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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114권, 세종 28년 12월 18일 辛亥 1/2 기사 / 1446년 명 정통(正統) 11년

수 집현전 교리 박팽년이 아버지 박중림의 무죄를 상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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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집현전 교리(守集賢殿校理) 박팽년(朴彭年)이 상서하기를,

"신의 부자(父子)가 모두 용렬하고 우매한 사람으로서 외람히 성은(聖恩)을 입어 복이 지나쳐서 재앙이 발생하였습니다. 신의 아버지가 옥(獄)에 있은 지 이미 20일이나 되어 원통함을 품고 억울해 하고 있사오니, 신도 또한 마음을 걷잡을 수가 없어 감히 죽음을 무릅쓰고 아뢰오니 삼가 불쌍히 여기시어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신이 듣자옵건대, 천하의 일은 시비(是非)가 양립(兩立)할 수 없으며, 곡직(曲直)이 서로 같지 않으니, 만약 옳은 것을 그르게 여기고, 굽은 것을 곧게 여긴다면, 이것은 변고(變故)의 큰 것입니다. 부자(父子)의 천륜(天倫)에 이르러서는 본시 천성(天性)의 친(親)에 속한 것이니, 이것이 어찌 인간이 변경할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사람의 하는 일이 비록 한 때에는 암매(暗昧)하더라도, 시비(是非)와 곡직(曲直)은 마침내 그 천성(天性)을 속일 수 없습니다. 진(秦)나라의 영씨(嬴氏)가 여씨(呂氏)146) 인 것과, 진(晉)나라 사마씨(司馬氏)가 우씨(牛氏)147) 인 변고와, 우 왕조(禑王朝)의 반야(般若)의 옥사(獄事)는 사책(史冊)에 있어 사람들의 청문(聽聞)을 놀라게 한 일이지마는, 지금 김산(金山)의 일은 그 아버지의 종 김삼(金三)이 송중손(宋重孫)의 비부(婢夫)인 천장명(千長命)과 처음에 형조에서 송사(訟事)하여 시비(是非)가 본디부터 명백하고, 곡직(曲直)이 저절로 나타났으며, 신의 아버지는 관여함이 없었는데, 의금부로 옮겨서 국문(鞫問)한 이후로 신의 아버지가 종의 주인이 된 이유로써 체포되어 추문(推問)하매, 의금부에서 시비(是非)에 현혹(眩惑)되어 굽은 것을 변경하여 곧은 것으로 삼으려 하니, 신은 그윽이 상심(傷心)하고 있습니다.

신의 아버지는 이 일에 있어서 본디부터 아부(阿附)하여 굽힌 것이 없으며, 전혀 남에게 말하지 않았는데, 중손(重孫)이 스스로 그 그른 점을 알고서 온갖 방법으로 거짓을 꾸며 여러 사람의 청문(聽聞)을 현혹(眩惑)하게 하였으니, 스스로 지극히 공평하여 사심(私心)이 없는 사람이 아니고는 잘 지껄이는 사람에게 오도(誤導)됨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중손(重孫)은 응당 말하기를, ‘나는 관위(官位)가 낮고 세력이 가벼우며, 저 사람은 관위가 높고 세력이 무거우니, 내 일이 본시 옳은데도 관청에 굴(屈)함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습속(習俗)은 논의(論議)에 있어서, 반드시 높은 이를 억제하고 낮은 이를 올려 주어서 자기의 정대(正大)함을 보이게 되니, 이 말을 들은 사람은 누구나 사람을 죽였다는 말을 세 번 듣고는 비로소 짜던 베틀의 북을 던지는 의심148) 과 아무 근거도 없이 이웃 사람의 도끼를 훔쳐 갔으리라는 견해149) 가 없겠습니까. 하물며, 한 사람이 한 가지 일을 의논하여 그 시비(是非)를 결정하고, 또 한 사람이 이를 의논하게 한다면 앞의 소견(所見)에 반대하게 되는 것은 고금의 공통되는 법도인데, 지금 이미 먼저 들은 말로써 주견(主見)을 삼고 형조의 의논한 것을 그렇게 여겨, 모든 입론(立論)을 다 반대하게 되니, 어찌 그리 치우치는 것입니까. 형조의 의논이 옳다면 오늘날의 의논이 반드시 그르게 될 것이며, 오늘날의 의논이 옳다면 형조의 의논이 반드시 그르게 될 것이니, 곡직(曲直)의 변고(變故)가 반드시 귀착(歸着)되는 데가 있을 것입니다.

대저 옥사(獄事)를 국문(鞫問)하는 사람은 마땅히 공평 무사(公平無私)한 마음으로 청찰(聽察)하여 그 실정을 알아내여야 되는 것인데, 지금 의심나는 옥사(獄事)를 판결하고자 하면서 먼저 자기가 의심을 내어, 의심나는 단서(端緖)를 풀지 않고서 곧장 죄안(罪案)을 교묘하게 꾸며서 만들려고 하니, 다만 어리석고 약한 아이가 옛 마을과 산천을 기억하지 못한 것으로써 증거로 삼아, 먼저 그 아버지에게 곤장을 치고, 다음에 증인(證人)에게 곤장을 쳐서, 3일 안에 연달아 두 차례나 곤장을 쳐서 무복(誣服)을 꼭 받도록 하고, 중손(重孫) 등은 의심나는 말을 임시 변통으로 진술하였는데도 모두 덮어두고 추문(推問)하지도 않으니, 이것이 불공평함이 심한 것이 아닙니까. 신은 간절히 마음이 상하고 간절히 마음이 상합니다. 청하옵건대 낱낱이 조목별로 뒤에 진술하겠사오니, 만약 신의 부자(父子)가 과실을 꾸미고 그른 것을 꾸며서 성총(聖聰)을 모독한다면, 천지 귀신이 위에서 굽어보고 옆에서 대질(對質)하게 되는데 어찌 감히 속이겠습니까. 삼가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다른 대신(大臣)에게 명해서 공평 무사하게 청단(聽斷)하여 형조와 의금부의 시비(是非)를 판결하여 원왕(冤枉)을 펴 주고 천륜(天倫)을 바로 잡는다면, 공도(公道)에 매우 다행하겠습니다.

