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실록139권, 성종 13년 3월 23일 辛卯 3/3 기사 / 1482년 명 성화(成化) 18년
전 여주 판관 홍호가 진휼사의 소환, 수령에게 진휼을 전담케 하는 일을 상소하다
국역
전 여주 판관(驪州判官) 홍호(洪浩)가 상소(上疏)하기를,
"신이 지난해 봄에 관직에서 떨어져 고향에 돌아가 있었기에 여름부터 가을까지 가을부터 겨울까지 항상 시골[村野]에 있으면서 가난하고 외로운 백성들의 어려움을 보고 들었기에 말씀드립니다. 읍(邑)이라 하는 데서 전야(田野)의 늙은이들이 모두 이르기를, ‘내가 태어난 뒤에 비록 흉년을 여러 번 만났지마는 사방에서 굶주림을 알리는 것이 금년처럼 심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백성들이 어떤 이는 가산(家産)을 다 팔아서 입과 배를 채워 굶어 죽는 것을 구제하려 하여도 넉넉지 못한 자가 있으며, 어떤 이는 어린 자식을 버리고 아내까지 떠나서 실가(室家)가 서로 보전하지 못하는 자가 있으며, 어떤 이는 먹을 것이 끊어져 뼈만 남아서 입을 벌리고 먹여주기를 바라는 자가 있으며, 어떤 이는 유리 걸식(流離乞食)하다가 구학(溝壑)에 굴러 죽는 자가 있습니다. 신이 두려워하는 것은 금년 봄으로부터 보리가 익기에 이르는 동안에 백성들이 마침내 유망(流亡)하여서 십실(十室)에 아홉 집은 비게 될 것입니다. 옛사람이 유민도(流民圖)를 그려 올린 자가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대저 사람의 정리(情理)는 하루라도 먹을 것을 얻지 못하면 굶주리고 해가 마치도록 옷을 지어 입지 못하면 헐벗게 됩니다. 굶주리고 헐벗음이 몸에 간절하면 비록 군자(君子)라도 빈궁한 데서 마음을 굳게 가지는 것이 드문데, 하물며 소인(小人)들이겠습니까? 이제 빈궁한 백성들이 다투어 일어나서 도둑이 되어 마을 집들을 분탕(焚蕩)하며 양민(良民)을 괴롭히고 길에서 도둑질하여 죽이고 재물을 뺏는 것이 없을 날이 없습니다. 신은 그들의 형세가 날로 성(盛)하여서 장차 조정의 근심이 되지나 않을까 두렵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방금(方今)의 근심하는 것은 바로 백성들의 풍속이 야박(野薄)하여져서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능멸(陵蔑)하여 삼강(三綱)과 오상(五常)이 폐기(廢棄)되어 닦아지지 않아 아내가 남편을 업신여기고 종이 그의 주인을 죽이는 것이 가끔 있습니다. 더더구나 음란(淫亂)한 풍속이 날로 조장되고 고알(告訐)이 점점 성해집니다.
