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실록186권, 성종 16년 12월 12일 己丑 1/1 기사 / 1485년 명 성화(成化) 21년
김제신 등이 세자의 문침과 시선의 예를 허락하도록 상언하니 머물러 두라고 명하다
국역
세자 시강원 보덕(世子侍講院輔德) 김제신(金悌臣) 등이 상언(上言)하기를,
"신(臣) 등이 서연(書筵)에 비원(備員)1215) 되어 직분이 보도(輔導)하는 데 있으나, 학술(學術)이 천박(淺薄)하여 일찍이 조그마한 보탬도 없이 오직 구두(句讀)와 훈고(訓詁)로만 과정(課程)을 삼았으니, 물러나 생각해 보건대, 실패했다는 생각을 금하지 못하겠습니다. 신 등이 그윽이 생각해 보니, 학문을 하는 길은 입으로 말하고 귀로 듣는 것만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고 몸소 실행하는 것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니, 어릴 때부터 어른이 될 때까지 대개 그렇지 아니함이 없습니다. 그리고 나이에 있어서 젊은이와 어른이 다르기 때문에 학문하는 데 있어서 대(大)·소(小)의 구별이 있는 것입니다. 대개 옛날 사람들은 그 힘의 미칠 바를 잘 살피고 헤아려서 방법을 설정하고 가르침을 보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편리하게 습문 송설(習問誦說)하는 것을 어린이들의 배움으로 삼아서 그들 자신으로 하여금 스스로 실천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그르게 여겼던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옛날 소학(小學)에서는 사람에게 쇄소(灑掃)1216) ·응대(應對)1217) ·진퇴(進退)하는 절차와 어버이를 사랑하고 어른을 공경하며 스승을 높이고 벗과 친하는 도리를 가르쳤던 것이니, 모두 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의 근본이 되는 것으로, 반드시 그것을 강(講)하게 하고 유치(幼稚)한 때에 익히게 하는 것은, 그 익힘이 지혜와 더불어 자라고 덕화(德化)가 마음과 더불어 이루어져서 마침내 어긋날 근심이 없어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삼가 보건대 세자(世子)께서는 영특한 자질이 어려서부터 드러나서 학문이 날로 성취되어가니, 이는 몽양(蒙養)1218) 의 시초요 작성(作聖)1219) 하는 기틀인 것입니다. 그러니 무릇 도와서 성취하는 것이면 마땅히 이르지 않는 것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신 등이 삼가 《예기(禮記)》에 기록된 것을 살펴보니, 세자를 가르치는 법이 갖추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문안(問安)·시선(視膳)1220) ·상약(嘗藥)1221) 등의 절목(節目)이 매우 자세한데 지금 우리 세자께서는 당초 책봉(冊封)을 받을 때에 바야흐로 나이가 어렸으므로 전하(殿下)께서는 고례(古禮)를 따라 적용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시어 일이 임시의 편의에 따라 나온 것이지마는, 지금 세자께서는 춘추(春秋)가 점점 장성해서 모든 기거 동작하는 것이 영리하여 성인(成人)과 같으니, 어찌 아주 어릴 때와 같이 하고 옛사람들의 도리를 기약하지 않겠습니까? 삼가 《소학(小學)》의 글을 상고해 보건대, 이르기를, ‘열 살이면 외부(外傅)1222) 에게 나아가서 조석(朝夕)으로 유의(幼儀)1223) 를 배운다.’고 하였는데, 이를 해석하는 자가 이르기를, ‘여기에 이르러서는 어른 섬기는 예(禮)를 힘쓸 만하다.’고 하였으니, 지금 세자께서는 그 시기로써도 알맞고 그 예의에 있어서도 옳은데, 아직도 한갓 구두와 훈고만을 일삼고 몸소 행하고 마음으로 얻는 것을 임무로 삼지 아니하는 것이 옳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세자로 하여금 옛날 경전(經典)의 남긴 예(禮)를 본받아 법을 삼게 하여 금후로는 반드시 문침(問寢)1224) 과 시선(視膳)의 예(禮)를 행하여 성효(誠孝)하는 마음을 펴게 하도록 허락하소서.
