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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164권, 성종 15년 3월 27일 甲寅 1/2 기사 / 1484년 명 성화(成化) 20년

대신의 죽음에 백관이 회장하는 문제를 논의하다

국역

홍문관(弘文館)에서 아뢰기를,

"《춘추전(春秋傳)》을 살펴보니, ‘대부(大夫)는 〈죽은 지〉 3개월 만에 장사지내되 같은 지위에 있는 대부가 회장(會葬)349) 한다.’ 하였고, 후한(後漢)의 제준(祭遵)이 졸(卒)하니, 조서(詔書)를 내려 백관(百官)을 보내어 먼저 장사시내는 곳에 모이도록 하고, 소복(素服) 차림으로 거가(車駕)가 임(臨)하였으며, 당(唐)나라의 위징(魏徵)이 졸(卒)하니, 조칙하여 내외 백관(內外百官)을 조정에 모이게 하고 모두 부상(赴喪)하게 하였고, 고려(高麗)의 강감찬(姜邯贊)·이주좌(李周佐)·최사추(崔思諏)가 졸(卒)하니, 백관(百官)에게 회장(會葬)하도록 명(命)하였습니다."

하니, 명하여 의정부(議政府)·영돈녕(領敦寧) 이상, 육조(六曹)·홍문관(弘文館)에 의논하게 하였다. 정창손(鄭昌孫)·윤필상(尹弼商)은 의논하기를

"대부(大夫)가 회장(會葬)함은 옛적에도 그 법(法)이 있었으나, 모두 한때의 특은(特恩)이고, 만세(萬世)에 상행(常行)하는 법전은 아니었습니다. 만일 옛 법을 행하고자 하면, 훈로 중신(勳勞重臣)의 죽음에만 회장(會葬)하도록 명하여 이수(異數)350) 를 보이게 하소서."

하고, 한명회(韓明澮)·심회(沈澮)는 의논하기를,

"춘추(春秋)351) ·한(漢)·당(唐)·고려(高麗) 때에 대신(大臣)의 죽음에 백관(百官)이 회장(會葬)한 글이 있으니, 그 대신(大臣)을 공경하는 예(禮)가 중하였습니다. 그러나 대신(大臣)의 장소(葬所)가 혹 멀리 하룻밤을 지내야 할 곳에 있으면 백관이 일을 폐(廢)하고 회장(會葬)할 수 없으니, 다만 출장(出葬)하는 날에 각사(各司)의 1원(員)이 문밖에서 조송(祖送)함이 어떠하겠습니까?"

하고, 이극배(李克培)·윤호(尹壕)는 의논하기를,

"대신(大臣)의 죽음에 백관으로 하여금 회장(會葬)하게 함은 그 뜻이 매우 만족할 만 합니다. 그러나 한(漢)나라의 제준(祭遵)과 당(唐)나라의 위징(魏徵)과 고려(高麗)의 강감찬(姜邯贊) 등은 모두 큰 공덕(功德)이 있는 까닭으로 일시(一時)의 특명(特命)으로 회장(會葬)하게 하여 총이(寵異)를 보였을 뿐입니다. 아조(我朝)에서는 대신(大臣)의 죽음에 혹 치부(致賻)하고 혹 예장(禮葬)하게 하여 대신(大臣)을 존경하는 예(禮)가 이르지 않음이 없으되, 다만 회장(會葬)의 제도는 조종조(祖宗朝)로부터 행하지 않았으니, 신 등의 뜻으로는 장소(葬所)가 멀면 백관이 회장(會葬)하기 어렵다고 여기나, 만약 장소(葬所)가 가까우면 특명(特命)으로 회장(會葬)하게 한들 어찌 예(禮)에 해롭겠습니까?"

하고, 서거정(徐居正)은 의논하기를,

"예전의 인군(人君)은 대신(大臣)을 우례(優禮)하여, 혹 친림(親臨)하여 문병(問病)하고 혹 친행(親幸)하여 곡림(哭臨)352) 하였으니, 백관(百官)으로 하여금 회장(會葬)하게 함이 예(禮)에 어찌 해롭겠습니까? 다만 대신의 죽음에 회장(會葬)한다고 범칭(泛稱)하게 되면 그 예(禮)가 번거로울 듯하니, 이제 만약 짐작(斟酌)하여 입법(立法)한다면 대신(大臣)으로 이미 삼공(三公)을 역임한 자와 큰 훈로(勳勞)가 사직(社稷)에 있는 자와 종친(宗親)으로 존귀한 데 속하고 명망이 높은 자가 있으면, 임시에 특명(特命)하여 백관(百官)에게 회장(會葬)하게 함으로써 이수(異數)를 보임도 또한 정례(情禮)에 합하겠습니다."

하고, 허종(許琮)은 의논하기를,

"예전에는 대부(大夫)의 장사에 같은 지위에 있는 자가 회장(會葬)하였으니, 진실로 아름다운 뜻이 되지만, 그러나 때가 다르고 일이 다릅니다. 한(漢)나라 이래로부터 의방(依倣)하여 이를 행할 수 없었고, 비록 그 사이에 회장(會葬)한 자가 있더라도 특히 한때의 은수(恩數)에서 나온 것이니, 이제 이에 의거하여 상법(常法)을 정하게 함은 불가합니다. 만약 공(功)이 국가에 있는 자라면, 특별히 백관(百官)으로 하여금 회장(會葬)하게 하여 우례(優禮)를 보이는 것이 진실로 사의(事宜)에 합하겠습니다."

하고, 김겸광(金謙光)은 의논하기를,

"대신(大臣)의 죽음에 온 조정이 회장(會葬)함은 진실로 양법(良法)이 되지만, 그러나 옛날을 상고하면, 회장(會葬)한 자가 많지 않습니다. 그윽이 생각하건대, 특히 한때의 은수(恩數)에서 나온 것뿐이니, 정하여 상법(常法)을 삼을 수 없다고 여깁니다. 만약에 공(功)이 사직(社稷)에 있고 이미 삼공(三公)을 역임한 자라면 임시에 특명(特命)함이 진실로 사의(事宜)에 합하겠습니다."

