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실록45권, 성종 5년 7월 28일 辛巳 4/6 기사 / 1474년 명 성화(成化) 10년
공주 목사 홍석이 상서하여 정병의 보인·군액·요역 등의 민폐에 대해 아뢰다
국역
공주 목사(公州牧使) 홍석(洪錫)이 상서(上書)하기를,
"신은 외람되게 용렬한 자질로 분수에 넘치게 자목(字牧)597) 의 직임에 있는데, 이제 구언(求言)의 분부를 받았으므로, 신이 본 민폐를 삼가 조목으로 들어서 아룁니다.
1. 정병(正兵)598) 에 보인(保人)599) 을 붙여 줄 당초에 토전(土田)이 없는 자까지도 모두 헤아려서 보인을 만들어서 그 수를 헛되이 불렸으므로 생업을 잃고 유랑하는 자가 앞뒤로 잇달며, 그런 가운데에서도 현재 남아 있는 자들도 다 곤궁하여 죽음을 구제하기에도 넉넉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정병이 번(番)들러 올라갈 때에 꾸어 먹는데, 번에서 풀려 내려오게 되면 채주(債主)가 독촉해 거둡니다. 처자를 매질하고 족친(族親)을 얽어매므로, 가산(家産)을 기울이고 전택(田宅)을 팔기까지 하는데, 그래도 갚지 못하고 어쩔 길 없어 팔을 걷어붙이고 분격하여 외쳐 우는 자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정병만이 아니라 선군(船軍)·조군(漕軍)·조례(皂隷)도 다 그러합니다. 속담에 ‘한 여자의 원망이 6월에 서리를 내리게 한다.’ 하였거니와, 신은 근래의 홍수와 가뭄의 재변이 여기에서 말미암은 것일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신은 듣건대 군사가 정예(精銳)하지 못한 것이 걱정되고 많지 않은 것은 걱정되지 않으며, 예전에는 한 집에서 종군(從軍)하면 열 집이 도왔는데도 군사에 여력(餘力)이 있고 나라에 믿는 바가 있었다 합니다. 신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다시 조신(朝臣)을 보내어 그 고을의 수령(守令)과 함께 원액(元額)을 더욱 줄이고 부강(富强)한 자를 가려서 호수(戶首)600) 로 삼고 그 다음을 봉족(奉足)601) 으로 삼으면 민심이 기뻐하여 음양(陰陽)도 조화될 것입니다.
1. 세종조(世宗朝)의 시위패(侍衛牌)는 곧 지금의 정병(正兵)입니다. 그때에는 군액(軍額)이 줄어져서 사졸이 곤고(困苦)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신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세종조의 예(例)에 따라 하삼도(下三道)의 정병은 평소 무사할 때에는 10번으로 나누어 그 힘을 쉬게 하고, 강무(講武)602) ·대열(大閱)603) 때라면 징집하여 점검하고, 유사시가 되면 모두 몰아다가 쓰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1. 경기는 요역(徭役)이 다른 도보다 훨씬 더한데, 그 정병이 입번(立番)하는 것은 여러 도와 다름 없어서 노고와 안일이 고르지 않으므로, 백성이 매우 괴로와합니다. 세종조의 시위패의 예에 따라 병조(兵曹)에서 점고(點考)한 뒤에는 곧 놓아 보내어 그 생활을 넉넉하게 하기를 신은 바랍니다.
1. 제주(濟州) 연변(沿邊)의 목장(牧場)의 말은 매년 여름철에 뭍으로 내보내는데, 그 수가 혹 40, 50 또는 60, 70까지 무리를 지어 끊임 없이 잇달며, 지나는 여러 고을에서는 말을 끄는 군사를 징집하여 고을 경계에서 기다리느라고 걸핏하면 열흘을 지내니, 백성들의 농사에 해롭기가 이보다 심한 것이 없습니다. 선왕(先王)께서는 어쩔 수 없을 때에만 백성의 힘을 쓰셨으므로, 다 농사가 한가할 때에 하여 백성들의 힘을 펴게 하셨습니다. 신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7월 보름 이후 9월 보름 이전에 공마(貢馬)가 뭍에 나와도 늦지 않으니, 이것을 항식(恒式)으로 정하여 민폐를 없애기를 엎드려 바랍니다."
