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실록143권, 성종 13년 7월 18일 乙酉 6/6 기사 / 1482년 명 성화(成化) 18년
형조 판서 이승소가 글을 올려 사직을 청하여 윤허하다
국역
형조 판서(刑曹判書) 이승소(李承召)가 글을 올려 사직(辭職)하기를,
"신은 성품이 본래 어리석고 학문도 허술한데, 요행히 과거에 급제하여 마침내 집현전(集賢殿)에 들어가서, 오직 문자(文字)를 교정하고 문장(文章)을 익히는 것으로 일을 삼아, 관방(官方)·이치(吏治)와 인정(人情)·세고(世故)616) 에는 조금도 뜻을 두지 않았는데 더구나, 형명(刑名)·법률(法律)의 학문이겠습니까? 세상에서 모두 비웃고 비루(鄙陋)하게 여겨 진부(陳腐)하다고 지목합니다. 신도 돌이켜 보건대, 취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열성(列聖)께서 너그럽게 용납하시어 무능(無能)하다 이르지 아니하시고, 장구지학(章句之學)617) 을 취(取)하시어 고문(顧問)618) 의 자리에 두시어서, 영화를 탐하고 녹(祿)을 도둑질한 것이 30년이 넘었으며, 복(福)이 지나쳐서 재앙이 생기어, 마침내 풍비병(風痺病)619) 을 이루었습니다. 성상께서 등극(登極)하심에 미쳐서 선왕의 뜻을 크게 계승하시어 나라의 집을 지으심에, 비록 동량(棟樑)의 재목이 있어도 서까래의 작은 재목을 폐하지 않으시고 숭반(崇班)에 뽑아 두셔서 뜰 밑에 벌여 서게 하시어, 외람되게 경악(經幄)에서 모시며 천위(天威)을 가까이 하게 하셨으니, 비록 옛사람의 세 번 접(接)하는 은총이라 하더라도 이보다 더할 수 없습니다.
지난 경자년620) 에 사명(使命)을 받들고 북경(北京)에 갈 적에 일이 창졸간(倉卒間)에 생겨서 미처 사면(辭免)하지 못하고, 한겨울을 당하여 병든 몸으로 길을 떠나서 바람과 추위가 밖에서 덮치고 혈기(血氣)가 안에서 쇠하였습니다. 대저 사람은 몸이 고되면 기운이 쇠하고 기운이 쇠하면 정신(精神)이 없어지며 정신이 없어지면 죽는 것입니다. 신이 쇠하고 병든 나이에 〈먼 길의〉 산을 넘고 물을 건너는 수고로움을 당하였으니 스스로 반드시 죽을 줄로 알았는데, 다행히 성상의 돌보시는 은혜를 입어 몸과 목숨을 보전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몸과 정신이 괴롭고 쇠하며 마음과 뜻이 어두워서 흐리멍덩하기가 꿈속 가운데 있는 사람과 같으니, 즉시 벼슬을 사양하고 한가로운 데 나아가서 성명(性命)을 편안히 보양하는 것이 마땅한데, 오랫동안 인간 세상에 있으면서 사랑과 은혜 속에 처하여 오랫동안 중한 녹(祿)을 받으면서 보답하기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아래로는 배운 바를 저버리고 위로는 임금의 은혜를 저버리게 되었으니, 이른바 형벌로 죽일 백성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힘써 일을 다하여 자신을 돌보지 아니하고 노둔(駑鈍)함을 채찍질하여 우러러 천지같은 은혜에 보답하기를 바랐는데, 다시 형조(刑曹)에 임명을 받아 있을 곳에 있지 못하고 용렬한 자질(資質)로써 번극(繁劇)한 일을 전담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장년(壯年)이라도 감당하지 못하는데, 더욱이 늙어서 지기(志氣)가 어둡고 게으르며 율령(律令)까지 배우지 못하고 전고(典故)도 알지 못하니, 아무리 힘써서 하려고 하여도 시행(施行)과 조처(措處)를 알지 못하고 재주와 그릇이 같지 아니하여 일과 마음이 서로 어긋나므로, 이것은 바로 화상(和尙)621) 이 매[鷹]를 날리는 것과 같아서, 다만 웃음거리가 될 뿐입니다.
