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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172권, 성종 15년 11월 21일 甲辰 3/3 기사 / 1484년 명 성화(成化) 20년

급제 채수가 서감원의 상소와 자신과 무관함을 상소하여 대신들과 진위를 논의하다

국역

급제(及第) 채수(蔡壽)가 상서(上書)하기를,

"신은 초모(草茅)989) 의 가난한 선비로서 다행히 과거에 급제하여 조정에 친당(親黨)이 없었으나 특별히 천은(天恩)을 입어 외람되게 경연[經幄]에 참여하여 논사(論思)990) 에 참여함을 얻었고 후설(喉舌)991) 에 발탁되어 배치되었으며 헌장(憲長)992) 으로 뛰어 올려서 장려하여 권장하고, 분수에 맞지 아니한 것을 끌어 비유하여 혹은 강개(慷慨)하다고 일컬으시고 혹은 나라에 몸을 바친다고 일컬으시며, 또 옛사람인 고(皐)993) ·기(夔)994) ·요(姚)995) ·송(宋)996) 을 들어서 힘쓰게 하셨으니, 신이 명령을 듣고 황공하고 부끄러워 몸둘 곳이 없었습니다. 스스로 생각해 보면 재주가 가볍고 덕이 적어서 도우고 보탠 것이 없었으나, 홀로 헤아리건대 이미 언책(言責)997) 을 맡았으면 마땅히 숨김이 없이 말을 다하여야 하늘 같은 은혜를 조금이라도 보답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을 만나면 바로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지혜와 생각이 얕고 부족하여 말한 바가 그릇되고 망령스러워서 위로 천위(天威)를 저촉하였으니 죄가 헤아릴 수 없는데, 성상께서 다른 뜻이 없음을 살피시고 방치하여 두고 묻지 않으시므로, 신이 이에 대궐 뜰에서 슬피 울면서 재생(再生)의 은혜에 감격하였습니다. 신은 본래 집이 가난하여 돌아갈 곳이 없었는데, 신의 장인[妻父]이 함창(咸昌)에 살고 있었으므로 신이 가서 밥을 먹은 지 3년이 되었습니다. 여러 백성들과 함께 밭을 갈고 우물을 파며 살았는데, 어찌 뜻하였겠습니까? 신의 이성 사촌(異姓四寸) 동생 서감원(徐坎元)이 진언(陳言)을 통하여 국정(國政)을 비방하고 겸하여 신의 부자(父子)의 일을 말하여 비호(庇護)하는 뜻이 있는 것처럼 할 줄이야, 이는 바로 공적인 일에 사심(私心)을 개입시키는 사람이니 국법으로 엄하게 징계해야 할 것입니다. 다만 신이 서감원과 이미 가까운 친척이고 한 도(道)에 같이 살았으며, 또 신의 부자의 일을 말하였기 때문에, 성상께서는 신이 미리 알고 있음을 의심하시어, 명하여 신과 부동(符同)한 형상을 장신(杖訊)998) 하게 하셨는데, 신은 가슴을 치고 하늘에 부르짖으며 마음속의 것을 낱낱이 삼가 아래와 같이 진술하니, 삼가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천지와 부모 같으시니 애처롭게 여기시어 살펴 주소서.

신이 서감원과 비록 가까운 친척이라고는 하더라도 신은 서울에서 생장하였고 서감원은 대구(大丘)에서 생장하였으며, 또 나이가 같지 아니하기 때문에 본래 사귀어 친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신이 사는 함창과 서감원이 사는 대구와는 비록 한 도라고 하더라도 거리가 사흘 길인데, 신이 파직되어 돌아간 뒤로부터 서감원이 한 번도 신의 집에 오지 아니하였고 신도 서감원의 집에 한 번도 가지 아니하였습니다. 서감원이 형장(刑杖)을 이기지 못하여 혹시 거짓 자복하였을지라도 신의 집 문간의 방향이 어느쪽으로 있는 것과 산천 지형을 서감원이 마침내 말하지 못하였고, 서로 모여서 말한 절차를 서감원이 마침내 말하지 못하였으며, 신의 진언(陳言)하는 초고(草稿)와 서로 통한 소식을 서감원이 끝내 말하지 못하였습니다. 서감원이 만약 신의 집에 왔었다면 반드시 경유하여 묵은 곳이 있었을 것인데 함창 고을 사람이 누가 알지 못하겠습니까? 신이 만약 서감원의 집에 갔었다면 역시 경유하여 묵은 곳이 있었을 것인데 대구 고을 사람이 누가 알지 못하였겠습니까? 이것으로 추궁하여 실정을 밝혀 내면 성상께서 그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신이 언사(言事)의 그릇되고 망령된 것으로 거의 중한 죄를 얻게 되었으나 외람되게 성은(聖恩)을 입어 전리(田里)999) 에서 편히 사는데, 어찌하여 다시 어리석고 망령된 가까운 친척과 같이 의논하여 국정을 비방하고 신의 몸을 비호(庇護)하게 하여 희망을 두고자 하겠습니까? 신이 비록 지극히 어리석을 지라도 이것은 하지 아니합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성상께서 가엾이 여겨서 살피소서. 신의 아비는 나이 장차 70으로, 늙어 병이 잇따릅니다. 이제 조정의 공론으로 전원(田園)에 폐(廢)해 있게 하니 분수에 달게 여기는 바인데, 어찌 초모(草茅)의 한 미치광이 선비의 말로써 고쳐 바꿀 수 있겠습니까? 신이 비록 무상(無狀) 할지라도 사세(事勢)를 조금 아는데 어찌 광망(狂妄)한 가까운 친척으로 하여금 글을 올려 영구(營救)1000) 하게 하여 희망하는 바가 있겠습니까? 신이 비록 무식할지라도 이것은 하지 아니합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가엾이 여겨서 살피소서. 예전 소자첨(蘇子瞻)1001) 이 죄를 얻어 쫓겨나자 친구가 상소하여 구(救)하기를 논하려고 하다가 실행하지 못하였는데, 소자첨이 뒤에 그 소초(疏草)에 칭찬하고 비호(庇護)하는 말이 있음을 보고 소자첨이 혀를 빼물고 한참 있다가 거두며 말하기를, ‘이 글을 올렸으면 소식(蘇軾)은 반드시 죽었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예로부터 신하가 죄를 지었는데 밑에서 구(救)하기를 논하는 자가 있으면 다만 임금의 뜻을 격(激)하게 하기 때문에 소자첨이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신이 경사(經史)를 대강 알고 사리(事理)를 조금 아는데 어찌 이런 뜻을 알지 못하겠습니까? 친구도 오히려 구제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가까운 친척으로 하여금 국정을 비방하고 신의 부자(父子)를 비호(庇護)하게 하여 희망을 가지려고 하겠습니까? 신이 비록 어리석고 망령스러울지라도 이는 하지 아니합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성상께서 가엾이 여겨서 살피소서. 세조조(世祖朝)에 송희헌(宋希獻)이란 자가 있어 상서(上書)로 인하여 탁용(擢用)되었기 때문에, 그 후 유생(儒生)이 잇따라 상서하여 망령되게 국정을 논의하는 것은 모두 자기가 벼슬에 오르기를 중개하기 위한 꾀인데, 어찌 국가를 위하는 일이겠습니까? 신이 항상 그것을 미워하여 유자(儒者)가 써야 할 마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의 상서도 오히려 미워하는데 더구나 가까운 친척에게 권하겠으며, 더구나 신의 부자(父子)에 관계되는 일이겠으며, 더구나 조정 정사를 비방하게 하겠습니까? 신이 비록 어리석고 망령될지라도 이는 하지 아니합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가엾이 여겨 살피소서. 옛 신하는 비록 폐해 버림을 당하였을지라도 차마 임금을 잊지 못하기 때문에 굴원(屈原)1002) 은 궁궐을 슬프게 바라보았고 두보(杜甫)1003) 는 종남산(終南山)1004) 을 오히려 그리워 하였는데, 신은 10년 동안 시종(侍從)하면서 날마다 천안(天顔)을 뵙다가 하루아침에 서울을 떠나 남쪽 지방에 유락(流落)하여 있으니, 대궐을 그리워하는 심정이 어찌 다함이 있겠습니까? 폐기하여 버려두는 것은 성상께 있고 궁하고 통함은 천명(天命)에 있는데, 어찌 어리석고 망령된 가까운 친척으로 하여금 국정을 비방하고 신의 부자를 비호(庇護)하게 하여 희망을 가지려고 하겠습니까? 신이 비록 무상(無狀) 할지라도 이는 하지 아니합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성상께서 가엾이 여겨서 살피소서.

