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실록221권, 성종 19년 10월 9일 己亥 1/2 기사 / 1488년 명 홍치(弘治) 1년
집의 이종호 등이 임사홍의 상소의 내용으로 피혐하기를 청하다
국역
사헌부 집의(司憲府執義) 이종호(李宗顥) 등이 와서 아뢰기를,
"신 등이 근자에 임희재(任熙載) 등의 향시(鄕試)에 남부(濫赴)837) 한 일로써 논박하니, 이제 임사홍(任士洪)의 상소(上疏)에 있기를, ‘음사(陰私)를 거짓으로 주워모았다.’ 하고, ‘법을 맡은 자는 그 마음을 공평하게 하여서 그 법을 맡아 본 연후에야 원왕(冤枉)이 없어서 사람의 뜻이 복종합니다.’ 하였으며, ‘헌부(憲府)는 법을 맡은 관사(官司)이니, 어찌 억탁(臆度)의 말을 성상 앞에 아뢰어서 사람을 죄의 땅에 빠뜨리겠습니까?’ 하고, ‘사람을 함정에 빠뜨리고서도 돌을 더하는 것은 다시 나옴을 싫어하는 것입니다.’ 하였으며, ‘그 사람이 함부로 입을 놀려 욕(辱)하는 것이 노예(奴隷)만도 못하다.’ 하고, ‘신(臣)은 벼슬이 도승지(都承旨)에 이르고, 임광재(任光載)는 부마(駙馬)가 되었으니, 마땅히 뭇사람의 비방이 모이는 바가 되어서 스스로 피할 수 없었습니다.’ 하였으며, ‘약한 자는 고기가 되고 강한 자는 먹으며, 젖은 땅은 말뚝 박기가 쉽습니다.’ 하였습니다. 이로써 보건대, 임사홍(任士洪)이 대간(臺諫)의 입을 막아서 감히 말하지 못하게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또 신 등이 어찌 임사홍에게 사사로운 원한이 있어서 이를 아뢰었겠습니까? 신 등은 직책이 언관(言官)에 있어서 듣고 본 바를 말할 뿐입니다. 이제 임사홍의 저훼(詆毁)가 이와 같은 것은 신 등이 착하지 못한 소치(所致)이니, 피혐(避嫌)하기를 청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언어(言語)로써 문자(文字)를 작성(作成)함에 우연히 이와 같이 되었을 뿐이니, 어찌 피혐하겠는가?"
하였다.
- [註 837] 남부(濫赴) : 법도를 어기고 함부로 나아가는 것.
원문
○己亥/司憲府執義李宗顥等來啓曰: "臣等近者以任熙載等濫赴鄕試論駁。 今士洪上疏, 有曰: ‘誣摭陰私’, 曰: ‘持法者宜平其心持其法, 然後可以無冤枉, 人情服矣。 憲府持法之司, 豈以臆度之語, 啓上前, 而納人於罪地乎?’ 曰: ‘陷人於井, 又加石者, 惡其復出。’ 曰: ‘其人之肆口辱之, 不啻奴隷。’ 曰: ‘臣仕至都承旨, 光載駙馬, 宜爲衆口所萃而無自避也。’ 曰: ‘弱肉强食, 潤地易杙。’ 以此觀之, 士洪欲鉗臺諫之口, 使不敢言也。 且臣等豈有私怨於士洪而啓之哉? 臣等職在言官, 以所聞所見言之耳。 今士洪之詆毁如此者, 以臣等不善之所致也。 請避嫌。" 傳曰: "以言語作成文字, 偶爾如此, 豈可避嫌乎?"
성종 19년 (1488) 10월 9일
성종실록221권, 성종 19년 10월 9일 己亥 1/2 기사 / 1488년 명 홍치(弘治) 1년
집의 이종호 등이 임사홍의 상소의 내용으로 피혐하기를 청하다
국역
사헌부 집의(司憲府執義) 이종호(李宗顥) 등이 와서 아뢰기를,
"신 등이 근자에 임희재(任熙載) 등의 향시(鄕試)에 남부(濫赴)837) 한 일로써 논박하니, 이제 임사홍(任士洪)의 상소(上疏)에 있기를, ‘음사(陰私)를 거짓으로 주워모았다.’ 하고, ‘법을 맡은 자는 그 마음을 공평하게 하여서 그 법을 맡아 본 연후에야 원왕(冤枉)이 없어서 사람의 뜻이 복종합니다.’ 하였으며, ‘헌부(憲府)는 법을 맡은 관사(官司)이니, 어찌 억탁(臆度)의 말을 성상 앞에 아뢰어서 사람을 죄의 땅에 빠뜨리겠습니까?’ 하고, ‘사람을 함정에 빠뜨리고서도 돌을 더하는 것은 다시 나옴을 싫어하는 것입니다.’ 하였으며, ‘그 사람이 함부로 입을 놀려 욕(辱)하는 것이 노예(奴隷)만도 못하다.’ 하고, ‘신(臣)은 벼슬이 도승지(都承旨)에 이르고, 임광재(任光載)는 부마(駙馬)가 되었으니, 마땅히 뭇사람의 비방이 모이는 바가 되어서 스스로 피할 수 없었습니다.’ 하였으며, ‘약한 자는 고기가 되고 강한 자는 먹으며, 젖은 땅은 말뚝 박기가 쉽습니다.’ 하였습니다. 이로써 보건대, 임사홍(任士洪)이 대간(臺諫)의 입을 막아서 감히 말하지 못하게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또 신 등이 어찌 임사홍에게 사사로운 원한이 있어서 이를 아뢰었겠습니까? 신 등은 직책이 언관(言官)에 있어서 듣고 본 바를 말할 뿐입니다. 이제 임사홍의 저훼(詆毁)가 이와 같은 것은 신 등이 착하지 못한 소치(所致)이니, 피혐(避嫌)하기를 청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언어(言語)로써 문자(文字)를 작성(作成)함에 우연히 이와 같이 되었을 뿐이니, 어찌 피혐하겠는가?"
하였다.
- [註 837] 남부(濫赴) : 법도를 어기고 함부로 나아가는 것.
원문
○己亥/司憲府執義李宗顥等來啓曰: "臣等近者以任熙載等濫赴鄕試論駁。 今士洪上疏, 有曰: ‘誣摭陰私’, 曰: ‘持法者宜平其心持其法, 然後可以無冤枉, 人情服矣。 憲府持法之司, 豈以臆度之語, 啓上前, 而納人於罪地乎?’ 曰: ‘陷人於井, 又加石者, 惡其復出。’ 曰: ‘其人之肆口辱之, 不啻奴隷。’ 曰: ‘臣仕至都承旨, 光載駙馬, 宜爲衆口所萃而無自避也。’ 曰: ‘弱肉强食, 潤地易杙。’ 以此觀之, 士洪欲鉗臺諫之口, 使不敢言也。 且臣等豈有私怨於士洪而啓之哉? 臣等職在言官, 以所聞所見言之耳。 今士洪之詆毁如此者, 以臣等不善之所致也。 請避嫌。" 傳曰: "以言語作成文字, 偶爾如此, 豈可避嫌乎?"
원본
성종 19년 (1488) 10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