신 등이 또 살펴보니, 《예기(禮記)》에 이르기를, ‘태부(太傅)와 소부(少傅)를 세워서 이를 기르는 것은 부자(父子)와 군신(君臣)의 도리를 알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태부는 앞에 있고 소부는 뒤에 있어서, 들어가서는 보호하는 이가 있고 나가서는 스승이 있는 것이며, 이렇기 때문에 가르쳐서 깨우치게 되고 덕(德)이 이루어지는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지금 우리 조정(朝廷)에서 세자의 사부(師傅)를 두는 것은 곧 그 남긴 뜻이고, 매달 망일(望日)에 회강(會講)하는 것도 이미 좋은 규례(規例)를 이룬 것입니다. 그런데 근래에 동궁(東宮)이 아직 창건되지 못함으로 인하여 강당(講堂)이 좁고 낮아서 그 예(禮)가 드디어 폐이(廢弛)1225) 해지는 데 이르렀으니, 반드시 제작(制作)이 갖추어지기를 기다려서 행해야 하겠습니까? 그렇다면 바로 이른바 ‘명일(明日)을 잠시 기다리는 것은 곧 옳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태자(太子)가 곧 태어나면 바로 예를 거행하고, 해제(孩提)1226) 에서부터 무엇을 조금 알면 삼공(三公)1227) 과 삼소(三少)1228) 가 인(仁)·효(孝)·예(禮)를 밝혀 도(道)로써 익히게 하였는데 더구나 지금 세자는 바야흐로 외부(外傅)에 나아갈 나이이며, 또 해제에 비교할 것이 아닌 것이겠습니까? 마땅히 격언(格言)과 지론(至論)으로써 날마다 앞에 펴서 귀와 배에 가득차게 해야 할 것이니, 그렇게 하기를 오래 하면 저절로 익히는 것을 편안하게 여기고 타고난 것처럼 해야 할 시기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특별히 국조(國朝)의 구전(舊典)1229) 을 상고하게 하여 금후로는 초하루와 보름에는 매양 회강(會講)의 의식을 행하고, 더욱 보익(輔翼)의 방도를 돈독하게 하면 응대(應對)하고 진퇴(進退)하는 절차를 스승을 섬기고 벗과 교제하는 사이에서 모두 얻을 것이고 스승을 높이고 벗을 친히 하는 도리도 얻을 것입니다.
신 등이 또 살펴보니, 《예기(禮記)》에 이르기를, ‘한 가지 일을 행하면 세 가지 착한 일을 다 얻는 자는 오직 세자뿐이니, 그것은 배우는 데 있어서 서치(序齒)로 서로 사양하는 것을 이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자가 배우면서 서치로 사양을 하면 국인(國人)이 보고 말하기를, 「장차 우리들의 임금이 되실 것인데, 우리들과 서치로써 사양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하면, 말하기를, 「아버지가 계시면 예가 그러한 것이며, 그러고서야 여러 사람이 부자(父子)의 도리를 알게 되는 것이다.」라고 하며, 그 두 번째로 이르기를, 「장차 우리들의 임금이 되실 분인데, 우리들과 서치로써 사양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하면, 말하기를, 「임금이 계시면 예가 그러하며, 그러고서야 여러 사람이 군신(君臣)의 의리를 나타내는 것이다.」라고 할 것이고, 그 세 번째로 이르기를, 「장차 우리들의 임금이 되실 분인데, 우리들과 서치로써 사양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하면, 말하기를, 「어른을 어른으로 섬기는 것이며, 그러고서야 여러 사람이 장유(長幼)의 절도를 알게 되는 것이다.」라고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에게는 자식이 되고 임금에게는 신하라고 이르는 것이며, 자식과 신하의 위치에 있으면서 임금을 높이고 어버지를 친하게 하는 소이(所以)인 것이다. 이렇기 때문에 아버지와 자식이 되는 것을 배우고 임금과 신하가 되는 것을 배우며 어른과 아이가 되는 것을 배우는 것이니, 부자(父子)·군신(君臣)·장유(長幼)의 도리가 조화를 이루어야 나라가 다스려지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이는 예나 지금이나 성제(盛帝)와 명왕(明王)의 가르침입니다. 세자는 반드시 이것으로써 우선을 삼아야 할 것이니, 유계(劉洎)가 이른바 ‘〈세자가〉 배움에 있어서 서치로써 세 가지를 사양하는데, 훌륭한 임금은 이것으로 말미암아 천하를 잘 다스린다.’는 것이 이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아조(我朝)의 열성(列聖)께서는 먼저 이 도리를 연유하여 이미 구전(舊典)이 있습니다.
