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실록30권, 세조 9년 6월 22일 庚辰 1/1 기사 / 1463년 명 천순(天順) 7년
종친을 도진무와 위장으로 삼은 것을 간한 사간원 정언 최한량·사간 이우·지사간 이지의 고신을 거두다
국역
이때에 보성경(寶城卿) 이합(李㝓)을 도진무(都鎭撫)로 삼고, 거평정(居平正) 이복(李復)·진례정(進禮正) 이형(李衡)을 위장(衛將)으로 삼았더니, 사간원 정언(司諫院正言) 최한량(崔漢良)이 본원(本院)의 의논을 가지고 아뢰기를,
"종친(宗親)이 전병(典兵)함은 불가하며, 또 강복(康輻)의 아내의 일은 비록 사유(赦宥) 전에 있었더라도 내버려둠은 불가합니다."
하니, 임금이 노(怒)하여 즉시 명하여 의금부(義禁府)에 내리고, 잠깐 있다가 소환(召還)하였다. 도승지(都承旨) 노사신(盧思愼)으로 하여금 최한량을 심문하게 하기를,
"임금에게 진언(進言)할 때에는 마땅히 가부(可否)를 심사(審思)하여야 하는데, 너는 그 심사(審思)를 하지 못했느냐?"
하니, 최한량이 말하기를,
"생각하고 이미 살폈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강복(康輻)의 아내의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너는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
하니, 최한량이 말하기를,
"신은 알지 못합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이미 ‘알지 못한다.’고 하면서, 어찌하여 갑자기 아뢰었으며, 또 이미 반사(頒赦)180) 하였는데, 또 다시 이것을 지적하고 죄주자 함은 옳겠느냐? 종친(宗親)은 또 어찌 하여 임사(任事)함이 불가하다 하느냐?"
하니, 최한량이 말하기를,
"《속전(續典)》을 안험하건대, ‘지위가 높고 녹(祿)이 중하면 일을 맡기지 않는다.[尊位重祿不任以事]’고 하였으니, 대저 종친(宗親)에게 일을 맡겼다가 혹 죄과(罪過)가 있어 죄주게 되면, 은혜를 상(傷)하게 되고, 죄주지 않으면 법을 폐(廢)하게 되니 맡길 수 없는 소이(所以)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육전(六典)》의 과조(科條)는 내가 변경한 것이 많았는데, 너는 어찌하여 한 마디 말도 하지 않다가 홀로 이것만을 말하느냐? 종친(宗親)을 불임(不任)함은 옛사람도 취하지 않은 자가 있다. 또 공신(功臣)은 임사(任事)함이 불가하다는 말이 있으나, 공신과 종친은 일반(一般)이다. 이제 신숙주(申叔舟) 이하로부터 다 버리고 쓰지 말아야 하는가?"
하니, 최한량이 대답이 없거늘, 임금이 말하기를,
"잘 간(諫)하는 자는 심사 숙려(深思熟慮)하여 말을 반드시 듣도록 하고 계교는 반드시 좇도록 하니, 자신은 안영(安榮)을 얻고, 임금은 영명(令名)을 누려서 백성을 보호하면서 나라를 다스리게 하는데, 잘 간(諫)하지 못하는 자는 이와 반대이다. 유자(儒者)의 무리는 이름을 낚는 데만 오로지 힘써서 큰 정사[大政]가 있을 때마다 경솔하게 갑자기 말하니, 어찌 족히 대사(大事)를 함께 의논하겠느냐? 내 이런 풍토를 근심한 지 오래였으니, 마땅히 또한 모조히 혁파하고야 말겠다."
하고, 드디어 최한량(崔漢良)에게 묻기를,
"누가 먼저 발언(發言)하였느냐?"
하니, 최한량이 아뢰기를,
"신(臣)과 사간(司諫) 이우(李堣)·지사간(知司諫) 이지(李墀)가 함께 의논하였습니다."
하니, 즉시 명하여, 이우(李堣)·이지(李墀)·최한량(崔漢良)의 고신(告身)을 거두게 하고, 임금이 좌우(左右)에게 이르기를,
"인주(人主)의 언동(言動)은 청천 백일(靑天白日)과 같아서 교연(皎然)히 모두 알아야 한다. 너희들은 직사가 춘추(春秋)를 띠었으니, 모조리 이것을 쓰는 것이 가하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1책 30권 34장 A면【국편영인본】 7책 578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 정론-간쟁(諫諍)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사법-탄핵(彈劾)
- [註 180] 반사(頒赦) : 나라에 경사(慶事)가 있을 때 사유문(赦宥文)을 반포하여 중죄(重罪) 이외에는 용서하여 주던 일.