그런한데도 대간(臺諫)이나 시종(侍從)하는 신하로서 이응(李膺)165) 과 같이 탁(濁)한 것을 걸르고 맑은 것을 드날려서 퇴폐된 기강(紀綱)을 떨쳐 일으키는 것으로써 자기의 책무(責務)로 삼는 자가 누구입니까? 주석(柱石)같이 중한 대신(大臣)으로서 위상(魏相)166) 과 같이 강개(慷慨)하여 말할 것은 다 말하여 세상의 도의를 부지(扶持)하게 하는 것으로 자기의 책무로 삼는 자가 또한 누구입니까? 들으니, 옛날의 재상들은 소가 허덕거리는 것을 보고도 근심한다167) 하였습니다. 하물며 윤상(倫常)을 무너뜨리고 풍속을 어지럽히는 것이겠습니까? 만일 한(漢)나라의 가생(賈生)168) 이 다시 오늘에 태어나서 지금의 사건들을 본다면 통곡(痛哭)과 유체(流涕)로서 끝나지 아니할 것입니다. 신이 엎드려 보건대 전하(殿下)께서 흉년을 구제하는 일은 이미 감사(監司)와 수재(守宰)들에게 위임하고, 또 진휼사를 파견하여 총관(總管)하게 하시니, 그 백성들을 근심함이 지극하다 하겠습니다. 그런데 수령들은 눈앞의 것만 해결하면서 구차스럽게 견책(譴責)이나 당하지 않으려는 자가 간혹 있습니다. 신이 원하는 것은 감사와 수령들이 임금의 덕의(德意)를 받들어서 부지런히 백성들의 고통을 구휼(救恤)하고 성심껏 슬퍼하여 친히 여염(閭閻)을 출입하면서 굶주린 백성을 많이 살리는 자는 차례를 따지지 않고 탁용(擢用)하시고, 겉치레만 하고 실지에 힘쓰지 않아서 성심으로 백성을 애휼(愛恤)함이 적고 당상(堂上)에 앉아서 큰소리나 치면서 빈궁한 마을을 직접 다니지 아니하여 백성으로 하여금 굶주려 죽게 하는 자는 용서하지 않고 내쫓으며, 때때로 자주 근신(近臣)을 파견하여 감사와 수령들의 정성껏 하는가 허위(虛僞)로 하는가를 검찰하게 하시면 다행이겠습니다. 백성은 적자(赤子)이고 임금은 부모(父母)이며, 수령들은 유보(乳保)169) 입니다. 적자가 굶주려 우는데도 유보가 구휼하여 주지 않으면 부모된 마음에 어찌 측은하지 않겠습니까? 그러기에 백성들을 친하는 직책(職責)은 수령만한 것이 없고 흉년을 구제하는 급무(急務)가 이때만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한데도 수령들의 게으르고 태만한 자가 편한 것만 생각하고 수고스러움을 꺼려서 아주 외딴 촌락과 거리에도 오히려 직접 가서 구휼하지 않는데 더구나 감사(監司)이겠습니까? 더구나 진휼사이겠습니까? 한갓 관민(官民)을 번거롭게 할 뿐이고 진휼 구제하는 실적(實績)은 없다 하겠습니다. 신의 소견으로는 흉년을 구제하는 책임은 전전으로 감사와 수령들에게 위임하고 자주 그들이 성의껏 하는가 허위(虛僞)로 하는가를 조사하여 상과 벌을 내릴 것이며, 진휼사는 불러 돌아오게 하여서 관민의 폐단을 덜어 주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이와 같이 하면 사람들이 각기 권장(勸奬)되고 징계(懲戒)되어서 한 고을의 굶주린 백성은 한 고을의 수령이 살려낼 것이고, 한 도의 흉년에 대한 정책은 한 도의 감사가 수행할 것이니, 다른 도에서도 이렇게 하고 다른 고을에서도 이렇게 하면 혜택이 거의 백성들에게 미쳐서 죽음에 이르렀던 자가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풍속이 야박하여 강상(綱常)이 어지러워지는 것은 작은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대신과 대간들이 작고 번쇄(煩碎)한 데만 힘써서 일찍이 이렇게 큰 것에는 마음을 두지 못하였으니, 이 때문에 부유(蜉蝣)의 시(詩)170) 로써 풍자(諷刺)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대저 천하(天下)와 국가를 다스리는 데는 강상(綱常)에 벗어나는 것이 없습니다. 만일 이것을 버려두고 정치를 한다면 그야말로 임금이 임금 노릇을 못하고, 신하가 신하 노릇을 못하며, 아비가 아비 노릇을 못하고, 자식이 자식 노릇을 못하며, 지아비가 지아비 노릇을 못하고, 지어미가 지어미 노릇을 못하여, 간특(奸慝)한 것이 날로 일어나고 민이(民彝)171) 가 어지러워지고 소멸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풍속이 야박해지고 강상이 허물어지는 것은 누가 그 허물을 책임지겠습니까? 신은 그윽이 마음 아파합니다. 엎드려 원하건대 전하께서 허심 탄회(虛心坦懷)하게 사물을 대하시어 충직한 말을 받아 주시고 더욱 황정(荒政)172) 을 잘 가다듬으시며, 강상을 돈독하게 하신다면 종묘 사직의 복이요 국가의 다행이겠습니다."
