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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159권, 성종 14년 10월 29일 戊子 4/5 기사 / 1483년 명 성화(成化) 19년

여러 신하들과 함께 정희 왕후의 상제(喪祭)에 대해 의논하다

국역

명하여 의정부(議政府)·육조(六曹)의 당상관과 홍문관(弘文館)·대간(臺諫)을 불러서 정희 왕후(貞熹王后)의 상제(喪制)를 의논하게 하니, 정창손(鄭昌孫)·이파(李坡)·한치례(韓致禮)·김겸광(金謙光)·어세공(魚世恭)·어세겸(魚世謙)·정괄(鄭佸)·조익정(趙益貞)·이경동(李瓊仝)이 의논하기를,

"정희 왕후께서는 인자하시고 착하셔서 세조(世祖)를 도와 태평 시대를 이루었으니, 깊은 어짊과 후한 은혜는 사람들의 살과 뼈를 스며듭니다. 더욱이 성궁(聖躬)1153) 을 강보(襁褓) 속에서 기르셨으며, 대책(大策)을 위의(危疑)한 때에 정하였으니, 그 융성한 공렬(功烈)은 더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승하하시던 날에 온 조정이 비통(悲痛)해 하였으니, 누가 삼년상을 다하고자 아니하였겠습니까? 다만 생각하건대, 임금과 어버이의 상(喪)은 정해진 제도가 있으니, 공덕(功德)의 높고 낮음과 인정(人情)의 후하고 박함으로써 가볍고 중하게 할 수 없습니다.

삼가 살피건대, 《예기(禮記)》 복문(服問)에 이르기를, ‘임금의 어머니가 부인(夫人)이 아니면 여러 신하는 복(服)이 없고, 오직 근신(近臣)과 복종(僕從)·참승(驂乘)만이 따라서 복을 입는데, 오직 임금이 입는 것을 입는다.’고 하였는데, 소(疏)1154) 에 이르기를, ‘임금의 어머니가 적부인(嫡夫人)이면 여러 신하가 기년(期年)을 입고, 적부인이 아니면 임금이 시복(緦服)을 입기 때문에, 여러 신하는 복이 없는 것이다. 근신(近臣)은 엄시(閹寺)1155) 의 소속이고, 복종(僕從)은 수레를 모는 자이며, 참승(驂乘)은 수레 오른쪽에 있는 자로서, 오직 임금이 입는 복을 입는다는 것은 임금이 시복을 입으면 이들도 시복을 입는다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단궁(檀弓)》1156) 에 이르기를, ‘임금의 어머니와 아내의 상(喪)에는 거처와 언어와 음식을 간(衎)1157) 하게 한다.’고 하였는데, 주(註)에 이르기를, ‘군모(君母)와 군처(君妻)는 비록 모두 소군(小君)이지만 모두 자최 부장기(齊衰不杖期)1158) 의 복(服)을 입는다. 그러나 은의(恩義)가 얕기 때문에 거상(居喪)에 스스로 몸을 처신하기를 이와 같이 한다.’고 하였습니다. 《오례의(五禮儀)》의 주(註)도 이로 인하여 기년(期年)의 제도를 정한 것입니다.

대저 《예경(禮經)》1159) 은 성인(聖人)이 정한 제도이고, 《오례의》 주는 선왕(先王)이 정한 법인데, 이제 만약 왕후(王后)의 3년상을 행할 경우에 예문(禮文)에 의거하면 성인의 정한 제도가 아니고, 《오례의》 주에 의거하면 선왕의 정한 법이 아니며, 역대(歷代)를 상고해 보아도 의거할 바가 없으니, 어찌 공덕의 많고 적은 것과 인정의 후하고 박한 것으로써 가볍게 변경할 수 있겠습니까? 혹 말하기를, ‘예(禮)는 인정에 인연하여 덜거나 보태는 것이니, 박하게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후하게 하여 실례(失禮)하는 것이 낫다.’고 한다면, 신자(臣子)는 군부(君父)에게 그 정이 진실로 무궁(無窮)하니, 뒤에 오는 상제(喪制)도 무궁할 것입니다. 하늘처럼 무궁한 어버이의 은혜를 갚고자 하는 마음이 어찌 3년에 그치고, 어찌 기년(期年)에 그치겠습니까? 성인(聖人)이 단정한 까닭도 이와 같은데, 어찌 바꿀 수 있겠습니까? 또 가법(家法)은 만세에 전하는 것이며 상례(喪禮)는 더욱 중한 것인데, 이제 만약 옛 제도를 변경하면 후세 자손이 또한 이 예(例)에 의거하여 비록 고비(考妣)1160) 의 상(喪)에서도 인정으로 인하여 낮추고 높일 것이니, 법을 허물어 뜨리는 폐단이 어찌 오늘날에 시작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것도 미리 염려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하고, 한명회(韓明澮)·윤필상(尹弼商)·이극배(李克培)·윤호(尹壕)는 의논하기를,

"정희 왕후의 상(喪)은 《예경》에 의거하면 마땅히 기년(期年)의 제도에 따를 것이나, 예(禮)는 인정에 인연하는 것이므로 혹시 권도(權道)에 따라 적당하게 변경시키는 때도 있습니다. 정희 왕후는 공덕이 사람들에게 있으므로 다른 여후(女后)에 비할 것이 아니니, 삼년상을 행하여도 해로울 것은 없습니다."

하였으며, 심회(沈澮)·서거정(徐居正)은 의논하기를,

"정희 왕후의 상(喪)에 전하께서 이미 3년의 제도를 행하시니 온 나라 신하로서 누가 3년상을 행하고자 하지 아니하겠습니까? 다만 성인(聖人)이 《예경》을 만들어서, 국군(國君)은 3년이고 국모(國母)는 기년이라고 하여 강쇄(降殺)함이 명백하니, 이는 만세에 행하여 폐단이 없는 것인데, 만약 선왕(先王)·선후(先后)의 공덕의 우열(優劣)로 인하여 그 복(服)을 올리고 낮춘다면, 이는 아들이 아버지를 논하고 신하가 임금을 논하여 올리고 낮추는 데 반드시 단정하기 어렵고 처리하기 어려운 때가 있을 것이니, 가볍게 《예경》을 고치는 것은 뒤의 폐단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이제 정희 왕후의 상(喪)은 앞에서 정한 의논에 의하여 시행하는 것이 어떻하겠습니까?"

하였으며, 홍응(洪應)·허종(許琮)은 의논하기를,

"대저 예(禮)는 인정에 근본하므로 때에 따라서 덜거나 보태어 할 수 있으며, 한가지를 고집하여 논할 수 없습니다. 《예경》과 우리 나라 《오례의》의 주에는 내상(內喪)은 기년(期年)이라는 글이 있으나, 이는 상리(常理)로 논한 것입니다. 임금은 어리고 나라는 의심스러워 국가가 어려운 즈음을 당하여 여주(女主)로서 정사를 청단(聽斷)하는 것은 부득이한 데에서 나온 것인데, 우리 정희 왕후께서는 거룩한 덕으로 성상의 몸을 보호하여 종묘·사직을 편히 하였으니, 그 아름다운 덕과 아름다운 정사는 이름지어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모후(母后)가 정사를 청단한 것은 이미 비상시에 나온 것이니, 그 상제(喪制)도 보통 제도에 국한할 수 없습니다. 의논하는 자는, 공덕의 후박(厚薄)으로써 떳떳한 제도를 변경시킬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묘제(廟制)에도 조(祖)는 공이 있고 종(宗)은 덕이 있으며, 문세실(文世室)·무세실(武世室)은 백 년이 되더라도 옮기지 아니하는 것이 있으니, 자손이 조종(祖宗)에게 어찌 공덕을 논하지 아니하겠습니까? 정희 왕후의 상제를 3년으로 시행하여도 해로울 것은 없습니다."

