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실록117권, 성종 11년 5월 5일 甲申 2/2 기사 / 1480년 명 성화(成化) 16년
정괄 등이 장유성·권경희의 관작의 부당함을 상소하니 의논하여 아뢰라고 하다
국역
사헌부 대사헌 정괄(鄭佸) 등과 사간원 대사간 김작(金碏) 등이 상소하기를,
"신 등은 생각건대, 관작(官爵)으로 어진이를 권면하고, 상(賞)으로 공로를 갚는 것이니, 관작이 어질지 못한 사람에게 가하여지면 어진이를 권면하지 못하고, 상이 공로 없는 사람에게 미치면 공로 있는 자가 게을러집니다. 황중(黃中)·장유성(張有誠)이 함께 역관(譯官)으로서 다행히 대신의 추천을 받아 당상관(堂上官)을 제수받았으니, 이미 분수에 넘은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또 하루아침에 함께 2품에 승진하였으니, 신 등은 알지 못하거니와 황중을 택용(擇用)하는 것이 공 있는 사람을 권하고 덕 있는 사람을 장려하는 것이 되겠습니까? 대개 역관은 중국 조정에 있어서 서반(序班)이 되고 우리 조정에 있어서는 통사(通事)가 되는데, 중국 조정에서는 서반을 대접하기를 지극히 천하게 하고, 우리 조정에서도 통사를 대접하는 것이 또한 그러합니다. 그렇다면 장유성·황중의 작위가 당상관에 이른 것은 이미 지나친 것인데, 더구나 2품(品)의 가자(加資)를 하는 것이겠습니까? 우리 조정에서 임시로 〈품대(品帶)를〉 띠는 예가 하나가 아니니, 3품 당상관이 중국에 입조(入朝)하려면 임시로 띠고, 의주 목사(義州牧使) 3품 당상관인 자가 중국 사람을 접대하려면 임시로 띠고, 사옹원(司饔院) 관리가 사신을 연향(宴享)할 때에 임시로 띱니다. 장유성·황중이 비록 임시로 금대(金帶)를 띠더라도 말을 전하는 데에 무엇이 해로와서, 반드시 2품의 직(職)을 주고자 하십니까? 만일 은대(銀帶)가 질(秩)이 낮은 것을 혐의한다면, 승지(承旨)도 전하의 명령을 사신에게 전하는 자인데 오히려 은대(銀帶)를 띠니, 신 등은 알지 못하거니와 승지의 직임이 도리어 장유성·황중보다 가볍습니까? 황중과 장유성이 항상 역원(譯院)에 있어 제조(提調)를 가칭(假稱)하는데, 한학(漢學) 생도가 그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여 장문(狀文)을 발하기까지 하였고, 당시의 역관들이 항상 서로 말하기를, ‘한학을 일으키고자 하면 모름지기 장가·황가를 쫓아내야 한다.’ 하였습니다. 이것뿐 아니라 역원(譯員)의 구사(丘史)197) 를 빼앗아 자기가 차지하니, 하관(下官)이 위엄을 두려워하여 감히 말은 못하나 이를 갈면서 속을 썩이는 자가 많았습니다. 하물며 승진하여 2품이 되었으니, 더욱 꺼리는 것이 없어서 장차 못하는 짓이 없을 것입니다.
권경희(權景禧)는 서얼(庶孽) 하복생(河福生)의 손녀사위입니다. 그리고 육조 낭관은 조정의 중한 선임(選任)인데, 만일 서얼의 사위에게 이 관직을 맡긴다면, 적서(嫡庶)의 구분이 문란하여지고 낭관의 선임이 가벼워질 것입니다. 육조·대간·의정부가 《대전(大典)》에 있어 경중(輕重)이 없는데, 지금 권경희가 낭관이 되어도 해로움이 없다면, 훗날 의정부와 대간이 되는 것도 자연히 그렇게 천전(遷轉)될 것입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는 급히 성명(成命)을 거두소서."
하였다. 전지하기를,
"장유성·황중은 고칠 수 없고, 권경희의 일은 마땅히 대신에게 의논하여 결단하겠다."
하였다. 인하여 의논하기를 명하니, 정창손(鄭昌孫)은 의논하기를,
"권경희의 처는 하윤(河崙)의 얼손(孼孫)이니, 대성·육조 외에 서용하는 것이 어떠합니까?"
하고, 심회(沈澮)는 의논하기를,
"육조의 낭관은 보통 관원이 아닌데, 권경희 자신은 비록 허물이 없으나 서얼의 사위이니 개차(改差)하기를 청합니다."