하였는데, 전교하기를,
"군액은 이미 줄였거니와, 건장한 자를 남겨 두고 나약한 자를 제외하는 것은 수령의 직분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7책 45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9책 133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군사-군정(軍政) / 군사-중앙군(中央軍) / 군사-부방(赴防) / 군사-군역(軍役) / 재정-공물(貢物) / 재정-역(役) / 교통-마정(馬政)
- [註 597] 자목(字牧) : 백성을 돌보고 다스림. 곧 수령(守令).
- [註 598] 정병(正兵) : 군에 입대하여 정규(正規)의 군인으로서 복무하는 자. 정군(正軍)을 말함.
- [註 599] 보인(保人) : 군보(軍保)로 보미(保米)나 보포(保布)를 상납(上納)할 의무가 있는 사람을 말함.
- [註 600] 호수(戶首) : 각 호(戶)의 우두머리 1호는 정호(正戶)와 봉족(奉足)으로 되어 있는데, 호수는 정군(正軍)의 입역(立役)과 여정(餘丁)의 공부(貢賦)를 책임지고 독려하였음.
- [註 601] 봉족(奉足) : 보조자(補助者)라는 뜻으로 조선조 때 정군(正軍)의 집에 주던 조호(助戶)를 말함.
- [註 602] 강무(講武) : 조선조 때 1년에 두 번 봄철과 가을철에 행하던 행사의 하나. 지정한 곳에 장수와 군사와 백성들을 모아 임금이 주장하여 사냥하며 아울러 무예를 연습하던 일을 말함.
- [註 603] 대열(大閱) : 임금의 열무(閱武)·임금이 습진(習陣), 곧 군사 연습을 친열(親閱)하는 것을 말함.
원문
○公州牧使洪錫上書曰:
臣猥以庸資, 濫叨字牧之任, 今承求言之敎, 以臣所覩民瘼, 謹用條陳。 一, 正兵作保之初, 雖無土田者, 幷計田作保, 虛張其數, 故失業流亡者前後相繼, 其間見存者亦皆艱窘, 救死不贍。 方其番上之際, 稱貸以食, 及番下則債主從而督徵之。 鞭撻妻子繫累族親, 以至傾家産鬻田宅, 尙不能償, 扼腕而呼泣者, 不知有幾。 非獨正兵, 又有船軍、漕軍、皂隷亦皆如此。 諺曰: "一女之怨, 六月降霜。" 臣竊恐近來水旱之災, 未必不由於斯也。 臣聞兵患不精, 不患不多, 古者一家從軍, 十室奉之, 而兵有餘力, 國有所恃。 臣竊謂更遣朝臣, 同其官守令, 益減元額, 擇富强者爲戶首, 其次爲奉足, 則民心悅而陰陽亦和矣。 一, 世宗朝侍衛牌, 卽今之正兵也。 其時未見軍額之耗少而士卒之困苦也。 臣竊以爲, 依世宗朝例, 下三道正兵, 當其平居無事之時, 則分十番以休其力, 若講武、大閱之際, 則徵聚點檢, 及其有事之時, 則竝驅而用之何如? 一, 京畿徭役, 倍於他道, 其正兵立番, 無異諸道, 勞逸不均, 民甚苦焉。 臣願依世宗朝侍衛牌例, 兵曹點考後, 卽皆放送, 以贍其生。 一, 濟州沿邊牧場馬, 每於夏月出陸, 其數或至四五十或六七十爲群, 而絡繹不絶, 所經諸邑, 徵聚牽馬軍, 以待境上, 動經旬日, 害民之農, 莫此爲甚。 先王用民之力, 在所不得已, 故皆於農隙, 以舒民力。 臣竊以爲, 七月望後九月望前, 貢馬出陸, 亦爲不晩, 伏望定爲恒式, 以除民弊。
傳曰: "軍額旣減, 壯者仍存, 弱者汰去, 守令之職也。"
- 【태백산사고본】 7책 45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9책 133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군사-군정(軍政) / 군사-중앙군(中央軍) / 군사-부방(赴防) / 군사-군역(軍役) / 재정-공물(貢物) / 재정-역(役) / 교통-마정(馬政)
성종실록45권, 성종 5년 7월 28일 辛巳 4/6 기사 / 1474년 명 성화(成化) 10년
공주 목사 홍석이 상서하여 정병의 보인·군액·요역 등의 민폐에 대해 아뢰다
국역
공주 목사(公州牧使) 홍석(洪錫)이 상서(上書)하기를,
"신은 외람되게 용렬한 자질로 분수에 넘치게 자목(字牧)597) 의 직임에 있는데, 이제 구언(求言)의 분부를 받았으므로, 신이 본 민폐를 삼가 조목으로 들어서 아룁니다.
