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실록252권, 성종 22년 4월 21일 丙寅 5/5 기사 / 1491년 명 홍치(弘治) 4년
홍문관 부제학 김극검 등이 변방 방어의 계책에 대해 논하다
국역
홍문관 부제학(弘文館副提學) 김극검(金克儉) 등이 차자(箚子)를 올리기를,
"《서경(書經)》에 ‘만이(蠻夷)348) 가 중국을 어지럽힌다.’고 하였고, 《시경(詩經)》 ‘험윤(獫狁)349) 이 매우 성하다.’고 하였으니, 옛날부터 공통된 걱정꺼리였습니다. 진(秦)나라·한(漢)나라로 내려오면서 이해(利害)와 득실(得失)은 역사책에 명확하게 나타나 있으니, 모두 전하(殿下)께서 일찍이 열람하신 것입니다. 지난봄에 북쪽 오랑캐가 변방을 침범하여 사람과 가축을 죽이고 약탈하였으며, 지키던 장수를 죽이는 데 이르렀으니, 크거나 작거나 그것을 들은 사람은 심담(心膽)350) 이 함께 꺾이고 성난 기운이 가슴을 답답하게 하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죄를 신문하지 않으면 예단(睿斷)351) 을 드날릴 수 없다고 여겨 초 겨울이 되기를 기다려 장차 군사를 일으켜 토벌하려 하시니, 무사[武夫]와 건장한 군졸들은 쾌하다고 일컫는 이가 많습니다. 그러나 신 등의 어리석고 나약한 생각으로 저윽이 홀로 위험스럽다고 여깁니다. 이미 지나간 자취를 자세히 궁구해 보면 한(漢)나라 고조(高祖)는 평성(平城)에서 포위되어 7일 동안이나 먹지 못하다가 마침내 화친(和親)하였으며352) , 고후(高后)가 묵특(冒頓)의 편지 내용이 너무 버릇이 없는 데 노(怒)하여 군사를 내어 공격할 것을 의논하게 하자, 계포(季布)가 간(諫)하여 그만두었습니다353) . 그러나 무제(武帝)354) 만은 장수를 선발하고 군사를 훈련시켜 양식을 싸가지고 깊숙이 쳐들어가서 비록 대단한 성과는 있었으나 오랑캐들이 번번이 보복하였으므로 전쟁이 계속되고 화난(禍難)이 맺혀져 30여 년 동안 해내(海內)가 고달파하고 어지러웠으니, 이것이 귀감[明鑑]인 것입니다. 대저 성인(聖人)이 이적(夷狄)의 침략 보기를 마치 모기나 등에로 여겨 침입해 오면 몰아다 먼 곳으로 쫓아 버리고, 떠나면 대비하여 지키면서 병력을 다 써 멀리 가서 토벌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오랑캐에게 2만의 군사를 일으켜 조그마한 분(忿)을 쾌하게 하려고 하시고, 군량(軍糧)을 운반하는 수고로움은 돌보지 않고 먼 적지(賊地)에 군대를 깊이 들여보내어 바로 위험한 곳[虎穴]을 탐색하게 하시는데, 편안하게 있으면서 기운을 돋군 군사를 거느리고 멀리서 오는 피로한 상대를 기다리는 식으로 주객(主客)의 형세가 다르니, 군대를 조종하기가 실로 어렵습니다. 다행히 뜻대로 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원수를 깊이 맺어 노략질이 그치지 않을 것이며, 만에 하나라도 실패한다면 뉘우친들 어찌 미치겠습니까? 국가의 위엄을 떨어뜨리고 손상(損傷)시키는 것이 이에 더 심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무기[兵]는 흉(凶)한 기물(器物)이며, 전쟁은 위태로운 일입니다. 어찌 흉한 기물을 가지고 위태로운 일을 일으켜 오랑캐들이 늘 하는 짓을 보복하려고 요행(僥倖)을 바라면서 기필할 수 없는 승부(勝負)를 거십니까? 그것은 위상(魏相)355) 이 이른바 ‘성을 내어 떠드는 군대는 아마도 제왕(帝王)이 만전(萬全)을 기한 거사(擧事)가 아니다.’고 한 것에 가깝습니다.