하고, 윤필상(尹弼商)·홍응(洪應)·강희맹(姜希孟)·어세공(魚世恭)은 의논하기를,
"권경희는 하복생의 친사위가 아닙니다. 난신(亂臣)의 외손도 제조(諸曹)의 낭관에 서용하는데, 권경희는 여기에 비교하면 차이가 있습니다."
하고, 이극배(李克培)는 의논하기를,
"공조(工曹)는 정조(政曹)·대성(臺省)에 비교할 것이 아닙니다. 권경희가 이미 등과(登科)하였고 벼슬길에 이미 통하였으니, 공조에 서용한다고 해서 무엇이 해롭겠습니까? 지금 대간(臺諫)이 허명손(許明孫)을 가지고 똑같이 논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허명손은 하윤의 첩의 아들 하연(河延)의 사위입니다. 하윤의 적자(嫡子) 하구(河玖)가 감찰(監察) 김음(金音)의 딸에게 장가들어 후처로 삼아 하복생(河福生)을 낳았고, 하복생의 처는 곧 중추(中樞) 고득종(高得宗)의 딸이며, 권경희의 처부(妻父) 김치운(金致運)은 곧 하복생의 사위입니다. 김치운이 또한 등과하여 벼슬이 시정(寺正)에 이르렀으니, 그 계파(系派)를 논하면 허명손의 예가 아닙니다."
하였다. 의논이 들어오자 또 승정원(承政院)·홍문관(弘文館)에 명하여 의논하게 하였는데, 김계창(金季昌)·채수(蔡壽)는 의논하기를,
"권경희의 처는 김치운의 딸이고 김치운의 처는 곧 하복생의 딸인데, 하복생은 곧 하구의 후처로서 첩이 된 자의 아들입니다. 하복생이 세종조(世宗朝)에 있어 여러 벼슬을 하면서 군자감(軍資監)·선공감(繕工監)의 판사(判事)를 거쳐 첨지중추(僉知中樞)에 이르렀으니, 명색은 첩의 아들이라 하나 벼슬길에는 방해가 없었습니다. 김치운이 또한 장악원(掌樂院)·봉상시(奉常寺)의 정(正)이 되었고, 대수(代數)가 점차 멀어졌으니, 하복생에게 비교하면 차이가 있습니다. 하물며 권경희는 하복생의 외손녀사위[外孫女壻]이고 대수가 더욱 머니, 어찌 그 아내 때문에 벼슬길에 장애가 되겠습니까? 청컨대 사한(史翰)·대간(臺諫)·정조(政曹) 외에는 쓰도록 하소서."
하였고, 이세좌(李世佐)·성현(成俔)은 의논하기를,
"《대전(大典)》 내에 국가의 적첩(嫡妾)의 분수가 매우 엄하나, 서얼인 자의 자손을 가리킨 것이고, 사위를 말한 것이 아닙니다. 예전에 여자가 남편을 따른다는 글은 있어도 남편이 아내를 따른다는 의리는 없습니다. 지금 사위가 아내의 집으로 가는 것은 다만 우리 나라의 풍속이고 성인(聖人)의 상경(常經)은 아닙니다. 아내 때문에 남편의 관직에 방해가 된다는 것은 실로 옳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구(河玖)에게 전처(前妻)·후처(後妻)가 있는 것은 명백하여 의심이 없으니, 대간·정조·홍문관·춘추관 외에는 허통(許通)하는 것이 어떠합니까?"
