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실록12권, 세조 4년 4월 24일 辛巳 1/4 기사 / 1458년 명 천순(天順) 2년
이중윤이 백성이 수령을 무고함을 금하라고 청하다. 이승소가 올린 성균 유생·사대 교린·가자 등에 대한 상서
국역
겸판통례문사(兼判通禮門事) 이중윤(李中允), 성균 대사성(成均大司成) 이승소(李承召)가 윤대(輪對)하였다. 이중윤이 아뢰기를,
"국가에서 백성의 고소를 듣는 법[聽民告訴之法]을 세웠더니, 무릇 백성이 하나라도 자기에게 불편함이 있으면 문득 허위(虛僞)를 꾸며서 그 수령(守令)을 고소하되, 일이 무망(誣罔)에서 나왔어도 또한 좌죄(坐罪)하지 않습니다. 대저 수령은 일읍(一邑)의 부모(父母)입니다. 아들로 아비를 소송함은 의(義)에 이미 옳지 못함이 되거늘, 하물며 그 하지 않은 것을 수식(修飾)한 자이겠습니까? 청컨대 금(禁)하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수령의 비법(非法)을 인주(人主)가 어떻게 알겠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관찰사(觀察使)는 출척(黜陟)의 직임을 잡고 있습니다. 한 지방을 통찰(統察)하여 비법(非法)한 수령은 반드시 관찰사가 징계(懲戒)해야 하는데, 만일 있는데도 출척하지 않았으면 책임은 관찰사에게 있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너는 다른 것은 알지 못한다."
하고, 드디어 글로써 이중윤(李中允)이 말한 바를 승정원에 보이고 말하기를,
"민소(民訴)를 듣지 말고 수령의 죄가 관찰사에게 연좌(連坐)되게 하면, 관찰사(觀察使)는 하나이고 수령(守令)은 많으니 관찰사를 보전함이 있겠는가? 그렇다면 임금은 총명(聰明)이 막히고, 관찰사는 받들지 않으며, 백성은 고(告)할 데가 없어서 수령이 방종(放縱)할 것이니, 그 일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중윤은 생각하지 못했다고 이를 만하다."
하였다. 이승소(李承召)가 글[書]로써 아뢰기를,
"태학(太學)은 현사(賢士)의 관(關)이라 풍교(風敎)를 먼저 하여야 합니다. 당(唐)나라의 태종(太宗)은 생원(生員)을 증광(增廣)하여 3천 2백에 이르렀는데, 지금 국학(國學)에서 기르는 것은 겨우 2백입니다. 신이 2백 학생의 1년 비용을 계산하니 9백 60석입니다. 이것은 국가의 경비(經費)에 있어서 구우 일모(九牛一毛)251) 일 뿐인데, 유사(有司)가 한 해의 흉년으로써 감름(減廩)을 주청(奏請)하여 단지 1백을 기르게 하니, 성상(聖上)의 숭학(崇學)하는 뜻에 어긋남이 있습니다. 또 구법(舊法)에는 사부 학당(四部學堂)에 모두 늠식(廩食)이 있었는데, 근년 이래로 권도(權道)를 따라 다 파(罷)하였고, 이제 또 국학의 늠식을 감하니 치체(治體)에 어떻겠습니까? 신이 듣건대 양현고(養賢庫)252) 의 금년에 수납하는 전세(田稅)는 6백여 석이라 하니, 만약 3백여 석을 더하면 족히 2백 학생의 한 해의 늠식을 지탱할 것입니다. 수백 석(數百石)의 비용을 아껴서 뒷사람의 의논을 부름은 옳지 못하니, 엎드려 바라건대 다시 예사(睿思)를 두소서.
