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실록6권, 세조 3년 2월 5일 己亥 2/2 기사 / 1457년 명 천순(天順) 1년
문과 중시에 책문을 내리다
국역
임금이 근정전(勤政殿)에 나아가 친히 문과 중시(文科重試)를 책문(策問)하였는데, 책문에 이르기를,
"도적이 날로 성하고, 육축(六畜)165) 이 번성하지 않고, 군기(軍器)가 단련(鍛鍊)되지 않으니, 이 세 가지는 이를 생각해 보아도 그 요령을 얻지 못하겠다. 그대들 대부(大夫)는 마음을 다하여 대답하라."
하였다. 우의정(右議政) 정창손(鄭昌孫)과 예문관 대제학(藝文館大提學) 이변(李邊)을 독권관(讀券官)으로 삼고, 우승지(右承旨) 윤자운(尹子雲)·우부승지(右副承旨) 권지(權摯)·판군기감사(判軍器監事) 이극감(李克堪)을 대독관(對讀官)으로 삼아, 모화관(慕華館)으로 거둥하여 무과(武科)의 초시(初試) 및 중시(重試)를 시험하고, 야인(野人)과 왜인(倭人) 등을 먹이고는 야인(野人)에게 명하여 사후(射侯)166) 하게 하고, 또 모구(毛毬)를 쏘게 하였다. 돌아오다가 잠저(潛邸)167) 의 구거(舊居)168) 에 이르러 호종(扈從)하는 종친(宗親)과 재신(宰臣)을 불러서 술자리를 베풀고는, 임금이 말하기를,
"이 곳은 나의 풍패(豐沛)169) 이다. 옛날에 한(漢)나라 고조(高祖)가 말하기를, ‘부귀(富貴)를 하고서 고향(故鄕)에 돌아가지 않는다면 마치 비단옷을 입고 밤에 가는 것과 같다.’고 하면서 패중(沛中)의 부로(父老)들을 불러서 술자리를 베풀고는 대풍가(大風歌)를 지어 부르면서 즐겼었는데, 여러 경(卿)들도 또한 나의 패중의 부로이다. 오늘날의 일이 그때의 일에 가까운 점이 없겠는가?"
하고는, 한껏 즐기고 헤어졌다.
- 【태백산사고본】 3책 6권 26장 B면【국편영인본】 7책 176면
- 【분류】인사-선발(選拔) / 사법-치안(治安) / 왕실-사급(賜給) / 농업-축산(畜産) / 외교-왜(倭) / 외교-야(野) / 군사-군기(軍器)
- [註 165] 육축(六畜) : 소·말·양·닭·개·돼지.
- [註 166] 사후(射侯) : 활로써 목표물인 솔[侯]을 쏘던 일, 솔[侯]은 사포(射布)에 짐승의 머리를 그린 것인데, 웅후(熊侯)·미후(糜侯)·시후(豕侯)가 있음.
- [註 167] 잠저(潛邸) : 임금이 즉위(卽位)하기 전에 말함.
- [註 168] 구거(舊居) : 예전에 살던 집.
- [註 169] 풍패(豐沛) : 한 고조(漢高祖)의 고향. 곧 제왕의 고향을 일컫는 말.
원문
○上御勤政殿, 親策文科重試, 策曰: "盜賊日熾, 六畜不蕃、軍器不鍊, 此三者思之而未得其要。 子大夫悉心以對。" 以右議政鄭昌孫、藝文大提學李邊爲讀券官, 右承旨尹子雲、右副承旨權摯、判軍器監事李克堪對讀官, 幸慕華館, 試武擧初試及重試, 饋野人、倭人等, 命野人射侯, 且射毛毬。 還至潛邸舊居, 召扈從宗宰置酒, 上曰: "此吾豐沛也。 昔漢 高祖曰, ‘富貴不歸故鄕, 如衣繡夜行’, 召沛中父老置酒, 歌大風以樂之, 諸卿亦我沛中父老也。 今日之事, 得無近之歟?" 極歡而罷。
- 【태백산사고본】 3책 6권 26장 B면【국편영인본】 7책 176면
- 【분류】인사-선발(選拔) / 사법-치안(治安) / 왕실-사급(賜給) / 농업-축산(畜産) / 외교-왜(倭) / 외교-야(野) / 군사-군기(軍器)
세조 3년 (1457) 2월 5일
세조실록6권, 세조 3년 2월 5일 己亥 2/2 기사 / 1457년 명 천순(天順) 1년
문과 중시에 책문을 내리다
국역
임금이 근정전(勤政殿)에 나아가 친히 문과 중시(文科重試)를 책문(策問)하였는데, 책문에 이르기를,
"도적이 날로 성하고, 육축(六畜)165) 이 번성하지 않고, 군기(軍器)가 단련(鍛鍊)되지 않으니, 이 세 가지는 이를 생각해 보아도 그 요령을 얻지 못하겠다. 그대들 대부(大夫)는 마음을 다하여 대답하라."