하였고, 최숙정(崔淑精)·김흔(金訢)·이창신(李昌臣)·성세명(成世明)·정성근(鄭誠謹)·정광세(鄭光世)·민사건(閔師騫)·김응기(金應箕)·안윤손(安閏孫)은 의논하기를,
"권경희의 처의 외증조모[妻外曾祖母]는 감찰 김음의 딸이고, 허명손은 하윤의 천첩의 아들 하연의 사위이니, 양인(良人)과 천인(賤人)이 간격이 있어 일률로 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미 서얼이니, 흔구(痕咎)가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대전(大典)》 경관직조(京官職條)에, ‘장리와 실행한 부녀의 자손은 의정부·육조에 제수하지 말라.’ 하였는데, 정조(政曹)를 나누어 말하지 않고 통틀어서 육조라 칭하였으니, 진실로 경중을 논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다만 장리와 실행한 부녀의 자손이라 칭하고 서얼 여서(庶孽女壻)라는 글은 없으니, 비록 따로 칭하지는 않았으나 저절로 제수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까? 혹은 사위는 자손에 비교할 것이 아니니까 저절로 방해될 것이 없어서 칭하지 않은 것입니까? 혹은 생각을 못하여 빠뜨린 것입니까? 신 등은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우리 조정에서 적첩의 구분을 엄하게 한 것이 그 유래가 이미 오랜데, 만일 혹시라도 한 번 풀어지면 며느리를 얻은 집에서 장차 ‘대간(臺諫)과 정조(政曹)는 비록 혹 안된다 하더라도 나머지 조(曹)에는 제수받을 수 있다.’고 여겨 서얼을 분변하지 않고 오직 재물을 논할 것이니, 적첩의 분수가 문란하여지고 조정이 존중되지 못할 것입니다. 신 등은 생각하기를, 육조(六曹) 외에 서용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였고, 권정(權侹)·안침(安琛)·조숙기(曺淑沂)·조위(曺偉)는 의논하기를,
"본국에서 적첩의 분수를 중하게 하여 무릇 서얼의 자손은 사판(仕版)에 오르지 못하니, 이것은 바꾸지 못하는 상경(常經)입니다. 그러나 권경희는 자기의 흔구(痕咎)가 없고, 그 처의 외조부(外祖父) 하복생의 어미는 비록 첩으로 논정(論定)하기는 하나, 세계(世系)가 본래 사족(士族)이어서 다른 양첩(良妾)이나 천첩(賤妾)의 예가 아닙니다. 하복생이 고득종(高得宗)의 딸에게 장가들고 김치운이 하복생의 딸에게 장가들어 권경희의 처를 낳았으니, 여러 대가 의관 사족(衣冠士族)198) 입니다. 대간이 말하는 허명손(許明孫)은 하윤(河崙)의 기생첩의 아들 하연(河延)의 사위이니, 권경희와는 크게 서로 같지 않습니다. 지금 난신(亂臣)의 외손 질서(外孫姪壻)로 육조(六曹)에 서용된 자가 있으니, 이것도 사람을 쓰는 권도(權道)입니다. 지금 권경희가 이미 갑과(甲科) 출신인데, 만일 소원(疎遠)한 처계(妻系)의 하자(瑕疵)로 벼슬길에 방해가 된다면 사람 쓰는 체모를 상할까 두려우니, 대성(臺省)·정조(政曹) 외에 서용하는 것을 허락하는 것이 어떠합니까?"
하였다. 임금이 이세좌 등의 의논을 따라 대간·정조·홍문관·춘추관 외에 서용하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8책 117권 4장 B면【국편영인본】 10책 123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사법-법제(法制) / 가족-가족(家族) / 신분-중인(中人) / 신분-양반(兩班) / 의생활-관복(官服)
- [註 197] 구사(丘史) : 조선조 때 임금이 종친(宗親) 및 공신(功臣)에게 구종(驅從)으로 나누어 주던 관노비(官奴婢)를 말함.
- [註 198] 의관 사족(衣冠士族) : 문벌이 좋은 선비 집안.
원문