신의 마음은 해와 별처럼 밝은데 성명(聖明)한 세상에 밝게 드러내지 못하면 신이 원통함을 머금고 땅에 묻히게 될 것이니,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할 것입니다. 신의 이 원통함은 천지 신명(天地神明)이 다 알고 조종(祖宗)의 영령(英靈)이 다 아시는데, 신이 만약 서감원(徐坎元)과 부동(符同)하여 감히 간사함을 품고 성상을 기망(欺罔)하였으면 천지 신명이 반드시 죽일 것이며 조종의 영령이 반드시 죽일 것인데, 신이 감히 속이겠습니까? 전일에 신정(申瀞)이 친히 간사한 죄를 범하고 또 글을 올려 스스로 변명하여 거듭 성상을 속이니, 성상께서 더욱 노여워하시어 마침내 중한 법에 처하셨습니다. 신이 일찍이 그 일을 눈으로 보았는데 어찌 감히 부동(符同)하는 일로써 거듭 성상을 속여서 큰 화(禍)를 더 불러 일으키겠습니까? 엎드려 바라건대 가엾이 여겨서 살피소서. 옛사람이 쇠[鐵]를 잃은 자가 있었는데 그 이웃 사람을 의심하여 아침에 그 사람을 보니 말하는 것이 쇠를 도둑질한 자와 같고 행동과 얼굴이 쇠를 훔친 자와 같았었습니다. 그런데 그 쇠를 다른 곳에서 찾은 뒤에 다시 그 사람을 보니 언어와 용모가 쇠를 훔친 자와 같지 아니하였습니다. 이는 무슨 까닭이겠습니까? 마음에 의심스러움이 있으면 일마다 의심스럽지 않은 것이 없다가 그 실정을 알아낸 뒤에야 풀어지는 것입니다. 신의 이 일은 또한 이와 같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성상께서 서감원을 나치(拿致)하여 신과 대변(對辨)하게 하고, 대신(大臣)으로 하여금 여러모로 물어서 그 실정을 끝까지 추궁하게 하면 성상의 의심스러움이 환하게 풀어질 것이며, 외로운 신에게 맺힌 원통함을 펼 수 있을 것입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천지나 부모와 같으시니 가엾이 여겨 살피소서. 신은 억울하여 통곡하는 지극한 마음을 금하지 못하겠습니다."

하였는데, 상소 끝에 어서(御書)로 쓰기를,

"지금 그대의 글에 나의 의심스러움이 조금 풀린다. 그러나 내가 전에 그대를 어떤 선비로 대접하였으며 그대도 나를 어떤 임금으로 섬겼는가? 맡기고 의심하지 아니한 것은 믿기 때문이고 뽑아 쓰기를 차례대로 하지 아니한 것은 현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대가 무슨 마음을 가지고 기환(奇患)을 빚어내어 무씨(武氏)의 주(周)나라를 다시 오늘날에 생기게 하는가?1005) 그리고 또 그대의 글을 보니, 그대가 소자첨(蘇子瞻)이 되면 나는 어떤 임금이 되며, 그대가 두보(杜甫)나 굴원(屈原)이 되면 나는 어떤 임금이 되겠는가 대저 선비[儒]로 이름하는 것이 하나만이 아니다. 유협자(游俠者)1006) 도 선비이고 문사자(文史者)1007) 도 선비이며 광달자(曠達者)1008) 도 선비이고 지수자(智數者)1009) 도 선비이며 장구자(章句者)1010) 도 선비이고 사공자(事功者)도 선비이며 도덕자(道德者)도 선비이다. 그대는 항상 어떤 선비로 자처하느냐?"

하였다. 인하여 승정원(承政院)에 전교하기를,

"이 뜻으로써 물어 보라."

하니, 승정원에서 아뢰기를,

"죄인의 예(例)로 뜰 밑에 잡아다가 국문(鞫問)해야 하겠습니까? 아니면 불러서 물어야 하겠습니까?"

하자, 전교하기를,

"불러서 물으라."

하였다. 채수(蔡壽)가 승정원에 와서 아뢰기를,

"신이 미천한 몸으로서 특별히 발탁하심을 받았으므로, 이미 성상을 만났으니 마땅히 그 포부를 다해야 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무릇 품은 바가 있으면 말을 다하지 아니한 것이 없었습니다. 지혜와 생각이 얕고 부족하여 그릇 헤아리고 망령되게 아뢰었으니 죄가 만 번 죽어 마땅한데, 성상의 은혜가 하늘과 같아서 오늘날 목숨을 보전함을 얻었습니다. 신이 굴원과 두보를 말한 것은 다만 신의 대궐을 그리워하는 심정을 말한 것뿐이니, 어찌 감히 두 신하에게 스스로 비하겠습니까? 신이 소자첨의 일을 말한 것은, 무릇 신하가 죄를 지으면 신하가 영구(營救)할 수 없는 것인데, 서감원의 비호(庇護)는 신이 진실로 무익함을 알기 때문에 신이 서감원과 부동(符同)하지 않았음을 밝히려고 한 것입니다. 어찌 감히 소자첨에게 스스로 비하겠습니까?"

하니, 어서(御書)로 이르기를,

"내가 물은 바는 이것만이 아닌데, 다만 굴원·소자첨을 가지고 대답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대가 만약 다시 조정에 있게 되면 마땅히 예전 어떤 신하를 본받겠는가?"

하자, 채수가 아뢰기를,

"신은 본래 우유(迂儒)1011) 인데 어떤 선비로 자처하겠습니까? 이러므로 감히 지적해 대답하지 못합니다. 다만 평생에 세운 뜻은, 옛 충신을 본받고자 할 뿐입니다. 다만 재주와 덕과 지혜가 없어서 일을 헤아리는 데에 그릇되어 마음과 일이 서로 어긋납니다."

하였다. 어서로 이르기를,

"이른바 옛 충신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이며, 이른바 일을 헤아리는 데 그릇되었다고 한 것은 어떤 일이며, 이른바 마음과 일이 어긋난다는 것은 어떤 계책인가?"

하니, 채수가 아뢰기를,

"옛 충신은 한 사람만이 아닙니다. 무릇 나라에 뜻을 둔 자는 모두 본받고자 합니다. 그리고 일을 헤아리는 데에 그릇되었다는 것은 신이 전일에 일을 망령되게 헤아리고 잘못 계달하였기 때문에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과 일이 어긋난다고 한 것은, 신의 마음은 나라에 충성하고자 하였지만 일을 생각하는 데에 그릇되었기 때문에 한 것입니다."

하였다. 어서로 이르기를,

"그대가 그릇되고 망령되게 생각했다고 하는 것이 정말인가? 그것이 정말이라면 그릇되고 망령되게 생각한 바의 뜻을 마땅히 말해야 할 것이다. "

하니, 채수가 글로 써서 아뢰기를,

"신이 한갓 옛 일만 알고 대체를 알지 못하여 망령되게 헤아리고 계달하였다가 상교(上敎)를 들은 뒤에 미쳐서 비로소 국가에 장차 화환(禍患)의 일이 있을 것을 알고 신이 황공하여 몸둘 바가 없었고, 중한 죄를 받기를 달게 여겼는데, 그 때에 특별히 천은(天恩)을 입어 불문(不問)에 붙이고 스스로 마음을 새롭게 하는 길을 열어 주시며 하교 하시기를, ‘무릇 사람이 그 허물을 아는 자가 적은데 그대가 허물을 잘 알기 때문에 놓아둔다.’고 하셨기에, 신이 명령을 듣고 통곡하며 다시 살리신 은혜를 감격해 하였으며, 이제까지 전일의 잘못을 생각하면서 아프게 스스로 뉘우치고 꾸짖을 뿐입니다."

하였는데, 어서로 이르기를,

"만약 옛일을 안다면, 어찌 내 말을 기다린 뒤에야 화환(禍患)의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았는가?"

하니, 채수가 글로 써서 아뢰기를,

"신이 망령되게 헤아리고 미혹(迷惑)하기 때문에 미처 헤아리지 못하였는데, 상교(上敎)를 들은 뒤에 미쳐서야 알았습니다."

하였다. 전교하기를,

"그대가 서감원과 부동(符同)하지 아니한 것은 내가 알았다. 다만 그대가 옛일을 안다면 어찌 내 말을 기다린 뒤에야 그것을 알았는가?"

하고, 인하여 음식을 대접하도록 명하니, 채수가 통곡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기를,

"신이 참으로 미욱하여 성상의 마음을 수고롭게 하였습니다."

하고, 또 글로 써서 아뢰기를,

"미욱한 소치로 미처 헤아리지 못하고 망령되게 생각하여 그릇되었습니다. 신이 만약 이같은 일이 화환(禍患)의 단서가 될 것을 헤아려 알았으면 신이 어찌 감히 하였겠습니까? 신이 여기에 미치지 못한 것은 그릇 헤아리고 망령되게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하였다. 어서(御書)로 이르기를,

"그대가 지금 생각하여 알았다면 그 화환의 얕고 깊음을 말할 수 있겠는가? 크면 어느 지경에 이르고 작으면 어느 지경에 이르겠는가?"

하니, 채수가 글로 써서 아뢰기를,

"신이 지금 생각하면 이같은 일의 화환이 깊고 큰 것을 어찌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신이 미욱하여 그 때에 모두 미처 추측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신의 망령되게 헤아린 잘못이었습니다."