옛 말에 이르기를, ‘땅을 그어 놓고 옥(獄)이라고 하더라도 들어가지 아니하기를 원하다.’고 하고, 또 이르기를, ‘옥중(獄中)에서는 하루를 보내는 것이 한 해와 같다.’고 하였으니, 손과 발을 차꼬로 채워서 감금하기를 심히 굳게 하여, 몸이 가려워도 긁지 못하고 얼굴에 때가 끼어도 씻지 못하며, 음식을 제때에 먹지 못하여 굶주리고 목마름이 함께 침공하고, 모든 것이 하는 바가 자유롭지 못하여 괴롭고 고통스러운 것의 극진함이 끓는 물과 불 속에 있는 것 같아서, 하루를 지내는 것이 한 해와 같다고 하는 것입니다. 만약 기일(期日) 내에 판결하지 아니하고 시일(時日)을 지연시켜 끈다면, 어찌 원통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인심(人心)이 야박하고 속임수가 많아서 쟁송(爭訟)이 날마다 번거로와, 한 사람의 옥사(獄事)가 몇 해를 연해 계속되고 양쪽의 말들이 간교하게 속이는 것이 여러 가지로 많아서, 흰 것이 바뀌어 검은 것이 되고 거짓이 변하여 참된 것이 되니, 송사(訟事)를 청단(聽斷)하는 자를 어지럽고 미혹하게 하여 단서를 알 수 없습니다. 진실로 총명하고 꼿꼿한 사람이 아니면, 장차 그 말을 듣고 모양을 살펴서 숨은 사실을 적발하며 사실을 고백받아 자복(自服)하게 하고 억울함을 펴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매를 때리는 작은 형벌로부터 사형(死刑)에 이르기까지 살을 찢고 지체(支體)를 상하게 하는데, 절단된 것은 다시 이을 수 없고 죽은 자는 다시 살릴 수 없으니, 한 번 잘못된 것이 있으면 후회하여도 미칠 수 없습니다. 죽은 자는 그만이지만, 고아(孤兒)와 과부(寡婦)가 원한을 머금고 원통함을 품어 하늘을 우러러보며 가슴을 치고 피눈물을 흘릴 것이니, 화기(和氣)를 상하게 하고 재앙을 부르는 것이 진실로 이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지금 한 달을 계속하여 가물자 교서(敎書)를 내리시어 구언(求言)하시니, 신이 반복해서 생각해 보아도 위로는 정사에 잘못됨이 없고 아래로는 백성의 폐단이 없습니다. 한재(旱災)를 부르게 한 단서가 없는데, 불이 타는 듯한 재앙이 이처럼 극도에 이르렀으니, 이것이 어찌 까닭이 없이 함부로 일어난 것이겠습니까? 〈이것은〉 바로 소신(小臣)이 잘못 형관(刑官)의 장(長)이 된 때문입니다. 비록 참여해 돕는 이가 있어서 서로 같이 논의한다 하여도, 가부(可否)에 이르러서는 반드시 신의 결정을 기다려야 하므로, 신의 노쇠하고 혼망(昏妄)함이 위에서 진술한 바와 같아서, 청단(聽斷)할 때에 경중(輕重)을 잃어서 억울함을 끼친 것이 많을 것입니다. 예전에 한 계집이 억울하게 죽자 3년 동안 가물었는데, 하물며 한 사람에 그치지 아니한 것이겠습니까?
