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실록6권, 성종 1년 6월 15일 壬戌 6/7 기사 / 1470년 명 성화(成化) 6년
영안도 관찰사 이계손이 본도의 향교를 진흥시키는 일에 대해 아뢰다
국역
영안도 관찰사(永安道觀察使) 이계손(李繼孫)이 치계(馳啓)하기를,
"예조(禮曹)에서 수교(受敎)한 것 가운데에, ‘여러 고을의 향교(鄕校)에 유생(儒生)의 숫자가 적고 학사(學舍)가 허물어져서, 교수(敎授)와 생도(生徒)가 혹은 사제(私第)에 임시로 거(居)하지만, 감사(監司)가 소홀히 하여 살피지 아니하니, 국가에서 학업(學業)을 일으키는 뜻에 위배됨이 있다. 유생(儒生)은 정원(定員)을 정하지 말고, 학사(學舍)는 관찰사(觀察使)로 하여금 순시(巡視)하여 수리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신 등이 그윽이 생각하건대, 학교(學校)는 풍화(風化)의 근원이니, 인재(人才)가 성(盛)하고 쇠(衰)하는 것과, 세상 도리가 흥하고 망하는 것이 여기에 달려 있습니다. 전하께서 즉위(卽位)하시던 처음에 먼저 선무(先務)로써 거행하여 학교(學校)를 밝게 닦으시고, 유생(儒生)을 널리 늘리시니, 사문(斯文)의 일대 중흥(中興)이요, 사도(斯道)의 일대 요행이라고 할 만합니다. 신이 외람되게 감사[方面]의 직임을 받아서, 성상께서 위임(委任)하신 뜻에 부응(副應)하여 학업(學業)을 일으키는 방도를 밤낮으로 생각하고 헤아려서 기필코 일득지우(一得之愚)494) 를 본받고자 합니다.
신의 망령된 생각으로서는 본도(本道)는 다른 도에 비할 바가 아니니, 우리 조종(祖宗)이 크게 일어난 땅으로 주(周)나라의 기산(岐山)495) 과 한(漢)나라의 패향(沛鄕)496) 과 같아서, 조선(朝鮮)의 억만년 근본이 되는 땅입니다. 그러나 서울[京城]과의 거리가 너무나 떨어져서 조운(漕運)의 길이 통하지 아니하고, 노비(奴婢)를 가진 자도 또한 적으니, 근궁(芹宮)497) 에 부급(負笈)498) 하여 왕조(王朝)에 벼슬살이하는 자는 백에 한두 명 꼴도 안됩니다. 조정에서 예양(禮讓)의 풍속과 문물(文物)의 아름다움이 그 이목(耳目)에 미치는 바가 아니므로, 기습(氣習)에만 얽매여 한결같이 강포(强暴)한 것을 풍속으로 삼고 궁마(弓馬)를 업(業)으로 삼습니다. 학문의 일은 부형(父兄)들이 자제(子弟)들에게 가르치지도 아니하고, 자제들도 자기의 일로 여기지 아니하며, 글은 겨우 이름을 적을 정도이므로 토관(土官)을 얻어서 하게 된다면 다행일 것이요, 힘은 활을 당기기에 능하여 갑사(甲士)에 보충된다면 족할 것입니다. 공(功)을 다투고 상(賞)을 얻으려고 매진(媒進)499) 의 계책(計策)을 일삼고, 공과 이익을 급히 하고 자랑하거나 속이는 것을 즐기며, 예의(禮義)를 저버리고 기운과 힘을 숭상하는 이루어진 풍습에 젖어서 드디어 교병(驕兵)500) 이 되었습니다. 지난번에 역적(逆賊)이 한번 일어나자 온 도(道)가 미연(靡然)501) 히 이를 따랐던 것은, 다름이 아니라 배우지 아니하고 무식(無識)하여 공을 다투고 이익을 다투는 습관이 계제(階梯)가 되었던 까닭입니다. 기습(氣習)을 변하게 하여 교화(敎化)를 밝히는 방술(方術)은 학교(學校)를 일으키고 영재(英才)를 기르는 것에 지나지 않을 뿐입니다. 신이 도임(到任)한 이후에 두루 순찰(巡察)한 것이 두세 번이었는데, 매양 향교(鄕校)에 이르러서 교생(校生)의 읽는 글을 강(講)하였더니, 비록 육진(六鎭)의 궁벽하고 먼 땅이라고 하더라도 자질(資質)이 영민(英敏)한 자가 왕왕 있었습니다. 