의논하는 자들은 전하(殿下)의 이번 거사를 틀림없이 이긴다고 보장합니다. 과연 말한 것과 같이 한 번 싸워 이기고 개선(凱旋)하는 날에 전하께서 아실 것은 이겼다는 글을 아뢰고 하례하는 전문(箋文)으로 칭송하면서 한때의 보고 듣는 것을 쾌하게 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온갖 고생을 무릅쓰고 전투를 하다가 참혹하게 죽어 간(肝)과 뇌(腦)가 땅에 발리어진 상황을 차마 볼 수 있겠으며, 아비를 잃은 자식과 남편을 지어미의 원통해 하며 부르짖는 소리를 차마 들을 수 있겠습니까? 잔치를 내려 주고 공훈(功勳)을 책에 기록하며 넉넉한 상(賞)과 중한 자급[級]을 내려 주는 것은 장사(將士)들에게 이로운 것이지 백성들에게 이로운 것은 아니며 또 국가의 이로움도 아닙니다. 그리고 종정국(宗貞國)의 글의 내용을 살펴보니 매우 불손(不遜)한 데 관계가 되며, 해마다 보내는 선척(船隻)을 늘리고자 하는 것인데, 설령 따를 수 없는 주청이라 하더라도 조정의 의도를 시험하는 것이니 그 형세가 앞으로 제거하기 어려운 외환[腹心之疾]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남방(南方)의 군비(軍備)를 거두어 멀리 오랑캐 지역에서 거사를 하니, 재앙(災殃)을 부르고 흔단(釁端)을 보태는 것으로 훌륭한 계책을 얻은 것이 아닙니다. 신 등이 또 옛날 사람이 말한 것을 듣건대, ‘큰 일을 일으킬 때에는 반드시 하늘의 뜻을 따라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하늘의 뜻이 따라주거나 등지는 것은 재앙과 상서(祥瑞)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요즈음 해마다 홍수와 가뭄이 잇달으며 별의 변고(變故)가 여러 번 나타났으니, 하늘의 뜻을 알 만합니다. 그런데 전하께서 바야흐로 큰 군사를 동원하여 먼 곳에서 계책을 행사하려고 하시니, 비유컨대, 자식이 어버이에게 꾸지람을 당하였을 경우 당연히 온화한 소리로 기운을 낮추고 자신의 잘못을 깨달아 뉘우쳐야 기뼈하는 데 이를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갑작스럽게 성난 소리로 마구 노예(奴隷)에게 매질하는 것과 같으니, 이렇게 하고서도 어버이가 자기를 좋아하기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멀리 지난 세대를 열람(閱覽)하시고 위로는 하늘의 마음을 살피시며 아래로는 백성들의 마음을 살피셔서 전쟁을 일으키려는 뜻을 끊으시고 변방을 견고하게 하소서. 이것이 사직(社稷)을 위한 장구(長久)한 계책인 것입니다. 신 등이 또 듣건대, 인신(人臣)이 말을 올리면서 바야흐로 생각이 날카로울 때를 맞아 그것을 꺾으려고 하면 성과를 얻기가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전하께서 날카로운 생각으로 무력(武力)을 활용하려고 하시는데, 신 등은 두 발[丈]되는 몽둥이를 받들거나 긴 밧줄356) 을 청하면서 분발하지 못하고, 다만 사졸(士卒)보다 먼저 전하에게 전쟁을 그만두기만 권면(勸勉)하였으니, 신 등을 나무라는 사람은 틀림없이 〈신 등을〉 겁이 많다고 여길 것이며 사리에 어둡다고 여길 것입니다. 신 등이 그것을 모르는 것이 아닌데도 진언(進言)하기를 그치지 않는 까닭은 진실로 어리석은 사람의 여러가지 생각 중에서 취할 만한 한 가지 생각이 위로 성청(聖聽)357) 을 보좌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영돈녕(領敦寧) 이상과 정부(政府)에 보이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9책 252권 14장 B면【국편영인본】 12책 14면
- 【분류】역사-고사(故事) / 정론-간쟁(諫諍) / 군사-군정(軍政) / 외교-야(野) / 외교-왜(倭) / 과학-천기(天氣)
- [註 348] 만이(蠻夷) : 중국 동쪽의 야만인.
- [註 349] 험윤(獫狁) : 주(周)나라 때 북방(北方)의 만족(蠻族).
- [註 350] 심담(心膽) : 심지(心地)와 담력(膽力).
- [註 351] 예단(睿斷) : 임금의 결단.
