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실록146권, 성종 13년 9월 26일 辛酉 6/6 기사 / 1482년 명 성화(成化) 18년
아비의 잘못된 시호를 고쳐 달라는 김극유의 상소문에 대하여 의논하다
국역
김극유(金克忸)가 상소(上疏)했는데, 그 대략에 이르기를,
"신(臣) 등은 아비가 살아서는 큰 허물이 없었는데도, 죽어서 잘못된 시호(諡號)가 있는 이유로써 저승과 이승의 사이에 아비와 자식의 원통함이 아득하게 끝이 없으니, 신 등은 스스로 보잘것 없는 것을 알고 있지마는, 그러나 자식이면서도 아비의 원통함을 풀어주고 아비의 수치를 씻어 주지 않는다면, 이는 부자(父子)의 인륜(人倫)에 어긋남이 있으므로, 마침내 사람에게 끼어서 세상에 설 수가 없게 될 것입니다. 신의 아비는 비록 남보다 뛰어난 재주와 덕망은 없지마는, 충성스럽고 근실(勤實)한 것은 여유가 있었으므로 세조(世祖)께서 낭서(郞署)924) 의 중에서 기용(起用)하여 5, 6번이나 천직(遷職)시켜 임금의 측근에 두게 되었습니다. 세조(世祖)께서는 신의 아비를 예절로써 대우하고, 신의 아비는 세조(世祖)를 충성으로써 섬겨서, 일이 크고 작은 것을 논할 것 없이 자문(咨問)하지 않은 것이 없고 참획(參畫)하지 않은 것이 없었으니, 신하의 영예(榮譽)로써는 이를 고금(古今)에 찾아보아도 신의 아비와 같은 사람은 있지 않았습니다. 전하(殿下)에 이르러서도 또한 후(厚)한 대우를 입게 되어, 무릇 큰 일이 있으면 반드시 의논하고 묻게 되었으니, 전하께서 신의 아비를 대우하는 것도 은혜가 또한 지극했습니다. 후한 대우가 이미 이와 같다면 반드시 현인(賢人)으로 여겨서 대우했을 것인데, 살아서는 현신(賢臣)이 되었으나 죽어서는 잘못된 시호(諡號)를 얻게 되어 능히 의리(義理)를 따르지 못한 신하가 되었으니, 다만 신 등의 한 집안의 원통한 것뿐만 아니라, 대체(大體)에 이를 헤아려 보더라도 또한 편안하지 못한 일이므로, 신은 그윽이 엎드려 탄식합니다. 임금과 신하가 서로 만나는 것이 어느 시대인들 이 일이 없겠습니까마는, 그러나 비록 성주(聖主)와 현신(賢臣)의 사이에서도 여러 소인(小人)들의 유언 비어(流言飛語)에 그릇되지 않는 것이 드물어서 의심이 은총의 극도에서 생기고 죄가 애매(曖昧)한 데에 가(加)하게 되는 것이 서로 선회(旋回)하고 있으니, 신의 아비처럼 은총이 극도에 이른 사람으로 이미 비어(飛語)의 비방이 있게 되었습니다. 만약 세조(世祖)의 명성(明聖)925) 이 전일에 이를 분변하고 전하(殿下)의 명성이 후일에 이를 분변하지 않았더라면, 그것을 능히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심한 것은, 그 여러 소인(小人)들의 비어(飛語)로 비방하는 해독이 그의 생전(生前)에 해치지 못하고서 이에 그 사후(死後)에 미치게 된 그것입니다. 옛날에 송(宋)나라 조정에서 왕요신(王堯臣)에게 문안(文安)이란 시호(諡號)를 내리자, 그의 아들 왕동로(王同老)가 아비의 공로를 논하므로, 문언박(文彦博)926) 이 그 본말(本末)을 상세히 아뢰어 문충(文忠)으로 고치었으니, 그 시호(諡號)가 혹시 잘못되어 의논하는 것은 유독 지금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옛날에도 있었던 것이며, 그 시호(諡號)를 실상에 맞추어 고친 것은 유독 지금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옛날에도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의 시호를 정하는 사람은 어찌 신 아비의 행실의 실상(實狀)을 살피지 않고서 다만 백세(百世)에 능히 고칠 수 없다는 것으로써 단서(端緖)를 열 수가 없다고 생각하겠습니까? 대개 고금(古今)에 시호(諡號)를 정하고도 이를 고치는 사람은 이루 다 셀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백세(百世)에 능히 고칠 수가 없다는 것은, 유왕(幽王)과 여왕(厲王)927) 의 실상이 있어서 유왕(幽王)과 여왕(厲王)의 시호(諡號)를 얻은 것이고, 진실로 신의 아비와 같은 이를 이름은 아닙니다. 사람이 과실이 없는데도 비루한 시호(諡號)로써 가(加)하고는, 이에 말하기를, ‘백세(百世)에 능히 고칠 수가 없으니, 단서(端緖)를 열 수가 없다.’고 한다면, 어찌 《중용(中庸)》의 지극한 의논이겠습니까? 신(臣)의 애훼(哀毁)928) 는 비록 생명을 잃는 지경에 이르더라도 아까울 것이 없지마는, 숨이 차서 헐떡거리기가 실과 같아서 오늘날까지 죽지 않았으나 내일은 반드시 죽을 것이니, 노모(老母)의 상심(傷心)은 장차 어떻게 하겠습니까? 