다만 교수(敎授)로 임명된 자가 적임자가 아니고 가르치는 방도가 정(精)하지 아니하니, 감사(監司)가 하루 이틀 순찰(巡察)한 효과도 또한 어찌 능히 사습(士習)을 진작(振作)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로 말미암아 교생(校生)이 되는 자는 대개 모두가 고루(孤陋)하고 견문(見聞)이 적어서 학업을 성취하는 바가 없으며, 끝내 말[馬] 앞에 졸개가 되는 것을 면하지 못하니, 이것은 하늘이 재사(才士)를 내려 주지 아니하여 그런 것입니다. 십실(十室)502) 의 고을에서도 반드시 충신(忠信)이 있다고 하는데, 하물며 기산(岐山)·패향(沛鄕)과 같은 고을에서 어찌 땅이 신령(神靈)하고 사람이 영걸(英傑)함이 없겠습니까? 다만 교양(敎養)하는 데 있어서 그 방도를 얻지 못하였기 때문일 뿐입니다.
신이 그윽이 생각하건대, 교수(敎授)는 한 사람이 아니니, 다 훌륭한 사람을 얻기가 어려울 것이며, 유생(儒生)은 비록 많더라도 진취(進取)할 만한 자는 대개 드문 것입니다. 영흥부(永興府) 한 고을은 우리 태조(太祖)께서 탄생하신 고을이므로, 지금 유수부(留守府)로 승격하여서 감사(監司)로써 부윤(府尹)을 겸임하게 하니, 한 도(道)의 으뜸이 되는 고을이 되었습니다. 빌건대 본부(本府)의 향교(鄕校)에다가 학업(學業)이 정(精)하고 박식(博識)하며, 명망(名望)이 널리 있는 문신(文臣)을 특별히 교수(敎授)로 임명하고, 여러 고을의 나이 어리고 총민(聰敏)하여 장래가 있는 자를 고르면 학생(學生)들이 적더라도 5, 60인을 내려가지 아니할 것이요, 많더라도 1백 인을 넘지 아니할 것이니, 항상 모아서 가르치고 파(罷)하지 않게 하소서. 교수(敎授)는 범 문정공(范文正公)503) 같이 밤에 학생들을 가르치게 하고 모두 제 시각(時刻)에 일어나게 하며, 호 문정공(胡文定公)504) 같이 아악(雅樂)과 시서(詩書)를 을야(乙夜)505) 까지 가르치게 할 것이며, 감사(監司)와 수령관(首領官)506) 도 또한 행영(行營)에 머무를 때에 한가한 날은 항상 그들을 부추기고 권장(勸奬)하며, 이끌어 주고 도와 주며, 경계(警戒)하고 깨닫게 할 것입니다. 이리하여 세월이 쌓이면 거의 덕(德)이 있는 자를 만들게 되어 완전한 재사(才士)가 배출(輩出)되어, 나아가 조정(朝廷)에 등용(登用)이 될 것이요, 자연히 한 도(道)에서 이를 보고 감격하면, 훈도(薰陶)가 점차로 널리 퍼지게 될 것이니, 제(齊)나라가 변하여 노(魯)나라에 이르게 되고, 노나라가 변하여 도(道)에 이르게 되면, 자랑하고 속이던 풍속을 버리게 되고 예속(禮俗)을 이루게 될 것이니, 그렇게 되기를 기약(期約)하지 않더라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다만 영흥(永興)의 향교(鄕校)에서는 한 사람의 노비(奴婢)도 없는데, 여러 고을에 멀리 거주하는 유생(儒生)들이 양식을 싸 가지고 다니는 것도 어려우며, 그 지공(支供)하는 비용도 계산하여 나올 데가 없습니다. 