라도 백성들은 오히려 임금을 범할 것인데, 지금 이 대신들이 조정에서 화목하지 못하여 다투어 먼저 고알(告訐)한다면 이치와 형세로 보아 하민(下民)들도 서로 비방(誹謗)하게 될 것입니다. 상하(上下)에서 예양(禮讓)의 기풍이 없고, 조야(朝野)에서 쟁투(爭鬪)할 마음을 일으킨다면, 나라가 나라답지 않게 되어 크게 두려워할 만한 일이 닥칠 것입니다. 엎드려 원하건대 빨리 추문하라는 명령을 내리시어, 더욱 염치의 도(道)를 권려하신다면 작은 일에서 큰 일을 이룰 수 있고 쉬운 일에서 어려운 일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니, 나라가 몹시 다행할 것입니다."
하니, 어서(御書)로 이르기를,
"근자에 도총관(都摠管)들의 소위(所爲)를 보니, 과연 대체(大體)를 잃었다. 그러나 그 뜻을 깊이 살펴보면 발명(發明)하고자 한 데에 지나지 아니할 따름이다. 정성근의 허물이 실지로 임광재(任光載)의 군박(窘迫)한 입에서 나왔지만, 정성근을 미워하여 드러나지 않은 일을 가지고 원한을 갚고자 한 것이 아니다. 정성근의 아뢴 바가 이미 부실(不實)하다고 하면 총관의 허물 또한 용서할 만하다. 또 인군(人君)이 대신에게 묻는 일이 있는데도 직대(直對)하지 아니하였다면 그것이 옳겠는가? 그러나 만약 오래 되어 잊었다고 한다면 그 정직하지 못한 바를 어떻게 허물로 삼겠는가? 이제 비록 추국한다고 하더라도 일은 이에 지나지 아니하니, 가령 전과 같이 형신하며 국문하겠는가?"
하고, 들어주지 아니하였다. 지평(持平) 홍한(洪瀚)이 아뢰기를,
"어서에 ‘군박한 입에서 나왔다.’라고 하셨는데, 총관들은 유사(有司)가 급박(急迫)하게 추문하고 힐책한다고 하여 말한 것이 아니고 정성근의 일을 천천히 의논하고자 하여 아뢴 것일 뿐입니다. 만약 정성근의 말을 발명하고자 한 것이라면, 다만 그 구사(丘史)의 일만을 아뢸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술맛과 요전상(澆奠床)의 사실이 없었던 일을 가지고 배척하였으니, 그것은 원한을 갚고자 한 것임에 분명합니다. 그런데 하문(下問)하실 때를 당해서도 바른 대로 대답하지 아니하였으니, 그 기망한 것도 또한 분명합니다. 그리고 정성근이 총관의 일을 말하자, 총관들이 보복하려고 모의하여 숨겨진 일들을 주워 모아 곧바로 정원(政院)에 나아가 아뢰었던 것이니, 오래 되어 잊은 것이 아닌 것입니다. 무사(誣詐)한 정상이 이와 같이 확연히 드러났으니, 결단코 형벌로 묻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하였으나, 들어주지 아니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3책 276권 30장 A면【국편영인본】 12책 305면
- 【분류】역사-고사(故事) / 신분-천인(賤人) / 정론-간쟁(諫諍) / 사법-치안(治安) / 사법-탄핵(彈劾)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군사-군역(軍役)
원문
○司憲府執義趙文琡等上疏曰:
竊惟《虞書》, 以人主、大臣爲一體; 《春秋》以天王宰相爲一心, 君不疑於臣, 而臣不惑於君, 直道而事之, 不匿厥旨, 故爲上所望而知也, 爲下可述而志也。 古之大夫, 當譴責, 則白冠釐纓, 盤水加劍, 造乎闕而自請罪。 此無他, 爲大夫者, 不可不以廉恥禮義飭其躬也。 如或食君之祿而忘君之恩, 先利而後義, 植私而廢公, 悅人讃己, 惡人毁己, 朋友以讃, 不胥以穀, 而征以中垢。 君欲有所聞而問焉, 則不以直對, 所謂聽言則對誦言如醉, 斯乃不以節行報其上, 非人類也。 今摠管等, 或身爲宰相, 或寵居戚屬, 雖謂之柱石肺腑之臣可也。 一有官職不修之誚, 則闔門不出, 果有罪也, 甘伏而不辭, 果無罪也, 足以曝白於聰明之下矣。 此之不爲, 惟怨是圖, 今日覓誠謹一疵, 明日覓誠謹一疵, 詭其辭, 奔告于殿下, 問其言根也, 則相匿不白, 曾謂大臣而有是行哉? 人臣之罪, 莫大於欺罔, 欺罔之實, 惟鐵堅等當之。 彼旣不以大臣自處, 殿下安可以大臣遇之? 推鞫窮詰, 以謹罔極可也。 乃置而不問, 則祗益驕恣, 罪至不可救耳, 亦非全安大臣之道也。 彼之情狀, 殿下知而不問乎, 不知而不問乎? 殿下必明若觀火矣。 如知其奸而赦之, 則爲惡者何所懲艾? 觴酒豆肉, 讓而食惡, 民猶犯齒; 衽席之上, 讓而坐下, 民猶犯貴; 朝廷之位, 讓而就賤, 民猶犯君, 今此大臣, 不和於朝, 爭先告訐, 則下民之轉相誹謗, 理勢必至, 上下無禮讓之風, 朝野起爭鬪之心, 則國非國而大可畏者至矣。 伏願(丞)〔亟〕 下推問之命, 益勵廉恥之道, 爲大於其細, 圖難於其易, 國家幸甚。
御書: "近觀都摠管等所爲, 果失大體, 然深探其意, 不過欲發明而已。 誠謹之疵, 實出於光載窘迫之口, 非憎誠謹而欲將陰事以執怨也。 誠謹所啓, 旣爲不實, 則摠管之過, 亦可恕也。 且人君有問於大臣, 而不以直對, 其可乎? 然若久而忘之, 則其所不直, 亦何咎乎? 今雖推之, 事不過此, 假使如前用拷鞫之乎? 不聽。" 持平洪瀚啓曰: "御書以爲出乎窘迫之口, 摠管等非因有司急迫推詰而言之, 乃徐議誠謹之事以啓之耳。 若欲發明誠謹之言, 則只白其丘史事耳, 乃以酒味澆奠無實事斥之, 其欲報怨明矣。 自於垂問時, 不以直對, 其爲欺罔亦明矣。 誠謹言摠管之事, 摠管等謀欲報復, 捃摭陰事, 卽詣政院而啓之, 非久而忘之之事也。 誣詐之狀, 如此著現, 斷不可不刑訊。" 不聽。
- 【태백산사고본】 43책 276권 30장 A면【국편영인본】 12책 305면
- 【분류】역사-고사(故事) / 신분-천인(賤人) / 정론-간쟁(諫諍) / 사법-치안(治安) / 사법-탄핵(彈劾)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군사-군역(軍役)
원본
성종 24년 (1493) 4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