신은 진실로 어미의 애통(哀痛)이 반드시 운명(殞命)하는 지경에 이르게 될 것을 두려워하고 있으며, 어미는 신의 멸성(滅性)929) 이 아침이 아니면 곧 저녁에 있을 것을 염려하고 있으니, 어미와 자식, 형과 아우가 서로 의심하고 서로 두려워하여 한집안이 창황(蒼黃)하여 서로 구원할 줄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비록 슬픈 회포를 조금 늦추어서 어미의 마음을 위로하려고 하지마는, 애통(哀痛)이 속에서 나오게 되어 마음을 잡을 수가 없으므로, 대궐아래에 부복(俯伏)하여서 다시 원통하고 억울한 심정(心情)을 호소하게 됩니다. 전하(殿下)께서 신의 아비의 행실에 만약 의심할 만한 것이 있으면 조정(朝廷)에 질문(質問)하여, 조정에서 말하기를, ‘아무 일은 곧 김국광(金國光)의 술의 불극(述義不克)930) 입니다.’고 한다면 그만이겠지마는, 만약 색다른 말이 없다면 특별히 한 글자의 고침을 하사(下賜)하여 위로는 세조(世祖)께서 인물의 현우(賢愚)를 식별(識別)하는 명철(明哲)을 밝히시고, 아래로는 신의 아비의 유명(幽明)931) 의 원통함을 위로해 주신다면 매우 다행하겠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명하여 의정부(議政府)·육조(六曹)·대간(臺諫)·승정원(承政院)·홍문관(弘文館)에 보이니, 강희맹(姜希孟)·허종(許琮)·성임(成任)·이극중(李克增)·어세공(魚世恭)·안초(安迢)·이육(李陸)은 의논하기를,
"시호(諡號)는 예로부터 아름다운 것과 나쁜 것이 있으니, 진실로 그 행실에 맞기만 한다면 경솔히 고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큰 덕망이 있은 연후에야 아름다운 시호(諡號)를 가(加)하고 큰 죄악이 있은 연후에야 나쁜 시호(諡號)를 가(加)하는데, 김국광(金國光)은 비록 큰 덕망은 없지마는 또한 큰 과실도 없었으니, 큰 과실이 없는 사람에게 아름답지 못한 시호(諡號)를 가(加)하는 것은 대체(大體)에 어긋남이 있습니다. 신(臣)의 뜻으로써는 생각하기를 정(丁)932) 이란 글자를 고쳐서 봉상시(奉常寺)에서 의논한 가운데의 다른 글자로써 시행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고, 이파(李坡)·김작(金碏)·권정(權侹)은 의논하기를,
"김국광(金國光)이 정권(政權)을 잡아 자못 마음대로 처리하여 여러 사람의 비방을 초래(招來)한 것이 있었지마는, 그러나 그 비방이 어찌 참으로 김국광(金國光)이 범한 허물이겠습니까? 만약 선(善)과 악(惡)이 서로 평등(平等)한 사람은 반드시 선(善)을 따라서 이를 정하게 되는데, 지금 태상시(太常寺)에서 김국광의 시호(諡號)를 의논한 것은 실상에 지나친 듯하니, 이를 고치는 것이 적당할 것입니다. 다만 이미 태상시(太常寺)로 하여금 이를 의논하게 했는데 조금 후에 또 이를 고친다면 경솔한 듯하며, 또 공정(公正)함을 후세(後世)에 보일 수가 없을까 두려우니, 삼가 성상께서 재가(裁可)하시기 바랍니다."
하고, 이계손(李繼孫)·이덕량(李德良)·손순효(孫舜孝)·신주(辛鑄)·이맹현(李孟賢)·유순(柳洵)·이칙(李則)은 의논하기를,
"시호(諡號)란 것은 행실의 자취이며, 시호를 주는 것은 또한 군주(君主)가 죽은 신하를 포창(褒彰)하고 구휼(救恤)하는 은전(恩典)이니, 만약 그의 행동한 바가 악(惡)만 있고 선(善)은 없다면 은혜로써 의리(義理)를 가리울 수가 없으므로 나쁜 시호(諡號)를 주는 것이 도리에 적당한 것이지마는, 그러나 선(善)과 악(惡)이 서로 반(半)씩 된다면 오히려 선(善)을 드러내고 악(惡)을 가리워서 시종(始終)의 은혜를 보전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김국광은 정승(政丞)의 자리에 오랫동안 있었으니, 그 훈로(勳勞)와 사업(事業)이 말할 만한 것이 있었으니, 그가 살아 있을 적에는 비록 비방을 초래한 허물이 있기는 했으나 또한 드러난 과실과 죄악도 없었으므로, 두 글자의 시호(諡號)가 반드시 결점(缺點)을 지적해서 정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유왕(幽王)·여왕(厲王)의 시호(諡號) 같은 것은 그 자신(自身)이 도리에 어긋났고 패국망가(敗國亡家)했으므로 실상에 맞은 명칭이므로 진실로 고칠 수가 없는 것이지마는, 명칭과 실상이 어긋나는 경우에는 옛날에도 시호(諡號)를 고친 사람이 있었으니, 어찌 한 곳에만 집착하여 논할 수가 있겠습니까?"