신(臣)이 다시 생각하건대, 일찍이 혁파(革罷)한 예원군(預原郡)의 노비(奴婢) 40여 구(口)와 여러 사급(賜給)한 이외의 도내(道內)의 난신(亂臣)의 노비를 아울러 향교(鄕校)에 소속시키고, 또 여러 고을에서 일찍이 혁파한 국둔전(國屯田)과 도내의 난신전(亂臣田)도 또한 향교에 붙이어 학전(學田)으로 삼으며, 위의 항목의 노비로서 향교의 차비(差備) 외의 사람과 감사영(監司營)의 당번 아전(當番衙前)으로서 본영(本營)의 차비 외의 사람들이 학전을 경작(耕作)하며, 거기에서 나오는 화리(花利)를 가지고 유생(儒生)들을 조석(朝夕)으로 공궤(供饋)하는 비용으로 삼게 하며, 또 도내에서 해마다 거두는 신세포(神稅布)507) ·어염(魚鹽) 등의 물건을 시장값[市直]에 따라서 곡물로 바꾸어 보충하게 한다면, 반드시 나라의 창름(倉廩)을 허비하지 않고 백성들의 힘을 상(傷)하지 않고서도 유생(儒生)을 기르는 데 여유가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5, 6년을 한 이후에도 만약 아무런 효과가 없다면, 신(臣)은 마땅히 기망(欺妄)한 죄를 받겠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전지(傳旨)하기를,
"예원군(預原郡)의 노비와 난신(亂臣)의 노비 가운데서 가까운 땅에 사는 자 30구(口)와, 혁파(革罷)한 국둔전(國屯田)과 난신전(亂臣田) 각각 18여 결(結)을 시급하여, 감사(監司)가 아뢴 바대로 그들로 하여금 적당하게 조판(措辦)하게 하여 성효(成效)가 있기를 기다리도록 하라. 해마다 장래(將來)가 있는 자 1, 2인을 뽑아서 성균관(成均館)에 나오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더욱 학업에 정진(精進)하게 하고, 그 나머지 여러 고을의 향교(鄕校)에서도 또한 폐단이 없게 조치하게 하여 더욱 학문을 권장(勸奬)하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책 6권 12장 B면【국편영인본】 8책 510면
- 【분류】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신분-천인(賤人) / 농업-전제(田制)
- [註 494] 일득지우(一得之愚) : 천번을 생각하여 하나를 얻는 어리석음.
- [註 495] 기산(岐山) : 주문왕(周文王)이 풍(豐) 땅으로 옮기기 전에 나라를 다스리던 땅 이름.
- [註 496] 패향(沛鄕) : 한(漢)나라 고조(高祖)가 군사를 일으킨 땅을 이름.
- [註 497] 근궁(芹宮) : 문묘(文廟).
- [註 498] 부급(負笈) : 책궤(冊櫃)를 짊어지고 가는 것. 곧 유학.
- [註 499] 매진(媒進) : 사람을 사이에 넣어서 벼슬길에 나아가는 것.
- [註 500] 교병(驕兵) : 교만한 기세를 부리는 군사.
- [註 501] 미연(靡然) : 초목(草木)이 바람에 나부끼어 쓰러지듯 쏠리는 모양.
- [註 502] 십실(十室) : 열집.
- [註 503] 범 문정공(范文正公) : 북송(北宋)의 범중엄(范仲淹)을 말함.
- [註 504] 호 문정공(胡文定公) : 북송(北宋)의 호안국(胡安國)을 말함.
- [註 505] 을야(乙夜) : 밤 10시부터 12시 사이.
- [註 506] 수령관(首領官) : 조선대 때 감영(監營)이나 병영(兵營)·수영(水營)에서 관찰사(觀察使)나 절제사(節制使)를 보좌하던 경력(經歷)이나 도사(都事)를 일컬음.
- [註 507] 신세포(神稅布) : 신(神)을 섬기는 데 사용한 폐백(幣帛) 가운데 나라에서 세금으로 거두던 포목(布木). 처음에는 무당(巫堂)이나 판수[盲人]에게서 거두었으나, 나중에는 일반 민호(民戶)에서 1년에 1포씩 가두어 수령(守令)·감사(監司)·국가가 각각 3분하여 그 비용으로 썼음.