1. 정병(正兵)598) 에 보인(保人)599) 을 붙여 줄 당초에 토전(土田)이 없는 자까지도 모두 헤아려서 보인을 만들어서 그 수를 헛되이 불렸으므로 생업을 잃고 유랑하는 자가 앞뒤로 잇달며, 그런 가운데에서도 현재 남아 있는 자들도 다 곤궁하여 죽음을 구제하기에도 넉넉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정병이 번(番)들러 올라갈 때에 꾸어 먹는데, 번에서 풀려 내려오게 되면 채주(債主)가 독촉해 거둡니다. 처자를 매질하고 족친(族親)을 얽어매므로, 가산(家産)을 기울이고 전택(田宅)을 팔기까지 하는데, 그래도 갚지 못하고 어쩔 길 없어 팔을 걷어붙이고 분격하여 외쳐 우는 자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정병만이 아니라 선군(船軍)·조군(漕軍)·조례(皂隷)도 다 그러합니다. 속담에 ‘한 여자의 원망이 6월에 서리를 내리게 한다.’ 하였거니와, 신은 근래의 홍수와 가뭄의 재변이 여기에서 말미암은 것일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신은 듣건대 군사가 정예(精銳)하지 못한 것이 걱정되고 많지 않은 것은 걱정되지 않으며, 예전에는 한 집에서 종군(從軍)하면 열 집이 도왔는데도 군사에 여력(餘力)이 있고 나라에 믿는 바가 있었다 합니다. 신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다시 조신(朝臣)을 보내어 그 고을의 수령(守令)과 함께 원액(元額)을 더욱 줄이고 부강(富强)한 자를 가려서 호수(戶首)600) 로 삼고 그 다음을 봉족(奉足)601) 으로 삼으면 민심이 기뻐하여 음양(陰陽)도 조화될 것입니다.
1. 세종조(世宗朝)의 시위패(侍衛牌)는 곧 지금의 정병(正兵)입니다. 그때에는 군액(軍額)이 줄어져서 사졸이 곤고(困苦)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신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세종조의 예(例)에 따라 하삼도(下三道)의 정병은 평소 무사할 때에는 10번으로 나누어 그 힘을 쉬게 하고, 강무(講武)602) ·대열(大閱)603) 때라면 징집하여 점검하고, 유사시가 되면 모두 몰아다가 쓰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1. 경기는 요역(徭役)이 다른 도보다 훨씬 더한데, 그 정병이 입번(立番)하는 것은 여러 도와 다름 없어서 노고와 안일이 고르지 않으므로, 백성이 매우 괴로와합니다. 세종조의 시위패의 예에 따라 병조(兵曹)에서 점고(點考)한 뒤에는 곧 놓아 보내어 그 생활을 넉넉하게 하기를 신은 바랍니다.
1. 제주(濟州) 연변(沿邊)의 목장(牧場)의 말은 매년 여름철에 뭍으로 내보내는데, 그 수가 혹 40, 50 또는 60, 70까지 무리를 지어 끊임 없이 잇달며, 지나는 여러 고을에서는 말을 끄는 군사를 징집하여 고을 경계에서 기다리느라고 걸핏하면 열흘을 지내니, 백성들의 농사에 해롭기가 이보다 심한 것이 없습니다. 선왕(先王)께서는 어쩔 수 없을 때에만 백성의 힘을 쓰셨으므로, 다 농사가 한가할 때에 하여 백성들의 힘을 펴게 하셨습니다. 신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7월 보름 이후 9월 보름 이전에 공마(貢馬)가 뭍에 나와도 늦지 않으니, 이것을 항식(恒式)으로 정하여 민폐를 없애기를 엎드려 바랍니다."
