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실록44권, 성종 5년 윤6월 30일 癸丑 5/5 기사 / 1474년 명 성화(成化) 10년
치도와 승도의 혁파·풍속 교화·불교의 해로움 등에 관한 임사홍 등의 상소문
국역
예문관 부제학(藝文館副提學) 임사홍(任士洪) 등이 상소하기를,
"엎드려 보건대 전하께서는 근일에 한한(旱暵)으로 인하여 통절히 스스로를 각책(刻責)하시어, 내전을 피하고 어선(御膳)을 감하시며 소간(宵旰)으로 우로(憂勞)하시고, 어찰(御札)을 내리어 구언(求言)하는 데 이르렀으니, 비록 상(商)나라 탕(湯)임금의 죄기(罪己)502) 와 주(周)나라 선왕(宣王)의 측신(側身)도 이 보다 더함이 없을 것입니다. 신 등은 나란히 시종(侍從)하는 지위에 있으므로, 전하(殿下)의 마음 쓰심을 우러러 살펴서 잘 압니다. 신 등이 보건대 인사(人事)는 정성스러우면 이르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천재(天災)가 그치지 않고 아름다운 상서(祥瑞)가 이르지 않으니, 어찌 하늘이 전하를 인애(仁愛)하여 마음을 움직이고 성질을 참게 하여 능란하지 못한 것을 채워 주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방이 광활하고 서정(庶政)이 번거로우니, 혹 한두 가지의 말할 만한 것이 어떻게 반드시 없다고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이르되 아무 일을 얻었으니 아무 것의 아름다운 징조가 응하였고 아무 일은 잘못하였으니 아무 것의 잘못된 징조가 응하였다고 한다면, 이것은 선유(先儒)들의 천착(穿鑿)함이라고 여겨집니다. 신 등이 또한 어찌 감히 망령되이 천도(天道)를 헤아려서 고집하여 말하겠습니까?
삼가 치도(治道)에 관계가 있는 것을 들어서 전하께 진달합니다. 신 등은 그윽이 생각건대 육경(六卿)의 다스림은 미연(未然)을 귀하게 여기고 왕자(王者)의 정치는 근본을 닦는 데 힘써야 합니다. 이런 까닭으로 명지(明智)한 군자는 국가가 다스리지 않는 것을 근심하지 않고 오직 풍속이 바르지 못한 것을 근심하며, 또 풍속이 바르지 못한 것을 근심하는 것이 아니고 오직 교화가 바탕이 없는 것을 근심합니다. 교화가 바탕이 밝으면 인심이 스스로 바르고 예의와 염치가 일찍 이루어져, 사(士)·군자(君子)가 행동함에 여항(閭巷)의 백성들이 전염되어 모두 효제(孝悌)하고 충신한 데로 돌아갑니다. 그 심은 근본이 견고하면 그 발원함이 깊어 더욱 크게 되고 공을 거둠이 원대할 것이니, 어찌 헤아릴 만하지 않겠습니까? 만약에 저 교화가 해이하였으되 행해지지 아니하고, 풍속이 퇴폐하였으되 깨닫지 못한다면, 풍화(風化)는 벌써 잃어버렸고 유속(流俗)은 벌써 이루어진 것이니, 곧 간사한 것을 몰아내어 바른 데 돌리고 박한 것을 다스려서 후한 데에 돌리고자 하더라도 대개 또한 어려울 것이옵니다.
신 등이 그윽이 유속(流俗)의 폐단을 보건대, 예의와 염치가 없어진 지 이미 오래입니다. 평범한 사람은 그 몸을 사사로이 하고, 선비는 그 지킴을 잃어버려 자기의 몸을 안전하게 하고 직위를 보존하는 것을 어질게 여기고, 힘을 다하여 직분에 충실하는 것을 어리석게 여기며, 분경(奔競)으로써 진취하는 것을 능력으로 여기고, 염퇴(恬退)로써 스스로 지키는 것을 졸렬하다 하며, 각박함으로써 일을 판단하는 것을 재주가 있다고 여기고, 관후한 장자(長者)를 쓸모가 없게 여기면서, 이익이 되는 것을 보고 구차하게 얻었으되 사람들은 그르게 여기지 않으며, 공정한 것을 잊고 사사롭게 경영하였으되 마음에 부끄럽게 여기지 않으며, 감히 말하는 자를 이르되 광망(狂妄)하다 하고, 정론(正論)하는 자를 이르되 오활(迂闊)하다 하며, 서로 스승이라고 하는 것이 풍속을 이루었으나 금지할 수 없게 되었으니, 그렇게 된 원인은 육경(六經)으로 다스리고 교화를 닦고 밝혀서 힘쓰게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전하께서 임어(臨御)하심에 이르기를, ‘처음에 제일 먼저 풍화를 앞세우고 염치의 조행을 면려하고 예양하는 풍습을 돈독하게 하여 3대(三代)의 교화(敎化)를 회복하고자 한다.’ 하였으나, 그러나 조정에서 염치가 시행되지 않고 여항(閭巷)에서는 투박(偸薄)함이 날로 불어났으니, 이것은 교화하는 방술이 그 도를 다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신 등은 그윽이 옛적에 명왕의 다스림을 들었는데, 4경(四境)을 멀다고 하는 까닭으로 교화 받을 데는 오직 경사(京師)뿐이고, 일국을 크다고 하는 까닭으로 가지런히 할 데는 오직 집뿐이며, 만민을 많다고 하는 까닭으로 바르게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조정뿐이니, 조정이란 사방의 의표(儀表)입니다. 지금 사람마다 스스로 명절(名節)을 힘쓰고 좋게 여기게 하려면 조정에서 위에 충량(忠良)한 이를 올려 쓰고 부위(浮僞)한 이를 척퇴(斥退)시켜 청의(淸議)를 아래에서 솔선하게 하여 완둔(頑鈍)하고 행실이 없는 자는 진신(縉紳)의 반렬(班列)에 자취를 접할 수 없게 하여 친척은 그러한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향당에서는 천하게 여기게 하는 것만 같음이 없습니다. 이와 같이 하면 염치의 풍속이 이루어져서 절의(節義)가 일어날 것입니다. 따라서 표상하는 법전과 권려하는 술책을 거행하여 절의로써 알려진 이가 있으면 혹 정문 복호(旌門復戶)하며, 혹 차례가 아닌데도 발탁하게 하여 사람의 관청(觀聽)을 장려하게 하여 사방의 안으로 〈그러한 것을〉 영화스럽게 여겨 사모하게 하면 사람들이 스스로 분발할 것을 생각하여, 항상 높은 지조를 쌓아 자연히 원기가 성대하고 은연히 형상이 없는 데서 해(害)가 되는 오인을 방비함이 있을 것이니, 이것이 만세토록 태평하게 하는 기반(基盤)입니다.
상을 주어 공이 있는 이를 권장하고 형벌을 하여 조심하지 않는 이를 징계하는데, 상벌은 인주(人主)의 큰 권병(權柄)입니다. 인주가 상벌을 쓰는 것은 하늘이 만물을 살리고 죽이는 것과 같습니다. 하늘은 사사로움이 없으니 왕자도 또한 하늘이 사사로움이 없는 것을 본받아야 합니다. 어떤 것이 사사로움이 없느냐고 하면 상은 그 공에 상당하여야 하며 공이 없는 자는 함부로 받을 수가 없으며, 벌도 그 죄에 상당하여야 하고 죄가 있는 자는 구차히 면하지 못하게 할 것이니, 이와 같이 할 따름입니다. 옛적에 한 소후(韓昭侯)503) 는 명하여 찢어진 바지를 감추면서 말하기를, ‘내가 공이 있는 자를 기다린다.’ 하고, 우사(虞史)가 대순(大舜)을 찬(贊)하여 말하기를, ‘호종(怙終)504) 은 형벌하여 죽이며 고의로 지은 죄는 아무리 적더라도 형벌한다.’ 하였는데, 어찌 소후가 상을 내리는 데 인색하고 대순(大舜)이 어질지 않아서 그렇겠습니까? 진실로 하나라도 공이 없는데 상을 주게 되면 천하에 공이 없는 사람들이 모두 넘겨다 보는 마음이 있으므로 공이 있는 자가 저상(沮喪)당하는 것이 있고, 하나라도 적은 죄를 관용하게 되면 천하에 죄를 진 사람이 모두 구차히 면하려는 마음이 있어서 악한 짓을 저지른 자가 두려워할 데가 없습니다. 또 신자(臣子)가 나라를 위하여 몸을 바치는 것은 바로 경우를 따른 것입니다. 비록 힘줄이 끊어지고 뼈가 부서져 세상에 더 없는 공을 이루었다 하더라도 또한 분수 밖의 일이 아닙니다. 이렇다면 공을 반드시 상으로 내리는 것은 아니거늘, 하물며 상을 내리는 것을 함부로 하겠습니까? 대저 공의(公議)가 있는 곳에 사사로운 은혜로써 폐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옛적의 인군은 혹 눈물을 흘리면서 형벌을 논한 것이 있었으니 이것은 부득이한 것으로 어찌 사사가 용납되겠습니까? 상벌이 한 번 공정성을 잃으면 서정이 따라서 무너지는데, 경계하지 않겠습니까?
신 등이 가만히 국가의 상벌을 보건대, 혹 정당하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대저 한 사람이 범죄가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모두 그가 면하지 못할 것을 아는데, 유사(有司)가 장차 법으로 조치하여 얼마 가지 않아 타사(他司)로 옮겨 국문(鞫問)하게 되면 변하여 무죄한 사람이 되고, 한 사람이 면관(免官)에 연좌되면 많은 사람들은 모두 그가 다시 기용(起用)되지 못할 것을 아는데 겨우 기월(期月)을 지나면 죄한(罪限)이 이미 차서 갑자기 다시 서용하는 까닭으로, 죄가 있는 자가 요행히 복관(復官)되니 사람들을 징계하고자 하여도 또한 어렵지 않겠습니까? 국가가 대저 조그마한 공로가 있다 하여 갑자기 상전(賞典)을 베푸니, 이런 까닭으로 한 가지 일이 일어날 때마다 사람들이 분주하게 다투는데, 일찍이 손을 쓰지도 못하면서 벌써 상을 탐내는 마음을 품으니, 이것은 상이 착한 것을 권하는 것이 아니고 바로 악한 것을 자라게 하는 것입니다. 백성과 친한 직분은 수령만 한 것이 없습니다. 아름다운 공이 가장 많으면 마땅히 상을 내려 나타내어야 하는데, 오늘날을 보건대 마음 속으로 수고하면서 무육하고 사랑하며 청렴하고 결백함을 자수(自守)하여 권세에 의탁하지 않는 자는 으레 천직(遷職)하되 나타나게 발탁하지 않고, 백성을 다스림이 범류(凡流)를 벗어나지 못하되 인연으로 권세에 추부(趨附)하는 자는 드러나게 제수하여 심지어 인민의 힘을 빌려서 그 경내의 도적을 잡는 자가 모두 다른 상전(賞典)과 같이 적용하려 하니, 사람들을 권하고자 하여도 또한 어렵지 않겠습니까? 원컨대 전하는 하늘의 사사로움이 없음을 본받으시어 순(舜)임금의 어짊과 같이 하고 소후(昭侯)가 폐고(弊袴)를 감추어 공을 기다린 것을 헛되이 버리지 마시어, 상(賞)은 반드시 그 공에 상당하게 하고 벌은 반드시 그 죄에 상당하게 하여 공이 없는 자로 하여금 상을 받지 못하게 하면, 공이 있는 자는 반드시 말하기를, ‘중인은 받지 못하되 내가 홀로 받았으니, 이것은 인주(人主)가 나의 공을 아셨다.’ 하여 다시 힘을 다할 것이며, 사람이 그것을 보고 어찌 권면하지 않겠습니까? 죄가 있는 자를 구차히 면할 수 없게 하면, 사람들은 장차 말하기를, ‘저가 저와 같은 세력으로도 오히려 스스로 구원할 수 없는데, 하물며 나와 같은 자이겠느냐?’ 하면서 서로 더불어 죄를 멀리 하고 착한 데로 들어올 것입니다. 한 사람을 상주고 벌줌으로써 천만민을 권면하고 징계합니다. 권면하고 징계함이 시행되면 기강이 서고 기강이 서면 국가는 다스릴 것이 없습니다.
