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실록88권, 성종 9년 1월 24일 丁亥 10/10 기사 / 1478년 명 성화(成化) 14년
삼로·오경에게 절하는 데 있어서 개원의 예를 택하다
국역
야대(夜對)에 나아갔다. 강(講)하기를 마치자, 좌승지(左承旨) 손순효(孫舜孝)가 아뢰기를,
"벽옹(辟雍)에 나아가 삼로(三老)에게 절하는 것은 여러 일이 이미 준비되었는데, 정지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신의 생각에는, 전하께서 비로소 궁경(躬耕)·친잠(親蠶)의 법전을 행하시고 또 대사(大射)의 예(禮)를 행하시어 무릇 광폐(曠廢)한 법전을 차례로 거행하셨으니, 지금 몸소 반궁(泮宮)에 나아가 삼로(三老)·오경(五更)에게 절하시면, 이것이 참으로 성한 예가 될 것입니다. 지금 의논하는 자가 혹은 말하기를, ‘몸소 반궁에 나아가 먼저 양로(養老)하고 다시 제생(諸生)을 나오게 하여 사도(斯道)를 강명(講明)하여, 한편으로 문(文)을 숭상하고 교화를 일으키고, 한편으로는 스승을 높이고 도(道)를 중히 여기시되, 정인지(鄭麟趾)·정창손(鄭昌孫) 등은 나이와 덕이 다 높고 명망이 또 높으니, 이들이 삼로(三老)·오경(五更)이라 말할 만하다.’ 하고, 의논하는 자가 혹은 말하기를, ‘한번 삼로·오경을 삼아 절하면 부르지 못하는 신하가 된다.’ 합니다. 옛적에 탕(湯)임금이 이윤(伊尹)에게 배운 뒤에 신하로 삼았으며, 정인지·정창손은 작위가 높고 나이 늙어서 이미 궤장(几杖)을 주었으나 큰 일이 있으면 나와서 의논하니, 노경(老更)을 삼는 데에 무엇이 해로울 것이 있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대간(臺諫)이 나더러 이름을 좋아한다고 하니, 내가 본래 이름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지한 것이다."
하므로, 시강관(侍講官) 최숙정(崔淑精)이 말하기를,
"한사(漢史)에 이르기를, ‘방문(榜門)에 둘러서서 보고 듣는 자를 억만으로 헤아렸다.’ 하였는데, 신이 매양 읽다가 여기에 이르면 탄식하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지금 사방의 유생이 전하께서 비로소 큰 예를 행하신다는 말을 듣고 반궁에 구름처럼 모이는데, 지금 정지하시면 뭇사람의 마음이 섭섭할까 두렵습니다."
하고, 손순효는 말하기를,
"어제 이칙(李則)의 말은 너무 과한 것 같으나, 우(禹)가 순(舜)임금을 경계하여 말하기를, ‘단주(丹朱)048) 같이 오만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우(禹)가 어찌 참으로 순(舜)을 단주와 같게 여겼겠습니까? 신하가 임금을 경계하는 것은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합니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다른 산의 돌이 옥(玉)을 닦을 수 있다.’ 하였습니다. 전하께서 비록 호명(好名)하는 마음이 없더라도, 또한 이칙의 말로 말미암아 더욱 면려하신다면, 어찌 작은 도움이라 하겠습니까?"
하였다. 검토관(檢討官) 윤희손(尹喜孫)이 말하기를,
"한 사람이 몸소 위에서 행하면 만 사람이 아래에서 보고 느낍니다. 지금 유생이 사장(師長)을 깔보고 욕하며 혹은 글에 써서 기록하는데, 주상께서 한 번 큰 예를 행하시면, 유생이 또한 스승을 높이는 의리를 알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그대들이 말하니 내가 장차 행하겠다. 다만 개원(開元)의 예는 천자가 절하고 송조(宋朝)의 예는 삼로(三老)가 절한 뒤에 천자가 일어나는데, 지금은 어떻게 하면 되겠는가?"
하자, 손순효가 말하기를,
"이것은 인군이 지극히 높은 것을 굽히어 스승을 높이고 도를 중히 여기는 날이니, 답배(答拜)하는 것이 온편합니다."
하고, 최숙정은 말하기를,
"개원의 예가 갖추어졌으니, 이것이 후세에서 마땅히 거행할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나도 스승과 제자의 예로 절하고, 임금과 신하의 의로 행하지 않겠다. 이 뜻을 예조(禮曹)에 이르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4책 88권 17장 A면【국편영인본】 9책 549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왕실-국왕(國王)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역사-고사(故事) / 윤리-강상(綱常)
- [註 048] 단주(丹朱) : 요(堯)임금의 아들.
