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검색

성종실록253권, 성종 22년 5월 4일 己卯 4/4 기사 / 1491년 명 홍치(弘治) 4년

북정에 반대하는 대사헌 신종호 등의 상소문

국역

사헌부 대사헌(司憲府大司憲) 신종호(申從濩) 등이 소(疏)를 올리기를,

"옛날 사람이 이르기를, ‘흉노(凶奴)가 해독을 끼친 것은 유래가 오래 되었는데, 상세(上世)에서는 반드시 이를 정벌한 이가 있었다는 것은 듣지 못하였다. 주(周)나라·진(秦)나라·한(漢)나라가 이를 정벌했지마는, 모두 상책(上策)은 얻지 못했다. 주(周)나라는 중책(中策)을 얻었고, 한(漢)나라는 하책(下策)을 얻었고, 진(秦)나라는 계책이 없었다.’고 하였는데, 시황(始皇)이 몽염(蒙恬)에게 명하여 30만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흉노(匈奴)를 7백여 리(里)나 물리쳤으니 오랑캐들이 감히 남방에 내려와서 말을 먹이지 못했던 것입니다. 삼대(三代)502) 이하(以下)에서는 외국의 오랑캐를 뛰어나게 제어(制御)한 나라는 진(秦)나라보다 더 성(盛)하게 한 나라는 없었는데도, 계책이 없다고 여기는 것은, 어찌 조그만 분노(憤怒)로 인하여 백성의 힘을 사역(使役)하여 세상이 토붕(土崩)하게 됨으로 천하 사람의 웃음거리가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세상의 큰 일을 좋아하고 공명(功名)을 좋아하여 무력(武力)을 남용(濫用)한 군주(君主)들은 모두가 계책이 없는 사람입니다. 지금 전하(殿下)께서 분노(憤怒)를 참지 못하며 장차 많은 군대를 일으켜 불모(不毛)의 땅에 깊이 들어가려고 하므로, 시종신(侍從臣)과 대간(臺諫)이 극론(極論)하기를 그만두지 아니하였으나 임금의 결단이 이미 분발(奮發)되어 끝내 돌이킬 수가 없으니 임금의 마음은 깊고 원대(遠大)하므로 쉽사리 헤아릴 수가 없지마는, 그러나 또한 그 만분의 일분은 엿볼 수가 있겠습니다. 한 번 수고하지 않으면 오랫동안 편안할 수가 없고 잠시 동안 방비하지 않으면 영구히 편안할 수가 없기 때문에, 북방의 오랑캐가 국법(國法)을 범하여 변방 백성이 손해를 입으니 차라리 군사(軍士)를 피로하게 하고 비용을 허비할지라도 전쟁은 마지못해서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하(殿下)께서 결단하여 반드시 행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다만 전쟁을 하는 이익만 보시고 그 손해는 보시지 못하며, 다만 무력(武力)을 남용(濫用)하는 쉬운 것만 들으시고 그 어려운 것은 듣지 못하시어 백성을 편히 하려고 하여 군사를 일으키는 것이니, 이것이 어찌 끓는 물을 드날리면서 끊는 것을 그치게 하고, 섶을 안고서 불을 끄는 것과 다르겠습니까? 전쟁이 계속되어 재화(災禍)가 맺어지는 것이 이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신(臣) 등이 되풀이하면서 진술하여 임금의 들어주시기를 엿보고 있었으나, 전하께서는 오활(迂闊)503) 하다고 여기고는 이를 살피지도 않았습니다. 아아! 오활(迂闊)하다는 의논은 세상에 많이 있었으니, 진 목공(秦穆公) 시대에 있어서는 건숙(蹇叔)의 말이 오활함이 되었고, 한 무제(漢武帝) 시대에 있어서는 한안국(韓安國)의 말이 오활함이 되었는데, 그 후 효릉(肴陵)에서의 패전(敗戰)과 마읍(馬邑)에서의 실리(失利)가 과연 어떠하였습니까? 전하께서는 지난 시대의 후회했던 일들을 밟지 말기를 원합니다. 건주(建州)의 오랑캐는 우리와 흔단(釁端)을 맺어 보복하려는 마음으로 틈을 타서 문득 발동하는데, 가을 하늘이 높고 말이 살이 찌게 되면 반드시 전갈의 독침(毒針)을 함부로 쏘게 될 것이니, 토병(土兵)이 수효가 적고 힘이 약하여 거의 대항하기가 어려운 편입니다. 조정(朝廷)에서 도와 성원(聲援)하려고 하지마는, 건장한 병졸과 용감한 장수가 모두 북쪽 변방에 나가 있으므로 힘으로 능히 구원하지 못하니 나라의 수치(羞恥)를 끼칠까 두렵습니다. 이것은 미리 염려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지난해에 별빛이 경계를 보였는데, 그 점(占)은 주로 전쟁에 관한 것이었으니, 꼭 두려워하며 반성 수양할 시기입니다. 한(漢)나라 때에 치우기(蚩尤旗)504) 가 나타나니 그 후에 군대가 30년 동안이나 출동하여 나라 안이 텅 비어 거의 전복(顚覆)할 지경에 이르게 되었으니, 천도(天道)가 사람에 보이는 것이 그 응험(應驗)이 이와 같았습니다. 전하께서 하늘의 경계를 소홀히 하시고 여러 사람의 의논을 억누르시고는 홀로 결단하여 이를 행하시니, 예로부터 이같이 하고도 능히 성공(成功)하는 사람은 적었습니다. 전쟁의 단서(端緖)가 한 번 열리게 되면 해독이 한없는 지경에 미치게 될 것이니, 전하께서는 이를 근신(謹愼)해야 할 것입니다.