하니, 어서(御書)로 이르기를,
"임금이 백성들의 죽는 것을 앉아 보기만 하고 구휼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0책 139권 14장 B면【국편영인본】 10책 311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사법-치안(治安) / 농업-농작(農作)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풍속-풍속(風俗) / 인사-관리(管理) / 윤리-강상(綱常) / 호구-이동(移動)
- [註 165] 이응(李膺) : 후한(後漢) 환제(桓帝)·영제(靈帝) 때 명신.
- [註 166] 위상(魏相) : 한(漢)나라 선제(宣帝) 때의 재상.
- [註 167] 옛날의 재상들은 소가 허덕거리는 것을 보고도 근심한다 : 전한(前漢) 선제(宣帝) 때에, 명상(名相) 병길(丙吉)이 소가 허덕거리는 것을 보고서 시후(時候)가 조화(調和)를 잃은 것을 알고 정치에 더욱 주의하였다는 고사(故事).
- [註 168] 가생(賈生) : 전한(前漢) 문제(文帝) 때의 문신(文臣) 가의(賈誼).
- [註 169] 유보(乳保) : 유모와 보모.
- [註 170] 부유(蜉蝣)의 시(詩) : 부유(蜉蝣)는 《시경(詩經)》 조풍(曹風)의 편명(篇名)인데, 당시 사람들이 조군(曹君) 소공(昭公)이 사치를 좋아하고 세쇄한 오락이나 구경하면서 먼 훗날의 근심을 잊어버린 것을 풍자한 것임.
- [註 171] 민이(民彝) : 백성들이 지켜야 할 도리.
- [註 172] 황정(荒政) : 흉년에 백성을 구제하는 정책.
원문
○前驪州判官洪浩上疏曰:
臣於去年春, 落職歸鄕, 自夏徂秋、自秋徂冬, 常在村野, 見聞鮮民之艱難。 言之可謂於邑, 田野老翁皆云: ‘我生之後, 雖遇凶荒, 四方告飢, 未有如今歲之甚也。’民或有罄鬻資産, 以充口腹, 而救死不贍者焉, 有棄兒離妻, 室家不相保者焉; 有食絶骨立, 開口望晡者焉; 有流離乞食, 轉死溝壑者焉。 臣恐自今春至麥熟, 則民卒流亡, 十室而九空矣。 古之人, 有獻流民圖者, 政爲此也。 夫人情, 一日不得食, 則飢, 終歲不製衣, 則寒。 飢寒切身, 雖君子, 鮮能固窮, 況小人乎? 今也窮民, 爭起爲盜, 焚蕩室廬, 虐害良民, 草竊於途, 殺越于貨者, 無日無之。 臣恐其勢日熾, 將爲朝廷患也。 不特此也, 方今之患, 正在俗薄, 下陵上替, 三綱五常, 廢棄不修, 婦乘其夫, 奴殺其主者, 比比有之。 加以淫風日長, 告訐浸盛。 然而臺諫從臣, 有如李膺之激濁揚淸, 以振起頹綱, 爲己責者誰耶? 柱石大臣, 有如魏相之慷慨, 盡言以扶持世道, 爲己任者亦誰也? 聞古之宰相, 尙憂牛喘, 況敗常亂俗者乎? 若使漢之賈生, 復出於今日, 而目今之事, 則不止於痛哭流涕而已也。 臣伏見殿下, 救荒之事, 旣以委諸監司、守宰, 又遣賑恤使以總之, 其爲憂民, 至矣盡矣。 然而守令, 趨辦目前, 苟逃譴責者, 間或有之。 臣願監司、守令, 奉上德意, 勤恤民隱, 誠心惻怛, 親出入閭閻, 多活飢民者, 不次擢之, 務支不務實, 少誠心字愛, 坐嘯堂上, 足不蹈窮巷之中, 使民餓莩者, 罔宥黜之時, 則屢遣近臣, 檢察監司、守令之誠僞, 幸甚。 夫民者赤子也, 君者父母也, 守令者乳保也。 赤子啼飢, 而乳保不能救護, 則其爲父母之心, 豈不惻然乎? 是故親民之職, 莫若守令; 救荒之急, 無如此時。 而守令之懶慢者, 思安憚勞, 窮村僻巷, 尙不親往救之, 況於監司乎? 況於賑恤使乎? 徒擾官民, 而賑救之實, 則無有也。 臣意以爲 ‘救荒之責, 一委監司、守令, 屢考誠僞, 而賞罰之, 招還賑恤使, 以除官民之弊, 疑若可也。’ 如是則人各勸懲, 一邑之飢民, 一邑之守令活之, 一道之荒政, 一道之監司擧之, 他道如是, 他邑亦如是, 庶幾惠澤及民, 濱死者復蘇矣。 俗薄惡亂綱常, 非細故也。 而大臣、臺諫, 猶務於細碎, 曾不以是大者爲意, 此《蜉蝣》之詩所以刺也。 夫爲天下國家, 固無出於綱常。 若捨此而爲治, 則所謂君不君、臣不臣、父不父、子不子、夫不夫、婦不婦, 奸慝日作, 而民彝泯亂矣。 然則風俗之薄, 綱常之壞, 誰任其咎乎? 臣竊痛心。 伏願殿下, 虛懷待物, 延納讜言, 益修荒政, 益敦綱常, 則宗社之福, 國家之幸也。