1. 사대 교린(事大交隣)은 사명(辭命)이 막중(莫重)합니다. 우리 나라가 중국에 소중히 여김을 받는 소이(所以)는 예의(禮義)를 숭상하고 술직(述職)에 부지런하며, 고금(古今)을 통하여 사명(辭命)을 잘하는 까닭에 중국 조정에서 사신을 임명함에는 반드시 박학(博學)하고 문장이 있는 자를 가려서 보내었고, 또한 우리 나라 사람도 문학을 좋아하였다고 하겠습니다. 이로써 보면 문장은 비록 하찮은 재주[末技]이나 진실로 폐(廢)할 수 없습니다. 세종께서 일찍이 문신의 연소(年少)하고 영민(英敏)한 자를 가려서 산방(山房)에 나아가 독서하게 하심도 대개 이를 위함이었습니다. 이제 위로는 문병(文柄)을 잡은 자로부터 아래로는 문사(文辭)에 약간 능한 자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세종께서 배양(培養)한 것이니, 만약 이제 미리 길러서 작성(作成)하지 않는다면 뒤에 이를 계승할 자가 없을 것입니다. 대저 박혁(博奕)은 소수(少數)이나 전심(專心)하여 치의(致意)하지 않으면 오히려 또 얻지 못하는데, 하물며 학문(學文)과 사장(詞章)이겠습니까? 엎드려 원하건대 한결같이 세종과 같이 하여 효험을 거두면 심히 다행하겠습니다.
1. 구법(舊法)에 교도(敎導)·유학(幼學)은 나이가 40이 찬 연후에 취재(取才)하여 충차(充差)하였고, 생원(生員)·진사(進士)도 또한 나이가 40이 차야만 서용(敍用)함을 허락하였으니, 진실로 사유(師儒)의 임무는 마땅히 노성(老成)한 사람에게 주어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회시(會試)에 강경(講經)하여 입격(入格)한 자는 연한(年限)을 불구하고 다 교도(敎導)를 임명하니 구법에 어긋남이 있을 뿐 아니라, 하나는 광유(狂幼)의 무리가 만유(慢遊)하는 데 전사(專事)하여 직업을 폐(廢)하고, 하나는 영오(穎悟)하여 가르칠 만한 자도 모두 거관(居館)253) 하지 않으니, 국학도 또한 이 때문에 허소(虛疎)하여서 작은 폐단이 아닙니다. 엎드려 원하건대, 회강에 입격한 자도 구법에 따라 나이를 한정하여 서용(敍用)하소서.
1. 국가에서 자격(資格)에 따라 사람을 쓰기 때문에 이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모두 그 자급(資級)을 중히 여기니, 만약 큰 제사(祭祀)가 있으면 전례대로 가자(加資)하소서. 만약 따로 도감(都監)을 두면 뒤에 반드시 논상(論賞)하여 추경(趨競)을 구하되 염치를 돌보지 않을 것이니, 이는 다름이 아니라 작상(爵賞)이 너무 가벼워서이며, 한 가지 사공(事功)이 있으면 자급을 높이고 직질을 뛰어 줌[超秩]에 애석(愛惜)함이 없는 까닭입니다. 폐습(弊習)이 이미 오래 되었으나 지금까지 고치지 못하였는데, 대저 일에 추창하고 공에 이르는 것은 신직(臣職)으로 당연히 할 일입니다. 작으면 위로(慰勞)하고, 크면 사뢰(賜賚)함도 또한 족하거늘, 하필 경솔히 작질(爵秩)을 주어야 하겠습니까? 혹시 정국(靖國)하고 안민(安民)한 공이 있으면 또 무엇으로 상을 주겠습니까? 신이 듣건대, ‘총명한 군주는 한 번 찡그리고 한 번 웃는 것[一嚬一笑]을 아낀다.’고 하였으니, 엎드려 원하건대, 그 작상(爵賞)을 중히 하여서 모진(冒進)하는 습관을 막으소서.