하고, 이맹현(李孟賢)·이칙(李則)·이세필(李世弼)·유윤겸(柳允謙)은 의논하기를,

"대저 부모의 상제(喪制)는 본래 등급이 있으니, 선왕(先王)이 예(禮)를 제정한 것은 하늘과 땅이 이루어진 것과 같아서 만세토록 바꾸지 못하는 떳떳한 법입니다. 또 《오례의》의 주(註)는 조종(祖宗)께서 정한 바인데 공덕이 있고 없는 것으로써 더하고 덜어서 변경할 수 없으니, 일체 예문(禮文)에 의하여 시행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고, 김자정(金自貞)·이육(李陸)·박안성(朴安性)은 의논하기를,

"《예기(禮記)》에, ‘임금의 어머니와 임금의 아내는 자최 부장기(齊衰不杖期)의 복(服)을 입는다.’고 하였고, 《오례의》에는 내상(內喪)에 자최 기년(齊衰期年)인데 13개월의 연제(練祭) 후에는 길복(吉服)을 입는다고 하였습니다. 대저 예라는 것은 인정으로 인연하여 제도를 정해서 천하 만세에 바뀌지 아니하는 떳떳한 법을 삼는 것이고, 《오례의》는 우리 세종 대왕(世宗大王)께서 옛 제도를 널리 상고하여 변경시킬 수 없는 법을 정한 것입니다. 선왕이 제정한 예가 이미 저와 같고 조종께서 이룩한 법이 또 이와 같은데, 어찌 공덕의 있고 없음으로써 더하고 덜하겠습니까? 이제 정희 왕후께서 공덕이 비록 높을지라도 상제(喪制)를 어찌 대왕(大王)과 더불어 같게 할 수 있겠습니까? 예전 송(宋)나라 고황후(高皇后)·조황후(曹皇后)·향황후(向皇后)·맹황후(孟皇后)는 모두 수렴 청정(垂簾聽政)1161) 하여 어진 덕을 일컬었는데, 당시의 여러 신하가 상복(喪服)을 더하였다는 것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전하께서 지성으로 추모(追慕)하여 무릇 송종(送終)1162) 의 대사(大事)에 그 지극함을 쓰지 아니한 바가 없었고, 상복을 입는 데 이르러서는 반드시 등급(等級)을 더하고자 하시니, 여러 신하들이 어찌 전하의 정성과 왕후의 덕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기년복(期年服)에 마음이 편하겠습니까? 그러나 공덕으로써 상(喪)을 의논함은 정(情)에 미안하고, 왕후를 대왕에 견주는 것은 법에 근거가 없습니다. 이른바 선왕이 제정한 예법은 지나치게 할 수도 없고 또한 감히 미치지 못하게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하고, 노공필(盧公弼)·김질(金耋)·곽은(郭垠)·양순경(梁舜卿)은 의논하기를,

"신하와 아들이 임금과 어버이의 상(喪)에 정은 비록 다할 수 없으나, 예에 정한 제도가 있으므로 지나쳐도 옳지 못하고 미치지 못하여도 옳지 못합니다. 《예기(禮記)》를 상고하건대, ‘임금의 어머니와 임금의 아내는 모두 자최 기년(齊衰期年)을 입는다.’고 하였으니, 이는 성인(聖人)이 인정에 맞추어서 글을 만들어 만세의 떳떳한 법으로 삼은 것입니다. 정희 왕후께서 성궁(聖躬)을 보호하시고 서정(庶政)을 참결(參決)하였으므로 공덕의 성대함을 종사(宗社)가 힘입었으니, 신자(臣子)가 비록 3년 복을 입더라도 그 정의(情義)에는 진실로 부족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상(喪)은 내외(內外)의 분변이 있고 예(禮)는 융쇄(隆殺)1163) 의 구분이 있는데, 참으로 한때의 정(情)에 따라 예로써 조절하지 아니하고 한갓 공덕과 은혜의 많고 적음으로써 경중을 둔다면 이는 아들이 그 어버이에 대해 의논할 수 있고 신하가 그 임금에 대해 의논할 수 있는 것이니, 성인이 예를 제정한 본의가 아닙니다. 또 성인이 부모의 상(喪)을 제정하되, 참최(斬衰)1164) ·자최(齊衰)의 구별이 있는 것은, 진실로 하늘에는 두 개의 해가 없고 나라에는 두 임금이 없으며 가정에는 두 주인이 없어서 한 사람이 다스린다는 뜻입니다. 이제 왕후의 공덕이 높다는 것으로 대왕과 같이하여 등급의 차별이 없다면 대의에 미안함이 있습니다."

하고, 박계성(朴繼姓)·안진생(安晉生)은 의논하기를,

"《예기》를 상고하건대, ‘임금의 어머니와 임금의 아내는 자최 부장기(齊衰不杖期)의 복(服)을 입는다.’고 하였습니다. 옛 성현(聖賢)이 인정을 참작하여 제도를 정한 것인데 지나칠 수도 없고 미치지 못할 수도 없습니다. 만약 공덕의 경중과 은혜의 있고 없음으로써 높이고 낮추는 것이 있다면, 이는 신하와 아들이 임금과 아버지에 대해서 의논하는 것이니, 행할 수 없을 듯합니다. 하물며 군신(群臣)들이 기년(期年) 후에는 길복(吉服)을 입는데 궐내(闕內)에서는 천담복(淺淡服)1165) 을 입는 것은 한때의 권제(權制)1166) 이며 옛 법은 아닙니다. 신 등은 삼가 원하건대, 일체 예문(禮文)에 따르소서."

하였으며, 성건(成健)·김흔(金訢)·민사건(閔師騫)·안윤손(安潤孫)·박문간(朴文幹)·송질(宋軼)·이균(李均)·김수동(金壽童)·이거(李琚)·황계옥(黃啓沃)·성희증(成希曾)·민보익(閔輔翼)은 의논하기를,

"삼가 상고하건대, 《예기(禮記)》의 소(疏)에 이르기를, ‘임금의 어머니와 임금의 아내는 비록 모두 소군(小君)일지라도 모두 자최 부장기(齊衰不杖期)를 입는다.’고 하였고, 또 이르기를, ‘임금의 어머니가 적부인(嫡夫人)이면 여러 신하가 기년복(期年服)을 입는다.’고 하였습니다. 신 등이 그윽이 생각하건대, 상기(喪紀)는 선왕(先王)이 인정을 참작해서 적중한 제도를 세우고 조절하여 천하 후세로 하여금 감히 넘치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자기의 정(情)으로써 더하거나 줄이는 바가 있지 아니하였으니, 자하(子夏)1167) ·민자건(閔子騫)1168) 이 아들이 되어서도 감히 지나치게 하지 못하고 감히 미치지 않게 하지 못한 것이 이것입니다. 그리고 공덕으로써 경중을 두지 아니하니, 문왕(文王)·무왕(武王)·유왕(幽王)·여왕(厲王)이 임금이 되었어도 보태거나 줄이지 못한 것이 이것입니다. 이제 정희 왕후의 공덕이 비록 성할지라도 왕후로서 대왕의 제도를 따르는 것은 잘못입니다. 만약 공덕이 성한 왕후를 위하여 상복(喪服)을 대왕의 제도와 같이 입으면 공덕이 성한 임금을 위해서는 무슨 복(服)을 입어야 마땅하겠습니까? 한 번 그 단서를 열면 후세의 임금이 장차 이르기를, ‘아무 왕후는 아무 공덕이 있다.’고 하여 반드시 그 제도를 더하고자 할 것이며, 마침내는 정(情)을 따라 예(禮)를 폐하는 데 이르러 선왕의 제도를 변경시키고 어지럽게 한 뒤에야 말 것이니, 어찌 공과 덕으로써 만세에 통용하는 상제(喪制)를 가볍게 고칠 수 있겠습니까? 전하께서 슬퍼하고 사모하심이 지극한 정성에서 나와서 진실로 성상의 마음에 차마 하지 못하는 바가 있으나, 예(禮)로써 정(情)을 억제하여 선왕의 중용(中庸)의 도(道)에 합하게 하는 것이 바로 그 정성을 다하는 것입니다."