하자, 어서(御書)로 이르기를,

"화(禍)의 큰 것은 이보다 지나친 것이 없고 그릇된 계책은 곧 나라를 어지럽게 만드는데, 그대의 뉘우치고 꾸짖는 것이 앞의 허물을 덮을 수 있겠는가? 충성과 아첨은 둘이 함께 존재할 수 없으며 또 크게 교묘한[巧] 것은 서투른[拙] 것과 같다는 것을 그대가 아느냐?"

하니, 채수가 글로 아뢰기를,

"이같은 큰 일을 신이 그 때 우혹(愚惑)하여 모두 미처 헤아리지 못하였으니 죄가 만 번 죽어 마땅한데, 특별히 천은(天恩)을 입어서 스스로 마음을 새롭게 하는 길을 열어 주시어 오늘날에 이르렀습니다. 신이 나라에 보답하려는 마음은 신명(神明)이 아는 바인데, 일을 헤아리면서 이와 같이 잘못하였기 때문에 지금까지 자신을 매우 호되게 꾸짖으며 두고두고 후회합니다."

하였는데, 전교하기를,

"알았다."

하고, 인하여 승정원(承政院)에 전교하기를,

"상소(上疏)와 문답한 글을 의정부(議政府)와 영돈녕(領敦寧) 이상에게 보여서 의논하게 하라."

하였다. 정창손(鄭昌孫)은 의논하기를,

"이제 채수의 상소의 뜻을 보건대, 서감원(徐坎元)과 부동(符同)하지 아니한 뜻이 매우 명백합니다. 채수는 재상이었는데 어찌 만들고 꾸며서 천총(天聰)을 속이겠습니까?"

하고, 한명회(韓明澮)·심회(沈澮)·서거정(徐居正)은 의논하기를,

"서감원의 추핵(推劾)이 끝난 뒤에 다시 의논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며, 윤필상(尹弼商)은 의논하기를,

"서감원의 상소는 비록 형적(形跡)의 혐의로움이 있더라도, 채수는 이름 있는 문신(文臣)으로서 정대(正大)함을 자처(自處)하는데 어찌 이처럼 부동할 이치가 있겠습니까?"

하고, 홍응(洪應)은 의논하기를,

"이제 채수의 상소와 어서(御書)의 문답을 보건대, 채수는 서감원과 더불어 서로 통하지 아니한 것이 저절로 명백할 뿐만 아니라, 채수는 이름이 있는 선비인데 만약 서감원에게 요구하여 살기를 구하였으면 어찌 채수라 하겠습니까?"

하며, 이극배(李克培)·윤호(尹壕)·한치례(韓致禮)는 의논하기를,

"이제 채수의 상소와 대답한 바로써 보건대, 서감원과 부동하지 아니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서감원을 추고(推考)한 계본(啓本)이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니, 아직 기다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고, 노사신(盧思愼)은 의논하기를,

"채수의 상소와 대답을 올린 말을 보건대, 서감원과 공모하지 아니한 것이 명백합니다. 그런데 이제 이로써 서감원을 형신(刑訊)하여 역사(逆詐)1012) 한 죄와 같이 하는 것은 아마도 사정(事情)을 잃을까 합니다."

하며, 허종(許琮)은 의논하기를,

"채수가 전일에 아뢴 잘못된 일을 이제 대답한 것으로 보건대, 마음에 진실로 스스로 뉘우치고 꾸짖은 것입니다. 채수와 서감원은 가까운 친척이고 한 도(道)에 같이 살고 있으므로 사정이 의심스러울 만하나, 채수는 오래 성조(聖朝)를 모시어 사체(事體)를 대강 아는 자인데 어찌 이같은 무상(無狀)한 일이 있겠습니까? 벌써 서감원을 추문(推問)하도록 명하셨으니, 추문을 마치고 아뢰는 것을 기다렸다가 처치(處置)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자, 전교하기를,

"서감원의 추고(推考)를 마치고 계문(啓聞)한 뒤에 다시 아뢰라."

하였다.

  • [註 989] 초모(草茅) : 재야(在野).
  • [註 990] 논사(論思) : 정치를 의논하고 생각함.
  • [註 991] 후설(喉舌) : 승지(承旨).
  • [註 992] 헌장(憲長) : 사헌부(司憲府)의 우두머리. 곧 대사헌(大司憲).
  • [註 993] 고(皐) : 순(舜)의 신하 고요(皐陶).
  • [註 994] 기(夔) : 순의 신하.
  • [註 995] 요(姚) : 당(唐)나라 현종(玄宗) 때의 현상(賢相) 요숭(姚崇).
  • [註 996] 송(宋) : 당나라 현종 때의 명신 송경(宋璟).
  • [註 997] 언책(言責) : 간관(諫官)의 책임.
  • [註 998] 장신(杖訊) : 곤장을 쳐서 신문함.
  • [註 999] 전리(田里) : 고향 마을.
  • [註 1000] 영구(營救) : 죄인을 구제해 냄.
  • [註 1001] 소자첨(蘇子瞻) : 송나라 신종(神宗) 때 문인(文人) 소식(蘇軾).
  • [註 1002] 굴원(屈原) : 춘추 전국 시대 초(楚)나라 문학가(文學家).
  • [註 1003] 두보(杜甫) : 당나라 때 시인.
  • [註 1004] 종남산(終南山) : 당나라 서울인 장안(長安) 근방에 있던 산 이름.
  • [註 1005] 무씨(武氏)의 주(周)나라를 다시 오늘날에 생기게 하는가? : 무씨(武氏)는 당(唐)나라 고종(高宗)의 황후(皇后)인 측천 무후(則天武后)로, 고종이 죽은 후에 당 황실(唐皇室)의 자손을 쫓아내어 죽이고, 자신이 여주(女主)가 되어 신성 황제(神聖皇帝)라 일컬었으며, 국호(國號)도 당(唐)을 없애고 주(周)라 하였으므로 ‘무씨의 주나라’라고 한 것인데, 이는 연산군(燕山君)의 생모(生母)인 폐비(廢妃) 윤씨(尹氏)를 측천 무후에다 비유한 말임.
  • [註 1006] 유협자(游俠者) : 사나이다운 기질이 있는 사람. 협객(俠客).
  • [註 1007] 문사자(文史者) : 시를 짓거나 사서(史書)를 읽는 사람.
  • [註 1008] 광달자(曠達者) : 마음이 넓고 활달한 사람.
  • [註 1009] 지수자(智數者) : 지혜롭고 계산에 능한 사람.
  • [註 1010] 장구자(章句者) : 경서(經書)의 장구를 해석하는 사람.
  • [註 1011] 우유(迂儒) : 세상 물정에 어두운 선비.
  • [註 1012] 역사(逆詐) :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 미리 남을 의심하여 자기를 속였다고 하는 것.

원문

○及第蔡壽上書曰:

臣草茅寒儒, 幸捷科第, 朝無親黨, 特蒙天(思)〔恩〕 , 濫與經幄, 獲參論思, 擢置喉舌, 超遷憲長, 誘掖奬勸, 引喩非分, 或稱慷慨, 或稱徇國, 又擧古人如皋、夔、姚、宋以勉勵之, 臣聞命慙惶, 措身無地。 自度才輕德薄, 無所裨益, 獨計以爲 ‘旣任言責, 則當盡言不諱, 庶可少報生成,’ 故遇事輒言。 而智慮淺短, 所言謬妄, 上觸天威, 罪在不測, 而聖上察其無情, 置之不問, 臣於時痛泣闕庭, 感激再生之恩。 臣素家貧, 無所於歸, 臣之妻父, 居於咸昌, 臣往就食, 三年于玆。 得與齊民, 共享耕鑿, 豈意臣異姓四寸弟徐坎元, 因陳言, 謗訕國政, 兼言臣父子事, 似有庇護之情? 此乃因公寓私之人, 國法所痛懲。 但臣與坎元, 旣是切族, 而同居一道, 又言臣父子事, 故聖上疑臣預知, 乃命杖訊與臣符同之狀。 臣拊心呼天, 歷歷肝膽, 謹陳如左。 伏惟聖上, 天地父母, 哀而察之。 臣與坎元, 雖切族, 而臣生長京城, 坎元生長大丘, 又年不相若, 故素不交親。 臣所居咸昌, 與坎允〔元〕 所居大丘, 雖云一道, 相距三日程, 自臣罷職下去後, 坎元一不來臣家, 臣亦一不歸坎元家。 坎元不勝刑杖, 雖或誣服, 臣家門戶向背、山川地勢, 坎元終不能言也, 其相會言語節次, 坎元終不能言也, 臣之陳言草(蒿)〔藁〕 、交通消息, 坎元終不能言也。 坎元若來臣家, 則必有經宿之處, 咸昌鄕人, 誰不知之? 臣若歸坎元家, 亦必有經宿之處, 大丘鄕人, 誰不知之? 以此窮推覈情, 則聖上可知其實矣。 臣以言事謬妄, 幾得重罪, 猥蒙聖恩, 安居田里, 何必更與愚妄切族同議, 使之訕謗國政, 而庇護臣身, 欲有希望乎? 臣雖至愚, 不爲此也。 伏惟聖上哀, 而察之。 臣父年將七十, 老病相仍。 今以朝廷公論, 廢處田園, 分所甘也, 豈可以草茅一狂儒之言, 有所更改乎? 臣雖無狀, 稍識事勢, 豈可使狂妄切族, 上書營救, 有所希望乎? 臣雖無識, 不爲此也。 伏惟聖上哀而察之。 昔蘇子贍得罪坐貶, 友人欲上疏論救, 而不果。 子瞻後見其疏草, 有稱譽庇護之言, 子瞻吐舌, 良久而收曰: "若呈此疏, 軾必死矣。" 自古人臣得罪, 下有論救者, 則祗激人主之意, 故子瞻云然。 臣粗知經史, 稍識事理, 豈不知此意乎? 友人猶不可營救, 況令臣切族, 訕謗國政, 而庇護臣父子, 欲有希望乎? 臣雖愚妄, 不爲此也。 伏惟聖上哀而察之。 世祖朝, 有宋希獻者, 因上書擢用, 故其後儒生, 相繼上書, 妄議國政者, 皆爲自己媒進之計, 豈爲國家事乎? 臣常惡之, 以爲: ‘非儒者用心也。’ 他人上書, 猶惡之, 況勸臣切族乎? 況干臣父子事乎? 況使訕謗朝政乎? 臣雖愚妄, 不爲此也。 伏惟聖上哀而察之。 古之人臣, 雖遭廢棄, 不忍忘君, 故屈原悵望修門, 杜甫尙戀終南, 臣十年侍從, 日覲龍顔, 一朝去國, 流落南荒, 戀闕之情, 豈有極乎? 但廢、置在於聖上, 窮、通付之天命, 豈可使愚妄切族, 訕謗國政, 而庇護臣父子, 欲有希望乎? 臣雖無狀, 不爲此也。 伏惟聖上哀而察之。 臣之此心, 皎如日星, 聖明之世, 不能曝白, 則臣含冤入地, 死不瞑目矣。 臣之此冤, 天地神明皆知之, 祖宗英靈皆知之。 臣若實與坎元符同, 而敢懷詐欺, 罔聖上者, 天地神明, 必殛之, 祖宗英靈, 必殛之, 臣敢誣哉? 前日申瀞, 身犯奸詐之罪, 而又上書自明, 重欺聖上, 聖上益怒, 終置重典。 臣嘗目覩其事, 豈敢以符同之事, 重欺聖上, 益招大禍乎? 臣雖愚妄, 亦知利害, 豈敢誣哉? 伏惟聖上哀而察之。 古人有失鐵者, 疑其隣人, 朝而視其人, 則言語竊鐵者也, 擧止容貌, 皆竊鐵者也。 及得鐵於他處, 然後更視其人, 則言語容貌, 皆非竊鐵者也。 何者? 心有所疑, 則事事無非可疑也, 及得情而後, 乃可釋也。 臣之此事, 亦類於此。 伏望, 聖上拿致坎元, 與臣對辨, 使大臣雜問, 窮極其情, 則聖上之疑洞釋, 而孤臣之冤結得伸矣。 伏惟聖上, 天地父母, 哀而察之。 臣無任抑鬱痛哭之至。

御書疏尾曰:

今爾之疏, 少釋予疑。 然予曩以爾爲何士待之, 爾亦以予爲何主, 而事之耶? 所以任之不疑者, 信也; 擢之不次者, 賢也。 而爾將何心釀成奇患, 使武氏之周, 復生於今日歟? 且以爾疏觀之, 爾爲子瞻, 我爲何主, 爾爲杜甫、屈原, 我爲何君? 夫儒之名者, 非一。 游俠者儒也, 文史者儒也, 曠達者儒也, 智數者儒也, 章句者儒也, 事功者儒也, 道德者儒也。 爾常以何儒, 自處耶?

仍傳于政院曰: "其以此意問之。" 政院啓曰: "以罪人例, 鞫之庭下乎? 抑召而問之乎?" 傳曰: "召而問之。" 蔡壽來政院書啓曰:

臣以賤品, 特蒙擢拔以謂: ‘旣逢聖上, 當盡其所蘊,’ 故凡有所懷, 無不盡言, 而智慮淺短, 錯斜妄陳, 罪當萬死, 聖恩如天, 得保今日。 臣言杜甫、屈原者, 只言臣戀闕之情耳, 豈敢以二臣自比乎? 臣言子瞻事者, 凡人臣作罪, 臣下不可營救, 坎元之庇護, 臣固知無益, 故臣欲明不與坎元符同耳, 豈敢以子瞻自比乎?

御書曰:

予所問者, 非特此也, 而但以屈原、子瞻爲對, 何也? 爾今若更立于朝, 當法古之何臣?

壽啓曰: "臣本迂儒, 以何儒自處? 是以不敢摘對。 但平生立志, 欲法古之忠臣而已, 但無才德智慮, 料事錯誤, 心與事違耳。" 御書曰:

所謂: "古之忠臣," 指誰? 所謂: "料事錯誤," 何事? 所謂: "心與事違," 何計?

壽啓曰: "古之忠臣非一, 臣觀史策, 凡有志於國者, 皆欲法之。 料事錯誤者, 臣前日慮事妄量, 錯誤啓達, 故云。 心與事違者, 臣心則欲忠於國, 而慮事誤錯, 故云。" 御書曰:

爾自以爲誤錯妄量者, 眞耶? 如其眞也, 則當言其所以誤錯妄量之意也。

壽書啓曰:

臣前日徒知古事, 不知大體, 妄量啓達, 及聞上敎, 然後始知國家將有禍患事, 臣惶恐無地, 甘伏重罪。 其時特蒙天恩, 置之不問, 以開自新之路。 敎云: "凡人知其過者, 鮮矣。 爾能知過, 故棄之。" 臣聞命痛哭, 感激再生之恩。 至今思前之非, 痛自悔責耳。

御書曰:

若知古事, 何待予言而後, 知其有禍患之事哉?

壽書啓曰:

臣妄量迷惑, 故未及計料, 及聞上敎, 然後知之。

傳曰: "爾不與坎元符同, 則予知之。 但爾知古事, 則豈待予言, 然後知之乎?" 仍命饋食, 壽哭泣流涕曰: "臣實迷惑, 勞動聖心。" 又書啓曰:

迷惑所致, 未及計料, 妄量錯誤。 臣若料知如此事爲禍患之端, 則臣何敢爾耶? 臣未及此, 所以錯料妄量也。

御書曰:

爾以今之知思之, 則其禍患之淺深, 猶可以言之乎? 大則至於何, 小則至於何?

壽書啓曰:

臣以今思之, 如此事禍患之深。 且大, 何可量乎? 而臣愚惑, 其時皆未及料, 此臣之量妄錯誤也。

御書曰:

禍之大者, 莫踰於此, 而錯誤之計, 乃成亂國。 爾之悔責, 可掩前過, 忠、侫不兩立, 且大巧若拙, 爾知之乎?

壽書啓曰:

如此大事, 臣其時愚惑, 皆未及料, 罪當萬死, 特蒙天恩, 以開自新之路, 以至今日。 臣報國之心, 神明所知, 而慮事錯誤如此, 故至今痛自刻責追悔。

傳曰: "知道。" 乃傳于政院曰: "上疏及問答之書, 示政府及領敦寧以上議之。" 鄭昌孫議: "今觀蔡壽疏意, 不與徐坎元符同之意, 至爲明白。 壽, 宰相, 豈造飾以欺天聰哉?" 韓明澮、沈澮、徐居正議: "徐坎元畢推, 後更議何如?" 尹弼商議: "徐坎元上疏, 雖有形跡之嫌, 然蔡壽有名文臣, 以正大自處, 安有如是符同之理乎?" 洪應議: "今觀蔡壽上書及御書問答, 壽但自明不與坎元相通爾。 蔡壽, 有名之士, 若要坎元求活, 豈蔡壽哉?" 李克培、尹壕、韓致禮議: "今以蔡壽上疏及所對觀之, 似不與坎元符同。 然坎元推考啓本, 時未到, 姑待之何如?" 盧思愼議: "觀蔡壽上疏及上對之辭, 不與坎元同謀明矣。 今以此刑訊坎元, 似類逆詐, 恐失事情。" 許琮議: "壽之前日所啓誤錯之事, 今觀所對, 於心實自悔責矣。 壽與坎元切親, 而同居一道, 情涉可疑。 然壽久侍聖朝, 粗知事體者, 豈有如此無狀之事乎? 旣命推坎元, 待畢推以啓, 處置何如?" 傳曰: "徐坎元畢推, 啓聞後更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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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172권, 성종 15년 11월 21일 甲辰 3/3 기사 / 1484년 명 성화(成化) 20년