삼가 북방 정벌의 교서(敎書)를 보니 경양(涇陽)의 주(周)나라 치욕(恥辱)505) 을 씻고 운중(雲中)의 한(漢)나라 수치(羞恥)506) 를 갚겠다는 말씀이 있었는데, 험윤(玁狁)507) 이 안으로 침범하므로 장수에게 명령하여 이를 정벌하여 국경 끝까지 나갔다가 돌아왔으니 주(周)나라는 이를 수치(羞恥)로 여기지 않았으며, 흉노(匈奴)가 쳐들어오므로 장수에게 명령하여 이를 쳐서 쫓아내어 변방에까지 갔다가 돌아왔으니 한(漢)나라는 이를 원수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대개 오랑캐는 짐승이므로 그들과 옳고 그름을 비교하기는 어려우며, 군사를 피로하게 하면서 승리하여 초목이 나지 않는 먼 오랑캐 땅에서 마음에 상쾌함을 얻는 것은 제왕(帝王)의 성절(盛節)이 아닙니다. 전하께서는 삼왕(三王)508) 보다도 더 났고 오제(五帝)509) 보다도 더 뛰어났으니, 주 선왕(周宣王)과 한 무제(漢武帝)도 하지 않던 바인데, 유독 이일에 서두르는 것은 무슨 이유입니까? 천균(千鈞)510) 무게의 쇠뇌[弩]는 새앙쥐를 위하여 고동을 쏘지 않는 법인데, 당당(堂堂)한 큰 나라의 세력으로 차마 작은 오랑캐와 더불어 승부(勝負)를 겨룰 수가 있겠습니까? 당 태종(唐太宗)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위엄은 육합(六合)511) 을 제압하고 공업(功業)은 만대(萬代)에 으뜸간다고 여기고는 ‘수치(羞恥)를 씻어 백왕(百王)512) 에게 보답하고, 흉적(兇敵)을 제거하여 천고(千古)에 보답한다.[雪恥酬百王 除兇報千古]’고 했으니, 웅대(雄大)한 마음과 웅장한 뜻은 장차 몽범(濛氾)513) 을 지나고 명발(溟渤)514) 을 건너도 오히려 만족함이 없을 정도인데도, 그 후에 요동(遼東)의 싸움에 시달려서 천자(天子)의 위엄을 손상시켰으니, 그가 이른바 수치(羞恥)를 씻고 흉적(兇敵)에게 원수를 갚은 것이 과연 어디에 있었습니까? 뒷날의 군주(君主)는 깊이 경계하지 않겠습니까?