"김국광(金國光)은 비록 큰 덕망은 없더라도 또한 나타난 죄악도 없으니, 정(丁)이란 글자를 고치는 것이 적당하겠습니다. 신 등이 삼가 상고하건대, 시호란 것은 사람의 행실과 사업으로써 선(善)과 악(惡)을 기록하여 권려(勸勵)와 경계를 전하는 것이니, 이를 칭찬하기를 너무 지니치게 해서도 안되며, 이를 폄론(貶論)하기를 너무 낮추어서도 안됩니다. 지금 재상(宰相)의 행장(行狀)933) 은 반드시 그 친척(親戚)으로써 이를 찬술(撰述)하도록 하여 포양(褒揚)하고 찬미(贊美)하여 선(善)을 더하면서 악(惡)을 숨기고 있는데, 봉상시(奉常寺)에서는 이를 받아서 으레 떳떳한 일로 삼게 되니, 거개가 모두 그 사실에 부합(副合)하지 않는 것이 근일에 더욱 심하게 됩니다. 이것은 다름이 아니고 이를 알면서도 공정히 의논하지 않기도 하고, 혹은 알지 못하면서도 망령되이 의논했기 때문입니다. 대저 사관(史官)의 직책은 직필(直筆)934) 을 맡아서 위로는 군주(君主)의 거동(擧動)을 기록하고, 아래로는 재상(宰相)의 언행(言行)을 쓰기도 하며, 또 그가 졸(卒)함에 있어서는 선(善)과 악(惡)을 갖추어 기록하여 후대(後代)에 시비(是非)를 전하게 되니, 봉상시(奉常寺)에서는 비록 문신(文臣)으로써 인원을 채웠지마는, 문견(聞見)이 넓음과 의논(議論)의 공정(公正)함은 반드시 사관(史官)이 그 사실을 알아낸 것보다는 못할 것입니다. 지난번에 춘추관(春秋館)에 명하여 봉상시(奉常寺)와 더불어 함께 의논하도록 했더니, 옛날에 태상시(太常寺)에서 시호(諡號)를 의논하는 글로써 이를 그치게 했던 것입니다. 신(臣) 등은 생각하기를, 중국 조정의 예(例)에 의거하여 지금부터 이후로는 시호(諡號)의 일은 오로지 홍문관(弘文館)과 춘추관(春秋館)에 맡겨서 공도(公道)에 따르게 하소서."
하고, 이철견(李鐵堅)·정흔(鄭忻)·윤간(尹侃)·안양생(安良生)·조위(曺偉)·이세필(李世弼)·김극검(金克儉)·이종윤(李從允)·박경(朴璟)·유윤겸(柳允謙)·이명숭(李命崇)·성건(成健)·김종직(金宗直)·정성근(鄭誠謹)·김흔(金訢)·이창신(李昌臣)·신종호(申從護)·김응기(金應箕)·안윤손(安潤孫)·이균(李均)·이거(李琚)·황계옥(黃啓沃)·성희증(成希曾)은 의논하기를,
"시호(諡號)란 것은 행실의 자취입니다. 행실은 자기에게서 나오게 되고 명성(名聲)은 남에게서 나오게 되니, 선왕(先王)935) 이 선(善)을 권려(勸勵)하고 악(惡)을 저지(沮止)시켜서 사사로이 할 수 없는 까닭입니다. 만약 불선(不善)한 짓을 한 사람이 살아서 그 복록(福祿)을 누리었는데도 죽어서 또한 폄론(貶論)이 없게 된다면, 장차 무엇으로 선(善)을 권려(勸勵)하고 악(惡)을 저지(沮止)시키겠습니까? 지금 김국광(金國光)의 정(丁)이란 시호(諡號)는 반드시 그 실상과 틀리지는 않는데도 그 아들의 진소(陳訴)로써 갑자기 다시 고치라는 명령을 내리신다면 선왕(先王)의 선(善)을 권려(勸勵)하고 악(惡)을 저지(沮止)시키는 뜻이 아니니, 고치지 말도록 하는 것이 적당하겠습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2책 146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10책 395면
- 【분류】사법-재판(裁判) / 정론-정론(政論) / 인사-관리(管理)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역사-고사(故事)
- [註 924] 낭서(郞署) : 중요하지 않은 공무(公務)에 종사하는 관리.
- [註 925] 명성(明聖) : 임금의 지덕(智德)이 겸비함.
- [註 926] 문언박(文彦博) : 중국 북종(北宗) 때의 명신(名臣).
- [註 927] 유왕(幽王)과 여왕(厲王) : 두 임금은 모두 주대(周代)의 포학(暴虐)한 군주(君主)임. 유려(幽厲).
- [註 928] 애훼(哀毁) : 부모의 죽음을 슬퍼하여 몸이 훼상된 것.
- [註 929] 멸성(滅性) : 친상(親喪)을 당하여 너무 슬퍼한 나머지 병을 얻어 죽음.
- [註 930] 술의 불극(述義不克) : 의리(義理)를 이루지 못하였다는 뜻.
- [註 931] 유명(幽明) : 저승과 이승.
- [註 932] 정(丁) : 《사기(史記)》의 시법해(諡法解)에, 술의 불극(述義不克), 즉 의리(義理)를 능히 이루지 못하는 것을 정(丁)이라 하였음.
- [註 933] 행장(行狀) : 사람이 죽은 뒤 그 평생에 지낸 이력과 업적을 적은 글.
- [註 934] 직필(直筆) : 사실대로 기록하는 일.
- [註 935] 선왕(先王) : 선대의 군왕(君王).