원문
○御夜對。 講訖, 左承旨孫舜孝啓曰: "臨雍拜老諸事已辦, 而命停之。 臣意以爲殿下肇稱躬耕、親蠶之典, 又擧大射之禮, 凡厥曠典, 次第擧行, 今躬臨泮宮, 拜三老五更, 此固盛禮也。 今之議者或以爲: ‘(宮)〔躬〕 臨泮宮先養老, 更進諸生而講明斯道, 一以右文興化, 一以尊師重道, 鄭麟趾、鄭昌孫等年德俱高, 名望又尊, 此可謂三老五更。’ 議者或以謂: ‘一爲老更而拜之, 則爲不召之臣。’ 昔湯之於伊尹, 學焉而後臣之, 麟趾、昌孫位高年耄, 已賜几杖, 有大事則進而議之, 其於爲老更, 何害之有?" 上曰: "臺諫謂我爲好名, 予本非好名, 故停之耳。" 侍講官崔淑精曰: "漢史云: ‘圜榜門而觀聽者, 億萬計’, 臣每讀至此, 未嘗不嘆息。 今四方儒士聞殿下肇行大禮, 雲集泮宮, 今而停之, 恐衆心缺望。" 舜孝曰: "昨日李則之言, 似乎太過, 然禹之戒舜曰: ‘無若丹朱傲。’ 禹豈眞以舜爲丹朱哉? 臣之戒君當如是。 《詩》云: ‘他山之石, 可以攻玉。’ 殿下雖無好名之心, 亦因則言益加勉礪, 豈曰少補之哉?" 檢討官尹喜孫曰: "一人躬行於上, 則萬人觀感於下。 今之儒生慢罵師長, 或筆之於書以譏之, 上一行大禮, 則儒生亦知尊師之義。" 上曰: "爾等言之, 予將行之。 但開元之禮, 天子乃拜, 宋朝之禮, 三老拜而後天子乃起, 今何以則可也?" 舜孝曰: "是乃人君屈至尊, 尊師重道之日也。 答拜爲便。" 淑精曰: "開元之禮備具, 此後世之所當擧行也。" 上曰: "予亦欲以師弟之禮拜之, 不以君臣之義行之。 其以此意曉諭禮曹。"
- 【태백산사고본】 14책 88권 17장 A면【국편영인본】 9책 549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왕실-국왕(國王)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역사-고사(故事) / 윤리-강상(綱常)
성종실록88권, 성종 9년 1월 24일 丁亥 10/10 기사 / 1478년 명 성화(成化) 14년
삼로·오경에게 절하는 데 있어서 개원의 예를 택하다
국역
야대(夜對)에 나아갔다. 강(講)하기를 마치자, 좌승지(左承旨) 손순효(孫舜孝)가 아뢰기를,
"벽옹(辟雍)에 나아가 삼로(三老)에게 절하는 것은 여러 일이 이미 준비되었는데, 정지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신의 생각에는, 전하께서 비로소 궁경(躬耕)·친잠(親蠶)의 법전을 행하시고 또 대사(大射)의 예(禮)를 행하시어 무릇 광폐(曠廢)한 법전을 차례로 거행하셨으니, 지금 몸소 반궁(泮宮)에 나아가 삼로(三老)·오경(五更)에게 절하시면, 이것이 참으로 성한 예가 될 것입니다. 지금 의논하는 자가 혹은 말하기를, ‘몸소 반궁에 나아가 먼저 양로(養老)하고 다시 제생(諸生)을 나오게 하여 사도(斯道)를 강명(講明)하여, 한편으로 문(文)을 숭상하고 교화를 일으키고, 한편으로는 스승을 높이고 도(道)를 중히 여기시되, 정인지(鄭麟趾)·정창손(鄭昌孫) 등은 나이와 덕이 다 높고 명망이 또 높으니, 이들이 삼로(三老)·오경(五更)이라 말할 만하다.’ 하고, 의논하는 자가 혹은 말하기를, ‘한번 삼로·오경을 삼아 절하면 부르지 못하는 신하가 된다.’ 합니다. 옛적에 탕(湯)임금이 이윤(伊尹)에게 배운 뒤에 신하로 삼았으며, 정인지·정창손은 작위가 높고 나이 늙어서 이미 궤장(几杖)을 주었으나 큰 일이 있으면 나와서 의논하니, 노경(老更)을 삼는 데에 무엇이 해로울 것이 있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대간(臺諫)이 나더러 이름을 좋아한다고 하니, 내가 본래 이름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지한 것이다."