신 등이 오늘날의 거사(擧事)를 살펴보건대,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으로써 논한다면, 지는 것이 복이 되고 이기는 것이 화(禍)가 될 것이니, 무슨 이유인가 하면 육사(六師)515) 가 이기지 못하고 양군(兩軍)이 다 같이 물러간다면 장수와 군사가 경계할 줄을 알아서 변방의 수비를 더욱 엄하게 하여 오랑캐가 능히 침범하지 못할 것이니 이것은 그 복이 되는 것이고, 첩서(捷書)516) 가 아주 빨리 달려오고 개가(凱歌)517) 가 번갈아 아뢰게 되면, 전하(殿下)께서 만수(萬壽)를 축원하는 술잔을 받으시고 조묘(祖廟)518) 에 공훈(功勳)을 바치고는 사이(四夷)를 깔보는 마음이 있을 것이고, 장수와 군사는 승리에만 익숙하게 됨으로 오랑캐는 분노(憤怒)를 품고서 갚으려고 하여 나쁜 무리들을 불러 모아서 건장한 말과 예리한 병기(兵器)로 왕의 지경을 해마다 침범하여 변방 백성은 성가퀴를 지키는 노고가 있고 조정에서는 정무에 바쁜 근심을 끼치게 되니, 그 해로움이 이루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옛날에 한 고제(漢高帝)가 흉노(匈奴)를 정벌하려고 하여 군사가 구주(句注)519) 를 넘었는데도 누경(婁敬)은 오히려 이를 간(諫)했으니, 지금 왕의 군사가 출동하지 않았는데 이를 중지하기가 무엇이 어렵겠습니까? 임금의 명령을 한 번 내리는 데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훌륭한 장수를 뽑아서 변방의 수비를 맡겨서 성벽(城壁)을 튼튼히 하고 사졸(士卒)을 교련(敎鍊)하여 침범할 수 없는 형세가 되도록 하여 오랑캐가 오면 이를 제어하고 오랑캐가 가면 뒤쫓지 않는 것은, 이것이 지금 오랑캐를 제어하는 가장 좋은 계책인데, 가장 좋은 계책을 버리고 하지 않고서는 진(秦)나라 사람의 계책 없는 것을 본받으려고 하니, 신 등은 그 옳은 점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하였는데, 어서(御書)하기를,

"군사가 싸우는 일을 내가 어찌 이를 좋아하겠는가? 다만 형세가 마지 못해서 하는 것일 뿐이다. 경(卿) 등이 이를 간(諫)하여 그치지 않는 것은 다만 전쟁이 계속되어 화(禍)가 맺어짐을 두려워하는 것뿐인데, 이미 정해진 일을 지금 어찌 중지할 수가 있겠는가?"

하고는, 윤허(允許)하지 아니하였다.

  • [註 502] 삼대(三代) : 하(夏)·은(殷)·주(周)의 세 왕조(王朝).
  • [註 503] 오활(迂闊) : 사정(事情)에 어둡고 실용에 적합하지 아니함.
  • [註 504] 치우기(蚩尤旗) : 병란(兵亂)의 전조(前兆)가 된다는 별.
  • [註 505] 경양(涇陽)의 주(周)나라 치욕(恥辱) : 경양(涇陽)은 감숙성(甘肅省) 평양현(平涼縣) 서쪽에 있던 현. 주(周)나라 여왕(厲王)이 포학하여 주나라 사람들이 그를 쫓아내어 체(彘)땅에 머무르게 하였는데, 이때 험윤(玁狁)이 침입하여 경양까지 이른 사실은 말함. 그 뒤 여왕을 이어 선왕(宣王)이 즉위하자 윤길보(尹吉甫)로 하여금 가서 정벌하게 하였음.
  • [註 506] 운중(雲中)의 한(漢)나라 수치(羞恥) : 한(漢)나라 효문제(孝文帝) 6년에 한나라에서 흉노를 쳤는데, 정벌에 실패였다. 이에 흉노가 더욱 교만해져서, 변경을 침입하여 백성과 가축을 살육한 것이 대단히 많았다. 그 중에서도 운중(雲中)과 요동(遼東)이 가장 심하였다. 운중의 수치란 이를 말하는 것으로, 한나라는 곧 흉노와 화친(和親)하게 되었음.
  • [註 507] 험윤(玁狁) : 중국 북방의 오랑캐의 이름.
  • [註 508] 삼왕(三王) : 하(夏)나라 우왕(禹王)·은(殷)나라 탕왕(湯王)·주(周)나라 문왕(文王) 무왕(武王)을 이름.
  • [註 509] 오제(五帝) : 소호(小昊)·전욱(顓頊)·제곡(帝嚳)·제요(帝堯)·제순(帝舜)을 이름.
  • [註 510] 천균(千鈞) : 대단히 무거운 무게.
  • [註 511] 육합(六合) : 천지와 사방.
  • [註 512] 백왕(百王) : 백대의 제왕.
  • [註 513] 몽범(濛氾) : 해가 지는 곳.
  • [註 514] 명발(溟渤) : 큰 바다.
  • [註 515] 육사(六師) : 육군(陸軍).
  • [註 516] 첩서(捷書) : 싸움에 이긴 것을 보고하는 글.
  • [註 517] 개가(凱歌) : 싸움에 이기고 부르는 노래.
  • [註 518] 조묘(祖廟) : 조종(祖宗)의 묘(廟).
  • [註 519] 구주(句注) : 산 이름. 곧 산서성(山西省) 안문산(雁門山)임.