원문
○金克忸上疏, 略曰:
臣等以父生無大過, 死有謬諡, 幽明之際, 父子之冤, 悠悠罔極。 臣等自知無狀, 然子而不伸父之冤, 不雪父之羞, 是有戾於父子之倫, 終不得齒於人, 而立於世也。 臣父雖無過人才德, 忠勤則有餘, 世祖擧之郞署之中, 五六遷, 而置諸左右。 世祖待臣父以禮, 臣父事世祖以忠, 事無大小, 莫不咨問, 莫不參畫, 人臣之寵, 求之古今, 未有如臣父者。 至於殿下, 亦蒙眷遇, 凡有大事, 必及議問, 殿下之待臣父, 恩亦至矣。 眷遇旣如是, 則必以爲賢也, 而待之, 生而爲賢臣, 死而得謬諡, 爲不能述義之臣, 非但臣等一家之痛, 揆之大體, 亦未安矣, 臣竊伏噓唏。 君臣相遇, 何代無之, 然雖聖主、賢臣之際, 鮮不爲群小流言飛語之所誤, 以至疑生於寵極, 罪加於曖昧者相環, 以臣父之寵之極, 旣有飛語之謗。 若非世祖之明聖, 辨之於前; 殿下之明聖, 辨之於後, 其能免乎? 甚矣其群小飛語之謗之毒, 不能害於其生之前, 而乃能中於其死之後也。 昔宋朝諡王堯臣曰文安, 其子同老論父功, 文彦博具奏本末, 改以文忠。 其諡之或謬而議, 不獨在於今, 而在於古, 其諡之稱實而改, 不獨在於今, 在於古。 今之諡者, 何不察臣父之行之實, 而徒以百世不能改者, 謂不可開端乎? 蓋古今諡, 而改之者, 有不可勝數。 其曰百世不能改, 有幽、厲之實, 而得幽、厲之諡者也, 固非如臣父之謂也。 人無過行, 而以醜諡加之, 乃曰: "百世不能改, 不可開端。" 豈《中庸》之至論乎? 臣之哀毁, 雖至滅性, 無足可惜, 喘息如綫, 今日不死, 明日必死, 老母之痛, 將何以爲? 臣誠恐母之哀痛, 必至殞命, 母則慮臣之滅性, 非朝卽夕, 母、子、兄、弟, 相疑相恐, 一家蒼黃, 罔知相救。 雖欲少寬哀抱, 以慰母心, 哀痛中來, 無以爲心, 俯伏闕下, 更訴冤鬱。 殿下於臣父之行, 若有可疑, 質諸朝廷, 朝廷曰: "某事乃金國光述義不克。" 則已矣, 若無有異言, 特賜一字之改, 上以白世祖知人之明, 下以慰臣父幽明之冤, 不勝幸甚。
命示政府、六曹、臺諫、承政院、弘文館。 姜希孟、許琮、成任、李克增、魚世恭、安迢、李陸議: "諡號自古有美惡, 苟稱其行, 不可輕改。 然有大德, 然後加美諡, 有大惡, 然後加惡諡, 國光雖無大德, 亦無大過, 無大過之人, 加以不美之諡, 有乖大體。 臣意以謂 ‘改丁字, 就奉常寺所議內他字施行’, 何如?" 李坡、金碏、權侹議: "國光秉鈞頗專, 致有衆謗, 然其謗也, 豈眞國光之所犯哉? 若善惡相等者, 則必從善, 而定之, 今太常之議國光諡也, 似乎過實, 改之爲便。 但旣令太常議之, 尋又改之, 似乎輕易, 且恐無以示公於後, 伏惟上裁。" 李繼孫、李德良、孫舜孝、辛鑄、李孟賢、柳洵、李則議: "諡者行之迹, 而贈諡者, 亦人主褒䘏亡臣之恩典也, 若其所行有惡而無善, 則不可以恩而掩義, 贈以惡諡, 理所當然, 善惡相半, 則猶當揚善掩惡, 以全終始之恩可也。 國光久居相位, 其勳勞事業, 有可言者, 其生也雖有招謗之累, 亦無顯顯過惡, 二字之諡, 不必指摘瑕累, 而爲定也。 若幽、厲之諡, 其身不道, 敗國亡家, 稱實之名, 固不可改, 至於名與實違, 則古有改諡者, 豈可執一而論乎?" 卞宗仁、成俔議: "金國光雖無大德, 亦無顯惡, 改丁字爲便。 臣等謹按, 諡者以人之行與事, 紀善惡, 而垂勸戒, 褒之不可大過, 貶之不可大損。 今宰相行狀, 必令其親戚撰之, 則褒揚贊美, 增善匿惡, 奉常受之, 例以爲常, 率皆不副其實, 近者爲尤甚。 此無他, 知之而不公議, 或不知而妄議之也。 夫史官職任直筆, 上以記君之擧, 下以書宰相之言行, 又於其卒, 備記善惡, 以傳是非於後代, 奉常寺雖以文臣備員, 聞見之博議論之公, 必不如史官之得其實。 曩者命春秋館, 與奉常寺同議, 以古者太常議諡之文而止之。 臣等以爲: ‘依中朝例, 自今以後, 諡事專委弘文館、春秋館, 以便公道。’" 李鐵堅、鄭忻、尹侃、安良生、曺偉、李世弼、金克儉、李從允、朴璟、柳允謙、李命崇、成健、金宗直、鄭誠謹、金訢、李昌臣、申從護、金應箕、安潤孫、李均、李琚、黃啓沃、成希曾議: "諡者, 行之迹也。 行出於己, 名生於人, 先王所以勸善沮惡, 不可私也。 若爲不善者, 生享其福, 死又無貶, 將何所勸沮乎? 今國光之諡丁, 未必爽於其實, 而以其子之陳訴, 輒賜更改, 非先王所以勸善沮惡之意, 勿改爲便。"
- 【태백산사고본】 22책 146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10책 395면
- 【분류】사법-재판(裁判) / 정론-정론(政論) / 인사-관리(管理)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역사-고사(故事)
성종실록146권, 성종 13년 9월 26일 辛酉 6/6 기사 / 1482년 명 성화(成化) 18년
아비의 잘못된 시호를 고쳐 달라는 김극유의 상소문에 대하여 의논하다
국역
김극유(金克忸)가 상소(上疏)했는데, 그 대략에 이르기를,