- [註 352] 한(漢)나라고조(高祖)는 평성(平城)에서 포위되어 7일 동안이나 먹지 못하다가 마침내 화친(和親)하였으며 : 한(漢)나라 고조(高祖) 7년에 고조가 직접 흉노를 치러 갔는데, 평성(平城)에 이르러 도리어 흉노에게 7일 동안 포위를 당하였다. 이대 진평(陳平)이 화공(畫工)으로 하여금 미인도(美人圖)를 그려서 흉노의 왕비(王妃)에게 바치면서 "한나라에 이와 같은 미인이 있는데 지금 황제가 곤액(困厄)을 당하고 있으므로 바치고자 한다." 하였다. 그러자 흉노의 왕비가 선우(單于)에게 총애를 잃을 것을 두려워하여, "한나라 천자(天子)가 신령(神靈)함이 있어 그 땅을 얻었다고 하자, 선우가 포위망의 일각을 풀었는데, 이에 고조가 탈출할 수가 있었던 고사(故事).
- [註 353] 고후(高后)가 묵특(冒頓)의 편지 내용이 너무 버릇이 없는 데 노(怒)하여 군사를 내어 공격할 것을 의논하게 하자, 계포(季布)가 간(諫)하여 그만두었습니다 : 한(漢)나라 효문제(孝文帝) 당시 여태후(呂太后)가 집정(執政)하고 있을 때, 흉노의 선우 묵특[冒頓]이 편지를 보내어 여태후를 모독하였다. 이에 여태후가 노하여 여러 장수를 부르고 의논하게 하자, 번쾌(樊噲)가 "신이 10만 명의 군사를 얻어 흉노 가운데서 횡행(橫行)하기를 원합니다."라고 하였다. 여러 장수들이 여태후에게 아부하고자 하여 번쾌의 말이 옳다고 하였는데, 계포(季布:초(楚)나라의 무장이었으나 뒤에 한 고조의 낭중(郞中)이 됨)만이 "번쾌를 참(斬)해야 합니다. 고제(高帝)께서도 30만 명의 병력으로 흉노 가운데서 곤란을 당하였고, 그 때에 번쾌도 같이 있었는데, 지금 어찌 번쾌가 10만 명의 병력으로 흉노 가운데서 횡행한다는 것입니까? 이는 면전에서 아첨하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흉노를 치는 계획을 그만두었던 고사.
- [註 354] 무제(武帝) : 한(漢)나라 무제(武帝).
- [註 355] 위상(魏相) : 한(漢)나라 선제(宣帝) 때의 재상(宰相).
- [註 356] 긴 밧줄 : 《한서(漢書)》 종군전(從軍傳)을 보면,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 종군(從軍)이 긴 밧줄[長纓]을 받아 틀림없이 남월왕(南越王)을 묶어서 대궐의 뜰 아래 끌고 오겠다는 기사(記事)가 있는데, 이를 인용한 것임.
- [註 357] 성청(聖聽) : 임금의 들음.
원문
○弘文館副提學金克儉等上箚子曰:
《書》言: "蠻夷猾夏。"; 《詩》稱: "獫狁孔熾。" 自古通患, 秦、漢以降, 利害得失, 炳炳史冊, 皆殿下所嘗覽。 去春北虜犯邊, 殺掠人畜, 至殺守將, 大小聞者, 莫不心膽俱喪, 怒氣勃鬱, 以爲非問罪, 不可奮睿斷。 俟冬初, 將興兵致討, 武夫健卒, 多稱快焉, 臣等庸懦, 竊獨危之。 深究已往之迹, 以爲漢 高被圍平城, 七日不食而卒以和親, 高后怒冒頓書辭極褻慢, 議發兵擊之, 季布諫而止, 獨武帝選將鍊兵, 贏糧深入, 雖頗有功, 胡輒報之, 兵連禍結三十餘年, 海內罷耗, 此其明鑑。 夫聖人視夷狄之侵, 如蚊蝱之螫, 來則驅而遠之, 去則備而守之, 不窮兵不遠討。 今欲擧二萬之衆於虜, 以快纖芥之忿, 飛輓之勞, 在所不恤, 而懸軍深入, 直探虎穴, 以逸待勞, 主客勢異, 用兵實難, 幸而得志, 結怨必深, 寇掠不已; 萬一蹉跎, 悔之何及? 其墜損國威, 於玆甚矣。 且兵凶器戰危事, 豈擁凶器擧危事, 以報虜之常事, 以僥倖未可必之勝負乎? 殆魏相所謂忿兵, 恐非帝王萬全之擧也。 議者以殿下此擧, 保其必勝, 果如所言, 一戰而勝, 凱旋之日, 殿下所知者奏捷, 書稱賀箋, 以快一時之觀聽而已。 至如蒙犯風霜, 肝腦塗地之狀, 其可忍見耶! 