원문

○司憲府大司憲申從濩等上疏曰:

古人云: "凶奴爲害, 所從來久矣, 未聞上世有必征之者也。 周、秦、漢征之, 皆不得上策, 周得中策, 漢得下策, 秦無策焉。" 始皇命蒙恬, 將三十萬衆, 却匈奴七百餘里, 胡人不敢南下而牧馬, 三代以下雄制外夷者, 莫盛於秦, 而以爲無策者, 豈非因小憤役民力, 宇內土崩, 爲天下笑耶! 世之好大喜功、窮兵黷武之主, 皆無策者也。 今殿下不忍悁悁之憤, 將擧大兵, 深蹂不毛, 侍從、臺諫, 極論不置, 英斷已奮, 訖不可回, 宸禁深遠, 未易測度, 然亦竊窺其萬一矣。 不一勞則不久佚, 不暫備則不永寧, 北虜干紀, 邊氓被害, 寧勞師費財而兵不獲已, 此殿下所以斷然而必行者也。 殿下徒見用兵之利, 而不見其害; 徒聞黷武之易, 而不聞其難。 欲安民而興師, 是何異揚湯而止沸, 抱薪而救火, 兵連禍結, 從此而始矣。 臣等反覆開陳, 凱動天聽, 而殿下視爲迂闊而莫之省。 噫! 迂闊之論, 世多有之, 在秦 穆則叔之言爲迂闊; 在漢 武則韓安國之言爲迂闊, 其後肴陵之敗、馬邑之失利, 果如何耶! 願殿下, 毋蹈前世之悔也。 建州虜醜, 與我結釁, 欲噬之心, 乘間輒發, 當秋高馬肥, 必肆䘍毒, 土兵寡弱, 殆難支梧, 朝廷欲助聲援, 而健卒猛將, 盡赴北庭, 力不能救, 恐貽國羞, 此不可不爲之預慮也。 去歲星文示警, 其占主兵, 正恐懼修省之時, 漢時蚩尤之旗見, 厥後師行三十年, 海內虛耗, 幾至顚覆, 天道示人, 其應如此, 殿下忽天戒, 據衆議, 獨斷而行之, 自古如此而能濟者鮮矣。 兵端一開, 害及無窮, 惟殿下愼之。 伏覩北征敎書, 雪涇陽 周恥, 報雲中 漢羞之語, 玁狁內侵, 命將征之, 盡境而還, 周不以爲恥也; 匈奴入寇, 命將擊逐, 出塞而還, 漢不以爲讎也。 蓋夷狄禽獸, 難與校其曲直, 勞師制勝, 快心於窮荒不毛之域, 非帝王之盛節也。 殿下登三邁五, 周宣、漢 武不能擬其髣髴也。 雪恥報讎, 漢 文之所不爲, 而獨汲汲於此, 何耶! 千鈞之弩, 不爲鼷鼠而發機, 以堂堂大國之勢, 忍與小醜角勝負哉! 唐 太宗自以爲威制六合, 功冠萬代, 乃曰: "雪恥酬百王, 除兇報千古。", 雄心壯志, 蓋將泛濛汜而涉溟渤, 猶未厭也, 其後困於遼東, 虧喪天威, 其所謂雪恥報兇者, 果何在耶? 後之人主, 可不深戒乎哉! 臣等觀今日之擧, 以勝負論之, 負爲福而勝爲禍。 何者, 六師失利, 交綏而退, 將士知戒, 益嚴邊備, 虜不能犯, 此其福也。 捷書星馳, 凱音交奏, 殿下捧萬壽之觴, 薦勳祖廟, 有輕視四夷之心, 將士狃勝, 虜則含怒欲報, 嘯聚醜類, 健馬利兵, 歲犯王略, 邊氓有守陴之苦, 朝廷貽旰食之憂, 其爲害可勝道哉! 昔漢 高帝欲伐凶奴, 兵踰勾注, 婁敬猶諫之, 今王師未動, 何難止之? 在成命一下耳。 選賢將付邊鎖, 完城壁鍊士卒, 有不可犯之形, 來則制之, 去則勿追, 此當今制戎之上策也。 釋上策而不爲, 欲效秦人之無策, 臣等不知其可也。

御書曰: "兵戰之事, 予豈好之, 但以勢不得已。 卿等所以諫之不已者, 徒恐兵連禍結而已, 已定之事, 今何止也? 不允。"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성종실록253권, 성종 22년 5월 4일 己卯 4/4 기사 / 1491년 명 홍치(弘治) 4년