인재(人才)는 국가의 이로운 그릇입니다. 현명한 자가 지위에 있고 능력 있는 자가 직책에 있으면 인주가 비록 베개를 높이 베고 하는 것이 없더라도 일은 잘 다스려지고 정사도 잘 조화되며, 어질고 불초한 이가 섞여서 쓰고 버림이 전도(顚倒)되면 비록 형석정서(衡石程書)505) 를 하더라도 날로 겨를을 주지 않아 한갓 마음에 수고로울 뿐 다스리는 데는 보충함이 없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옛적의 제왕이 천하와 국가를 잘 다스린 자는 인재를 얻음으로써 기뻐하고 인재를 잃음으로써 근심을 하지 않음이 없어 어진이를 구하는 데 수고하고 어진이에게 위임하기를 편하게 여겼습니다. 자기를 공손히 하여 남면(南面)을 한 순(舜)임금은 어떻게 하였겠습니까? 어진이를 임용하면서 의심하지 않았을 따름입니다. 방가(邦家)를 편안하게 한 탕(湯)임금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어진 사람을 임용하여 자기가 본받을 따름입니다. 제제(濟濟)한 많은 선비를 문왕(文王)이 편안하게 하였으며, 어진이를 구하여 일을 결정한 성왕이 정사를 수립한 데 이르러서는 인재의 진퇴가 국가의 이란(理亂)을 결정한다는 것을 관찰하였습니다. 전하는 만 가지 기틀을 여정(勵精)하여 급하게 먼저 힘쓸 것을 아시고 일찍이 어진이를 올리고 불초한 이를 물리치지 않음이 없었는데, 어질고 어리석은 이가 혹 서로 섞이고 일찍이 백사(百司)를 위하여 택임(宅任)을 하지 않음이 없었으나 서사(庶事)가 혹 다스리지 않았으며, 일찍이 백성을 위하여 수령을 가리지 않음이 없었으나 혹 그 혜택을 입지 못한 자가 있으니, 대개 또한 아닌게 아니라 사람의 현우(賢愚)를 식별하는데 지극하게 못한 것도 있으며 사람을 등용하는데 적당하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신 등은 그윽이 생각하건대 국량(局量)이 적은 인재를 크게 등용할 수 없으며, 천리를 가는 준족(駿足)을 어찌 노둔한 말과 자취를 같이 할 수가 있겠습니까? 스스로 지위를 따라 차서(次序)대로 옮기는 법이 시행되면서부터 어질고 어리석은 이가 한 가지로 통하니, 어리석은 자가 하류(下流)에 머무는 것은 진실로 마땅한 것인데, 어찌 어질고 지혜로운 자의 유감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벼슬을 하는 자가 비록 특이한 능력이 없더라도 드러난 허물만 없으면 주견과 절개가 없이 나가고 물러나서 유유히 세월을 보내면서 아래로는 9품으로부터 위로는 3품까지 곧은 길이 되는 것처럼 보아, 거기에 이르는 것을 서서 기다리다가 만일 인연으로 끌어줄 세력이 있는 자는 그것을 인하여 혹 당상관(堂上官)에 이르는 자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질고 재주가 있는 자는 일을 보는데 날카롭지만 몸을 도모하는 데에는 졸렬하여, 혹 몹시 나쁜 직임에 제수하고 혹 언책(言責)으로 위임하여 일이 혹 위반되고 착오되든지 말이 혹 중도를 잃으면 관직을 파면하고 등급을 떨어뜨리어 쓸모 없는 곳에 배치하여 벌써 스스로 분진(憤振)할 수가 없게 되는데, 성상이 또 깨닫지 못하면 또한 말류(末流)에 빠지어 만나지 못하는 것으로 끝낼 따름입니다. 이와 같으면 재주없는 자가 도리어 편안함을 얻고 재주있는 자는 항상 그 몸을 들여 놓지 못합니다. 이렇게 하면서 조정이 다스려지고 모든 일이 정리(整理)되고자 하는 것은 바로 뒷걸음치면서 앞으로 가려는 것과 같습니다. 신 등은 생각건대 그 재행(才行)이 뛰어나고 특이한 자는 법에 구애하지 말고 차례가 아니더라도 임용하여 그의 능력을 다하게 하고, 겨우 몸을 붙여 살면서 구차하게 보전하려는 자는 그때 그때 도태(淘汰)하여 버리고 현명하고 능력있는 이를 대우하면 쓰고 버림이 정당하여 일이 다스려지지 않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전하는 일찍이 전조(銓曹)에 신칙하여 수령은 반드시 육조의 낭관(郞官)과 대간(臺諫)·제사(諸司)의 현능(賢能)한 자를 가리어 제수하게 하였는데, 일찍이 한 사람도 군현에 출재(出宰)한 이가 있지 않고, 간혹 임명된 자가 있으나 자기 의사에 하고 싶지 않으면 인연으로 아뢰어 반드시 면하려고 하여 갑이라는 자가 먼저 그렇게 하면 을이라는 자가 뒤를 쫓아 그렇게 하니, 조정의 명사(名士)를 주(州)·부(府)·군(郡)·현(縣)에 임명하려 하였으나 대개 많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이 하고서야 백성들이 그의 혜택을 입기를 바라지만 어찌 얻을 수 있겠습니까? 또 사람은 각각 능하고 능하지 못함이 있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더불어 도를 배우는 것은 가하지만 더불어 일을 의논하는 것은 불가하며, 내직에 처하게 함은 가하나 외직에 처하게 함은 불가하며, 조(趙)·위(魏)의 노인되기는 넉넉하나 등(滕)·설(薛)의 대부가 되는 것은 불가합니다. 그리고 재주는 한결같이 균평한 것이 아니고 쓰이는 것도 각각 같지 않으므로, 갖추어 거두고 아울러 쌓아서 그릇에 따라 임용하고 부리는 것이 성인(聖人)이 사람을 쓰는 방법입니다.
그윽이 국가에서 택인(宅人)하는 것을 보건대 모두 적당하게 임용하지 않은 성 싶습니다. 잠깐 그 한둘을 들어 말하겠습니다. 도총관(都摠管)의 위장(衛將)은 3군을 거느리고 병을 맡아 사졸의 이목(耳目)에 소속한 것이 되므로 용략(勇略)과 위중(威重)이 있어 사람이 바라보고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사졸을 진무하지 못합니다. 성균관(成均館)은 바로 사람을 가르치는 곳이니 늙은 스승과 학식과 덕망이 쌓인 선비가 박학(博學)하고 심문(審問)하지 않으면 그 직책을 맞추지 못합니다. 신 등은 그윽이 지금 총관의 위장(衛將)이 된 자를 보건대, 적당하고 아님을 묻지 않고서 예(例)에 행하지 못할 자를 바꾸어 제수하였으니, 갑자기 완급한 일이 있으면 장차 어떻게 쓰시겠습니까? 선비의 스승이 된 자는 비록 그 기록이 있더라도 차제(差除)하는 즈음에 혹 그 사람을 쓰지 않으니 후학을 열어 이익하게 하는 데에 장차 무엇으로 하겠습니까? 또 그에게 사람을 가르치게 하면 용렬하되 그에게 백성을 다스리게 하면 넉넉한 자가 있고, 군사를 거느리게 하면 맞지 않고 일을 맞기면 남음이 있는 자가 있습니다. 원컨대 전하는 자상하게 가리어서 심사하여 임용하고 군재(群才)와 중기(衆技)로 하여금 모두 그 돌아갈 데를 얻게 하여 각각 그 능함을 본받게 하면 임용하는 방책을 이에 얻을 것입니다.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인재는 지극히 많으니, 홀로 밝은 것으로 어찌 두루 비칠 수가 있습니까? 원컨대 전하는 공명하고 정대한 자를 가리어 전조(銓曹)를 위임하고 인물을 권형(權衡)하게 하며, 직언하고 숨김이 없는 자를 얻어 대간에 배치하여 비위를 규찰하면, 전조(銓曹)는 그 직책을 거행하고 대간(臺諫)은 그 책무를 다할 것이니, 이와 같이 하고서 나라가 다스려지지 않는 경우는 없습니다.
선유(先儒)가 불씨(佛氏)의 해로움을 논하기를, ‘양(楊)·묵(墨)506) 보다 심하다.’ 하였습니다. 양·묵의 해를 논한다면서 홍수와 이적과 난신적자를 열거하는데 이르니, 이렇다면 불씨의 해로움이 특별히 홍수와 이적의 유(類)가 아닙니다. 대저 홍수와 이적·난신적자는 요(堯)·순(舜)과 주공(周公)이 근심한 것입니다. 홍수와 이적의 해로움보다 심한데, 요·순·주공의 도를 하는 자들도 돌아보건대 높이고 섬기니, 또한 거기에 미혹됨이 심합니다. 동한(東漢)507) 이래로부터 고려[前朝]의 말엽까지 그 사이에 세상을 미혹하고 백성을 속이며 천하 국가를 그르친 자는 진실로 다 말할 수가 없습니다. 만일 이목이 미치는 것을 들어 말한다면 방금 백성들에게 해로움이 되어 크게 탄식하며 눈물을 흘릴 만한 것이 하나 둘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경작하지 않고서 먹으며 길쌈하지 않고서 입으며 몸의 백 가지 쓰임을 자뢰하는 것을 하나같이 넉넉히 우리 백성에게서 취하고, 화재(貨財)를 번식하여 부를 쌓고 전주(田疇)는 주현(州縣)보다 나으며 위적(委積)은 경지(京坻)와 같아 염산(斂散) 취식(取息)하여 침어(侵漁)를 자행하며 장가들고 첩을 사는 등 방정함이 거리낌없는 데 이르렀고, 우리 백성은 조강(糟糠)과 누더기를 얻어 배를 채우고 몸을 가리지 못하는 자가 있습니다. 경외의 사찰은 왕궁보다 사치하며 백사(百司)와 서부(庶府)보다 많고, 주·부·군·현의 수보다 배사(倍蓰)508) 나 되고 토목이 금옥을 입고 문수(文繡)를 입는데도 우리 백성은 오두막 집을 지어 풍우를 가리지 못하는 자가 있으니 크게 탄식할 만한 것은 이것입니다. 천당과 지옥의 설을 만들어 선(仙)은 높고 귀(鬼)는 낮다는 의논을 펴서 유속(流俗)을 고동(鼓動)시켜 어리석은 백성을 꾀어서 사람의 노비를 들이어서 부리고 사람의 자손을 몰아서 무리를 삼으니, 남무(南畝)의 백성들은 해를 마치도록 부지런히 노동하여도 기한(饑寒)을 면치 못하는데, 불씨의 무리들은 손을 놀리면서도 포식하는 것을 보고 이에 뇌사(耒耜)를 놓고서 귀의(歸依)합니다. 과갑(戈甲)의 병졸은 수어(戍禦)하는 데 신고(辛苦)하여도 일찍이 그 실가(室家)를 무휼할 수가 없는데, 불씨의 무리들이 몸을 마치도록 안일하는 것을 보고 이에 항오(行伍)를 벗어나서 의탁하여 숨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중의 무리는 날로 늘어나고 병농(兵農)은 더욱 적어집니다. 1부(夫)가 경작하여 수백 인이 먹고 1부(婦)가 양잠하여 수백 인이 입고 한 사람이 종군하여 수백 인이 한가하니, 농사가 어찌 고단하지 않으며 병사가 어찌 줄지 않겠습니까? 눈물을 흘릴 만한 것이 이것입니다.