"신(臣) 등은 아비가 살아서는 큰 허물이 없었는데도, 죽어서 잘못된 시호(諡號)가 있는 이유로써 저승과 이승의 사이에 아비와 자식의 원통함이 아득하게 끝이 없으니, 신 등은 스스로 보잘것 없는 것을 알고 있지마는, 그러나 자식이면서도 아비의 원통함을 풀어주고 아비의 수치를 씻어 주지 않는다면, 이는 부자(父子)의 인륜(人倫)에 어긋남이 있으므로, 마침내 사람에게 끼어서 세상에 설 수가 없게 될 것입니다. 신의 아비는 비록 남보다 뛰어난 재주와 덕망은 없지마는, 충성스럽고 근실(勤實)한 것은 여유가 있었으므로 세조(世祖)께서 낭서(郞署)924) 의 중에서 기용(起用)하여 5, 6번이나 천직(遷職)시켜 임금의 측근에 두게 되었습니다. 세조(世祖)께서는 신의 아비를 예절로써 대우하고, 신의 아비는 세조(世祖)를 충성으로써 섬겨서, 일이 크고 작은 것을 논할 것 없이 자문(咨問)하지 않은 것이 없고 참획(參畫)하지 않은 것이 없었으니, 신하의 영예(榮譽)로써는 이를 고금(古今)에 찾아보아도 신의 아비와 같은 사람은 있지 않았습니다. 전하(殿下)에 이르러서도 또한 후(厚)한 대우를 입게 되어, 무릇 큰 일이 있으면 반드시 의논하고 묻게 되었으니, 전하께서 신의 아비를 대우하는 것도 은혜가 또한 지극했습니다. 후한 대우가 이미 이와 같다면 반드시 현인(賢人)으로 여겨서 대우했을 것인데, 살아서는 현신(賢臣)이 되었으나 죽어서는 잘못된 시호(諡號)를 얻게 되어 능히 의리(義理)를 따르지 못한 신하가 되었으니, 다만 신 등의 한 집안의 원통한 것뿐만 아니라, 대체(大體)에 이를 헤아려 보더라도 또한 편안하지 못한 일이므로, 신은 그윽이 엎드려 탄식합니다. 임금과 신하가 서로 만나는 것이 어느 시대인들 이 일이 없겠습니까마는, 그러나 비록 성주(聖主)와 현신(賢臣)의 사이에서도 여러 소인(小人)들의 유언 비어(流言飛語)에 그릇되지 않는 것이 드물어서 의심이 은총의 극도에서 생기고 죄가 애매(曖昧)한 데에 가(加)하게 되는 것이 서로 선회(旋回)하고 있으니, 신의 아비처럼 은총이 극도에 이른 사람으로 이미 비어(飛語)의 비방이 있게 되었습니다. 만약 세조(世祖)의 명성(明聖)925) 이 전일에 이를 분변하고 전하(殿下)의 명성이 후일에 이를 분변하지 않았더라면, 그것을 능히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심한 것은, 그 여러 소인(小人)들의 비어(飛語)로 비방하는 해독이 그의 생전(生前)에 해치지 못하고서 이에 그 사후(死後)에 미치게 된 그것입니다. 옛날에 송(宋)나라 조정에서 왕요신(王堯臣)에게 문안(文安)이란 시호(諡號)를 내리자, 그의 아들 왕동로(王同老)가 아비의 공로를 논하므로, 문언박(文彦博)926) 이 그 본말(本末)을 상세히 아뢰어 문충(文忠)으로 고치었으니, 그 시호(諡號)가 혹시 잘못되어 의논하는 것은 유독 지금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옛날에도 있었던 것이며, 그 시호(諡號)를 실상에 맞추어 고친 것은 유독 지금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옛날에도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의 시호를 정하는 사람은 어찌 신 아비의 행실의 실상(實狀)을 살피지 않고서 다만 백세(百世)에 능히 고칠 수 없다는 것으로써 단서(端緖)를 열 수가 없다고 생각하겠습니까? 대개 고금(古今)에 시호(諡號)를 정하고도 이를 고치는 사람은 이루 다 셀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백세(百世)에 능히 고칠 수가 없다는 것은, 유왕(幽王)과 여왕(厲王)927) 의 실상이 있어서 유왕(幽王)과 여왕(厲王)의 시호(諡號)를 얻은 것이고, 진실로 신의 아비와 같은 이를 이름은 아닙니다. 사람이 과실이 없는데도 비루한 시호(諡號)로써 가(加)하고는, 이에 말하기를, ‘백세(百世)에 능히 고칠 수가 없으니, 단서(端緖)를 열 수가 없다.’고 한다면, 어찌 《중용(中庸)》의 지극한 의논이겠습니까? 신(臣)의 애훼(哀毁)928) 는 비록 생명을 잃는 지경에 이르더라도 아까울 것이 없지마는, 숨이 차서 헐떡거리기가 실과 같아서 오늘날까지 죽지 않았으나 내일은 반드시 죽을 것이니, 노모(老母)의 상심(傷心)은 장차 어떻게 하겠습니까? 