臣等竊謂, 爵以勸賢, 賞以酬功, 爵加於非賢, 則賢者不勸, 賞及於無功, 則有功者怠矣。 黃中、張有誠, 俱以譯官, 幸蒙大臣擢薦, 得拜堂上, 已踰涯分。 而今又一朝, 同升二品, 臣等未知擢用黃中者, 其勸有功, 勵有德耶? 蓋譯官在中朝爲序班, 在我朝爲通事, 中朝待序班至賤, 不齒士類, 我朝之待通事亦然。 然則有誠、黃中, 位至堂上, 已爲濫矣, 況授二品之階乎? 我朝假帶之例非一, 三品堂上, 入朝中國, 則假帶焉, 義州牧使爲三品堂上者, 接待中國之人, 則假帶焉, 司饔院官員於使臣宴享之時, 則假帶焉。 有誠、黃中, 雖假着金帶, 何害於傳語, 而必欲授二品之職歟? 若以銀帶秩卑爲嫌, 則承旨亦傳殿下之命於使臣者也, 而猶着銀帶, 臣等未知承旨之任反輕於有誠、黃中也歟。 中與有誠, 常在譯院, 假稱提調, 漢學生徒, 不堪其苦, 以至發狀, 而當時譯官, 常相語曰: "若欲興學, 須去張、黃。" 非獨此也, 譯員丘史, 奪爲己有, 下官怵於威, 而不敢言, 切齒腐心者多矣。 況陞爲二品, 則益無顧忌, 將何所不至。 權景禧, 乃孼産河福生孫壻也。 六曹郞官, 朝廷重選也, 若以孼壻任此職, 則嫡庶之分紊, 而郞官之選輕矣。 六曹、臺諫、政府, 在《大典》無輕重, 今景禧爲郞官, 而無所妨, 則他日之爲政府、爲臺諫, 亦可馴致而遷也。 伏望殿下, 亟收成命。
傳曰: "有誠、黃中, 不可改也, 景禧之事, 當議諸大臣, 而斷之。" 仍命議之, 鄭昌孫議: "景禧之妻, 乃河崙孼孫也, 臺省、六曹外, 敍用何如?" 沈澮議: "六曹郞官, 非常員也, 景禧身雖無咎, 乃庶孽之壻, 請改差。" 尹弼商、洪應、姜希孟、魚世恭議: "景禧, 非河福生親壻也。 亂臣外孫, 亦敍於諸曹郞官, 景禧比之於此, 有間焉。" 李克培議: "工曹, 非政曹、臺省之比。 景禧旣已登第, 仕路已通, 敍於工曹何害焉? 今臺諫, 以許明孫同論, 則非也。 明孫, 河崙妾子延之壻也。 崙嫡子玖, 娶監察金音之女爲後妻, 生福生, 福生之妻, 卽中樞高得宗女也, 景禧妻父金致運, 卽福生之壻也。 致運亦登科, 位至寺正, 論其系派, 則非明孫例也。" 議入, 又命承政院、弘文館議之, 金季昌、蔡壽議: "景禧之妻, 乃金致運之女也, 致運之妻, 卽河福生之女也, 而福生, 卽河玖後妻, 而爲妾者之子也。 福生在世宗朝, 累官軍資、繕工判事, 至拜僉知中樞, 則名爲妾子, 而不妨於仕路矣。 致運亦爲掌樂、奉常正, 而代數漸遠, 視福生爲有間矣。 況景禧, 乃福生外孫女壻, 而代數益遠, 豈以其妻之故, 而窒於仕路乎? 請於史翰、臺諫、政曹外用之。" 李世佐、成俔議: "《大典》內, 國家嫡妾之分甚嚴, 然指庶孽者之子孫, 非謂壻也。 古有女從夫之文, 無夫從婦之義。 今壻往婦家, 特我朝之俗, 非聖人常經也。 以妻之故, 防壻之職, 實爲未便。 然河玖前後妻, 則明白無疑, 臺諫、政曹、弘文館、春秋館外, 許通何如?" 崔淑精、金訢、李昌臣、成世明、鄭誠謹、鄭光世、閔師騫、金應箕、安閏孫議: "景禧妻外曾祖母, 乃監察金音之女, 而明孫, 乃河崙賤妾子延之女壻也, 良賤有間, 不可槪論。 然旣是庶孽, 則亦可不謂無痕咎。 《大典》京官職條, 贓吏及失行婦女之子孫, 勿授議政府、六曹, 不分言政曹, 而泛稱六曹, 則固難輕重。 只稱贓吏失行婦女之子孫, 無庶孽女壻之文, 謂其雖不別稱, 而自不得除歟? 抑女壻非子孫之比, 自可無妨, 而不稱歟? 或未之思, 而闕歟? 臣等未解焉。 我朝嚴嫡妾之分, 其來已久, 若或一弛, (聚)〔娶〕 婦之家, 將以爲臺諫、政曹, 雖或不同, 而餘曹尙可得除, 不辨庶孽, 而惟財是論, 則嫡妾之分紊, 而朝廷不尊矣。 臣等以謂六曹外敍用爲便。"’ 權侹、安琛、曺淑沂、曺偉議: "本國重嫡妾之分, 凡庶孽子孫, 不登仕版, 此不易之常經。 然景禧, 無自己痕咎, 其妻外祖福生之母, 雖以妾論定, 系本士族, 而非他良賤妾例也。 福生娶高得宗之女, 致運娶福生之女, 而生景禧之妻, 則累代爲衣冠士族矣。 臺諫所言許明孫, 則乃河崙妓妾子延之女壻, 與景禧大不相同。 今亂臣之外孫姪壻, 敍於六曹者有之, 此亦用人從權之道也。 今景禧, 旣已甲科出身, 若以隔遠妻系之疵, 防於仕路, 則恐傷用人之體, 許於臺省、政曹外用之何如?" 上從世佐等議, 臺諫、政曹、弘文館、春秋館外敍用。
- 【태백산사고본】 18책 117권 4장 B면【국편영인본】 10책 123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사법-법제(法制) / 가족-가족(家族) / 신분-중인(中人) / 신분-양반(兩班) / 의생활-관복(官服)