원문
○永安道觀察使李繼孫馳啓曰: "禮曹受敎內: ‘諸邑鄕校儒生數少, 學舍頹廢, 敎授、生徒或僑居私第, 監司慢不致察, 有違國家興學之意。 儒生勿定額, 學舍令觀察使巡視修治。’ 臣竊謂學校, 風化之源, 人才之盛衰, 世道之升降, 係焉。 殿下卽位之初, 首擧先務, 修明學校, 增廣儒生, 可謂斯文之一中興, 斯道之一大幸。 臣叨承方面之寄, 欲副委任之意, 興學之方, 晝思夜度, 期效一得之愚。 臣妄意, 本道非他道比, 我祖宗誕興之地, 如周之岐、漢之沛, 朝鮮億萬年根本之地。 而距京城隔絶, 漕道不通, 有奴婢者亦少, 負笈芹宮, 從仕王朝者, 百無一二。 朝廷禮讓之風、文物之美, 耳目所不及, 局於氣習, 一以强悍爲俗, 弓馬爲業。 學文之事, 父兄不以訓子弟, 子弟不以爲己任。 書僅記名, 得爲土官則曰幸矣; 力能挽弓, 充爲甲士則曰足矣。 以爭功得賞, 爲媒進之計; 急功利, 喜誇詐, 棄禮義, 尙氣力, 習以成風, 遂爲驕兵。 向者, 逆賊一唱, 擧道靡然從之, 無他, 不學無識, 鬪功爭利之習爲階也。 變氣習、明敎化之術, 不過興學校、育英才耳。 臣到任以後, 巡歷再三, 每至鄕校, 講校生所讀書, 雖六鎭僻遠, 資質英敏者, 往往有之。 但任敎授者非人, 敎誨不精, 監司一二日巡察之效, 亦安能振起士習? 由是, 爲校生者, 率皆孤陋、寡聞, 無所成就, 終不免爲馬前之卒, 非天之降才然也。 十室之邑, 必有忠信, 況於岐、沛之鄕, 豈無地靈人傑? 第因敎養未得其道耳。 臣竊思之, 敎授非一, 難以盡得其人, 儒生雖多, 可與進取者蓋寡。 永興一府, 我太祖誕生之鄕, 今陞爲留守府, 以監司兼府尹, 爲一道首。 乞於本府鄕校, 以學業精博, 有聞望文臣, 特差敎授, 擇諸邑年少聰敏, 有將來學生, 少不下五、六十, 多不過百人, 常聚不罷。 敎授, 如范文正公, 夜課諸生, 皆立時刻; 胡安定公雅樂、詩書, 乙夜乃分。 監司、首領官, 亦於留營暇日, 常誘掖勸奬, 提撕警覺。 積以歲月, 則庶幾有造有德, 全才輩出, 進爲朝廷之用, 自然一道觀感, 薰陶漸染。 齊變至魯, 魯變至道, 棄誇詐, 成禮俗, 不期然而然者矣。 但永興鄕校, 無一奴婢, 諸邑遠居儒生, 贏糧亦難, 其支供之費, 計無所出。 臣更思之, 以曾革預原郡奴婢四十餘口及諸賜給外道內亂臣奴婢, 竝屬鄕校, 又以諸邑曾罷國屯田及道內亂臣田, 亦屬鄕校, 爲學田, 以上項奴婢, 鄕校差備外及監司營當番衙前, 本營差備外人, 耕治學田, 將其所出花利, 以爲儒生朝夕供饋之資。 又將道內年稅神布、魚鹽等物, 從市直貿穀補添, 則不必費國廩、傷民力, 養育儒生, 有餘矣。 如是五、六年之後, 若無見效, 臣當伏欺妄之罪。" 傳曰: "給預原奴婢及亂臣奴婢中, 居近地者三十口, 革罷國屯田、亂臣田各十八結餘, 依監司所啓, 使之隨宜措辦, 俟有成效。 歲貢有將來者一、二人, 赴成均館, 使加進益, 其餘諸邑鄕校, 亦令無弊措置, 益加勸學。"
- 【태백산사고본】 2책 6권 12장 B면【국편영인본】 8책 510면
- 【분류】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신분-천인(賤人) / 농업-전제(田制)
성종실록6권, 성종 1년 6월 15일 壬戌 6/7 기사 / 1470년 명 성화(成化) 6년
영안도 관찰사 이계손이 본도의 향교를 진흥시키는 일에 대해 아뢰다
국역
영안도 관찰사(永安道觀察使) 이계손(李繼孫)이 치계(馳啓)하기를,