하므로, 시강관(侍講官) 최숙정(崔淑精)이 말하기를,
"한사(漢史)에 이르기를, ‘방문(榜門)에 둘러서서 보고 듣는 자를 억만으로 헤아렸다.’ 하였는데, 신이 매양 읽다가 여기에 이르면 탄식하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지금 사방의 유생이 전하께서 비로소 큰 예를 행하신다는 말을 듣고 반궁에 구름처럼 모이는데, 지금 정지하시면 뭇사람의 마음이 섭섭할까 두렵습니다."
하고, 손순효는 말하기를,
"어제 이칙(李則)의 말은 너무 과한 것 같으나, 우(禹)가 순(舜)임금을 경계하여 말하기를, ‘단주(丹朱)048) 같이 오만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우(禹)가 어찌 참으로 순(舜)을 단주와 같게 여겼겠습니까? 신하가 임금을 경계하는 것은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합니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다른 산의 돌이 옥(玉)을 닦을 수 있다.’ 하였습니다. 전하께서 비록 호명(好名)하는 마음이 없더라도, 또한 이칙의 말로 말미암아 더욱 면려하신다면, 어찌 작은 도움이라 하겠습니까?"
하였다. 검토관(檢討官) 윤희손(尹喜孫)이 말하기를,
"한 사람이 몸소 위에서 행하면 만 사람이 아래에서 보고 느낍니다. 지금 유생이 사장(師長)을 깔보고 욕하며 혹은 글에 써서 기록하는데, 주상께서 한 번 큰 예를 행하시면, 유생이 또한 스승을 높이는 의리를 알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그대들이 말하니 내가 장차 행하겠다. 다만 개원(開元)의 예는 천자가 절하고 송조(宋朝)의 예는 삼로(三老)가 절한 뒤에 천자가 일어나는데, 지금은 어떻게 하면 되겠는가?"
하자, 손순효가 말하기를,
"이것은 인군이 지극히 높은 것을 굽히어 스승을 높이고 도를 중히 여기는 날이니, 답배(答拜)하는 것이 온편합니다."
하고, 최숙정은 말하기를,
"개원의 예가 갖추어졌으니, 이것이 후세에서 마땅히 거행할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나도 스승과 제자의 예로 절하고, 임금과 신하의 의로 행하지 않겠다. 이 뜻을 예조(禮曹)에 이르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4책 88권 17장 A면【국편영인본】 9책 549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왕실-국왕(國王)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역사-고사(故事) / 윤리-강상(綱常)
- [註 048] 단주(丹朱) : 요(堯)임금의 아들.
원문
○御夜對。 講訖, 左承旨孫舜孝啓曰: "臨雍拜老諸事已辦, 而命停之。 臣意以爲殿下肇稱躬耕、親蠶之典, 又擧大射之禮, 凡厥曠典, 次第擧行, 今躬臨泮宮, 拜三老五更, 此固盛禮也。 今之議者或以爲: ‘(宮)〔躬〕 臨泮宮先養老, 更進諸生而講明斯道, 一以右文興化, 一以尊師重道, 鄭麟趾、鄭昌孫等年德俱高, 名望又尊, 此可謂三老五更。’ 議者或以謂: ‘一爲老更而拜之, 則爲不召之臣。’ 昔湯之於伊尹, 學焉而後臣之, 麟趾、昌孫位高年耄, 已賜几杖, 有大事則進而議之, 其於爲老更, 何害之有?" 上曰: "臺諫謂我爲好名, 予本非好名, 故停之耳。" 侍講官崔淑精曰: "漢史云: ‘圜榜門而觀聽者, 億萬計’, 臣每讀至此, 未嘗不嘆息。 今四方儒士聞殿下肇行大禮, 雲集泮宮, 今而停之, 恐衆心缺望。" 舜孝曰: "昨日李則之言, 似乎太過, 然禹之戒舜曰: ‘無若丹朱傲。’ 禹豈眞以舜爲丹朱哉? 臣之戒君當如是。 《詩》云: ‘他山之石, 可以攻玉。’ 殿下雖無好名之心, 亦因則言益加勉礪, 豈曰少補之哉?" 檢討官尹喜孫曰: "一人躬行於上, 則萬人觀感於下。 今之儒生慢罵師長, 或筆之於書以譏之, 上一行大禮, 則儒生亦知尊師之義。" 上曰: "爾等言之, 予將行之。 但開元之禮, 天子乃拜, 宋朝之禮, 三老拜而後天子乃起, 今何以則可也?" 舜孝曰: "是乃人君屈至尊, 尊師重道之日也。 答拜爲便。" 淑精曰: "開元之禮備具, 此後世之所當擧行也。" 上曰: "予亦欲以師弟之禮拜之, 不以君臣之義行之。 其以此意曉諭禮曹。"
- 【태백산사고본】 14책 88권 17장 A면【국편영인본】 9책 549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왕실-국왕(國王)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역사-고사(故事) / 윤리-강상(綱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