급제 채수가 서감원의 상소와 자신과 무관함을 상소하여 대신들과 진위를 논의하다

국역

급제(及第) 채수(蔡壽)가 상서(上書)하기를,

"신은 초모(草茅)989) 의 가난한 선비로서 다행히 과거에 급제하여 조정에 친당(親黨)이 없었으나 특별히 천은(天恩)을 입어 외람되게 경연[經幄]에 참여하여 논사(論思)990) 에 참여함을 얻었고 후설(喉舌)991) 에 발탁되어 배치되었으며 헌장(憲長)992) 으로 뛰어 올려서 장려하여 권장하고, 분수에 맞지 아니한 것을 끌어 비유하여 혹은 강개(慷慨)하다고 일컬으시고 혹은 나라에 몸을 바친다고 일컬으시며, 또 옛사람인 고(皐)993) ·기(夔)994) ·요(姚)995) ·송(宋)996) 을 들어서 힘쓰게 하셨으니, 신이 명령을 듣고 황공하고 부끄러워 몸둘 곳이 없었습니다. 스스로 생각해 보면 재주가 가볍고 덕이 적어서 도우고 보탠 것이 없었으나, 홀로 헤아리건대 이미 언책(言責)997) 을 맡았으면 마땅히 숨김이 없이 말을 다하여야 하늘 같은 은혜를 조금이라도 보답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을 만나면 바로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지혜와 생각이 얕고 부족하여 말한 바가 그릇되고 망령스러워서 위로 천위(天威)를 저촉하였으니 죄가 헤아릴 수 없는데, 성상께서 다른 뜻이 없음을 살피시고 방치하여 두고 묻지 않으시므로, 신이 이에 대궐 뜰에서 슬피 울면서 재생(再生)의 은혜에 감격하였습니다. 신은 본래 집이 가난하여 돌아갈 곳이 없었는데, 신의 장인[妻父]이 함창(咸昌)에 살고 있었으므로 신이 가서 밥을 먹은 지 3년이 되었습니다. 여러 백성들과 함께 밭을 갈고 우물을 파며 살았는데, 어찌 뜻하였겠습니까? 신의 이성 사촌(異姓四寸) 동생 서감원(徐坎元)이 진언(陳言)을 통하여 국정(國政)을 비방하고 겸하여 신의 부자(父子)의 일을 말하여 비호(庇護)하는 뜻이 있는 것처럼 할 줄이야, 이는 바로 공적인 일에 사심(私心)을 개입시키는 사람이니 국법으로 엄하게 징계해야 할 것입니다. 다만 신이 서감원과 이미 가까운 친척이고 한 도(道)에 같이 살았으며, 또 신의 부자의 일을 말하였기 때문에, 성상께서는 신이 미리 알고 있음을 의심하시어, 명하여 신과 부동(符同)한 형상을 장신(杖訊)998) 하게 하셨는데, 신은 가슴을 치고 하늘에 부르짖으며 마음속의 것을 낱낱이 삼가 아래와 같이 진술하니, 삼가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천지와 부모 같으시니 애처롭게 여기시어 살펴 주소서.

신이 서감원과 비록 가까운 친척이라고는 하더라도 신은 서울에서 생장하였고 서감원은 대구(大丘)에서 생장하였으며, 또 나이가 같지 아니하기 때문에 본래 사귀어 친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신이 사는 함창과 서감원이 사는 대구와는 비록 한 도라고 하더라도 거리가 사흘 길인데, 신이 파직되어 돌아간 뒤로부터 서감원이 한 번도 신의 집에 오지 아니하였고 신도 서감원의 집에 한 번도 가지 아니하였습니다. 서감원이 형장(刑杖)을 이기지 못하여 혹시 거짓 자복하였을지라도 신의 집 문간의 방향이 어느쪽으로 있는 것과 산천 지형을 서감원이 마침내 말하지 못하였고, 서로 모여서 말한 절차를 서감원이 마침내 말하지 못하였으며, 신의 진언(陳言)하는 초고(草稿)와 서로 통한 소식을 서감원이 끝내 말하지 못하였습니다. 서감원이 만약 신의 집에 왔었다면 반드시 경유하여 묵은 곳이 있었을 것인데 함창 고을 사람이 누가 알지 못하겠습니까? 신이 만약 서감원의 집에 갔었다면 역시 경유하여 묵은 곳이 있었을 것인데 대구 고을 사람이 누가 알지 못하였겠습니까? 이것으로 추궁하여 실정을 밝혀 내면 성상께서 그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신이 언사(言事)의 그릇되고 망령된 것으로 거의 중한 죄를 얻게 되었으나 외람되게 성은(聖恩)을 입어 전리(田里)999) 에서 편히 사는데, 어찌하여 다시 어리석고 망령된 가까운 친척과 같이 의논하여 국정을 비방하고 신의 몸을 비호(庇護)하게 하여 희망을 두고자 하겠습니까? 신이 비록 지극히 어리석을 지라도 이것은 하지 아니합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성상께서 가엾이 여겨서 살피소서. 신의 아비는 나이 장차 70으로, 늙어 병이 잇따릅니다. 이제 조정의 공론으로 전원(田園)에 폐(廢)해 있게 하니 분수에 달게 여기는 바인데, 어찌 초모(草茅)의 한 미치광이 선비의 말로써 고쳐 바꿀 수 있겠습니까? 신이 비록 무상(無狀) 할지라도 사세(事勢)를 조금 아는데 어찌 광망(狂妄)한 가까운 친척으로 하여금 글을 올려 영구(營救)1000) 하게 하여 희망하는 바가 있겠습니까? 신이 비록 무식할지라도 이것은 하지 아니합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가엾이 여겨서 살피소서. 예전 소자첨(蘇子瞻)1001) 이 죄를 얻어 쫓겨나자 친구가 상소하여 구(救)하기를 논하려고 하다가 실행하지 못하였는데, 소자첨이 뒤에 그 소초(疏草)에 칭찬하고 비호(庇護)하는 말이 있음을 보고 소자첨이 혀를 빼물고 한참 있다가 거두며 말하기를, ‘이 글을 올렸으면 소식(蘇軾)은 반드시 죽었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예로부터 신하가 죄를 지었는데 밑에서 구(救)하기를 논하는 자가 있으면 다만 임금의 뜻을 격(激)하게 하기 때문에 소자첨이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신이 경사(經史)를 대강 알고 사리(事理)를 조금 아는데 어찌 이런 뜻을 알지 못하겠습니까? 친구도 오히려 구제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가까운 친척으로 하여금 국정을 비방하고 신의 부자(父子)를 비호(庇護)하게 하여 희망을 가지려고 하겠습니까? 신이 비록 어리석고 망령스러울지라도 이는 하지 아니합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성상께서 가엾이 여겨서 살피소서. 세조조(世祖朝)에 송희헌(宋希獻)이란 자가 있어 상서(上書)로 인하여 탁용(擢用)되었기 때문에, 그 후 유생(儒生)이 잇따라 상서하여 망령되게 국정을 논의하는 것은 모두 자기가 벼슬에 오르기를 중개하기 위한 꾀인데, 어찌 국가를 위하는 일이겠습니까? 신이 항상 그것을 미워하여 유자(儒者)가 써야 할 마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의 상서도 오히려 미워하는데 더구나 가까운 친척에게 권하겠으며, 더구나 신의 부자(父子)에 관계되는 일이겠으며, 더구나 조정 정사를 비방하게 하겠습니까? 신이 비록 어리석고 망령될지라도 이는 하지 아니합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가엾이 여겨 살피소서. 옛 신하는 비록 폐해 버림을 당하였을지라도 차마 임금을 잊지 못하기 때문에 굴원(屈原)1002) 은 궁궐을 슬프게 바라보았고 두보(杜甫)1003) 는 종남산(終南山)1004) 을 오히려 그리워 하였는데, 신은 10년 동안 시종(侍從)하면서 날마다 천안(天顔)을 뵙다가 하루아침에 서울을 떠나 남쪽 지방에 유락(流落)하여 있으니, 대궐을 그리워하는 심정이 어찌 다함이 있겠습니까? 폐기하여 버려두는 것은 성상께 있고 궁하고 통함은 천명(天命)에 있는데, 어찌 어리석고 망령된 가까운 친척으로 하여금 국정을 비방하고 신의 부자를 비호(庇護)하게 하여 희망을 가지려고 하겠습니까? 신이 비록 무상(無狀) 할지라도 이는 하지 아니합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성상께서 가엾이 여겨서 살피소서.

