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실록4권, 문종 즉위년 10월 21일 辛卯 1/4 기사 / 1450년 명 경태(景泰) 1년
안동의 아전과 백성들이 전 부사의 탐오함과 불법을 상언하나 듣지 아니하다
국역
정사를 보았다. 안동(安東)의 아전[吏]과 백성들이 상언(上言)하기를,
"전 부사(府使) 정지담(鄭之澹)이 선산 부사(善山府使) 김자갱(金子鏗)과 서로 다투다가, 임소(任所)의 창기(倡妓)를 간통하고 탐오(貪汚)하여 불법(不法)하였다고 무고(誣告)당하여 쫓겨났으니, 청컨대 그 원통함을 씻어 주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옛부터 수령(守令)이 체임(遞任)하면 그 읍의 인민이 고장(告狀)하여 변명하는 것이 전례이다."
하고, 드디어 윤허(允許)하지 않았다. 대사헌(大司憲) 안완경(安完慶)이 아뢰기를,
"사신(使臣) 등이 진헌(進獻)할 해청(海靑)과 어물(魚物)을 구하는데 외국에서 황제(皇帝)의 명을 알지 못하니, 청을 따르는 것이 미편(未便)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내가 바로 가볍게 승낙하고, 이미 정부로 하여금 의논하게 하였으니, 형세가 중간에서 변경하기가 어렵다."
하였다. 공조 판서 정인지(鄭麟趾)가 아뢰기를,
"주본(奏本)에다가 이를 붙여 보내는 사유(事由)를 아울러 기록하는 것이 편하겠습니다."
하니, 우참찬(右參贊) 정갑손(鄭甲孫)이 아뢰기를,
"주문(奏聞)할 사유을 사신에게 고(告)한다면 저들의 허실(虛實)을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하므로, 임금이 말하기를,
"경들의 말이 비록 정대(正大)하다고 하더라도, 윗사람을 위하는 일은 곡진(曲盡)1140) 하게 청종(聽從)하는 것이 또한 옳지 않겠느냐?"
하였다. 병조 참판(兵曹參判) 황수신(黃守身)이 아뢰기를,
"왜인(倭人) 20여 인이 와서 내이포(乃而浦)·부산포(富山浦)·염포(鹽浦) 등지에 거주하는데, 혹시 변(變)을 일으킬까 염려되니, 마땅히 도체찰사(都體察使) 정분(鄭苯)으로 하여금 그 정상을 자세히 살펴보고 오게 하소서. 또 왜인(倭人)이 와서 거주한 지가 이미 오래 되니, 갑자기 돌아가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수어(守禦)할 방책과 접대할 계모(計謀)를 늦출 수는 없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체찰사(體察使)를 보낸 것은 이러한 따위의 일을 겸하여 살피려는 것이다."
하였다. 황수신이 또 아뢰기를,
"신이 진도(陣圖)를 보니, 바깥에는 방패(防牌)이고 다음이 보졸(步卒)·창(槍)·장검(長劍)이고, 다음이 화포(火砲)·궁수(弓手)이고, 다음이 기병(騎兵)입니다. 적(敵)을 상대할 때에는 보졸(步卒)이 가장 으뜸인데, 보졸이 매우 적으니, 습진(習陣)할 때 기병(騎兵)으로써 말을 버리고 보졸(步卒)을 만드소서. 대체로 평상시에 습진(習陣)하는 것은 미리 익혀서 변(變)에 응하고자 함이니, 평상시에 기병으로써 보병을 만들어서 익히게 하였다가, 적(敵)이 임하여 변에 응하는 때에 이르러서도 이같이 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청컨대 보졸을 더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방패(防牌)1141) ·섭육십(攝六十)1142) 으로 하는 것이 가하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책 4권 29장 A면【국편영인본】 6책 307면