1. 구법에는 관리가 질만(秩滿)으로 마땅히 천직(遷職)할 자는 이조에서 그 진위(眞僞)를 고핵(考覈)하여 예(例)에 따라 천서(遷敍)하였는데, 지금은 관리로 하여금 자록(自錄)하게 하므로, 세월의 오래고 가까움을 가지고 내가 가자(加資)되어야 마땅하다 여겨지고 내가 거관(去官)254) 되어야 마땅하다 생각되면, 본사에 고하여 이조에 이문(移文)하고 뻔뻔스럽게 서용을 구하니, 오직 뒤떨어질까 염려됩니다. 또한 염정(廉靜)하고 퇴양(退讓)하는 도리[道]를 보이는 소이도 아닙니다. 이조에서는 전선(銓選) 이외에 달리 하는 일이 없는데도 고과(考課)하는 어려움을 꺼려서 관리로 하여금 그 노고를 자서(自敍)하게 하니, 심히 뜻이 없다 할 것입니다. 엎드려 원하건대, 이조로 하여금 고핵(考覈)하여 제수(除授)하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이를 가납(嘉納)하였다. 의정부에 내려 시행할 만한 조건(條件)을 의논하여 아뢰게 하고, 예조에 전지하기를,
"성균관(成均館)과 사부 학당(四部學堂) 학생은 그전 상양수(常養數)대로 공급하라."
하고, 이조에 전지하기를,
"경외 관리(京外官吏)들이 질만(秩滿)과 가자(加資)할 때에 세월과 공적(功績)을 자록(自錄)하고 자천(自薦)하는 것은 진실로 불가하니, 금후로는 이조에서 그 공과(功過)를 상고하여 제수(除授)함으로써 매진(媒進)의 폐단을 막게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책 12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7책 267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왕실-의식(儀式)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재정-국용(國用) / 사법-재판(裁判) / 사법-행형(行刑)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역사-고사(故事) / 인사-관리(管理) / 어문학-문학(文學) / 사상-유학(儒學)
- [註 251] 구우 일모(九牛一毛) : 썩 많은 가운데서 가장 적은 것을 일컫는 말.
- [註 252] 양현고(養賢庫) : 조선조 때 성균관(成均館) 유생에게 주는 식량의 일을 맡아 보는 관아. 태조(太祖) 원년에 설치하여 고종(高宗) 31년에 폐하였음.
- [註 253] 거관(居館) : 성균관의 재방(齋房)에 들어가 있는 일.
- [註 254] 거관(去官) : 벼슬을 가는 일.
원문
○辛巳/兼判通禮門事李中允、成均大司成李承召輪對。 中允啓曰: "國家立聽民告訴之法, 凡民一有不便於己, 則輒飾虛僞, 訴其守令, 事出誣罔, 亦不坐罪。 夫守令, 一邑之父母也, 以子訴父, 於義已爲不可, 況修飾其所不爲者乎? 請禁之。" 上曰: "然則守令非法, 人主何以知之?" 對曰: "觀察使秉黜陟之任。 統察一方, 非法守令, 觀察使必懲矣, 如有之而不能黜之, 則責在觀察使矣。" 上曰: "汝殊不知也。" 遂書中允所言, 示承政院曰: "毋聽民訴而守令之罪連坐觀察使, 觀察使一而守令多, 焉有保全觀察使乎! 然則君塞聰明, 觀察使不擧, 民無所告, 守令放縱, 其事若何? 中允可謂未之思也已。" 承召以書啓曰:
大學, 賢士之關, 風敎所先。 唐 太宗增廣生員, 至三千二百, 今國學所養纔二百。 臣計二百生一年之費, 九百六十石, 是於國家經費, 九牛一毛耳, 有司以一歲之歉, 奏請減廩, 只養一百, 有違聖上崇學之意。 且舊法, 四部學堂皆有廩食, 近年以來從權悉罷, 今又減國學之廩, 在治體何如? 臣聞養賢庫今年所納田稅六百餘石, 若加三百餘石, 則足支二百生一歲之廩, 不宜惜數百石之費, 以招後人之議, 伏望更留睿思。
一, 事大交隣, 莫重辭命。 我國所以見重於上國者, 在崇禮義而勤述職、通古今而善辭命, 是故朝廷命使, 必擇博學有文章者遣之, 亦以我國人喜文學耳。 由此觀之, 文章雖末技, 誠不可廢。 世宗嘗選文臣之年少英敏者, 使就山房讀書, 蓋爲此也。 今上自秉文柄者下至稍能文辭者, 皆世宗所培養, 若今不預養作成之, 則後無繼之者矣。 夫博奕, 小數也, 不專心致志, 猶且不得, 況學文詞章乎? 伏願一如世宗收效幸甚。