그리고 8세에 소학에 들어간다는 설(說)로써 고찰해보면, 세자의 입학(入學)을 일찍이 의논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특별히 조종(祖宗)의 성헌(成憲)을 따르시어 이것을 거행(擧行)하면, 이른바 부자(父子)·군신(君臣)·장유(長幼)의 도리도 이로 인하여 얻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모두 몸소 행해야 할 큰 시초이니, 어찌 지금의 급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주역(周易)》에 이르기를, ‘어린이를 바르게 기르는 것은 훌륭하게 만드는 효과이다.’라 하였고, 공자(孔子)는 이르기를, ‘어려서 이루어지는 것은 천성(天性)과 같고 습관(習慣)은 자연(自然)과 같다.’고 하였으니, 비록 타고난 자질이 아름답다고 하더라도 기르지 아니하고서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있지 않은 것입니다. 신 등은 아마도 몸소 행하는 실제를 힘쓰지 않고서 그럭저럭 세월(歲月)을 보내다가 춘추(春秋)가 이미 장성한 데 이르면 비록 하루에 만언(萬言)을 외운다고 하더라도 마침내는 구이지학(口耳之學)1230) 이 되는 것을 면치 못할 것이니, 두려워할 만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니, 승정원(承政院)에 머물러 두라고 명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8책 186권 6장 B면【국편영인본】 11책 82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왕실-경연(經筵) / 출판-서책(書冊) / 윤리-강상(綱常) / 사상-유학(儒學)
- [註 1215] 비원(備員) : 정원을 채움.
- [註 1216] 쇄소(灑掃) : 청소.
- [註 1217] 응대(應對) : 접대.
- [註 1218] 몽양(蒙養) : 어린이를 교육하는 일.
- [註 1219] 작성(作聖) : 훌륭하게 됨.
- [註 1220] 시선(視膳) : 왕세자(王世子)가 아침저녁으로 임금이 드실 수라상을 몸소 돌보던 일.
- [註 1221] 상약(嘗藥) : 어버이가 먹을 약(藥)을 먼저 맛보는 것. 세자(世子)의 해야 할 일의 하나임.
- [註 1222] 외부(外傅) : 가정 밖에 있어서 가르치는 스승.
- [註 1223] 유의(幼儀) : 어린아이의 예절.
- [註 1224] 문침(問寢) : 부왕의 침소에 문안함.
- [註 1225] 폐이(廢弛) : 피폐하고 해이해짐.
- [註 1226] 해제(孩提) : 2, 3세의 어린아이.
- [註 1227] 삼공(三公) : 태사(太師)·태부(太傅)·태보(太保).
- [註 1228] 삼소(三少) : 소사(少師)·소부(少傅)·소보(少保).
- [註 1229] 구전(舊典) : 옛날부터 내려오는 제도와 문물.
- [註 1230] 구이지학(口耳之學) : 들은 것을 그대로 남에게 알릴 뿐 조금도 자기에게는 이익이 없는 학문.