- 【분류】인사-관리(管理) / 재정-진상(進上) / 외교-명(明) / 외교-왜(倭) / 군사-군정(軍政) / 사법-재판(裁判) / 사법-탄핵(彈劾)
원문
○辛卯/視事。 安東吏民等上言: "前府使鄭之澹與善山府使金子鏗相詰, 以奸任所倡妓、貪汚不法, 被誣見黜, 請雪其冤。" 上曰: "自古守令遞任, 則其邑人民告狀辨明, 例也。" 遂不允。 大司憲安完慶啓曰: "使臣等求進獻海靑及魚物, 外國未知皇帝之命, 而從請未便。" 上曰: "予乃輕諾, 已令政府擬議, 勢難中變。" 工曹判書鄭麟趾啓曰: "於奏本, 幷錄就付事由爲便。" 右參贊鄭甲孫啓曰: "奏聞事由告於使臣, 則彼之虛實, 可知矣。" 上曰: "卿等之言, 雖云正大, 爲上之事, 曲盡聽從, 不亦可乎?" 兵曹參判黃守身啓曰: "倭人二千餘人, 來居於乃而浦、富山浦、塩浦等處, 慮或生變。 宜令都體察使鄭苯, 審察其狀而來。 且倭人來居已久, 不可遽還, 然守禦之策、接待之謀, 不可緩弛。" 上曰: "遣體察使者, 以盡察此等事也。" 守身又啓曰: "臣觀陣圖, 外則防牌, 次步卒、槍、長劍, 次火炮、弓手, 次騎兵。 當應敵之時, 步卒爲最, 而步卒甚少。 習陣時, 以騎兵舍馬, 作步卒。 夫平時習陣者, 欲其預習應變也。 平時以騎兵作步卒而習之, 至於臨敵應變之時, 如之何? 請加步卒。" 上曰: "以防牌、攝六十爲之, 可也。"
- 【태백산사고본】 2책 4권 29장 A면【국편영인본】 6책 307면
- 【분류】인사-관리(管理) / 재정-진상(進上) / 외교-명(明) / 외교-왜(倭) / 군사-군정(軍政) / 사법-재판(裁判) / 사법-탄핵(彈劾)
문종실록4권, 문종 즉위년 10월 21일 辛卯 1/4 기사 / 1450년 명 경태(景泰) 1년
안동의 아전과 백성들이 전 부사의 탐오함과 불법을 상언하나 듣지 아니하다
국역
정사를 보았다. 안동(安東)의 아전[吏]과 백성들이 상언(上言)하기를,
"전 부사(府使) 정지담(鄭之澹)이 선산 부사(善山府使) 김자갱(金子鏗)과 서로 다투다가, 임소(任所)의 창기(倡妓)를 간통하고 탐오(貪汚)하여 불법(不法)하였다고 무고(誣告)당하여 쫓겨났으니, 청컨대 그 원통함을 씻어 주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옛부터 수령(守令)이 체임(遞任)하면 그 읍의 인민이 고장(告狀)하여 변명하는 것이 전례이다."
하고, 드디어 윤허(允許)하지 않았다. 대사헌(大司憲) 안완경(安完慶)이 아뢰기를,
"사신(使臣) 등이 진헌(進獻)할 해청(海靑)과 어물(魚物)을 구하는데 외국에서 황제(皇帝)의 명을 알지 못하니, 청을 따르는 것이 미편(未便)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내가 바로 가볍게 승낙하고, 이미 정부로 하여금 의논하게 하였으니, 형세가 중간에서 변경하기가 어렵다."
하였다. 공조 판서 정인지(鄭麟趾)가 아뢰기를,
"주본(奏本)에다가 이를 붙여 보내는 사유(事由)를 아울러 기록하는 것이 편하겠습니다."
하니, 우참찬(右參贊) 정갑손(鄭甲孫)이 아뢰기를,
"주문(奏聞)할 사유을 사신에게 고(告)한다면 저들의 허실(虛實)을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하므로, 임금이 말하기를,
"경들의 말이 비록 정대(正大)하다고 하더라도, 윗사람을 위하는 일은 곡진(曲盡)1140) 하게 청종(聽從)하는 것이 또한 옳지 않겠느냐?"