1. 신의 아버지는 갑자년에 부친상(父親喪)을 당하여 전의현(全義縣) 남촌(南村)에서 여묘(廬墓)를 살았는데, 그해 여름에 목천(木川)의 접노(接奴) 김삼(金三)이 그 아들 김산(金山)을 데리고 전의(全義)의 본가(本家)에 이르러 그 아들을 두고, 신의 부자(父子)를 여차(廬次)에서 보고 그대로 수일(數日)을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그 아들이 도망하여 간 곳을 알 수가 없었으나, 그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라 생각하고는 마침내 뒤를 밟아 쫓아가지 아니했는데, 그 아버지가 그 집에 돌아가 보니 있지 않았습니다. 사방으로 찾아보았으나 찾아내지 못한 지가 지금 2년이나 되었습니다. 금년 4월 27일에 해가 저물었는데 한 조그만 아이가 신의 아버지 집에서 구걸하므로, 비(婢)가 처음에 그 아이를 보니 바로 그전에 잃었던 김산이었습니다. 그의 형 김녹(金祿)이 이를 보고는 또한 말하기를, ‘김산이다.’ 하니, 아이도 또한 그렇게 여기고 머물러 있으면서 가지 아니하였습니다. 신의 아버지는 이날 인정종(人定鐘)이 울린 뒤에 집에 돌아와서 이 사실을 듣고서, 그 얼굴을 증거 삼고자 하였는데, 신의 아버지는 본디 그 아이를 보지 못하였으므로, 그의 지내온 내력을 물어 보니 모두 맞았습니다. 비록 그러하나 감히 그 아이가 그러한지 그렇지 않은지는 보증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튿날 사람을 시켜 데리고 그 집으로 가게 했는데, 아이가 고의로 그 집을 바로 가리키지 않으므로, 마을의 관령(管領)과 함께 가도록 했으나, 관령을 보지 못한 까닭으로 3일 만에야 가게 되었던 것인데, 그 문자(文字)가 그대로 있었습니다. 신의 아버지가 만약 조금이라도 그 사이에 사의(私意)가 있었다면 어찌 명백 정대(明白正大)하게 관령과 더불어 그 집에 찾아주도록 하였겠습니까. 이것은 사리(事理)와 인정(人情)의 매우 명백한 것입니다.

1. 무릇 다른 사람의 노비(奴婢)를 속여 자기의 사역(使役)으로 삼는 사람은 반드시 먼저 유인하여 숨기고는 다른 사람이 알까 두려워하여, 혹은 구류(拘留)하기도 하고, 혹은 방매(放賣)하기도 하는데, 이같이 무상(無狀)한 소인(小人)은 혹시 있을 수 있지마는, 서울 도성(都城) 밑에서 다른 아이를 차지하여 그 집에 데리고 가서 말하기를, ‘이 아이는 진실로 우리 집 종이고 너희 아들은 아니다.’ 한다 하니, 이러한 일을 하는 사람은 세상의 교활한 도적이니 예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몇 사람이나 있겠습니까. 신의 아버지는 비록 불초(不肖)하지마는 태평한 세상에 공명(功名)을 기록하고 성명(聖明)을 만났으니, 그가 감히 이런 등류의 일을 하고서도 말하지 않겠습니까. 만약 처음부터 속여 차지하려는 마음이 있었다면 마땅히 먼 지방에 두고 길러서 장성하기를 기다린다면 사람들이 저절로 알지 못하게 될 것인데, 어찌 먼저 그 집을 찾아가게 한 뒤에 그 아버지를 불러서 시비(是非)를 분변하고 목천(木川)의 여러 사람들을 끌어내어 증거로 삼게 하겠습니까. 그 계획을 세움이 또한 수고롭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또한 사리(事理)와 인정(人情)의 매우 명백한 것입니다.

1. 신의 아버지가 김삼을 불러서 왕복(往復)한 사이가 몇 10여 일이 된 뒤에야 오게 되었는데, 그에게 그 집에 가서 시비(是非)를 증험해 보게 하니 조금도 의심나는 말이 없었으므로, 이에 형조에 정소(呈訴)하여 이를 변명하게 하였습니다. 대저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은 겉으로는 비록 복종하지 않지마는 마음속으로 먼저 굴복하게 되는 것인데, 이 아이가 만약 천장명(千長命)의 아들이라면 그 집에서 어찌 먼저 관청에 정소(呈訴)하여 스스로 옳다고 주장하지 않고서 앉아서 김삼이 오기를 기다리겠습니까. 김삼이 만약 의심을 품고 보았다면 또한 먼저 스스로 물러갈 것이지, 어찌 감히 형조에 정소(呈訴)하여 변명되기를 기다리겠습니까. 정리(情理)의 명백한 것이 이것입니다.

1. 무릇 사람의 상모(狀貌)와 일의 허실(虛實)이란 것은 언어(言語)로써 형용할 수는 없으니, 비록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하게 하더라도, 만약 눈으로 직접 보고 자신이 실제 행하지 않았다면 서로 어긋나지 않는 것이 드문 법인데, 어리석은 아이를 잠시 동안에 달래어 가르치고서 후일(後日)의 증거를 삼고자 한다면 보증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달래어 가르치려고 한다면 진실로 마땅히 세월(歲月)을 두고 그로 하여금 익히고 듣도록 해야 할 것인데, 어찌 급급히 그 집에 돌려보내어 맡기겠습니까. 지금 신의 아버지 집에 있은 지는 겨우 3일 뿐이고, 장명(長命)의 집에 있은 지는 이미 수년(數年)이나 되었으니, 그를 달래어 가르치기를 누구가 하였겠습니까. 형조에 있을 적에 그 아버지가 이웃에 사는 황보공(皇甫恭)으로써 이를 증명하게 하므로, 형조에서 황보공을 불러서 물으니, 황보공이 아이가 김삼(金三)의 자식인 것을 알고 있었고, 아이도 또한 황보공이 개동(介同)의 아버지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가령 황보공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아이가 무슨 이유로 황보공이 아무의 아버지인 줄 알겠습니까. 하물며, 이 아이는 목천(木川) 사람을 보고 아는 사람이 자못 많았는데, 가령 명호(名號)를 달래어 가르쳤다 하더라도 어찌 능히 이 사람들을 미리 모아서 아이로 하여금 친히 면목(面目)을 보고서 이를 기억하도록 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형조에서 공공연히 아이로 하여금 먼저 이 사람들을 보지 않게 하고서 의금부로 옮겨 국문(鞫問)한 후에, 이 아이도 또한 목천 사람을 알고서 ‘이는 아무이고, 이는 아무이다.’ 한다면, 이 아이는 상시 부내(府內)에 있었고, 목천 사람은 외부에서 왔는데, 아이가 무슨 이유로 이를 알겠습니까. 사실 증거의 명백한 것이 이것입니다.