하였는데, 전교하기를,

"재상의 의논은 비록 이와 같더라도, 나는 생각하건대, 정희 왕후는 임금이 어리고 나라가 의심스러울 때를 당하여 꾀를 내고 계책을 결단하여 종사(宗社)를 편히 하였으니, 그 공이 매우 크다. 비록 상제(喪制)가 《예경》에 실려 있어서 줄이거나 보탤수 없다고 할지라도 공이 있는 자는 조(祖)로 하고 덕이 있는 자는 종(宗)으로 하였으니, 어찌 공덕을 의논할 것이 없겠는가? 왕후의 공덕이 지극히 중대한데 재상들은 어찌 3년의 제도를 따르고자 하지 아니하는가? 또 방지(旁支)1169) 가 들어가서 대통(大統)1170) 을 이으면 그 친부모를 위해서는 복(服)이 없으니, 이것은 바로 형편에 따라 중도(中道)를 쓰는 방법이다. 지금도 형편에 따라 삼년상을 행하는 것이 어떠하겠는가?"

하니, 정창손(鄭昌孫)과 이파(李坡)가 아뢰기를,

"상제는 만세토록 바꾸지 못하는 정한 예(禮)인데, 공덕의 높고 낮음으로써 더하고 줄일 수 없습니다. 만약 공덕을 논한다면 가령 공덕이 없는 임금은 상제도 줄일수 있겠습니까? 이와 같으면 신하로써 임금의 공덕을 의논하고 자식으로서 아버지의 공덕을 의논할 것이니, 말류(末流)의 폐단을 구제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였는데, 전교하기를,

"임금이 훙(薨)하면 반드시 시호(諡號)를 세우는데, 어찌 신자(臣子)가 군부(君父)를 의논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정희 왕후의 공덕은 지극히 중하니 한명회와 홍응의 의논을 따라서 삼년상을 행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다.

사신(史臣)이 논평하기를, "성인(聖人)이 예(禮)를 제정하여 내외(內外)의 상(喪)에 본래 높고 낮음이 있어서 사사로운 뜻으로써 문란하게 할 수가 없게 하였는데, 조공 종덕(祖功宗德)의 말이 여기에 무슨 관계가 있어서 부회(附會)하여 말한 것인가? 심하다. 홍응이 전례(典禮)를 강구하지 못함이여! 후세의 왕후 집안의 세력이 확대된 조짐을 홍응이 반드시 열지 아니하였다고는 못할 것이다. 이때 우찬성(右贊成) 허종(許琮)은 의논이 홍응과 같았었다가 홍문관(弘文館)의 소(疏)를 보고 망연 자실(茫然自失)하여 말하기를, ‘내가 지나쳤다.’고 하고는 즉시 상소하여 스스로 탄핵하니, 듣는 자가 그 넓은 도량에 탄복하였다. 세상에는 자기 의견을 고집하기를 좋아하여 비록 그 잘못을 알더라도 남을 이기기를 힘써서 나라 일을 그르치는 자가 많이 있는데, 허종은 인신(人臣)의 본보기[矜式]가 될 만하다고 하겠다." 하였다.

  • [註 1153] 성궁(聖躬) : 임금의 몸.
  • [註 1154] 소(疏) : 주(註).
  • [註 1155] 엄시(閹寺) : 환관(宦官).
  • [註 1156] 《단궁(檀弓)》 : 《예기(禮記)》의 편명(篇名).
  • [註 1157] 간(衎) : 자득(自得)하는 모양을 일컬음.
  • [註 1158] 자최 부장기(齊衰不杖期) : 삼베로 지은 아래 옷 단을 접어서 꿰맨 상복(喪服)을 입고, 상장(喪杖)을 짚지 않고 한 돌 동안만 입는 복임.
  • [註 1159] 《예경(禮經)》 : 《예기(禮記)》.
  • [註 1160] 고비(考妣) : 돌아간 아버지와 어머니.
  • [註 1161] 수렴 청정(垂簾聽政) : 임금이 어려서 왕대비나 대왕 대비가 정사를 대리함.
  • [註 1162] 송종(送終) : 장사에 관한 온갖 일.
  • [註 1163] 융쇄(隆殺) : 높이는 것과 줄이는 것.
  • [註 1164] 참최(斬衰) : 오복(五服)의 하나. 거친 삼베로 짓는데, 아랫단을 꿰매지 않은 상복(喪服)임.
  • [註 1165] 천담복(淺淡服) : 제사 때에 입는 엷은 옥색의 옷.
  • [註 1166] 권제(權制) : 임시 사정에 의한 제도.
  • [註 1167] 자하(子夏) : 공자의 제자.
  • [註 1168] 민자건(閔子騫) : 공자의 제자.
  • [註 1169] 방지(旁支) : 지손(支孫).
  • [註 1170] 대통(大統) : 왕위의 계통.