신의 마음은 해와 별처럼 밝은데 성명(聖明)한 세상에 밝게 드러내지 못하면 신이 원통함을 머금고 땅에 묻히게 될 것이니,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할 것입니다. 신의 이 원통함은 천지 신명(天地神明)이 다 알고 조종(祖宗)의 영령(英靈)이 다 아시는데, 신이 만약 서감원(徐坎元)과 부동(符同)하여 감히 간사함을 품고 성상을 기망(欺罔)하였으면 천지 신명이 반드시 죽일 것이며 조종의 영령이 반드시 죽일 것인데, 신이 감히 속이겠습니까? 전일에 신정(申瀞)이 친히 간사한 죄를 범하고 또 글을 올려 스스로 변명하여 거듭 성상을 속이니, 성상께서 더욱 노여워하시어 마침내 중한 법에 처하셨습니다. 신이 일찍이 그 일을 눈으로 보았는데 어찌 감히 부동(符同)하는 일로써 거듭 성상을 속여서 큰 화(禍)를 더 불러 일으키겠습니까? 엎드려 바라건대 가엾이 여겨서 살피소서. 옛사람이 쇠[鐵]를 잃은 자가 있었는데 그 이웃 사람을 의심하여 아침에 그 사람을 보니 말하는 것이 쇠를 도둑질한 자와 같고 행동과 얼굴이 쇠를 훔친 자와 같았었습니다. 그런데 그 쇠를 다른 곳에서 찾은 뒤에 다시 그 사람을 보니 언어와 용모가 쇠를 훔친 자와 같지 아니하였습니다. 이는 무슨 까닭이겠습니까? 마음에 의심스러움이 있으면 일마다 의심스럽지 않은 것이 없다가 그 실정을 알아낸 뒤에야 풀어지는 것입니다. 신의 이 일은 또한 이와 같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성상께서 서감원을 나치(拿致)하여 신과 대변(對辨)하게 하고, 대신(大臣)으로 하여금 여러모로 물어서 그 실정을 끝까지 추궁하게 하면 성상의 의심스러움이 환하게 풀어질 것이며, 외로운 신에게 맺힌 원통함을 펼 수 있을 것입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천지나 부모와 같으시니 가엾이 여겨 살피소서. 신은 억울하여 통곡하는 지극한 마음을 금하지 못하겠습니다."

하였는데, 상소 끝에 어서(御書)로 쓰기를,

"지금 그대의 글에 나의 의심스러움이 조금 풀린다. 그러나 내가 전에 그대를 어떤 선비로 대접하였으며 그대도 나를 어떤 임금으로 섬겼는가? 맡기고 의심하지 아니한 것은 믿기 때문이고 뽑아 쓰기를 차례대로 하지 아니한 것은 현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대가 무슨 마음을 가지고 기환(奇患)을 빚어내어 무씨(武氏)의 주(周)나라를 다시 오늘날에 생기게 하는가?1005) 그리고 또 그대의 글을 보니, 그대가 소자첨(蘇子瞻)이 되면 나는 어떤 임금이 되며, 그대가 두보(杜甫)나 굴원(屈原)이 되면 나는 어떤 임금이 되겠는가 대저 선비[儒]로 이름하는 것이 하나만이 아니다. 유협자(游俠者)1006) 도 선비이고 문사자(文史者)1007) 도 선비이며 광달자(曠達者)1008) 도 선비이고 지수자(智數者)1009) 도 선비이며 장구자(章句者)1010) 도 선비이고 사공자(事功者)도 선비이며 도덕자(道德者)도 선비이다. 그대는 항상 어떤 선비로 자처하느냐?"

하였다. 인하여 승정원(承政院)에 전교하기를,

"이 뜻으로써 물어 보라."

하니, 승정원에서 아뢰기를,

"죄인의 예(例)로 뜰 밑에 잡아다가 국문(鞫問)해야 하겠습니까? 아니면 불러서 물어야 하겠습니까?"

하자, 전교하기를,

"불러서 물으라."

하였다. 채수(蔡壽)가 승정원에 와서 아뢰기를,

"신이 미천한 몸으로서 특별히 발탁하심을 받았으므로, 이미 성상을 만났으니 마땅히 그 포부를 다해야 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무릇 품은 바가 있으면 말을 다하지 아니한 것이 없었습니다. 지혜와 생각이 얕고 부족하여 그릇 헤아리고 망령되게 아뢰었으니 죄가 만 번 죽어 마땅한데, 성상의 은혜가 하늘과 같아서 오늘날 목숨을 보전함을 얻었습니다. 신이 굴원과 두보를 말한 것은 다만 신의 대궐을 그리워하는 심정을 말한 것뿐이니, 어찌 감히 두 신하에게 스스로 비하겠습니까? 신이 소자첨의 일을 말한 것은, 무릇 신하가 죄를 지으면 신하가 영구(營救)할 수 없는 것인데, 서감원의 비호(庇護)는 신이 진실로 무익함을 알기 때문에 신이 서감원과 부동(符同)하지 않았음을 밝히려고 한 것입니다. 어찌 감히 소자첨에게 스스로 비하겠습니까?"

하니, 어서(御書)로 이르기를,

"내가 물은 바는 이것만이 아닌데, 다만 굴원·소자첨을 가지고 대답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대가 만약 다시 조정에 있게 되면 마땅히 예전 어떤 신하를 본받겠는가?"

하자, 채수가 아뢰기를,

"신은 본래 우유(迂儒)1011) 인데 어떤 선비로 자처하겠습니까? 이러므로 감히 지적해 대답하지 못합니다. 다만 평생에 세운 뜻은, 옛 충신을 본받고자 할 뿐입니다. 다만 재주와 덕과 지혜가 없어서 일을 헤아리는 데에 그릇되어 마음과 일이 서로 어긋납니다."

하였다. 어서로 이르기를,

"이른바 옛 충신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이며, 이른바 일을 헤아리는 데 그릇되었다고 한 것은 어떤 일이며, 이른바 마음과 일이 어긋난다는 것은 어떤 계책인가?"

하니, 채수가 아뢰기를,

"옛 충신은 한 사람만이 아닙니다. 무릇 나라에 뜻을 둔 자는 모두 본받고자 합니다. 그리고 일을 헤아리는 데에 그릇되었다는 것은 신이 전일에 일을 망령되게 헤아리고 잘못 계달하였기 때문에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과 일이 어긋난다고 한 것은, 신의 마음은 나라에 충성하고자 하였지만 일을 생각하는 데에 그릇되었기 때문에 한 것입니다."

하였다. 어서로 이르기를,

"그대가 그릇되고 망령되게 생각했다고 하는 것이 정말인가? 그것이 정말이라면 그릇되고 망령되게 생각한 바의 뜻을 마땅히 말해야 할 것이다. "

하니, 채수가 글로 써서 아뢰기를,

"신이 한갓 옛 일만 알고 대체를 알지 못하여 망령되게 헤아리고 계달하였다가 상교(上敎)를 들은 뒤에 미쳐서 비로소 국가에 장차 화환(禍患)의 일이 있을 것을 알고 신이 황공하여 몸둘 바가 없었고, 중한 죄를 받기를 달게 여겼는데, 그 때에 특별히 천은(天恩)을 입어 불문(不問)에 붙이고 스스로 마음을 새롭게 하는 길을 열어 주시며 하교 하시기를, ‘무릇 사람이 그 허물을 아는 자가 적은데 그대가 허물을 잘 알기 때문에 놓아둔다.’고 하셨기에, 신이 명령을 듣고 통곡하며 다시 살리신 은혜를 감격해 하였으며, 이제까지 전일의 잘못을 생각하면서 아프게 스스로 뉘우치고 꾸짖을 뿐입니다."

하였는데, 어서로 이르기를,

"만약 옛일을 안다면, 어찌 내 말을 기다린 뒤에야 화환(禍患)의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았는가?"

하니, 채수가 글로 써서 아뢰기를,

"신이 망령되게 헤아리고 미혹(迷惑)하기 때문에 미처 헤아리지 못하였는데, 상교(上敎)를 들은 뒤에 미쳐서야 알았습니다."

하였다. 전교하기를,

"그대가 서감원과 부동(符同)하지 아니한 것은 내가 알았다. 다만 그대가 옛일을 안다면 어찌 내 말을 기다린 뒤에야 그것을 알았는가?"

하고, 인하여 음식을 대접하도록 명하니, 채수가 통곡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기를,

"신이 참으로 미욱하여 성상의 마음을 수고롭게 하였습니다."

하고, 또 글로 써서 아뢰기를,

"미욱한 소치로 미처 헤아리지 못하고 망령되게 생각하여 그릇되었습니다. 신이 만약 이같은 일이 화환(禍患)의 단서가 될 것을 헤아려 알았으면 신이 어찌 감히 하였겠습니까? 신이 여기에 미치지 못한 것은 그릇 헤아리고 망령되게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하였다. 어서(御書)로 이르기를,

"그대가 지금 생각하여 알았다면 그 화환의 얕고 깊음을 말할 수 있겠는가? 크면 어느 지경에 이르고 작으면 어느 지경에 이르겠는가?"

하니, 채수가 글로 써서 아뢰기를,

"신이 지금 생각하면 이같은 일의 화환이 깊고 큰 것을 어찌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신이 미욱하여 그 때에 모두 미처 추측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신의 망령되게 헤아린 잘못이었습니다."