원문
○己丑/世子侍講院輔德金悌臣等上言曰:
臣等備員書筵, 職在輔導, 而術學淺薄, 曾無一毫裨益, 唯以句讀訓誥爲課, 退而思之, 不勝隕越。 臣等竊惟爲學之道, 不貴口耳, 而貴躬行。 自幼及長, 蓋莫不然, 惟其年有少長之殊, 故學有大小之別。 蓋古之人審度其力之所及而設方示敎耳, 非便以習問誦說爲幼稚之學而不使其身自履之也。 是以古者小學, 敎人以灑掃應對進退之節、愛親敬長隆師親友之道, 皆所以爲修身齊家治國平天下之本; 而必使其講而習之於幼稚之時者, 欲習與智長、化與心成, 而終無(杆)〔扞〕 格之患也。 伏覩世子英資幼彰, 學問日就, 此正蒙養之初、作聖之機。 凡所以衛翼而成就之者, 宜無所不至焉。 臣等謹按記禮者, 具載敎世子之法, 若其問安、視膳、嘗藥等事節目甚詳。 而今我世子當初膺冊之時, 方在弱齡, 殿下不許循用古禮, 事出權宜。 而今世子春秋漸長, 凡所靜動, 嶷然如成人, 豈可自同幼少之時而不期以古人之道乎? 謹以《小學》之書攷之, 則有曰: "十年出就外傅, 朝夕學幼儀。" 釋之者曰: "至此可責事長之禮。" 今世子以其時則可矣, 攷其禮則然矣, 而猶且徒以句讀訓誥爲事, 不以躬行心得爲務, 可乎? 伏望殿下許令世子式遵古經之遺禮, 自今以後必行問寢、視膳之禮, 以展誠孝之心。 臣等又按《記》曰: "立太傅、少傅以養之, 欲其知父子君臣之道也。 太傅在前, 少傅在後, 入則有保, 出則有師, 是以敎諭而德成也。" 今我朝之置世子師傅, 卽其遺意也。 月望會講, 已成良規, 而近因東宮未創, 講堂狹隘, 其禮遂至廢弛, 其必待制作之備而行之歟? 則正所謂 ‘姑待明日’, 便不可者也。 古者太子乃生, 姑擧以禮; 孩提有識, 三公三少, 明仁孝禮, 以道習之。 矧今世子方就外傅之年, 又非孩提之比, 當以格言至論, 日陳於前, 使盈耳充腹, 久自安習, 若固有之之時也。 伏望殿下特令攷求國朝之舊典, 自今以後朔望, 每行會講之儀, 益敦輔翼之方, 則應對進退之節, 得盡於師友之際, 而隆師親友之道得矣。 臣等又按《記》曰: "行一物而三善皆得者, 唯世子而已, 其齒於學之謂也。 故世子齒於學, 國人觀之曰: ‘將君我而與我齒讓何也?’ 曰有父在則禮然, 然而衆知父子之道矣。 其二曰: ‘將君我而與我齒讓何也?’ 有君在則禮然, 然而衆著君臣之義也。 其三曰: ‘將君我而與我齒讓何也?’ 曰長長也, 然而衆知長幼之節矣。 故父在斯爲子, 君在斯謂之臣。 居子與臣之節, 所以爲尊君親親也, 故學之爲父子焉, 學之爲君臣焉, 學之爲長幼焉。 父子、君臣、長幼之道得而國治。" 此古今盛帝明王之敎世子必以此爲先, 而劉洎所謂 "齒學三讓, 元良由是作貞"者, 此也。 是以我朝列聖, 率由是道, 已有舊典。 以八歲入小學之說考之, 則世子之入學, 不可不早議也。 伏望殿下特遵祖宗之成憲, 以此擧行, 則所謂父子、君臣、長幼之道亦因是而得矣。 此皆躬行之大端, 豈非當今之急務乎? 《易》曰: "蒙以養正, 聖功也。" 孔子曰: "少成若天性, 習慣如自然。" 蓋雖天質之美, 未有不養而能自成者也。 臣等竊恐不務躬行之實而因循歲月, 至於春秋旣壯, 則雖日誦萬言終亦未免爲口耳之學矣, 可不懼哉?