엎드려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속히 신의 벼슬을 파면하시고 다시 현명하고 진실한 사람을 골라서 형벌을 다스리는 임무를 주시어, 천견(天譴)에 보답하시고 화(禍)를 돌이켜서 복이 되게 하시면, 매우 다행하겠습니다. 한자(韓子)622) 가 말하기를, ‘능력을 헤아려서 맡기고 재주를 헤아려서 자리에 두며 능하지 못한 것은 억지로 시키지 않기 때문에, 밑에 있는 자는 위에 죄를 얻지 아니하고, 위에 있는 자는 아래의 원망을 얻지 않았다.’고 하였으니, 신과 같은 재주는 산지(散地)623) 에 두어서 천년(天年)624) 을 마치게 하심이 족합니다. 만약 성상께서 불쌍히 여기시어 버리지 아니하신다면, 문한(文翰)의 벼슬을 주시어서 붓과 벼루 사이에서 말기(末技)에 힘쓰게 하시는 것도 가합니다. 형벌을 밝히고 옥사(獄事)를 판결하는 것은 신이 예전에 바라던 것이 아닙니다.
엎드려 원하건대, 성상께서는 유능하지 못한 것을 가엾이 여기시고, 감당할 만한 것을 헤아리시어 재주에 따라 임무를 주시면, 소신의 다행일 뿐만 아니라 여러 벼슬에 있는 자들도 벼슬을 감당하지 못하고 정사를 좀먹는 폐단이 없을 것입니다."
하니, 돌려주도록 명하였다.
- [註 616] 세고(世故) : 세상 물정.
- [註 617] 장구지학(章句之學) : 장구(章句)에만 구애하여 대의(大義)에 통하지 아니하는 학문.
- [註 618] 고문(顧問) : 임금의 물음에 대답하는 일.
- [註 619] 풍비병(風痺病) : 중풍병.
- [註 620] 경자년 : 1480 성종 11년.
- [註 621] 화상(和尙) : 중.
- [註 622] 한자(韓子) : 당나라 한유(韓愈).
- [註 623] 산지(散地) : 산관(散官).
- [註 624] 천년(天年) : 천명.
원문
○刑曹判書李承召上狀辭職曰:
臣性本顓蒙, 學亦踈荒, 僥倖登科, 遂入集賢殿, 但以讎校文字, 攻習詞藻爲事, 其於官方、吏治、人情、世故, 略不措意, 況刑名、法律之學乎? 世皆嗤鄙, 目爲陳腐。 臣亦反顧, 無可取。 然而列聖涵容, 不謂無能, 錄其章句之學, 置諸顧問之地, 叨榮竊祿, 餘三十年, 福過災生, 遂致風痺之疾。 迨乎聖上龍飛, 丕承先志, 肯構肯堂, 雖有棟樑之材, 不廢欂櫨之微, 擢置崇班, 列于棘下, 猥侍經幄, 咫尺天威, 雖古人三接之寵, 蔑以加焉。 歲在庚子, 奉使如京, 事出倉猝, 未遑辭免, 正値窮冬, 扶疾就途, 風寒外襲, 血氣內耗。 夫人形勞, 則氣敝, 氣敝則神離, 神離則死矣。 臣以衰疾之年, 當跋涉之勞, 自分必死, 幸賴聖上眷顧之恩, 得全軀命而還。 然猶形神勞悴, 心志昏瞀, 懜懜如夢中人, 卽當辭榮就閒, 怡養性命, 久在人世, 優游寵私, 久享重祿, 而不思報效。 下負所學, 上孤主恩, 所謂刑戮之民也。 由是黽勉驅馳, 不爲身謀, 庶策駑鈍, 仰答生成, 而復承乏刑部, 處非其據, 以闇劣之資, 專繁劇之務。 雖在壯年, 猶不能堪, 況今衰暮, 志氣昏惰, 兼以不學律令, 不諳典故, 雖欲勉强, 罔知施措, 才與器不同, 事與心相違, 正與和尙飛鷹, 祇取笑耳。 古語云: "畫地爲獄, 期不入。" 