하자, 어서(御書)로 이르기를,

"화(禍)의 큰 것은 이보다 지나친 것이 없고 그릇된 계책은 곧 나라를 어지럽게 만드는데, 그대의 뉘우치고 꾸짖는 것이 앞의 허물을 덮을 수 있겠는가? 충성과 아첨은 둘이 함께 존재할 수 없으며 또 크게 교묘한[巧] 것은 서투른[拙] 것과 같다는 것을 그대가 아느냐?"

하니, 채수가 글로 아뢰기를,

"이같은 큰 일을 신이 그 때 우혹(愚惑)하여 모두 미처 헤아리지 못하였으니 죄가 만 번 죽어 마땅한데, 특별히 천은(天恩)을 입어서 스스로 마음을 새롭게 하는 길을 열어 주시어 오늘날에 이르렀습니다. 신이 나라에 보답하려는 마음은 신명(神明)이 아는 바인데, 일을 헤아리면서 이와 같이 잘못하였기 때문에 지금까지 자신을 매우 호되게 꾸짖으며 두고두고 후회합니다."

하였는데, 전교하기를,

"알았다."

하고, 인하여 승정원(承政院)에 전교하기를,

"상소(上疏)와 문답한 글을 의정부(議政府)와 영돈녕(領敦寧) 이상에게 보여서 의논하게 하라."

하였다. 정창손(鄭昌孫)은 의논하기를,

"이제 채수의 상소의 뜻을 보건대, 서감원(徐坎元)과 부동(符同)하지 아니한 뜻이 매우 명백합니다. 채수는 재상이었는데 어찌 만들고 꾸며서 천총(天聰)을 속이겠습니까?"

하고, 한명회(韓明澮)·심회(沈澮)·서거정(徐居正)은 의논하기를,

"서감원의 추핵(推劾)이 끝난 뒤에 다시 의논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며, 윤필상(尹弼商)은 의논하기를,

"서감원의 상소는 비록 형적(形跡)의 혐의로움이 있더라도, 채수는 이름 있는 문신(文臣)으로서 정대(正大)함을 자처(自處)하는데 어찌 이처럼 부동할 이치가 있겠습니까?"

하고, 홍응(洪應)은 의논하기를,

"이제 채수의 상소와 어서(御書)의 문답을 보건대, 채수는 서감원과 더불어 서로 통하지 아니한 것이 저절로 명백할 뿐만 아니라, 채수는 이름이 있는 선비인데 만약 서감원에게 요구하여 살기를 구하였으면 어찌 채수라 하겠습니까?"

하며, 이극배(李克培)·윤호(尹壕)·한치례(韓致禮)는 의논하기를,

"이제 채수의 상소와 대답한 바로써 보건대, 서감원과 부동하지 아니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서감원을 추고(推考)한 계본(啓本)이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니, 아직 기다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고, 노사신(盧思愼)은 의논하기를,

"채수의 상소와 대답을 올린 말을 보건대, 서감원과 공모하지 아니한 것이 명백합니다. 그런데 이제 이로써 서감원을 형신(刑訊)하여 역사(逆詐)1012) 한 죄와 같이 하는 것은 아마도 사정(事情)을 잃을까 합니다."

하며, 허종(許琮)은 의논하기를,

"채수가 전일에 아뢴 잘못된 일을 이제 대답한 것으로 보건대, 마음에 진실로 스스로 뉘우치고 꾸짖은 것입니다. 채수와 서감원은 가까운 친척이고 한 도(道)에 같이 살고 있으므로 사정이 의심스러울 만하나, 채수는 오래 성조(聖朝)를 모시어 사체(事體)를 대강 아는 자인데 어찌 이같은 무상(無狀)한 일이 있겠습니까? 벌써 서감원을 추문(推問)하도록 명하셨으니, 추문을 마치고 아뢰는 것을 기다렸다가 처치(處置)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자, 전교하기를,

"서감원의 추고(推考)를 마치고 계문(啓聞)한 뒤에 다시 아뢰라."

하였다.

  • [註 989] 초모(草茅) : 재야(在野).
  • [註 990] 논사(論思) : 정치를 의논하고 생각함.
  • [註 991] 후설(喉舌) : 승지(承旨).
  • [註 992] 헌장(憲長) : 사헌부(司憲府)의 우두머리. 곧 대사헌(大司憲).
  • [註 993] 고(皐) : 순(舜)의 신하 고요(皐陶).
  • [註 994] 기(夔) : 순의 신하.
  • [註 995] 요(姚) : 당(唐)나라 현종(玄宗) 때의 현상(賢相) 요숭(姚崇).
  • [註 996] 송(宋) : 당나라 현종 때의 명신 송경(宋璟).
  • [註 997] 언책(言責) : 간관(諫官)의 책임.
  • [註 998] 장신(杖訊) : 곤장을 쳐서 신문함.
  • [註 999] 전리(田里) : 고향 마을.
  • [註 1000] 영구(營救) : 죄인을 구제해 냄.
  • [註 1001] 소자첨(蘇子瞻) : 송나라 신종(神宗) 때 문인(文人) 소식(蘇軾).
  • [註 1002] 굴원(屈原) : 춘추 전국 시대 초(楚)나라 문학가(文學家).
  • [註 1003] 두보(杜甫) : 당나라 때 시인.
  • [註 1004] 종남산(終南山) : 당나라 서울인 장안(長安) 근방에 있던 산 이름.
  • [註 1005] 무씨(武氏)의 주(周)나라를 다시 오늘날에 생기게 하는가? : 무씨(武氏)는 당(唐)나라 고종(高宗)의 황후(皇后)인 측천 무후(則天武后)로, 고종이 죽은 후에 당 황실(唐皇室)의 자손을 쫓아내어 죽이고, 자신이 여주(女主)가 되어 신성 황제(神聖皇帝)라 일컬었으며, 국호(國號)도 당(唐)을 없애고 주(周)라 하였으므로 ‘무씨의 주나라’라고 한 것인데, 이는 연산군(燕山君)의 생모(生母)인 폐비(廢妃) 윤씨(尹氏)를 측천 무후에다 비유한 말임.
  • [註 1006] 유협자(游俠者) : 사나이다운 기질이 있는 사람. 협객(俠客).
  • [註 1007] 문사자(文史者) : 시를 짓거나 사서(史書)를 읽는 사람.
  • [註 1008] 광달자(曠達者) : 마음이 넓고 활달한 사람.
  • [註 1009] 지수자(智數者) : 지혜롭고 계산에 능한 사람.
  • [註 1010] 장구자(章句者) : 경서(經書)의 장구를 해석하는 사람.
  • [註 1011] 우유(迂儒) : 세상 물정에 어두운 선비.
  • [註 1012] 역사(逆詐) :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 미리 남을 의심하여 자기를 속였다고 하는 것.

원문

○及第蔡壽上書曰:

臣草茅寒儒, 幸捷科第, 朝無親黨, 特蒙天(思)〔恩〕 , 濫與經幄, 獲參論思, 擢置喉舌, 超遷憲長, 誘掖奬勸, 引喩非分, 或稱慷慨, 或稱徇國, 又擧古人如皋、夔、姚、宋以勉勵之, 臣聞命慙惶, 措身無地。 自度才輕德薄, 無所裨益, 獨計以爲 ‘旣任言責, 則當盡言不諱, 庶可少報生成,’ 故遇事輒言。 而智慮淺短, 所言謬妄, 上觸天威, 罪在不測, 而聖上察其無情, 置之不問, 臣於時痛泣闕庭, 感激再生之恩。 臣素家貧, 無所於歸, 臣之妻父, 居於咸昌, 臣往就食, 三年于玆。 得與齊民, 共享耕鑿, 豈意臣異姓四寸弟徐坎元, 因陳言, 謗訕國政, 兼言臣父子事, 似有庇護之情? 此乃因公寓私之人, 國法所痛懲。 但臣與坎元, 旣是切族, 而同居一道, 又言臣父子事, 故聖上疑臣預知, 乃命杖訊與臣符同之狀。 臣拊心呼天, 歷歷肝膽, 謹陳如左。 伏惟聖上, 天地父母, 哀而察之。 臣與坎元, 雖切族, 而臣生長京城, 坎元生長大丘, 又年不相若, 故素不交親。 臣所居咸昌, 與坎允〔元〕 所居大丘, 雖云一道, 相距三日程, 自臣罷職下去後, 坎元一不來臣家, 臣亦一不歸坎元家。 坎元不勝刑杖, 雖或誣服, 臣家門戶向背、山川地勢, 坎元終不能言也, 其相會言語節次, 坎元終不能言也, 臣之陳言草(蒿)〔藁〕 、交通消息, 坎元終不能言也。 坎元若來臣家, 則必有經宿之處, 咸昌鄕人, 誰不知之? 臣若歸坎元家, 亦必有經宿之處, 大丘鄕人, 誰不知之? 以此窮推覈情, 則聖上可知其實矣。 臣以言事謬妄, 幾得重罪, 猥蒙聖恩, 安居田里, 何必更與愚妄切族同議, 使之訕謗國政, 而庇護臣身, 欲有希望乎? 臣雖至愚, 不爲此也。 伏惟聖上哀, 而察之。 臣父年將七十, 老病相仍。 今以朝廷公論, 廢處田園, 分所甘也, 豈可以草茅一狂儒之言, 有所更改乎? 臣雖無狀, 稍識事勢, 豈可使狂妄切族, 上書營救, 有所希望乎? 臣雖無識, 不爲此也。 伏惟聖上哀而察之。 昔蘇子贍得罪坐貶, 友人欲上疏論救, 而不果。 子瞻後見其疏草, 有稱譽庇護之言, 子瞻吐舌, 良久而收曰: "若呈此疏, 軾必死矣。" 自古人臣得罪, 下有論救者, 則祗激人主之意, 故子瞻云然。 臣粗知經史, 稍識事理, 豈不知此意乎? 友人猶不可營救, 況令臣切族, 訕謗國政, 而庇護臣父子, 欲有希望乎? 臣雖愚妄, 不爲此也。 伏惟聖上哀而察之。 世祖朝, 有宋希獻者, 因上書擢用, 故其後儒生, 相繼上書, 妄議國政者, 皆爲自己媒進之計, 豈爲國家事乎? 臣常惡之, 以爲: ‘非儒者用心也。’ 他人上書, 猶惡之, 況勸臣切族乎? 況干臣父子事乎? 況使訕謗朝政乎? 臣雖愚妄, 不爲此也。 伏惟聖上哀而察之。 古之人臣, 雖遭廢棄, 不忍忘君, 故屈原悵望修門, 杜甫尙戀終南, 臣十年侍從, 日覲龍顔, 一朝去國, 流落南荒, 戀闕之情, 豈有極乎? 但廢、置在於聖上, 窮、通付之天命, 豈可使愚妄切族, 訕謗國政, 而庇護臣父子, 欲有希望乎? 臣雖無狀, 不爲此也。 伏惟聖上哀而察之。 臣之此心, 皎如日星, 聖明之世, 不能曝白, 則臣含冤入地, 死不瞑目矣。 臣之此冤, 天地神明皆知之, 祖宗英靈皆知之。 臣若實與坎元符同, 而敢懷詐欺, 罔聖上者, 天地神明, 必殛之, 祖宗英靈, 必殛之, 臣敢誣哉? 前日申瀞, 身犯奸詐之罪, 而又上書自明, 重欺聖上, 聖上益怒, 終置重典。 臣嘗目覩其事, 豈敢以符同之事, 重欺聖上, 益招大禍乎? 臣雖愚妄, 亦知利害, 豈敢誣哉? 伏惟聖上哀而察之。 古人有失鐵者, 疑其隣人, 朝而視其人, 則言語竊鐵者也, 擧止容貌, 皆竊鐵者也。 及得鐵於他處, 然後更視其人, 則言語容貌, 皆非竊鐵者也。 何者? 心有所疑, 則事事無非可疑也, 及得情而後, 乃可釋也。 臣之此事, 亦類於此。 伏望, 聖上拿致坎元, 與臣對辨, 使大臣雜問, 窮極其情, 則聖上之疑洞釋, 而孤臣之冤結得伸矣。 伏惟聖上, 天地父母, 哀而察之。 臣無任抑鬱痛哭之至。

御書疏尾曰:

今爾之疏, 少釋予疑。 然予曩以爾爲何士待之, 爾亦以予爲何主, 而事之耶? 所以任之不疑者, 信也; 擢之不次者, 賢也。 而爾將何心釀成奇患, 使武氏之周, 復生於今日歟? 且以爾疏觀之, 爾爲子瞻, 我爲何主, 爾爲杜甫、屈原, 我爲何君? 夫儒之名者, 非一。 游俠者儒也, 文史者儒也, 曠達者儒也, 智數者儒也, 章句者儒也, 事功者儒也, 道德者儒也。 爾常以何儒, 自處耶?

仍傳于政院曰: "其以此意問之。" 政院啓曰: "以罪人例, 鞫之庭下乎? 抑召而問之乎?" 傳曰: "召而問之。" 蔡壽來政院書啓曰:

臣以賤品, 特蒙擢拔以謂: ‘旣逢聖上, 當盡其所蘊,’ 故凡有所懷, 無不盡言, 而智慮淺短, 錯斜妄陳, 罪當萬死, 聖恩如天, 得保今日。 臣言杜甫、屈原者, 只言臣戀闕之情耳, 豈敢以二臣自比乎? 臣言子瞻事者, 凡人臣作罪, 臣下不可營救, 坎元之庇護, 臣固知無益, 故臣欲明不與坎元符同耳, 豈敢以子瞻自比乎?

御書曰:

予所問者, 非特此也, 而但以屈原、子瞻爲對, 何也? 爾今若更立于朝, 當法古之何臣?

壽啓曰: "臣本迂儒, 以何儒自處? 是以不敢摘對。 但平生立志, 欲法古之忠臣而已, 但無才德智慮, 料事錯誤, 心與事違耳。" 御書曰:

所謂: "古之忠臣," 指誰? 所謂: "料事錯誤," 何事? 所謂: "心與事違," 何計?

壽啓曰: "古之忠臣非一, 臣觀史策, 凡有志於國者, 皆欲法之。 料事錯誤者, 臣前日慮事妄量, 錯誤啓達, 故云。 心與事違者, 臣心則欲忠於國, 而慮事誤錯, 故云。" 御書曰:

爾自以爲誤錯妄量者, 眞耶? 如其眞也, 則當言其所以誤錯妄量之意也。

壽書啓曰:

臣前日徒知古事, 不知大體, 妄量啓達, 及聞上敎, 然後始知國家將有禍患事, 臣惶恐無地, 甘伏重罪。 其時特蒙天恩, 置之不問, 以開自新之路。 敎云: "凡人知其過者, 鮮矣。 爾能知過, 故棄之。" 臣聞命痛哭, 感激再生之恩。 至今思前之非, 痛自悔責耳。

御書曰:

若知古事, 何待予言而後, 知其有禍患之事哉?

壽書啓曰:

臣妄量迷惑, 故未及計料, 及聞上敎, 然後知之。

傳曰: "爾不與坎元符同, 則予知之。 但爾知古事, 則豈待予言, 然後知之乎?" 仍命饋食, 壽哭泣流涕曰: "臣實迷惑, 勞動聖心。" 又書啓曰:

迷惑所致, 未及計料, 妄量錯誤。 臣若料知如此事爲禍患之端, 則臣何敢爾耶? 臣未及此, 所以錯料妄量也。

御書曰:

爾以今之知思之, 則其禍患之淺深, 猶可以言之乎? 大則至於何, 小則至於何?

壽書啓曰:

臣以今思之, 如此事禍患之深。 且大, 何可量乎? 而臣愚惑, 其時皆未及料, 此臣之量妄錯誤也。

御書曰:

禍之大者, 莫踰於此, 而錯誤之計, 乃成亂國。 爾之悔責, 可掩前過, 忠、侫不兩立, 且大巧若拙, 爾知之乎?

壽書啓曰:

如此大事, 臣其時愚惑, 皆未及料, 罪當萬死, 特蒙天恩, 以開自新之路, 以至今日。 臣報國之心, 神明所知, 而慮事錯誤如此, 故至今痛自刻責追悔。

傳曰: "知道。" 乃傳于政院曰: "上疏及問答之書, 示政府及領敦寧以上議之。" 鄭昌孫議: "今觀蔡壽疏意, 不與徐坎元符同之意, 至爲明白。 壽, 宰相, 豈造飾以欺天聰哉?" 韓明澮、沈澮、徐居正議: "徐坎元畢推, 後更議何如?" 尹弼商議: "徐坎元上疏, 雖有形跡之嫌, 然蔡壽有名文臣, 以正大自處, 安有如是符同之理乎?" 洪應議: "今觀蔡壽上書及御書問答, 壽但自明不與坎元相通爾。 蔡壽, 有名之士, 若要坎元求活, 豈蔡壽哉?" 李克培、尹壕、韓致禮議: "今以蔡壽上疏及所對觀之, 似不與坎元符同。 然坎元推考啓本, 時未到, 姑待之何如?" 盧思愼議: "觀蔡壽上疏及上對之辭, 不與坎元同謀明矣。 今以此刑訊坎元, 似類逆詐, 恐失事情。" 許琮議: "壽之前日所啓誤錯之事, 今觀所對, 於心實自悔責矣。 壽與坎元切親, 而同居一道, 情涉可疑。 然壽久侍聖朝, 粗知事體者, 豈有如此無狀之事乎? 旣命推坎元, 待畢推以啓, 處置何如?" 傳曰: "徐坎元畢推, 啓聞後更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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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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