하고, 조익정(趙益貞)·박안성(朴安性)은 의논하기를,

"대신(大臣)이 졸(卒)하면 이미 조제(弔祭)하도록 하고, 또 관(官)에서 상사(喪事)를 갖추게 하였으니, 은례(恩禮)가 지극합니다. 회장(會葬)하는 거사에 이르러서는 예악(禮樂)이 주(周)나라보다 성(盛)함이 없으되 이런 의식이 나타나 있지 않고, 그 《좌씨전(左氏傳)》에 기록된 바, ‘같은 지위에 있는 자가 이르고 인척되는 자가 이르렀다.’고 한 것은 친척(親戚)과 동료가 스스로 정의(情誼)가 두텁다고 하여 와서 양사(襄事)353) 를 돕는 것뿐입니다. 훈신(勳臣)을 대우함은 한(漢)나라·당(唐)나라가 가장 잘하였는데, 광무(光武)·태종(太宗)이 제준(祭遵)·위징(魏徵)에게는 조제(弔祭)한 데 지나지 않을 따름이었습니다. 고려(高麗)에서 강감찬(姜邯贊)·이주좌(李周佐)·최사추(崔思諏)의 죽음에 백관으로 하여금 회장(會葬)하게 하였으되 3인 이외에는 듣지 못하였으니, 이것도 또한 한 때의 은수(恩數)입니다. 또 지금은 고향에 귀장(歸葬)하니 도성(都城)과의 거리가 매우 먼 자는 어찌 온 조정이 가서 순월(旬月)354) 을 지낼 수가 있겠습니까? 회장(會葬)하는 거사는 형세가 불편(不便)함이 있습니다."

하고, 어세공(魚世恭)·이공(李拱)·이칙(李則)은 의논하기를,

"대신(大臣)의 죽음에 백관(百官)으로 하여금 회장(會葬)하게 함은 역대(歷代)의 제왕(帝王)이 간혹 이를 행하였으나, 이것은 상전(常典)이 아닙니다. 이러므로 조종(祖宗)의 우례(優禮)가 이르지 않은 것이 없으되, 《오례의(五禮儀)》 주(註)에는 다만 거애(擧哀)하는 것만 기재하고 백관이 회장하는 글은 없는데, 이는 선왕(先王)이 미처 겨를을 내지 못한 법전이 아니니, 한결같이 《오례의(五禮儀)》 주(註)에 의하소서."

하고, 이파(李坡)·이세좌(李世佐)·이숙감(李叔瑊)은 의논하기를,

"국가에서 대신(大臣)의 죽음에 철조(輟朝)하고, 관(官)에서 장사(葬事)를 갖추게 하며, 삼공(三公)이면 거애(擧哀)하고 그 발인(發引)에는 도문(都門) 밖에서 치전(致奠)하니, 대신(大臣)을 후하게 예우(禮遇)하여 시종(始終)의 은혜를 온전히 한 것입니다. 만약에 백관(百官)이 회장(會葬)하면 그 예(禮)가 지극히 융성하고 그 일이 지극히 중하니, 혹 특별한 공훈과 큰 덕이 있어 족히 생민(生民)을 윤택(潤澤)하게 하고 국가(國家)의 안위(安危)에 관계된 자이면 역대(歷代) 및 전조(前朝)에서도 때때로 있었지만, 그러나 모두 인주(人主)의 한때의 특별한 은혜에서 나왔으니, 만약에 이를 예(例)로 삼아 상사(常事)를 삼는다면 매우 융성한 예(禮)와 매우 거대한 일을 사람에게 베풀게 되어 사람이 불편(不便)할까 두렵습니다."

하고, 이극증(李克增)·김자정(金自貞)·권정(權侹)·이육(李陸)은 의논하기를,

"회장(會葬)하는 예(禮)는 예로부터 있었으니, 진실로 두터운 풍속입니다. 그러나 장소(葬所)가 만약 도성(都城)에서 가까우면 고례(古例)를 따라 행하는 것도 무방하지만, 만약 먼 곳에 있는데 회장(會葬)한다면 왕래(往來)하는 즈음에 직사(職事)를 광폐(曠廢)355) 할 뿐만 아니라, 공돈(供頓)하는 비용도 심함이 있을 것입니다. 더구나 선왕(先王)·선후(先后)의 상(喪)에 있어서도 제도 감사(諸道監司)가 친히 오지 아니하고 도사(都事)·수령(守令)으로 하여금 진위(陳慰)하게 하고 회장(會葬)하였는데, 대신의 죽음에 백관이 회장하는 거사는 실로 행하기 어렵습니다."

