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실록204권, 성종 18년 6월 7일 乙亥 2/2 기사 / 1487년 명 성화(成化) 23년
유학 유승탄에게 형장 80대를 내려 징계하다
국역
사헌부(司憲府)에서 아뢰기를,
"유학(幼學) 유승탄(兪昇坦)은 부민(部民)으로서 사는 고을의 수령을 무소(誣訴)하였으니, 청컨대 형장(刑杖) 1백 대를 때리고 전가족을 변경에 옮기게 하소서."
하므로, 명하여 영돈녕(領敦寧) 이상과 의정부에 의논하게 하니, 한명회(韓明澮)는 의논하기를,
"그 죄를 밝고 바르게 다스려서 풍속을 가다듬어야 할 것입니다."
하고, 심회(沈澮)는 의논하기를,
"유승탄은 나이가 젊고 망령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유승탄이 궁벽한 마을에 살면서 스스로 ‘청풍 명월(淸風明月)’이라고 일컬었으니, 사리(事理)를 모르는 광망(狂妄)한 사람인데 무엇을 족히 거론하겠습니까? 이 율(律)은 과중합니다."
하고, 홍응(洪應)은 의논하기를,
"말한 바가 광패(狂悖)하므로 벌을 주어도 허물이 남지만 궁극적으로 추구해보면 진실로 사리를 알지 못하는 자인데, 무엇을 족히 탓하겠습니까? 조종조(祖宗朝)로부터 일을 말한 것이 적중하지 못한 자는 모두 버려두고 죄주지 아니하였는데, 법률로 다스리는 것은 적당하지 못합니다."
하고, 이극배(李克培)는 의논하기를,
"유승탄의 상서(上書)에는 일반적으로 수령의 과실을 일컬었다가 하문(下問)할 때에는 면천(沔川)·결성(結城) 수령이라고 대답하였으니, 부민(部民)이 〈수령을〉 고소한 예(例)가 아닙니다. 하물며 조정의 정사를 비방(誹謗)하고 경상(卿相)을 들어 욕하였으니, 비록 부민이 고소한 법으로 다스린다 하더라도 아마 사람들이 듣기에는 통쾌하지 아니할 듯합니다. 그 올린 글을 보건대, 스스로 어진 체하면서도 말한 바는 쓸 만한 것이 없으니, 일개 망령된 사람에 지나지 아니합니다. 전가족을 변경에 들여보내어 살게 하는 것은 과중할 듯합니다."
하고, 윤호(尹壕)는 의논하기를,
"유승탄의 범한 바가 조율(照律)한 것과 매우 부합합니다만 스스로 ‘청풍명월’이라고 일컬었으니 본래 광망(狂妄)한 자입니다. 국법을 전연 모르고 있으니, 성상께서 재량하소서."
하고, 이철견(李鐵堅)과 손순효(孫舜孝)는 의논하기를,
"유승탄의 상소한 말에 스스로 어질다고 하고 마음 내키는 대로 하여 광패(狂悖)하기 짝이 없으니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고서(告訴)로써 일을 삼아 조정을 경멸하고 수령의 허물을 고하였으니, 비록 글로 고하지 아니하였을지라도 입에서 나온 것이면 부민(部民)이 고소한 것은 바로 그 죄에 적중되는데, 이를 징계하지 아니하면 풍속의 악함을 어떻게 구제하겠습니까? 일체 〈사헌부에서〉 아뢴 바에 의하여 시행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였으며, 이숭원(李崇元)은 의논하기를,
"유승탄이 처음에는 사는 고을의 수령을 고소한 것이 아니고 수령의 불법(不法)을 일반적으로 일컬었는데, 승정원에서 추문(推問)할 때에는 자기가 보고 자기가 살고 있는 곳의 수령의 불법을 지적하여 납초(納招)586) 하였으니, 이는 연고가 없이 수령을 고소한 자에게 비할 것이 아닙니다. 부민(部民)이 수령을 무고(誣告)한 법으로 죄를 주면 과중할 듯합니다."