1. 형조에서 김삼의 아내 삼가(三加)를 전의(全義)에서 불러 오고, 또 장명(長命)의 아내 분이(粉伊)를 죽산(竹山)에서 불러 왔는데, 두 어머니가 이르러서 아이들을 한데 모아 앞에 죽 늘어세우고는, 두 어머니로 하여금 이를 분변하게 하였더니, 분이가 형조의 아이를 점치면서 자기 아들이라 하니, 형조에서 재삼(再三) 힐문(詰問)하기를, ‘이 아이가 아니면 어떻게 하겠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내가 내 아이를 알지 못하겠습니까.’ 하고, 삼가는 말하기를, ‘여러 아이들 중에서 내 아들은 없습니다.’ 하였습니다. 재삼(再三) 힘써 분변하게 하였으나, 이 아이는 과연 그 중에 있지 않았습니다. 또 몸에 흉터가 있는가 없는가를 물으니, 삼가는 ‘배꼽 위에 한 작은 흉터가 있습니다.’ 하였습니다. 형조에서는 그 흉터를 보지 못하였는데 이 여인이 가리켜 보이니, 그 말이 과연 맞았습니다. 분이는 그 얼굴도 알지 못하고 그 흉터도 기억하지 못하였으니, 그의 거짓이 즉시 나타났습니다. 말하는 사람이 만약 ‘삼가는 배워서 능히 말하게 되었다. ’고 한다면, 가령 삼가가 배워서 말했다면 분이는 어찌 그 아들의 얼굴과 흉터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까. 서로 떨어진 것이 비록 어린아이였을 시기일지라도 그 어머니는 그래도 비슷한 모습을 알 것인데, 하물며, 이 아이는 나이 7세가 넘어 두각(頭角)이 이미 이루어졌으니, 비록 먼 지방에 서로 떨어져서 수십년(數十年)이 지났더라도 어찌 모를 수가 있겠습니까. 그 굽고 곧은 것을 가히 알 수가 있겠습니다.

1. 김삼과 그 아내가 세상 사람들을 우롱(愚弄)하고 의혹(疑惑)한 것이 매우 심한 편이며, 장명과 그 아내는 간사하고 교활한 것이 우심(尤甚)한 자입니다. 그 말을 들어 보고 그 안색을 살펴본다면 그의 굽고 곧은 것은 알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하물며, 장명이란 사람은 그 마음이 정직하였다면 진실로 마땅히 스스로 나타나서 먼저 시비(是非)를 변명해야 될 것인데, 형조의 계하(階下)에 잠복(潛伏)해 있다가 사변(事變)을 환히 알고서 사람들에게 잡히게 되었으니, 그가 굽은 것을 또한 가히 알 수 있겠습니다.

1. 분이는 말하기를, ‘이 아이의 일은 우리 주인이 능히 말할 수 있습니다.’ 하므로, 이에 형조에서 천보(千甫)의 사유를 죽산(竹山)의 중손(重孫)에게 물으니 대답하기를, ‘신유년 부임(赴任)할 때에 천보를 그 아버지 장명(長命)에게 맡겨 두고 왔습니다.’ 하니, 그 말이 장명의 말한 바와 합하지 아니했습니다. 또 물으니 말을 변경하기를, ‘신유년 8월에 데리고 부임(赴任)했는데, 임술년 2월에 그 아버지가 데리고 갔습니다.’ 하였으니, 그 앞뒤의 말한 바가 각기 달랐습니다. 형조에서 중손을 불러 아이의 형모(形貌)를 물으니, 중손은 말하기를, ‘알지 못합니다.’ 하였습니다.’ 끝까지 힐문(詰問)하니 그제야 말하기를, ‘이 아이는 우리 집 종이 아닙니다.’ 하였습니다. 장명의 말한 바도 매우 어긋남이 많았습니다. 그 가까운 이웃의 공사(供辭)에도 천보를 본 연월(年月)이 또한 같지 않은 점이 많았습니다. 의금부로 옮겨서 국문한 이래로 중손은 말하기를, ‘내가 집에 있을 때에 이 아이가 행랑(行廊)에 있었는데, 아침저녁으로 인하여 그 모양을 보지 못하고, 죽산에 있을 때는, 일이 바빠 또한 보지 못하였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그 얼굴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고 합니다. 그러나, 집에 있을 때에 아이의 나이가 6세이므로 이르지 않는 데가 없었을 것인데, 비록 행랑에 있었다 하더라도 어찌 볼 수 있을 때가 없었겠습니까. 죽산에 있을 때는 아내(衙內)의 방사(房舍)가 눈앞에 빙 둘러 있었으니, 사무가 비록 바쁘더라도 관아(官衙)에 물러와서 밥 먹은 것은 수령들의 상례(常例)인데, 어찌 한번 보고 한번 말한 때가 없음으로써 전혀 그 얼굴도 알지 못했다고 하겠습니까. 그의 간사하고 거짓이 이보다 심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에 마을의 관령(管領)과 가까운 이웃 사람들이 모두 공모(共謀)하여 말을 모으기를, ‘이 아이를 본 지가 지금 벌써 5년이 되었다. ’고 하니, 그들의 굽은 것을 또한 알 수가 있습니다.

1. 장명이 천보를 죽산에 데리고 온 연월(年月)이 혹은 봄이라 하고, 혹은 가을이라 하여, 앞뒤에 말한 것이 같지 않으니, 그 속인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또한 만약 그 아들이라면 그 어머니를 따라 고을 관아(官衙)에 편안히 앉아서 음식을 먹고 의복을 입는 데에 근심이 없기를 보장할 것인데, 어찌 가난한 집에 데리고 와서 해진 옷을 입고 남에게 붙여 생계(生計)를 이어가게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것도 그의 속임을 또한 알 수가 있습니다.