하고, 어세겸(魚世謙)·이경동(李瓊仝)·변수(邊修)는 의논하기를,

"대신(大臣)의 죽음에 백관으로 하여금 회장(會葬)하게 함은 정법(情法)에 진실로 후(厚)하며, 예(禮)는 인정(人情)을 연유하였으므로 옳지 않은 것이 없지만, 그러나 고문(古文)에는 ‘대부(大夫)는 3개월 만에 장사지내는데, 같은 지위에 있는 대부가 참석한다.’는 글만 있으니, 회장(會葬)하는 절목(節目)도 또한 상세할 수 없습니다. 한(漢)나라·당(唐)나라에 이르러서 비록 회장(會葬)하는 말은 있으나 또한 회장하는 의식은 없으니, 이는 진실로 전대(前代)에 없었던 일이며, 전조(前朝)에 이르러서는 명경(名卿)과 중신(重臣)이 많지 않음이 아니지만 회장(會葬)한 예(禮)는 겨우 하나 둘만이 상고할 만하니, 아마도 특별히 당시 인군의 명(命)에서 나온 것이므로 끌어서 상례(常例)를 삼음은 불가한 줄로 압니다. 또 이제 대신(大臣)이 출장(出葬)하는 곳이 아주 옛날과 같이 조역(兆域)356) 이 일정함이 있는 것이 아니고, 그 때 가서 택지(擇地)하므로 원근(遠近)이 가지런하지 않으며, 심한 자는 혹 향읍(鄕邑)에서 10여 일의 노정에 장사지내기도 합니다. 가까이서 장사지내는 자도 백사(百司)의 직(職)을 폐(廢)하고서 여러 날을 지내며 회장(會葬)할 수 없는데, 더구나 10여 일이겠습니까? 그윽이 생각하건대, 이것은 비록 입법하여 상례(常例)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또한 군상(君上)께서 대신(大臣)을 대우하는 시종(始終)의 후례(厚禮)는 진실로 갑자기 폐할 수 없으니, 그 공훈(功勳)과 덕업(德業)이 있어, 군상(君上)께서 공경하는 중위 융작(重位隆爵)357) 으로 지극히 여러 사람의 물망에 윤협(允協)한 자이면, 한때에 예관(禮官)의 계품(啓稟)으로 군상(君上)이 특별히 명하는 데 달려 있을 뿐입니다."

하고, 권찬(權攅)·홍이로(洪利老)·유윤겸(柳允謙)은 의논하기를,

"삼가 살펴보건대, 백관(百官)이 대신(大臣)을 회장(會葬)하는 예(禮)는 한때의 특명에서 나온 것이고 일정한 제도는 아닙니다. 지금의 회장(會葬)은 혹 1일 노정(路程), 2·3일 노정(路程)이나, 백관(百官)이 나라를 비우고서 회장(會葬)하러 갈 수는 없으니, 신 등의 생각으로는 원훈 대신(元勳大臣)으로 그 은수(恩數)를 중히 하지 않을 수가 없는 자만 발인(發引)하는 날을 당하여 다만 그 집에 모이어 전송했으면 합니다."

하고, 이명숭(李命崇)·안침(安琛)·김흔(金訢)·조위(曺偉)·박문간(朴文幹)·김응기(金應箕)·성희증(成希曾)·민보익(閔輔翼)·박증영(朴增榮)은 의논하기를,

"한(漢)나라 제준(祭遵)의 상(喪)에는 조서(詔書)로 백관(百官)을 보내어 상소(喪所)에 모이게 하였고, 당(唐)나라 위징(魏徵)의 상(喪)에는 조서로 내외의 백관(內外百官)을 조정에 모아서 부상(赴喪)하게 하였으며, 곽자의(郭子儀)의 상(喪)에는 조서로 군신(群臣)에게 가서 조상하게 하였는데, 이 수인(數人)은 모두 한때에 공덕(功德)이 걸연(傑然)한 자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부상(赴喪)하는 데에 그치고 백관(百官)이 회장(會葬)한 예(禮)는 없었습니다. 오직 고려(高麗)의 강감찬(姜邯贊)·이주좌(李周佐)·최사추(崔思諏)의 상(喪)에는 백관에게 명하여 회장(會葬)하게 하였지만, 그러나 고제(古制)에는 모두 이 예(禮)가 없으니, 무엇을 근거한 것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신 등은 대신(大臣)으로 공덕(功德)이 있는 자는 백관(百官)에게 특명(特命)하여 부조(赴弔)하게 해야지, 드러내어 상전(常典)을 삼는 것은 불가하다고 여깁니다."

하니, 승정원(承政院)에 전교하기를,

"한(漢)나라·당(唐)나라·고려(高麗) 때에 회장(會葬)한 자는 수인(數人)에 그칠 뿐이다. 그 큰 공덕이 있는 자는 회장(會葬)하도록 특명(特命)하였는데 〈이것은〉 바로 한때의 은수(恩數)이니, 드러내어 상전(常典)을 삼을 수는 없는 것이다. 지금 의논하기는 혹 회장함이 옳다 하고, 혹은 문밖에서 조송(祖送)함이 옳다고 하는데, 회장(會葬)하는 것은 거행하기가 어려울 것 같으니, 조송(祖送)하는 절목(節目)을 의논하여 정하고, 임시(臨時)하여 특별히 행함이 어떠하겠느냐?"

하니, 승지(承旨) 등이 아뢰기를,

"성상의 하교가 진실로 마땅합니다."

하였다.

  • [註 349] 회장(會葬) : 장사 지내는데 참여함.
  • [註 350] 이수(異數) : 특별한 예우(禮遇).
  • [註 351] 춘추(春秋) : 춘추 시대.
  • [註 352] 곡림(哭臨) : 임금이 죽은 신하를 몸소 조문함.
  • [註 353] 양사(襄事) : 장사지내는 일.
  • [註 354] 순월(旬月) : 열흘이나 달포 가량.
  • [註 355] 광폐(曠廢) : 오랫동안 폐함.
  • [註 356] 조역(兆域) : 묘(墓)가 있는 곳. 영역(瑩域).
  • [註 357] 중위 융작(重位隆爵) : 고관 대작(高官大爵).