孤子寡妻冤號之聲, 其可忍聞耶! 賜宴策勳, 厚賞重級, 將士之利, 非百姓之利, 又非國家之利也。 且觀宗貞國書, 辭頗涉不遜, 欲歲增船隻, 設爲不可從之請, 以試朝廷之意。 其勢將爲腹心之疾, 而撤南備, 遠事窮荒, 招咎益釁, 亦非計之得也。 臣等又聞古人有言: "擧大事必順天意, 天意向背, 見於災祥。" 近歲水旱連年, 星變屢見, 天意可知。 殿下方動大衆, 事遠略, 譬猶人子見謫於親, 當怡聲下氣, 負罪引慝, 庶幾底豫, 今乃遽然厲聲, 恣箠撻於奴隷, 以此而欲望親之悅己可乎? 伏願殿下, 遠覽前代, 上察天心, 下視民情, 絶意兵革, 以固邊塞, 此社稷長久之計。 臣等又聞, 人臣進言, 迎其方銳而折之, 則難爲功。 殿下銳意用武, 而臣等不能奉丈二之殳, 奮長纓之請, 爲士卒先, 而徒勸殿下息兵, 誚臣等者, 必以爲怯懦, 必以爲迂闊。 臣等非不知, 而所以進言不已, 誠以一得之愚, 上裨聖聽也。
傳曰: "示領敦寧以上與政府。"
- 【태백산사고본】 39책 252권 14장 B면【국편영인본】 12책 14면
- 【분류】역사-고사(故事) / 정론-간쟁(諫諍) / 군사-군정(軍政) / 외교-야(野) / 외교-왜(倭) / 과학-천기(天氣)
성종실록252권, 성종 22년 4월 21일 丙寅 5/5 기사 / 1491년 명 홍치(弘治) 4년
홍문관 부제학 김극검 등이 변방 방어의 계책에 대해 논하다
국역
홍문관 부제학(弘文館副提學) 김극검(金克儉) 등이 차자(箚子)를 올리기를,
"《서경(書經)》에 ‘만이(蠻夷)348) 가 중국을 어지럽힌다.’고 하였고, 《시경(詩經)》 ‘험윤(獫狁)349) 이 매우 성하다.’고 하였으니, 옛날부터 공통된 걱정꺼리였습니다. 진(秦)나라·한(漢)나라로 내려오면서 이해(利害)와 득실(得失)은 역사책에 명확하게 나타나 있으니, 모두 전하(殿下)께서 일찍이 열람하신 것입니다. 지난봄에 북쪽 오랑캐가 변방을 침범하여 사람과 가축을 죽이고 약탈하였으며, 지키던 장수를 죽이는 데 이르렀으니, 크거나 작거나 그것을 들은 사람은 심담(心膽)350) 이 함께 꺾이고 성난 기운이 가슴을 답답하게 하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죄를 신문하지 않으면 예단(睿斷)351) 을 드날릴 수 없다고 여겨 초 겨울이 되기를 기다려 장차 군사를 일으켜 토벌하려 하시니, 무사[武夫]와 건장한 군졸들은 쾌하다고 일컫는 이가 많습니다. 그러나 신 등의 어리석고 나약한 생각으로 저윽이 홀로 위험스럽다고 여깁니다. 이미 지나간 자취를 자세히 궁구해 보면 한(漢)나라 고조(高祖)는 평성(平城)에서 포위되어 7일 동안이나 먹지 못하다가 마침내 화친(和親)하였으며352) , 고후(高后)가 묵특(冒頓)의 편지 내용이 너무 버릇이 없는 데 노(怒)하여 군사를 내어 공격할 것을 의논하게 하자, 계포(季布)가 간(諫)하여 그만두었습니다353) . 그러나 무제(武帝)354) 만은 장수를 선발하고 군사를 훈련시켜 양식을 싸가지고 깊숙이 쳐들어가서 비록 대단한 성과는 있었으나 오랑캐들이 번번이 보복하였으므로 전쟁이 계속되고 화난(禍難)이 맺혀져 30여 년 동안 해내(海內)가 고달파하고 어지러웠으니, 이것이 귀감[明鑑]인 것입니다. 대저 성인(聖人)이 이적(夷狄)의 침략 보기를 마치 모기나 등에로 여겨 침입해 오면 몰아다 먼 곳으로 쫓아 버리고, 떠나면 대비하여 지키면서 병력을 다 써 멀리 가서 토벌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오랑캐에게 2만의 군사를 일으켜 조그마한 분(忿)을 쾌하게 하려고 하시고, 군량(軍糧)을 운반하는 수고로움은 돌보지 않고 먼 적지(賊地)에 군대를 깊이 들여보내어 바로 위험한 곳[虎穴]을 탐색하게 하시는데, 편안하게 있으면서 기운을 돋군 군사를 거느리고 멀리서 오는 피로한 상대를 기다리는 식으로 주객(主客)의 형세가 다르니, 군대를 조종하기가 실로 어렵습니다. 