又曰: "囹圄之中, 度日如年。" 以其杻手械足, 勘禁甚固, 身癢不得搔, 面垢不得洗, 飮食不時, 飢渴交攻, 凡百攸爲, 皆不自由, 困苦之極, 如在湯火, 所以度日如年也。 苟不刻日剖決, 延引時日, 則豈不冤哉? 且人心淆訛, 爭訟日繁, 一人之獄, 連逮數年, 兩造之辭, 巧詐百端, 轉白爲黑, 變虛爲實, 使聽訟者, 眩瞀迷惑, 罔識端倪。 苟非聰明剛果者, 將不能聽辭稽貌, 發摘隱伏, 而使之輸情伏辜, 冤枉得伸矣。 自鞭箠之微, 以至殊死之刑, 慘毒肌膚, 毁傷支體, 斷者不可復續, 死者不可復生, 一有所誤, 噬臍莫及。 死者已矣, 孤兒、寡婦, 含冤抱痛, 仰天搥胸, 繼之以血, 傷和召災, 職此之由。 今者以連月旱暵, 下敎求言, 臣反覆思之, 上無闕政, 下無民瘼。 靡有召旱之端, 而惔焚之災, 至於此極, 斯豈無故而妄作歟? 正由微臣, 謬長刑官。 雖有參佐, 相與論議, 至於可否, 必待臣決, 而臣之衰疾昏妄, 如上所陳, 聽斷之際, 輕重失所, 所以貽冤屈者多矣。 昔一女之死, 三年枯旱, 況不止一人乎? 伏惟聖上, 亟罷臣職, 更擇明允者, 以授祥刑之任, 仰答天譴, 轉禍爲 福幸甚。 韓子曰: "量力而任之, 度才而處之, 其所不能, 不强使爲, 是故爲下者, 不獲罪(故)〔於〕 上, 爲上者, 不得怨於下矣。" 如臣之才, 置之散地, 以終天年足矣。 若聖上哀而不棄, 則授一文翰之官, 使效末技於筆硯間, 亦可矣。 至於明刑折獄, 則非臣所望於昔者也。 伏願聖上, 矜其所不能, 度其所可堪, 隨材授任, 則非惟小臣之幸, 列于庶位者, 無關官蠧政之失矣。
命還給。
성종실록143권, 성종 13년 7월 18일 乙酉 6/6 기사 / 1482년 명 성화(成化) 18년
형조 판서 이승소가 글을 올려 사직을 청하여 윤허하다
국역
형조 판서(刑曹判書) 이승소(李承召)가 글을 올려 사직(辭職)하기를,
"신은 성품이 본래 어리석고 학문도 허술한데, 요행히 과거에 급제하여 마침내 집현전(集賢殿)에 들어가서, 오직 문자(文字)를 교정하고 문장(文章)을 익히는 것으로 일을 삼아, 관방(官方)·이치(吏治)와 인정(人情)·세고(世故)616) 에는 조금도 뜻을 두지 않았는데 더구나, 형명(刑名)·법률(法律)의 학문이겠습니까? 세상에서 모두 비웃고 비루(鄙陋)하게 여겨 진부(陳腐)하다고 지목합니다. 신도 돌이켜 보건대, 취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열성(列聖)께서 너그럽게 용납하시어 무능(無能)하다 이르지 아니하시고, 장구지학(章句之學)617) 을 취(取)하시어 고문(顧問)618) 의 자리에 두시어서, 영화를 탐하고 녹(祿)을 도둑질한 것이 30년이 넘었으며, 복(福)이 지나쳐서 재앙이 생기어, 마침내 풍비병(風痺病)619) 을 이루었습니다. 성상께서 등극(登極)하심에 미쳐서 선왕의 뜻을 크게 계승하시어 나라의 집을 지으심에, 비록 동량(棟樑)의 재목이 있어도 서까래의 작은 재목을 폐하지 않으시고 숭반(崇班)에 뽑아 두셔서 뜰 밑에 벌여 서게 하시어, 외람되게 경악(經幄)에서 모시며 천위(天威)을 가까이 하게 하셨으니, 비록 옛사람의 세 번 접(接)하는 은총이라 하더라도 이보다 더할 수 없습니다.