성종 11년 (1480) 5월 5일
성종실록117권, 성종 11년 5월 5일 甲申 2/2 기사 / 1480년 명 성화(成化) 16년
정괄 등이 장유성·권경희의 관작의 부당함을 상소하니 의논하여 아뢰라고 하다
국역
사헌부 대사헌 정괄(鄭佸) 등과 사간원 대사간 김작(金碏) 등이 상소하기를,
"신 등은 생각건대, 관작(官爵)으로 어진이를 권면하고, 상(賞)으로 공로를 갚는 것이니, 관작이 어질지 못한 사람에게 가하여지면 어진이를 권면하지 못하고, 상이 공로 없는 사람에게 미치면 공로 있는 자가 게을러집니다. 황중(黃中)·장유성(張有誠)이 함께 역관(譯官)으로서 다행히 대신의 추천을 받아 당상관(堂上官)을 제수받았으니, 이미 분수에 넘은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또 하루아침에 함께 2품에 승진하였으니, 신 등은 알지 못하거니와 황중을 택용(擇用)하는 것이 공 있는 사람을 권하고 덕 있는 사람을 장려하는 것이 되겠습니까? 대개 역관은 중국 조정에 있어서 서반(序班)이 되고 우리 조정에 있어서는 통사(通事)가 되는데, 중국 조정에서는 서반을 대접하기를 지극히 천하게 하고, 우리 조정에서도 통사를 대접하는 것이 또한 그러합니다. 그렇다면 장유성·황중의 작위가 당상관에 이른 것은 이미 지나친 것인데, 더구나 2품(品)의 가자(加資)를 하는 것이겠습니까? 우리 조정에서 임시로 〈품대(品帶)를〉 띠는 예가 하나가 아니니, 3품 당상관이 중국에 입조(入朝)하려면 임시로 띠고, 의주 목사(義州牧使) 3품 당상관인 자가 중국 사람을 접대하려면 임시로 띠고, 사옹원(司饔院) 관리가 사신을 연향(宴享)할 때에 임시로 띱니다. 장유성·황중이 비록 임시로 금대(金帶)를 띠더라도 말을 전하는 데에 무엇이 해로와서, 반드시 2품의 직(職)을 주고자 하십니까? 만일 은대(銀帶)가 질(秩)이 낮은 것을 혐의한다면, 승지(承旨)도 전하의 명령을 사신에게 전하는 자인데 오히려 은대(銀帶)를 띠니, 신 등은 알지 못하거니와 승지의 직임이 도리어 장유성·황중보다 가볍습니까? 황중과 장유성이 항상 역원(譯院)에 있어 제조(提調)를 가칭(假稱)하는데, 한학(漢學) 생도가 그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여 장문(狀文)을 발하기까지 하였고, 당시의 역관들이 항상 서로 말하기를, ‘한학을 일으키고자 하면 모름지기 장가·황가를 쫓아내야 한다.’ 하였습니다. 이것뿐 아니라 역원(譯員)의 구사(丘史)197) 를 빼앗아 자기가 차지하니, 하관(下官)이 위엄을 두려워하여 감히 말은 못하나 이를 갈면서 속을 썩이는 자가 많았습니다. 하물며 승진하여 2품이 되었으니, 더욱 꺼리는 것이 없어서 장차 못하는 짓이 없을 것입니다.
권경희(權景禧)는 서얼(庶孽) 하복생(河福生)의 손녀사위입니다. 그리고 육조 낭관은 조정의 중한 선임(選任)인데, 만일 서얼의 사위에게 이 관직을 맡긴다면, 적서(嫡庶)의 구분이 문란하여지고 낭관의 선임이 가벼워질 것입니다. 육조·대간·의정부가 《대전(大典)》에 있어 경중(輕重)이 없는데, 지금 권경희가 낭관이 되어도 해로움이 없다면, 훗날 의정부와 대간이 되는 것도 자연히 그렇게 천전(遷轉)될 것입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는 급히 성명(成命)을 거두소서."
하였다. 전지하기를,
"장유성·황중은 고칠 수 없고, 권경희의 일은 마땅히 대신에게 의논하여 결단하겠다."
하였다. 인하여 의논하기를 명하니, 정창손(鄭昌孫)은 의논하기를,
"권경희의 처는 하윤(河崙)의 얼손(孼孫)이니, 대성·육조 외에 서용하는 것이 어떠합니까?"
하고, 심회(沈澮)는 의논하기를,
"육조의 낭관은 보통 관원이 아닌데, 권경희 자신은 비록 허물이 없으나 서얼의 사위이니 개차(改差)하기를 청합니다."