1. 중손의 앞뒤에 말한 바가 스스로 서로 어긋나서 맞지 않으니, 그런 까닭으로 되풀이하면서 끝까지 힐문(詰問)할 때에, 사리(事理)가 굴(屈)하고 말이 궁해져서 능히 스스로 변명하지 못하여 밤을 틈타 옥문(獄門)을 열고 나와서 도망하였으니, 실정이 이미 드러났습니다. 뒤쫓아 체포하여 도로 가두매, 술을 가져온다고 핑계하였으니, 그 말을 믿고 들을 수 있겠습니까. 또 양동(陽東)의 일을 교묘하게 꾸며서 이를 어지럽게 하였으니, 이것이 더욱 신이 매우 민망히 여기는 바입니다. 양동의 집은 비록 신의 아버지의 집과 가까이 있지마는, 실제는 중손(重孫)과 사이가 좋으며, 양동은 강리(康履)의 처남(妻娚)이요, 중손은 강리의 매부(妹夫)이니, 그들의 정리가 범연(泛然)한 사이가 아닙니다. 하물며, 양동이 말한 전득수(全得水)란 사람은 장명과 근친(近親) 관계이므로, 이 사실을 주장하고 꾸며내어 그 옥사(獄事)를 만들었으니, 비록 달콤한 말을 하고 후하게 물건을 주어서 온갖 방법으로 되풀이하더라도 능히 마음을 돌이킬 수 없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신의 아버지가 비록 어리석지마는 어찌 감히 양동으로 인하여 득수에게 뇌물을 써서 스스로 도움을 얻었겠습니까. 비록 삼척 동자(三尺童子)일지라도 또한 하지 않을 것입니다. 신의 아버지가 양동과 더불어 말한 것은 천보의 있고 없음과 이 아이를 본 연월(年月)을 알고자 한 데 불과(不過)할 뿐이었으니, 진실로 바른말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장차 관청에 알려서 상을 주도록 할 것입니다. 다만 양동에게만 이를 말하였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이 일을 묻는 사람이 있으면, 말이 반드시 이에 미쳤던 까닭으로, 양동도 또한 이를 듣게 되었던 것입니다. 신의 집에서도 또한 득수(得水)에게 옷을 주지 못하였는데도 양동이 먼저 그 옷을 주려고 한 것은 신도 또한 그 의도를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장차 저 사람에게 사이 좋게 지내어서 그 사이를 어지럽히려고 한 것입니까, 장차 이웃집의 일로써 그 실정을 알려고 한 것입니까. 그러나, 신의 아버지의 사정(事情)이 바른 것은 또한 가리울 수 없는 것입니다.

1. 이 아이가 목천(木川)을 알지 못하는 것은 신이 그윽이 이를 의심하고 있습니다. 이 앞서 이 아이가 목천(木川)과 전의(全義)의 사이에서 말을 타고 갔던 일은 절대로 없었으며, 다만 사람을 따라 걸어갔을 뿐이었는데, 지금 말 위에 올려 태우고 빨리 달려서 갑자기 예전의 놀던 땅에 갔는데, 참으로 꿈속에 찾아간 듯하여 앞일도 아득하고 뒷일도 불명하여 능히 기억하지 못하니, 알 수는 없는 일입니다. 데리고 간 관원은 비록 공정(公正)하였다고 말하고 있지마는, 종자(從者)가 뇌물을 받고 가만히 저주하여 고의로 미혹(迷惑)하게 했는가도 또한 알 수가 없습니다. 만약 전의(全義)에서 머문 지가 겨우 7, 8일인데도 말한 바의 산천의 형세와 나무의 있고 없는 것도 또한 맞는 것도 있으니, 또한 전연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목천(木川)에서도 또한 그러했으니, 비록 신자경(申自敬)의 집을 가리켜서 목천(木川)의 관원이라 하지마는, 그가 아버지를 따라가서 환상(還上)을 받은 일이 사실이라면, 어찌 장명(長命)의 아들이 김삼(金三)을 따라가서 목천(木川)에서 환상을 받은 일이 있겠습니까. 이것이 의심할 만한 일입니다.

1. 신하가 명령을 받고 밖으로 나가면 마땅히 이른 밤에 길을 떠나야 될 것인데, 알 수 없는 일은, 이중(李重)의 무리는 무슨 이유로 용인(龍仁)으로 돌아와서 1일을 머물고는, 그래도 부족하여 또 그 이튿날 해가 진 뒤에야 복명(復命)하는 것입니까. 만약 계본(啓本)을 만들기 위해서라 말한다면, 지금 겨울 밤이 지극히 기니 수일(數日) 밤이면 능히 계본(啓本)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김개(金漑)는 중손(重孫)의 예전 매부(妹夫)이요, 이중(李重)은 김개 아내의 숙모부(叔母夫)이니, 신이 의심이 없을 수 없는 것은 또한 이 때문입니다.

1. 지금 이 아이가 목천(木川)과 전의(全義)를 명백히 알지 못한 일로써 근거를 삼아, 중손이 도망해 나온 본디 사정과 여러가지로 꾸며낸 말에 대해서는 다시 신문(訊問)하지 아니하고, 장명과 그리고 가까운 이웃의 어긋난 단서(端緖)에 대해서는 처음에 알지 못한 듯하고는, 작은 아이를 위협하여 장차 매를 치려고 하면서 그 아버지를 물으니, 또한 김삼을 일러서 아버지라고 하니, 그 진정(眞情)은 그래도 알 수 있는데 도리어 김삼을 매질하고, 또 목천(木川)의 여러 사람들을 매질하여 무복(誣服)을 꼭 받아서, 신의 아버지의 죄를 얽어서 법망(法網)에 끌어넣으려고 하니, 이것이 어찌 지극히 공평하고 치우치지 않는 의논이겠습니까. 만약 이 아이가 목천을 알지 못하는 일로써 증거를 삼는다면, 어찌 죽산(竹山)을 알지 못하는 일로써 핑계를 삼아서 중손을 국문(鞫問)하지 않습니까. 아이가 김삼을 일러 아버지라 한 일로써 도리어 그 아버지를 곤장을 친다면, 어찌 장명을 일러 그 아버지라 하지 않는 일로써 장명을 곤장을 치지 않습니까. 옥사(獄辭)의 판결은 한마디 말의 사이에 있는데도 지금까지 판결이 나지 않는 것은, 다만 이 아이가 어리석어 밝지 못하고 사건이 애매한 데 관계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목천과 전의의 행차는 명백한 증거라 말할 수 있는데, 중손의 어긋난 단서(端緖)는 끝내 신문(訊問)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1. 아이가 부모라 말할 줄 아는 것은 믿지 않으며 예전 마을을 보지 못했다는 것만을 증거로 삼아서 도리어 그 아버지를 곤장을 치게 되니, 아이가 만약 죽지 않고 장성한다면 마침내 그 어버이를 정하게 될 것입니다. 천도(天道)가 만약 앎이 없지 않다면 어찌 매우 두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하였으나, 회답하지 않았다.