命留政院。
- 【태백산사고본】 28책 186권 6장 B면【국편영인본】 11책 82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왕실-경연(經筵) / 출판-서책(書冊) / 윤리-강상(綱常) / 사상-유학(儒學)
성종 16년 (1485) 12월 12일
성종실록186권, 성종 16년 12월 12일 己丑 1/1 기사 / 1485년 명 성화(成化) 21년
김제신 등이 세자의 문침과 시선의 예를 허락하도록 상언하니 머물러 두라고 명하다
국역
세자 시강원 보덕(世子侍講院輔德) 김제신(金悌臣) 등이 상언(上言)하기를,
"신(臣) 등이 서연(書筵)에 비원(備員)1215) 되어 직분이 보도(輔導)하는 데 있으나, 학술(學術)이 천박(淺薄)하여 일찍이 조그마한 보탬도 없이 오직 구두(句讀)와 훈고(訓詁)로만 과정(課程)을 삼았으니, 물러나 생각해 보건대, 실패했다는 생각을 금하지 못하겠습니다. 신 등이 그윽이 생각해 보니, 학문을 하는 길은 입으로 말하고 귀로 듣는 것만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고 몸소 실행하는 것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니, 어릴 때부터 어른이 될 때까지 대개 그렇지 아니함이 없습니다. 그리고 나이에 있어서 젊은이와 어른이 다르기 때문에 학문하는 데 있어서 대(大)·소(小)의 구별이 있는 것입니다. 대개 옛날 사람들은 그 힘의 미칠 바를 잘 살피고 헤아려서 방법을 설정하고 가르침을 보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편리하게 습문 송설(習問誦說)하는 것을 어린이들의 배움으로 삼아서 그들 자신으로 하여금 스스로 실천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그르게 여겼던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옛날 소학(小學)에서는 사람에게 쇄소(灑掃)1216) ·응대(應對)1217) ·진퇴(進退)하는 절차와 어버이를 사랑하고 어른을 공경하며 스승을 높이고 벗과 친하는 도리를 가르쳤던 것이니, 모두 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의 근본이 되는 것으로, 반드시 그것을 강(講)하게 하고 유치(幼稚)한 때에 익히게 하는 것은, 그 익힘이 지혜와 더불어 자라고 덕화(德化)가 마음과 더불어 이루어져서 마침내 어긋날 근심이 없어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삼가 보건대 세자(世子)께서는 영특한 자질이 어려서부터 드러나서 학문이 날로 성취되어가니, 이는 몽양(蒙養)1218) 의 시초요 작성(作聖)1219) 하는 기틀인 것입니다. 그러니 무릇 도와서 성취하는 것이면 마땅히 이르지 않는 것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신 등이 삼가 《예기(禮記)》에 기록된 것을 살펴보니, 세자를 가르치는 법이 갖추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문안(問安)·시선(視膳)1220) ·상약(嘗藥)1221) 등의 절목(節目)이 매우 자세한데 지금 우리 세자께서는 당초 책봉(冊封)을 받을 때에 바야흐로 나이가 어렸으므로 전하(殿下)께서는 고례(古禮)를 따라 적용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시어 일이 임시의 편의에 따라 나온 것이지마는, 지금 세자께서는 춘추(春秋)가 점점 장성해서 모든 기거 동작하는 것이 영리하여 성인(成人)과 같으니, 어찌 아주 어릴 때와 같이 하고 옛사람들의 도리를 기약하지 않겠습니까? 삼가 《소학(小學)》의 글을 상고해 보건대, 이르기를, ‘열 살이면 외부(外傅)1222) 에게 나아가서 조석(朝夕)으로 유의(幼儀)1223) 를 배운다.’고 하였는데, 이를 해석하는 자가 이르기를, ‘여기에 이르러서는 어른 섬기는 예(禮)를 힘쓸 만하다.’고 하였으니, 지금 세자께서는 그 시기로써도 알맞고 그 예의에 있어서도 옳은데, 아직도 한갓 구두와 훈고만을 일삼고 몸소 행하고 마음으로 얻는 것을 임무로 삼지 아니하는 것이 옳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세자로 하여금 옛날 경전(經典)의 남긴 예(禮)를 본받아 법을 삼게 하여 금후로는 반드시 문침(問寢)1224) 과 시선(視膳)의 예(禮)를 행하여 성효(誠孝)하는 마음을 펴게 하도록 허락하소서.
