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종실록1권, 예종 즉위년 10월 12일 戊戌 2/3 기사 / 1468년 명 성화(成化) 4년
병조 낭관을 의금부에 가둔 뜻을 의정부에 내려 보이다
국역
어서(御書)를 의정부에 내리기를,
"병위(兵衛)는 엄하지 아니할 수 없으므로 위부(衛部)를 설치하여 거느리고, 공기(公器)125) 는 바르게 하지 아니할 수 없으므로 백사(百司)를 설치하여 다스리는 것은, 오로지 천위(天位)는 하루라도 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므로 하늘이 백성을 내고 임금을 세워 만백성을 맡아 다스리게 함은, 함부로 자봉(自奉)하게 하려고 함이 아니라 대저 임금은 하늘을 대신하여 만물을 다스리는 것인데 만약 일호의 사욕(私欲)이라고 있으면 어찌 가히 하늘을 몸받고 왕위에 앉아서 이 백성에게 정사를 베풀겠는가? 내가 과매(寡昧)함으로써 일찍 왕위를 이어받아 지식이 이치에 밝지 못하고 덕(德)이 백성을 편히 할 수 없으니, 공경(公卿)의 도움을 힘입어 길이 무강(無彊)한 업(業)을 창성하게 하려고 하였는데, 뜻밖에 설설(屑屑)126) 한 무리가 조석(朝夕)으로 영화(榮華)를 다투어 부귀(富貴)가 내게 먼저하지 않을까 두려워하여, 높은 데라도 오르지 아니함이 없고 아첨하는 얼굴빛과 교묘한 말로 권문(權門)의 붕당(朋黨)이 되어 임금의 어리고 약함을 가볍게 여기고 자기의 현달(顯達)하는 것만을 다행으로 여긴다. 죄를 주어도 징계되지 아니하고 경계하여도 믿지 아니하니, 위엄으로 누르지 아니하면 어떻게 백성을 구제하겠는가? 또 생각하건대, 여러 신하들이 비록 진술한 바가 있을지라도 만약 말하기를, ‘이 일은 나의 관여할 바가 아니라.’고 하여 잠잠하고 말하지 아니하면, 이는 이른바 ‘군문(君門)127) 이 만리(萬里)보다 멀다.’고 하는 것이니, 내가 어떻게 알 것인가? 그러므로 이르기를, ‘조정에 1천 신하가 있으나 소공(昭公)이 나라를 버려도 깨닫지 못하였고,128) 활은 9석(石)이 없는데 편안하게도 몸을 마치도록 알지 못하였다.’129) 하였으니, 이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전전긍긍(戰戰兢兢)하여 두려움이 더욱 깊다. 내가 생각하건대, 정권(政權)은 남에게 빌릴 수 없고, 상벌(賞罰)은 인신(人臣)이 스스로 천단할 바가 아니다. 한 사람을 징계하여 후래(後來)를 경계하고자 하여 이에 병조 낭관(兵曹郞官)들을 의금부에 가두었으니, 오직 너희 대소 신료(大小臣僚)는 함께 이 뜻을 몸받아 각각 그 직무를 삼가하여 게으르지 말고 잘못하지 말라."
하였다.
- [註 125] 공기(公器) : 국정(國政).
- [註 126] 설설(屑屑) : 이욕(利欲)에 부지런한 모습.
- [註 127] 군문(君門) : 궁궐.
- [註 128] 조정에 1천 신하가 있으나 소공(昭公)이 나라를 버려도 깨닫지 못하였고, : 중국 노(魯)나라 소공(昭公)이 무례하여 신하들의 신임을 얻지 못하고 삼가(三家)의 공격을 받아 제(齊)나라로 달아난 것을 말함.
- [註 129] 활은 9석(石)이 없는데 편안하게도 몸을 마치도록 알지 못하였다.’ : 제(齊)나라 선왕(宣王)이 활쏘기를 좋아하여 남에게 센 활을 당긴다고 말하였는데, 그가 쓰는 활은 3석(石:활힘의 강도의 단위)에 지나지 아니하였다. 좌우의 신하들에게 시험해 보라고 하니 모두 반쯤 밖에 당기지 못하고서 말하기를, "이 활은 9석(石)이나 되겠습니다." 하니, 선왕이 그 말을 믿고 종신토록 9석의 활을 썼다고 생각하였음.