  • [註 146] 여씨(呂氏) : 진(秦)나라의 성(姓)은 영씨(嬴氏)인데, 시황(始皇) 정(政)이 여불위(呂不韋)의 아들이라는 말이 있음.
  • [註 147] 우씨(牛氏) : 진(晉)나라의 성(姓)은 사마씨(司馬氏)인데, 진 원제(晉元帝)가 우금(牛金)의 아들이라는 말이 있음.
  • [註 148] 짜던 베틀의 북을 던지는 의심 : 노(魯)나라 증자(曾子)의 어머니가 그 아들이 사람을 죽였다는 말을 세 번 듣고서야 비로소 의심이 나서 짜던 베틀의 북을 던지고 일어났다는 고사(故事)가 있음.
  • [註 149] 이웃 사람의 도끼를 훔쳐 갔으리라는 견해 : 아무 근거도 없이 이웃 사람의 아들이 자기집 도끼를 훔쳐 갔으리라고 의심했다는 고사(故事)가 있음.

원문

○辛亥/守集賢殿校理朴彭年上書曰:

臣父子俱以庸愚, 叨蒙聖恩, 福過災生, 臣父在獄, 已逾二旬, 抱冤鬱抑, 臣亦無以爲心, 敢昧死以聞, 伏惟憐察焉。 臣聞天下之事, 是非不兩立, 曲直不相侔。 若以是爲非, 以曲爲直, 則是變之大者也。 至於父子之倫, 本是天屬之親, 此豈人之所可變易也? 人事雖暗昧於一時, 而是非曲直, 終不得欺其天, 嬴、呂、馬、牛之變、僞朝般若之獄, 播在史冊, 駭人聽聞。 今金山之事, 其父奴金三, 與宋重孫婢夫千長命初訟於刑曹, 是非本明, 曲直自現, 而臣父無與焉。 自移鞫義禁府後, 以臣父爲奴主, 逮繫問之, 義禁府眩於是非, 將變曲爲直, 臣竊痛心。 臣父於此事, 本無阿曲, 專不說與於人。 重孫自知其非, 飾詐萬端, 眩惑衆聽, 自非至公無我者, 未免爲饒舌所誤。 重孫應曰: "吾位卑勢輕, 彼位高勢重。 吾事本是, 而將受屈於官。" 今之習俗於論議, 必抑尊而揚卑, 以示己之正大, 聞是說者, 孰無投杼之疑、竊鐵之見歟? 而況一人議一事, 定其是非? 又一人議之, 則反前所見, 古今通患。 今已先入之言爲主, 刑曹所議爲非, 凡諸立論, 悉皆反之, 一何偏也? 刑曹之議是, 則今日之論必非, 今日之論是, 則刑曹之議必非也, 曲直之變, 將必有所歸矣。 大抵鞫獄者, 當虛心聽察, 以得其情。 今欲決疑獄而先自生疑, 不解疑端而經欲鍜鍊成之, 徒以癡弱之童不記故里山川爲證, 先杖其父, 次及證人, 三日之內, 連杖二次, 期取誣服, 重孫等疑辭曲設, 皆蔽不問, 是何不公之甚也? 臣切痛心, 臣切痛心, 請一一條陳于後。 如臣父子, 文過飾非, 以瀆聖聰, 則天地鬼神臨之在上, 質之在旁, 焉敢誣哉! 伏望殿下命他大臣, 虛心聽斷, 以決刑曹義禁府之是非, 以伸冤枉, 以正天倫, 公道幸甚。

一, 臣父於甲子年丁父憂, 廬于全義縣之南村。 其年夏, 木川接奴金三率其子金山, 到全義本家置其子, 見臣父于廬次, 仍留數日。 一日, 其子亡去, 不知所之, 謂還其家, 終不追躡之, 其父還其家, 則無有也。 旁搜未得者, 于今三年矣。 今年四月二十七日, 日且暮, 有一小童行乞于臣父之家, 婢初見之, 乃前所失金山也。 其兄金祿見之, 亦曰金山也, 童亦然之, 留而不去。 臣父於是日, 人定鍾後還家得聞之, 欲徵其面, 則臣父本不見之, 問其所從來, 則皆是也。 雖然未敢保其然否也, 翌日, 令人率付其家, 童故不直指其家。 且須與里之管領同付之, 以未見管領之故, 三日乃赴之, 其文字猶在焉。 臣父若有一毫私意於其間, 則何必明白正大, 與管領保授其家乎? 此事理人情之明甚者也。

一, 凡冒認他人奴婢, 以爲己使者, 必先引誘掩匿, 猶恐人知, 或拘留之, 或放賣之, 如此無狀小人, 容或有之。 至於京都(輩)〔輦〕 轂之下, 占他童子, 執付其家, 謂曰: "此眞吾家奴也, 非爾之子也。" 爲此擧者, 是天下猾賊, 自古及今有幾人哉? 臣父雖無似, 策名淸時, 遭遇聖明, 其肯爲如此等事而不言乎? 若初有冒認之心, 當置諸遠方, 以待長養, 則人自不知之, 何必先付其家, 然後招其父辨其是非, 引木川諸人以爲證乎? 其爲設計, 不亦勞乎? 此亦事理人情之明甚者也。

一, 臣父招金三, 往復之間, 幾十餘日, 然後乃來, 令往其家, 驗其是非, 則略無疑辭。 於是呈刑曹辨之。 大抵爲惡者, 外雖不服, 而心自先屈, 此童若千長命之子, 則其家何不先呈於官, 自以爲是, 而坐待金三之來乎? 金三若疑見, 則亦先自退, 何敢呈于刑曹, 以待辨明乎? 情理之明白者此也。

一, 凡人之狀貌、事之虛實者, 未可以言語形容, 雖使耳聞而舌話, 若不目覩身履, 則鮮有不相齟齬者。 敎誘癡童於立談之間, 而欲爲他日之證, 容可保乎? 如欲敎誘, 則固當期以歲月, 使之習聞, 何急急還付其家乎? 今在臣父之家纔三日, 而在長命之家, 已數年矣。 其敎誘也, 孰得而爲之乎? 在刑曹, 其父以鄕隣皇甫恭證之, 刑曹招恭問之, 恭能識童之爲金三子也, 童亦識恭之爲介同父也。 假使恭爲不可信也, 童子何緣知恭之爲某父也? 況此童見知木川人頗多, 假使能敎誘名號, 安能預集此人, 使童子親見面目而記之耶? 若曰刑曹不公, 使童子先見此人, 則移鞫義禁府後, 此童亦知木川人曰: "此某也, 此某也。" 此童常在府內, 木川人自外至, 童子何緣知之歟? 事證之明(日)〔白〕 者此也。