북정에 반대하는 대사헌 신종호 등의 상소문

국역

사헌부 대사헌(司憲府大司憲) 신종호(申從濩) 등이 소(疏)를 올리기를,

"옛날 사람이 이르기를, ‘흉노(凶奴)가 해독을 끼친 것은 유래가 오래 되었는데, 상세(上世)에서는 반드시 이를 정벌한 이가 있었다는 것은 듣지 못하였다. 주(周)나라·진(秦)나라·한(漢)나라가 이를 정벌했지마는, 모두 상책(上策)은 얻지 못했다. 주(周)나라는 중책(中策)을 얻었고, 한(漢)나라는 하책(下策)을 얻었고, 진(秦)나라는 계책이 없었다.’고 하였는데, 시황(始皇)이 몽염(蒙恬)에게 명하여 30만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흉노(匈奴)를 7백여 리(里)나 물리쳤으니 오랑캐들이 감히 남방에 내려와서 말을 먹이지 못했던 것입니다. 삼대(三代)502) 이하(以下)에서는 외국의 오랑캐를 뛰어나게 제어(制御)한 나라는 진(秦)나라보다 더 성(盛)하게 한 나라는 없었는데도, 계책이 없다고 여기는 것은, 어찌 조그만 분노(憤怒)로 인하여 백성의 힘을 사역(使役)하여 세상이 토붕(土崩)하게 됨으로 천하 사람의 웃음거리가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세상의 큰 일을 좋아하고 공명(功名)을 좋아하여 무력(武力)을 남용(濫用)한 군주(君主)들은 모두가 계책이 없는 사람입니다. 지금 전하(殿下)께서 분노(憤怒)를 참지 못하며 장차 많은 군대를 일으켜 불모(不毛)의 땅에 깊이 들어가려고 하므로, 시종신(侍從臣)과 대간(臺諫)이 극론(極論)하기를 그만두지 아니하였으나 임금의 결단이 이미 분발(奮發)되어 끝내 돌이킬 수가 없으니 임금의 마음은 깊고 원대(遠大)하므로 쉽사리 헤아릴 수가 없지마는, 그러나 또한 그 만분의 일분은 엿볼 수가 있겠습니다. 한 번 수고하지 않으면 오랫동안 편안할 수가 없고 잠시 동안 방비하지 않으면 영구히 편안할 수가 없기 때문에, 북방의 오랑캐가 국법(國法)을 범하여 변방 백성이 손해를 입으니 차라리 군사(軍士)를 피로하게 하고 비용을 허비할지라도 전쟁은 마지못해서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하(殿下)께서 결단하여 반드시 행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다만 전쟁을 하는 이익만 보시고 그 손해는 보시지 못하며, 다만 무력(武力)을 남용(濫用)하는 쉬운 것만 들으시고 그 어려운 것은 듣지 못하시어 백성을 편히 하려고 하여 군사를 일으키는 것이니, 이것이 어찌 끓는 물을 드날리면서 끊는 것을 그치게 하고, 섶을 안고서 불을 끄는 것과 다르겠습니까? 전쟁이 계속되어 재화(災禍)가 맺어지는 것이 이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신(臣) 등이 되풀이하면서 진술하여 임금의 들어주시기를 엿보고 있었으나, 전하께서는 오활(迂闊)503) 하다고 여기고는 이를 살피지도 않았습니다. 아아! 오활(迂闊)하다는 의논은 세상에 많이 있었으니, 진 목공(秦穆公) 시대에 있어서는 건숙(蹇叔)의 말이 오활함이 되었고, 한 무제(漢武帝) 시대에 있어서는 한안국(韓安國)의 말이 오활함이 되었는데, 그 후 효릉(肴陵)에서의 패전(敗戰)과 마읍(馬邑)에서의 실리(失利)가 과연 어떠하였습니까? 전하께서는 지난 시대의 후회했던 일들을 밟지 말기를 원합니다. 건주(建州)의 오랑캐는 우리와 흔단(釁端)을 맺어 보복하려는 마음으로 틈을 타서 문득 발동하는데, 가을 하늘이 높고 말이 살이 찌게 되면 반드시 전갈의 독침(毒針)을 함부로 쏘게 될 것이니, 토병(土兵)이 수효가 적고 힘이 약하여 거의 대항하기가 어려운 편입니다. 조정(朝廷)에서 도와 성원(聲援)하려고 하지마는, 건장한 병졸과 용감한 장수가 모두 북쪽 변방에 나가 있으므로 힘으로 능히 구원하지 못하니 나라의 수치(羞恥)를 끼칠까 두렵습니다. 이것은 미리 염려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지난해에 별빛이 경계를 보였는데, 그 점(占)은 주로 전쟁에 관한 것이었으니, 꼭 두려워하며 반성 수양할 시기입니다. 한(漢)나라 때에 치우기(蚩尤旗)504) 가 나타나니 그 후에 군대가 30년 동안이나 출동하여 나라 안이 텅 비어 거의 전복(顚覆)할 지경에 이르게 되었으니, 천도(天道)가 사람에 보이는 것이 그 응험(應驗)이 이와 같았습니다. 전하께서 하늘의 경계를 소홀히 하시고 여러 사람의 의논을 억누르시고는 홀로 결단하여 이를 행하시니, 예로부터 이같이 하고도 능히 성공(成功)하는 사람은 적었습니다. 전쟁의 단서(端緖)가 한 번 열리게 되면 해독이 한없는 지경에 미치게 될 것이니, 전하께서는 이를 근신(謹愼)해야 할 것입니다.