원문

○甲寅/弘文館啓: "按《春秋傳》, 大夫三月而葬, 同位至。 後漢 祭遵卒, 詔遣百官, 先會喪所, 車駕素服臨之。 唐 魏徵卒, 詔內外百官朝集, 使皆赴喪。 高麗 姜邯賛、李周佐、崔思諏卒, 命百官會葬。" 命議政府、領敦寧以上、六曹、弘文館議之。 鄭昌孫、尹弼商議: "大夫會葬, 古有其法, 皆一時特恩, 非萬世常行之典。 如欲行古法, 特於勳勞重臣之卒, 命會葬, 以示異數。" 韓明澮、 沈澮議: "春秋、漢、唐、高麗時, 大臣之卒, 有百官會葬之文, 其敬大臣之禮重矣。 然大臣葬所, 或遠在經宿之地, 則百官不可廢事會葬, 但出葬之日, 各司一員, 於門外祖送何如?" 李克培、尹壕議: "大臣之卒, 令百官會葬, 其意甚盛。 然漢之祭遵、唐之魏徵、高麗 姜邯贊等, 皆有大功德, 故一時特命會葬, 示寵異耳。 我朝於大臣之卒, 或致賻, 或禮葬, 尊禮大臣, 無所不至, 但會葬之制, 自祖宗朝, 而不行。 臣等意以爲 ‘葬所遠, 則百官會葬爲難。’ 若葬所近, 則特命會葬, 何害於禮?" 徐居正議: "古之人君, 優禮大臣, 或親臨問疾, 或親幸哭臨, 使百官會葬, 於禮何妨? 但大臣之卒, 泛稱會葬, 則其禮似繁, 今若斟酌立法, 大臣已行三公者, 有大勳勞於社稷者, 宗親之有屬尊望重者, 臨時特命百官會葬, 以示異數, 亦合情禮。" 許琮議: "古者大夫之葬, 同位會葬, 誠爲美意, 然時異事殊。 自漢以來, 不能倣而行之, 雖間有會葬者, 特出於一時恩數, 今不可據此定爲常法。 若有功於國家者, 特令百官會葬, 以示優禮, 誠合事宜。" 金謙光議: "大臣之卒, 擧朝會葬, 誠爲良法, 然稽之於古, 會葬者不多。 竊謂: ‘特出於一時恩數, 不可定爲常法。’ 若功在社稷, 已行三公者, 臨時特命, 實合事宜。" 趙益貞、朴安性議: "大臣之卒, 旣令弔祭, 又許官庇喪事, 恩禮至矣。 至於會葬之擧, 則禮樂莫盛於周, 而不著此儀。 其左氏所記 ‘同位至, 外姻至’ 者, 親戚、僚友, 自以情好, 而來助襄事耳。 待遇勳臣, 漢、唐爲最, 而光武、太宗之於祭遵、魏徵, 不過弔祭而已。 高麗於姜邯贊、李周佐、崔思諏之卒, 令百官會葬, 而三人之外無聞焉。 是亦一時恩數。 且今歸葬於鄕, 距都城甚遠者, 安可擧朝而往, 經歷旬月乎? 會葬之擧, 勢有所不便。" 魚世恭、李拱、李則議: "大臣之卒, 令百官會葬, 歷代帝王, 間或行之, 此非常典也。 是以祖宗優禮, 無所不至, 而《五禮儀註》, 但載擧哀, 無百官會葬之文。 此非先王未遑之典, 一依《五禮儀註》。" 李坡、李世佐、李叔瑊議: "國家於大臣卒, 輟朝官庇葬事, 三公則擧哀, 其發引也, 致奠於都門外, 所以優禮大臣, 以全始終之恩。 若百官會葬, 則其禮極隆, 其事至重, 或有奇勳、碩德, 足以澤潤生民, 繫國家安危者, 則歷代及前朝, 往往有之, 然皆出於人主一時之殊恩。 若例以爲常事, 則以極隆之禮、至大之事, 施之於人, 人恐不便。" 李克增、金自貞、權侹、李陸議: "會葬之禮, 自古有之, 誠爲厚風。 然葬所若近都城, 則依古例, 行之無妨。 若在遠處而會葬, 則往來之際, 非徒曠廢職事, 供頓之費, 又有甚焉。 況在先王。 先后之喪, 諸道監司不親來, 而令都事、守令, 陳慰會葬, 則大臣之卒, 百官會葬之擧, 實難行之。" 魚世謙、李瓊仝、邊脩議: "大臣之卒, 令百官會葬, 於情法實厚。 禮緣人情, 無所不可, 然古文, 徒有 ‘大夫三月而葬, 同位至’ 之文, 會葬節目, 亦不可詳。 至漢、唐, 雖有會葬之語, 亦無會葬之儀, 此固前代所無之事。 至於前朝, 名卿、重臣不爲不多, 而會葬之禮, 纔有一二之可考。 恐特出於時君之命, 不可援以爲常例。 且今大臣出葬之所, 非如古昔兆域有常, 臨時擇地, 遠近不齊, 甚者或葬於鄕邑十餘日之程者。 近者且不可廢百司之職, 而經日會葬, 況十餘日乎? 竊意, 此雖不可立爲常例, 然亦君上待大臣, 始終之厚禮, 誠不可頓廢, 其有功勳、德業, 君上所敬重位、隆爵, 極允協僉望者, 此在一時禮官之啓稟, 君上所特命耳。" 權攅、洪利老、柳允謙議: "謹按, 百官會葬大臣之禮, 特出一時之命, 非爲常制。 今之會葬, 或一日之程, 二三日之程, 百官不可空國, 而往會。 臣等以爲, ‘元勳大臣, 其恩數不可不重者, 當發引之日, 但令會其家送之。" 李命崇、安琛、金訢、曺偉、朴文幹、金應箕、成希曾、閔輔翼、朴增榮議: "漢 祭遵之喪, 詔遣百官會喪所; 唐 魏徵之喪, 詔內外百官, 朝集使赴喪; 郭子儀之喪, 詔群臣往弔。 玆數人者, 皆一時功德傑然者也, 而止於赴喪, 無百官會葬之禮。 唯高麗 姜邯贊、李周佐、崔思諏之喪, 命百官會葬, 然於古制, 皆無此禮。 未知何所據也。 臣等以爲 ‘大臣之有功德者, 特命百官赴弔,’ 不可著爲常典。" 傳于承政院曰: "漢、唐、高麗時, 會葬者數人而止耳。 其有大功德者, 則特命會葬, 乃一時恩數, 不可著爲常典也。 今議或云可會葬, 或云宜於門外祖送, 會葬則似難擧行。 祖送節目議定, 臨時特行, 若何?" 承旨等啓曰: "上敎允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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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164권, 성종 15년 3월 27일 甲寅 1/2 기사 / 1484년 명 성화(成化) 20년