근일의 일로써 보건대 흥천사(興天寺)의 기우제(祈雨祭)에 상을 준 것이 또 1백여 필(匹) 됩니다. 비를 비는 것은 본디 백성을 위한 것이고 불자(佛者)는 본시 백성을 해롭히는 자입니다. 부처를 부려서 비가 내릴 수 있게 한다 하더라도 반드시 우리 백성을 복되게 하는 것을 즐겨하지 않거든 하물며 그럴 수도 없는 것이겠습니까? 만일 비를 빌어 얻는다면 천지와 종사(宗社)의 신령께서 마땅히 먼저 도우셨을 것이니, 어찌 부처를 기다리겠습니까? 더구나 비가 넉넉히 촌토(寸土)에 들어가서 촌초(寸草)도 살리지 못하는 데 있어서이겠습니까? 1백여 필(匹)의 포목은 특별히 헛되이 베푸신 사사 은혜입니다. 포목 1백여 필이면 이것은 백성 열 집에서 똑같이 생산한 것이며 흉년 기세(凶年饑歲)에 넉넉히 열 집의 한 달간 생명을 살릴 것이온데 전하는 헛되이 버리시니, 비록 이루어진 일은 간(諫)하지 못한다고 하나 신 등은 그윽이 전하를 위하여 애석하게 여겨집니다. 옛적 성인은 이익이 없고 해로운 것은 더욱 만들지 않았습니다. 역대(歷代)를 상고하고 본조를 상고하여도 부처를 섬기는 것이 이익이 없다는 것은 장장(章章)하고 명심(明甚)하니, 요량컨대 또한 전하께서 통조(洞照)할 것입니다. 벌써 이익이 없다는 것을 알았으면, 무엇을 꺼리어 버리지 못합니까? 신 등은 생각건대 승도(僧徒)는 혁파(革罷)하여야 하며 시사(寺社)는 제거하여야 하고 그 전민(田民)은 다 몰수하여야 합니다. 만약 그 내력이 오래였다고 하여 다 혁파할 수 없으면, 아직은 마땅히 그 수를 덜어서 자만(滋蔓)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적합합니다. 신 등은 삼가 《대전(大典)》의 도승조(度僧條)를 안험(按驗)하건대, 중이 된 지 3개월 안에 양종(兩宗)509) 에 고하여 삼경(三經) 외우는 것을 시험하고 포목 30필을 수납하여야 바야흐로 도첩(度牒)을 발급하는데, 어기는 자와 알고서도 고발하지 않은 자는 문죄하였으며 도첩을 다른 사람에게 빌려 준 자도 논죄를 하였으니, 이것은 진실로 중을 감하려는 본뜻입니다. 그러나 승도(僧徒)가 법을 범하여도 유사(有司)가 어찌 거론할 수가 있으며 그 무리를 누가 고발할 수 있겠습니까? 이로 말미암아 중으로 도첩(度牒) 없는 자가 중외(中外)에 찼으니, 원컨대 안에는 헌부(憲府)에서, 밖에는 감사(監司)로 하여금 다 규찰하고 적발하게 하여, 도첩(度牒)이 없는 자는 속세(俗世)로 돌려보내고 만일 혹 탈출하여 숨었다가 뒤에 나타난 자는 중죄로써 더하고, 이와 같이 하면 거의 모람(冒濫)된 중은 감하여질 것이고 국가가 법을 세운 뜻을 얻을 것입니다.
신 등이 삼가 육전(六典)의 사사(寺社)의 정수조(定數條)를 안험(按驗)하니, 경외(京外)에 36사(寺)를 두어 양종(兩宗)에 나누어 예속하게 하였고, 따라서 전지(田地)를 주어 거주하는 중[僧]의 액수(額數)를 참작하여 정하고, 경외(京外)의 사사 노비(寺社奴婢)와 법손 노비(法孫奴婢)510) 는 아울러 모두 공가(公家)에 소속하게 되었습니다. 신 등도 또한 원컨대 이제 사사(寺社)를 작정(酌定)하여 모든 가람(伽藍)이라고 이름한 거찰(巨刹)과 능침(陵寢)의 재공(齋供)에 부득이한 자 외에는 아울러 파훼(破毁)하게 하고 액수(額數)를 정하여 수십 전지(田地)와 노비로 하며 능침의 재공(齋供)을 제하고 나머지는 다 공가(公家)에 소속하여 승도(僧徒)로 하여금 그것을 의뢰하여 방사하고 사치함이 없게 하소서. 이것이 조종(祖宗)의 입법한 본의(本意)이며 국가가 백성을 살리는 큰 다행이고 신 등의 지극한 소원입니다.
옛적에 한 무제(漢武帝)가 신공(申公)에게 다스리는 도를 물으니, 대답하기를, ‘정치를 하는 것은 말을 많이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고, 다만 힘써 시행하기를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하였습니다. 당시에 한(漢)나라 기업(基業)이 오래되지 않았고 제도(制度)를 초창(草創)하는 무렵이라 다스리는 방법에 어찌 말할 만한 것이 없었겠습니까? 신공(申公)은 당세의 명유(名儒)로서 속백(束帛)의 징소(徵召)에 응하여 일찍이 한 가지의 말도 하지 않더니, 당세의 힘쓸 것에 언급하여 반드시 힘써 시행하는데 급하다고 한 것은, 어찌 아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고 행하는 것이 오직 어렵다고 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무제(武帝)로 하여금 과연 힘써 행하는 임금이 되게 하였다면 동중서(董仲舒)의 3책(三策)으로써 한가(漢家)의 다스림을 이루고 남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침내 허원(虛遠)한 데에 미혹(迷惑)되고 과대(夸大)한 데 힘을 써 정치를 행한 것이 무제(武帝)가 되는 데 그쳤을 따름이니, 어찌 기쁘게 여기면서도 계속하지 않았고 따르면서도 고치지 않은 까닭이 아니겠습니까? 전하는 여러 번 구언(求言)하는 전교(傳敎)를 내리셨으며 군신(群臣)들은 자못 직언하는 방책을 올리었으니 진실로 생민의 복입니다. 그러나 그 청납(聽納)하여 쓰는 일은 제도 문식(制度文飾)의 말단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조정의 대정(大政)과 국가의 큰 폐단에 이르러서는 의논하는 자의 지론(持論)에 구애되어, 혹 정중(鄭重)하되 시행하는 데는 어렵고 혹 인순(因循)하여 개작(改作)하기를 꺼리므로 직언하는 선비가 비록 혹 있더라도 직언하는 계책은 마침내 시행할 수 없었습니다. 신 등은 그윽이 전하께서 구언하는 이름은 있어도 구언하는 사실이 없을까 두렵습니다. 원컨대 전하는 포황(包荒)하는 도량을 열고 빙하(馮河)할 수 있는 용맹을 쓰시어, 사람으로써 그 말을 폐지하지 말고 사사(私私)로써 그 공정된 것을 어지럽히지 마시며 인순(因循)한 데 익숙하지 말며, 범론(凡論)에 구애받지 마시어, 일이 진실로 마땅한 데 합하면 단연코 시행하소서. 신 등의 의논은 처음부터 고원(高遠)하고 시행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고 나라에 시행하면 진실로 대체(大體)에 관계되어 반드시 연애(涓埃)의 보탬이 있을 것이니, 엎드려 생각건대 전하께서는 특별히 보아 주소서."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7책 44권 18장 B면【국편영인본】 9책 125면
- 【분류】왕실-행행(行幸) / 왕실-국왕(國王) / 역사-고사(故事) / 과학-천기(天氣) / 농업-전제(田制) / 사법-법제(法制) / 신분-천인(賤人) / 정론-정론(政論)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사상-불교(佛敎)
- [註 502] 죄기(罪己) : 자기 자신을 꾸짖음.
- [註 503] 한 소후(韓昭侯) : 전국 시대 한(韓)나라 애후(哀侯)의 손자로, 신불해(申不害)를 정승으로 삼아 술수를 닦고 도(道)를 행하더니, 국내가 다스려져 제후들이 감히 침범하지 못하였으며 위에 있은 지 26년에 졸(卒)하였음.
- [註 504] 호종(怙終) : 믿는 데가 있어 재차 죄를 범하는 사람을 말함.
- [註 505] 형석정서(衡石程書) : 상주(上奏)한 서류의 중량(重量)으로 일과(日課)를 정한다는 뜻으로, 형(衡)은 저울대이며 석(石)은 저울추임.
- [註 506] 양(楊)·묵(墨) : 양주(楊朱)와 묵적(墨翟). 양주는 위아설(爲我說)·이기주의(利己主義), 묵적은 겸애설(兼愛說)을 주장하였음.
- [註 507] 동한(東漢) : 후한(後漢) 25∼220년.
- [註 508] 배사(倍蓰) : 여러 갑절.
- [註 509] 양종(兩宗) : 교종(敎宗)에 속하는 계율종·법상종·열반종·법성종·원융종의 5교와 선종(禪宗)의 조계종·천태종의 양종을 합하여 5교 양종이라 함. 뒤에 5교는 각각 남산종·자은종·시홍종·중도종·화엄종으로 불리게 되고 조선초의 억불 정책에 의하여 태종 때에 5교 양종은 선(禪)·교(敎)로 나뉨.
- [註 510] 법손 노비(法孫奴婢) : 사사(寺社)의 노비로서 승려가 승려에게 전하여 주던 노비를 말함. 법손(法孫)은 불가(佛家)에서 후계(後繼) 승려를 가리키는 말인데, 조선조에서는 억불 정책(抑佛政策)을 취하여 법손 노비를 인정하지 않고 모두 속공(屬公)시켰음.