"예조(禮曹)에서 수교(受敎)한 것 가운데에, ‘여러 고을의 향교(鄕校)에 유생(儒生)의 숫자가 적고 학사(學舍)가 허물어져서, 교수(敎授)와 생도(生徒)가 혹은 사제(私第)에 임시로 거(居)하지만, 감사(監司)가 소홀히 하여 살피지 아니하니, 국가에서 학업(學業)을 일으키는 뜻에 위배됨이 있다. 유생(儒生)은 정원(定員)을 정하지 말고, 학사(學舍)는 관찰사(觀察使)로 하여금 순시(巡視)하여 수리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신 등이 그윽이 생각하건대, 학교(學校)는 풍화(風化)의 근원이니, 인재(人才)가 성(盛)하고 쇠(衰)하는 것과, 세상 도리가 흥하고 망하는 것이 여기에 달려 있습니다. 전하께서 즉위(卽位)하시던 처음에 먼저 선무(先務)로써 거행하여 학교(學校)를 밝게 닦으시고, 유생(儒生)을 널리 늘리시니, 사문(斯文)의 일대 중흥(中興)이요, 사도(斯道)의 일대 요행이라고 할 만합니다. 신이 외람되게 감사[方面]의 직임을 받아서, 성상께서 위임(委任)하신 뜻에 부응(副應)하여 학업(學業)을 일으키는 방도를 밤낮으로 생각하고 헤아려서 기필코 일득지우(一得之愚)494) 를 본받고자 합니다.
신의 망령된 생각으로서는 본도(本道)는 다른 도에 비할 바가 아니니, 우리 조종(祖宗)이 크게 일어난 땅으로 주(周)나라의 기산(岐山)495) 과 한(漢)나라의 패향(沛鄕)496) 과 같아서, 조선(朝鮮)의 억만년 근본이 되는 땅입니다. 그러나 서울[京城]과의 거리가 너무나 떨어져서 조운(漕運)의 길이 통하지 아니하고, 노비(奴婢)를 가진 자도 또한 적으니, 근궁(芹宮)497) 에 부급(負笈)498) 하여 왕조(王朝)에 벼슬살이하는 자는 백에 한두 명 꼴도 안됩니다. 조정에서 예양(禮讓)의 풍속과 문물(文物)의 아름다움이 그 이목(耳目)에 미치는 바가 아니므로, 기습(氣習)에만 얽매여 한결같이 강포(强暴)한 것을 풍속으로 삼고 궁마(弓馬)를 업(業)으로 삼습니다. 학문의 일은 부형(父兄)들이 자제(子弟)들에게 가르치지도 아니하고, 자제들도 자기의 일로 여기지 아니하며, 글은 겨우 이름을 적을 정도이므로 토관(土官)을 얻어서 하게 된다면 다행일 것이요, 힘은 활을 당기기에 능하여 갑사(甲士)에 보충된다면 족할 것입니다. 공(功)을 다투고 상(賞)을 얻으려고 매진(媒進)499) 의 계책(計策)을 일삼고, 공과 이익을 급히 하고 자랑하거나 속이는 것을 즐기며, 예의(禮義)를 저버리고 기운과 힘을 숭상하는 이루어진 풍습에 젖어서 드디어 교병(驕兵)500) 이 되었습니다. 지난번에 역적(逆賊)이 한번 일어나자 온 도(道)가 미연(靡然)501) 히 이를 따랐던 것은, 다름이 아니라 배우지 아니하고 무식(無識)하여 공을 다투고 이익을 다투는 습관이 계제(階梯)가 되었던 까닭입니다. 기습(氣習)을 변하게 하여 교화(敎化)를 밝히는 방술(方術)은 학교(學校)를 일으키고 영재(英才)를 기르는 것에 지나지 않을 뿐입니다. 신이 도임(到任)한 이후에 두루 순찰(巡察)한 것이 두세 번이었는데, 매양 향교(鄕校)에 이르러서 교생(校生)의 읽는 글을 강(講)하였더니, 비록 육진(六鎭)의 궁벽하고 먼 땅이라고 하더라도 자질(資質)이 영민(英敏)한 자가 왕왕 있었습니다. 