하였다. 병조 참판(兵曹參判) 황수신(黃守身)이 아뢰기를,
"왜인(倭人) 20여 인이 와서 내이포(乃而浦)·부산포(富山浦)·염포(鹽浦) 등지에 거주하는데, 혹시 변(變)을 일으킬까 염려되니, 마땅히 도체찰사(都體察使) 정분(鄭苯)으로 하여금 그 정상을 자세히 살펴보고 오게 하소서. 또 왜인(倭人)이 와서 거주한 지가 이미 오래 되니, 갑자기 돌아가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수어(守禦)할 방책과 접대할 계모(計謀)를 늦출 수는 없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체찰사(體察使)를 보낸 것은 이러한 따위의 일을 겸하여 살피려는 것이다."
하였다. 황수신이 또 아뢰기를,
"신이 진도(陣圖)를 보니, 바깥에는 방패(防牌)이고 다음이 보졸(步卒)·창(槍)·장검(長劍)이고, 다음이 화포(火砲)·궁수(弓手)이고, 다음이 기병(騎兵)입니다. 적(敵)을 상대할 때에는 보졸(步卒)이 가장 으뜸인데, 보졸이 매우 적으니, 습진(習陣)할 때 기병(騎兵)으로써 말을 버리고 보졸(步卒)을 만드소서. 대체로 평상시에 습진(習陣)하는 것은 미리 익혀서 변(變)에 응하고자 함이니, 평상시에 기병으로써 보병을 만들어서 익히게 하였다가, 적(敵)이 임하여 변에 응하는 때에 이르러서도 이같이 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청컨대 보졸을 더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방패(防牌)1141) ·섭육십(攝六十)1142) 으로 하는 것이 가하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책 4권 29장 A면【국편영인본】 6책 307면
- 【분류】인사-관리(管理) / 재정-진상(進上) / 외교-명(明) / 외교-왜(倭) / 군사-군정(軍政) / 사법-재판(裁判) / 사법-탄핵(彈劾)
원문
○辛卯/視事。 安東吏民等上言: "前府使鄭之澹與善山府使金子鏗相詰, 以奸任所倡妓、貪汚不法, 被誣見黜, 請雪其冤。" 上曰: "自古守令遞任, 則其邑人民告狀辨明, 例也。" 遂不允。 大司憲安完慶啓曰: "使臣等求進獻海靑及魚物, 外國未知皇帝之命, 而從請未便。" 上曰: "予乃輕諾, 已令政府擬議, 勢難中變。" 工曹判書鄭麟趾啓曰: "於奏本, 幷錄就付事由爲便。" 右參贊鄭甲孫啓曰: "奏聞事由告於使臣, 則彼之虛實, 可知矣。" 上曰: "卿等之言, 雖云正大, 爲上之事, 曲盡聽從, 不亦可乎?" 兵曹參判黃守身啓曰: "倭人二千餘人, 來居於乃而浦、富山浦、塩浦等處, 慮或生變。 宜令都體察使鄭苯, 審察其狀而來。 且倭人來居已久, 不可遽還, 然守禦之策、接待之謀, 不可緩弛。" 上曰: "遣體察使者, 以盡察此等事也。" 守身又啓曰: "臣觀陣圖, 外則防牌, 次步卒、槍、長劍, 次火炮、弓手, 次騎兵。 當應敵之時, 步卒爲最, 而步卒甚少。 習陣時, 以騎兵舍馬, 作步卒。 夫平時習陣者, 欲其預習應變也。 平時以騎兵作步卒而習之, 至於臨敵應變之時, 如之何? 請加步卒。" 上曰: "以防牌、攝六十爲之, 可也。"
- 【태백산사고본】 2책 4권 29장 A면【국편영인본】 6책 307면
- 【분류】인사-관리(管理) / 재정-진상(進上) / 외교-명(明) / 외교-왜(倭) / 군사-군정(軍政) / 사법-재판(裁判) / 사법-탄핵(彈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