원문
○藝文館副提學任士洪等上疏曰:
伏覩殿下近因旱暵, 痛自刻責, 避殿減膳, 憂勞宵旰, 至下御(扎)〔札〕 以求直言, 雖商湯之罪己, 周宣之側身, 無以加也。 臣等具位侍從之聯, 仰察殿下之用心審矣。 以臣等窺之, 人事誠無所不至。 然而天災不息, 美祥莫臻, 豈天仁愛殿下, 使動心忍性, 增益其所不能也耶? 而四方之廣, 庶政之繁, 其或一二之可言者, 又焉能保其必無也? 但以謂某事之得而某休徵應之, 某事之失而某咎徵應之, 則先儒以爲鑿矣。 臣等亦豈敢妄度天道, 而執以爲說哉? 謹擧其有關於治道者, 爲殿下陳之。 臣等竊謂, 六卿之治, 貴於未然, 王者之政, 務修其本。 是故明智君子, 非國家不治之患, 而惟風俗不正之患, 非風俗不正之患, 而惟敎化無素之患。 敎化素明, 則人心自正, 禮義廉恥夙成, 士君子之行, 而閭巷之民染, 而皆孝悌忠信之歸。 其植本固其發源深, 爲益之大收功之遠, 豈可量哉? 若夫敎弛而不行, 俗廢而不悟, 至於風化已失, 流俗已成, 乃欲驅邪而反正, 導薄而歸厚, 蓋亦難矣。 臣等竊觀流俗之弊, 禮義廉恥喪已久矣。 人私其身, 士失其守, 以全身保位爲賢, 以竭力供職爲愚, 以奔競進取爲能, 以恬退自守爲拙, 以刻薄辦事爲有才, 以寬厚長者爲無用, 見利苟得而人不以爲非, 忘公營私而心不以爲愧, 敢言者謂之狂妄, 正論者謂之迂闊, 相師成風莫可禁止, 原其所以, 由無六經之治, 修明敎化以勵之耳。 殿下臨御云: "初首先風化, 勵廉恥之操, 敦禮讓之風, 欲復三代之敎化", 然而朝廷之上, 廉恥不行, 閭巷之間, 偸薄日滋, 是則化之之術, 未能盡其道也。 臣等竊聞古昔明王之治也, 以四境爲遠, 故所化者惟京師, 以一國爲大, 故所齊者惟其家, 以萬民爲衆, 故可正者惟朝廷, 朝廷者四方之儀表也。 今欲使人人自好砥礪名節, 則莫如朝廷之上, 進用忠良, 斥退浮僞, 唱淸議於下, 其有頑鈍無行者, 使不得接迹於縉紳之列, 親戚羞之, 鄕黨賤之。 如是則廉恥之俗成而節義興矣。 從而擧褒賞之典, 行勸勵之術, 其有以節義聞者, 或旌門復戶, 或不次拔擢, 有以聳人之觀聽, 使四方之內, 榮而慕之, 人思自奮, 常蓄風操, 自然元氣盛大, 隱然有無形之設險, 此萬世太平之基也。 賞以勸有功, 刑以懲不恪, 賞罰人主之大柄也。 人主之用賞罰, 猶天之生殺萬物也。 天無私, 王者亦體天之無私耳。 何謂無私, 賞當其功, 無功者不得濫受, 罰當其罪, 有罪者不得苟免, 如斯而已。 昔韓昭侯命藏弊袴曰: "吾以待有功者", 虞史之贊大舜曰: "怙終賊刑, 刑故無小", 豈昭侯吝賞而大舜不仁哉? 誠以賜一無功, 則天下無功之人, 皆有覬覦之心, 而有功者有所沮, 寬一小罪, 則天下負罪之人, 皆有苟免之心, 而爲惡者無所懼。 且臣子爲國致身, 乃其所也。 雖絶筋破骨, 成不世之功, 亦非分外之事。 是則功不必賞也, 況賞之濫乎? 大抵公義之所在, 有不可以私恩廢之者。 是故古之人君, 或有垂涕而論刑者, 是則刑不得已焉耳, 容何私乎? 賞罰一失, 而庶政隨以隳, 可不戒哉? 臣等竊觀國家賞罰, 或有所未當也。 夫一人有犯, 衆人皆知其不免, 有司將置之於法, 未幾移鞫他司, 則變而爲無罪之人, 一人坐免, 衆人皆知其不能復起也, 纔閱期月, 則曰 罪限已滿, 輒復敍用, 故有罪者僥倖以復官, 欲人之有所懲, 不亦難乎? 國家凡有微勞, 輒施賞典, 是故每一事之興, 人爭奔走, 曾未下手, 已懷利賞之心, 是則賞非勸善, 乃所以長惡也。 親民之職, 莫如守令。 美功最績, 所宜顯賞, 以今觀之, 心勞撫字而廉靜自守, 不托權勢者, 例遷而不加顯擢, 其治民無出凡流, 而夤緣趨附者, 類加顯授, 至如藉其人民之力, 捕其境內之盜者, 亦皆擬諸賞典, 欲人之有所勸, 不亦難乎? 願殿下法天無私, 如舜之仁, 勿虛棄昭侯之袴, 賞必當其功, 罰必當其罪, 使無功者不得與賞, 則有功者必曰: "衆人不得而我獨得之, 是人主知我之功矣", 更竭其力, 人之見之者, 又豈不勸乎? 有罪者不得苟免, 則人將曰: "彼與彼其勢, 尙不能以自救, 況如我者哉?" 相與遠罪而入於善矣。 賞罰一人而千萬人勸懲。 勸懲行而紀綱立, 紀綱立而國家不足治也。 人才國家之利器也。 賢者在位, 能者在職, 則人主雖高枕無爲, 而事無有不理, 政無有不和, 賢不肖混而用舍顚倒, 則雖衡石程書, 日不暇給, 而徒勞於心, 無補於治。 是故古昔帝王, 善爲天下國家者, 莫不以得人爲喜, 失人爲憂, 勞於求賢, 逸於任賢。 恭己南面舜何以也? 任賢勿貳而已。 輯寧邦家湯何以也? 用人由己而已。 至於濟濟多士, 文王以寧, 籲俊宅事成王立政, 觀於人才之進退, 而國家之理亂定矣。 殿下勵精萬機, 急先務之知, 未嘗不進賢退不肖, 而賢愚或相混, 未嘗不爲百司宅任, 而庶事或不理, 未嘗不爲民擇守令, 而民或不被其澤者, 蓋亦未嘗不由知人之有所未至, 用人之有所未當也。 臣等竊惟, 斗筲之器, 不可以大授, 千里之足, 豈可以與駑駘竝跡? 自循資序遷之法行, 而賢愚共貫, 愚者之淹於下流, 固其宜也, 豈非賢知之憾歟? 今之爲仕者, 雖無異能, 苟無顯過, 則旅進旅退, 悠悠歲月, 下自九品上至三品, 視爲直路, 其至也可立而待, 如有援緣之勢者, 因而或至於堂上官者有之。 其賢而才者, 銳於見事, 拙於謀身, 或授之以劇任, 或寄之以言責, 事或違誤, 言或失中, 免官貶秩, 置之於無用之地, 旣無以自振, 聖上又不悟, 則亦沈於末流, 終於不遇而已。 如是則無才者反以得安, 而有才者常不容其身矣。 如是而欲朝廷之治, 庶事之理, 正猶却步而求前也。 臣等謂其有才行茂異者, 勿拘於法, 不次用之以盡其能, 其容身苟全者, 時乎汰去以待賢能, 則用舍當而事無不理矣。 殿下嘗勅銓曹, 守令必以六曹郞官、臺諫、諸司擇賢能者授之, 而曾未有一人出宰郡縣, 間有差除者, 非所意欲, 則因緣啓請, 期於必免, 甲者先之而乙者踵之, 求朝廷名士於州、府、郡、縣, 蓋不多見。 如是而望民之被其澤, 豈可得也? 且人各有能不能, 是故可與學道, 未可與議事, 可使處內, 不可使處外, 優於趙、魏老, 不可以爲滕、薛大夫。 才非一槪, 用各不同, 俱收竝蓄, 隨器任使, 此聖人用人之方也。 竊觀國家之宅人, 恐未盡適用也。 姑擧其一二言之。 都摠管衛將將三軍典五兵, 爲士卒耳目之所屬, 則非有勇略威重, 人望而畏之者, 莫以鎭撫士卒也。 成均館乃敎人之地, 非老師宿儒博學審問, 莫以稱其職也。 臣等竊觀今之爲摠管衛將者, 不問當否, 而例以未行者迭授之, 卒有緩急, 將何用哉? 爲師儒者, 雖有其錄, 而差除之際, 或不以其人, 其於開益後學, 將何以哉? 且有使之敎人則劣, 而使之臨民則優者有, 以之將軍則不稱, 而以之任事則有餘者。 願殿下詳擇而審用之, 使群才衆技, 咸得其歸, 各効乃能, 任用之方, 於斯得矣。 雖然人才至衆, 獨明豈能遍照? 願殿下擇公明正大者, 委之銓曹以權衡人物, 得直言無隱者, 置之臺諫以糾察非違, 銓曹擧其職, 臺諫盡其責, 如是而國不理者, 未之有也。 先儒論佛氏之害曰: "甚於楊、墨。" 論楊、墨之害, 則至列於洪水、夷狄、亂臣賊子, 是則佛氏之害, 非特洪水ㆍ夷狄之類也。 夫洪水、夷狄、亂臣賊子, 堯、舜、周孔之所患也。 以甚於洪水、夷狄之害, 而爲堯、舜、周孔之道者, 顧乃尊而事之, 亦惑之甚矣。 自東漢以來至於前朝之季, 其間惑世誣民誤天下國家者, 固不可勝言也。 如卽其耳目所及而言之, 方今爲民之害, 可爲太息流涕者, 非止一二。 不耕而食, 不織而衣, 資身百用, 一取足於吾民, 蕃貨財富畜産, 田疇跨州縣, 委積如京坻, 至於斂散取息, 恣行侵漁, 娶妻買妾, 放縱無忌, 吾民有不得糟糠藍縷以實腹蔽體者焉。 京外寺刹, 侈於王宮, 多於百司庶府, 倍蓰於州、府、郡、縣之數, 土木被金玉衣文繡, 而吾民有不得就廬而庇風雨者焉, 可謂太息者此也。 造天堂地獄之說, 肆高仙下鬼之論, 皷動流俗, 誘怵愚民, 納人臧獲以爲之使, 驅人子孫以爲之徒, 南畝之民, 終歲勤動, 不免飢寒, 而見佛氏之徒遊手飽食, 則於是乎釋耒耜而歸依焉。 戈甲之卒, 辛苦戍禦, 曾未得撫其室家, 而見佛氏之徒終身安逸, 則於是乎脫行伍而投匿焉。 是故僧徒日衆, 兵農益少。 一夫耕而數百人食之, 一婦蠶而數百人衣之, 一人從軍而數百人閑焉, 農何不爲困, 兵何不爲縮歟? 可爲流涕者此也。 以近日之事觀之, 興天禱雨行賞, 且百有餘匹。 禱雨本爲民也, 佛者本害民者也。 使佛而能雨, 必不肯福吾民矣, 況不能乎? 如禱雨得雨, 天地宗社之靈, 當先右之, 奚待於佛? 況雨不足以入寸土活寸草乎? 百餘匹之布, 特虛施之私恩也。 布百餘匹, 則是齊民十家之産也, 凶年饑歲, 足以活十家一月之命, 而殿下虛棄之, 雖遂事不諫, 臣等竊爲殿下惜之。 古之聖人, 不作無益害有益。 稽之歷代, 考之本朝, 事佛之無益, 章章明甚, 諒亦殿下之所洞照也。 旣知無益, 則何憚而不能去也? 臣等謂僧徒可革也, 寺社可去也, 其田民可盡收也。 若曰 其來久矣, 不可盡革, 則姑宜損減其數, 無使滋蔓。 臣等謹按《大典》度僧條云, 爲僧三月之內, 告兩宗試誦三經, 收布三十匹, 方給度牒, 違者及知而不告罪之, 借與人度牒者論之, 此實減僧之本意也。 然僧徒犯法, 有司何能擧之, 其徒誰能告之? 由是僧無度牒者, 溢于中外, 願令內而憲府, 外而監司, 盡行糾擧, 其無度牒者, 歸之於俗, 如或脫匿而後現者, 加以重罪, 如是則庶幾冒濫之僧減, 而國家立法之意得矣。 臣等謹按《續六典》寺社定數條云, 京外置三十六寺, 分隷兩宗, 仍給田地, 酌定居僧之額, 京外寺社奴婢及法孫奴婢, 竝皆屬公。 臣等亦願, 今酌定寺社, 凡諸名藍巨刹及陵寢齋供不得已者外, 竝令破毁, 定額數十田地奴婢(余)〔除〕 陵寢齋供, 餘悉屬公, 無使僧徒藉以肆侈。 是祖宗立法之本意也, 國家生民之大幸也, 臣等之至願也。 昔漢 武帝問申公以治道, 對曰: "爲治不在多言, 顧力行如何耳。" 于時漢業未久, 制度草創, 其於治道, 豈無可言者? 申公以當世名儒, 應束帛之徵, 未嘗有一語, 及當世之務, 而必急於力行者, 豈不曰 非知之艱, 行之惟艱乎? 使武帝果爲力行之主, 則仲舒三策, 以之成漢家之治而有餘矣。 卒乃惑於虛遠, 務於夸大, 其爲治也, 止爲武帝而已, 則豈非悅而不繹, 從而不改之故也? 殿下屢下求言之敎, 群臣頗進直言之策, 實生民福也。 然其聽用之事, 不過制度文爲之末耳。 至於朝廷大政國家巨弊, 則拘於議者之持論, 或鄭重而難於施行, 或因循而憚於改作, 直言之士雖或有之, 直言之策竟不得行。 臣等竊恐殿下有求言之名, 而無求言之實也。 願殿下開包荒之量, 用馮河之勇, 勿以人而廢其言, 勿以私而撓其公, 勿狃於因循, 勿拘於凡論, 事苟合宜, 斷而行之。 臣等之論, 初非高遠難行之事而施之於國, 則實關大體, 必有涓埃之補, 伏惟殿下特賜垂覽焉。
成宗康靖大王實錄卷第四十四終
- 【태백산사고본】 7책 44권 18장 B면【국편영인본】 9책 125면
- 【분류】왕실-행행(行幸) / 왕실-국왕(國王) / 역사-고사(故事) / 과학-천기(天氣) / 농업-전제(田制) / 사법-법제(法制) / 신분-천인(賤人) / 정론-정론(政論)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사상-불교(佛敎)
성종실록44권, 성종 5년 윤6월 30일 癸丑 5/5 기사 / 1474년 명 성화(成化) 10년
치도와 승도의 혁파·풍속 교화·불교의 해로움 등에 관한 임사홍 등의 상소문
국역
예문관 부제학(藝文館副提學) 임사홍(任士洪) 등이 상소하기를,
"엎드려 보건대 전하께서는 근일에 한한(旱暵)으로 인하여 통절히 스스로를 각책(刻責)하시어, 내전을 피하고 어선(御膳)을 감하시며 소간(宵旰)으로 우로(憂勞)하시고, 어찰(御札)을 내리어 구언(求言)하는 데 이르렀으니, 비록 상(商)나라 탕(湯)임금의 죄기(罪己)502) 와 주(周)나라 선왕(宣王)의 측신(側身)도 이 보다 더함이 없을 것입니다. 신 등은 나란히 시종(侍從)하는 지위에 있으므로, 전하(殿下)의 마음 쓰심을 우러러 살펴서 잘 압니다. 신 등이 보건대 인사(人事)는 정성스러우면 이르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천재(天災)가 그치지 않고 아름다운 상서(祥瑞)가 이르지 않으니, 어찌 하늘이 전하를 인애(仁愛)하여 마음을 움직이고 성질을 참게 하여 능란하지 못한 것을 채워 주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방이 광활하고 서정(庶政)이 번거로우니, 혹 한두 가지의 말할 만한 것이 어떻게 반드시 없다고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이르되 아무 일을 얻었으니 아무 것의 아름다운 징조가 응하였고 아무 일은 잘못하였으니 아무 것의 잘못된 징조가 응하였다고 한다면, 이것은 선유(先儒)들의 천착(穿鑿)함이라고 여겨집니다. 신 등이 또한 어찌 감히 망령되이 천도(天道)를 헤아려서 고집하여 말하겠습니까?