御書曰: "人主坐視民死, 而不恤耶?"
- 【태백산사고본】 20책 139권 14장 B면【국편영인본】 10책 311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사법-치안(治安) / 농업-농작(農作)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풍속-풍속(風俗) / 인사-관리(管理) / 윤리-강상(綱常) / 호구-이동(移動)
성종실록139권, 성종 13년 3월 23일 辛卯 3/3 기사 / 1482년 명 성화(成化) 18년
전 여주 판관 홍호가 진휼사의 소환, 수령에게 진휼을 전담케 하는 일을 상소하다
국역
전 여주 판관(驪州判官) 홍호(洪浩)가 상소(上疏)하기를,
"신이 지난해 봄에 관직에서 떨어져 고향에 돌아가 있었기에 여름부터 가을까지 가을부터 겨울까지 항상 시골[村野]에 있으면서 가난하고 외로운 백성들의 어려움을 보고 들었기에 말씀드립니다. 읍(邑)이라 하는 데서 전야(田野)의 늙은이들이 모두 이르기를, ‘내가 태어난 뒤에 비록 흉년을 여러 번 만났지마는 사방에서 굶주림을 알리는 것이 금년처럼 심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백성들이 어떤 이는 가산(家産)을 다 팔아서 입과 배를 채워 굶어 죽는 것을 구제하려 하여도 넉넉지 못한 자가 있으며, 어떤 이는 어린 자식을 버리고 아내까지 떠나서 실가(室家)가 서로 보전하지 못하는 자가 있으며, 어떤 이는 먹을 것이 끊어져 뼈만 남아서 입을 벌리고 먹여주기를 바라는 자가 있으며, 어떤 이는 유리 걸식(流離乞食)하다가 구학(溝壑)에 굴러 죽는 자가 있습니다. 신이 두려워하는 것은 금년 봄으로부터 보리가 익기에 이르는 동안에 백성들이 마침내 유망(流亡)하여서 십실(十室)에 아홉 집은 비게 될 것입니다. 옛사람이 유민도(流民圖)를 그려 올린 자가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대저 사람의 정리(情理)는 하루라도 먹을 것을 얻지 못하면 굶주리고 해가 마치도록 옷을 지어 입지 못하면 헐벗게 됩니다. 굶주리고 헐벗음이 몸에 간절하면 비록 군자(君子)라도 빈궁한 데서 마음을 굳게 가지는 것이 드문데, 하물며 소인(小人)들이겠습니까? 이제 빈궁한 백성들이 다투어 일어나서 도둑이 되어 마을 집들을 분탕(焚蕩)하며 양민(良民)을 괴롭히고 길에서 도둑질하여 죽이고 재물을 뺏는 것이 없을 날이 없습니다. 신은 그들의 형세가 날로 성(盛)하여서 장차 조정의 근심이 되지나 않을까 두렵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방금(方今)의 근심하는 것은 바로 백성들의 풍속이 야박(野薄)하여져서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능멸(陵蔑)하여 삼강(三綱)과 오상(五常)이 폐기(廢棄)되어 닦아지지 않아 아내가 남편을 업신여기고 종이 그의 주인을 죽이는 것이 가끔 있습니다. 더더구나 음란(淫亂)한 풍속이 날로 조장되고 고알(告訐)이 점점 성해집니다.