삼가 북방 정벌의 교서(敎書)를 보니 경양(涇陽)의 주(周)나라 치욕(恥辱)505) 을 씻고 운중(雲中)의 한(漢)나라 수치(羞恥)506) 를 갚겠다는 말씀이 있었는데, 험윤(玁狁)507) 이 안으로 침범하므로 장수에게 명령하여 이를 정벌하여 국경 끝까지 나갔다가 돌아왔으니 주(周)나라는 이를 수치(羞恥)로 여기지 않았으며, 흉노(匈奴)가 쳐들어오므로 장수에게 명령하여 이를 쳐서 쫓아내어 변방에까지 갔다가 돌아왔으니 한(漢)나라는 이를 원수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대개 오랑캐는 짐승이므로 그들과 옳고 그름을 비교하기는 어려우며, 군사를 피로하게 하면서 승리하여 초목이 나지 않는 먼 오랑캐 땅에서 마음에 상쾌함을 얻는 것은 제왕(帝王)의 성절(盛節)이 아닙니다. 전하께서는 삼왕(三王)508) 보다도 더 났고 오제(五帝)509) 보다도 더 뛰어났으니, 주 선왕(周宣王)과 한 무제(漢武帝)도 하지 않던 바인데, 유독 이일에 서두르는 것은 무슨 이유입니까? 천균(千鈞)510) 무게의 쇠뇌[弩]는 새앙쥐를 위하여 고동을 쏘지 않는 법인데, 당당(堂堂)한 큰 나라의 세력으로 차마 작은 오랑캐와 더불어 승부(勝負)를 겨룰 수가 있겠습니까? 당 태종(唐太宗)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위엄은 육합(六合)511) 을 제압하고 공업(功業)은 만대(萬代)에 으뜸간다고 여기고는 ‘수치(羞恥)를 씻어 백왕(百王)512) 에게 보답하고, 흉적(兇敵)을 제거하여 천고(千古)에 보답한다.[雪恥酬百王 除兇報千古]’고 했으니, 웅대(雄大)한 마음과 웅장한 뜻은 장차 몽범(濛氾)513) 을 지나고 명발(溟渤)514) 을 건너도 오히려 만족함이 없을 정도인데도, 그 후에 요동(遼東)의 싸움에 시달려서 천자(天子)의 위엄을 손상시켰으니, 그가 이른바 수치(羞恥)를 씻고 흉적(兇敵)에게 원수를 갚은 것이 과연 어디에 있었습니까? 뒷날의 군주(君主)는 깊이 경계하지 않겠습니까?

신 등이 오늘날의 거사(擧事)를 살펴보건대,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으로써 논한다면, 지는 것이 복이 되고 이기는 것이 화(禍)가 될 것이니, 무슨 이유인가 하면 육사(六師)515) 가 이기지 못하고 양군(兩軍)이 다 같이 물러간다면 장수와 군사가 경계할 줄을 알아서 변방의 수비를 더욱 엄하게 하여 오랑캐가 능히 침범하지 못할 것이니 이것은 그 복이 되는 것이고, 첩서(捷書)516) 가 아주 빨리 달려오고 개가(凱歌)517) 가 번갈아 아뢰게 되면, 전하(殿下)께서 만수(萬壽)를 축원하는 술잔을 받으시고 조묘(祖廟)518) 에 공훈(功勳)을 바치고는 사이(四夷)를 깔보는 마음이 있을 것이고, 장수와 군사는 승리에만 익숙하게 됨으로 오랑캐는 분노(憤怒)를 품고서 갚으려고 하여 나쁜 무리들을 불러 모아서 건장한 말과 예리한 병기(兵器)로 왕의 지경을 해마다 침범하여 변방 백성은 성가퀴를 지키는 노고가 있고 조정에서는 정무에 바쁜 근심을 끼치게 되니, 그 해로움이 이루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옛날에 한 고제(漢高帝)가 흉노(匈奴)를 정벌하려고 하여 군사가 구주(句注)519) 를 넘었는데도 누경(婁敬)은 오히려 이를 간(諫)했으니, 지금 왕의 군사가 출동하지 않았는데 이를 중지하기가 무엇이 어렵겠습니까? 임금의 명령을 한 번 내리는 데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훌륭한 장수를 뽑아서 변방의 수비를 맡겨서 성벽(城壁)을 튼튼히 하고 사졸(士卒)을 교련(敎鍊)하여 침범할 수 없는 형세가 되도록 하여 오랑캐가 오면 이를 제어하고 오랑캐가 가면 뒤쫓지 않는 것은, 이것이 지금 오랑캐를 제어하는 가장 좋은 계책인데, 가장 좋은 계책을 버리고 하지 않고서는 진(秦)나라 사람의 계책 없는 것을 본받으려고 하니, 신 등은 그 옳은 점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하였는데, 어서(御書)하기를,