삼가 치도(治道)에 관계가 있는 것을 들어서 전하께 진달합니다. 신 등은 그윽이 생각건대 육경(六卿)의 다스림은 미연(未然)을 귀하게 여기고 왕자(王者)의 정치는 근본을 닦는 데 힘써야 합니다. 이런 까닭으로 명지(明智)한 군자는 국가가 다스리지 않는 것을 근심하지 않고 오직 풍속이 바르지 못한 것을 근심하며, 또 풍속이 바르지 못한 것을 근심하는 것이 아니고 오직 교화가 바탕이 없는 것을 근심합니다. 교화가 바탕이 밝으면 인심이 스스로 바르고 예의와 염치가 일찍 이루어져, 사(士)·군자(君子)가 행동함에 여항(閭巷)의 백성들이 전염되어 모두 효제(孝悌)하고 충신한 데로 돌아갑니다. 그 심은 근본이 견고하면 그 발원함이 깊어 더욱 크게 되고 공을 거둠이 원대할 것이니, 어찌 헤아릴 만하지 않겠습니까? 만약에 저 교화가 해이하였으되 행해지지 아니하고, 풍속이 퇴폐하였으되 깨닫지 못한다면, 풍화(風化)는 벌써 잃어버렸고 유속(流俗)은 벌써 이루어진 것이니, 곧 간사한 것을 몰아내어 바른 데 돌리고 박한 것을 다스려서 후한 데에 돌리고자 하더라도 대개 또한 어려울 것이옵니다.
신 등이 그윽이 유속(流俗)의 폐단을 보건대, 예의와 염치가 없어진 지 이미 오래입니다. 평범한 사람은 그 몸을 사사로이 하고, 선비는 그 지킴을 잃어버려 자기의 몸을 안전하게 하고 직위를 보존하는 것을 어질게 여기고, 힘을 다하여 직분에 충실하는 것을 어리석게 여기며, 분경(奔競)으로써 진취하는 것을 능력으로 여기고, 염퇴(恬退)로써 스스로 지키는 것을 졸렬하다 하며, 각박함으로써 일을 판단하는 것을 재주가 있다고 여기고, 관후한 장자(長者)를 쓸모가 없게 여기면서, 이익이 되는 것을 보고 구차하게 얻었으되 사람들은 그르게 여기지 않으며, 공정한 것을 잊고 사사롭게 경영하였으되 마음에 부끄럽게 여기지 않으며, 감히 말하는 자를 이르되 광망(狂妄)하다 하고, 정론(正論)하는 자를 이르되 오활(迂闊)하다 하며, 서로 스승이라고 하는 것이 풍속을 이루었으나 금지할 수 없게 되었으니, 그렇게 된 원인은 육경(六經)으로 다스리고 교화를 닦고 밝혀서 힘쓰게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전하께서 임어(臨御)하심에 이르기를, ‘처음에 제일 먼저 풍화를 앞세우고 염치의 조행을 면려하고 예양하는 풍습을 돈독하게 하여 3대(三代)의 교화(敎化)를 회복하고자 한다.’ 하였으나, 그러나 조정에서 염치가 시행되지 않고 여항(閭巷)에서는 투박(偸薄)함이 날로 불어났으니, 이것은 교화하는 방술이 그 도를 다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신 등은 그윽이 옛적에 명왕의 다스림을 들었는데, 4경(四境)을 멀다고 하는 까닭으로 교화 받을 데는 오직 경사(京師)뿐이고, 일국을 크다고 하는 까닭으로 가지런히 할 데는 오직 집뿐이며, 만민을 많다고 하는 까닭으로 바르게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조정뿐이니, 조정이란 사방의 의표(儀表)입니다. 지금 사람마다 스스로 명절(名節)을 힘쓰고 좋게 여기게 하려면 조정에서 위에 충량(忠良)한 이를 올려 쓰고 부위(浮僞)한 이를 척퇴(斥退)시켜 청의(淸議)를 아래에서 솔선하게 하여 완둔(頑鈍)하고 행실이 없는 자는 진신(縉紳)의 반렬(班列)에 자취를 접할 수 없게 하여 친척은 그러한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향당에서는 천하게 여기게 하는 것만 같음이 없습니다. 이와 같이 하면 염치의 풍속이 이루어져서 절의(節義)가 일어날 것입니다. 따라서 표상하는 법전과 권려하는 술책을 거행하여 절의로써 알려진 이가 있으면 혹 정문 복호(旌門復戶)하며, 혹 차례가 아닌데도 발탁하게 하여 사람의 관청(觀聽)을 장려하게 하여 사방의 안으로 〈그러한 것을〉 영화스럽게 여겨 사모하게 하면 사람들이 스스로 분발할 것을 생각하여, 항상 높은 지조를 쌓아 자연히 원기가 성대하고 은연히 형상이 없는 데서 해(害)가 되는 오인을 방비함이 있을 것이니, 이것이 만세토록 태평하게 하는 기반(基盤)입니다.
상을 주어 공이 있는 이를 권장하고 형벌을 하여 조심하지 않는 이를 징계하는데, 상벌은 인주(人主)의 큰 권병(權柄)입니다. 인주가 상벌을 쓰는 것은 하늘이 만물을 살리고 죽이는 것과 같습니다. 하늘은 사사로움이 없으니 왕자도 또한 하늘이 사사로움이 없는 것을 본받아야 합니다. 어떤 것이 사사로움이 없느냐고 하면 상은 그 공에 상당하여야 하며 공이 없는 자는 함부로 받을 수가 없으며, 벌도 그 죄에 상당하여야 하고 죄가 있는 자는 구차히 면하지 못하게 할 것이니, 이와 같이 할 따름입니다. 옛적에 한 소후(韓昭侯)503) 는 명하여 찢어진 바지를 감추면서 말하기를, ‘내가 공이 있는 자를 기다린다.’ 하고, 우사(虞史)가 대순(大舜)을 찬(贊)하여 말하기를, ‘호종(怙終)504) 은 형벌하여 죽이며 고의로 지은 죄는 아무리 적더라도 형벌한다.’ 하였는데, 어찌 소후가 상을 내리는 데 인색하고 대순(大舜)이 어질지 않아서 그렇겠습니까? 진실로 하나라도 공이 없는데 상을 주게 되면 천하에 공이 없는 사람들이 모두 넘겨다 보는 마음이 있으므로 공이 있는 자가 저상(沮喪)당하는 것이 있고, 하나라도 적은 죄를 관용하게 되면 천하에 죄를 진 사람이 모두 구차히 면하려는 마음이 있어서 악한 짓을 저지른 자가 두려워할 데가 없습니다. 또 신자(臣子)가 나라를 위하여 몸을 바치는 것은 바로 경우를 따른 것입니다. 비록 힘줄이 끊어지고 뼈가 부서져 세상에 더 없는 공을 이루었다 하더라도 또한 분수 밖의 일이 아닙니다. 이렇다면 공을 반드시 상으로 내리는 것은 아니거늘, 하물며 상을 내리는 것을 함부로 하겠습니까? 대저 공의(公議)가 있는 곳에 사사로운 은혜로써 폐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옛적의 인군은 혹 눈물을 흘리면서 형벌을 논한 것이 있었으니 이것은 부득이한 것으로 어찌 사사가 용납되겠습니까? 상벌이 한 번 공정성을 잃으면 서정이 따라서 무너지는데, 경계하지 않겠습니까?
신 등이 가만히 국가의 상벌을 보건대, 혹 정당하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대저 한 사람이 범죄가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모두 그가 면하지 못할 것을 아는데, 유사(有司)가 장차 법으로 조치하여 얼마 가지 않아 타사(他司)로 옮겨 국문(鞫問)하게 되면 변하여 무죄한 사람이 되고, 한 사람이 면관(免官)에 연좌되면 많은 사람들은 모두 그가 다시 기용(起用)되지 못할 것을 아는데 겨우 기월(期月)을 지나면 죄한(罪限)이 이미 차서 갑자기 다시 서용하는 까닭으로, 죄가 있는 자가 요행히 복관(復官)되니 사람들을 징계하고자 하여도 또한 어렵지 않겠습니까? 국가가 대저 조그마한 공로가 있다 하여 갑자기 상전(賞典)을 베푸니, 이런 까닭으로 한 가지 일이 일어날 때마다 사람들이 분주하게 다투는데, 일찍이 손을 쓰지도 못하면서 벌써 상을 탐내는 마음을 품으니, 이것은 상이 착한 것을 권하는 것이 아니고 바로 악한 것을 자라게 하는 것입니다. 백성과 친한 직분은 수령만 한 것이 없습니다. 아름다운 공이 가장 많으면 마땅히 상을 내려 나타내어야 하는데, 오늘날을 보건대 마음 속으로 수고하면서 무육하고 사랑하며 청렴하고 결백함을 자수(自守)하여 권세에 의탁하지 않는 자는 으레 천직(遷職)하되 나타나게 발탁하지 않고, 백성을 다스림이 범류(凡流)를 벗어나지 못하되 인연으로 권세에 추부(趨附)하는 자는 드러나게 제수하여 심지어 인민의 힘을 빌려서 그 경내의 도적을 잡는 자가 모두 다른 상전(賞典)과 같이 적용하려 하니, 사람들을 권하고자 하여도 또한 어렵지 않겠습니까? 원컨대 전하는 하늘의 사사로움이 없음을 본받으시어 순(舜)임금의 어짊과 같이 하고 소후(昭侯)가 폐고(弊袴)를 감추어 공을 기다린 것을 헛되이 버리지 마시어, 상(賞)은 반드시 그 공에 상당하게 하고 벌은 반드시 그 죄에 상당하게 하여 공이 없는 자로 하여금 상을 받지 못하게 하면, 공이 있는 자는 반드시 말하기를, ‘중인은 받지 못하되 내가 홀로 받았으니, 이것은 인주(人主)가 나의 공을 아셨다.’ 하여 다시 힘을 다할 것이며, 사람이 그것을 보고 어찌 권면하지 않겠습니까? 죄가 있는 자를 구차히 면할 수 없게 하면, 사람들은 장차 말하기를, ‘저가 저와 같은 세력으로도 오히려 스스로 구원할 수 없는데, 하물며 나와 같은 자이겠느냐?’ 하면서 서로 더불어 죄를 멀리 하고 착한 데로 들어올 것입니다. 한 사람을 상주고 벌줌으로써 천만민을 권면하고 징계합니다. 권면하고 징계함이 시행되면 기강이 서고 기강이 서면 국가는 다스릴 것이 없습니다.