다행히 뜻대로 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원수를 깊이 맺어 노략질이 그치지 않을 것이며, 만에 하나라도 실패한다면 뉘우친들 어찌 미치겠습니까? 국가의 위엄을 떨어뜨리고 손상(損傷)시키는 것이 이에 더 심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무기[兵]는 흉(凶)한 기물(器物)이며, 전쟁은 위태로운 일입니다. 어찌 흉한 기물을 가지고 위태로운 일을 일으켜 오랑캐들이 늘 하는 짓을 보복하려고 요행(僥倖)을 바라면서 기필할 수 없는 승부(勝負)를 거십니까? 그것은 위상(魏相)355) 이 이른바 ‘성을 내어 떠드는 군대는 아마도 제왕(帝王)이 만전(萬全)을 기한 거사(擧事)가 아니다.’고 한 것에 가깝습니다.
의논하는 자들은 전하(殿下)의 이번 거사를 틀림없이 이긴다고 보장합니다. 과연 말한 것과 같이 한 번 싸워 이기고 개선(凱旋)하는 날에 전하께서 아실 것은 이겼다는 글을 아뢰고 하례하는 전문(箋文)으로 칭송하면서 한때의 보고 듣는 것을 쾌하게 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온갖 고생을 무릅쓰고 전투를 하다가 참혹하게 죽어 간(肝)과 뇌(腦)가 땅에 발리어진 상황을 차마 볼 수 있겠으며, 아비를 잃은 자식과 남편을 지어미의 원통해 하며 부르짖는 소리를 차마 들을 수 있겠습니까? 잔치를 내려 주고 공훈(功勳)을 책에 기록하며 넉넉한 상(賞)과 중한 자급[級]을 내려 주는 것은 장사(將士)들에게 이로운 것이지 백성들에게 이로운 것은 아니며 또 국가의 이로움도 아닙니다. 그리고 종정국(宗貞國)의 글의 내용을 살펴보니 매우 불손(不遜)한 데 관계가 되며, 해마다 보내는 선척(船隻)을 늘리고자 하는 것인데, 설령 따를 수 없는 주청이라 하더라도 조정의 의도를 시험하는 것이니 그 형세가 앞으로 제거하기 어려운 외환[腹心之疾]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남방(南方)의 군비(軍備)를 거두어 멀리 오랑캐 지역에서 거사를 하니, 재앙(災殃)을 부르고 흔단(釁端)을 보태는 것으로 훌륭한 계책을 얻은 것이 아닙니다. 신 등이 또 옛날 사람이 말한 것을 듣건대, ‘큰 일을 일으킬 때에는 반드시 하늘의 뜻을 따라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하늘의 뜻이 따라주거나 등지는 것은 재앙과 상서(祥瑞)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요즈음 해마다 홍수와 가뭄이 잇달으며 별의 변고(變故)가 여러 번 나타났으니, 하늘의 뜻을 알 만합니다. 그런데 전하께서 바야흐로 큰 군사를 동원하여 먼 곳에서 계책을 행사하려고 하시니, 비유컨대, 자식이 어버이에게 꾸지람을 당하였을 경우 당연히 온화한 소리로 기운을 낮추고 자신의 잘못을 깨달아 뉘우쳐야 기뼈하는 데 이를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갑작스럽게 성난 소리로 마구 노예(奴隷)에게 매질하는 것과 같으니, 이렇게 하고서도 어버이가 자기를 좋아하기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멀리 지난 세대를 열람(閱覽)하시고 위로는 하늘의 마음을 살피시며 아래로는 백성들의 마음을 살피셔서 전쟁을 일으키려는 뜻을 끊으시고 변방을 견고하게 하소서. 