一, 舊法, 敎導、幼學則年滿四十, 然後取才充差, 生員、進士, 亦年滿四十, 方許敍用, 誠以師儒之任當授老成人。 今會試講經入格者, 不拘年限, 悉差敎導, 非但有違舊法, 一則狂幼之輩, 專事慢遊以廢職業, 一則穎悟可敎者, 皆不居館, 國學亦因以虛疎, 非小弊也。 伏願會講入格者, 依舊法限年敍用。
一, 國家以循資格用人, 由是人皆重其資級, 若有大祭祀, 則前例加資。 若別置郡監, 則曰後必論賞, 爭趨競求, 不顧廉恥, 此無他, 爵賞太輕, 有一事功則陞資超秩, 無所愛惜故也。 弊習已久, 至今未革, 夫趨事赴功, 固臣職之當爲也。 小則慰勞之, 大則賜齎之, 亦足矣, 何必輕與爵秩? 儻有靖國安民之功, 又何以賞之哉? 臣聞明主愛一嚬一笑, 伏願重其爵賞, 以杜冒進之習。
一, 舊法, 官吏秩滿當遷者, 吏曹覈其眞僞, 依例遷敍, 今使官吏自錄, 歲月久近, 以爲我當加資、我當去官, 告于本司, 移文吏曹, 靦然求敍, 惟恐或後, 亦非所以示廉靜退讓之道也。 吏曹, 銓選外他無所事, 乃憚考課之難, 使官吏自敍其勞, 甚無意謂。 伏願令吏曹考覈除授。
上嘉納之。 下議政府議啓可行條件, 傳旨禮曹曰: "成均館、四部學堂學生, 依前常養數供給。" 傳旨吏曹曰: "京外官吏秩滿及加資時, 歲月功績自錄自薦, 實爲不可。 今後吏曹考其功過除授, 以杜媒進之弊。"
- 【태백산사고본】 5책 12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7책 267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왕실-의식(儀式)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재정-국용(國用) / 사법-재판(裁判) / 사법-행형(行刑)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역사-고사(故事) / 인사-관리(管理) / 어문학-문학(文學) / 사상-유학(儒學)
세조실록12권, 세조 4년 4월 24일 辛巳 1/4 기사 / 1458년 명 천순(天順) 2년
이중윤이 백성이 수령을 무고함을 금하라고 청하다. 이승소가 올린 성균 유생·사대 교린·가자 등에 대한 상서
국역
겸판통례문사(兼判通禮門事) 이중윤(李中允), 성균 대사성(成均大司成) 이승소(李承召)가 윤대(輪對)하였다. 이중윤이 아뢰기를,
"국가에서 백성의 고소를 듣는 법[聽民告訴之法]을 세웠더니, 무릇 백성이 하나라도 자기에게 불편함이 있으면 문득 허위(虛僞)를 꾸며서 그 수령(守令)을 고소하되, 일이 무망(誣罔)에서 나왔어도 또한 좌죄(坐罪)하지 않습니다. 대저 수령은 일읍(一邑)의 부모(父母)입니다. 아들로 아비를 소송함은 의(義)에 이미 옳지 못함이 되거늘, 하물며 그 하지 않은 것을 수식(修飾)한 자이겠습니까? 청컨대 금(禁)하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수령의 비법(非法)을 인주(人主)가 어떻게 알겠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관찰사(觀察使)는 출척(黜陟)의 직임을 잡고 있습니다. 한 지방을 통찰(統察)하여 비법(非法)한 수령은 반드시 관찰사가 징계(懲戒)해야 하는데, 만일 있는데도 출척하지 않았으면 책임은 관찰사에게 있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너는 다른 것은 알지 못한다."
하고, 드디어 글로써 이중윤(李中允)이 말한 바를 승정원에 보이고 말하기를,
"민소(民訴)를 듣지 말고 수령의 죄가 관찰사에게 연좌(連坐)되게 하면, 관찰사(觀察使)는 하나이고 수령(守令)은 많으니 관찰사를 보전함이 있겠는가? 그렇다면 임금은 총명(聰明)이 막히고, 관찰사는 받들지 않으며, 백성은 고(告)할 데가 없어서 수령이 방종(放縱)할 것이니, 그 일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중윤은 생각하지 못했다고 이를 만하다."