그런한데도 대간(臺諫)이나 시종(侍從)하는 신하로서 이응(李膺)165) 과 같이 탁(濁)한 것을 걸르고 맑은 것을 드날려서 퇴폐된 기강(紀綱)을 떨쳐 일으키는 것으로써 자기의 책무(責務)로 삼는 자가 누구입니까? 주석(柱石)같이 중한 대신(大臣)으로서 위상(魏相)166) 과 같이 강개(慷慨)하여 말할 것은 다 말하여 세상의 도의를 부지(扶持)하게 하는 것으로 자기의 책무로 삼는 자가 또한 누구입니까? 들으니, 옛날의 재상들은 소가 허덕거리는 것을 보고도 근심한다167) 하였습니다. 하물며 윤상(倫常)을 무너뜨리고 풍속을 어지럽히는 것이겠습니까? 만일 한(漢)나라의 가생(賈生)168) 이 다시 오늘에 태어나서 지금의 사건들을 본다면 통곡(痛哭)과 유체(流涕)로서 끝나지 아니할 것입니다. 신이 엎드려 보건대 전하(殿下)께서 흉년을 구제하는 일은 이미 감사(監司)와 수재(守宰)들에게 위임하고, 또 진휼사를 파견하여 총관(總管)하게 하시니, 그 백성들을 근심함이 지극하다 하겠습니다. 그런데 수령들은 눈앞의 것만 해결하면서 구차스럽게 견책(譴責)이나 당하지 않으려는 자가 간혹 있습니다. 신이 원하는 것은 감사와 수령들이 임금의 덕의(德意)를 받들어서 부지런히 백성들의 고통을 구휼(救恤)하고 성심껏 슬퍼하여 친히 여염(閭閻)을 출입하면서 굶주린 백성을 많이 살리는 자는 차례를 따지지 않고 탁용(擢用)하시고, 겉치레만 하고 실지에 힘쓰지 않아서 성심으로 백성을 애휼(愛恤)함이 적고 당상(堂上)에 앉아서 큰소리나 치면서 빈궁한 마을을 직접 다니지 아니하여 백성으로 하여금 굶주려 죽게 하는 자는 용서하지 않고 내쫓으며, 때때로 자주 근신(近臣)을 파견하여 감사와 수령들의 정성껏 하는가 허위(虛僞)로 하는가를 검찰하게 하시면 다행이겠습니다. 백성은 적자(赤子)이고 임금은 부모(父母)이며, 수령들은 유보(乳保)169) 입니다. 적자가 굶주려 우는데도 유보가 구휼하여 주지 않으면 부모된 마음에 어찌 측은하지 않겠습니까? 그러기에 백성들을 친하는 직책(職責)은 수령만한 것이 없고 흉년을 구제하는 급무(急務)가 이때만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한데도 수령들의 게으르고 태만한 자가 편한 것만 생각하고 수고스러움을 꺼려서 아주 외딴 촌락과 거리에도 오히려 직접 가서 구휼하지 않는데 더구나 감사(監司)이겠습니까? 더구나 진휼사이겠습니까? 한갓 관민(官民)을 번거롭게 할 뿐이고 진휼 구제하는 실적(實績)은 없다 하겠습니다. 신의 소견으로는 흉년을 구제하는 책임은 전전으로 감사와 수령들에게 위임하고 자주 그들이 성의껏 하는가 허위(虛僞)로 하는가를 조사하여 상과 벌을 내릴 것이며, 진휼사는 불러 돌아오게 하여서 관민의 폐단을 덜어 주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이와 같이 하면 사람들이 각기 권장(勸奬)되고 징계(懲戒)되어서 한 고을의 굶주린 백성은 한 고을의 수령이 살려낼 것이고, 한 도의 흉년에 대한 정책은 한 도의 감사가 수행할 것이니, 다른 도에서도 이렇게 하고 다른 고을에서도 이렇게 