하였다. 우의정(右議政) 정창손(鄭昌孫)과 예문관 대제학(藝文館大提學) 이변(李邊)을 독권관(讀券官)으로 삼고, 우승지(右承旨) 윤자운(尹子雲)·우부승지(右副承旨) 권지(權摯)·판군기감사(判軍器監事) 이극감(李克堪)을 대독관(對讀官)으로 삼아, 모화관(慕華館)으로 거둥하여 무과(武科)의 초시(初試) 및 중시(重試)를 시험하고, 야인(野人)과 왜인(倭人) 등을 먹이고는 야인(野人)에게 명하여 사후(射侯)166) 하게 하고, 또 모구(毛毬)를 쏘게 하였다. 돌아오다가 잠저(潛邸)167) 의 구거(舊居)168) 에 이르러 호종(扈從)하는 종친(宗親)과 재신(宰臣)을 불러서 술자리를 베풀고는, 임금이 말하기를,
"이 곳은 나의 풍패(豐沛)169) 이다. 옛날에 한(漢)나라 고조(高祖)가 말하기를, ‘부귀(富貴)를 하고서 고향(故鄕)에 돌아가지 않는다면 마치 비단옷을 입고 밤에 가는 것과 같다.’고 하면서 패중(沛中)의 부로(父老)들을 불러서 술자리를 베풀고는 대풍가(大風歌)를 지어 부르면서 즐겼었는데, 여러 경(卿)들도 또한 나의 패중의 부로이다. 오늘날의 일이 그때의 일에 가까운 점이 없겠는가?"
하고는, 한껏 즐기고 헤어졌다.
- 【태백산사고본】 3책 6권 26장 B면【국편영인본】 7책 176면
- 【분류】인사-선발(選拔) / 사법-치안(治安) / 왕실-사급(賜給) / 농업-축산(畜産) / 외교-왜(倭) / 외교-야(野) / 군사-군기(軍器)
- [註 165] 육축(六畜) : 소·말·양·닭·개·돼지.
- [註 166] 사후(射侯) : 활로써 목표물인 솔[侯]을 쏘던 일, 솔[侯]은 사포(射布)에 짐승의 머리를 그린 것인데, 웅후(熊侯)·미후(糜侯)·시후(豕侯)가 있음.
- [註 167] 잠저(潛邸) : 임금이 즉위(卽位)하기 전에 말함.
- [註 168] 구거(舊居) : 예전에 살던 집.
- [註 169] 풍패(豐沛) : 한 고조(漢高祖)의 고향. 곧 제왕의 고향을 일컫는 말.
원문
○上御勤政殿, 親策文科重試, 策曰: "盜賊日熾, 六畜不蕃、軍器不鍊, 此三者思之而未得其要。 子大夫悉心以對。" 以右議政鄭昌孫、藝文大提學李邊爲讀券官, 右承旨尹子雲、右副承旨權摯、判軍器監事李克堪對讀官, 幸慕華館, 試武擧初試及重試, 饋野人、倭人等, 命野人射侯, 且射毛毬。 還至潛邸舊居, 召扈從宗宰置酒, 上曰: "此吾豐沛也。 昔漢 高祖曰, ‘富貴不歸故鄕, 如衣繡夜行’, 召沛中父老置酒, 歌大風以樂之, 諸卿亦我沛中父老也。 今日之事, 得無近之歟?" 極歡而罷。
- 【태백산사고본】 3책 6권 26장 B면【국편영인본】 7책 176면
- 【분류】인사-선발(選拔) / 사법-치안(治安) / 왕실-사급(賜給) / 농업-축산(畜産) / 외교-왜(倭) / 외교-야(野) / 군사-군기(軍器)
원본
세조 3년 (1457) 2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