다만 교수(敎授)로 임명된 자가 적임자가 아니고 가르치는 방도가 정(精)하지 아니하니, 감사(監司)가 하루 이틀 순찰(巡察)한 효과도 또한 어찌 능히 사습(士習)을 진작(振作)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로 말미암아 교생(校生)이 되는 자는 대개 모두가 고루(孤陋)하고 견문(見聞)이 적어서 학업을 성취하는 바가 없으며, 끝내 말[馬] 앞에 졸개가 되는 것을 면하지 못하니, 이것은 하늘이 재사(才士)를 내려 주지 아니하여 그런 것입니다. 십실(十室)502) 의 고을에서도 반드시 충신(忠信)이 있다고 하는데, 하물며 기산(岐山)·패향(沛鄕)과 같은 고을에서 어찌 땅이 신령(神靈)하고 사람이 영걸(英傑)함이 없겠습니까? 다만 교양(敎養)하는 데 있어서 그 방도를 얻지 못하였기 때문일 뿐입니다.
신이 그윽이 생각하건대, 교수(敎授)는 한 사람이 아니니, 다 훌륭한 사람을 얻기가 어려울 것이며, 유생(儒生)은 비록 많더라도 진취(進取)할 만한 자는 대개 드문 것입니다. 영흥부(永興府) 한 고을은 우리 태조(太祖)께서 탄생하신 고을이므로, 지금 유수부(留守府)로 승격하여서 감사(監司)로써 부윤(府尹)을 겸임하게 하니, 한 도(道)의 으뜸이 되는 고을이 되었습니다. 빌건대 본부(本府)의 향교(鄕校)에다가 학업(學業)이 정(精)하고 박식(博識)하며, 명망(名望)이 널리 있는 문신(文臣)을 특별히 교수(敎授)로 임명하고, 여러 고을의 나이 어리고 총민(聰敏)하여 장래가 있는 자를 고르면 학생(學生)들이 적더라도 5, 60인을 내려가지 아니할 것이요, 많더라도 1백 인을 넘지 아니할 것이니, 항상 모아서 가르치고 파(罷)하지 않게 하소서. 교수(敎授)는 범 문정공(范文正公)503) 같이 밤에 학생들을 가르치게 하고 모두 제 시각(時刻)에 일어나게 하며, 호 문정공(胡文定公)504) 같이 아악(雅樂)과 시서(詩書)를 을야(乙夜)505) 까지 가르치게 할 것이며, 감사(監司)와 수령관(首領官)506) 도 또한 행영(行營)에 머무를 때에 한가한 날은 항상 그들을 부추기고 권장(勸奬)하며, 이끌어 주고 도와 주며, 경계(警戒)하고 깨닫게 할 것입니다. 이리하여 세월이 쌓이면 거의 덕(德)이 있는 자를 만들게 되어 완전한 재사(才士)가 배출(輩出)되어, 나아가 조정(朝廷)에 등용(登用)이 될 것이요, 자연히 한 도(道)에서 이를 보고 감격하면, 훈도(薰陶)가 점차로 널리 퍼지게 될 것이니, 제(齊)나라가 변하여 노(魯)나라에 이르게 되고, 노나라가 변하여 도(道)에 이르게 되면, 자랑하고 속이던 풍속을 버리게 되고 예속(禮俗)을 이루게 될 것이니, 그렇게 되기를 기약(期約)하지 않더라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다만 영흥(永興)의 향교(鄕校)에서는 한 사람의 노비(奴婢)도 없는데, 여러 고을에 멀리 거주하는 유생(儒生)들이 양식을 싸 가지고 다니는 것도 어려우며, 그 지공(支供)하는 비용도 계산하여 나올 데가 없습니다. 신(臣)이 다시 생각하건대, 일찍이 혁파(革罷)한 예원군(預原郡)의 노비(奴婢) 40여 구(口)와 여러 사급(賜給)한 이외의 도내(道內)의 난신(亂臣)의 노비를 아울러 향교(鄕校)에 소속시키고, 또 여러 고을에서 일찍이 혁파한 국둔전(國屯田)과 도내의 난신전(亂臣田)도 또한 향교에 붙이어 학전(學田)으로 삼으며, 위의 항목의 노비로서 향교의 차비(差備) 외의 사람과 감사영(監司營)의 당번 아전(當番衙前)으로서 본영(本營)의 차비 외의 사람들이 학전을 경작(耕作)하며, 