대신의 죽음에 백관이 회장하는 문제를 논의하다

국역

홍문관(弘文館)에서 아뢰기를,

"《춘추전(春秋傳)》을 살펴보니, ‘대부(大夫)는 〈죽은 지〉 3개월 만에 장사지내되 같은 지위에 있는 대부가 회장(會葬)349) 한다.’ 하였고, 후한(後漢)의 제준(祭遵)이 졸(卒)하니, 조서(詔書)를 내려 백관(百官)을 보내어 먼저 장사시내는 곳에 모이도록 하고, 소복(素服) 차림으로 거가(車駕)가 임(臨)하였으며, 당(唐)나라의 위징(魏徵)이 졸(卒)하니, 조칙하여 내외 백관(內外百官)을 조정에 모이게 하고 모두 부상(赴喪)하게 하였고, 고려(高麗)의 강감찬(姜邯贊)·이주좌(李周佐)·최사추(崔思諏)가 졸(卒)하니, 백관(百官)에게 회장(會葬)하도록 명(命)하였습니다."

하니, 명하여 의정부(議政府)·영돈녕(領敦寧) 이상, 육조(六曹)·홍문관(弘文館)에 의논하게 하였다. 정창손(鄭昌孫)·윤필상(尹弼商)은 의논하기를

"대부(大夫)가 회장(會葬)함은 옛적에도 그 법(法)이 있었으나, 모두 한때의 특은(特恩)이고, 만세(萬世)에 상행(常行)하는 법전은 아니었습니다. 만일 옛 법을 행하고자 하면, 훈로 중신(勳勞重臣)의 죽음에만 회장(會葬)하도록 명하여 이수(異數)350) 를 보이게 하소서."

하고, 한명회(韓明澮)·심회(沈澮)는 의논하기를,

"춘추(春秋)351) ·한(漢)·당(唐)·고려(高麗) 때에 대신(大臣)의 죽음에 백관(百官)이 회장(會葬)한 글이 있으니, 그 대신(大臣)을 공경하는 예(禮)가 중하였습니다. 그러나 대신(大臣)의 장소(葬所)가 혹 멀리 하룻밤을 지내야 할 곳에 있으면 백관이 일을 폐(廢)하고 회장(會葬)할 수 없으니, 다만 출장(出葬)하는 날에 각사(各司)의 1원(員)이 문밖에서 조송(祖送)함이 어떠하겠습니까?"

하고, 이극배(李克培)·윤호(尹壕)는 의논하기를,

"대신(大臣)의 죽음에 백관으로 하여금 회장(會葬)하게 함은 그 뜻이 매우 만족할 만 합니다. 그러나 한(漢)나라의 제준(祭遵)과 당(唐)나라의 위징(魏徵)과 고려(高麗)의 강감찬(姜邯贊) 등은 모두 큰 공덕(功德)이 있는 까닭으로 일시(一時)의 특명(特命)으로 회장(會葬)하게 하여 총이(寵異)를 보였을 뿐입니다. 아조(我朝)에서는 대신(大臣)의 죽음에 혹 치부(致賻)하고 혹 예장(禮葬)하게 하여 대신(大臣)을 존경하는 예(禮)가 이르지 않음이 없으되, 다만 회장(會葬)의 제도는 조종조(祖宗朝)로부터 행하지 않았으니, 신 등의 뜻으로는 장소(葬所)가 멀면 백관이 회장(會葬)하기 어렵다고 여기나, 만약 장소(葬所)가 가까우면 특명(特命)으로 회장(會葬)하게 한들 어찌 예(禮)에 해롭겠습니까?"

하고, 서거정(徐居正)은 의논하기를,

"예전의 인군(人君)은 대신(大臣)을 우례(優禮)하여, 혹 친림(親臨)하여 문병(問病)하고 혹 친행(親幸)하여 곡림(哭臨)352) 하였으니, 백관(百官)으로 하여금 회장(會葬)하게 함이 예(禮)에 어찌 해롭겠습니까? 다만 대신의 죽음에 회장(會葬)한다고 범칭(泛稱)하게 되면 그 예(禮)가 번거로울 듯하니, 이제 만약 짐작(斟酌)하여 입법(立法)한다면 대신(大臣)으로 이미 삼공(三公)을 역임한 자와 큰 훈로(勳勞)가 사직(社稷)에 있는 자와 종친(宗親)으로 존귀한 데 속하고 명망이 높은 자가 있으면, 임시에 특명(特命)하여 백관(百官)에게 회장(會葬)하게 함으로써 이수(異數)를 보임도 또한 정례(情禮)에 합하겠습니다."

하고, 허종(許琮)은 의논하기를,

"예전에는 대부(大夫)의 장사에 같은 지위에 있는 자가 회장(會葬)하였으니, 진실로 아름다운 뜻이 되지만, 그러나 때가 다르고 일이 다릅니다. 한(漢)나라 이래로부터 의방(依倣)하여 이를 행할 수 없었고, 비록 그 사이에 회장(會葬)한 자가 있더라도 특히 한때의 은수(恩數)에서 나온 것이니, 이제 이에 의거하여 상법(常法)을 정하게 함은 불가합니다. 만약 공(功)이 국가에 있는 자라면, 특별히 백관(百官)으로 하여금 회장(會葬)하게 하여 우례(優禮)를 보이는 것이 진실로 사의(事宜)에 합하겠습니다."

하고, 김겸광(金謙光)은 의논하기를,

"대신(大臣)의 죽음에 온 조정이 회장(會葬)함은 진실로 양법(良法)이 되지만, 그러나 옛날을 상고하면, 회장(會葬)한 자가 많지 않습니다. 그윽이 생각하건대, 특히 한때의 은수(恩數)에서 나온 것뿐이니, 정하여 상법(常法)을 삼을 수 없다고 여깁니다. 만약에 공(功)이 사직(社稷)에 있고 이미 삼공(三公)을 역임한 자라면 임시에 특명(特命)함이 진실로 사의(事宜)에 합하겠습니다."