一, 刑曹徵金三之妻三加于全義, 又徵長命之妻粉伊于竹山。 兩母至, 群聚兒童列於前, 使兩母辨之, 粉伊占刑曹兒爲己子。 刑曹再三詰之曰: "非是則何如?" 答曰: "吾不知吾兒乎?" 三加則: "群兒中, 吾子無有也。" 再三力辨之, 此童果不在其中矣。 且問身瘢有無, 三加曰: "臍上有一小瘢。" 刑曹未見其瘢, 此女指視之, 其言果驗。 粉伊不知其面, 不記其瘢, 其詐立見矣。 說者若曰三加學而能言之, 假使三加學而言之, 粉伊何不知其子之面與瘢乎? 相離雖在孩提之時, 其母猶可髣髴也, 況此童年逾七歲, 頭角已成矣, 雖分離胡、越, 以隔數十年, 何不知之有哉?! 其曲直可知也。

一, 金三與其妻之愚惑, 天下莫甚。 長命與其妻, 姦猾之尤者也。 聽言觀色, 其曲直不難知也。 況長命者, 其心若直, 則固當自見, 先卞是非, 乃潛伏刑曹階下, 洞知事變, 而見獲於人, 其曲亦可知也。

一, 粉伊云: "此童之事, 吾主能言之。" 於是刑曹問千甫事由於竹山 重孫, 答曰: "辛酉年赴任時, 付千甫於其父長命來。" 其言不與長命所言合。 又問之, 則變辭曰: "辛酉八月, 率以赴任。 壬戌二月, 其父還率去。" 其前後所言各異。 刑曹招重孫問童之形貌, 重孫曰: "不知也。" 至於窮詰, 則乃曰: "此非吾家奴也。" 長命所言, 甚多違忤, 其切隣供詞所見千甫年月, 亦多不齊。 自移鞫義禁府以來, 重孫曰: "吾在家時, 此童在行廊, 因早暮不見其貌。 在竹山時, 因務劇亦不見之, 以故不識其面。" 然在家時童年六歲, 無處不到, 雖在行廊, 豈無可見之時? 在竹山時則衙內房舍周匝, 眼前務雖劇矣, 退食於衙, 守令常例也, 豈無一見一語之時, 而謂專不識其面乎? 其姦回詐諼, 莫此爲甚。 於是里之管領與切隣人等悉與同謀合辭曰: "此童之見, 今已五年矣。" 其曲亦可知也。

一, 長命率來千甫於竹山年月, 或春或秋, 前後所說不同, 其詐可知也。 且如其子也則隨其母安坐縣官, 飮食衣服, 保無憂也, 何必率來貧家, 衣懸鶉之衣而糊口於人乎? 此其詐, 亦可知也。

一, 重孫前後所言, 自相矛盾, 故反復窮詰之際, 理屈辭窮, 不能自明, 犯夜開出獄門而逃, 其情已露矣。 追捕還囚, 則托以致酒, 此其說, 可信聽歟? 又巧飾陽東之事以亂之, 此尤臣之所深憫也。 陽東之家, 雖近臣父之家, 實與重孫有好。 陽東, 康履之妻娚; 重孫, 康履之妹夫也, 其情非泛然比也。 況陽東所語全得水者與長命近親? 此事實主張造飾, 以成其獄, 雖甘言厚施, 反復百端, 其不能回心也, 可知已。 臣父雖愚, 豈敢因陽東行賂得水以自助乎! 雖三尺之童, 亦所不爲也。 臣父與陽東所言, 不過欲知千甫有無及見此童之年月, 苟有直言者, 則將告官行賞耳, 非但與陽東言之。 人有問此事者, 言必及之, 故陽東亦得聞之也。 臣家亦不與衣於得水, 而陽東先欲與其衣者, 臣亦未料其意也。 將以親好於彼而欲亂於其間耶? 將以隣家之事而欲知其情耶? 然臣父事情之直, 亦不可掩也。

一, 此童之不知木川, 臣竊疑之。 前此此童於木川、全義之間, 絶無騎馬之行, 但隨人徒步耳。 今擁置馬上, 驅馳之怱遽之, 舊遊之地, 眞若夢尋, 迷前恍後, 不能記憶, 未可知也。 率去之官, 雖曰公正, 從者受賂陰詛, 故使迷惑, 亦未可知也。 若於全義所留才七八日, 而所言山川形勢樹木有無, 亦有合者, 亦不可謂全然不知者也。 於木川亦然, 雖指申自敬之家爲木川官也, 其隨父受還上之事, 是其實也, 何有長命之子隨金三受還上於木川乎? 是可疑也。

一, 人臣受命出外, 當夙夜而行, 不知李重輩何緣還到龍仁, 留一日猶不足, 又明日日沒後復命乎? 若曰修啓本云耳, 則如今冬夜至永, 可於數夜能修之也。 金漑, 重孫之故妹夫也; 李重, 漑妻之叔母夫也。 臣不能無疑者, 亦以此也。

一, 今以此童不明曉木川、全義爲據, 於重孫逃出元情及多般飾辭, 更不問訊。 長命及切隣違端, 初若不知, 然恐嚇小童, 將欲撻之而問其父, 則亦謂金三爲父, 其眞情猶可知也, 而反杖金三, 又榜掠木川諸人, 期取誣服, 羅織臣父之罪, 此豈至公不偏之論也? 若以此童不知木川爲據, 則何不以不知竹山爲辭, 以鞫重孫乎? 以童之謂金三爲父, 而反杖其父, 則何不以謂長命非其父也, 而杖長命乎? 獄辭之決, 在片言之間, 而至今未決者, 只以此童癡騃不明, 而事關曖昧耳。 今木川、全義之行, 其可謂明證, 而重孫之違端, 終不得訊歟? 一童也而知言父母則不信, 未見故里則取以爲證而反杖其父, 童若不死以長, 則終可定其親也。 天道若不無知也, 豈不深可畏也?

