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실록64권, 성종 7년 2월 28일 壬寅 1/3 기사 / 1476년 명 성화(成化) 12년
모화관에 거둥하니 사신들이 시를 지어 바치고 떠나가다
국역
임금이 모화관(慕華館)에 거둥하니, 두 사신(使臣)이 도착하였다. 임금이 대문(大門) 밖에 나가서 맞이해 들어왔는데, 두 사신이 임금의 앞에 나아와서 말하기를,
"근일에 전하(殿下)께서 수고스럽게 기동(起動)하고 지금 또 멀리 와서 전송(餞送)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만리(萬里)나 되는 수고스러운 행차를 내가 능히 위로해 주지 못한 것이 한(恨)스럽습니다."
하였다. 마침내 자리에 나아가서 술이 세 순배 돌아가니, 정사(正使)가 사운율시(四韻律詩)를 지어 올렸다. 그 시(詩)에 이르기를,
"천리에 은혜를 베풂이 황제의 도읍으로부터 하니,
어진 왕을 서로 만나본 즉시 마음이 합하였네.
제(齊)나라 후(侯)257) 는 주(周)나라 천자(天子)에게 뜰에 내려와 절했으며,
진(晉)나라 패왕(霸王)258) 은 송(宋)나라 대부(大夫)를 겸손하게 맞이했네.
나라를 다스린 재명(才名)은 옥검(玉檢)259) 에 빛나고,
백성에게 비치는 아름다운 모습 빙호(氷壺)260) 처럼 환하네.
충성하고 근실하여 평생의 뜻을 게을리함이 없어,
기자 조선(箕子朝鮮)의 옛 판도(版圖)를 영구히 보존하소서."
하였다. 임금이 이를 보시고, 도승지(都承旨) 유지(柳輊)로 하여금 사례(謝禮)하도록 하였다. 부사(副使)도 사운율시(四韻律詩)를 지어 올렸는데, 그 시에 이르기를,
"위대하도다, 동국(東國)의 이 어진 왕은
여러 신하를 인도하여 법도(法度)에 들게 했네.
한 시대의 훌륭한 범절(凡節)은 주(周)나라의 전례(典禮)이고,
백년의 문물(文物)은 한(漢)나라의 의상(衣裳)이네.
배회한 시일이 오래되어 작별하기 어려운데,
돌보아주신 깊은 인정은 보통과 달랐었네.
길을 떠남에 무엇으로 사례할지 부끄러우나,
돌아가면 낱낱이 우리 황제께 아뢰리라."
하니, 임금이 또한 사례(謝禮)하였다. 정사(正使)가 또한 사운율시(四韻律詩)를 지어 월산 대군(月山大君)에게 주니, 임금이 또한 이를 사례(謝禮)하였다. 정사(正使)가 이에 돌아가는 술을 따르면서 말하기를,
"후의(厚意)를 많이 입었는데, 오늘 작별(作別)한 후에 다시 만나기는 기약하기가 어렵겠습니다. 전하(殿下)께서 만약 한 잔 술을 다 비우신다면, 우리들은 감사히 여기고 떠나겠습니다."
하였다. 부사(副使)도 술잔을 돌려주면서 또한 술잔을 다 비우기를 청하니, 임금이 모두 그대로 따랐다. 이어서 두 사신(使臣)에게 말하기를,
"내가 즉시 돌아가는 술을 따르려고 하나, 다만 너무 취할 듯하니, 문 밖에 나아가서 이를 따르기를 청합니다."
하니, 두 사신이 말하기를,
"어찌 문 밖에서 하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 곳에서 절하고 하직하겠습니다."
하고, 마침내 두 번 절하고서 떠나갔다. 임금이 전송하여 대문(大門)까지 이르러 또 별배(別杯)261) 를 따르니, 정사(正使)가 말하기를,
"이 술잔을 어찌 감히 마시지 않겠습니까?"
하면서 즉시 다 마셨다. 부사(副使)가 임금에게 술을 권하면서 말하기를,
"전하(殿下)께서 한 잔을 다 마신다면, 우리들은 마땅히 감사히 여기고 떠나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또한 술잔을 또 비웠다. 두 사신이 마침내 읍(揖)을 하고서 나가니, 임금이 계단을 내려와서 읍(揖)하고 작별(作別)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0책 64권 22장 B면【국편영인본】 9책 319면
- 【분류】왕실-행행(行幸) / 왕실-의식(儀式) / 외교-명(明) / 어문학-문학(文學)
- [註 257] 제(齊)나라 후(侯) : 환공(桓公).
- [註 258] 진(晉)나라 패왕(霸王) : 문공(文公).
