地理志 / 全羅道 / 南原都護府 / 求禮縣
◎ 구례현(求禮縣)
본래 백제의 구차례현(仇次禮縣)이었는데, 신라에서 구례현으로 고쳐서 곡성군(谷城郡)의 영현(領縣)으로 하였다. 고려 초에 남원부(南原府)의 임내(任內)를 삼았다가, 인종(仁宗) 21년 【송나라 고종(高宗) 소흥(紹興) 13년.】 에 감무(監務)를 두었고, 본조 태종(太宗) 13년 계사에 예(例)에 의하여 현감(縣監)으로 고쳤다. 별호는 봉성(鳳城)이다. 옛 속소(屬所)가 2이니, 남전(南田)·방광(放光)이요, 부곡(部曲)이 2이니, 사등촌(沙等村) 【혹은 사도(沙圖)라고 한다. 】 ·유곡(楡谷)이다.
사방 경계[四境]는 동쪽으로 경상도 진주(晉州)에 이르기 20리, 남쪽으로 순천(順天)에 이르기 9리, 서·북쪽으로 남원(南原)에 이르는데, 서쪽이 39리, 북쪽이 10리이다.
호수가 1백 37호요, 인구가 6백 77명이다. 군정은 시위군이 16명이요, 순천 수호군(順天守護軍)이 12명이요, 선군이 1백 15명이다.
토성(土姓)이 5이니, 장(張)·도(陶)·손(孫)·전(全)·임(任)이요, 【어떤 본에는 전(全)이 없고 진(陳)씨 성이 있다. 】 내접성(來接姓)이 1이니 양(梁)이요, 속성(續姓)이 2이니 박(朴) 【온 곳을 모른다. 】 ·황(黃) 【의창현(義昌縣)에서 왔다. 】 이다. 【모두 향리이다. 】 사등촌(沙等村)의 성이 1이니 임(任)이요, 속성(續姓)이 1이니, 정(鄭) 【향리(鄕吏). 】 이요, 남전(南田)의 망성(亡姓)이 1이니, 임(林)이요, 방광(放光)의 망성(亡姓)이 1이니, 유(劉)이다.
땅이 메마르며, 간전(墾田)이 1천 7백 35결이요, 【논이 조금 적다. 】 토의(土宜)는 오곡과 뽕나무·삼·목화·닥나무·왕골이다. 토공(土貢)은 여우가죽·삵괭이가죽·족제비털[黃毛]·칠·대추·꿀·밀[黃蠟]·표고·석이·감·석류·배[梨]·심황(深黃)·가뢰[班猫]·작설차·호도[唐楸子]요, 약재(藥材)는 겨우살이풀뿌리[麥門冬]요, 토산(土産)은 왕대·은어이다.
역(驛)이 1이니, 잔수(潺水)요, 요해(要害)가 2이니, 잔수진(潺水津)·말초율현(末草栗峴)이다. 【모두 구례(求禮)에서 남쪽으로 순천(順天)으로 가는 지로(指路)이다. 】
월경(越境)은 경상도 진주(晉州) 임내(任內)의 화개(花開)의 땅이 곤남(昆南)268) ·하동(河東)·악양(岳陽)으로 1백 50여 리를 넘어서 현의 동쪽에 들어와 있다.
- 【태백산사고본】 55책 151권 17장 B면【국편영인본】 5책 662면
- [註 268]곤남(昆南) : 곤양.
◎ 求禮縣: 本百濟 仇次禮縣, 新羅改求禮縣, 爲谷城郡領縣, 高麗初, 爲南原府任內。 仁宗二十一年, 【宋 高宗 紹興十三年】 置監務, 本朝太宗十三年癸巳, 例改爲縣監, 別號鳳城。 古屬所二, 南田、放光。 部曲二, 沙等村、 【或云沙圖。】 楡谷。 四境, 東距慶尙道 晋州二十里, 南距順天九里, 西北距南原西三十九里, 北十里。 戶一百三十七, 口六百七十七。 軍丁, 侍衛軍十六。 順天守護軍十二, 船軍一百十五。 土姓五, 張、陶、孫、全、任; 【一本無全, 有陳姓。】 來接姓一, 梁; 續姓二, 朴、 【來處不知。】 黃。 【義昌縣來, 皆鄕吏。】 沙等村姓一, 任;續姓一, 鄭。 【鄕吏。】 南田亡姓一, 林。 放光亡姓一, 劉。 厥土塉, 墾田一千七百三十五結。 【水田差少。】 土宜五穀, 桑、麻、木緜、楮、莞。 土貢, 狐狸皮、黃毛、漆、棗、蜂蜜、黃蠟、蔈膏、石茸、柿、石榴、梨、深黃、班猫、雀舌茶、唐楸子。 藥材, 麥門冬。 土産, 簜、銀口魚。 驛一, 潺水。 要害二, 潺水津、末草栗峴。 【皆自求禮南指順天。】 越境, 慶尙道 晋州任內花開之地越昆南、河東、岳陽一百五十餘里, 入于縣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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