하면 혜택이 거의 백성들에게 미쳐서 죽음에 이르렀던 자가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풍속이 야박하여 강상(綱常)이 어지러워지는 것은 작은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대신과 대간들이 작고 번쇄(煩碎)한 데만 힘써서 일찍이 이렇게 큰 것에는 마음을 두지 못하였으니, 이 때문에 부유(蜉蝣)의 시(詩)170) 로써 풍자(諷刺)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대저 천하(天下)와 국가를 다스리는 데는 강상(綱常)에 벗어나는 것이 없습니다. 만일 이것을 버려두고 정치를 한다면 그야말로 임금이 임금 노릇을 못하고, 신하가 신하 노릇을 못하며, 아비가 아비 노릇을 못하고, 자식이 자식 노릇을 못하며, 지아비가 지아비 노릇을 못하고, 지어미가 지어미 노릇을 못하여, 간특(奸慝)한 것이 날로 일어나고 민이(民彝)171) 가 어지러워지고 소멸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풍속이 야박해지고 강상이 허물어지는 것은 누가 그 허물을 책임지겠습니까? 신은 그윽이 마음 아파합니다. 엎드려 원하건대 전하께서 허심 탄회(虛心坦懷)하게 사물을 대하시어 충직한 말을 받아 주시고 더욱 황정(荒政)172) 을 잘 가다듬으시며, 강상을 돈독하게 하신다면 종묘 사직의 복이요 국가의 다행이겠습니다."
하니, 어서(御書)로 이르기를,
"임금이 백성들의 죽는 것을 앉아 보기만 하고 구휼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0책 139권 14장 B면【국편영인본】 10책 3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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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註 165] 이응(李膺) : 후한(後漢) 환제(桓帝)·영제(靈帝) 때 명신.
- [註 166] 위상(魏相) : 한(漢)나라 선제(宣帝) 때의 재상.
- [註 167] 옛날의 재상들은 소가 허덕거리는 것을 보고도 근심한다 : 전한(前漢) 선제(宣帝) 때에, 명상(名相) 병길(丙吉)이 소가 허덕거리는 것을 보고서 시후(時候)가 조화(調和)를 잃은 것을 알고 정치에 더욱 주의하였다는 고사(故事).
- [註 168] 가생(賈生) : 전한(前漢) 문제(文帝) 때의 문신(文臣) 가의(賈誼).
- [註 169] 유보(乳保) : 유모와 보모.
- [註 170] 부유(蜉蝣)의 시(詩) : 부유(蜉蝣)는 《시경(詩經)》 조풍(曹風)의 편명(篇名)인데, 당시 사람들이 조군(曹君) 소공(昭公)이 사치를 좋아하고 세쇄한 오락이나 구경하면서 먼 훗날의 근심을 잊어버린 것을 풍자한 것임.
- [註 171] 민이(民彝) : 백성들이 지켜야 할 도리.
- [註 172] 황정(荒政) : 흉년에 백성을 구제하는 정책.