신 등이 또 살펴보니, 《예기(禮記)》에 이르기를, ‘태부(太傅)와 소부(少傅)를 세워서 이를 기르는 것은 부자(父子)와 군신(君臣)의 도리를 알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태부는 앞에 있고 소부는 뒤에 있어서, 들어가서는 보호하는 이가 있고 나가서는 스승이 있는 것이며, 이렇기 때문에 가르쳐서 깨우치게 되고 덕(德)이 이루어지는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지금 우리 조정(朝廷)에서 세자의 사부(師傅)를 두는 것은 곧 그 남긴 뜻이고, 매달 망일(望日)에 회강(會講)하는 것도 이미 좋은 규례(規例)를 이룬 것입니다. 그런데 근래에 동궁(東宮)이 아직 창건되지 못함으로 인하여 강당(講堂)이 좁고 낮아서 그 예(禮)가 드디어 폐이(廢弛)1225) 해지는 데 이르렀으니, 반드시 제작(制作)이 갖추어지기를 기다려서 행해야 하겠습니까? 그렇다면 바로 이른바 ‘명일(明日)을 잠시 기다리는 것은 곧 옳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태자(太子)가 곧 태어나면 바로 예를 거행하고, 해제(孩提)1226) 에서부터 무엇을 조금 알면 삼공(三公)1227) 과 삼소(三少)1228) 가 인(仁)·효(孝)·예(禮)를 밝혀 도(道)로써 익히게 하였는데 더구나 지금 세자는 바야흐로 외부(外傅)에 나아갈 나이이며, 또 해제에 비교할 것이 아닌 것이겠습니까? 마땅히 격언(格言)과 지론(至論)으로써 날마다 앞에 펴서 귀와 배에 가득차게 해야 할 것이니, 그렇게 하기를 오래 하면 저절로 익히는 것을 편안하게 여기고 타고난 것처럼 해야 할 시기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특별히 국조(國朝)의 구전(舊典)1229) 을 상고하게 하여 금후로는 초하루와 보름에는 매양 회강(會講)의 의식을 행하고, 더욱 보익(輔翼)의 방도를 돈독하게 하면 응대(應對)하고 진퇴(進退)하는 절차를 스승을 섬기고 벗과 교제하는 사이에서 모두 얻을 것이고 스승을 높이고 벗을 친히 하는 도리도 얻을 것입니다.
신 등이 또 살펴보니, 《예기(禮記)》에 이르기를, ‘한 가지 일을 행하면 세 가지 착한 일을 다 얻는 자는 오직 세자뿐이니, 그것은 배우는 데 있어서 서치(序齒)로 서로 사양하는 것을 이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자가 배우면서 서치로 사양을 하면 국인(國人)이 보고 말하기를, 「장차 우리들의 임금이 되실 것인데, 우리들과 서치로써 사양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하면, 말하기를, 「아버지가 계시면 예가 그러한 것이며, 그러고서야 여러 사람이 부자(父子)의 도리를 알게 되는 것이다.」라고 하며, 그 두 번째로 이르기를, 「장차 우리들의 임금이 되실 분인데, 우리들과 서치로써 사양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하면, 말하기를, 「임금이 계시면 예가 그러하며, 그러고서야 여러 사람이 군신(君臣)의 의리를 나타내는 것이다.」라고 할 것이고, 그 세 번째로 이르기를, 「장차 우리들의 임금이 되실 분인데, 우리들과 서치로써 사양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하면, 말하기를, 「어른을 어른으로 섬기는 것이며, 그러고서야 여러 사람이 장유(長幼)의 절도를 알게 되는 것이다.」라고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에게는 자식이 되고 임금에게는 신하라고 이르는 것이며, 자식과 신하의 위치에 있으면서 임금을 높이고 어버지를 친하게 하는 소이(所以)인 것이다. 이렇기 때문에 아버지와 자식이 되는 것을 배우고 임금과 신하가 되는 것을 배우며 어른과 아이가 되는 것을 배우는 것이니, 부자(父子)·군신(君臣)·장유(長幼)의 도리가 조화를 이루어야 나라가 다스려지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이는 예나 지금이나 성제(盛帝)와 명왕(明王)의 가르침입니다. 세자는 반드시 이것으로써 우선을 삼아야 할 것이니, 유계(劉洎)가 이른바 ‘〈세자가〉 배움에 있어서 서치로써 세 가지를 사양하는데, 훌륭한 임금은 이것으로 말미암아 천하를 잘 다스린다.’는 것이 이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아조(我朝)의 열성(列聖)께서는 먼저 이 도리를 연유하여 이미 구전(舊典)이 있습니다.