지난 경자년620) 에 사명(使命)을 받들고 북경(北京)에 갈 적에 일이 창졸간(倉卒間)에 생겨서 미처 사면(辭免)하지 못하고, 한겨울을 당하여 병든 몸으로 길을 떠나서 바람과 추위가 밖에서 덮치고 혈기(血氣)가 안에서 쇠하였습니다. 대저 사람은 몸이 고되면 기운이 쇠하고 기운이 쇠하면 정신(精神)이 없어지며 정신이 없어지면 죽는 것입니다. 신이 쇠하고 병든 나이에 〈먼 길의〉 산을 넘고 물을 건너는 수고로움을 당하였으니 스스로 반드시 죽을 줄로 알았는데, 다행히 성상의 돌보시는 은혜를 입어 몸과 목숨을 보전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몸과 정신이 괴롭고 쇠하며 마음과 뜻이 어두워서 흐리멍덩하기가 꿈속 가운데 있는 사람과 같으니, 즉시 벼슬을 사양하고 한가로운 데 나아가서 성명(性命)을 편안히 보양하는 것이 마땅한데, 오랫동안 인간 세상에 있으면서 사랑과 은혜 속에 처하여 오랫동안 중한 녹(祿)을 받으면서 보답하기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아래로는 배운 바를 저버리고 위로는 임금의 은혜를 저버리게 되었으니, 이른바 형벌로 죽일 백성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힘써 일을 다하여 자신을 돌보지 아니하고 노둔(駑鈍)함을 채찍질하여 우러러 천지같은 은혜에 보답하기를 바랐는데, 다시 형조(刑曹)에 임명을 받아 있을 곳에 있지 못하고 용렬한 자질(資質)로써 번극(繁劇)한 일을 전담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장년(壯年)이라도 감당하지 못하는데, 더욱이 늙어서 지기(志氣)가 어둡고 게으르며 율령(律令)까지 배우지 못하고 전고(典故)도 알지 못하니, 아무리 힘써서 하려고 하여도 시행(施行)과 조처(措處)를 알지 못하고 재주와 그릇이 같지 아니하여 일과 마음이 서로 어긋나므로, 이것은 바로 화상(和尙)621) 이 매[鷹]를 날리는 것과 같아서, 다만 웃음거리가 될 뿐입니다.
옛 말에 이르기를, ‘땅을 그어 놓고 옥(獄)이라고 하더라도 들어가지 아니하기를 원하다.’고 하고, 또 이르기를, ‘옥중(獄中)에서는 하루를 보내는 것이 한 해와 같다.’고 하였으니, 손과 발을 차꼬로 채워서 감금하기를 심히 굳게 하여, 몸이 가려워도 긁지 못하고 얼굴에 때가 끼어도 씻지 못하며, 음식을 제때에 먹지 못하여 굶주리고 목마름이 함께 침공하고, 모든 것이 하는 바가 자유롭지 못하여 괴롭고 고통스러운 것의 극진함이 끓는 물과 불 속에 있는 것 같아서, 하루를 지내는 것이 한 해와 같다고 하는 것입니다. 만약 기일(期日) 내에 판결하지 아니하고 시일(時日)을 지연시켜 끈다면, 어찌 원통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인심(人心)이 야박하고 속임수가 많아서 쟁송(爭訟)이 날마다 번거로와, 한 사람의 옥사(獄事)가 몇 해를 연해 계속되고 양쪽의 말들이 간교하게 속이는 것이 여러 가지로 많아서, 흰 것이 바뀌어 검은 것이 되고 거짓이 변하여 참된 것이 되니, 송사(訟事)를 청단(聽斷)하는 자를 어지럽고 미혹하게 하여 단서를 알 수 없습니다. 