하였는데, 어서(御書)에 이르기를,
"나이가 스물 여덟에 이르렀으면 동자(童子)가 아니며, 상소하여 사람을 논하였으니 무지한 자도 아니다. 사는 고을의 수령을 고서하였으니 법을 범하였다고 이를 만하고, 묘당(廟堂)587) 의 대상(大相)을 꾸짖었으니 윗사람을 능멸하였다고 이를 만하다. 이로써 보면 비록 중한 법으로 처리한다 하더라도 진실로 조금도 아까울 것이 없으나, 상소한 일로 중한 죄를 받으면 집집마다 깨우쳐 말하기가 어려워서 사람들의 이목(耳目)을 놀라게 할까 두려우니, 형장(刑杖) 80대만 때리게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1책 204권 6장 A면【국편영인본】 11책 221면
- 【분류】사법-재판(裁判) / 사법-행형(行刑)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원문
○司憲府啓: "幼學兪昇坦以部民, 誣訴所居邑宰, 請決杖一百、全家徙邊。" 命議于領敦寧以上及議政府。 韓明澮議: "明正其罪, 以礪風俗。" 沈澮議: "昇坦年少妄量, 〈昇〉坦居窮村, 自號 ‘淸風明月’, 不識事理, 狂妄之人, 何足數也? 此律過重。" 洪應議: "所言狂悖, 誅之有餘辜。 然求其歸, 則誠愚不解事者, 何足恤耶? 自祖宗朝, 言事不中者, 皆棄而不罪, 繩以法律未便。" 李克培議: "昇坦上書, 泛稱守令過失, 而下問時, 以所居沔川、結城守令爲答, 非他部民告訴之例。 況誹謗朝政, 歷詆卿相, 雖以部民告訴之法治之, 恐不快於人之聽聞。 觀所上書, 自以爲賢, 而所言不可用, 不過一妄人耳。 全家入居, 似若過重。" 尹壕議: "昇坦所犯, 與照律甚合。 然自以 ‘淸風明月’ 爲號, 則本是狂妄者也, 不知邦憲甚矣。 上裁。" 李鐵堅、孫舜孝議: "昇坦疏語自賢自用, 狂悖無狀, 眞愚人也。 然以告訴爲事, 輕蔑朝廷, 其告守令之過, 雖不書而出於口, 則部民告訴, 正中其罪。 此而不懲, 風俗之惡, 何以救之? 一依所啓施行何如?" 李崇元議: "昇坦初非告訴居鄕守令, 泛稱守令不法, 而政院推問時, 以己所見所居守令不法, 指斥納招, 此非無緣告守令者之比。 以部民誣告守令之法罪之, 似乎過重。" 御書:
年至二十八, 則非童子也; 上疏論人, 則非無知也。 告居鄕守令, 可謂犯法; 詆廟堂大相, 可謂陵上。 以此觀之, 雖置重典。 固無少惜。 然上疏而受重罪,難於家喩而戶說, 恐駭耳目, 只杖八十。
- 【태백산사고본】 31책 204권 6장 A면【국편영인본】 11책 221면
- 【분류】사법-재판(裁判) / 사법-행형(行刑)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성종 18년 (1487) 6월 7일
성종실록204권, 성종 18년 6월 7일 乙亥 2/2 기사 / 1487년 명 성화(成化) 23년
유학 유승탄에게 형장 80대를 내려 징계하다
국역
사헌부(司憲府)에서 아뢰기를,
"유학(幼學) 유승탄(兪昇坦)은 부민(部民)으로서 사는 고을의 수령을 무소(誣訴)하였으니, 청컨대 형장(刑杖) 1백 대를 때리고 전가족을 변경에 옮기게 하소서."
하므로, 명하여 영돈녕(領敦寧) 이상과 의정부에 의논하게 하니, 한명회(韓明澮)는 의논하기를,
"그 죄를 밝고 바르게 다스려서 풍속을 가다듬어야 할 것입니다."
하고, 심회(沈澮)는 의논하기를,
"유승탄은 나이가 젊고 망령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유승탄이 궁벽한 마을에 살면서 스스로 ‘청풍 명월(淸風明月)’이라고 일컬었으니, 사리(事理)를 모르는 광망(狂妄)한 사람인데 무엇을 족히 거론하겠습니까? 이 율(律)은 과중합니다."
하고, 홍응(洪應)은 의논하기를,
"말한 바가 광패(狂悖)하므로 벌을 주어도 허물이 남지만 궁극적으로 추구해보면 진실로 사리를 알지 못하는 자인데, 무엇을 족히 탓하겠습니까? 조종조(祖宗朝)로부터 일을 말한 것이 적중하지 못한 자는 모두 버려두고 죄주지 아니하였는데, 법률로 다스리는 것은 적당하지 못합니다."
하고, 이극배(李克培)는 의논하기를,
"유승탄의 상서(上書)에는 일반적으로 수령의 과실을 일컬었다가 하문(下問)할 때에는 면천(沔川)·결성(結城) 수령이라고 대답하였으니, 부민(部民)이 〈수령을〉 고소한 예(例)가 아닙니다. 하물며 조정의 정사를 비방(誹謗)하고 경상(卿相)을 들어 욕하였으니, 비록 부민이 고소한 법으로 다스린다 하더라도 아마 사람들이 듣기에는 통쾌하지 아니할 듯합니다. 그 올린 글을 보건대, 스스로 어진 체하면서도 말한 바는 쓸 만한 것이 없으니, 일개 망령된 사람에 지나지 아니합니다. 전가족을 변경에 들여보내어 살게 하는 것은 과중할 듯합니다."