그리고 8세에 소학에 들어간다는 설(說)로써 고찰해보면, 세자의 입학(入學)을 일찍이 의논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특별히 조종(祖宗)의 성헌(成憲)을 따르시어 이것을 거행(擧行)하면, 이른바 부자(父子)·군신(君臣)·장유(長幼)의 도리도 이로 인하여 얻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모두 몸소 행해야 할 큰 시초이니, 어찌 지금의 급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주역(周易)》에 이르기를, ‘어린이를 바르게 기르는 것은 훌륭하게 만드는 효과이다.’라 하였고, 공자(孔子)는 이르기를, ‘어려서 이루어지는 것은 천성(天性)과 같고 습관(習慣)은 자연(自然)과 같다.’고 하였으니, 비록 타고난 자질이 아름답다고 하더라도 기르지 아니하고서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있지 않은 것입니다. 신 등은 아마도 몸소 행하는 실제를 힘쓰지 않고서 그럭저럭 세월(歲月)을 보내다가 춘추(春秋)가 이미 장성한 데 이르면 비록 하루에 만언(萬言)을 외운다고 하더라도 마침내는 구이지학(口耳之學)1230) 이 되는 것을 면치 못할 것이니, 두려워할 만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니, 승정원(承政院)에 머물러 두라고 명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8책 186권 6장 B면【국편영인본】 11책 82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왕실-경연(經筵) / 출판-서책(書冊) / 윤리-강상(綱常) / 사상-유학(儒學)
- [註 1215] 비원(備員) : 정원을 채움.
- [註 1216] 쇄소(灑掃) : 청소.
- [註 1217] 응대(應對) : 접대.
- [註 1218] 몽양(蒙養) : 어린이를 교육하는 일.
- [註 1219] 작성(作聖) : 훌륭하게 됨.
- [註 1220] 시선(視膳) : 왕세자(王世子)가 아침저녁으로 임금이 드실 수라상을 몸소 돌보던 일.
- [註 1221] 상약(嘗藥) : 어버이가 먹을 약(藥)을 먼저 맛보는 것. 세자(世子)의 해야 할 일의 하나임.
- [註 1222] 외부(外傅) : 가정 밖에 있어서 가르치는 스승.
- [註 1223] 유의(幼儀) : 어린아이의 예절.
- [註 1224] 문침(問寢) : 부왕의 침소에 문안함.
- [註 1225] 폐이(廢弛) : 피폐하고 해이해짐.
- [註 1226] 해제(孩提) : 2, 3세의 어린아이.
- [註 1227] 삼공(三公) : 태사(太師)·태부(太傅)·태보(太保).
- [註 1228] 삼소(三少) : 소사(少師)·소부(少傅)·소보(少保).
- [註 1229] 구전(舊典) : 옛날부터 내려오는 제도와 문물.
- [註 1230] 구이지학(口耳之學) : 들은 것을 그대로 남에게 알릴 뿐 조금도 자기에게는 이익이 없는 학문.