진실로 총명하고 꼿꼿한 사람이 아니면, 장차 그 말을 듣고 모양을 살펴서 숨은 사실을 적발하며 사실을 고백받아 자복(自服)하게 하고 억울함을 펴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매를 때리는 작은 형벌로부터 사형(死刑)에 이르기까지 살을 찢고 지체(支體)를 상하게 하는데, 절단된 것은 다시 이을 수 없고 죽은 자는 다시 살릴 수 없으니, 한 번 잘못된 것이 있으면 후회하여도 미칠 수 없습니다. 죽은 자는 그만이지만, 고아(孤兒)와 과부(寡婦)가 원한을 머금고 원통함을 품어 하늘을 우러러보며 가슴을 치고 피눈물을 흘릴 것이니, 화기(和氣)를 상하게 하고 재앙을 부르는 것이 진실로 이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지금 한 달을 계속하여 가물자 교서(敎書)를 내리시어 구언(求言)하시니, 신이 반복해서 생각해 보아도 위로는 정사에 잘못됨이 없고 아래로는 백성의 폐단이 없습니다. 한재(旱災)를 부르게 한 단서가 없는데, 불이 타는 듯한 재앙이 이처럼 극도에 이르렀으니, 이것이 어찌 까닭이 없이 함부로 일어난 것이겠습니까? 〈이것은〉 바로 소신(小臣)이 잘못 형관(刑官)의 장(長)이 된 때문입니다. 비록 참여해 돕는 이가 있어서 서로 같이 논의한다 하여도, 가부(可否)에 이르러서는 반드시 신의 결정을 기다려야 하므로, 신의 노쇠하고 혼망(昏妄)함이 위에서 진술한 바와 같아서, 청단(聽斷)할 때에 경중(輕重)을 잃어서 억울함을 끼친 것이 많을 것입니다. 예전에 한 계집이 억울하게 죽자 3년 동안 가물었는데, 하물며 한 사람에 그치지 아니한 것이겠습니까?
엎드려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속히 신의 벼슬을 파면하시고 다시 현명하고 진실한 사람을 골라서 형벌을 다스리는 임무를 주시어, 천견(天譴)에 보답하시고 화(禍)를 돌이켜서 복이 되게 하시면, 매우 다행하겠습니다. 한자(韓子)622) 가 말하기를, ‘능력을 헤아려서 맡기고 재주를 헤아려서 자리에 두며 능하지 못한 것은 억지로 시키지 않기 때문에, 밑에 있는 자는 위에 죄를 얻지 아니하고, 위에 있는 자는 아래의 원망을 얻지 않았다.’고 하였으니, 신과 같은 재주는 산지(散地)623) 에 두어서 천년(天年)624) 을 마치게 하심이 족합니다. 만약 성상께서 불쌍히 여기시어 버리지 아니하신다면, 문한(文翰)의 벼슬을 주시어서 붓과 벼루 사이에서 말기(末技)에 힘쓰게 하시는 것도 가합니다. 형벌을 밝히고 옥사(獄事)를 판결하는 것은 신이 예전에 바라던 것이 아닙니다.
엎드려 원하건대, 성상께서는 유능하지 못한 것을 가엾이 여기시고, 감당할 만한 것을 헤아리시어 재주에 따라 임무를 주시면, 소신의 다행일 뿐만 아니라 여러 벼슬에 있는 자들도 벼슬을 감당하지 못하고 정사를 좀먹는 폐단이 없을 것입니다."
하니, 돌려주도록 명하였다.
- [註 616] 세고(世故) : 세상 물정.
- [註 617] 장구지학(章句之學) : 장구(章句)에만 구애하여 대의(大義)에 통하지 아니하는 학문.
- [註 618] 고문(顧問) : 임금의 물음에 대답하는 일.
- [註 619] 풍비병(風痺病) : 중풍병.
- [註 620] 경자년 : 1480 성종 11년.
- [註 621] 화상(和尙) : 중.
- [註 622] 한자(韓子) : 당나라 한유(韓愈).
- [註 623] 산지(散地) : 산관(散官).
- [註 624] 천년(天年) : 천명.