하고, 조익정(趙益貞)·박안성(朴安性)은 의논하기를,

"대신(大臣)이 졸(卒)하면 이미 조제(弔祭)하도록 하고, 또 관(官)에서 상사(喪事)를 갖추게 하였으니, 은례(恩禮)가 지극합니다. 회장(會葬)하는 거사에 이르러서는 예악(禮樂)이 주(周)나라보다 성(盛)함이 없으되 이런 의식이 나타나 있지 않고, 그 《좌씨전(左氏傳)》에 기록된 바, ‘같은 지위에 있는 자가 이르고 인척되는 자가 이르렀다.’고 한 것은 친척(親戚)과 동료가 스스로 정의(情誼)가 두텁다고 하여 와서 양사(襄事)353) 를 돕는 것뿐입니다. 훈신(勳臣)을 대우함은 한(漢)나라·당(唐)나라가 가장 잘하였는데, 광무(光武)·태종(太宗)이 제준(祭遵)·위징(魏徵)에게는 조제(弔祭)한 데 지나지 않을 따름이었습니다. 고려(高麗)에서 강감찬(姜邯贊)·이주좌(李周佐)·최사추(崔思諏)의 죽음에 백관으로 하여금 회장(會葬)하게 하였으되 3인 이외에는 듣지 못하였으니, 이것도 또한 한 때의 은수(恩數)입니다. 또 지금은 고향에 귀장(歸葬)하니 도성(都城)과의 거리가 매우 먼 자는 어찌 온 조정이 가서 순월(旬月)354) 을 지낼 수가 있겠습니까? 회장(會葬)하는 거사는 형세가 불편(不便)함이 있습니다."

하고, 어세공(魚世恭)·이공(李拱)·이칙(李則)은 의논하기를,

"대신(大臣)의 죽음에 백관(百官)으로 하여금 회장(會葬)하게 함은 역대(歷代)의 제왕(帝王)이 간혹 이를 행하였으나, 이것은 상전(常典)이 아닙니다. 이러므로 조종(祖宗)의 우례(優禮)가 이르지 않은 것이 없으되, 《오례의(五禮儀)》 주(註)에는 다만 거애(擧哀)하는 것만 기재하고 백관이 회장하는 글은 없는데, 이는 선왕(先王)이 미처 겨를을 내지 못한 법전이 아니니, 한결같이 《오례의(五禮儀)》 주(註)에 의하소서."

하고, 이파(李坡)·이세좌(李世佐)·이숙감(李叔瑊)은 의논하기를,

"국가에서 대신(大臣)의 죽음에 철조(輟朝)하고, 관(官)에서 장사(葬事)를 갖추게 하며, 삼공(三公)이면 거애(擧哀)하고 그 발인(發引)에는 도문(都門) 밖에서 치전(致奠)하니, 대신(大臣)을 후하게 예우(禮遇)하여 시종(始終)의 은혜를 온전히 한 것입니다. 만약에 백관(百官)이 회장(會葬)하면 그 예(禮)가 지극히 융성하고 그 일이 지극히 중하니, 혹 특별한 공훈과 큰 덕이 있어 족히 생민(生民)을 윤택(潤澤)하게 하고 국가(國家)의 안위(安危)에 관계된 자이면 역대(歷代) 및 전조(前朝)에서도 때때로 있었지만, 그러나 모두 인주(人主)의 한때의 특별한 은혜에서 나왔으니, 만약에 이를 예(例)로 삼아 상사(常事)를 삼는다면 매우 융성한 예(禮)와 매우 거대한 일을 사람에게 베풀게 되어 사람이 불편(不便)할까 두렵습니다."

하고, 이극증(李克增)·김자정(金自貞)·권정(權侹)·이육(李陸)은 의논하기를,

"회장(會葬)하는 예(禮)는 예로부터 있었으니, 진실로 두터운 풍속입니다. 그러나 장소(葬所)가 만약 도성(都城)에서 가까우면 고례(古例)를 따라 행하는 것도 무방하지만, 만약 먼 곳에 있는데 회장(會葬)한다면 왕래(往來)하는 즈음에 직사(職事)를 광폐(曠廢)355) 할 뿐만 아니라, 공돈(供頓)하는 비용도 심함이 있을 것입니다. 더구나 선왕(先王)·선후(先后)의 상(喪)에 있어서도 제도 감사(諸道監司)가 친히 오지 아니하고 도사(都事)·수령(守令)으로 하여금 진위(陳慰)하게 하고 회장(會葬)하였는데, 대신의 죽음에 백관이 회장하는 거사는 실로 행하기 어렵습니다."