인재(人才)는 국가의 이로운 그릇입니다. 현명한 자가 지위에 있고 능력 있는 자가 직책에 있으면 인주가 비록 베개를 높이 베고 하는 것이 없더라도 일은 잘 다스려지고 정사도 잘 조화되며, 어질고 불초한 이가 섞여서 쓰고 버림이 전도(顚倒)되면 비록 형석정서(衡石程書)505) 를 하더라도 날로 겨를을 주지 않아 한갓 마음에 수고로울 뿐 다스리는 데는 보충함이 없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옛적의 제왕이 천하와 국가를 잘 다스린 자는 인재를 얻음으로써 기뻐하고 인재를 잃음으로써 근심을 하지 않음이 없어 어진이를 구하는 데 수고하고 어진이에게 위임하기를 편하게 여겼습니다. 자기를 공손히 하여 남면(南面)을 한 순(舜)임금은 어떻게 하였겠습니까? 어진이를 임용하면서 의심하지 않았을 따름입니다. 방가(邦家)를 편안하게 한 탕(湯)임금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어진 사람을 임용하여 자기가 본받을 따름입니다. 제제(濟濟)한 많은 선비를 문왕(文王)이 편안하게 하였으며, 어진이를 구하여 일을 결정한 성왕이 정사를 수립한 데 이르러서는 인재의 진퇴가 국가의 이란(理亂)을 결정한다는 것을 관찰하였습니다. 전하는 만 가지 기틀을 여정(勵精)하여 급하게 먼저 힘쓸 것을 아시고 일찍이 어진이를 올리고 불초한 이를 물리치지 않음이 없었는데, 어질고 어리석은 이가 혹 서로 섞이고 일찍이 백사(百司)를 위하여 택임(宅任)을 하지 않음이 없었으나 서사(庶事)가 혹 다스리지 않았으며, 일찍이 백성을 위하여 수령을 가리지 않음이 없었으나 혹 그 혜택을 입지 못한 자가 있으니, 대개 또한 아닌게 아니라 사람의 현우(賢愚)를 식별하는데 지극하게 못한 것도 있으며 사람을 등용하는데 적당하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신 등은 그윽이 생각하건대 국량(局量)이 적은 인재를 크게 등용할 수 없으며, 천리를 가는 준족(駿足)을 어찌 노둔한 말과 자취를 같이 할 수가 있겠습니까? 스스로 지위를 따라 차서(次序)대로 옮기는 법이 시행되면서부터 어질고 어리석은 이가 한 가지로 통하니, 어리석은 자가 하류(下流)에 머무는 것은 진실로 마땅한 것인데, 어찌 어질고 지혜로운 자의 유감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벼슬을 하는 자가 비록 특이한 능력이 없더라도 드러난 허물만 없으면 주견과 절개가 없이 나가고 물러나서 유유히 세월을 보내면서 아래로는 9품으로부터 위로는 3품까지 곧은 길이 되는 것처럼 보아, 거기에 이르는 것을 서서 기다리다가 만일 인연으로 끌어줄 세력이 있는 자는 그것을 인하여 혹 당상관(堂上官)에 이르는 자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질고 재주가 있는 자는 일을 보는데 날카롭지만 몸을 도모하는 데에는 졸렬하여, 혹 몹시 나쁜 직임에 제수하고 혹 언책(言責)으로 위임하여 일이 혹 위반되고 착오되든지 말이 혹 중도를 잃으면 관직을 파면하고 등급을 떨어뜨리어 쓸모 없는 곳에 배치하여 벌써 스스로 분진(憤振)할 수가 없게 되는데, 성상이 또 깨닫지 못하면 또한 말류(末流)에 빠지어 만나지 못하는 것으로 끝낼 따름입니다. 이와 같으면 재주없는 자가 도리어 편안함을 얻고 재주있는 자는 항상 그 몸을 들여 놓지 못합니다. 이렇게 하면서 조정이 다스려지고 모든 일이 정리(整理)되고자 하는 것은 바로 뒷걸음치면서 앞으로 가려는 것과 같습니다. 신 등은 생각건대 그 재행(才行)이 뛰어나고 특이한 자는 법에 구애하지 말고 차례가 아니더라도 임용하여 그의 능력을 다하게 하고, 겨우 몸을 붙여 살면서 구차하게 보전하려는 자는 그때 그때 도태(淘汰)하여 버리고 현명하고 능력있는 이를 대우하면 쓰고 버림이 정당하여 일이 다스려지지 않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전하는 일찍이 전조(銓曹)에 신칙하여 수령은 반드시 육조의 낭관(郞官)과 대간(臺諫)·제사(諸司)의 현능(賢能)한 자를 가리어 제수하게 하였는데, 일찍이 한 사람도 군현에 출재(出宰)한 이가 있지 않고, 간혹 임명된 자가 있으나 자기 의사에 하고 싶지 않으면 인연으로 아뢰어 반드시 면하려고 하여 갑이라는 자가 먼저 그렇게 하면 을이라는 자가 뒤를 쫓아 그렇게 하니, 조정의 명사(名士)를 주(州)·부(府)·군(郡)·현(縣)에 임명하려 하였으나 대개 많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이 하고서야 백성들이 그의 혜택을 입기를 바라지만 어찌 얻을 수 있겠습니까? 또 사람은 각각 능하고 능하지 못함이 있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더불어 도를 배우는 것은 가하지만 더불어 일을 의논하는 것은 불가하며, 내직에 처하게 함은 가하나 외직에 처하게 함은 불가하며, 조(趙)·위(魏)의 노인되기는 넉넉하나 등(滕)·설(薛)의 대부가 되는 것은 불가합니다. 그리고 재주는 한결같이 균평한 것이 아니고 쓰이는 것도 각각 같지 않으므로, 갖추어 거두고 아울러 쌓아서 그릇에 따라 임용하고 부리는 것이 성인(聖人)이 사람을 쓰는 방법입니다.
그윽이 국가에서 택인(宅人)하는 것을 보건대 모두 적당하게 임용하지 않은 성 싶습니다. 잠깐 그 한둘을 들어 말하겠습니다. 도총관(都摠管)의 위장(衛將)은 3군을 거느리고 병을 맡아 사졸의 이목(耳目)에 소속한 것이 되므로 용략(勇略)과 위중(威重)이 있어 사람이 바라보고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사졸을 진무하지 못합니다. 성균관(成均館)은 바로 사람을 가르치는 곳이니 늙은 스승과 학식과 덕망이 쌓인 선비가 박학(博學)하고 심문(審問)하지 않으면 그 직책을 맞추지 못합니다. 신 등은 그윽이 지금 총관의 위장(衛將)이 된 자를 보건대, 적당하고 아님을 묻지 않고서 예(例)에 행하지 못할 자를 바꾸어 제수하였으니, 갑자기 완급한 일이 있으면 장차 어떻게 쓰시겠습니까? 선비의 스승이 된 자는 비록 그 기록이 있더라도 차제(差除)하는 즈음에 혹 그 사람을 쓰지 않으니 후학을 열어 이익하게 하는 데에 장차 무엇으로 하겠습니까? 또 그에게 사람을 가르치게 하면 용렬하되 그에게 백성을 다스리게 하면 넉넉한 자가 있고, 군사를 거느리게 하면 맞지 않고 일을 맞기면 남음이 있는 자가 있습니다. 원컨대 전하는 자상하게 가리어서 심사하여 임용하고 군재(群才)와 중기(衆技)로 하여금 모두 그 돌아갈 데를 얻게 하여 각각 그 능함을 본받게 하면 임용하는 방책을 이에 얻을 것입니다.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인재는 지극히 많으니, 홀로 밝은 것으로 어찌 두루 비칠 수가 있습니까? 원컨대 전하는 공명하고 정대한 자를 가리어 전조(銓曹)를 위임하고 인물을 권형(權衡)하게 하며, 직언하고 숨김이 없는 자를 얻어 대간에 배치하여 비위를 규찰하면, 전조(銓曹)는 그 직책을 거행하고 대간(臺諫)은 그 책무를 다할 것이니, 이와 같이 하고서 나라가 다스려지지 않는 경우는 없습니다.
선유(先儒)가 불씨(佛氏)의 해로움을 논하기를, ‘양(楊)·묵(墨)506) 보다 심하다.’ 하였습니다. 양·묵의 해를 논한다면서 홍수와 이적과 난신적자를 열거하는데 이르니, 이렇다면 불씨의 해로움이 특별히 홍수와 이적의 유(類)가 아닙니다. 대저 홍수와 이적·난신적자는 요(堯)·순(舜)과 주공(周公)이 근심한 것입니다. 홍수와 이적의 해로움보다 심한데, 요·순·주공의 도를 하는 자들도 돌아보건대 높이고 섬기니, 또한 거기에 미혹됨이 심합니다. 동한(東漢)507) 이래로부터 고려[前朝]의 말엽까지 그 사이에 세상을 미혹하고 백성을 속이며 천하 국가를 그르친 자는 진실로 다 말할 수가 없습니다. 만일 이목이 미치는 것을 들어 말한다면 방금 백성들에게 해로움이 되어 크게 탄식하며 눈물을 흘릴 만한 것이 하나 둘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경작하지 않고서 먹으며 길쌈하지 않고서 입으며 몸의 백 가지 쓰임을 자뢰하는 것을 하나같이 넉넉히 우리 백성에게서 취하고, 화재(貨財)를 번식하여 부를 쌓고 전주(田疇)는 주현(州縣)보다 나으며 위적(委積)은 경지(京坻)와 같아 염산(斂散) 취식(取息)하여 침어(侵漁)를 자행하며 장가들고 첩을 사는 등 방정함이 거리낌없는 데 이르렀고, 우리 백성은 조강(糟糠)과 누더기를 얻어 배를 채우고 몸을 가리지 못하는 자가 있습니다. 경외의 사찰은 왕궁보다 사치하며 백사(百司)와 서부(庶府)보다 많고, 주·부·군·현의 수보다 배사(倍蓰)508) 나 되고 토목이 금옥을 입고 문수(文繡)를 입는데도 우리 백성은 오두막 집을 지어 풍우를 가리지 못하는 자가 있으니 크게 탄식할 만한 것은 이것입니다. 천당과 지옥의 설을 만들어 선(仙)은 높고 귀(鬼)는 낮다는 의논을 펴서 유속(流俗)을 고동(鼓動)시켜 어리석은 백성을 꾀어서 사람의 노비를 들이어서 부리고 사람의 자손을 몰아서 무리를 삼으니, 남무(南畝)의 백성들은 해를 마치도록 부지런히 노동하여도 기한(饑寒)을 면치 못하는데, 불씨의 무리들은 손을 놀리면서도 포식하는 것을 보고 이에 뇌사(耒耜)를 놓고서 귀의(歸依)합니다. 과갑(戈甲)의 병졸은 수어(戍禦)하는 데 신고(辛苦)하여도 일찍이 그 실가(室家)를 무휼할 수가 없는데, 불씨의 무리들이 몸을 마치도록 안일하는 것을 보고 이에 항오(行伍)를 벗어나서 의탁하여 숨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중의 무리는 날로 늘어나고 병농(兵農)은 더욱 적어집니다. 1부(夫)가 경작하여 수백 인이 먹고 1부(婦)가 양잠하여 수백 인이 입고 한 사람이 종군하여 수백 인이 한가하니, 농사가 어찌 고단하지 않으며 병사가 어찌 줄지 않겠습니까? 눈물을 흘릴 만한 것이 이것입니다.