원문
○刑曹判書李承召上狀辭職曰:
臣性本顓蒙, 學亦踈荒, 僥倖登科, 遂入集賢殿, 但以讎校文字, 攻習詞藻爲事, 其於官方、吏治、人情、世故, 略不措意, 況刑名、法律之學乎? 世皆嗤鄙, 目爲陳腐。 臣亦反顧, 無可取。 然而列聖涵容, 不謂無能, 錄其章句之學, 置諸顧問之地, 叨榮竊祿, 餘三十年, 福過災生, 遂致風痺之疾。 迨乎聖上龍飛, 丕承先志, 肯構肯堂, 雖有棟樑之材, 不廢欂櫨之微, 擢置崇班, 列于棘下, 猥侍經幄, 咫尺天威, 雖古人三接之寵, 蔑以加焉。 歲在庚子, 奉使如京, 事出倉猝, 未遑辭免, 正値窮冬, 扶疾就途, 風寒外襲, 血氣內耗。 夫人形勞, 則氣敝, 氣敝則神離, 神離則死矣。 臣以衰疾之年, 當跋涉之勞, 自分必死, 幸賴聖上眷顧之恩, 得全軀命而還。 然猶形神勞悴, 心志昏瞀, 懜懜如夢中人, 卽當辭榮就閒, 怡養性命, 久在人世, 優游寵私, 久享重祿, 而不思報效。 下負所學, 上孤主恩, 所謂刑戮之民也。 由是黽勉驅馳, 不爲身謀, 庶策駑鈍, 仰答生成, 而復承乏刑部, 處非其據, 以闇劣之資, 專繁劇之務。 雖在壯年, 猶不能堪, 況今衰暮, 志氣昏惰, 兼以不學律令, 不諳典故, 雖欲勉强, 罔知施措, 才與器不同, 事與心相違, 正與和尙飛鷹, 祇取笑耳。 古語云: "畫地爲獄, 期不入。" 又曰: "囹圄之中, 度日如年。" 以其杻手械足, 勘禁甚固, 身癢不得搔, 面垢不得洗, 飮食不時, 飢渴交攻, 凡百攸爲, 皆不自由, 困苦之極, 如在湯火, 所以度日如年也。 苟不刻日剖決, 延引時日, 則豈不冤哉? 且人心淆訛, 爭訟日繁, 一人之獄, 連逮數年, 兩造之辭, 巧詐百端, 轉白爲黑, 變虛爲實, 使聽訟者, 眩瞀迷惑, 罔識端倪。 苟非聰明剛果者, 將不能聽辭稽貌, 發摘隱伏, 而使之輸情伏辜, 冤枉得伸矣。 自鞭箠之微, 以至殊死之刑, 慘毒肌膚, 毁傷支體, 斷者不可復續, 死者不可復生, 一有所誤, 噬臍莫及。 死者已矣, 孤兒、寡婦, 含冤抱痛, 仰天搥胸, 繼之以血, 傷和召災, 職此之由。 今者以連月旱暵, 下敎求言, 臣反覆思之, 上無闕政, 下無民瘼。 靡有召旱之端, 而惔焚之災, 至於此極, 斯豈無故而妄作歟? 正由微臣, 謬長刑官。 雖有參佐, 相與論議, 至於可否, 必待臣決, 而臣之衰疾昏妄, 如上所陳, 聽斷之際, 輕重失所, 所以貽冤屈者多矣。 昔一女之死, 三年枯旱, 況不止一人乎? 伏惟聖上, 亟罷臣職, 更擇明允者, 以授祥刑之任, 仰答天譴, 轉禍爲 福幸甚。 韓子曰: "量力而任之, 度才而處之, 其所不能, 不强使爲, 是故爲下者, 不獲罪(故)〔於〕 上, 爲上者, 不得怨於下矣。" 如臣之才, 置之散地, 以終天年足矣。 若聖上哀而不棄, 則授一文翰之官, 使效末技於筆硯間, 亦可矣。 至於明刑折獄, 則非臣所望於昔者也。 伏願聖上, 矜其所不能, 度其所可堪, 隨材授任, 則非惟小臣之幸, 列于庶位者, 無關官蠧政之失矣。
命還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