이것이 사직(社稷)을 위한 장구(長久)한 계책인 것입니다. 신 등이 또 듣건대, 인신(人臣)이 말을 올리면서 바야흐로 생각이 날카로울 때를 맞아 그것을 꺾으려고 하면 성과를 얻기가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전하께서 날카로운 생각으로 무력(武力)을 활용하려고 하시는데, 신 등은 두 발[丈]되는 몽둥이를 받들거나 긴 밧줄356) 을 청하면서 분발하지 못하고, 다만 사졸(士卒)보다 먼저 전하에게 전쟁을 그만두기만 권면(勸勉)하였으니, 신 등을 나무라는 사람은 틀림없이 〈신 등을〉 겁이 많다고 여길 것이며 사리에 어둡다고 여길 것입니다. 신 등이 그것을 모르는 것이 아닌데도 진언(進言)하기를 그치지 않는 까닭은 진실로 어리석은 사람의 여러가지 생각 중에서 취할 만한 한 가지 생각이 위로 성청(聖聽)357) 을 보좌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영돈녕(領敦寧) 이상과 정부(政府)에 보이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9책 252권 14장 B면【국편영인본】 12책 14면
- 【분류】역사-고사(故事) / 정론-간쟁(諫諍) / 군사-군정(軍政) / 외교-야(野) / 외교-왜(倭) / 과학-천기(天氣)
- [註 348] 만이(蠻夷) : 중국 동쪽의 야만인.
- [註 349] 험윤(獫狁) : 주(周)나라 때 북방(北方)의 만족(蠻族).
- [註 350] 심담(心膽) : 심지(心地)와 담력(膽力).
- [註 351] 예단(睿斷) : 임금의 결단.
- [註 352] 한(漢)나라고조(高祖)는 평성(平城)에서 포위되어 7일 동안이나 먹지 못하다가 마침내 화친(和親)하였으며 : 한(漢)나라 고조(高祖) 7년에 고조가 직접 흉노를 치러 갔는데, 평성(平城)에 이르러 도리어 흉노에게 7일 동안 포위를 당하였다. 이대 진평(陳平)이 화공(畫工)으로 하여금 미인도(美人圖)를 그려서 흉노의 왕비(王妃)에게 바치면서 "한나라에 이와 같은 미인이 있는데 지금 황제가 곤액(困厄)을 당하고 있으므로 바치고자 한다." 하였다. 그러자 흉노의 왕비가 선우(單于)에게 총애를 잃을 것을 두려워하여, "한나라 천자(天子)가 신령(神靈)함이 있어 그 땅을 얻었다고 하자, 선우가 포위망의 일각을 풀었는데, 이에 고조가 탈출할 수가 있었던 고사(故事).
- [註 353] 고후(高后)가 묵특(冒頓)의 편지 내용이 너무 버릇이 없는 데 노(怒)하여 군사를 내어 공격할 것을 의논하게 하자, 계포(季布)가 간(諫)하여 그만두었습니다 : 한(漢)나라 효문제(孝文帝) 당시 여태후(呂太后)가 집정(執政)하고 있을 때, 흉노의 선우 묵특[冒頓]이 편지를 보내어 여태후를 모독하였다. 이에 여태후가 노하여 여러 장수를 부르고 의논하게 하자, 번쾌(樊噲)가 "신이 10만 명의 군사를 얻어 흉노 가운데서 횡행(橫行)하기를 원합니다."라고 하였다. 여러 장수들이 여태후에게 아부하고자 하여 번쾌의 말이 옳다고 하였는데, 계포(季布:초(楚)나라의 무장이었으나 뒤에 한 고조의 낭중(郞中)이 됨)만이 "번쾌를 참(斬)해야 합니다. 고제(高帝)께서도 30만 명의 병력으로 흉노 가운데서 곤란을 당하였고, 그 때에 번쾌도 같이 있었는데, 지금 어찌 번쾌가 10만 명의 병력으로 흉노 가운데서 횡행한다는 것입니까? 이는 면전에서 아첨하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흉노를 치는 계획을 그만두었던 고사.