不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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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114권, 세종 28년 12월 18일 辛亥 1/2 기사 / 1446년 명 정통(正統) 11년

수 집현전 교리 박팽년이 아버지 박중림의 무죄를 상서하였다

국역

수 집현전 교리(守集賢殿校理) 박팽년(朴彭年)이 상서하기를,

"신의 부자(父子)가 모두 용렬하고 우매한 사람으로서 외람히 성은(聖恩)을 입어 복이 지나쳐서 재앙이 발생하였습니다. 신의 아버지가 옥(獄)에 있은 지 이미 20일이나 되어 원통함을 품고 억울해 하고 있사오니, 신도 또한 마음을 걷잡을 수가 없어 감히 죽음을 무릅쓰고 아뢰오니 삼가 불쌍히 여기시어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신이 듣자옵건대, 천하의 일은 시비(是非)가 양립(兩立)할 수 없으며, 곡직(曲直)이 서로 같지 않으니, 만약 옳은 것을 그르게 여기고, 굽은 것을 곧게 여긴다면, 이것은 변고(變故)의 큰 것입니다. 부자(父子)의 천륜(天倫)에 이르러서는 본시 천성(天性)의 친(親)에 속한 것이니, 이것이 어찌 인간이 변경할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사람의 하는 일이 비록 한 때에는 암매(暗昧)하더라도, 시비(是非)와 곡직(曲直)은 마침내 그 천성(天性)을 속일 수 없습니다. 진(秦)나라의 영씨(嬴氏)가 여씨(呂氏)146) 인 것과, 진(晉)나라 사마씨(司馬氏)가 우씨(牛氏)147) 인 변고와, 우 왕조(禑王朝)의 반야(般若)의 옥사(獄事)는 사책(史冊)에 있어 사람들의 청문(聽聞)을 놀라게 한 일이지마는, 지금 김산(金山)의 일은 그 아버지의 종 김삼(金三)이 송중손(宋重孫)의 비부(婢夫)인 천장명(千長命)과 처음에 형조에서 송사(訟事)하여 시비(是非)가 본디부터 명백하고, 곡직(曲直)이 저절로 나타났으며, 신의 아버지는 관여함이 없었는데, 의금부로 옮겨서 국문(鞫問)한 이후로 신의 아버지가 종의 주인이 된 이유로써 체포되어 추문(推問)하매, 의금부에서 시비(是非)에 현혹(眩惑)되어 굽은 것을 변경하여 곧은 것으로 삼으려 하니, 신은 그윽이 상심(傷心)하고 있습니다.

신의 아버지는 이 일에 있어서 본디부터 아부(阿附)하여 굽힌 것이 없으며, 전혀 남에게 말하지 않았는데, 중손(重孫)이 스스로 그 그른 점을 알고서 온갖 방법으로 거짓을 꾸며 여러 사람의 청문(聽聞)을 현혹(眩惑)하게 하였으니, 스스로 지극히 공평하여 사심(私心)이 없는 사람이 아니고는 잘 지껄이는 사람에게 오도(誤導)됨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중손(重孫)은 응당 말하기를, ‘나는 관위(官位)가 낮고 세력이 가벼우며, 저 사람은 관위가 높고 세력이 무거우니, 내 일이 본시 옳은데도 관청에 굴(屈)함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습속(習俗)은 논의(論議)에 있어서, 반드시 높은 이를 억제하고 낮은 이를 올려 주어서 자기의 정대(正大)함을 보이게 되니, 이 말을 들은 사람은 누구나 사람을 죽였다는 말을 세 번 듣고는 비로소 짜던 베틀의 북을 던지는 의심148) 과 아무 근거도 없이 이웃 사람의 도끼를 훔쳐 갔으리라는 견해149) 가 없겠습니까. 하물며, 한 사람이 한 가지 일을 의논하여 그 시비(是非)를 결정하고, 또 한 사람이 이를 의논하게 한다면 앞의 소견(所見)에 반대하게 되는 것은 고금의 공통되는 법도인데, 지금 이미 먼저 들은 말로써 주견(主見)을 삼고 형조의 의논한 것을 그렇게 여겨, 모든 입론(立論)을 다 반대하게 되니, 어찌 그리 치우치는 것입니까. 형조의 의논이 옳다면 오늘날의 의논이 반드시 그르게 될 것이며, 오늘날의 의논이 옳다면 형조의 의논이 반드시 그르게 될 것이니, 곡직(曲直)의 변고(變故)가 반드시 귀착(歸着)되는 데가 있을 것입니다.

대저 옥사(獄事)를 국문(鞫問)하는 사람은 마땅히 공평 무사(公平無私)한 마음으로 청찰(聽察)하여 그 실정을 알아내여야 되는 것인데, 지금 의심나는 옥사(獄事)를 판결하고자 하면서 먼저 자기가 의심을 내어, 의심나는 단서(端緖)를 풀지 않고서 곧장 죄안(罪案)을 교묘하게 꾸며서 만들려고 하니, 다만 어리석고 약한 아이가 옛 마을과 산천을 기억하지 못한 것으로써 증거로 삼아, 먼저 그 아버지에게 곤장을 치고, 다음에 증인(證人)에게 곤장을 쳐서, 3일 안에 연달아 두 차례나 곤장을 쳐서 무복(誣服)을 꼭 받도록 하고, 중손(重孫) 등은 의심나는 말을 임시 변통으로 진술하였는데도 모두 덮어두고 추문(推問)하지도 않으니, 이것이 불공평함이 심한 것이 아닙니까. 신은 간절히 마음이 상하고 간절히 마음이 상합니다. 청하옵건대 낱낱이 조목별로 뒤에 진술하겠사오니, 만약 신의 부자(父子)가 과실을 꾸미고 그른 것을 꾸며서 성총(聖聰)을 모독한다면, 천지 귀신이 위에서 굽어보고 옆에서 대질(對質)하게 되는데 어찌 감히 속이겠습니까. 삼가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다른 대신(大臣)에게 명해서 공평 무사하게 청단(聽斷)하여 형조와 의금부의 시비(是非)를 판결하여 원왕(冤枉)을 펴 주고 천륜(天倫)을 바로 잡는다면, 공도(公道)에 매우 다행하겠습니다.