근일의 일로써 보건대 흥천사(興天寺)의 기우제(祈雨祭)에 상을 준 것이 또 1백여 필(匹) 됩니다. 비를 비는 것은 본디 백성을 위한 것이고 불자(佛者)는 본시 백성을 해롭히는 자입니다. 부처를 부려서 비가 내릴 수 있게 한다 하더라도 반드시 우리 백성을 복되게 하는 것을 즐겨하지 않거든 하물며 그럴 수도 없는 것이겠습니까? 만일 비를 빌어 얻는다면 천지와 종사(宗社)의 신령께서 마땅히 먼저 도우셨을 것이니, 어찌 부처를 기다리겠습니까? 더구나 비가 넉넉히 촌토(寸土)에 들어가서 촌초(寸草)도 살리지 못하는 데 있어서이겠습니까? 1백여 필(匹)의 포목은 특별히 헛되이 베푸신 사사 은혜입니다. 포목 1백여 필이면 이것은 백성 열 집에서 똑같이 생산한 것이며 흉년 기세(凶年饑歲)에 넉넉히 열 집의 한 달간 생명을 살릴 것이온데 전하는 헛되이 버리시니, 비록 이루어진 일은 간(諫)하지 못한다고 하나 신 등은 그윽이 전하를 위하여 애석하게 여겨집니다. 옛적 성인은 이익이 없고 해로운 것은 더욱 만들지 않았습니다. 역대(歷代)를 상고하고 본조를 상고하여도 부처를 섬기는 것이 이익이 없다는 것은 장장(章章)하고 명심(明甚)하니, 요량컨대 또한 전하께서 통조(洞照)할 것입니다. 벌써 이익이 없다는 것을 알았으면, 무엇을 꺼리어 버리지 못합니까? 신 등은 생각건대 승도(僧徒)는 혁파(革罷)하여야 하며 시사(寺社)는 제거하여야 하고 그 전민(田民)은 다 몰수하여야 합니다. 만약 그 내력이 오래였다고 하여 다 혁파할 수 없으면, 아직은 마땅히 그 수를 덜어서 자만(滋蔓)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적합합니다. 신 등은 삼가 《대전(大典)》의 도승조(度僧條)를 안험(按驗)하건대, 중이 된 지 3개월 안에 양종(兩宗)509) 에 고하여 삼경(三經) 외우는 것을 시험하고 포목 30필을 수납하여야 바야흐로 도첩(度牒)을 발급하는데, 어기는 자와 알고서도 고발하지 않은 자는 문죄하였으며 도첩을 다른 사람에게 빌려 준 자도 논죄를 하였으니, 이것은 진실로 중을 감하려는 본뜻입니다. 그러나 승도(僧徒)가 법을 범하여도 유사(有司)가 어찌 거론할 수가 있으며 그 무리를 누가 고발할 수 있겠습니까? 이로 말미암아 중으로 도첩(度牒) 없는 자가 중외(中外)에 찼으니, 원컨대 안에는 헌부(憲府)에서, 밖에는 감사(監司)로 하여금 다 규찰하고 적발하게 하여, 도첩(度牒)이 없는 자는 속세(俗世)로 돌려보내고 만일 혹 탈출하여 숨었다가 뒤에 나타난 자는 중죄로써 더하고, 이와 같이 하면 거의 모람(冒濫)된 중은 감하여질 것이고 국가가 법을 세운 뜻을 얻을 것입니다.
신 등이 삼가 육전(六典)의 사사(寺社)의 정수조(定數條)를 안험(按驗)하니, 경외(京外)에 36사(寺)를 두어 양종(兩宗)에 나누어 예속하게 하였고, 따라서 전지(田地)를 주어 거주하는 중[僧]의 액수(額數)를 참작하여 정하고, 경외(京外)의 사사 노비(寺社奴婢)와 법손 노비(法孫奴婢)510) 는 아울러 모두 공가(公家)에 소속하게 되었습니다. 신 등도 또한 원컨대 이제 사사(寺社)를 작정(酌定)하여 모든 가람(伽藍)이라고 이름한 거찰(巨刹)과 능침(陵寢)의 재공(齋供)에 부득이한 자 외에는 아울러 파훼(破毁)하게 하고 액수(額數)를 정하여 수십 전지(田地)와 노비로 하며 능침의 재공(齋供)을 제하고 나머지는 다 공가(公家)에 소속하여 승도(僧徒)로 하여금 그것을 의뢰하여 방사하고 사치함이 없게 하소서. 이것이 조종(祖宗)의 입법한 본의(本意)이며 국가가 백성을 살리는 큰 다행이고 신 등의 지극한 소원입니다.
옛적에 한 무제(漢武帝)가 신공(申公)에게 다스리는 도를 물으니, 대답하기를, ‘정치를 하는 것은 말을 많이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고, 다만 힘써 시행하기를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하였습니다. 당시에 한(漢)나라 기업(基業)이 오래되지 않았고 제도(制度)를 초창(草創)하는 무렵이라 다스리는 방법에 어찌 말할 만한 것이 없었겠습니까? 신공(申公)은 당세의 명유(名儒)로서 속백(束帛)의 징소(徵召)에 응하여 일찍이 한 가지의 말도 하지 않더니, 당세의 힘쓸 것에 언급하여 반드시 힘써 시행하는데 급하다고 한 것은, 어찌 아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고 행하는 것이 오직 어렵다고 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무제(武帝)로 하여금 과연 힘써 행하는 임금이 되게 하였다면 동중서(董仲舒)의 3책(三策)으로써 한가(漢家)의 다스림을 이루고 남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침내 허원(虛遠)한 데에 미혹(迷惑)되고 과대(夸大)한 데 힘을 써 정치를 행한 것이 무제(武帝)가 되는 데 그쳤을 따름이니, 어찌 기쁘게 여기면서도 계속하지 않았고 따르면서도 고치지 않은 까닭이 아니겠습니까? 전하는 여러 번 구언(求言)하는 전교(傳敎)를 내리셨으며 군신(群臣)들은 자못 직언하는 방책을 올리었으니 진실로 생민의 복입니다. 그러나 그 청납(聽納)하여 쓰는 일은 제도 문식(制度文飾)의 말단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조정의 대정(大政)과 국가의 큰 폐단에 이르러서는 의논하는 자의 지론(持論)에 구애되어, 혹 정중(鄭重)하되 시행하는 데는 어렵고 혹 인순(因循)하여 개작(改作)하기를 꺼리므로 직언하는 선비가 비록 혹 있더라도 직언하는 계책은 마침내 시행할 수 없었습니다. 신 등은 그윽이 전하께서 구언하는 이름은 있어도 구언하는 사실이 없을까 두렵습니다. 원컨대 전하는 포황(包荒)하는 도량을 열고 빙하(馮河)할 수 있는 용맹을 쓰시어, 사람으로써 그 말을 폐지하지 말고 사사(私私)로써 그 공정된 것을 어지럽히지 마시며 인순(因循)한 데 익숙하지 말며, 범론(凡論)에 구애받지 마시어, 일이 진실로 마땅한 데 합하면 단연코 시행하소서. 신 등의 의논은 처음부터 고원(高遠)하고 시행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고 나라에 시행하면 진실로 대체(大體)에 관계되어 반드시 연애(涓埃)의 보탬이 있을 것이니, 엎드려 생각건대 전하께서는 특별히 보아 주소서."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7책 44권 18장 B면【국편영인본】 9책 125면
- 【분류】왕실-행행(行幸) / 왕실-국왕(國王) / 역사-고사(故事) / 과학-천기(天氣) / 농업-전제(田制) / 사법-법제(法制) / 신분-천인(賤人) / 정론-정론(政論)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사상-불교(佛敎)
- [註 502] 죄기(罪己) : 자기 자신을 꾸짖음.
- [註 503] 한 소후(韓昭侯) : 전국 시대 한(韓)나라 애후(哀侯)의 손자로, 신불해(申不害)를 정승으로 삼아 술수를 닦고 도(道)를 행하더니, 국내가 다스려져 제후들이 감히 침범하지 못하였으며 위에 있은 지 26년에 졸(卒)하였음.
- [註 504] 호종(怙終) : 믿는 데가 있어 재차 죄를 범하는 사람을 말함.
- [註 505] 형석정서(衡石程書) : 상주(上奏)한 서류의 중량(重量)으로 일과(日課)를 정한다는 뜻으로, 형(衡)은 저울대이며 석(石)은 저울추임.
- [註 506] 양(楊)·묵(墨) : 양주(楊朱)와 묵적(墨翟). 양주는 위아설(爲我說)·이기주의(利己主義), 묵적은 겸애설(兼愛說)을 주장하였음.
- [註 507] 동한(東漢) : 후한(後漢) 25∼220년.
- [註 508] 배사(倍蓰) : 여러 갑절.
- [註 509] 양종(兩宗) : 교종(敎宗)에 속하는 계율종·법상종·열반종·법성종·원융종의 5교와 선종(禪宗)의 조계종·천태종의 양종을 합하여 5교 양종이라 함. 뒤에 5교는 각각 남산종·자은종·시홍종·중도종·화엄종으로 불리게 되고 조선초의 억불 정책에 의하여 태종 때에 5교 양종은 선(禪)·교(敎)로 나뉨.
- [註 510] 법손 노비(法孫奴婢) : 사사(寺社)의 노비로서 승려가 승려에게 전하여 주던 노비를 말함. 법손(法孫)은 불가(佛家)에서 후계(後繼) 승려를 가리키는 말인데, 조선조에서는 억불 정책(抑佛政策)을 취하여 법손 노비를 인정하지 않고 모두 속공(屬公)시켰음.
