地理志 / 咸吉道 / 鍾城都護府
⊙ 종성 도호부(鍾城都護府)
사(使)가 1인이니, 진 절제사(鎭節制使)가 이를 겸하고, 또 경원도 우익 병마(慶源道右翼兵馬)를 겸한다. 판관(判官)이 1인이니, 경원도 우익 병마(慶源道右翼兵馬)를 겸한다.
본래 고려(高麗)의 땅이었는데, 야인(野人)들이 비어 있는 것을 틈타서 들어와 살면서 이름을 수주(愁州)라고 하였다. 세종 16년 봄에 영북진(寧北鎭)을 백안수소(伯顔愁所)로 옮기고, 곧 따로 회령진(會寧鎭)을 알목하(斡木河)에 설치하고 영북 본진(寧北本鎭)에다 첨절제사(僉節制使)를 차임(差任)하여 방어(防禦)하게 하였다. 〈세종〉 17년에 곧 영북(寧北)에 종성군(鍾城郡)을 설치하여 【호인(胡人)이 종(鍾)을 동건(童巾)이라 한다. 부(府)에 동건산(童巾山)이 있으므로 이렇게 이름지었다. 】 진 절제사(鎭節制使)로써 지군사(知郡事)를 겸하게 하고, 부계(俯溪)·임천(林川)·녹야(鹿野)·방산(防山)·조산(造山)·시반(時反) 등지의 민호(民戶)를 이에 붙였다. 〈세종〉 22년에 수주(愁州)가 강(江)384) 의 굽이진 곳으로 깊숙이 들어가서 적로(賊路)의 요해지(要害地)이므로, 드디어 군치(郡治)를 이곳으로 옮기고, 옛 성[古城]을 도절제사(都節制使) 행영(行營)으로 삼았다. 〈세종〉 23년에 도호부(都護府)로 승격시켜 판관(判官)을 두고, 또 남도(南道)의 민호(民戶)를 옮겨서 이를 채웠다.
동건산(童巾山) 【부의 북쪽에 있는데, 모양이 엎어 놓은 종(鍾)처럼 생겼다. 그 위에 옛 석성(石城)이 있고, 성안에 못이 있으며, 사면을 돌로 쌓았다. 둘레가 70보(步)이다. 】 나단산(羅端山) 【부의 동쪽에 있다. 산 위에 돌 일곱이 벌여 서 있으므로, 호인(胡人)들이 ‘나단산’이라 부른다. 나단(羅端)은 호언(胡言)으로 일곱의 뜻이다. 】 대천(大川)은 두만강이다. 사방 경계[四境]는 동쪽으로 경원(慶源) 봉황암(鳳凰巖)에 이르기 35리, 서쪽으로 두만강에 이르기 2리, 남쪽으로 회령(會寧)에 이르기 1백 리, 북쪽으로 온성(穩城)에 이르기 35리이다.
호수가 9백 호요, 인구가 2만 1천 8백 15명이다. 군정은 갑사(甲士)가 12명이요, 정군(正軍)이 7백 24명이다.
내성(來姓)이 22이니, 장(張)·양(梁)·맹(孟)·김(金)·유(兪)·전(全)·박(朴)·한(韓)·봉(奉)·용(龍)·남(南)·최(崔)·이(李)·정(鄭)·손(孫)·황(黃)·조(趙)·유(劉)·강(姜)·변(邊)·염(廉)·지(池)이다.