거기에서 나오는 화리(花利)를 가지고 유생(儒生)들을 조석(朝夕)으로 공궤(供饋)하는 비용으로 삼게 하며, 또 도내에서 해마다 거두는 신세포(神稅布)507) ·어염(魚鹽) 등의 물건을 시장값[市直]에 따라서 곡물로 바꾸어 보충하게 한다면, 반드시 나라의 창름(倉廩)을 허비하지 않고 백성들의 힘을 상(傷)하지 않고서도 유생(儒生)을 기르는 데 여유가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5, 6년을 한 이후에도 만약 아무런 효과가 없다면, 신(臣)은 마땅히 기망(欺妄)한 죄를 받겠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전지(傳旨)하기를,
"예원군(預原郡)의 노비와 난신(亂臣)의 노비 가운데서 가까운 땅에 사는 자 30구(口)와, 혁파(革罷)한 국둔전(國屯田)과 난신전(亂臣田) 각각 18여 결(結)을 시급하여, 감사(監司)가 아뢴 바대로 그들로 하여금 적당하게 조판(措辦)하게 하여 성효(成效)가 있기를 기다리도록 하라. 해마다 장래(將來)가 있는 자 1, 2인을 뽑아서 성균관(成均館)에 나오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더욱 학업에 정진(精進)하게 하고, 그 나머지 여러 고을의 향교(鄕校)에서도 또한 폐단이 없게 조치하게 하여 더욱 학문을 권장(勸奬)하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책 6권 12장 B면【국편영인본】 8책 510면
- 【분류】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신분-천인(賤人) / 농업-전제(田制)
- [註 494] 일득지우(一得之愚) : 천번을 생각하여 하나를 얻는 어리석음.
- [註 495] 기산(岐山) : 주문왕(周文王)이 풍(豐) 땅으로 옮기기 전에 나라를 다스리던 땅 이름.
- [註 496] 패향(沛鄕) : 한(漢)나라 고조(高祖)가 군사를 일으킨 땅을 이름.
- [註 497] 근궁(芹宮) : 문묘(文廟).
- [註 498] 부급(負笈) : 책궤(冊櫃)를 짊어지고 가는 것. 곧 유학.
- [註 499] 매진(媒進) : 사람을 사이에 넣어서 벼슬길에 나아가는 것.
- [註 500] 교병(驕兵) : 교만한 기세를 부리는 군사.
- [註 501] 미연(靡然) : 초목(草木)이 바람에 나부끼어 쓰러지듯 쏠리는 모양.
- [註 502] 십실(十室) : 열집.
- [註 503] 범 문정공(范文正公) : 북송(北宋)의 범중엄(范仲淹)을 말함.
- [註 504] 호 문정공(胡文定公) : 북송(北宋)의 호안국(胡安國)을 말함.
- [註 505] 을야(乙夜) : 밤 10시부터 12시 사이.
- [註 506] 수령관(首領官) : 조선대 때 감영(監營)이나 병영(兵營)·수영(水營)에서 관찰사(觀察使)나 절제사(節制使)를 보좌하던 경력(經歷)이나 도사(都事)를 일컬음.
- [註 507] 신세포(神稅布) : 신(神)을 섬기는 데 사용한 폐백(幣帛) 가운데 나라에서 세금으로 거두던 포목(布木). 처음에는 무당(巫堂)이나 판수[盲人]에게서 거두었으나, 나중에는 일반 민호(民戶)에서 1년에 1포씩 가두어 수령(守令)·감사(監司)·국가가 각각 3분하여 그 비용으로 썼음.