하고, 윤호(尹壕)는 의논하기를,
"유승탄의 범한 바가 조율(照律)한 것과 매우 부합합니다만 스스로 ‘청풍명월’이라고 일컬었으니 본래 광망(狂妄)한 자입니다. 국법을 전연 모르고 있으니, 성상께서 재량하소서."
하고, 이철견(李鐵堅)과 손순효(孫舜孝)는 의논하기를,
"유승탄의 상소한 말에 스스로 어질다고 하고 마음 내키는 대로 하여 광패(狂悖)하기 짝이 없으니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고서(告訴)로써 일을 삼아 조정을 경멸하고 수령의 허물을 고하였으니, 비록 글로 고하지 아니하였을지라도 입에서 나온 것이면 부민(部民)이 고소한 것은 바로 그 죄에 적중되는데, 이를 징계하지 아니하면 풍속의 악함을 어떻게 구제하겠습니까? 일체 〈사헌부에서〉 아뢴 바에 의하여 시행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였으며, 이숭원(李崇元)은 의논하기를,
"유승탄이 처음에는 사는 고을의 수령을 고소한 것이 아니고 수령의 불법(不法)을 일반적으로 일컬었는데, 승정원에서 추문(推問)할 때에는 자기가 보고 자기가 살고 있는 곳의 수령의 불법을 지적하여 납초(納招)586) 하였으니, 이는 연고가 없이 수령을 고소한 자에게 비할 것이 아닙니다. 부민(部民)이 수령을 무고(誣告)한 법으로 죄를 주면 과중할 듯합니다."
하였는데, 어서(御書)에 이르기를,
"나이가 스물 여덟에 이르렀으면 동자(童子)가 아니며, 상소하여 사람을 논하였으니 무지한 자도 아니다. 사는 고을의 수령을 고서하였으니 법을 범하였다고 이를 만하고, 묘당(廟堂)587) 의 대상(大相)을 꾸짖었으니 윗사람을 능멸하였다고 이를 만하다. 이로써 보면 비록 중한 법으로 처리한다 하더라도 진실로 조금도 아까울 것이 없으나, 상소한 일로 중한 죄를 받으면 집집마다 깨우쳐 말하기가 어려워서 사람들의 이목(耳目)을 놀라게 할까 두려우니, 형장(刑杖) 80대만 때리게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1책 204권 6장 A면【국편영인본】 11책 221면
- 【분류】사법-재판(裁判) / 사법-행형(行刑)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원문
○司憲府啓: "幼學兪昇坦以部民, 誣訴所居邑宰, 請決杖一百、全家徙邊。" 命議于領敦寧以上及議政府。 韓明澮議: "明正其罪, 以礪風俗。" 沈澮議: "昇坦年少妄量, 〈昇〉坦居窮村, 自號 ‘淸風明月’, 不識事理, 狂妄之人, 何足數也? 此律過重。" 洪應議: "所言狂悖, 誅之有餘辜。 然求其歸, 則誠愚不解事者, 何足恤耶? 自祖宗朝, 言事不中者, 皆棄而不罪, 繩以法律未便。" 李克培議: "昇坦上書, 泛稱守令過失, 而下問時, 以所居沔川、結城守令爲答, 非他部民告訴之例。 況誹謗朝政, 歷詆卿相, 雖以部民告訴之法治之, 恐不快於人之聽聞。 觀所上書, 自以爲賢, 而所言不可用, 不過一妄人耳。 全家入居, 似若過重。" 尹壕議: "昇坦所犯, 與照律甚合。 然自以 ‘淸風明月’ 爲號, 則本是狂妄者也, 不知邦憲甚矣。 上裁。" 李鐵堅、孫舜孝議: "昇坦疏語自賢自用, 狂悖無狀, 眞愚人也。 然以告訴爲事, 輕蔑朝廷, 其告守令之過, 雖不書而出於口, 則部民告訴, 正中其罪。 此而不懲, 風俗之惡, 何以救之? 一依所啓施行何如?" 李崇元議: "昇坦初非告訴居鄕守令, 泛稱守令不法, 而政院推問時, 以己所見所居守令不法, 指斥納招, 此非無緣告守令者之比。 以部民誣告守令之法罪之, 似乎過重。" 御書:
年至二十八, 則非童子也; 上疏論人, 則非無知也。 告居鄕守令, 可謂犯法; 詆廟堂大相, 可謂陵上。 以此觀之, 雖置重典。 固無少惜。 然上疏而受重罪,難於家喩而戶說, 恐駭耳目, 只杖八十。
- 【태백산사고본】 31책 204권 6장 A면【국편영인본】 11책 221면
- 【분류】사법-재판(裁判) / 사법-행형(行刑)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원본
성종 18년 (1487) 6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