땅은 기름진 것이 적고, 메마른 것이 많다. 간전(墾田)이 4천 3백 47결이요, 【논은 겨우 45결이다. 】 토의(土宜)는 기장·피·조·벼·삼[麻]이다. 토산(土産)은 대구·문어·홍합·미역이요, 약재는 외나물뿌리·버들옷[大戟]·흰바곳·족두리풀뿌리[細辛]·인삼·오갈피이다. 도기소(陶器所)가 2이요, 【하나는 서풍(西豊)에 있고, 하나는 부계(俯溪)에 있다. 】 염소(鹽所)가 3이다. 【하나는 시반 포항(時反浦項)에 있고, 하나는 초동(草洞)에 있고, 하나는 유진(楡津)에 있다. 】 읍 벽성(邑壁城) 【둘레가 8천 6백 3척이며, 안에 샘 20이 있고, 군창(軍倉)이 있다. 】 참(站)이 4이니, 종경(鍾慶)·무안(撫安)·녹야(鹿野)·시반(時反)이요, 요해처가 7이니, 보청포동(甫靑浦洞)·동량개동가월변동(同良介同家越邊洞)·모을고가동(毛乙古家洞)·소고가동(所古家洞)·고라이동(古羅耳洞)·동관보(童關堡)·방원보(防垣堡)이요, 연대(烟臺)가 8이니, 보청동(甫靑洞) 【북쪽으로 온성(穩城) 동건 고성(童巾古城)에 응하고, 남쪽으로 동관보(童關堡) 북봉(北峯)에 응한다. 】 ·동관보(童關堡) 북봉(北峯) 【남쪽으로 부 북봉(府北峯)에 응한다. 】 ·부 북봉(府北峯) 【남쪽으로 부 남봉(府南峯)에 응한다. 】 ·부 남봉(府南峯) 【남쪽으로 중봉(中峯)에 응한다. 】 ·중봉(中峯) 【남쪽으로 삼봉(三峯)에 응한다. 】 ·삼봉(三峯) 【남쪽으로 옛 방원(防垣) 북봉(北峯)에 응한다. 】 ·옛 방원(防垣) 북봉(北峯) 【남쪽으로 시응거이(時應巨伊)에 응한다. 】 ·시응거이(時應居伊) 【서쪽으로 회령(會寧)에 응한다. 】 이다. 해도(海島)가 1이니, 비도(枇島) 【동서가 1백 50보(步)이요, 남북이 2리이며, 육지와의 거리가 5리이다. 저지 1결이 있는데, 본부 사람들이 왕래하면서 경작(耕作)한다. 】 이다.
- 【태백산사고본】 59책 155권 15장 A면【국편영인본】 5책 700면
- [註 384]강(江) : 두만강.
⊙ 鍾城, 都護府, 使一人, 以鎭節制使兼之, 又兼慶源道右翼兵馬; 判官一人, 兼慶源道右翼兵馬。 本高麗地, 野人乘虛入居, 號稱愁州。 世宗十六年春, 移寧北鎭于伯顔愁所, 尋別置會寧鎭于斡木河於寧北本鎭, 差僉節制使防禦。 十七年, 卽寧北置鐘城郡, 【胡人謂鍾爲童巾, 府有童巾山, 故名之。】 以鎭節制使兼知郡事, 以府溪、 林川、鹿野、防山、造山、時反等地民戶屬之。 二十二年, 以愁州陟入江隈, 賊路要害, 遂移郡治于此, 以古城爲都節制使行營。 二十三年, 陞都護府, 置判官, 又徙南道民戶以實之。 童巾山、 【在府北, 形如覆鍾, 其上有古石城, 城內有池, 四面築之以石, 周回七十步。】 羅端山、 【在府東, 山上有石七列立, 胡人稱羅端山。 羅端, 胡言七數。】 大川, 豆滿江。 四境, 東距慶源 鳳凰巖三十五里, 西距豆滿江二里, 南距會寧一百里, 北距穩城三十五里。 戶九百, 口二萬一千八百十五。 軍丁, 甲士十二, 正軍七百二十四。 來姓二十二, 張、梁、孟、金、兪、全、朴、韓、奉、龍、南、崔、李、鄭、孫、黃、趙、劉、姜、邊、廉、池。 厥土肥少塉多, 墾田四千三百四十七結。 【水田只四十五結。】 土宜, 黍、稷、粟、稻、麻。 土産, 大口魚、八梢魚、紅蛤、藿。 藥材, 地楡、大戟、白附子、細辛、人蔘、五加皮。 陶器所二。 【一在西豐, 一在俯溪。】 鹽所三。 【一在時反浦項, 一在草洞, 一在楡津。】 邑壁城。 【周回八千六百三尺, 內有泉二十, 有軍倉。】 站四, 鍾慶、撫安、鹿野、時反。 要害處七, 甫靑浦洞、同良介同家、越邊洞、毛乙古家洞、所古家洞、古羅耳洞、童關堡、防垣堡。 烟臺八, 甫靑洞、 【北準穩城 童巾古城, 南準童關堡北峯。】 童關堡北峯、 【南準府北峯。】 府北峯、 【南準府南峯。】 府南、 【南準中峯。】 中峯、 【南準三峯。】 三峯、 【南準古防垣北峯。】 古防垣北峯、 【南準時應巨伊。】 時應居伊。 【西準會寧。】 海島一, 枇島。 【東西一百五十步, 南北二里, 距陸五里。 有田一結, 府人來往耕耘。】
- 【태백산사고본】 59책 155권 15장 A면【국편영인본】 5책 70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