하고, 어세겸(魚世謙)·이경동(李瓊仝)·변수(邊修)는 의논하기를,

"대신(大臣)의 죽음에 백관으로 하여금 회장(會葬)하게 함은 정법(情法)에 진실로 후(厚)하며, 예(禮)는 인정(人情)을 연유하였으므로 옳지 않은 것이 없지만, 그러나 고문(古文)에는 ‘대부(大夫)는 3개월 만에 장사지내는데, 같은 지위에 있는 대부가 참석한다.’는 글만 있으니, 회장(會葬)하는 절목(節目)도 또한 상세할 수 없습니다. 한(漢)나라·당(唐)나라에 이르러서 비록 회장(會葬)하는 말은 있으나 또한 회장하는 의식은 없으니, 이는 진실로 전대(前代)에 없었던 일이며, 전조(前朝)에 이르러서는 명경(名卿)과 중신(重臣)이 많지 않음이 아니지만 회장(會葬)한 예(禮)는 겨우 하나 둘만이 상고할 만하니, 아마도 특별히 당시 인군의 명(命)에서 나온 것이므로 끌어서 상례(常例)를 삼음은 불가한 줄로 압니다. 또 이제 대신(大臣)이 출장(出葬)하는 곳이 아주 옛날과 같이 조역(兆域)356) 이 일정함이 있는 것이 아니고, 그 때 가서 택지(擇地)하므로 원근(遠近)이 가지런하지 않으며, 심한 자는 혹 향읍(鄕邑)에서 10여 일의 노정에 장사지내기도 합니다. 가까이서 장사지내는 자도 백사(百司)의 직(職)을 폐(廢)하고서 여러 날을 지내며 회장(會葬)할 수 없는데, 더구나 10여 일이겠습니까? 그윽이 생각하건대, 이것은 비록 입법하여 상례(常例)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또한 군상(君上)께서 대신(大臣)을 대우하는 시종(始終)의 후례(厚禮)는 진실로 갑자기 폐할 수 없으니, 그 공훈(功勳)과 덕업(德業)이 있어, 군상(君上)께서 공경하는 중위 융작(重位隆爵)357) 으로 지극히 여러 사람의 물망에 윤협(允協)한 자이면, 한때에 예관(禮官)의 계품(啓稟)으로 군상(君上)이 특별히 명하는 데 달려 있을 뿐입니다."

하고, 권찬(權攅)·홍이로(洪利老)·유윤겸(柳允謙)은 의논하기를,

"삼가 살펴보건대, 백관(百官)이 대신(大臣)을 회장(會葬)하는 예(禮)는 한때의 특명에서 나온 것이고 일정한 제도는 아닙니다. 지금의 회장(會葬)은 혹 1일 노정(路程), 2·3일 노정(路程)이나, 백관(百官)이 나라를 비우고서 회장(會葬)하러 갈 수는 없으니, 신 등의 생각으로는 원훈 대신(元勳大臣)으로 그 은수(恩數)를 중히 하지 않을 수가 없는 자만 발인(發引)하는 날을 당하여 다만 그 집에 모이어 전송했으면 합니다."

하고, 이명숭(李命崇)·안침(安琛)·김흔(金訢)·조위(曺偉)·박문간(朴文幹)·김응기(金應箕)·성희증(成希曾)·민보익(閔輔翼)·박증영(朴增榮)은 의논하기를,

"한(漢)나라 제준(祭遵)의 상(喪)에는 조서(詔書)로 백관(百官)을 보내어 상소(喪所)에 모이게 하였고, 당(唐)나라 위징(魏徵)의 상(喪)에는 조서로 내외의 백관(內外百官)을 조정에 모아서 부상(赴喪)하게 하였으며, 곽자의(郭子儀)의 상(喪)에는 조서로 군신(群臣)에게 가서 조상하게 하였는데, 이 수인(數人)은 모두 한때에 공덕(功德)이 걸연(傑然)한 자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부상(赴喪)하는 데에 그치고 백관(百官)이 회장(會葬)한 예(禮)는 없었습니다. 오직 고려(高麗)의 강감찬(姜邯贊)·이주좌(李周佐)·최사추(崔思諏)의 상(喪)에는 백관에게 명하여 회장(會葬)하게 하였지만, 그러나 고제(古制)에는 모두 이 예(禮)가 없으니, 무엇을 근거한 것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신 등은 대신(大臣)으로 공덕(功德)이 있는 자는 백관(百官)에게 특명(特命)하여 부조(赴弔)하게 해야지, 드러내어 상전(常典)을 삼는 것은 불가하다고 여깁니다."

하니, 승정원(承政院)에 전교하기를,

"한(漢)나라·당(唐)나라·고려(高麗) 때에 회장(會葬)한 자는 수인(數人)에 그칠 뿐이다. 그 큰 공덕이 있는 자는 회장(會葬)하도록 특명(特命)하였는데 〈이것은〉 바로 한때의 은수(恩數)이니, 드러내어 상전(常典)을 삼을 수는 없는 것이다. 지금 의논하기는 혹 회장함이 옳다 하고, 혹은 문밖에서 조송(祖送)함이 옳다고 하는데, 회장(會葬)하는 것은 거행하기가 어려울 것 같으니, 조송(祖送)하는 절목(節目)을 의논하여 정하고, 임시(臨時)하여 특별히 행함이 어떠하겠느냐?"

하니, 승지(承旨) 등이 아뢰기를,

"성상의 하교가 진실로 마땅합니다."

하였다.

  • [註 349] 회장(會葬) : 장사 지내는데 참여함.
  • [註 350] 이수(異數) : 특별한 예우(禮遇).
  • [註 351] 춘추(春秋) : 춘추 시대.
  • [註 352] 곡림(哭臨) : 임금이 죽은 신하를 몸소 조문함.
  • [註 353] 양사(襄事) : 장사지내는 일.
  • [註 354] 순월(旬月) : 열흘이나 달포 가량.
  • [註 355] 광폐(曠廢) : 오랫동안 폐함.
  • [註 356] 조역(兆域) : 묘(墓)가 있는 곳. 영역(瑩域).
  • [註 357] 중위 융작(重位隆爵) : 고관 대작(高官大爵).