하고, 윤필상(尹弼商)·홍응(洪應)·강희맹(姜希孟)·어세공(魚世恭)은 의논하기를,
"권경희는 하복생의 친사위가 아닙니다. 난신(亂臣)의 외손도 제조(諸曹)의 낭관에 서용하는데, 권경희는 여기에 비교하면 차이가 있습니다."
하고, 이극배(李克培)는 의논하기를,
"공조(工曹)는 정조(政曹)·대성(臺省)에 비교할 것이 아닙니다. 권경희가 이미 등과(登科)하였고 벼슬길에 이미 통하였으니, 공조에 서용한다고 해서 무엇이 해롭겠습니까? 지금 대간(臺諫)이 허명손(許明孫)을 가지고 똑같이 논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허명손은 하윤의 첩의 아들 하연(河延)의 사위입니다. 하윤의 적자(嫡子) 하구(河玖)가 감찰(監察) 김음(金音)의 딸에게 장가들어 후처로 삼아 하복생(河福生)을 낳았고, 하복생의 처는 곧 중추(中樞) 고득종(高得宗)의 딸이며, 권경희의 처부(妻父) 김치운(金致運)은 곧 하복생의 사위입니다. 김치운이 또한 등과하여 벼슬이 시정(寺正)에 이르렀으니, 그 계파(系派)를 논하면 허명손의 예가 아닙니다."
하였다. 의논이 들어오자 또 승정원(承政院)·홍문관(弘文館)에 명하여 의논하게 하였는데, 김계창(金季昌)·채수(蔡壽)는 의논하기를,
"권경희의 처는 김치운의 딸이고 김치운의 처는 곧 하복생의 딸인데, 하복생은 곧 하구의 후처로서 첩이 된 자의 아들입니다. 하복생이 세종조(世宗朝)에 있어 여러 벼슬을 하면서 군자감(軍資監)·선공감(繕工監)의 판사(判事)를 거쳐 첨지중추(僉知中樞)에 이르렀으니, 명색은 첩의 아들이라 하나 벼슬길에는 방해가 없었습니다. 김치운이 또한 장악원(掌樂院)·봉상시(奉常寺)의 정(正)이 되었고, 대수(代數)가 점차 멀어졌으니, 하복생에게 비교하면 차이가 있습니다. 하물며 권경희는 하복생의 외손녀사위[外孫女壻]이고 대수가 더욱 머니, 어찌 그 아내 때문에 벼슬길에 장애가 되겠습니까? 청컨대 사한(史翰)·대간(臺諫)·정조(政曹) 외에는 쓰도록 하소서."
하였고, 이세좌(李世佐)·성현(成俔)은 의논하기를,
"《대전(大典)》 내에 국가의 적첩(嫡妾)의 분수가 매우 엄하나, 서얼인 자의 자손을 가리킨 것이고, 사위를 말한 것이 아닙니다. 예전에 여자가 남편을 따른다는 글은 있어도 남편이 아내를 따른다는 의리는 없습니다. 지금 사위가 아내의 집으로 가는 것은 다만 우리 나라의 풍속이고 성인(聖人)의 상경(常經)은 아닙니다. 아내 때문에 남편의 관직에 방해가 된다는 것은 실로 옳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구(河玖)에게 전처(前妻)·후처(後妻)가 있는 것은 명백하여 의심이 없으니, 대간·정조·홍문관·춘추관 외에는 허통(許通)하는 것이 어떠합니까?"