원문
○前驪州判官洪浩上疏曰:
臣於去年春, 落職歸鄕, 自夏徂秋、自秋徂冬, 常在村野, 見聞鮮民之艱難。 言之可謂於邑, 田野老翁皆云: ‘我生之後, 雖遇凶荒, 四方告飢, 未有如今歲之甚也。’民或有罄鬻資産, 以充口腹, 而救死不贍者焉, 有棄兒離妻, 室家不相保者焉; 有食絶骨立, 開口望晡者焉; 有流離乞食, 轉死溝壑者焉。 臣恐自今春至麥熟, 則民卒流亡, 十室而九空矣。 古之人, 有獻流民圖者, 政爲此也。 夫人情, 一日不得食, 則飢, 終歲不製衣, 則寒。 飢寒切身, 雖君子, 鮮能固窮, 況小人乎? 今也窮民, 爭起爲盜, 焚蕩室廬, 虐害良民, 草竊於途, 殺越于貨者, 無日無之。 臣恐其勢日熾, 將爲朝廷患也。 不特此也, 方今之患, 正在俗薄, 下陵上替, 三綱五常, 廢棄不修, 婦乘其夫, 奴殺其主者, 比比有之。 加以淫風日長, 告訐浸盛。 然而臺諫從臣, 有如李膺之激濁揚淸, 以振起頹綱, 爲己責者誰耶? 柱石大臣, 有如魏相之慷慨, 盡言以扶持世道, 爲己任者亦誰也? 聞古之宰相, 尙憂牛喘, 況敗常亂俗者乎? 若使漢之賈生, 復出於今日, 而目今之事, 則不止於痛哭流涕而已也。 臣伏見殿下, 救荒之事, 旣以委諸監司、守宰, 又遣賑恤使以總之, 其爲憂民, 至矣盡矣。 然而守令, 趨辦目前, 苟逃譴責者, 間或有之。 臣願監司、守令, 奉上德意, 勤恤民隱, 誠心惻怛, 親出入閭閻, 多活飢民者, 不次擢之, 務支不務實, 少誠心字愛, 坐嘯堂上, 足不蹈窮巷之中, 使民餓莩者, 罔宥黜之時, 則屢遣近臣, 檢察監司、守令之誠僞, 幸甚。 夫民者赤子也, 君者父母也, 守令者乳保也。 赤子啼飢, 而乳保不能救護, 則其爲父母之心, 豈不惻然乎? 是故親民之職, 莫若守令; 救荒之急, 無如此時。 而守令之懶慢者, 思安憚勞, 窮村僻巷, 尙不親往救之, 況於監司乎? 況於賑恤使乎? 徒擾官民, 而賑救之實, 則無有也。 臣意以爲 ‘救荒之責, 一委監司、守令, 屢考誠僞, 而賞罰之, 招還賑恤使, 以除官民之弊, 疑若可也。’ 如是則人各勸懲, 一邑之飢民, 一邑之守令活之, 一道之荒政, 一道之監司擧之, 他道如是, 他邑亦如是, 庶幾惠澤及民, 濱死者復蘇矣。 俗薄惡亂綱常, 非細故也。 而大臣、臺諫, 猶務於細碎, 曾不以是大者爲意, 此《蜉蝣》之詩所以刺也。 夫爲天下國家, 固無出於綱常。 若捨此而爲治, 則所謂君不君、臣不臣、父不父、子不子、夫不夫、婦不婦, 奸慝日作, 而民彝泯亂矣。 然則風俗之薄, 綱常之壞, 誰任其咎乎? 臣竊痛心。 伏願殿下, 虛懷待物, 延納讜言, 益修荒政, 益敦綱常, 則宗社之福, 國家之幸也。
御書曰: "人主坐視民死, 而不恤耶?"
- 【태백산사고본】 20책 139권 14장 B면【국편영인본】 10책 311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사법-치안(治安) / 농업-농작(農作)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풍속-풍속(風俗) / 인사-관리(管理) / 윤리-강상(綱常) / 호구-이동(移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