원문

○命召議政府、六曹堂上及弘文館、臺諫, 議貞熹王后喪制。 鄭昌孫、李坡、韓致禮、金謙光、魚世恭、魚世謙、鄭佸、趙益貞、李瓊仝議: "貞熹王后以慈仁明聖, 輔世祖, 致(大)〔太〕 平, 深仁厚澤, 浹人肌骨, 加以育聖躬於襁褓之中, 定大策於危疑之際, 其隆功盛烈, 不可尙已。 故陟遐之日, 擧朝悲痛, 孰不欲思盡三年之喪? 第念君親之喪, 自有定制, 不可以功德之隆殺、人情之厚薄, 爲之輕重也。 謹按《禮記》 《服問》云: ‘君之母, 非夫人, 則群臣無服, 惟近臣及僕、驂乘從服, 唯君所服服也。’ 《疏》曰: ‘君母是適夫人, 則群臣服期, 非夫人, 則君服緦, 故群臣無服也。 近臣, 閹寺之屬; 僕, 御車者; 驂乘, 車右也。 唯君所服服者, 君緦, 則此等人, 亦緦也。’ 《檀弓》曰: ‘居君之母與妻之喪, 居處、言語、飮食, 衎爾’, 註云: ‘君母、君妻, 雖皆小君, 皆服齊衰不杖期, 然恩義則淺矣, 故居其喪, 則自處如此。’ 《五禮儀註》, 亦因此定期年之制。 夫《禮經》, 聖人之定制, 《五禮儀註》, 先王之定法。 今若行王后三年之喪, 據禮文, 則非聖人之定制, 據《儀註》, 則非先王之定法, 稽諸歷代, 又無所據, 豈可以功德之多寡、人情之厚薄, 輕易變更哉? 儻曰: ‘禮緣人情, 而損益, 與其薄也, 寧失於厚’, 則臣子於君父, 其情固無窮, 而後來之喪制, 又無窮矣。 昊天罔極之恩, 其在欲報之心, 奚止於三年, 奚止於期年哉? 而聖人所以斷之者如是, 胡可易哉? 且家法, 當傳萬世, 而喪禮尤爲重。 今若更變舊制, 則後世子孫, 亦據此例, 雖於考妣之喪, 亦因人情, 而爲低昻, 毁法之弊, 豈非權輿於今日乎? 此亦不可不預爲之慮也。" 韓明澮、尹弼商、李克培、尹壕議: "貞熹王后之喪, 據《禮經》, 則當從期年之制。 然禮緣人情, 或有從權適變之時。 貞熹, 功德在人, 非他女后之比, 行三年之喪, 亦無所妨。" 沈澮、徐居正議: "貞熹王后之喪, 殿下旣行三年之制, 擧國臣子, 孰不欲行三年乎? 但聖人制爲《禮經》, 國君而曰三年, 國母而曰期年, 降殺已明, 是可行之萬世, 而無弊。 若因先王、先后功德優劣, 而升降其服, 是以子而議父, 以臣而議君, 於升於降, 必有難斷難處之時, 輕改《禮經》, 恐有後弊。 今貞熹王后之喪, 依前定議施行何如?" 洪應、許琮議: "夫禮本人情, 因時損益而爲之, 不可執一論也。 《禮經》及我朝《五禮儀》註, 有內喪期年之文, 此以常理論也(也)。 當主少國疑、 國家艱難之際, 以女主聽政, 出於不得已。 我貞熹王后, 以聖德, 保護聖躬, 以安宗社, 其美德、美政, 難以名言。 以母后聽政事, 旣出於非常, 則其喪制, 亦不可局於常制。 議者以爲: ‘不可以功德厚薄, 變其常制。’ 然於廟制, 亦有祖有功、宗有德、文世室、武世室, 百世不遷者, 則子孫於祖宗, 亦豈不論其功德哉? 貞熹王后之喪行三年, 亦無所妨。" 李孟賢、李則、李世弼、柳允謙議: "大抵父母喪制, 自有等殺, 先王制禮, 如天連地設, 萬世不易之常法。 且《五禮儀註》, 祖宗所定, 不可以功德有無, 而增損變更也, 一依禮文, 施行何如?" 金自貞、李陸、朴安性議: "《禮》: ‘君母、君妻, 服齊衰不杖期’, 《五禮儀》: ‘內喪, 則齊衰期年, 十三月練祭後, 服吉服。’ 夫禮者, 緣人情定制, 以爲天下萬世不易之常經。 《五禮儀》, 我世宗大王, 博考古制, 定爲不刊之典。 先王制禮旣如彼, 祖宗成憲又如此, 豈以功德有無, 而進退之哉? 今貞熹王后, 功德雖隆, 喪制豈可與大王比竝哉? 昔在宋朝, 高、曺、向、孟, 皆垂簾聽政, 號稱賢德, 未聞當時群臣服喪之加等也。 殿下至誠追慕, 凡送終大事, 無所不用其極, 至於服喪, 必欲加等, 在群臣, 亦豈不念殿下之誠、王后之德, 而安於期年哉? 然以功德議喪, 於情未安, 以王后比大王, 於法無據。 所謂先王制禮, 不敢過, 亦不敢不及者也。" 盧公弼、金耋、郭垠、梁舜卿議: "臣子之於君親之喪, 情雖罔極, 禮有定制, 過之不可, 不及亦不可。 按《禮》曰: ‘君母、君妻, 皆服齊衰期。’ 此聖人稱情立文, 爲萬世之常經者也。 貞熹王后, 保護聖躬, 參決庶政, 功德之盛, 宗社是賴, 臣子雖服三年, 其於情義, 固有所不足, 然喪有內外之辨, 禮有隆殺之分, 苟循一時之情, 不節之以禮, 而徒以功德恩義之多寡, 有所輕重, 則是子可以議其親, 臣可以議其君, 非聖人制禮之本意。 且聖人於制父母之喪, 有斬衰、齊衰之別者, 誠以天無二日、國無二君、家無二主, 以一治之之意也。 今以王后功德之隆, 而同於大王, 無等級之別, 於義有未安。" 朴繼姓、安晋生議: "按《禮》: ‘君母、君妻, 服齊衰不杖期。’ 古昔聖賢, 酌人情, 爲之定制, 不可過, 亦不可不及也。 若以功德輕重、恩義有無, 而有所隆殺, 則是以臣子, 而議其君父, 似不可行也。 況群臣期後從吉, 而於闕內, 服淺淡服者, 一時權制, 非古之法也。 臣等伏願一從禮文。" 成健、金訢、閔師騫、安潤孫、朴文幹、宋軼、李均、金壽童、李琚、黃啓沃、成希曾、閔輔翼議: "謹按《禮記》疏云: ‘君母、君妻, 雖皆小君, 皆服齊衰不杖期’, 又云: ‘君母是嫡夫人, 則群臣服期。’ 臣等竊惟, 喪紀先王所以酌人情, 而立其中制, 以爲之節, 使天下後世, 不敢踰越。 故不以己情, 而有所隆殺, 以子夏、子騫之爲子, 而不敢過, 不敢不及是也。 不以其德, 而有所輕重, 以文、武、幽、厲之爲君, 而不得增損, 是也。 今貞熹王后, 功德雖盛, 以王后, 而從大王之制, 非也。 若爲盛德之后, 服喪如大王之制, 則爲盛德之主, 當服何服? 一開其端, 則後之人主, 將謂某王后有某功德, 必欲增益其制, 終至於任情廢禮, 變亂先王之制而後已, 豈可以功以德, 而輕改萬世之通喪乎? 殿下哀傷念慕, 出於至誠, 固有所不忍於聖心, 然以禮制情, 以合先王之中道, 乃所以盡其誠也。" 傳曰: "宰相之議, 雖如此, 予意謂: ‘貞熹王后, 當主少國疑之時, 運謀決策, 又安宗社, 其功甚大。’ 雖曰: ‘喪制載在《禮經》, 不可損益’, 然有功者祖之, 有德者宗之, 則無所議功德者乎? 王后, 功德至重, 宰相等, 豈不欲從三年之制乎? 且以旁支, 入承大統, 則爲其親父母無服, 此乃從權用中之道也。 今亦從權以行三年何如?" 鄭昌孫、李坡啓曰: "喪制, 萬世不易之定禮, 不可以功德之隆殺, 而增損之。 若論功德, 則設有無功德之主, 喪制又可損乎? 如是則以臣議君, 以子議父, 末流之弊, 難可救矣。" 傳曰: "君薨, 必立諡號, 則豈非以臣子, 而議君父乎? 貞熹王后, 功德至重, 當從明澮、洪應議, 行三年之喪。

【史臣曰: "聖人制禮, 內外之喪, 自有隆殺, 不可以私意紊亂之也。 祖功宗德之說, 何關於此, 而傅會之耶? 甚矣, 應之不講於典禮也! 後世張后家之漸, 未必非應啓之也。 時右贊成許琮議與應同, 及聞弘文館疏列, 茫然自失曰: ‘吾過矣’, 卽上疏自劾, 聞者服其宏度。 世有好執己見, 雖知其非, 務勝於人, 以誤國事者, 多矣。 琮, 可謂人臣之矜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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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159권, 성종 14년 10월 29일 戊子 4/5 기사 / 1483년 명 성화(成化) 19년