- [註 259] 옥검(玉檢) : 옛날 중국에서 임금이 공(功)을 이루었을 때, 하늘에 고하고 돌에 새겨 기념하고, 석함(石函)에 넣고 그 뚜껑을 옥(玉)으로 만들어 덮은 고사(故事)에서 나온 말.
- [註 260] 빙호(氷壺) : 매우 깨끗한 모습.
- [註 261] 별배(別杯) : 이별할 때 서로 나누는 술잔.
원문
○壬寅/上幸慕華館, 兩使至。 上出大門外迎入, 兩使就上前曰: "近日殿下勞動, 今又遠來相送, 多感。" 上曰: "萬里勞行, 恨我不能奉慰。" 遂就座, 酒三行, 正使賦四韻律詩以進。 詩曰: "千里宣恩自帝都, 賢王相見卽心孚。 齊侯下拜周天子, 晋覇謙迎宋大夫。 治國才名光玉檢, 照人丰彩徹氷壺。 忠勤莫怠平生志, 永固箕封舊版圖。" 上監之, 令都承旨柳輊致謝。 副使亦賦四韻律詩以進, 詩曰: "偉哉東國此賢王, 道率群臣入憲章。 一代儀文周典禮, 百年文物漢衣裳。 徘佪日久難爲別, 眷顧情深獨異常。 自愧臨行何以謝, 歸朝一一達吾皇。" 上亦謝。 正使又賦四韻律詩, 贈月山大君, 上亦謝之。 正使乃行回酒曰: "多荷厚意, 今日別後, 更會難期。 殿下若傾盡一杯, 則我等感戴而去。" 副使回酒, 亦請盡杯, 上皆從之。 仍語兩使曰: "予卽欲行回杯, 第恐醉劇, 請就門外行之。" 兩使曰: "何必門外可? 於此拜辭。" 遂再拜而出。 上送至大門, 又行別杯, 正使曰: "此杯, 安敢不飮?" 卽盡飮。 副使勸上酒曰: "殿下盡一杯, 則我等當感戴而行。" 上亦盡杯。 兩使遂揖而出, 上降階揖別。
- 【태백산사고본】 10책 64권 22장 B면【국편영인본】 9책 319면
- 【분류】왕실-행행(行幸) / 왕실-의식(儀式) / 외교-명(明) / 어문학-문학(文學)
성종실록64권, 성종 7년 2월 28일 壬寅 1/3 기사 / 1476년 명 성화(成化) 12년
모화관에 거둥하니 사신들이 시를 지어 바치고 떠나가다
국역
임금이 모화관(慕華館)에 거둥하니, 두 사신(使臣)이 도착하였다. 임금이 대문(大門) 밖에 나가서 맞이해 들어왔는데, 두 사신이 임금의 앞에 나아와서 말하기를,
"근일에 전하(殿下)께서 수고스럽게 기동(起動)하고 지금 또 멀리 와서 전송(餞送)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만리(萬里)나 되는 수고스러운 행차를 내가 능히 위로해 주지 못한 것이 한(恨)스럽습니다."
하였다. 마침내 자리에 나아가서 술이 세 순배 돌아가니, 정사(正使)가 사운율시(四韻律詩)를 지어 올렸다. 그 시(詩)에 이르기를,
"천리에 은혜를 베풂이 황제의 도읍으로부터 하니,
어진 왕을 서로 만나본 즉시 마음이 합하였네.
제(齊)나라 후(侯)257) 는 주(周)나라 천자(天子)에게 뜰에 내려와 절했으며,
진(晉)나라 패왕(霸王)258) 은 송(宋)나라 대부(大夫)를 겸손하게 맞이했네.
나라를 다스린 재명(才名)은 옥검(玉檢)259) 에 빛나고,
백성에게 비치는 아름다운 모습 빙호(氷壺)260) 처럼 환하네.
충성하고 근실하여 평생의 뜻을 게을리함이 없어,
기자 조선(箕子朝鮮)의 옛 판도(版圖)를 영구히 보존하소서."
하였다. 임금이 이를 보시고, 도승지(都承旨) 유지(柳輊)로 하여금 사례(謝禮)하도록 하였다. 부사(副使)도 사운율시(四韻律詩)를 지어 올렸는데, 그 시에 이르기를,
"위대하도다, 동국(東國)의 이 어진 왕은
여러 신하를 인도하여 법도(法度)에 들게 했네.
한 시대의 훌륭한 범절(凡節)은 주(周)나라의 전례(典禮)이고,
백년의 문물(文物)은 한(漢)나라의 의상(衣裳)이네.
배회한 시일이 오래되어 작별하기 어려운데,
돌보아주신 깊은 인정은 보통과 달랐었네.