하였는데, 전교하기를,
"군액은 이미 줄였거니와, 건장한 자를 남겨 두고 나약한 자를 제외하는 것은 수령의 직분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7책 45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9책 133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군사-군정(軍政) / 군사-중앙군(中央軍) / 군사-부방(赴防) / 군사-군역(軍役) / 재정-공물(貢物) / 재정-역(役) / 교통-마정(馬政)
- [註 597] 자목(字牧) : 백성을 돌보고 다스림. 곧 수령(守令).
- [註 598] 정병(正兵) : 군에 입대하여 정규(正規)의 군인으로서 복무하는 자. 정군(正軍)을 말함.
- [註 599] 보인(保人) : 군보(軍保)로 보미(保米)나 보포(保布)를 상납(上納)할 의무가 있는 사람을 말함.
- [註 600] 호수(戶首) : 각 호(戶)의 우두머리 1호는 정호(正戶)와 봉족(奉足)으로 되어 있는데, 호수는 정군(正軍)의 입역(立役)과 여정(餘丁)의 공부(貢賦)를 책임지고 독려하였음.
- [註 601] 봉족(奉足) : 보조자(補助者)라는 뜻으로 조선조 때 정군(正軍)의 집에 주던 조호(助戶)를 말함.
- [註 602] 강무(講武) : 조선조 때 1년에 두 번 봄철과 가을철에 행하던 행사의 하나. 지정한 곳에 장수와 군사와 백성들을 모아 임금이 주장하여 사냥하며 아울러 무예를 연습하던 일을 말함.
- [註 603] 대열(大閱) : 임금의 열무(閱武)·임금이 습진(習陣), 곧 군사 연습을 친열(親閱)하는 것을 말함.
원문
○公州牧使洪錫上書曰:
臣猥以庸資, 濫叨字牧之任, 今承求言之敎, 以臣所覩民瘼, 謹用條陳。 一, 正兵作保之初, 雖無土田者, 幷計田作保, 虛張其數, 故失業流亡者前後相繼, 其間見存者亦皆艱窘, 救死不贍。 方其番上之際, 稱貸以食, 及番下則債主從而督徵之。 鞭撻妻子繫累族親, 以至傾家産鬻田宅, 尙不能償, 扼腕而呼泣者, 不知有幾。 非獨正兵, 又有船軍、漕軍、皂隷亦皆如此。 諺曰: "一女之怨, 六月降霜。" 臣竊恐近來水旱之災, 未必不由於斯也。 臣聞兵患不精, 不患不多, 古者一家從軍, 十室奉之, 而兵有餘力, 國有所恃。 臣竊謂更遣朝臣, 同其官守令, 益減元額, 擇富强者爲戶首, 其次爲奉足, 則民心悅而陰陽亦和矣。 一, 世宗朝侍衛牌, 卽今之正兵也。 其時未見軍額之耗少而士卒之困苦也。 臣竊以爲, 依世宗朝例, 下三道正兵, 當其平居無事之時, 則分十番以休其力, 若講武、大閱之際, 則徵聚點檢, 及其有事之時, 則竝驅而用之何如? 一, 京畿徭役, 倍於他道, 其正兵立番, 無異諸道, 勞逸不均, 民甚苦焉。 臣願依世宗朝侍衛牌例, 兵曹點考後, 卽皆放送, 以贍其生。 一, 濟州沿邊牧場馬, 每於夏月出陸, 其數或至四五十或六七十爲群, 而絡繹不絶, 所經諸邑, 徵聚牽馬軍, 以待境上, 動經旬日, 害民之農, 莫此爲甚。 先王用民之力, 在所不得已, 故皆於農隙, 以舒民力。 臣竊以爲, 七月望後九月望前, 貢馬出陸, 亦爲不晩, 伏望定爲恒式, 以除民弊。
傳曰: "軍額旣減, 壯者仍存, 弱者汰去, 守令之職也。"
- 【태백산사고본】 7책 45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9책 133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군사-군정(軍政) / 군사-중앙군(中央軍) / 군사-부방(赴防) / 군사-군역(軍役) / 재정-공물(貢物) / 재정-역(役) / 교통-마정(馬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