하였다. 이승소(李承召)가 글[書]로써 아뢰기를,
"태학(太學)은 현사(賢士)의 관(關)이라 풍교(風敎)를 먼저 하여야 합니다. 당(唐)나라의 태종(太宗)은 생원(生員)을 증광(增廣)하여 3천 2백에 이르렀는데, 지금 국학(國學)에서 기르는 것은 겨우 2백입니다. 신이 2백 학생의 1년 비용을 계산하니 9백 60석입니다. 이것은 국가의 경비(經費)에 있어서 구우 일모(九牛一毛)251) 일 뿐인데, 유사(有司)가 한 해의 흉년으로써 감름(減廩)을 주청(奏請)하여 단지 1백을 기르게 하니, 성상(聖上)의 숭학(崇學)하는 뜻에 어긋남이 있습니다. 또 구법(舊法)에는 사부 학당(四部學堂)에 모두 늠식(廩食)이 있었는데, 근년 이래로 권도(權道)를 따라 다 파(罷)하였고, 이제 또 국학의 늠식을 감하니 치체(治體)에 어떻겠습니까? 신이 듣건대 양현고(養賢庫)252) 의 금년에 수납하는 전세(田稅)는 6백여 석이라 하니, 만약 3백여 석을 더하면 족히 2백 학생의 한 해의 늠식을 지탱할 것입니다. 수백 석(數百石)의 비용을 아껴서 뒷사람의 의논을 부름은 옳지 못하니, 엎드려 바라건대 다시 예사(睿思)를 두소서.
1. 사대 교린(事大交隣)은 사명(辭命)이 막중(莫重)합니다. 우리 나라가 중국에 소중히 여김을 받는 소이(所以)는 예의(禮義)를 숭상하고 술직(述職)에 부지런하며, 고금(古今)을 통하여 사명(辭命)을 잘하는 까닭에 중국 조정에서 사신을 임명함에는 반드시 박학(博學)하고 문장이 있는 자를 가려서 보내었고, 또한 우리 나라 사람도 문학을 좋아하였다고 하겠습니다. 이로써 보면 문장은 비록 하찮은 재주[末技]이나 진실로 폐(廢)할 수 없습니다. 세종께서 일찍이 문신의 연소(年少)하고 영민(英敏)한 자를 가려서 산방(山房)에 나아가 독서하게 하심도 대개 이를 위함이었습니다. 이제 위로는 문병(文柄)을 잡은 자로부터 아래로는 문사(文辭)에 약간 능한 자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세종께서 배양(培養)한 것이니, 만약 이제 미리 길러서 작성(作成)하지 않는다면 뒤에 이를 계승할 자가 없을 것입니다. 대저 박혁(博奕)은 소수(少數)이나 전심(專心)하여 치의(致意)하지 않으면 오히려 또 얻지 못하는데, 하물며 학문(學文)과 사장(詞章)이겠습니까? 엎드려 원하건대 한결같이 세종과 같이 하여 효험을 거두면 심히 다행하겠습니다.
1. 구법(舊法)에 교도(敎導)·유학(幼學)은 나이가 40이 찬 연후에 취재(取才)하여 충차(充差)하였고, 생원(生員)·진사(進士)도 또한 나이가 40이 차야만 서용(敍用)함을 허락하였으니, 진실로 사유(師儒)의 임무는 마땅히 노성(老成)한 사람에게 주어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회시(會試)에 강경(講經)하여 입격(入格)한 자는 연한(年限)을 불구하고 다 교도(敎導)를 임명하니 구법에 어긋남이 있을 뿐 아니라, 하나는 광유(狂幼)의 무리가 만유(慢遊)하는 데 전사(專事)하여 직업을 폐(廢)하고, 하나는 영오(穎悟)하여 가르칠 만한 자도 모두 거관(居館)253) 하지 않으니, 국학도 또한 이 때문에 허소(虛疎)하여서 작은 폐단이 아닙니다. 엎드려 원하건대, 회강에 입격한 자도 구법에 따라 나이를 한정하여 서용(敍用)하소서.