길을 떠남에 무엇으로 사례할지 부끄러우나,
돌아가면 낱낱이 우리 황제께 아뢰리라."
하니, 임금이 또한 사례(謝禮)하였다. 정사(正使)가 또한 사운율시(四韻律詩)를 지어 월산 대군(月山大君)에게 주니, 임금이 또한 이를 사례(謝禮)하였다. 정사(正使)가 이에 돌아가는 술을 따르면서 말하기를,
"후의(厚意)를 많이 입었는데, 오늘 작별(作別)한 후에 다시 만나기는 기약하기가 어렵겠습니다. 전하(殿下)께서 만약 한 잔 술을 다 비우신다면, 우리들은 감사히 여기고 떠나겠습니다."
하였다. 부사(副使)도 술잔을 돌려주면서 또한 술잔을 다 비우기를 청하니, 임금이 모두 그대로 따랐다. 이어서 두 사신(使臣)에게 말하기를,
"내가 즉시 돌아가는 술을 따르려고 하나, 다만 너무 취할 듯하니, 문 밖에 나아가서 이를 따르기를 청합니다."
하니, 두 사신이 말하기를,
"어찌 문 밖에서 하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 곳에서 절하고 하직하겠습니다."
하고, 마침내 두 번 절하고서 떠나갔다. 임금이 전송하여 대문(大門)까지 이르러 또 별배(別杯)261) 를 따르니, 정사(正使)가 말하기를,
"이 술잔을 어찌 감히 마시지 않겠습니까?"
하면서 즉시 다 마셨다. 부사(副使)가 임금에게 술을 권하면서 말하기를,
"전하(殿下)께서 한 잔을 다 마신다면, 우리들은 마땅히 감사히 여기고 떠나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또한 술잔을 또 비웠다. 두 사신이 마침내 읍(揖)을 하고서 나가니, 임금이 계단을 내려와서 읍(揖)하고 작별(作別)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0책 64권 22장 B면【국편영인본】 9책 319면
- 【분류】왕실-행행(行幸) / 왕실-의식(儀式) / 외교-명(明) / 어문학-문학(文學)
- [註 257] 제(齊)나라 후(侯) : 환공(桓公).
- [註 258] 진(晉)나라 패왕(霸王) : 문공(文公).
- [註 259] 옥검(玉檢) : 옛날 중국에서 임금이 공(功)을 이루었을 때, 하늘에 고하고 돌에 새겨 기념하고, 석함(石函)에 넣고 그 뚜껑을 옥(玉)으로 만들어 덮은 고사(故事)에서 나온 말.
- [註 260] 빙호(氷壺) : 매우 깨끗한 모습.
- [註 261] 별배(別杯) : 이별할 때 서로 나누는 술잔.
원문
○壬寅/上幸慕華館, 兩使至。 上出大門外迎入, 兩使就上前曰: "近日殿下勞動, 今又遠來相送, 多感。" 上曰: "萬里勞行, 恨我不能奉慰。" 遂就座, 酒三行, 正使賦四韻律詩以進。 詩曰: "千里宣恩自帝都, 賢王相見卽心孚。 齊侯下拜周天子, 晋覇謙迎宋大夫。 治國才名光玉檢, 照人丰彩徹氷壺。 忠勤莫怠平生志, 永固箕封舊版圖。" 上監之, 令都承旨柳輊致謝。 副使亦賦四韻律詩以進, 詩曰: "偉哉東國此賢王, 道率群臣入憲章。 一代儀文周典禮, 百年文物漢衣裳。 徘佪日久難爲別, 眷顧情深獨異常。 自愧臨行何以謝, 歸朝一一達吾皇。" 上亦謝。 正使又賦四韻律詩, 贈月山大君, 上亦謝之。 正使乃行回酒曰: "多荷厚意, 今日別後, 更會難期。 殿下若傾盡一杯, 則我等感戴而去。" 副使回酒, 亦請盡杯, 上皆從之。 仍語兩使曰: "予卽欲行回杯, 第恐醉劇, 請就門外行之。" 兩使曰: "何必門外可? 於此拜辭。" 遂再拜而出。 上送至大門, 又行別杯, 正使曰: "此杯, 安敢不飮?" 卽盡飮。 副使勸上酒曰: "殿下盡一杯, 則我等當感戴而行。" 上亦盡杯。 兩使遂揖而出, 上降階揖別。
- 【태백산사고본】 10책 64권 22장 B면【국편영인본】 9책 319면
- 【분류】왕실-행행(行幸) / 왕실-의식(儀式) / 외교-명(明) / 어문학-문학(文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