하였고, 최숙정(崔淑精)·김흔(金訢)·이창신(李昌臣)·성세명(成世明)·정성근(鄭誠謹)·정광세(鄭光世)·민사건(閔師騫)·김응기(金應箕)·안윤손(安閏孫)은 의논하기를,
"권경희의 처의 외증조모[妻外曾祖母]는 감찰 김음의 딸이고, 허명손은 하윤의 천첩의 아들 하연의 사위이니, 양인(良人)과 천인(賤人)이 간격이 있어 일률로 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미 서얼이니, 흔구(痕咎)가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대전(大典)》 경관직조(京官職條)에, ‘장리와 실행한 부녀의 자손은 의정부·육조에 제수하지 말라.’ 하였는데, 정조(政曹)를 나누어 말하지 않고 통틀어서 육조라 칭하였으니, 진실로 경중을 논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다만 장리와 실행한 부녀의 자손이라 칭하고 서얼 여서(庶孽女壻)라는 글은 없으니, 비록 따로 칭하지는 않았으나 저절로 제수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까? 혹은 사위는 자손에 비교할 것이 아니니까 저절로 방해될 것이 없어서 칭하지 않은 것입니까? 혹은 생각을 못하여 빠뜨린 것입니까? 신 등은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우리 조정에서 적첩의 구분을 엄하게 한 것이 그 유래가 이미 오랜데, 만일 혹시라도 한 번 풀어지면 며느리를 얻은 집에서 장차 ‘대간(臺諫)과 정조(政曹)는 비록 혹 안된다 하더라도 나머지 조(曹)에는 제수받을 수 있다.’고 여겨 서얼을 분변하지 않고 오직 재물을 논할 것이니, 적첩의 분수가 문란하여지고 조정이 존중되지 못할 것입니다. 신 등은 생각하기를, 육조(六曹) 외에 서용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였고, 권정(權侹)·안침(安琛)·조숙기(曺淑沂)·조위(曺偉)는 의논하기를,
"본국에서 적첩의 분수를 중하게 하여 무릇 서얼의 자손은 사판(仕版)에 오르지 못하니, 이것은 바꾸지 못하는 상경(常經)입니다. 그러나 권경희는 자기의 흔구(痕咎)가 없고, 그 처의 외조부(外祖父) 하복생의 어미는 비록 첩으로 논정(論定)하기는 하나, 세계(世系)가 본래 사족(士族)이어서 다른 양첩(良妾)이나 천첩(賤妾)의 예가 아닙니다. 하복생이 고득종(高得宗)의 딸에게 장가들고 김치운이 하복생의 딸에게 장가들어 권경희의 처를 낳았으니, 여러 대가 의관 사족(衣冠士族)198) 입니다. 대간이 말하는 허명손(許明孫)은 하윤(河崙)의 기생첩의 아들 하연(河延)의 사위이니, 권경희와는 크게 서로 같지 않습니다. 지금 난신(亂臣)의 외손 질서(外孫姪壻)로 육조(六曹)에 서용된 자가 있으니, 이것도 사람을 쓰는 권도(權道)입니다. 지금 권경희가 이미 갑과(甲科) 출신인데, 만일 소원(疎遠)한 처계(妻系)의 하자(瑕疵)로 벼슬길에 방해가 된다면 사람 쓰는 체모를 상할까 두려우니, 대성(臺省)·정조(政曹) 외에 서용하는 것을 허락하는 것이 어떠합니까?"
하였다. 임금이 이세좌 등의 의논을 따라 대간·정조·홍문관·춘추관 외에 서용하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8책 117권 4장 B면【국편영인본】 10책 123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사법-법제(法制) / 가족-가족(家族) / 신분-중인(中人) / 신분-양반(兩班) / 의생활-관복(官服)
- [註 197] 구사(丘史) : 조선조 때 임금이 종친(宗親) 및 공신(功臣)에게 구종(驅從)으로 나누어 주던 관노비(官奴婢)를 말함.
- [註 198] 의관 사족(衣冠士族) : 문벌이 좋은 선비 집안.
원문