원문
○庚辰/時, 寶城卿 㝓爲都鎭撫, 居平正 復、進禮正 衡爲衛將, 司諫院正言崔漢良將本院議啓曰: "宗親不可典兵, 又康輻妻事, 雖在赦前, 不可置。" 上怒卽命下義禁府, 俄而召還。 令都承旨盧思愼問漢良曰: "進言於君, 當審思可否, 汝其審思未耶?" 漢良曰: "思之已審。" 上曰: "康輻妻事未畢, 汝何言也?" 漢良曰: "臣未知也。" 上曰: "旣曰不知, 何以遽啓? 且已頒赦, 又復摘此而罪之可乎? 宗親又何以爲不可任事?" 漢良曰: "按《續典》 ‘尊位重祿, 不任以事。’ 夫任宗親, 或有罪過罪之則傷恩, 不罪則廢法, 所以不可任也。" 上曰: "《六典》科條, 予所變更者多, 汝何不一言, 獨言此乎? 不任宗親, 古人有不取者。 又有功臣不可任事之說, 功親一般。 今也自申叔舟以下, 盡棄而勿用乎?" 漢良無以對, 上曰: "善諫者深思熟慮, 使言必聽計必從, 身獲安榮, 君享令名, 民保而國治, 不善諫者反是。 竪儒輩專務釣名, 每有大政, 輕率輒言, 是何足與議大事? 予患此風久, 當且悉革乃已。" 遂問漢良曰: "誰先發言?" 漢良啓曰: "臣與司諫李堣、知司諫李墀共議。" 卽命收堣、墀、漢良告身, 上謂左右曰: "人主言動當如靑天白日, 皎然皆知。 汝等職帶春秋, 可悉書此。"
- 【태백산사고본】 11책 30권 34장 A면【국편영인본】 7책 578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 정론-간쟁(諫諍)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사법-탄핵(彈劾)
세조 9년 (1463) 6월 22일
세조실록30권, 세조 9년 6월 22일 庚辰 1/1 기사 / 1463년 명 천순(天順) 7년
종친을 도진무와 위장으로 삼은 것을 간한 사간원 정언 최한량·사간 이우·지사간 이지의 고신을 거두다
국역
이때에 보성경(寶城卿) 이합(李㝓)을 도진무(都鎭撫)로 삼고, 거평정(居平正) 이복(李復)·진례정(進禮正) 이형(李衡)을 위장(衛將)으로 삼았더니, 사간원 정언(司諫院正言) 최한량(崔漢良)이 본원(本院)의 의논을 가지고 아뢰기를,
"종친(宗親)이 전병(典兵)함은 불가하며, 또 강복(康輻)의 아내의 일은 비록 사유(赦宥) 전에 있었더라도 내버려둠은 불가합니다."
하니, 임금이 노(怒)하여 즉시 명하여 의금부(義禁府)에 내리고, 잠깐 있다가 소환(召還)하였다. 도승지(都承旨) 노사신(盧思愼)으로 하여금 최한량을 심문하게 하기를,
"임금에게 진언(進言)할 때에는 마땅히 가부(可否)를 심사(審思)하여야 하는데, 너는 그 심사(審思)를 하지 못했느냐?"
하니, 최한량이 말하기를,
"생각하고 이미 살폈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강복(康輻)의 아내의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너는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
하니, 최한량이 말하기를,
"신은 알지 못합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이미 ‘알지 못한다.’고 하면서, 어찌하여 갑자기 아뢰었으며, 또 이미 반사(頒赦)180) 하였는데, 또 다시 이것을 지적하고 죄주자 함은 옳겠느냐? 종친(宗親)은 또 어찌 하여 임사(任事)함이 불가하다 하느냐?"