신은 진실로 어미의 애통(哀痛)이 반드시 운명(殞命)하는 지경에 이르게 될 것을 두려워하고 있으며, 어미는 신의 멸성(滅性)929) 이 아침이 아니면 곧 저녁에 있을 것을 염려하고 있으니, 어미와 자식, 형과 아우가 서로 의심하고 서로 두려워하여 한집안이 창황(蒼黃)하여 서로 구원할 줄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비록 슬픈 회포를 조금 늦추어서 어미의 마음을 위로하려고 하지마는, 애통(哀痛)이 속에서 나오게 되어 마음을 잡을 수가 없으므로, 대궐아래에 부복(俯伏)하여서 다시 원통하고 억울한 심정(心情)을 호소하게 됩니다. 전하(殿下)께서 신의 아비의 행실에 만약 의심할 만한 것이 있으면 조정(朝廷)에 질문(質問)하여, 조정에서 말하기를, ‘아무 일은 곧 김국광(金國光)의 술의 불극(述義不克)930) 입니다.’고 한다면 그만이겠지마는, 만약 색다른 말이 없다면 특별히 한 글자의 고침을 하사(下賜)하여 위로는 세조(世祖)께서 인물의 현우(賢愚)를 식별(識別)하는 명철(明哲)을 밝히시고, 아래로는 신의 아비의 유명(幽明)931) 의 원통함을 위로해 주신다면 매우 다행하겠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명하여 의정부(議政府)·육조(六曹)·대간(臺諫)·승정원(承政院)·홍문관(弘文館)에 보이니, 강희맹(姜希孟)·허종(許琮)·성임(成任)·이극중(李克增)·어세공(魚世恭)·안초(安迢)·이육(李陸)은 의논하기를,
"시호(諡號)는 예로부터 아름다운 것과 나쁜 것이 있으니, 진실로 그 행실에 맞기만 한다면 경솔히 고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큰 덕망이 있은 연후에야 아름다운 시호(諡號)를 가(加)하고 큰 죄악이 있은 연후에야 나쁜 시호(諡號)를 가(加)하는데, 김국광(金國光)은 비록 큰 덕망은 없지마는 또한 큰 과실도 없었으니, 큰 과실이 없는 사람에게 아름답지 못한 시호(諡號)를 가(加)하는 것은 대체(大體)에 어긋남이 있습니다. 신(臣)의 뜻으로써는 생각하기를 정(丁)932) 이란 글자를 고쳐서 봉상시(奉常寺)에서 의논한 가운데의 다른 글자로써 시행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고, 이파(李坡)·김작(金碏)·권정(權侹)은 의논하기를,
"김국광(金國光)이 정권(政權)을 잡아 자못 마음대로 처리하여 여러 사람의 비방을 초래(招來)한 것이 있었지마는, 그러나 그 비방이 어찌 참으로 김국광(金國光)이 범한 허물이겠습니까? 만약 선(善)과 악(惡)이 서로 평등(平等)한 사람은 반드시 선(善)을 따라서 이를 정하게 되는데, 지금 태상시(太常寺)에서 김국광의 시호(諡號)를 의논한 것은 실상에 지나친 듯하니, 이를 고치는 것이 적당할 것입니다. 다만 이미 태상시(太常寺)로 하여금 이를 의논하게 했는데 조금 후에 또 이를 고친다면 경솔한 듯하며, 또 공정(公正)함을 후세(後世)에 보일 수가 없을까 두려우니, 삼가 성상께서 재가(裁可)하시기 바랍니다."
하고, 이계손(李繼孫)·이덕량(李德良)·손순효(孫舜孝)·신주(辛鑄)·이맹현(李孟賢)·유순(柳洵)·이칙(李則)은 의논하기를,
"시호(諡號)란 것은 행실의 자취이며, 시호를 주는 것은 또한 군주(君主)가 죽은 신하를 포창(褒彰)하고 구휼(救恤)하는 은전(恩典)이니, 만약 그의 행동한 바가 악(惡)만 있고 선(善)은 없다면 은혜로써 의리(義理)를 가리울 수가 없으므로 나쁜 시호(諡號)를 주는 것이 도리에 적당한 것이지마는, 그러나 선(善)과 악(惡)이 서로 반(半)씩 된다면 오히려 선(善)을 드러내고 악(惡)을 가리워서 시종(始終)의 은혜를 보전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김국광은 정승(政丞)의 자리에 오랫동안 있었으니, 그 훈로(勳勞)와 사업(事業)이 말할 만한 것이 있었으니, 그가 살아 있을 적에는 비록 비방을 초래한 허물이 있기는 했으나 또한 드러난 과실과 죄악도 없었으므로, 두 글자의 시호(諡號)가 반드시 결점(缺點)을 지적해서 정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유왕(幽王)·여왕(厲王)의 시호(諡號) 같은 것은 그 자신(自身)이 도리에 어긋났고 패국망가(敗國亡家)했으므로 실상에 맞은 명칭이므로 진실로 고칠 수가 없는 것이지마는, 명칭과 실상이 어긋나는 경우에는 옛날에도 시호(諡號)를 고친 사람이 있었으니, 어찌 한 곳에만 집착하여 논할 수가 있겠습니까?"