臣等竊謂, 爵以勸賢, 賞以酬功, 爵加於非賢, 則賢者不勸, 賞及於無功, 則有功者怠矣。 黃中、張有誠, 俱以譯官, 幸蒙大臣擢薦, 得拜堂上, 已踰涯分。 而今又一朝, 同升二品, 臣等未知擢用黃中者, 其勸有功, 勵有德耶? 蓋譯官在中朝爲序班, 在我朝爲通事, 中朝待序班至賤, 不齒士類, 我朝之待通事亦然。 然則有誠、黃中, 位至堂上, 已爲濫矣, 況授二品之階乎? 我朝假帶之例非一, 三品堂上, 入朝中國, 則假帶焉, 義州牧使爲三品堂上者, 接待中國之人, 則假帶焉, 司饔院官員於使臣宴享之時, 則假帶焉。 有誠、黃中, 雖假着金帶, 何害於傳語, 而必欲授二品之職歟? 若以銀帶秩卑爲嫌, 則承旨亦傳殿下之命於使臣者也, 而猶着銀帶, 臣等未知承旨之任反輕於有誠、黃中也歟。 中與有誠, 常在譯院, 假稱提調, 漢學生徒, 不堪其苦, 以至發狀, 而當時譯官, 常相語曰: "若欲興學, 須去張、黃。" 非獨此也, 譯員丘史, 奪爲己有, 下官怵於威, 而不敢言, 切齒腐心者多矣。 況陞爲二品, 則益無顧忌, 將何所不至。 權景禧, 乃孼産河福生孫壻也。 六曹郞官, 朝廷重選也, 若以孼壻任此職, 則嫡庶之分紊, 而郞官之選輕矣。 六曹、臺諫、政府, 在《大典》無輕重, 今景禧爲郞官, 而無所妨, 則他日之爲政府、爲臺諫, 亦可馴致而遷也。 伏望殿下, 亟收成命。
傳曰: "有誠、黃中, 不可改也, 景禧之事, 當議諸大臣, 而斷之。" 仍命議之, 鄭昌孫議: "景禧之妻, 乃河崙孼孫也, 臺省、六曹外, 敍用何如?" 沈澮議: "六曹郞官, 非常員也, 景禧身雖無咎, 乃庶孽之壻, 請改差。" 尹弼商、洪應、姜希孟、魚世恭議: "景禧, 非河福生親壻也。 亂臣外孫, 亦敍於諸曹郞官, 景禧比之於此, 有間焉。" 李克培議: "工曹, 非政曹、臺省之比。 景禧旣已登第, 仕路已通, 敍於工曹何害焉? 今臺諫, 以許明孫同論, 則非也。 明孫, 河崙妾子延之壻也。 崙嫡子玖, 娶監察金音之女爲後妻, 生福生, 福生之妻, 卽中樞高得宗女也, 景禧妻父金致運, 卽福生之壻也。 致運亦登科, 位至寺正, 論其系派, 則非明孫例也。" 議入, 又命承政院、弘文館議之, 金季昌、蔡壽議: "景禧之妻, 乃金致運之女也, 致運之妻, 卽河福生之女也, 而福生, 卽河玖後妻, 而爲妾者之子也。 福生在世宗朝, 累官軍資、繕工判事, 至拜僉知中樞, 則名爲妾子, 而不妨於仕路矣。 致運亦爲掌樂、奉常正, 而代數漸遠, 視福生爲有間矣。 況景禧, 乃福生外孫女壻, 而代數益遠, 豈以其妻之故, 而窒於仕路乎? 請於史翰、臺諫、政曹外用之。" 李世佐、成俔議: "《大典》內, 國家嫡妾之分甚嚴, 然指庶孽者之子孫, 非謂壻也。 古有女從夫之文, 無夫從婦之義。 今壻往婦家, 特我朝之俗, 非聖人常經也。 以妻之故, 防壻之職, 實爲未便。 然河玖前後妻, 則明白無疑, 臺諫、政曹、弘文館、春秋館外, 許通何如?" 崔淑精、金訢、李昌臣、成世明、鄭誠謹、鄭光世、閔師騫、金應箕、安閏孫議: "景禧妻外曾祖母, 乃監察金音之女, 而明孫, 乃河崙賤妾子延之女壻也, 良賤有間, 不可槪論。 然旣是庶孽, 則亦可不謂無痕咎。 《大典》京官職條, 贓吏及失行婦女之子孫, 勿授議政府、六曹, 不分言政曹, 而泛稱六曹, 則固難輕重。 只稱贓吏失行婦女之子孫, 無庶孽女壻之文, 謂其雖不別稱, 而自不得除歟? 抑女壻非子孫之比, 自可無妨, 而不稱歟? 或未之思, 而闕歟? 臣等未解焉。 我朝嚴嫡妾之分, 其來已久, 若或一弛, (聚)〔娶〕 婦之家, 將以爲臺諫、政曹, 雖或不同, 而餘曹尙可得除, 不辨庶孽, 而惟財是論, 則嫡妾之分紊, 而朝廷不尊矣。 臣等以謂六曹外敍用爲便。"’ 權侹、安琛、曺淑沂、曺偉議: "本國重嫡妾之分, 凡庶孽子孫, 不登仕版, 此不易之常經。 然景禧, 無自己痕咎, 其妻外祖福生之母, 雖以妾論定, 系本士族, 而非他良賤妾例也。 福生娶高得宗之女, 致運娶福生之女, 而生景禧之妻, 則累代爲衣冠士族矣。 臺諫所言許明孫, 則乃河崙妓妾子延之女壻, 與景禧大不相同。 今亂臣之外孫姪壻, 敍於六曹者有之, 此亦用人從權之道也。 今景禧, 旣已甲科出身, 若以隔遠妻系之疵, 防於仕路, 則恐傷用人之體, 許於臺省、政曹外用之何如?" 上從世佐等議, 臺諫、政曹、弘文館、春秋館外敍用。
- 【태백산사고본】 18책 117권 4장 B면【국편영인본】 10책 123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사법-법제(法制) / 가족-가족(家族) / 신분-중인(中人) / 신분-양반(兩班) / 의생활-관복(官服)
원본
성종 11년 (1480) 5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