원문
○藝文館副提學任士洪等上疏曰:
伏覩殿下近因旱暵, 痛自刻責, 避殿減膳, 憂勞宵旰, 至下御(扎)〔札〕 以求直言, 雖商湯之罪己, 周宣之側身, 無以加也。 臣等具位侍從之聯, 仰察殿下之用心審矣。 以臣等窺之, 人事誠無所不至。 然而天災不息, 美祥莫臻, 豈天仁愛殿下, 使動心忍性, 增益其所不能也耶? 而四方之廣, 庶政之繁, 其或一二之可言者, 又焉能保其必無也? 但以謂某事之得而某休徵應之, 某事之失而某咎徵應之, 則先儒以爲鑿矣。 臣等亦豈敢妄度天道, 而執以爲說哉? 謹擧其有關於治道者, 爲殿下陳之。 臣等竊謂, 六卿之治, 貴於未然, 王者之政, 務修其本。 是故明智君子, 非國家不治之患, 而惟風俗不正之患, 非風俗不正之患, 而惟敎化無素之患。 敎化素明, 則人心自正, 禮義廉恥夙成, 士君子之行, 而閭巷之民染, 而皆孝悌忠信之歸。 其植本固其發源深, 爲益之大收功之遠, 豈可量哉? 若夫敎弛而不行, 俗廢而不悟, 至於風化已失, 流俗已成, 乃欲驅邪而反正, 導薄而歸厚, 蓋亦難矣。 臣等竊觀流俗之弊, 禮義廉恥喪已久矣。 人私其身, 士失其守, 以全身保位爲賢, 以竭力供職爲愚, 以奔競進取爲能, 以恬退自守爲拙, 以刻薄辦事爲有才, 以寬厚長者爲無用, 見利苟得而人不以爲非, 忘公營私而心不以爲愧, 敢言者謂之狂妄, 正論者謂之迂闊, 相師成風莫可禁止, 原其所以, 由無六經之治, 修明敎化以勵之耳。 殿下臨御云: "初首先風化, 勵廉恥之操, 敦禮讓之風, 欲復三代之敎化", 然而朝廷之上, 廉恥不行, 閭巷之間, 偸薄日滋, 是則化之之術, 未能盡其道也。 臣等竊聞古昔明王之治也, 以四境爲遠, 故所化者惟京師, 以一國爲大, 故所齊者惟其家, 以萬民爲衆, 故可正者惟朝廷, 朝廷者四方之儀表也。 今欲使人人自好砥礪名節, 則莫如朝廷之上, 進用忠良, 斥退浮僞, 唱淸議於下, 其有頑鈍無行者, 使不得接迹於縉紳之列, 親戚羞之, 鄕黨賤之。 如是則廉恥之俗成而節義興矣。 從而擧褒賞之典, 行勸勵之術, 其有以節義聞者, 或旌門復戶, 或不次拔擢, 有以聳人之觀聽, 使四方之內, 榮而慕之, 人思自奮, 常蓄風操, 自然元氣盛大, 隱然有無形之設險, 此萬世太平之基也。 賞以勸有功, 刑以懲不恪, 賞罰人主之大柄也。 人主之用賞罰, 猶天之生殺萬物也。 天無私, 王者亦體天之無私耳。 何謂無私, 賞當其功, 無功者不得濫受, 罰當其罪, 有罪者不得苟免, 如斯而已。 昔韓昭侯命藏弊袴曰: "吾以待有功者", 虞史之贊大舜曰: "怙終賊刑, 刑故無小", 豈昭侯吝賞而大舜不仁哉? 誠以賜一無功, 則天下無功之人, 皆有覬覦之心, 而有功者有所沮, 寬一小罪, 則天下負罪之人, 皆有苟免之心, 而爲惡者無所懼。 且臣子爲國致身, 乃其所也。 雖絶筋破骨, 成不世之功, 亦非分外之事。 是則功不必賞也, 況賞之濫乎? 大抵公義之所在, 有不可以私恩廢之者。 是故古之人君, 或有垂涕而論刑者, 是則刑不得已焉耳, 容何私乎? 賞罰一失, 而庶政隨以隳, 可不戒哉? 臣等竊觀國家賞罰, 或有所未當也。 夫一人有犯, 衆人皆知其不免, 有司將置之於法, 未幾移鞫他司, 則變而爲無罪之人, 一人坐免, 衆人皆知其不能復起也, 纔閱期月, 則曰 罪限已滿, 輒復敍用, 故有罪者僥倖以復官, 欲人之有所懲, 不亦難乎? 國家凡有微勞, 輒施賞典, 是故每一事之興, 人爭奔走, 曾未下手, 已懷利賞之心, 是則賞非勸善, 乃所以長惡也。 親民之職, 莫如守令。 美功最績, 所宜顯賞, 以今觀之, 心勞撫字而廉靜自守, 不托權勢者, 例遷而不加顯擢, 其治民無出凡流, 而夤緣趨附者, 類加顯授, 至如藉其人民之力, 捕其境內之盜者, 亦皆擬諸賞典, 欲人之有所勸, 不亦難乎? 願殿下法天無私, 如舜之仁, 勿虛棄昭侯之袴, 賞必當其功, 罰必當其罪, 使無功者不得與賞, 則有功者必曰: "衆人不得而我獨得之, 是人主知我之功矣", 更竭其力, 人之見之者, 又豈不勸乎? 有罪者不得苟免, 則人將曰: "彼與彼其勢, 尙不能以自救, 況如我者哉?" 相與遠罪而入於善矣。 賞罰一人而千萬人勸懲。 勸懲行而紀綱立, 紀綱立而國家不足治也。 人才國家之利器也。 賢者在位, 能者在職, 則人主雖高枕無爲, 而事無有不理, 政無有不和, 賢不肖混而用舍顚倒, 則雖衡石程書, 日不暇給, 而徒勞於心, 無補於治。 是故古昔帝王, 善爲天下國家者, 莫不以得人爲喜, 失人爲憂, 勞於求賢, 逸於任賢。 恭己南面舜何以也? 任賢勿貳而已。 輯寧邦家湯何以也? 用人由己而已。 至於濟濟多士, 文王以寧, 籲俊宅事成王立政, 觀於人才之進退, 而國家之理亂定矣。 殿下勵精萬機, 急先務之知, 未嘗不進賢退不肖, 而賢愚或相混, 未嘗不爲百司宅任, 而庶事或不理, 未嘗不爲民擇守令, 而民或不被其澤者, 蓋亦未嘗不由知人之有所未至, 用人之有所未當也。 臣等竊惟, 斗筲之器, 不可以大授, 千里之足, 豈可以與駑駘竝跡? 自循資序遷之法行, 而賢愚共貫, 愚者之淹於下流, 固其宜也, 豈非賢知之憾歟? 今之爲仕者, 雖無異能, 苟無顯過, 則旅進旅退, 悠悠歲月, 下自九品上至三品, 視爲直路, 其至也可立而待, 如有援緣之勢者, 因而或至於堂上官者有之。 其賢而才者, 銳於見事, 拙於謀身, 或授之以劇任, 或寄之以言責, 事或違誤, 言或失中, 免官貶秩, 置之於無用之地, 旣無以自振, 聖上又不悟, 則亦沈於末流, 終於不遇而已。 如是則無才者反以得安, 而有才者常不容其身矣。 如是而欲朝廷之治, 庶事之理, 正猶却步而求前也。 臣等謂其有才行茂異者, 勿拘於法, 不次用之以盡其能, 其容身苟全者, 時乎汰去以待賢能, 則用舍當而事無不理矣。 殿下嘗勅銓曹, 守令必以六曹郞官、臺諫、諸司擇賢能者授之, 而曾未有一人出宰郡縣, 間有差除者, 非所意欲, 則因緣啓請, 期於必免, 甲者先之而乙者踵之, 求朝廷名士於州、府、郡、縣, 蓋不多見。 如是而望民之被其澤, 豈可得也? 且人各有能不能, 是故可與學道, 未可與議事, 可使處內, 不可使處外, 優於趙、魏老, 不可以爲滕、薛大夫。 才非一槪, 用各不同, 俱收竝蓄, 隨器任使, 此聖人用人之方也。 竊觀國家之宅人, 恐未盡適用也。 姑擧其一二言之。 都摠管衛將將三軍典五兵, 爲士卒耳目之所屬, 則非有勇略威重, 人望而畏之者, 莫以鎭撫士卒也。 成均館乃敎人之地, 非老師宿儒博學審問, 莫以稱其職也。 臣等竊觀今之爲摠管衛將者, 不問當否, 而例以未行者迭授之, 卒有緩急, 將何用哉? 爲師儒者, 雖有其錄, 而差除之際, 或不以其人, 其於開益後學, 將何以哉? 且有使之敎人則劣, 而使之臨民則優者有, 以之將軍則不稱, 而以之任事則有餘者。 願殿下詳擇而審用之, 使群才衆技, 咸得其歸, 各効乃能, 任用之方, 於斯得矣。 雖然人才至衆, 獨明豈能遍照? 願殿下擇公明正大者, 委之銓曹以權衡人物, 得直言無隱者, 置之臺諫以糾察非違, 銓曹擧其職, 臺諫盡其責, 如是而國不理者, 未之有也。 先儒論佛氏之害曰: "甚於楊、墨。" 論楊、墨之害, 則至列於洪水、夷狄、亂臣賊子, 是則佛氏之害, 非特洪水ㆍ夷狄之類也。 夫洪水、夷狄、亂臣賊子, 堯、舜、周孔之所患也。 以甚於洪水、夷狄之害, 而爲堯、舜、周孔之道者, 顧乃尊而事之, 亦惑之甚矣。 自東漢以來至於前朝之季, 其間惑世誣民誤天下國家者, 固不可勝言也。 如卽其耳目所及而言之, 方今爲民之害, 可爲太息流涕者, 非止一二。 不耕而食, 不織而衣, 資身百用, 一取足於吾民, 蕃貨財富畜産, 田疇跨州縣, 委積如京坻, 至於斂散取息, 恣行侵漁, 娶妻買妾, 放縱無忌, 吾民有不得糟糠藍縷以實腹蔽體者焉。 京外寺刹, 侈於王宮, 多於百司庶府, 倍蓰於州、府、郡、縣之數, 土木被金玉衣文繡, 而吾民有不得就廬而庇風雨者焉, 可謂太息者此也。 造天堂地獄之說, 肆高仙下鬼之論, 皷動流俗, 誘怵愚民, 納人臧獲以爲之使, 驅人子孫以爲之徒, 南畝之民, 終歲勤動, 不免飢寒, 而見佛氏之徒遊手飽食, 則於是乎釋耒耜而歸依焉。 戈甲之卒, 辛苦戍禦, 曾未得撫其室家, 而見佛氏之徒終身安逸, 則於是乎脫行伍而投匿焉。 是故僧徒日衆, 兵農益少。 一夫耕而數百人食之, 一婦蠶而數百人衣之, 一人從軍而數百人閑焉, 農何不爲困, 兵何不爲縮歟? 可爲流涕者此也。 以近日之事觀之, 興天禱雨行賞, 且百有餘匹。 禱雨本爲民也, 佛者本害民者也。 使佛而能雨, 必不肯福吾民矣, 況不能乎? 如禱雨得雨, 天地宗社之靈, 當先右之, 奚待於佛? 況雨不足以入寸土活寸草乎? 百餘匹之布, 特虛施之私恩也。 布百餘匹, 則是齊民十家之産也, 凶年饑歲, 足以活十家一月之命, 而殿下虛棄之, 雖遂事不諫, 臣等竊爲殿下惜之。 古之聖人, 不作無益害有益。 稽之歷代, 考之本朝, 事佛之無益, 章章明甚, 諒亦殿下之所洞照也。 旣知無益, 則何憚而不能去也? 臣等謂僧徒可革也, 寺社可去也, 其田民可盡收也。 若曰 其來久矣, 不可盡革, 則姑宜損減其數, 無使滋蔓。 臣等謹按《大典》度僧條云, 爲僧三月之內, 告兩宗試誦三經, 收布三十匹, 方給度牒, 違者及知而不告罪之, 借與人度牒者論之, 此實減僧之本意也。 然僧徒犯法, 有司何能擧之, 其徒誰能告之? 由是僧無度牒者, 溢于中外, 願令內而憲府, 外而監司, 盡行糾擧, 其無度牒者, 歸之於俗, 如或脫匿而後現者, 加以重罪, 如是則庶幾冒濫之僧減, 而國家立法之意得矣。 臣等謹按《續六典》寺社定數條云, 京外置三十六寺, 分隷兩宗, 仍給田地, 酌定居僧之額, 京外寺社奴婢及法孫奴婢, 竝皆屬公。 臣等亦願, 今酌定寺社, 凡諸名藍巨刹及陵寢齋供不得已者外, 竝令破毁, 定額數十田地奴婢(余)〔除〕 陵寢齋供, 餘悉屬公, 無使僧徒藉以肆侈。 是祖宗立法之本意也, 國家生民之大幸也, 臣等之至願也。 昔漢 武帝問申公以治道, 對曰: "爲治不在多言, 顧力行如何耳。" 于時漢業未久, 制度草創, 其於治道, 豈無可言者? 申公以當世名儒, 應束帛之徵, 未嘗有一語, 及當世之務, 而必急於力行者, 豈不曰 非知之艱, 行之惟艱乎? 使武帝果爲力行之主, 則仲舒三策, 以之成漢家之治而有餘矣。 卒乃惑於虛遠, 務於夸大, 其爲治也, 止爲武帝而已, 則豈非悅而不繹, 從而不改之故也? 殿下屢下求言之敎, 群臣頗進直言之策, 實生民福也。 然其聽用之事, 不過制度文爲之末耳。 至於朝廷大政國家巨弊, 則拘於議者之持論, 或鄭重而難於施行, 或因循而憚於改作, 直言之士雖或有之, 直言之策竟不得行。 臣等竊恐殿下有求言之名, 而無求言之實也。 願殿下開包荒之量, 用馮河之勇, 勿以人而廢其言, 勿以私而撓其公, 勿狃於因循, 勿拘於凡論, 事苟合宜, 斷而行之。 臣等之論, 初非高遠難行之事而施之於國, 則實關大體, 必有涓埃之補, 伏惟殿下特賜垂覽焉。
成宗康靖大王實錄卷第四十四終
- 【태백산사고본】 7책 44권 18장 B면【국편영인본】 9책 1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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