"김국광(金國光)은 비록 큰 덕망은 없더라도 또한 나타난 죄악도 없으니, 정(丁)이란 글자를 고치는 것이 적당하겠습니다. 신 등이 삼가 상고하건대, 시호란 것은 사람의 행실과 사업으로써 선(善)과 악(惡)을 기록하여 권려(勸勵)와 경계를 전하는 것이니, 이를 칭찬하기를 너무 지니치게 해서도 안되며, 이를 폄론(貶論)하기를 너무 낮추어서도 안됩니다. 지금 재상(宰相)의 행장(行狀)933) 은 반드시 그 친척(親戚)으로써 이를 찬술(撰述)하도록 하여 포양(褒揚)하고 찬미(贊美)하여 선(善)을 더하면서 악(惡)을 숨기고 있는데, 봉상시(奉常寺)에서는 이를 받아서 으레 떳떳한 일로 삼게 되니, 거개가 모두 그 사실에 부합(副合)하지 않는 것이 근일에 더욱 심하게 됩니다. 이것은 다름이 아니고 이를 알면서도 공정히 의논하지 않기도 하고, 혹은 알지 못하면서도 망령되이 의논했기 때문입니다. 대저 사관(史官)의 직책은 직필(直筆)934) 을 맡아서 위로는 군주(君主)의 거동(擧動)을 기록하고, 아래로는 재상(宰相)의 언행(言行)을 쓰기도 하며, 또 그가 졸(卒)함에 있어서는 선(善)과 악(惡)을 갖추어 기록하여 후대(後代)에 시비(是非)를 전하게 되니, 봉상시(奉常寺)에서는 비록 문신(文臣)으로써 인원을 채웠지마는, 문견(聞見)이 넓음과 의논(議論)의 공정(公正)함은 반드시 사관(史官)이 그 사실을 알아낸 것보다는 못할 것입니다. 지난번에 춘추관(春秋館)에 명하여 봉상시(奉常寺)와 더불어 함께 의논하도록 했더니, 옛날에 태상시(太常寺)에서 시호(諡號)를 의논하는 글로써 이를 그치게 했던 것입니다. 신(臣) 등은 생각하기를, 중국 조정의 예(例)에 의거하여 지금부터 이후로는 시호(諡號)의 일은 오로지 홍문관(弘文館)과 춘추관(春秋館)에 맡겨서 공도(公道)에 따르게 하소서."
하고, 이철견(李鐵堅)·정흔(鄭忻)·윤간(尹侃)·안양생(安良生)·조위(曺偉)·이세필(李世弼)·김극검(金克儉)·이종윤(李從允)·박경(朴璟)·유윤겸(柳允謙)·이명숭(李命崇)·성건(成健)·김종직(金宗直)·정성근(鄭誠謹)·김흔(金訢)·이창신(李昌臣)·신종호(申從護)·김응기(金應箕)·안윤손(安潤孫)·이균(李均)·이거(李琚)·황계옥(黃啓沃)·성희증(成希曾)은 의논하기를,
"시호(諡號)란 것은 행실의 자취입니다. 행실은 자기에게서 나오게 되고 명성(名聲)은 남에게서 나오게 되니, 선왕(先王)935) 이 선(善)을 권려(勸勵)하고 악(惡)을 저지(沮止)시켜서 사사로이 할 수 없는 까닭입니다. 만약 불선(不善)한 짓을 한 사람이 살아서 그 복록(福祿)을 누리었는데도 죽어서 또한 폄론(貶論)이 없게 된다면, 장차 무엇으로 선(善)을 권려(勸勵)하고 악(惡)을 저지(沮止)시키겠습니까? 지금 김국광(金國光)의 정(丁)이란 시호(諡號)는 반드시 그 실상과 틀리지는 않는데도 그 아들의 진소(陳訴)로써 갑자기 다시 고치라는 명령을 내리신다면 선왕(先王)의 선(善)을 권려(勸勵)하고 악(惡)을 저지(沮止)시키는 뜻이 아니니, 고치지 말도록 하는 것이 적당하겠습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2책 146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10책 395면
- 【분류】사법-재판(裁判) / 정론-정론(政論) / 인사-관리(管理)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역사-고사(故事)
- [註 924] 낭서(郞署) : 중요하지 않은 공무(公務)에 종사하는 관리.
- [註 925] 명성(明聖) : 임금의 지덕(智德)이 겸비함.
- [註 926] 문언박(文彦博) : 중국 북종(北宗) 때의 명신(名臣).
- [註 927] 유왕(幽王)과 여왕(厲王) : 두 임금은 모두 주대(周代)의 포학(暴虐)한 군주(君主)임. 유려(幽厲).
- [註 928] 애훼(哀毁) : 부모의 죽음을 슬퍼하여 몸이 훼상된 것.
- [註 929] 멸성(滅性) : 친상(親喪)을 당하여 너무 슬퍼한 나머지 병을 얻어 죽음.
- [註 930] 술의 불극(述義不克) : 의리(義理)를 이루지 못하였다는 뜻.
- [註 931] 유명(幽明) : 저승과 이승.
- [註 932] 정(丁) : 《사기(史記)》의 시법해(諡法解)에, 술의 불극(述義不克), 즉 의리(義理)를 능히 이루지 못하는 것을 정(丁)이라 하였음.
- [註 933] 행장(行狀) : 사람이 죽은 뒤 그 평생에 지낸 이력과 업적을 적은 글.
- [註 934] 직필(直筆) : 사실대로 기록하는 일.
- [註 935] 선왕(先王) : 선대의 군왕(君王).
