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실록119권, 성종 11년 7월 5일 癸未 1/3 기사 / 1480년 명 성화(成化) 16년
일본국의 원의승이 사람을 보내어 토산물을 바치고 글을 올리다
국역
일본국(日本國) 경성 관령(京城管領) 전산(畠山) 좌경 대부(左京大夫) 원의승(源義勝)이 사람을 보내어 와서 토산물[土宜]을 바치었다. 그 글에 이르기를,
"하늘이 멀고 땅이 달라 서신(書信)이 끊어졌으니, 먼 생각은 만 리에 달리고 성수(聖壽)는 억년(億年)토록 빕니다. 본방(本邦)이 오랫동안 전쟁[干戈]에 시달리다가 지금 두 전하(殿下)가 낙하(洛下)에서 화친하여 동주(東主)·서주(西主)로 일컫게 되었습니다. 우리 서주(西主) 의견(義見)이 신에게 귀국(貴國)과 화호(和好)가 있다 하여서 명하여 고하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훗날 특별히 전사(專使)를 보내어서 폐백을 후하게 하여 빙례(聘禮)를 드릴 것입니다. 듣건대 왕년에 국사(國使)가 돌아올 때 신부(信符)를 쪼개어 보내었고, 낙하(洛下)의 여러 대인(大人)이 돌아오는 배가 남쪽의 군사를 피하여 북해(北海)로 갔다가 풍파에 표류(漂流)되어 간 곳을 알지 못하는데, 지난해에 배가 북적(北狄)의 나라에 이르렀다는 것을 듣고 곧 사선(使船)을 보내어 찾아보았으나, 그 사명(使命)이 돌아오지 않았으니, 실로 있고 없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가령 그 배가 비록 탈이 없다 하더라도 반서(返書)와 폐물(幣物)은 온전하기가 어려울 것 같으니, 이 사개(使介)가 돌아올 때에 반서(返書) 가운데의 취지를 살피어 써서 주시면 아뢰겠습니다.
정유년306) 에 우리 나라가 진공선(進貢船)을 명(明)나라에 보낼 때 우리의 도속(徒屬) 양심(良心)을 부(副)로 삼았는데, 공선(貢船)이 돌아올 때에 귀국 제주도(濟州島)에 이르니, 그 곳의 관리가 까닭 없이 양심 등 20인을 묶어 가두었습니다. 그래서 장차 죽게 되었다가 만 가지 계책으로 탈출하였으나, 양심이 나라에 도달하지 못하고 드디어 사망하였습니다. 비록 적국이라 하더라도 행리(行李)307) 가 왕래하는 것은 길을 빌려서 지나가게 하는 것이 고금을 통한 의리인데, 더구나 귀국과 본방은 함께 명(明)나라를 섬기면서 열국(列國)과 화호(和好)를 통하기를 노(魯)나라·위(衛)나라가 형제라고 칭하는 것과 같이 하니, 비록 우리 나라는 용서하지 않더라도 명(明)나라의 반조(返詔)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왜 그렇습니까? 또 우리 능등주(能登州)가 멀리 귀국과 서로 향하고 있으므로 일찍이 표류한 사람이 있으면 선인(先人)들이 보존하고 애호하여 돌려보내어서, 인하여 맹약(盟約)이 서로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앞서 양심(良心)을 전사(專使)로 삼아 귀국에 보냈으니, 귀국에서는 신의 속도(屬徒)인지 알 것이고, 양심이 제주의 난(難)에서 탈출할 때에 표문(表文)을 갖추어 별리(別吏)에게 보내어서 예조 대인(禮曹大人)에게 아뢰게 하였는데, 귀국같이 율령(律令)이 엄한 양전(兩殿)이 급히 명(明)나라에 진공선(進貢船)을 보내고자 하여, 서주(西主)의 배는 신과 대내군(大內君)이 명령을 받았고, 종금(宗金)의 적손(嫡孫) 종무신(宗茂信)이 총선주(總船主)의 직책을 맡았는데, 저 사람은 이미 귀국의 영관(榮官)을 받아서 벼슬자리에 나가 신하 노릇한 것으로 인하여 관명(官命)을 받았습니다. 지금 신의 사선(使船)에 차견하는 부사(副使) 종무신(宗茂信)은 후래(後來)에 귀국의 변비(邊備)로 정하시면, 기왕의 율령(律令)을 거의 영원 무궁하게 지키어 대려(帶礪)의 맹세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굽어 소망을 살펴 주소서. 백응(白鷹) 한 쌍과 백저포(白苧布), 표피(豹皮)는 용허(容許)하여 주시면 다행이겠습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8책 119권 3장 A면【국편영인본】 10책 146면
