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실록127권, 성종 12년 3월 5일 己卯 4/4 기사 / 1481년 명 성화(成化) 17년
예조에서 효성이 지극한 양주의 수군 윤척산에게 상주기를 아뢰다
국역
예조에서 경기 관찰사의 계본에 의거하여 아뢰기를,
"양주(楊州) 사는 수군(水軍) 윤척산(尹滌山)은 어려서 어미를 잃고 홀로 아비와 살며 고사리를 캐고 물고기를 잡아 조석으로 봉양하였습니다. 그 아비가 죽자, 장사를 위하여 이웃에서 빌어다가 아주 정성스럽게 치르고, 여묘살이 3년 동안 무덤 곁을 떠나지 않았고, 그 뒤로 삭망(朔望)을 당할 때마다 몸소 잔을 올리는 일을 그만두지 않았으며, 계모를 생모와 똑같이 섬겼으니, 그 효성이 가상합니다. 신들이 윤척산의 효행을 살피건대, 자식으로서 으레 해야 할 일이기는 하나, 나이 젊은 가난한 사람으로서 생전에 봉양하고 사후에 장송(葬送)하는 일을 지성으로 하여 마지 않았으니, 《대전(大典)》119) 에 의하여 호조(戶曹)로 하여금 상을 주어 권장하도록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 [註 119] 《대전(大典)》 : 《경국대전(經國大典)》.
원문
성종실록127권, 성종 12년 3월 5일 己卯 4/4 기사 / 1481년 명 성화(成化) 17년
예조에서 효성이 지극한 양주의 수군 윤척산에게 상주기를 아뢰다
국역
예조에서 경기 관찰사의 계본에 의거하여 아뢰기를,
"양주(楊州) 사는 수군(水軍) 윤척산(尹滌山)은 어려서 어미를 잃고 홀로 아비와 살며 고사리를 캐고 물고기를 잡아 조석으로 봉양하였습니다. 그 아비가 죽자, 장사를 위하여 이웃에서 빌어다가 아주 정성스럽게 치르고, 여묘살이 3년 동안 무덤 곁을 떠나지 않았고, 그 뒤로 삭망(朔望)을 당할 때마다 몸소 잔을 올리는 일을 그만두지 않았으며, 계모를 생모와 똑같이 섬겼으니, 그 효성이 가상합니다. 신들이 윤척산의 효행을 살피건대, 자식으로서 으레 해야 할 일이기는 하나, 나이 젊은 가난한 사람으로서 생전에 봉양하고 사후에 장송(葬送)하는 일을 지성으로 하여 마지 않았으니, 《대전(大典)》119) 에 의하여 호조(戶曹)로 하여금 상을 주어 권장하도록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 [註 119] 《대전(大典)》 : 《경국대전(經國大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