하니, 최한량이 말하기를,
"《속전(續典)》을 안험하건대, ‘지위가 높고 녹(祿)이 중하면 일을 맡기지 않는다.[尊位重祿不任以事]’고 하였으니, 대저 종친(宗親)에게 일을 맡겼다가 혹 죄과(罪過)가 있어 죄주게 되면, 은혜를 상(傷)하게 되고, 죄주지 않으면 법을 폐(廢)하게 되니 맡길 수 없는 소이(所以)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육전(六典)》의 과조(科條)는 내가 변경한 것이 많았는데, 너는 어찌하여 한 마디 말도 하지 않다가 홀로 이것만을 말하느냐? 종친(宗親)을 불임(不任)함은 옛사람도 취하지 않은 자가 있다. 또 공신(功臣)은 임사(任事)함이 불가하다는 말이 있으나, 공신과 종친은 일반(一般)이다. 이제 신숙주(申叔舟) 이하로부터 다 버리고 쓰지 말아야 하는가?"
하니, 최한량이 대답이 없거늘, 임금이 말하기를,
"잘 간(諫)하는 자는 심사 숙려(深思熟慮)하여 말을 반드시 듣도록 하고 계교는 반드시 좇도록 하니, 자신은 안영(安榮)을 얻고, 임금은 영명(令名)을 누려서 백성을 보호하면서 나라를 다스리게 하는데, 잘 간(諫)하지 못하는 자는 이와 반대이다. 유자(儒者)의 무리는 이름을 낚는 데만 오로지 힘써서 큰 정사[大政]가 있을 때마다 경솔하게 갑자기 말하니, 어찌 족히 대사(大事)를 함께 의논하겠느냐? 내 이런 풍토를 근심한 지 오래였으니, 마땅히 또한 모조히 혁파하고야 말겠다."
하고, 드디어 최한량(崔漢良)에게 묻기를,
"누가 먼저 발언(發言)하였느냐?"
하니, 최한량이 아뢰기를,
"신(臣)과 사간(司諫) 이우(李堣)·지사간(知司諫) 이지(李墀)가 함께 의논하였습니다."
하니, 즉시 명하여, 이우(李堣)·이지(李墀)·최한량(崔漢良)의 고신(告身)을 거두게 하고, 임금이 좌우(左右)에게 이르기를,
"인주(人主)의 언동(言動)은 청천 백일(靑天白日)과 같아서 교연(皎然)히 모두 알아야 한다. 너희들은 직사가 춘추(春秋)를 띠었으니, 모조리 이것을 쓰는 것이 가하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1책 30권 34장 A면【국편영인본】 7책 578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 정론-간쟁(諫諍)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사법-탄핵(彈劾)
- [註 180] 반사(頒赦) : 나라에 경사(慶事)가 있을 때 사유문(赦宥文)을 반포하여 중죄(重罪) 이외에는 용서하여 주던 일.
원문
○庚辰/時, 寶城卿 㝓爲都鎭撫, 居平正 復、進禮正 衡爲衛將, 司諫院正言崔漢良將本院議啓曰: "宗親不可典兵, 又康輻妻事, 雖在赦前, 不可置。" 上怒卽命下義禁府, 俄而召還。 令都承旨盧思愼問漢良曰: "進言於君, 當審思可否, 汝其審思未耶?" 漢良曰: "思之已審。" 上曰: "康輻妻事未畢, 汝何言也?" 漢良曰: "臣未知也。" 上曰: "旣曰不知, 何以遽啓? 且已頒赦, 又復摘此而罪之可乎? 宗親又何以爲不可任事?" 漢良曰: "按《續典》 ‘尊位重祿, 不任以事。’ 夫任宗親, 或有罪過罪之則傷恩, 不罪則廢法, 所以不可任也。" 上曰: "《六典》科條, 予所變更者多, 汝何不一言, 獨言此乎? 不任宗親, 古人有不取者。 又有功臣不可任事之說, 功親一般。 今也自申叔舟以下, 盡棄而勿用乎?" 漢良無以對, 上曰: "善諫者深思熟慮, 使言必聽計必從, 身獲安榮, 君享令名, 民保而國治, 不善諫者反是。 竪儒輩專務釣名, 每有大政, 輕率輒言, 是何足與議大事? 予患此風久, 當且悉革乃已。" 遂問漢良曰: "誰先發言?" 漢良啓曰: "臣與司諫李堣、知司諫李墀共議。" 卽命收堣、墀、漢良告身, 上謂左右曰: "人主言動當如靑天白日, 皎然皆知。 汝等職帶春秋, 可悉書此。"
- 【태백산사고본】 11책 30권 34장 A면【국편영인본】 7책 578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 정론-간쟁(諫諍)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사법-탄핵(彈劾)
원본
세조 9년 (1463) 6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