- 【분류】외교-왜(倭) /
원문
○癸未/日本國 京城管領 畠山左京大夫源義勝, 遣人來獻土宜。 且書曰:
天遙地殊, 雁斷魚絶, 馳遐想於萬里, 祝聖壽於億年。 本邦久干戈, 今兩殿下, 和親于洛下, 而稱東西主。 吾西主義見, 以臣之與貴國好, 命有以令古之。 他日特遣專使, 厚幣帛, 以致聘禮者也。 竊聞往歲, 國使回時, 割信符以遣, 洛下之諸大人, 其回船, 避南兵, 赴北海, 爲風波吹漂, 不知所行。 去歲, 傳聞船到北狄之國, 卽遣使船以索之, 其使命未歸, 實不知其有無。 假其舟船, 雖無恙, 返書、幣物, 恐恐難全, 此使介回時, 審其書中之趣書, 以賜可奏之。 丁酉歲, 吾國, 遣進貢船於大明國, 以吾徒良心, 副貢船歸時, 到貴濟州島, 其官吏, 無故繫縛, 禁囚良心等二十人, 將當死, 萬計以脫之, 雖然良心不達國, 遂死亡。 夫雖云敵國, 行李之往來, 假路而過者, 古今通義, 矧貴國本邦, 同事大明, 而通列國之好, 如魯、衛稱兄弟, 且雖不恕吾國, 不畏大明之返詔者何哉? 且又吾能登州, 遙與貴國相向, 以是曾以有漂流人, 先人保愛, 以送達之, 因之盟(弱)〔約〕 , 不相渝于前, 以良心爲專使, 遣貴國, 貴國爲知臣之屬徒, 良心脫濟州之難時, 備具表文, 投之於別吏, 令奏禮曹大人, 如貴國律令之嚴, 豈有慝之乎? 兩殿急欲遣大明進貢船, 西主之船, 臣幷大內君, 其承命, 宗金嫡孫宗茂信, 任總船主之職, 彼已受貴國之榮官, 而就下, 臣之, 因承官命。 今臣使船差遣副使宗茂信, 後來令定貴國邊備, 以往之律令, 伏庶幾永永無窮, 不渝帶礪之盟。 俯賜恕察。 所望白鷹一雙、白苧布、豹皮, 伏賜容許, 幸甚。
- 【태백산사고본】 18책 119권 3장 A면【국편영인본】 10책 146면
- 【분류】외교-왜(倭) /
성종실록119권, 성종 11년 7월 5일 癸未 1/3 기사 / 1480년 명 성화(成化) 16년
일본국의 원의승이 사람을 보내어 토산물을 바치고 글을 올리다
국역
일본국(日本國) 경성 관령(京城管領) 전산(畠山) 좌경 대부(左京大夫) 원의승(源義勝)이 사람을 보내어 와서 토산물[土宜]을 바치었다. 그 글에 이르기를,
"하늘이 멀고 땅이 달라 서신(書信)이 끊어졌으니, 먼 생각은 만 리에 달리고 성수(聖壽)는 억년(億年)토록 빕니다. 본방(本邦)이 오랫동안 전쟁[干戈]에 시달리다가 지금 두 전하(殿下)가 낙하(洛下)에서 화친하여 동주(東主)·서주(西主)로 일컫게 되었습니다. 우리 서주(西主) 의견(義見)이 신에게 귀국(貴國)과 화호(和好)가 있다 하여서 명하여 고하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훗날 특별히 전사(專使)를 보내어서 폐백을 후하게 하여 빙례(聘禮)를 드릴 것입니다. 듣건대 왕년에 국사(國使)가 돌아올 때 신부(信符)를 쪼개어 보내었고, 낙하(洛下)의 여러 대인(大人)이 돌아오는 배가 남쪽의 군사를 피하여 북해(北海)로 갔다가 풍파에 표류(漂流)되어 간 곳을 알지 못하는데, 지난해에 배가 북적(北狄)의 나라에 이르렀다는 것을 듣고 곧 사선(使船)을 보내어 찾아보았으나, 그 사명(使命)이 돌아오지 않았으니, 실로 있고 없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가령 그 배가 비록 탈이 없다 하더라도 반서(返書)와 폐물(幣物)은 온전하기가 어려울 것 같으니, 이 사개(使介)가 돌아올 때에 반서(返書) 가운데의 취지를 살피어 써서 주시면 아뢰겠습니다.