여러 신하들과 함께 정희 왕후의 상제(喪祭)에 대해 의논하다

국역

명하여 의정부(議政府)·육조(六曹)의 당상관과 홍문관(弘文館)·대간(臺諫)을 불러서 정희 왕후(貞熹王后)의 상제(喪制)를 의논하게 하니, 정창손(鄭昌孫)·이파(李坡)·한치례(韓致禮)·김겸광(金謙光)·어세공(魚世恭)·어세겸(魚世謙)·정괄(鄭佸)·조익정(趙益貞)·이경동(李瓊仝)이 의논하기를,

"정희 왕후께서는 인자하시고 착하셔서 세조(世祖)를 도와 태평 시대를 이루었으니, 깊은 어짊과 후한 은혜는 사람들의 살과 뼈를 스며듭니다. 더욱이 성궁(聖躬)1153) 을 강보(襁褓) 속에서 기르셨으며, 대책(大策)을 위의(危疑)한 때에 정하였으니, 그 융성한 공렬(功烈)은 더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승하하시던 날에 온 조정이 비통(悲痛)해 하였으니, 누가 삼년상을 다하고자 아니하였겠습니까? 다만 생각하건대, 임금과 어버이의 상(喪)은 정해진 제도가 있으니, 공덕(功德)의 높고 낮음과 인정(人情)의 후하고 박함으로써 가볍고 중하게 할 수 없습니다.

삼가 살피건대, 《예기(禮記)》 복문(服問)에 이르기를, ‘임금의 어머니가 부인(夫人)이 아니면 여러 신하는 복(服)이 없고, 오직 근신(近臣)과 복종(僕從)·참승(驂乘)만이 따라서 복을 입는데, 오직 임금이 입는 것을 입는다.’고 하였는데, 소(疏)1154) 에 이르기를, ‘임금의 어머니가 적부인(嫡夫人)이면 여러 신하가 기년(期年)을 입고, 적부인이 아니면 임금이 시복(緦服)을 입기 때문에, 여러 신하는 복이 없는 것이다. 근신(近臣)은 엄시(閹寺)1155) 의 소속이고, 복종(僕從)은 수레를 모는 자이며, 참승(驂乘)은 수레 오른쪽에 있는 자로서, 오직 임금이 입는 복을 입는다는 것은 임금이 시복을 입으면 이들도 시복을 입는다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단궁(檀弓)》1156) 에 이르기를, ‘임금의 어머니와 아내의 상(喪)에는 거처와 언어와 음식을 간(衎)1157) 하게 한다.’고 하였는데, 주(註)에 이르기를, ‘군모(君母)와 군처(君妻)는 비록 모두 소군(小君)이지만 모두 자최 부장기(齊衰不杖期)1158) 의 복(服)을 입는다. 그러나 은의(恩義)가 얕기 때문에 거상(居喪)에 스스로 몸을 처신하기를 이와 같이 한다.’고 하였습니다. 《오례의(五禮儀)》의 주(註)도 이로 인하여 기년(期年)의 제도를 정한 것입니다.

대저 《예경(禮經)》1159) 은 성인(聖人)이 정한 제도이고, 《오례의》 주는 선왕(先王)이 정한 법인데, 이제 만약 왕후(王后)의 3년상을 행할 경우에 예문(禮文)에 의거하면 성인의 정한 제도가 아니고, 《오례의》 주에 의거하면 선왕의 정한 법이 아니며, 역대(歷代)를 상고해 보아도 의거할 바가 없으니, 어찌 공덕의 많고 적은 것과 인정의 후하고 박한 것으로써 가볍게 변경할 수 있겠습니까? 혹 말하기를, ‘예(禮)는 인정에 인연하여 덜거나 보태는 것이니, 박하게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후하게 하여 실례(失禮)하는 것이 낫다.’고 한다면, 신자(臣子)는 군부(君父)에게 그 정이 진실로 무궁(無窮)하니, 뒤에 오는 상제(喪制)도 무궁할 것입니다. 하늘처럼 무궁한 어버이의 은혜를 갚고자 하는 마음이 어찌 3년에 그치고, 어찌 기년(期年)에 그치겠습니까? 성인(聖人)이 단정한 까닭도 이와 같은데, 어찌 바꿀 수 있겠습니까? 또 가법(家法)은 만세에 전하는 것이며 상례(喪禮)는 더욱 중한 것인데, 이제 만약 옛 제도를 변경하면 후세 자손이 또한 이 예(例)에 의거하여 비록 고비(考妣)1160) 의 상(喪)에서도 인정으로 인하여 낮추고 높일 것이니, 법을 허물어 뜨리는 폐단이 어찌 오늘날에 시작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것도 미리 염려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하고, 한명회(韓明澮)·윤필상(尹弼商)·이극배(李克培)·윤호(尹壕)는 의논하기를,

"정희 왕후의 상(喪)은 《예경》에 의거하면 마땅히 기년(期年)의 제도에 따를 것이나, 예(禮)는 인정에 인연하는 것이므로 혹시 권도(權道)에 따라 적당하게 변경시키는 때도 있습니다. 정희 왕후는 공덕이 사람들에게 있으므로 다른 여후(女后)에 비할 것이 아니니, 삼년상을 행하여도 해로울 것은 없습니다."

하였으며, 심회(沈澮)·서거정(徐居正)은 의논하기를,

"정희 왕후의 상(喪)에 전하께서 이미 3년의 제도를 행하시니 온 나라 신하로서 누가 3년상을 행하고자 하지 아니하겠습니까? 다만 성인(聖人)이 《예경》을 만들어서, 국군(國君)은 3년이고 국모(國母)는 기년이라고 하여 강쇄(降殺)함이 명백하니, 이는 만세에 행하여 폐단이 없는 것인데, 만약 선왕(先王)·선후(先后)의 공덕의 우열(優劣)로 인하여 그 복(服)을 올리고 낮춘다면, 이는 아들이 아버지를 논하고 신하가 임금을 논하여 올리고 낮추는 데 반드시 단정하기 어렵고 처리하기 어려운 때가 있을 것이니, 가볍게 《예경》을 고치는 것은 뒤의 폐단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이제 정희 왕후의 상(喪)은 앞에서 정한 의논에 의하여 시행하는 것이 어떻하겠습니까?"

하였으며, 홍응(洪應)·허종(許琮)은 의논하기를,

"대저 예(禮)는 인정에 근본하므로 때에 따라서 덜거나 보태어 할 수 있으며, 한가지를 고집하여 논할 수 없습니다. 《예경》과 우리 나라 《오례의》의 주에는 내상(內喪)은 기년(期年)이라는 글이 있으나, 이는 상리(常理)로 논한 것입니다. 임금은 어리고 나라는 의심스러워 국가가 어려운 즈음을 당하여 여주(女主)로서 정사를 청단(聽斷)하는 것은 부득이한 데에서 나온 것인데, 우리 정희 왕후께서는 거룩한 덕으로 성상의 몸을 보호하여 종묘·사직을 편히 하였으니, 그 아름다운 덕과 아름다운 정사는 이름지어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모후(母后)가 정사를 청단한 것은 이미 비상시에 나온 것이니, 그 상제(喪制)도 보통 제도에 국한할 수 없습니다. 의논하는 자는, 공덕의 후박(厚薄)으로써 떳떳한 제도를 변경시킬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묘제(廟制)에도 조(祖)는 공이 있고 종(宗)은 덕이 있으며, 문세실(文世室)·무세실(武世室)은 백 년이 되더라도 옮기지 아니하는 것이 있으니, 자손이 조종(祖宗)에게 어찌 공덕을 논하지 아니하겠습니까? 정희 왕후의 상제를 3년으로 시행하여도 해로울 것은 없습니다."