"군사가 싸우는 일을 내가 어찌 이를 좋아하겠는가? 다만 형세가 마지 못해서 하는 것일 뿐이다. 경(卿) 등이 이를 간(諫)하여 그치지 않는 것은 다만 전쟁이 계속되어 화(禍)가 맺어짐을 두려워하는 것뿐인데, 이미 정해진 일을 지금 어찌 중지할 수가 있겠는가?"

하고는, 윤허(允許)하지 아니하였다.

  • [註 502] 삼대(三代) : 하(夏)·은(殷)·주(周)의 세 왕조(王朝).
  • [註 503] 오활(迂闊) : 사정(事情)에 어둡고 실용에 적합하지 아니함.
  • [註 504] 치우기(蚩尤旗) : 병란(兵亂)의 전조(前兆)가 된다는 별.
  • [註 505] 경양(涇陽)의 주(周)나라 치욕(恥辱) : 경양(涇陽)은 감숙성(甘肅省) 평양현(平涼縣) 서쪽에 있던 현. 주(周)나라 여왕(厲王)이 포학하여 주나라 사람들이 그를 쫓아내어 체(彘)땅에 머무르게 하였는데, 이때 험윤(玁狁)이 침입하여 경양까지 이른 사실은 말함. 그 뒤 여왕을 이어 선왕(宣王)이 즉위하자 윤길보(尹吉甫)로 하여금 가서 정벌하게 하였음.
  • [註 506] 운중(雲中)의 한(漢)나라 수치(羞恥) : 한(漢)나라 효문제(孝文帝) 6년에 한나라에서 흉노를 쳤는데, 정벌에 실패였다. 이에 흉노가 더욱 교만해져서, 변경을 침입하여 백성과 가축을 살육한 것이 대단히 많았다. 그 중에서도 운중(雲中)과 요동(遼東)이 가장 심하였다. 운중의 수치란 이를 말하는 것으로, 한나라는 곧 흉노와 화친(和親)하게 되었음.
  • [註 507] 험윤(玁狁) : 중국 북방의 오랑캐의 이름.
  • [註 508] 삼왕(三王) : 하(夏)나라 우왕(禹王)·은(殷)나라 탕왕(湯王)·주(周)나라 문왕(文王) 무왕(武王)을 이름.
  • [註 509] 오제(五帝) : 소호(小昊)·전욱(顓頊)·제곡(帝嚳)·제요(帝堯)·제순(帝舜)을 이름.
  • [註 510] 천균(千鈞) : 대단히 무거운 무게.
  • [註 511] 육합(六合) : 천지와 사방.
  • [註 512] 백왕(百王) : 백대의 제왕.
  • [註 513] 몽범(濛氾) : 해가 지는 곳.
  • [註 514] 명발(溟渤) : 큰 바다.
  • [註 515] 육사(六師) : 육군(陸軍).
  • [註 516] 첩서(捷書) : 싸움에 이긴 것을 보고하는 글.
  • [註 517] 개가(凱歌) : 싸움에 이기고 부르는 노래.
  • [註 518] 조묘(祖廟) : 조종(祖宗)의 묘(廟).
  • [註 519] 구주(句注) : 산 이름. 곧 산서성(山西省) 안문산(雁門山)임.