1. 국가에서 자격(資格)에 따라 사람을 쓰기 때문에 이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모두 그 자급(資級)을 중히 여기니, 만약 큰 제사(祭祀)가 있으면 전례대로 가자(加資)하소서. 만약 따로 도감(都監)을 두면 뒤에 반드시 논상(論賞)하여 추경(趨競)을 구하되 염치를 돌보지 않을 것이니, 이는 다름이 아니라 작상(爵賞)이 너무 가벼워서이며, 한 가지 사공(事功)이 있으면 자급을 높이고 직질을 뛰어 줌[超秩]에 애석(愛惜)함이 없는 까닭입니다. 폐습(弊習)이 이미 오래 되었으나 지금까지 고치지 못하였는데, 대저 일에 추창하고 공에 이르는 것은 신직(臣職)으로 당연히 할 일입니다. 작으면 위로(慰勞)하고, 크면 사뢰(賜賚)함도 또한 족하거늘, 하필 경솔히 작질(爵秩)을 주어야 하겠습니까? 혹시 정국(靖國)하고 안민(安民)한 공이 있으면 또 무엇으로 상을 주겠습니까? 신이 듣건대, ‘총명한 군주는 한 번 찡그리고 한 번 웃는 것[一嚬一笑]을 아낀다.’고 하였으니, 엎드려 원하건대, 그 작상(爵賞)을 중히 하여서 모진(冒進)하는 습관을 막으소서.
1. 구법에는 관리가 질만(秩滿)으로 마땅히 천직(遷職)할 자는 이조에서 그 진위(眞僞)를 고핵(考覈)하여 예(例)에 따라 천서(遷敍)하였는데, 지금은 관리로 하여금 자록(自錄)하게 하므로, 세월의 오래고 가까움을 가지고 내가 가자(加資)되어야 마땅하다 여겨지고 내가 거관(去官)254) 되어야 마땅하다 생각되면, 본사에 고하여 이조에 이문(移文)하고 뻔뻔스럽게 서용을 구하니, 오직 뒤떨어질까 염려됩니다. 또한 염정(廉靜)하고 퇴양(退讓)하는 도리[道]를 보이는 소이도 아닙니다. 이조에서는 전선(銓選) 이외에 달리 하는 일이 없는데도 고과(考課)하는 어려움을 꺼려서 관리로 하여금 그 노고를 자서(自敍)하게 하니, 심히 뜻이 없다 할 것입니다. 엎드려 원하건대, 이조로 하여금 고핵(考覈)하여 제수(除授)하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이를 가납(嘉納)하였다. 의정부에 내려 시행할 만한 조건(條件)을 의논하여 아뢰게 하고, 예조에 전지하기를,
"성균관(成均館)과 사부 학당(四部學堂) 학생은 그전 상양수(常養數)대로 공급하라."
하고, 이조에 전지하기를,
"경외 관리(京外官吏)들이 질만(秩滿)과 가자(加資)할 때에 세월과 공적(功績)을 자록(自錄)하고 자천(自薦)하는 것은 진실로 불가하니, 금후로는 이조에서 그 공과(功過)를 상고하여 제수(除授)함으로써 매진(媒進)의 폐단을 막게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책 12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7책 267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왕실-의식(儀式)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재정-국용(國用) / 사법-재판(裁判) / 사법-행형(行刑)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역사-고사(故事) / 인사-관리(管理) / 어문학-문학(文學) / 사상-유학(儒學)
- [註 251] 구우 일모(九牛一毛) : 썩 많은 가운데서 가장 적은 것을 일컫는 말.
- [註 252] 양현고(養賢庫) : 조선조 때 성균관(成均館) 유생에게 주는 식량의 일을 맡아 보는 관아. 태조(太祖) 원년에 설치하여 고종(高宗) 31년에 폐하였음.
- [註 253] 거관(居館) : 성균관의 재방(齋房)에 들어가 있는 일.
- [註 254] 거관(去官) : 벼슬을 가는 일.