하고, 이맹현(李孟賢)·이칙(李則)·이세필(李世弼)·유윤겸(柳允謙)은 의논하기를,

"대저 부모의 상제(喪制)는 본래 등급이 있으니, 선왕(先王)이 예(禮)를 제정한 것은 하늘과 땅이 이루어진 것과 같아서 만세토록 바꾸지 못하는 떳떳한 법입니다. 또 《오례의》의 주(註)는 조종(祖宗)께서 정한 바인데 공덕이 있고 없는 것으로써 더하고 덜어서 변경할 수 없으니, 일체 예문(禮文)에 의하여 시행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고, 김자정(金自貞)·이육(李陸)·박안성(朴安性)은 의논하기를,

"《예기(禮記)》에, ‘임금의 어머니와 임금의 아내는 자최 부장기(齊衰不杖期)의 복(服)을 입는다.’고 하였고, 《오례의》에는 내상(內喪)에 자최 기년(齊衰期年)인데 13개월의 연제(練祭) 후에는 길복(吉服)을 입는다고 하였습니다. 대저 예라는 것은 인정으로 인연하여 제도를 정해서 천하 만세에 바뀌지 아니하는 떳떳한 법을 삼는 것이고, 《오례의》는 우리 세종 대왕(世宗大王)께서 옛 제도를 널리 상고하여 변경시킬 수 없는 법을 정한 것입니다. 선왕이 제정한 예가 이미 저와 같고 조종께서 이룩한 법이 또 이와 같은데, 어찌 공덕의 있고 없음으로써 더하고 덜하겠습니까? 이제 정희 왕후께서 공덕이 비록 높을지라도 상제(喪制)를 어찌 대왕(大王)과 더불어 같게 할 수 있겠습니까? 예전 송(宋)나라 고황후(高皇后)·조황후(曹皇后)·향황후(向皇后)·맹황후(孟皇后)는 모두 수렴 청정(垂簾聽政)1161) 하여 어진 덕을 일컬었는데, 당시의 여러 신하가 상복(喪服)을 더하였다는 것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전하께서 지성으로 추모(追慕)하여 무릇 송종(送終)1162) 의 대사(大事)에 그 지극함을 쓰지 아니한 바가 없었고, 상복을 입는 데 이르러서는 반드시 등급(等級)을 더하고자 하시니, 여러 신하들이 어찌 전하의 정성과 왕후의 덕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기년복(期年服)에 마음이 편하겠습니까? 그러나 공덕으로써 상(喪)을 의논함은 정(情)에 미안하고, 왕후를 대왕에 견주는 것은 법에 근거가 없습니다. 이른바 선왕이 제정한 예법은 지나치게 할 수도 없고 또한 감히 미치지 못하게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하고, 노공필(盧公弼)·김질(金耋)·곽은(郭垠)·양순경(梁舜卿)은 의논하기를,

"신하와 아들이 임금과 어버이의 상(喪)에 정은 비록 다할 수 없으나, 예에 정한 제도가 있으므로 지나쳐도 옳지 못하고 미치지 못하여도 옳지 못합니다. 《예기(禮記)》를 상고하건대, ‘임금의 어머니와 임금의 아내는 모두 자최 기년(齊衰期年)을 입는다.’고 하였으니, 이는 성인(聖人)이 인정에 맞추어서 글을 만들어 만세의 떳떳한 법으로 삼은 것입니다. 정희 왕후께서 성궁(聖躬)을 보호하시고 서정(庶政)을 참결(參決)하였으므로 공덕의 성대함을 종사(宗社)가 힘입었으니, 신자(臣子)가 비록 3년 복을 입더라도 그 정의(情義)에는 진실로 부족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상(喪)은 내외(內外)의 분변이 있고 예(禮)는 융쇄(隆殺)1163) 의 구분이 있는데, 참으로 한때의 정(情)에 따라 예로써 조절하지 아니하고 한갓 공덕과 은혜의 많고 적음으로써 경중을 둔다면 이는 아들이 그 어버이에 대해 의논할 수 있고 신하가 그 임금에 대해 의논할 수 있는 것이니, 성인이 예를 제정한 본의가 아닙니다. 또 성인이 부모의 상(喪)을 제정하되, 참최(斬衰)1164) ·자최(齊衰)의 구별이 있는 것은, 진실로 하늘에는 두 개의 해가 없고 나라에는 두 임금이 없으며 가정에는 두 주인이 없어서 한 사람이 다스린다는 뜻입니다. 이제 왕후의 공덕이 높다는 것으로 대왕과 같이하여 등급의 차별이 없다면 대의에 미안함이 있습니다."

하고, 박계성(朴繼姓)·안진생(安晉生)은 의논하기를,

"《예기》를 상고하건대, ‘임금의 어머니와 임금의 아내는 자최 부장기(齊衰不杖期)의 복(服)을 입는다.’고 하였습니다. 옛 성현(聖賢)이 인정을 참작하여 제도를 정한 것인데 지나칠 수도 없고 미치지 못할 수도 없습니다. 만약 공덕의 경중과 은혜의 있고 없음으로써 높이고 낮추는 것이 있다면, 이는 신하와 아들이 임금과 아버지에 대해서 의논하는 것이니, 행할 수 없을 듯합니다. 하물며 군신(群臣)들이 기년(期年) 후에는 길복(吉服)을 입는데 궐내(闕內)에서는 천담복(淺淡服)1165) 을 입는 것은 한때의 권제(權制)1166) 이며 옛 법은 아닙니다. 신 등은 삼가 원하건대, 일체 예문(禮文)에 따르소서."

하였으며, 성건(成健)·김흔(金訢)·민사건(閔師騫)·안윤손(安潤孫)·박문간(朴文幹)·송질(宋軼)·이균(李均)·김수동(金壽童)·이거(李琚)·황계옥(黃啓沃)·성희증(成希曾)·민보익(閔輔翼)은 의논하기를,

"삼가 상고하건대, 《예기(禮記)》의 소(疏)에 이르기를, ‘임금의 어머니와 임금의 아내는 비록 모두 소군(小君)일지라도 모두 자최 부장기(齊衰不杖期)를 입는다.’고 하였고, 또 이르기를, ‘임금의 어머니가 적부인(嫡夫人)이면 여러 신하가 기년복(期年服)을 입는다.’고 하였습니다. 신 등이 그윽이 생각하건대, 상기(喪紀)는 선왕(先王)이 인정을 참작해서 적중한 제도를 세우고 조절하여 천하 후세로 하여금 감히 넘치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자기의 정(情)으로써 더하거나 줄이는 바가 있지 아니하였으니, 자하(子夏)1167) ·민자건(閔子騫)1168) 이 아들이 되어서도 감히 지나치게 하지 못하고 감히 미치지 않게 하지 못한 것이 이것입니다. 그리고 공덕으로써 경중을 두지 아니하니, 문왕(文王)·무왕(武王)·유왕(幽王)·여왕(厲王)이 임금이 되었어도 보태거나 줄이지 못한 것이 이것입니다. 이제 정희 왕후의 공덕이 비록 성할지라도 왕후로서 대왕의 제도를 따르는 것은 잘못입니다. 만약 공덕이 성한 왕후를 위하여 상복(喪服)을 대왕의 제도와 같이 입으면 공덕이 성한 임금을 위해서는 무슨 복(服)을 입어야 마땅하겠습니까? 한 번 그 단서를 열면 후세의 임금이 장차 이르기를, ‘아무 왕후는 아무 공덕이 있다.’고 하여 반드시 그 제도를 더하고자 할 것이며, 마침내는 정(情)을 따라 예(禮)를 폐하는 데 이르러 선왕의 제도를 변경시키고 어지럽게 한 뒤에야 말 것이니, 어찌 공과 덕으로써 만세에 통용하는 상제(喪制)를 가볍게 고칠 수 있겠습니까? 전하께서 슬퍼하고 사모하심이 지극한 정성에서 나와서 진실로 성상의 마음에 차마 하지 못하는 바가 있으나, 예(禮)로써 정(情)을 억제하여 선왕의 중용(中庸)의 도(道)에 합하게 하는 것이 바로 그 정성을 다하는 것입니다."