원문
○己丑/世子侍講院輔德金悌臣等上言曰:
臣等備員書筵, 職在輔導, 而術學淺薄, 曾無一毫裨益, 唯以句讀訓誥爲課, 退而思之, 不勝隕越。 臣等竊惟爲學之道, 不貴口耳, 而貴躬行。 自幼及長, 蓋莫不然, 惟其年有少長之殊, 故學有大小之別。 蓋古之人審度其力之所及而設方示敎耳, 非便以習問誦說爲幼稚之學而不使其身自履之也。 是以古者小學, 敎人以灑掃應對進退之節、愛親敬長隆師親友之道, 皆所以爲修身齊家治國平天下之本; 而必使其講而習之於幼稚之時者, 欲習與智長、化與心成, 而終無(杆)〔扞〕 格之患也。 伏覩世子英資幼彰, 學問日就, 此正蒙養之初、作聖之機。 凡所以衛翼而成就之者, 宜無所不至焉。 臣等謹按記禮者, 具載敎世子之法, 若其問安、視膳、嘗藥等事節目甚詳。 而今我世子當初膺冊之時, 方在弱齡, 殿下不許循用古禮, 事出權宜。 而今世子春秋漸長, 凡所靜動, 嶷然如成人, 豈可自同幼少之時而不期以古人之道乎? 謹以《小學》之書攷之, 則有曰: "十年出就外傅, 朝夕學幼儀。" 釋之者曰: "至此可責事長之禮。" 今世子以其時則可矣, 攷其禮則然矣, 而猶且徒以句讀訓誥爲事, 不以躬行心得爲務, 可乎? 伏望殿下許令世子式遵古經之遺禮, 自今以後必行問寢、視膳之禮, 以展誠孝之心。 臣等又按《記》曰: "立太傅、少傅以養之, 欲其知父子君臣之道也。 太傅在前, 少傅在後, 入則有保, 出則有師, 是以敎諭而德成也。" 今我朝之置世子師傅, 卽其遺意也。 月望會講, 已成良規, 而近因東宮未創, 講堂狹隘, 其禮遂至廢弛, 其必待制作之備而行之歟? 則正所謂 ‘姑待明日’, 便不可者也。 古者太子乃生, 姑擧以禮; 孩提有識, 三公三少, 明仁孝禮, 以道習之。 矧今世子方就外傅之年, 又非孩提之比, 當以格言至論, 日陳於前, 使盈耳充腹, 久自安習, 若固有之之時也。 伏望殿下特令攷求國朝之舊典, 自今以後朔望, 每行會講之儀, 益敦輔翼之方, 則應對進退之節, 得盡於師友之際, 而隆師親友之道得矣。 臣等又按《記》曰: "行一物而三善皆得者, 唯世子而已, 其齒於學之謂也。 故世子齒於學, 國人觀之曰: ‘將君我而與我齒讓何也?’ 曰有父在則禮然, 然而衆知父子之道矣。 其二曰: ‘將君我而與我齒讓何也?’ 有君在則禮然, 然而衆著君臣之義也。 其三曰: ‘將君我而與我齒讓何也?’ 曰長長也, 然而衆知長幼之節矣。 故父在斯爲子, 君在斯謂之臣。 居子與臣之節, 所以爲尊君親親也, 故學之爲父子焉, 學之爲君臣焉, 學之爲長幼焉。 父子、君臣、長幼之道得而國治。" 此古今盛帝明王之敎世子必以此爲先, 而劉洎所謂 "齒學三讓, 元良由是作貞"者, 此也。 是以我朝列聖, 率由是道, 已有舊典。 以八歲入小學之說考之, 則世子之入學, 不可不早議也。 伏望殿下特遵祖宗之成憲, 以此擧行, 則所謂父子、君臣、長幼之道亦因是而得矣。 此皆躬行之大端, 豈非當今之急務乎? 《易》曰: "蒙以養正, 聖功也。" 孔子曰: "少成若天性, 習慣如自然。" 蓋雖天質之美, 未有不養而能自成者也。 臣等竊恐不務躬行之實而因循歲月, 至於春秋旣壯, 則雖日誦萬言終亦未免爲口耳之學矣, 可不懼哉?
命留政院。
- 【태백산사고본】 28책 186권 6장 B면【국편영인본】 11책 82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왕실-경연(經筵) / 출판-서책(書冊) / 윤리-강상(綱常) / 사상-유학(儒學)
원본
성종 16년 (1485) 12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