정유년306) 에 우리 나라가 진공선(進貢船)을 명(明)나라에 보낼 때 우리의 도속(徒屬) 양심(良心)을 부(副)로 삼았는데, 공선(貢船)이 돌아올 때에 귀국 제주도(濟州島)에 이르니, 그 곳의 관리가 까닭 없이 양심 등 20인을 묶어 가두었습니다. 그래서 장차 죽게 되었다가 만 가지 계책으로 탈출하였으나, 양심이 나라에 도달하지 못하고 드디어 사망하였습니다. 비록 적국이라 하더라도 행리(行李)307) 가 왕래하는 것은 길을 빌려서 지나가게 하는 것이 고금을 통한 의리인데, 더구나 귀국과 본방은 함께 명(明)나라를 섬기면서 열국(列國)과 화호(和好)를 통하기를 노(魯)나라·위(衛)나라가 형제라고 칭하는 것과 같이 하니, 비록 우리 나라는 용서하지 않더라도 명(明)나라의 반조(返詔)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왜 그렇습니까? 또 우리 능등주(能登州)가 멀리 귀국과 서로 향하고 있으므로 일찍이 표류한 사람이 있으면 선인(先人)들이 보존하고 애호하여 돌려보내어서, 인하여 맹약(盟約)이 서로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앞서 양심(良心)을 전사(專使)로 삼아 귀국에 보냈으니, 귀국에서는 신의 속도(屬徒)인지 알 것이고, 양심이 제주의 난(難)에서 탈출할 때에 표문(表文)을 갖추어 별리(別吏)에게 보내어서 예조 대인(禮曹大人)에게 아뢰게 하였는데, 귀국같이 율령(律令)이 엄한 양전(兩殿)이 급히 명(明)나라에 진공선(進貢船)을 보내고자 하여, 서주(西主)의 배는 신과 대내군(大內君)이 명령을 받았고, 종금(宗金)의 적손(嫡孫) 종무신(宗茂信)이 총선주(總船主)의 직책을 맡았는데, 저 사람은 이미 귀국의 영관(榮官)을 받아서 벼슬자리에 나가 신하 노릇한 것으로 인하여 관명(官命)을 받았습니다. 지금 신의 사선(使船)에 차견하는 부사(副使) 종무신(宗茂信)은 후래(後來)에 귀국의 변비(邊備)로 정하시면, 기왕의 율령(律令)을 거의 영원 무궁하게 지키어 대려(帶礪)의 맹세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굽어 소망을 살펴 주소서. 백응(白鷹) 한 쌍과 백저포(白苧布), 표피(豹皮)는 용허(容許)하여 주시면 다행이겠습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8책 119권 3장 A면【국편영인본】 10책 146면
- 【분류】외교-왜(倭) /
원문
○癸未/日本國 京城管領 畠山左京大夫源義勝, 遣人來獻土宜。 且書曰:
天遙地殊, 雁斷魚絶, 馳遐想於萬里, 祝聖壽於億年。 本邦久干戈, 今兩殿下, 和親于洛下, 而稱東西主。 吾西主義見, 以臣之與貴國好, 命有以令古之。 他日特遣專使, 厚幣帛, 以致聘禮者也。 竊聞往歲, 國使回時, 割信符以遣, 洛下之諸大人, 其回船, 避南兵, 赴北海, 爲風波吹漂, 不知所行。 去歲, 傳聞船到北狄之國, 卽遣使船以索之, 其使命未歸, 實不知其有無。 假其舟船, 雖無恙, 返書、幣物, 恐恐難全, 此使介回時, 審其書中之趣書, 以賜可奏之。 丁酉歲, 吾國, 遣進貢船於大明國, 以吾徒良心, 副貢船歸時, 到貴濟州島, 其官吏, 無故繫縛, 禁囚良心等二十人, 將當死, 萬計以脫之, 雖然良心不達國, 遂死亡。 夫雖云敵國, 行李之往來, 假路而過者, 古今通義, 矧貴國本邦, 同事大明, 而通列國之好, 如魯、衛稱兄弟, 且雖不恕吾國, 不畏大明之返詔者何哉? 且又吾能登州, 遙與貴國相向, 以是曾以有漂流人, 先人保愛, 以送達之, 因之盟(弱)〔約〕 , 不相渝于前, 以良心爲專使, 遣貴國, 貴國爲知臣之屬徒, 良心脫濟州之難時, 備具表文, 投之於別吏, 令奏禮曹大人, 如貴國律令之嚴, 豈有慝之乎? 兩殿急欲遣大明進貢船, 西主之船, 臣幷大內君, 其承命, 宗金嫡孫宗茂信, 任總船主之職, 彼已受貴國之榮官, 而就下, 臣之, 因承官命。 今臣使船差遣副使宗茂信, 後來令定貴國邊備, 以往之律令, 伏庶幾永永無窮, 不渝帶礪之盟。 俯賜恕察。 所望白鷹一雙、白苧布、豹皮, 伏賜容許, 幸甚。
- 【태백산사고본】 18책 119권 3장 A면【국편영인본】 10책 146면
- 【분류】외교-왜(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