하였는데, 전교하기를,

"재상의 의논은 비록 이와 같더라도, 나는 생각하건대, 정희 왕후는 임금이 어리고 나라가 의심스러울 때를 당하여 꾀를 내고 계책을 결단하여 종사(宗社)를 편히 하였으니, 그 공이 매우 크다. 비록 상제(喪制)가 《예경》에 실려 있어서 줄이거나 보탤수 없다고 할지라도 공이 있는 자는 조(祖)로 하고 덕이 있는 자는 종(宗)으로 하였으니, 어찌 공덕을 의논할 것이 없겠는가? 왕후의 공덕이 지극히 중대한데 재상들은 어찌 3년의 제도를 따르고자 하지 아니하는가? 또 방지(旁支)1169) 가 들어가서 대통(大統)1170) 을 이으면 그 친부모를 위해서는 복(服)이 없으니, 이것은 바로 형편에 따라 중도(中道)를 쓰는 방법이다. 지금도 형편에 따라 삼년상을 행하는 것이 어떠하겠는가?"

하니, 정창손(鄭昌孫)과 이파(李坡)가 아뢰기를,

"상제는 만세토록 바꾸지 못하는 정한 예(禮)인데, 공덕의 높고 낮음으로써 더하고 줄일 수 없습니다. 만약 공덕을 논한다면 가령 공덕이 없는 임금은 상제도 줄일수 있겠습니까? 이와 같으면 신하로써 임금의 공덕을 의논하고 자식으로서 아버지의 공덕을 의논할 것이니, 말류(末流)의 폐단을 구제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였는데, 전교하기를,

"임금이 훙(薨)하면 반드시 시호(諡號)를 세우는데, 어찌 신자(臣子)가 군부(君父)를 의논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정희 왕후의 공덕은 지극히 중하니 한명회와 홍응의 의논을 따라서 삼년상을 행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다.

사신(史臣)이 논평하기를, "성인(聖人)이 예(禮)를 제정하여 내외(內外)의 상(喪)에 본래 높고 낮음이 있어서 사사로운 뜻으로써 문란하게 할 수가 없게 하였는데, 조공 종덕(祖功宗德)의 말이 여기에 무슨 관계가 있어서 부회(附會)하여 말한 것인가? 심하다. 홍응이 전례(典禮)를 강구하지 못함이여! 후세의 왕후 집안의 세력이 확대된 조짐을 홍응이 반드시 열지 아니하였다고는 못할 것이다. 이때 우찬성(右贊成) 허종(許琮)은 의논이 홍응과 같았었다가 홍문관(弘文館)의 소(疏)를 보고 망연 자실(茫然自失)하여 말하기를, ‘내가 지나쳤다.’고 하고는 즉시 상소하여 스스로 탄핵하니, 듣는 자가 그 넓은 도량에 탄복하였다. 세상에는 자기 의견을 고집하기를 좋아하여 비록 그 잘못을 알더라도 남을 이기기를 힘써서 나라 일을 그르치는 자가 많이 있는데, 허종은 인신(人臣)의 본보기[矜式]가 될 만하다고 하겠다." 하였다.

  • [註 1153] 성궁(聖躬) : 임금의 몸.
  • [註 1154] 소(疏) : 주(註).
  • [註 1155] 엄시(閹寺) : 환관(宦官).
  • [註 1156] 《단궁(檀弓)》 : 《예기(禮記)》의 편명(篇名).
  • [註 1157] 간(衎) : 자득(自得)하는 모양을 일컬음.
  • [註 1158] 자최 부장기(齊衰不杖期) : 삼베로 지은 아래 옷 단을 접어서 꿰맨 상복(喪服)을 입고, 상장(喪杖)을 짚지 않고 한 돌 동안만 입는 복임.
  • [註 1159] 《예경(禮經)》 : 《예기(禮記)》.
  • [註 1160] 고비(考妣) : 돌아간 아버지와 어머니.
  • [註 1161] 수렴 청정(垂簾聽政) : 임금이 어려서 왕대비나 대왕 대비가 정사를 대리함.
  • [註 1162] 송종(送終) : 장사에 관한 온갖 일.
  • [註 1163] 융쇄(隆殺) : 높이는 것과 줄이는 것.
  • [註 1164] 참최(斬衰) : 오복(五服)의 하나. 거친 삼베로 짓는데, 아랫단을 꿰매지 않은 상복(喪服)임.
  • [註 1165] 천담복(淺淡服) : 제사 때에 입는 엷은 옥색의 옷.
  • [註 1166] 권제(權制) : 임시 사정에 의한 제도.
  • [註 1167] 자하(子夏) : 공자의 제자.
  • [註 1168] 민자건(閔子騫) : 공자의 제자.
  • [註 1169] 방지(旁支) : 지손(支孫).
  • [註 1170] 대통(大統) : 왕위의 계통.