원문
○御書下議政府曰:
兵衛不可不嚴, 設衛部而領之; 公器不可不正, 設百司而治之, 專以天位不可一日曠廢故也。 是以天生民而作之君, 司牧兆庶, 非恣欲自奉之意也。 蓋人君代天理物, 若有一毫之私, 安可以體天御器, 施政斯民哉? 予以寡昧, 早襲靈圖, 明不能燭理, 德不能綏民, 欲資公卿之輔, 永昌無疆之業。 不意屑屑之徒, 爭榮華於朝夕, 恐富貴之不我先, 無高而不升, 令色巧言, 朋黨於權門, 輕主之幼弱, 幸己之得顯。 罪之而莫懲, 戒之而莫信, 不以威克, 何以濟民? 且念群臣雖有所陳, 若曰: "此事非我所干。" 含默不言, 則玆所謂: "君門邈於萬里者也。" 予何由知? 故曰: "朝有千臣, 昭公去國而不悟; 弓無九石, 寧一終身而不知。" 是何異哉? 戰戰兢兢, 恐懼益深。 予惟政柄不可假人, 賞罰非人臣所當自擅。 欲懲一人, 以戒後來, 肆囚兵曹郞官等於義禁府, 惟爾大小臣僚, 咸體此意, 各愼乃職, 毋怠毋愆。
예종실록1권, 예종 즉위년 10월 12일 戊戌 2/3 기사 / 1468년 명 성화(成化) 4년
병조 낭관을 의금부에 가둔 뜻을 의정부에 내려 보이다
국역
어서(御書)를 의정부에 내리기를,
"병위(兵衛)는 엄하지 아니할 수 없으므로 위부(衛部)를 설치하여 거느리고, 공기(公器)125) 는 바르게 하지 아니할 수 없으므로 백사(百司)를 설치하여 다스리는 것은, 오로지 천위(天位)는 하루라도 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므로 하늘이 백성을 내고 임금을 세워 만백성을 맡아 다스리게 함은, 함부로 자봉(自奉)하게 하려고 함이 아니라 대저 임금은 하늘을 대신하여 만물을 다스리는 것인데 만약 일호의 사욕(私欲)이라고 있으면 어찌 가히 하늘을 몸받고 왕위에 앉아서 이 백성에게 정사를 베풀겠는가? 내가 과매(寡昧)함으로써 일찍 왕위를 이어받아 지식이 이치에 밝지 못하고 덕(德)이 백성을 편히 할 수 없으니, 공경(公卿)의 도움을 힘입어 길이 무강(無彊)한 업(業)을 창성하게 하려고 하였는데, 뜻밖에 설설(屑屑)126) 한 무리가 조석(朝夕)으로 영화(榮華)를 다투어 부귀(富貴)가 내게 먼저하지 않을까 두려워하여, 높은 데라도 오르지 아니함이 없고 아첨하는 얼굴빛과 교묘한 말로 권문(權門)의 붕당(朋黨)이 되어 임금의 어리고 약함을 가볍게 여기고 자기의 현달(顯達)하는 것만을 다행으로 여긴다. 죄를 주어도 징계되지 아니하고 경계하여도 믿지 아니하니, 위엄으로 누르지 아니하면 어떻게 백성을 구제하겠는가? 또 생각하건대, 여러 신하들이 비록 진술한 바가 있을지라도 만약 말하기를, ‘이 일은 나의 관여할 바가 아니라.’고 하여 잠잠하고 말하지 아니하면, 이는 이른바 ‘군문(君門)127) 이 만리(萬里)보다 멀다.’고 하는 것이니, 내가 어떻게 알 것인가? 그러므로 이르기를, ‘조정에 1천 신하가 있으나 소공(昭公)이 나라를 버려도 깨닫지 못하였고,128) 활은 9석(石)이 없는데 편안하게도 몸을 마치도록 알지 못하였다.’129) 하였으니, 이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전전긍긍(戰戰兢兢)하여 두려움이 더욱 깊다. 내가 생각하건대, 정권(政權)은 남에게 빌릴 수 없고, 상벌(賞罰)은 인신(人臣)이 스스로 천단할 바가 아니다. 한 사람을 징계하여 후래(後來)를 경계하고자 하여 이에 병조 낭관(兵曹郞官)들을 의금부에 가두었으니, 오직 너희 대소 신료(大小臣僚)는 함께 이 뜻을 몸받아 각각 그 직무를 삼가하여 게으르지 말고 잘못하지 말라."
하였다.
- [註 125] 공기(公器) : 국정(國政).
- [註 126] 설설(屑屑) : 이욕(利欲)에 부지런한 모습.
- [註 127] 군문(君門) : 궁궐.
- [註 128] 조정에 1천 신하가 있으나 소공(昭公)이 나라를 버려도 깨닫지 못하였고, : 중국 노(魯)나라 소공(昭公)이 무례하여 신하들의 신임을 얻지 못하고 삼가(三家)의 공격을 받아 제(齊)나라로 달아난 것을 말함.
- [註 129] 활은 9석(石)이 없는데 편안하게도 몸을 마치도록 알지 못하였다.’ : 제(齊)나라 선왕(宣王)이 활쏘기를 좋아하여 남에게 센 활을 당긴다고 말하였는데, 그가 쓰는 활은 3석(石:활힘의 강도의 단위)에 지나지 아니하였다. 좌우의 신하들에게 시험해 보라고 하니 모두 반쯤 밖에 당기지 못하고서 말하기를, "이 활은 9석(石)이나 되겠습니다." 하니, 선왕이 그 말을 믿고 종신토록 9석의 활을 썼다고 생각하였음.
원문
○御書下議政府曰:
兵衛不可不嚴, 設衛部而領之; 公器不可不正, 設百司而治之, 專以天位不可一日曠廢故也。 是以天生民而作之君, 司牧兆庶, 非恣欲自奉之意也。 蓋人君代天理物, 若有一毫之私, 安可以體天御器, 施政斯民哉? 予以寡昧, 早襲靈圖, 明不能燭理, 德不能綏民, 欲資公卿之輔, 永昌無疆之業。 不意屑屑之徒, 爭榮華於朝夕, 恐富貴之不我先, 無高而不升, 令色巧言, 朋黨於權門, 輕主之幼弱, 幸己之得顯。 罪之而莫懲, 戒之而莫信, 不以威克, 何以濟民? 且念群臣雖有所陳, 若曰: "此事非我所干。" 含默不言, 則玆所謂: "君門邈於萬里者也。" 予何由知? 故曰: "朝有千臣, 昭公去國而不悟; 弓無九石, 寧一終身而不知。" 是何異哉? 戰戰兢兢, 恐懼益深。 予惟政柄不可假人, 賞罰非人臣所當自擅。 欲懲一人, 以戒後來, 肆囚兵曹郞官等於義禁府, 惟爾大小臣僚, 咸體此意, 各愼乃職, 毋怠毋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