- [註 354] 무제(武帝) : 한(漢)나라 무제(武帝).
- [註 355] 위상(魏相) : 한(漢)나라 선제(宣帝) 때의 재상(宰相).
- [註 356] 긴 밧줄 : 《한서(漢書)》 종군전(從軍傳)을 보면,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 종군(從軍)이 긴 밧줄[長纓]을 받아 틀림없이 남월왕(南越王)을 묶어서 대궐의 뜰 아래 끌고 오겠다는 기사(記事)가 있는데, 이를 인용한 것임.
- [註 357] 성청(聖聽) : 임금의 들음.
원문
○弘文館副提學金克儉等上箚子曰:
《書》言: "蠻夷猾夏。"; 《詩》稱: "獫狁孔熾。" 自古通患, 秦、漢以降, 利害得失, 炳炳史冊, 皆殿下所嘗覽。 去春北虜犯邊, 殺掠人畜, 至殺守將, 大小聞者, 莫不心膽俱喪, 怒氣勃鬱, 以爲非問罪, 不可奮睿斷。 俟冬初, 將興兵致討, 武夫健卒, 多稱快焉, 臣等庸懦, 竊獨危之。 深究已往之迹, 以爲漢 高被圍平城, 七日不食而卒以和親, 高后怒冒頓書辭極褻慢, 議發兵擊之, 季布諫而止, 獨武帝選將鍊兵, 贏糧深入, 雖頗有功, 胡輒報之, 兵連禍結三十餘年, 海內罷耗, 此其明鑑。 夫聖人視夷狄之侵, 如蚊蝱之螫, 來則驅而遠之, 去則備而守之, 不窮兵不遠討。 今欲擧二萬之衆於虜, 以快纖芥之忿, 飛輓之勞, 在所不恤, 而懸軍深入, 直探虎穴, 以逸待勞, 主客勢異, 用兵實難, 幸而得志, 結怨必深, 寇掠不已; 萬一蹉跎, 悔之何及? 其墜損國威, 於玆甚矣。 且兵凶器戰危事, 豈擁凶器擧危事, 以報虜之常事, 以僥倖未可必之勝負乎? 殆魏相所謂忿兵, 恐非帝王萬全之擧也。 議者以殿下此擧, 保其必勝, 果如所言, 一戰而勝, 凱旋之日, 殿下所知者奏捷, 書稱賀箋, 以快一時之觀聽而已。 至如蒙犯風霜, 肝腦塗地之狀, 其可忍見耶! 孤子寡妻冤號之聲, 其可忍聞耶! 賜宴策勳, 厚賞重級, 將士之利, 非百姓之利, 又非國家之利也。 且觀宗貞國書, 辭頗涉不遜, 欲歲增船隻, 設爲不可從之請, 以試朝廷之意。 其勢將爲腹心之疾, 而撤南備, 遠事窮荒, 招咎益釁, 亦非計之得也。 臣等又聞古人有言: "擧大事必順天意, 天意向背, 見於災祥。" 近歲水旱連年, 星變屢見, 天意可知。 殿下方動大衆, 事遠略, 譬猶人子見謫於親, 當怡聲下氣, 負罪引慝, 庶幾底豫, 今乃遽然厲聲, 恣箠撻於奴隷, 以此而欲望親之悅己可乎? 伏願殿下, 遠覽前代, 上察天心, 下視民情, 絶意兵革, 以固邊塞, 此社稷長久之計。 臣等又聞, 人臣進言, 迎其方銳而折之, 則難爲功。 殿下銳意用武, 而臣等不能奉丈二之殳, 奮長纓之請, 爲士卒先, 而徒勸殿下息兵, 誚臣等者, 必以爲怯懦, 必以爲迂闊。 臣等非不知, 而所以進言不已, 誠以一得之愚, 上裨聖聽也。
傳曰: "示領敦寧以上與政府。"
- 【태백산사고본】 39책 252권 14장 B면【국편영인본】 12책 14면
- 【분류】역사-고사(故事) / 정론-간쟁(諫諍) / 군사-군정(軍政) / 외교-야(野) / 외교-왜(倭) / 과학-천기(天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