원문

○司憲府大司憲申從濩等上疏曰:

古人云: "凶奴爲害, 所從來久矣, 未聞上世有必征之者也。 周、秦、漢征之, 皆不得上策, 周得中策, 漢得下策, 秦無策焉。" 始皇命蒙恬, 將三十萬衆, 却匈奴七百餘里, 胡人不敢南下而牧馬, 三代以下雄制外夷者, 莫盛於秦, 而以爲無策者, 豈非因小憤役民力, 宇內土崩, 爲天下笑耶! 世之好大喜功、窮兵黷武之主, 皆無策者也。 今殿下不忍悁悁之憤, 將擧大兵, 深蹂不毛, 侍從、臺諫, 極論不置, 英斷已奮, 訖不可回, 宸禁深遠, 未易測度, 然亦竊窺其萬一矣。 不一勞則不久佚, 不暫備則不永寧, 北虜干紀, 邊氓被害, 寧勞師費財而兵不獲已, 此殿下所以斷然而必行者也。 殿下徒見用兵之利, 而不見其害; 徒聞黷武之易, 而不聞其難。 欲安民而興師, 是何異揚湯而止沸, 抱薪而救火, 兵連禍結, 從此而始矣。 臣等反覆開陳, 凱動天聽, 而殿下視爲迂闊而莫之省。 噫! 迂闊之論, 世多有之, 在秦 穆則叔之言爲迂闊; 在漢 武則韓安國之言爲迂闊, 其後肴陵之敗、馬邑之失利, 果如何耶! 願殿下, 毋蹈前世之悔也。 建州虜醜, 與我結釁, 欲噬之心, 乘間輒發, 當秋高馬肥, 必肆䘍毒, 土兵寡弱, 殆難支梧, 朝廷欲助聲援, 而健卒猛將, 盡赴北庭, 力不能救, 恐貽國羞, 此不可不爲之預慮也。 去歲星文示警, 其占主兵, 正恐懼修省之時, 漢時蚩尤之旗見, 厥後師行三十年, 海內虛耗, 幾至顚覆, 天道示人, 其應如此, 殿下忽天戒, 據衆議, 獨斷而行之, 自古如此而能濟者鮮矣。 兵端一開, 害及無窮, 惟殿下愼之。 伏覩北征敎書, 雪涇陽 周恥, 報雲中 漢羞之語, 玁狁內侵, 命將征之, 盡境而還, 周不以爲恥也; 匈奴入寇, 命將擊逐, 出塞而還, 漢不以爲讎也。 蓋夷狄禽獸, 難與校其曲直, 勞師制勝, 快心於窮荒不毛之域, 非帝王之盛節也。 殿下登三邁五, 周宣、漢 武不能擬其髣髴也。 雪恥報讎, 漢 文之所不爲, 而獨汲汲於此, 何耶! 千鈞之弩, 不爲鼷鼠而發機, 以堂堂大國之勢, 忍與小醜角勝負哉! 唐 太宗自以爲威制六合, 功冠萬代, 乃曰: "雪恥酬百王, 除兇報千古。", 雄心壯志, 蓋將泛濛汜而涉溟渤, 猶未厭也, 其後困於遼東, 虧喪天威, 其所謂雪恥報兇者, 果何在耶? 後之人主, 可不深戒乎哉! 臣等觀今日之擧, 以勝負論之, 負爲福而勝爲禍。 何者, 六師失利, 交綏而退, 將士知戒, 益嚴邊備, 虜不能犯, 此其福也。 捷書星馳, 凱音交奏, 殿下捧萬壽之觴, 薦勳祖廟, 有輕視四夷之心, 將士狃勝, 虜則含怒欲報, 嘯聚醜類, 健馬利兵, 歲犯王略, 邊氓有守陴之苦, 朝廷貽旰食之憂, 其爲害可勝道哉! 昔漢 高帝欲伐凶奴, 兵踰勾注, 婁敬猶諫之, 今王師未動, 何難止之? 在成命一下耳。 選賢將付邊鎖, 完城壁鍊士卒, 有不可犯之形, 來則制之, 去則勿追, 此當今制戎之上策也。 釋上策而不爲, 欲效秦人之無策, 臣等不知其可也。

御書曰: "兵戰之事, 予豈好之, 但以勢不得已。 卿等所以諫之不已者, 徒恐兵連禍結而已, 已定之事, 今何止也? 不允。"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원본

/ 1
태조-철종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고종-순종
                                                              • 이동
                                                                • 이동
                                                                  • 이동
                                                                    태조-철종
                                                                      고종-순종

                                                                        문자입력기

                                                                        한자목록

                                                                        문자영역
                                                                        한자목록 바로가기

                                                                        부수

                                                                        획수

                                                                        한자목록

                                                                        획수

                                                                        한자목록

                                                                        부수

                                                                        획수

                                                                        한자목록

                                                                        영문INDEX

                                                                        한어 병음

                                                                        한자목록

                                                                        영문INDEX

                                                                        일본어 음독

                                                                        한자목록

                                                                        책갈피목록

                                                                        책갈피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