원문
○永安道觀察使李繼孫馳啓曰: "禮曹受敎內: ‘諸邑鄕校儒生數少, 學舍頹廢, 敎授、生徒或僑居私第, 監司慢不致察, 有違國家興學之意。 儒生勿定額, 學舍令觀察使巡視修治。’ 臣竊謂學校, 風化之源, 人才之盛衰, 世道之升降, 係焉。 殿下卽位之初, 首擧先務, 修明學校, 增廣儒生, 可謂斯文之一中興, 斯道之一大幸。 臣叨承方面之寄, 欲副委任之意, 興學之方, 晝思夜度, 期效一得之愚。 臣妄意, 本道非他道比, 我祖宗誕興之地, 如周之岐、漢之沛, 朝鮮億萬年根本之地。 而距京城隔絶, 漕道不通, 有奴婢者亦少, 負笈芹宮, 從仕王朝者, 百無一二。 朝廷禮讓之風、文物之美, 耳目所不及, 局於氣習, 一以强悍爲俗, 弓馬爲業。 學文之事, 父兄不以訓子弟, 子弟不以爲己任。 書僅記名, 得爲土官則曰幸矣; 力能挽弓, 充爲甲士則曰足矣。 以爭功得賞, 爲媒進之計; 急功利, 喜誇詐, 棄禮義, 尙氣力, 習以成風, 遂爲驕兵。 向者, 逆賊一唱, 擧道靡然從之, 無他, 不學無識, 鬪功爭利之習爲階也。 變氣習、明敎化之術, 不過興學校、育英才耳。 臣到任以後, 巡歷再三, 每至鄕校, 講校生所讀書, 雖六鎭僻遠, 資質英敏者, 往往有之。 但任敎授者非人, 敎誨不精, 監司一二日巡察之效, 亦安能振起士習? 由是, 爲校生者, 率皆孤陋、寡聞, 無所成就, 終不免爲馬前之卒, 非天之降才然也。 十室之邑, 必有忠信, 況於岐、沛之鄕, 豈無地靈人傑? 第因敎養未得其道耳。 臣竊思之, 敎授非一, 難以盡得其人, 儒生雖多, 可與進取者蓋寡。 永興一府, 我太祖誕生之鄕, 今陞爲留守府, 以監司兼府尹, 爲一道首。 乞於本府鄕校, 以學業精博, 有聞望文臣, 特差敎授, 擇諸邑年少聰敏, 有將來學生, 少不下五、六十, 多不過百人, 常聚不罷。 敎授, 如范文正公, 夜課諸生, 皆立時刻; 胡安定公雅樂、詩書, 乙夜乃分。 監司、首領官, 亦於留營暇日, 常誘掖勸奬, 提撕警覺。 積以歲月, 則庶幾有造有德, 全才輩出, 進爲朝廷之用, 自然一道觀感, 薰陶漸染。 齊變至魯, 魯變至道, 棄誇詐, 成禮俗, 不期然而然者矣。 但永興鄕校, 無一奴婢, 諸邑遠居儒生, 贏糧亦難, 其支供之費, 計無所出。 臣更思之, 以曾革預原郡奴婢四十餘口及諸賜給外道內亂臣奴婢, 竝屬鄕校, 又以諸邑曾罷國屯田及道內亂臣田, 亦屬鄕校, 爲學田, 以上項奴婢, 鄕校差備外及監司營當番衙前, 本營差備外人, 耕治學田, 將其所出花利, 以爲儒生朝夕供饋之資。 又將道內年稅神布、魚鹽等物, 從市直貿穀補添, 則不必費國廩、傷民力, 養育儒生, 有餘矣。 如是五、六年之後, 若無見效, 臣當伏欺妄之罪。" 傳曰: "給預原奴婢及亂臣奴婢中, 居近地者三十口, 革罷國屯田、亂臣田各十八結餘, 依監司所啓, 使之隨宜措辦, 俟有成效。 歲貢有將來者一、二人, 赴成均館, 使加進益, 其餘諸邑鄕校, 亦令無弊措置, 益加勸學。"
- 【태백산사고본】 2책 6권 12장 B면【국편영인본】 8책 510면
- 【분류】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신분-천인(賤人) / 농업-전제(田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