원문
○辛巳/兼判通禮門事李中允、成均大司成李承召輪對。 中允啓曰: "國家立聽民告訴之法, 凡民一有不便於己, 則輒飾虛僞, 訴其守令, 事出誣罔, 亦不坐罪。 夫守令, 一邑之父母也, 以子訴父, 於義已爲不可, 況修飾其所不爲者乎? 請禁之。" 上曰: "然則守令非法, 人主何以知之?" 對曰: "觀察使秉黜陟之任。 統察一方, 非法守令, 觀察使必懲矣, 如有之而不能黜之, 則責在觀察使矣。" 上曰: "汝殊不知也。" 遂書中允所言, 示承政院曰: "毋聽民訴而守令之罪連坐觀察使, 觀察使一而守令多, 焉有保全觀察使乎! 然則君塞聰明, 觀察使不擧, 民無所告, 守令放縱, 其事若何? 中允可謂未之思也已。" 承召以書啓曰:
大學, 賢士之關, 風敎所先。 唐 太宗增廣生員, 至三千二百, 今國學所養纔二百。 臣計二百生一年之費, 九百六十石, 是於國家經費, 九牛一毛耳, 有司以一歲之歉, 奏請減廩, 只養一百, 有違聖上崇學之意。 且舊法, 四部學堂皆有廩食, 近年以來從權悉罷, 今又減國學之廩, 在治體何如? 臣聞養賢庫今年所納田稅六百餘石, 若加三百餘石, 則足支二百生一歲之廩, 不宜惜數百石之費, 以招後人之議, 伏望更留睿思。
一, 事大交隣, 莫重辭命。 我國所以見重於上國者, 在崇禮義而勤述職、通古今而善辭命, 是故朝廷命使, 必擇博學有文章者遣之, 亦以我國人喜文學耳。 由此觀之, 文章雖末技, 誠不可廢。 世宗嘗選文臣之年少英敏者, 使就山房讀書, 蓋爲此也。 今上自秉文柄者下至稍能文辭者, 皆世宗所培養, 若今不預養作成之, 則後無繼之者矣。 夫博奕, 小數也, 不專心致志, 猶且不得, 況學文詞章乎? 伏願一如世宗收效幸甚。
一, 舊法, 敎導、幼學則年滿四十, 然後取才充差, 生員、進士, 亦年滿四十, 方許敍用, 誠以師儒之任當授老成人。 今會試講經入格者, 不拘年限, 悉差敎導, 非但有違舊法, 一則狂幼之輩, 專事慢遊以廢職業, 一則穎悟可敎者, 皆不居館, 國學亦因以虛疎, 非小弊也。 伏願會講入格者, 依舊法限年敍用。
一, 國家以循資格用人, 由是人皆重其資級, 若有大祭祀, 則前例加資。 若別置郡監, 則曰後必論賞, 爭趨競求, 不顧廉恥, 此無他, 爵賞太輕, 有一事功則陞資超秩, 無所愛惜故也。 弊習已久, 至今未革, 夫趨事赴功, 固臣職之當爲也。 小則慰勞之, 大則賜齎之, 亦足矣, 何必輕與爵秩? 儻有靖國安民之功, 又何以賞之哉? 臣聞明主愛一嚬一笑, 伏願重其爵賞, 以杜冒進之習。
一, 舊法, 官吏秩滿當遷者, 吏曹覈其眞僞, 依例遷敍, 今使官吏自錄, 歲月久近, 以爲我當加資、我當去官, 告于本司, 移文吏曹, 靦然求敍, 惟恐或後, 亦非所以示廉靜退讓之道也。 吏曹, 銓選外他無所事, 乃憚考課之難, 使官吏自敍其勞, 甚無意謂。 伏願令吏曹考覈除授。
上嘉納之。 下議政府議啓可行條件, 傳旨禮曹曰: "成均館、四部學堂學生, 依前常養數供給。" 傳旨吏曹曰: "京外官吏秩滿及加資時, 歲月功績自錄自薦, 實爲不可。 今後吏曹考其功過除授, 以杜媒進之弊。"
- 【태백산사고본】 5책 12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7책 26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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