원문
○金克忸上疏, 略曰:
臣等以父生無大過, 死有謬諡, 幽明之際, 父子之冤, 悠悠罔極。 臣等自知無狀, 然子而不伸父之冤, 不雪父之羞, 是有戾於父子之倫, 終不得齒於人, 而立於世也。 臣父雖無過人才德, 忠勤則有餘, 世祖擧之郞署之中, 五六遷, 而置諸左右。 世祖待臣父以禮, 臣父事世祖以忠, 事無大小, 莫不咨問, 莫不參畫, 人臣之寵, 求之古今, 未有如臣父者。 至於殿下, 亦蒙眷遇, 凡有大事, 必及議問, 殿下之待臣父, 恩亦至矣。 眷遇旣如是, 則必以爲賢也, 而待之, 生而爲賢臣, 死而得謬諡, 爲不能述義之臣, 非但臣等一家之痛, 揆之大體, 亦未安矣, 臣竊伏噓唏。 君臣相遇, 何代無之, 然雖聖主、賢臣之際, 鮮不爲群小流言飛語之所誤, 以至疑生於寵極, 罪加於曖昧者相環, 以臣父之寵之極, 旣有飛語之謗。 若非世祖之明聖, 辨之於前; 殿下之明聖, 辨之於後, 其能免乎? 甚矣其群小飛語之謗之毒, 不能害於其生之前, 而乃能中於其死之後也。 昔宋朝諡王堯臣曰文安, 其子同老論父功, 文彦博具奏本末, 改以文忠。 其諡之或謬而議, 不獨在於今, 而在於古, 其諡之稱實而改, 不獨在於今, 在於古。 今之諡者, 何不察臣父之行之實, 而徒以百世不能改者, 謂不可開端乎? 蓋古今諡, 而改之者, 有不可勝數。 其曰百世不能改, 有幽、厲之實, 而得幽、厲之諡者也, 固非如臣父之謂也。 人無過行, 而以醜諡加之, 乃曰: "百世不能改, 不可開端。" 豈《中庸》之至論乎? 臣之哀毁, 雖至滅性, 無足可惜, 喘息如綫, 今日不死, 明日必死, 老母之痛, 將何以爲? 臣誠恐母之哀痛, 必至殞命, 母則慮臣之滅性, 非朝卽夕, 母、子、兄、弟, 相疑相恐, 一家蒼黃, 罔知相救。 雖欲少寬哀抱, 以慰母心, 哀痛中來, 無以爲心, 俯伏闕下, 更訴冤鬱。 殿下於臣父之行, 若有可疑, 質諸朝廷, 朝廷曰: "某事乃金國光述義不克。" 則已矣, 若無有異言, 特賜一字之改, 上以白世祖知人之明, 下以慰臣父幽明之冤, 不勝幸甚。
命示政府、六曹、臺諫、承政院、弘文館。 姜希孟、許琮、成任、李克增、魚世恭、安迢、李陸議: "諡號自古有美惡, 苟稱其行, 不可輕改。 然有大德, 然後加美諡, 有大惡, 然後加惡諡, 國光雖無大德, 亦無大過, 無大過之人, 加以不美之諡, 有乖大體。 臣意以謂 ‘改丁字, 就奉常寺所議內他字施行’, 何如?" 李坡、金碏、權侹議: "國光秉鈞頗專, 致有衆謗, 然其謗也, 豈眞國光之所犯哉? 若善惡相等者, 則必從善, 而定之, 今太常之議國光諡也, 似乎過實, 改之爲便。 但旣令太常議之, 尋又改之, 似乎輕易, 且恐無以示公於後, 伏惟上裁。" 李繼孫、李德良、孫舜孝、辛鑄、李孟賢、柳洵、李則議: "諡者行之迹, 而贈諡者, 亦人主褒䘏亡臣之恩典也, 若其所行有惡而無善, 則不可以恩而掩義, 贈以惡諡, 理所當然, 善惡相半, 則猶當揚善掩惡, 以全終始之恩可也。 國光久居相位, 其勳勞事業, 有可言者, 其生也雖有招謗之累, 亦無顯顯過惡, 二字之諡, 不必指摘瑕累, 而爲定也。 若幽、厲之諡, 其身不道, 敗國亡家, 稱實之名, 固不可改, 至於名與實違, 則古有改諡者, 豈可執一而論乎?" 卞宗仁、成俔議: "金國光雖無大德, 亦無顯惡, 改丁字爲便。 臣等謹按, 諡者以人之行與事, 紀善惡, 而垂勸戒, 褒之不可大過, 貶之不可大損。 今宰相行狀, 必令其親戚撰之, 則褒揚贊美, 增善匿惡, 奉常受之, 例以爲常, 率皆不副其實, 近者爲尤甚。 此無他, 知之而不公議, 或不知而妄議之也。 夫史官職任直筆, 上以記君之擧, 下以書宰相之言行, 又於其卒, 備記善惡, 以傳是非於後代, 奉常寺雖以文臣備員, 聞見之博議論之公, 必不如史官之得其實。 曩者命春秋館, 與奉常寺同議, 以古者太常議諡之文而止之。 臣等以爲: ‘依中朝例, 自今以後, 諡事專委弘文館、春秋館, 以便公道。’" 李鐵堅、鄭忻、尹侃、安良生、曺偉、李世弼、金克儉、李從允、朴璟、柳允謙、李命崇、成健、金宗直、鄭誠謹、金訢、李昌臣、申從護、金應箕、安潤孫、李均、李琚、黃啓沃、成希曾議: "諡者, 行之迹也。 行出於己, 名生於人, 先王所以勸善沮惡, 不可私也。 若爲不善者, 生享其福, 死又無貶, 將何所勸沮乎? 今國光之諡丁, 未必爽於其實, 而以其子之陳訴, 輒賜更改, 非先王所以勸善沮惡之意, 勿改爲便。"
- 【태백산사고본】 22책 146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10책 395면
- 【분류】사법-재판(裁判) / 정론-정론(政論) / 인사-관리(管理)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역사-고사(故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