원문

○甲寅/弘文館啓: "按《春秋傳》, 大夫三月而葬, 同位至。 後漢 祭遵卒, 詔遣百官, 先會喪所, 車駕素服臨之。 唐 魏徵卒, 詔內外百官朝集, 使皆赴喪。 高麗 姜邯賛、李周佐、崔思諏卒, 命百官會葬。" 命議政府、領敦寧以上、六曹、弘文館議之。 鄭昌孫、尹弼商議: "大夫會葬, 古有其法, 皆一時特恩, 非萬世常行之典。 如欲行古法, 特於勳勞重臣之卒, 命會葬, 以示異數。" 韓明澮、 沈澮議: "春秋、漢、唐、高麗時, 大臣之卒, 有百官會葬之文, 其敬大臣之禮重矣。 然大臣葬所, 或遠在經宿之地, 則百官不可廢事會葬, 但出葬之日, 各司一員, 於門外祖送何如?" 李克培、尹壕議: "大臣之卒, 令百官會葬, 其意甚盛。 然漢之祭遵、唐之魏徵、高麗 姜邯贊等, 皆有大功德, 故一時特命會葬, 示寵異耳。 我朝於大臣之卒, 或致賻, 或禮葬, 尊禮大臣, 無所不至, 但會葬之制, 自祖宗朝, 而不行。 臣等意以爲 ‘葬所遠, 則百官會葬爲難。’ 若葬所近, 則特命會葬, 何害於禮?" 徐居正議: "古之人君, 優禮大臣, 或親臨問疾, 或親幸哭臨, 使百官會葬, 於禮何妨? 但大臣之卒, 泛稱會葬, 則其禮似繁, 今若斟酌立法, 大臣已行三公者, 有大勳勞於社稷者, 宗親之有屬尊望重者, 臨時特命百官會葬, 以示異數, 亦合情禮。" 許琮議: "古者大夫之葬, 同位會葬, 誠爲美意, 然時異事殊。 自漢以來, 不能倣而行之, 雖間有會葬者, 特出於一時恩數, 今不可據此定爲常法。 若有功於國家者, 特令百官會葬, 以示優禮, 誠合事宜。" 金謙光議: "大臣之卒, 擧朝會葬, 誠爲良法, 然稽之於古, 會葬者不多。 竊謂: ‘特出於一時恩數, 不可定爲常法。’ 若功在社稷, 已行三公者, 臨時特命, 實合事宜。" 趙益貞、朴安性議: "大臣之卒, 旣令弔祭, 又許官庇喪事, 恩禮至矣。 至於會葬之擧, 則禮樂莫盛於周, 而不著此儀。 其左氏所記 ‘同位至, 外姻至’ 者, 親戚、僚友, 自以情好, 而來助襄事耳。 待遇勳臣, 漢、唐爲最, 而光武、太宗之於祭遵、魏徵, 不過弔祭而已。 高麗於姜邯贊、李周佐、崔思諏之卒, 令百官會葬, 而三人之外無聞焉。 是亦一時恩數。 且今歸葬於鄕, 距都城甚遠者, 安可擧朝而往, 經歷旬月乎? 會葬之擧, 勢有所不便。" 魚世恭、李拱、李則議: "大臣之卒, 令百官會葬, 歷代帝王, 間或行之, 此非常典也。 是以祖宗優禮, 無所不至, 而《五禮儀註》, 但載擧哀, 無百官會葬之文。 此非先王未遑之典, 一依《五禮儀註》。" 李坡、李世佐、李叔瑊議: "國家於大臣卒, 輟朝官庇葬事, 三公則擧哀, 其發引也, 致奠於都門外, 所以優禮大臣, 以全始終之恩。 若百官會葬, 則其禮極隆, 其事至重, 或有奇勳、碩德, 足以澤潤生民, 繫國家安危者, 則歷代及前朝, 往往有之, 然皆出於人主一時之殊恩。 若例以爲常事, 則以極隆之禮、至大之事, 施之於人, 人恐不便。" 李克增、金自貞、權侹、李陸議: "會葬之禮, 自古有之, 誠爲厚風。 然葬所若近都城, 則依古例, 行之無妨。 若在遠處而會葬, 則往來之際, 非徒曠廢職事, 供頓之費, 又有甚焉。 況在先王。 先后之喪, 諸道監司不親來, 而令都事、守令, 陳慰會葬, 則大臣之卒, 百官會葬之擧, 實難行之。" 魚世謙、李瓊仝、邊脩議: "大臣之卒, 令百官會葬, 於情法實厚。 禮緣人情, 無所不可, 然古文, 徒有 ‘大夫三月而葬, 同位至’ 之文, 會葬節目, 亦不可詳。 至漢、唐, 雖有會葬之語, 亦無會葬之儀, 此固前代所無之事。 至於前朝, 名卿、重臣不爲不多, 而會葬之禮, 纔有一二之可考。 恐特出於時君之命, 不可援以爲常例。 且今大臣出葬之所, 非如古昔兆域有常, 臨時擇地, 遠近不齊, 甚者或葬於鄕邑十餘日之程者。 近者且不可廢百司之職, 而經日會葬, 況十餘日乎? 竊意, 此雖不可立爲常例, 然亦君上待大臣, 始終之厚禮, 誠不可頓廢, 其有功勳、德業, 君上所敬重位、隆爵, 極允協僉望者, 此在一時禮官之啓稟, 君上所特命耳。" 權攅、洪利老、柳允謙議: "謹按, 百官會葬大臣之禮, 特出一時之命, 非爲常制。 今之會葬, 或一日之程, 二三日之程, 百官不可空國, 而往會。 臣等以爲, ‘元勳大臣, 其恩數不可不重者, 當發引之日, 但令會其家送之。" 李命崇、安琛、金訢、曺偉、朴文幹、金應箕、成希曾、閔輔翼、朴增榮議: "漢 祭遵之喪, 詔遣百官會喪所; 唐 魏徵之喪, 詔內外百官, 朝集使赴喪; 郭子儀之喪, 詔群臣往弔。 玆數人者, 皆一時功德傑然者也, 而止於赴喪, 無百官會葬之禮。 唯高麗 姜邯贊、李周佐、崔思諏之喪, 命百官會葬, 然於古制, 皆無此禮。 未知何所據也。 臣等以爲 ‘大臣之有功德者, 特命百官赴弔,’ 不可著爲常典。" 傳于承政院曰: "漢、唐、高麗時, 會葬者數人而止耳。 其有大功德者, 則特命會葬, 乃一時恩數, 不可著爲常典也。 今議或云可會葬, 或云宜於門外祖送, 會葬則似難擧行。 祖送節目議定, 臨時特行, 若何?" 承旨等啓曰: "上敎允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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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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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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