원문

○命召議政府、六曹堂上及弘文館、臺諫, 議貞熹王后喪制。 鄭昌孫、李坡、韓致禮、金謙光、魚世恭、魚世謙、鄭佸、趙益貞、李瓊仝議: "貞熹王后以慈仁明聖, 輔世祖, 致(大)〔太〕 平, 深仁厚澤, 浹人肌骨, 加以育聖躬於襁褓之中, 定大策於危疑之際, 其隆功盛烈, 不可尙已。 故陟遐之日, 擧朝悲痛, 孰不欲思盡三年之喪? 第念君親之喪, 自有定制, 不可以功德之隆殺、人情之厚薄, 爲之輕重也。 謹按《禮記》 《服問》云: ‘君之母, 非夫人, 則群臣無服, 惟近臣及僕、驂乘從服, 唯君所服服也。’ 《疏》曰: ‘君母是適夫人, 則群臣服期, 非夫人, 則君服緦, 故群臣無服也。 近臣, 閹寺之屬; 僕, 御車者; 驂乘, 車右也。 唯君所服服者, 君緦, 則此等人, 亦緦也。’ 《檀弓》曰: ‘居君之母與妻之喪, 居處、言語、飮食, 衎爾’, 註云: ‘君母、君妻, 雖皆小君, 皆服齊衰不杖期, 然恩義則淺矣, 故居其喪, 則自處如此。’ 《五禮儀註》, 亦因此定期年之制。 夫《禮經》, 聖人之定制, 《五禮儀註》, 先王之定法。 今若行王后三年之喪, 據禮文, 則非聖人之定制, 據《儀註》, 則非先王之定法, 稽諸歷代, 又無所據, 豈可以功德之多寡、人情之厚薄, 輕易變更哉? 儻曰: ‘禮緣人情, 而損益, 與其薄也, 寧失於厚’, 則臣子於君父, 其情固無窮, 而後來之喪制, 又無窮矣。 昊天罔極之恩, 其在欲報之心, 奚止於三年, 奚止於期年哉? 而聖人所以斷之者如是, 胡可易哉? 且家法, 當傳萬世, 而喪禮尤爲重。 今若更變舊制, 則後世子孫, 亦據此例, 雖於考妣之喪, 亦因人情, 而爲低昻, 毁法之弊, 豈非權輿於今日乎? 此亦不可不預爲之慮也。" 韓明澮、尹弼商、李克培、尹壕議: "貞熹王后之喪, 據《禮經》, 則當從期年之制。 然禮緣人情, 或有從權適變之時。 貞熹, 功德在人, 非他女后之比, 行三年之喪, 亦無所妨。" 沈澮、徐居正議: "貞熹王后之喪, 殿下旣行三年之制, 擧國臣子, 孰不欲行三年乎? 但聖人制爲《禮經》, 國君而曰三年, 國母而曰期年, 降殺已明, 是可行之萬世, 而無弊。 若因先王、先后功德優劣, 而升降其服, 是以子而議父, 以臣而議君, 於升於降, 必有難斷難處之時, 輕改《禮經》, 恐有後弊。 今貞熹王后之喪, 依前定議施行何如?" 洪應、許琮議: "夫禮本人情, 因時損益而爲之, 不可執一論也。 《禮經》及我朝《五禮儀》註, 有內喪期年之文, 此以常理論也(也)。 當主少國疑、 國家艱難之際, 以女主聽政, 出於不得已。 我貞熹王后, 以聖德, 保護聖躬, 以安宗社, 其美德、美政, 難以名言。 以母后聽政事, 旣出於非常, 則其喪制, 亦不可局於常制。 議者以爲: ‘不可以功德厚薄, 變其常制。’ 然於廟制, 亦有祖有功、宗有德、文世室、武世室, 百世不遷者, 則子孫於祖宗, 亦豈不論其功德哉? 貞熹王后之喪行三年, 亦無所妨。" 李孟賢、李則、李世弼、柳允謙議: "大抵父母喪制, 自有等殺, 先王制禮, 如天連地設, 萬世不易之常法。 且《五禮儀註》, 祖宗所定, 不可以功德有無, 而增損變更也, 一依禮文, 施行何如?" 金自貞、李陸、朴安性議: "《禮》: ‘君母、君妻, 服齊衰不杖期’, 《五禮儀》: ‘內喪, 則齊衰期年, 十三月練祭後, 服吉服。’ 夫禮者, 緣人情定制, 以爲天下萬世不易之常經。 《五禮儀》, 我世宗大王, 博考古制, 定爲不刊之典。 先王制禮旣如彼, 祖宗成憲又如此, 豈以功德有無, 而進退之哉? 今貞熹王后, 功德雖隆, 喪制豈可與大王比竝哉? 昔在宋朝, 高、曺、向、孟, 皆垂簾聽政, 號稱賢德, 未聞當時群臣服喪之加等也。 殿下至誠追慕, 凡送終大事, 無所不用其極, 至於服喪, 必欲加等, 在群臣, 亦豈不念殿下之誠、王后之德, 而安於期年哉? 然以功德議喪, 於情未安, 以王后比大王, 於法無據。 所謂先王制禮, 不敢過, 亦不敢不及者也。" 盧公弼、金耋、郭垠、梁舜卿議: "臣子之於君親之喪, 情雖罔極, 禮有定制, 過之不可, 不及亦不可。 按《禮》曰: ‘君母、君妻, 皆服齊衰期。’ 此聖人稱情立文, 爲萬世之常經者也。 貞熹王后, 保護聖躬, 參決庶政, 功德之盛, 宗社是賴, 臣子雖服三年, 其於情義, 固有所不足, 然喪有內外之辨, 禮有隆殺之分, 苟循一時之情, 不節之以禮, 而徒以功德恩義之多寡, 有所輕重, 則是子可以議其親, 臣可以議其君, 非聖人制禮之本意。 且聖人於制父母之喪, 有斬衰、齊衰之別者, 誠以天無二日、國無二君、家無二主, 以一治之之意也。 今以王后功德之隆, 而同於大王, 無等級之別, 於義有未安。" 朴繼姓、安晋生議: "按《禮》: ‘君母、君妻, 服齊衰不杖期。’ 古昔聖賢, 酌人情, 爲之定制, 不可過, 亦不可不及也。 若以功德輕重、恩義有無, 而有所隆殺, 則是以臣子, 而議其君父, 似不可行也。 況群臣期後從吉, 而於闕內, 服淺淡服者, 一時權制, 非古之法也。 臣等伏願一從禮文。" 成健、金訢、閔師騫、安潤孫、朴文幹、宋軼、李均、金壽童、李琚、黃啓沃、成希曾、閔輔翼議: "謹按《禮記》疏云: ‘君母、君妻, 雖皆小君, 皆服齊衰不杖期’, 又云: ‘君母是嫡夫人, 則群臣服期。’ 臣等竊惟, 喪紀先王所以酌人情, 而立其中制, 以爲之節, 使天下後世, 不敢踰越。 故不以己情, 而有所隆殺, 以子夏、子騫之爲子, 而不敢過, 不敢不及是也。 不以其德, 而有所輕重, 以文、武、幽、厲之爲君, 而不得增損, 是也。 今貞熹王后, 功德雖盛, 以王后, 而從大王之制, 非也。 若爲盛德之后, 服喪如大王之制, 則爲盛德之主, 當服何服? 一開其端, 則後之人主, 將謂某王后有某功德, 必欲增益其制, 終至於任情廢禮, 變亂先王之制而後已, 豈可以功以德, 而輕改萬世之通喪乎? 殿下哀傷念慕, 出於至誠, 固有所不忍於聖心, 然以禮制情, 以合先王之中道, 乃所以盡其誠也。" 傳曰: "宰相之議, 雖如此, 予意謂: ‘貞熹王后, 當主少國疑之時, 運謀決策, 又安宗社, 其功甚大。’ 雖曰: ‘喪制載在《禮經》, 不可損益’, 然有功者祖之, 有德者宗之, 則無所議功德者乎? 王后, 功德至重, 宰相等, 豈不欲從三年之制乎? 且以旁支, 入承大統, 則爲其親父母無服, 此乃從權用中之道也。 今亦從權以行三年何如?" 鄭昌孫、李坡啓曰: "喪制, 萬世不易之定禮, 不可以功德之隆殺, 而增損之。 若論功德, 則設有無功德之主, 喪制又可損乎? 如是則以臣議君, 以子議父, 末流之弊, 難可救矣。" 傳曰: "君薨, 必立諡號, 則豈非以臣子, 而議君父乎? 貞熹王后, 功德至重, 當從明澮、洪應議, 行三年之喪。

【史臣曰: "聖人制禮, 內外之喪, 自有隆殺, 不可以私意紊亂之也。 祖功宗德之說, 何關於此, 而傅會之耶? 甚矣, 應之不講於典禮也! 後世張后家之漸, 未必非應啓之也。 時右贊成許琮議與應同, 及聞弘文館疏列, 茫然自失曰: ‘吾過矣’, 卽上疏自劾, 聞者服其宏度。 世有好執己見, 雖知其非, 務勝於人, 以誤國事者, 多矣。 琮, 可謂人臣之矜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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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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