1. 신의 아버지는 갑자년에 부친상(父親喪)을 당하여 전의현(全義縣) 남촌(南村)에서 여묘(廬墓)를 살았는데, 그해 여름에 목천(木川)의 접노(接奴) 김삼(金三)이 그 아들 김산(金山)을 데리고 전의(全義)의 본가(本家)에 이르러 그 아들을 두고, 신의 부자(父子)를 여차(廬次)에서 보고 그대로 수일(數日)을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그 아들이 도망하여 간 곳을 알 수가 없었으나, 그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라 생각하고는 마침내 뒤를 밟아 쫓아가지 아니했는데, 그 아버지가 그 집에 돌아가 보니 있지 않았습니다. 사방으로 찾아보았으나 찾아내지 못한 지가 지금 2년이나 되었습니다. 금년 4월 27일에 해가 저물었는데 한 조그만 아이가 신의 아버지 집에서 구걸하므로, 비(婢)가 처음에 그 아이를 보니 바로 그전에 잃었던 김산이었습니다. 그의 형 김녹(金祿)이 이를 보고는 또한 말하기를, ‘김산이다.’ 하니, 아이도 또한 그렇게 여기고 머물러 있으면서 가지 아니하였습니다. 신의 아버지는 이날 인정종(人定鐘)이 울린 뒤에 집에 돌아와서 이 사실을 듣고서, 그 얼굴을 증거 삼고자 하였는데, 신의 아버지는 본디 그 아이를 보지 못하였으므로, 그의 지내온 내력을 물어 보니 모두 맞았습니다. 비록 그러하나 감히 그 아이가 그러한지 그렇지 않은지는 보증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튿날 사람을 시켜 데리고 그 집으로 가게 했는데, 아이가 고의로 그 집을 바로 가리키지 않으므로, 마을의 관령(管領)과 함께 가도록 했으나, 관령을 보지 못한 까닭으로 3일 만에야 가게 되었던 것인데, 그 문자(文字)가 그대로 있었습니다. 신의 아버지가 만약 조금이라도 그 사이에 사의(私意)가 있었다면 어찌 명백 정대(明白正大)하게 관령과 더불어 그 집에 찾아주도록 하였겠습니까. 이것은 사리(事理)와 인정(人情)의 매우 명백한 것입니다.

1. 무릇 다른 사람의 노비(奴婢)를 속여 자기의 사역(使役)으로 삼는 사람은 반드시 먼저 유인하여 숨기고는 다른 사람이 알까 두려워하여, 혹은 구류(拘留)하기도 하고, 혹은 방매(放賣)하기도 하는데, 이같이 무상(無狀)한 소인(小人)은 혹시 있을 수 있지마는, 서울 도성(都城) 밑에서 다른 아이를 차지하여 그 집에 데리고 가서 말하기를, ‘이 아이는 진실로 우리 집 종이고 너희 아들은 아니다.’ 한다 하니, 이러한 일을 하는 사람은 세상의 교활한 도적이니 예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몇 사람이나 있겠습니까. 신의 아버지는 비록 불초(不肖)하지마는 태평한 세상에 공명(功名)을 기록하고 성명(聖明)을 만났으니, 그가 감히 이런 등류의 일을 하고서도 말하지 않겠습니까. 만약 처음부터 속여 차지하려는 마음이 있었다면 마땅히 먼 지방에 두고 길러서 장성하기를 기다린다면 사람들이 저절로 알지 못하게 될 것인데, 어찌 먼저 그 집을 찾아가게 한 뒤에 그 아버지를 불러서 시비(是非)를 분변하고 목천(木川)의 여러 사람들을 끌어내어 증거로 삼게 하겠습니까. 그 계획을 세움이 또한 수고롭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또한 사리(事理)와 인정(人情)의 매우 명백한 것입니다.

1. 신의 아버지가 김삼을 불러서 왕복(往復)한 사이가 몇 10여 일이 된 뒤에야 오게 되었는데, 그에게 그 집에 가서 시비(是非)를 증험해 보게 하니 조금도 의심나는 말이 없었으므로, 이에 형조에 정소(呈訴)하여 이를 변명하게 하였습니다. 대저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은 겉으로는 비록 복종하지 않지마는 마음속으로 먼저 굴복하게 되는 것인데, 이 아이가 만약 천장명(千長命)의 아들이라면 그 집에서 어찌 먼저 관청에 정소(呈訴)하여 스스로 옳다고 주장하지 않고서 앉아서 김삼이 오기를 기다리겠습니까. 김삼이 만약 의심을 품고 보았다면 또한 먼저 스스로 물러갈 것이지, 어찌 감히 형조에 정소(呈訴)하여 변명되기를 기다리겠습니까. 정리(情理)의 명백한 것이 이것입니다.

1. 무릇 사람의 상모(狀貌)와 일의 허실(虛實)이란 것은 언어(言語)로써 형용할 수는 없으니, 비록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하게 하더라도, 만약 눈으로 직접 보고 자신이 실제 행하지 않았다면 서로 어긋나지 않는 것이 드문 법인데, 어리석은 아이를 잠시 동안에 달래어 가르치고서 후일(後日)의 증거를 삼고자 한다면 보증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달래어 가르치려고 한다면 진실로 마땅히 세월(歲月)을 두고 그로 하여금 익히고 듣도록 해야 할 것인데, 어찌 급급히 그 집에 돌려보내어 맡기겠습니까. 지금 신의 아버지 집에 있은 지는 겨우 3일 뿐이고, 장명(長命)의 집에 있은 지는 이미 수년(數年)이나 되었으니, 그를 달래어 가르치기를 누구가 하였겠습니까. 형조에 있을 적에 그 아버지가 이웃에 사는 황보공(皇甫恭)으로써 이를 증명하게 하므로, 형조에서 황보공을 불러서 물으니, 황보공이 아이가 김삼(金三)의 자식인 것을 알고 있었고, 아이도 또한 황보공이 개동(介同)의 아버지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가령 황보공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아이가 무슨 이유로 황보공이 아무의 아버지인 줄 알겠습니까. 하물며, 이 아이는 목천(木川) 사람을 보고 아는 사람이 자못 많았는데, 가령 명호(名號)를 달래어 가르쳤다 하더라도 어찌 능히 이 사람들을 미리 모아서 아이로 하여금 친히 면목(面目)을 보고서 이를 기억하도록 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형조에서 공공연히 아이로 하여금 먼저 이 사람들을 보지 않게 하고서 의금부로 옮겨 국문(鞫問)한 후에, 이 아이도 또한 목천 사람을 알고서 ‘이는 아무이고, 이는 아무이다.’ 한다면, 이 아이는 상시 부내(府內)에 있었고, 목천 사람은 외부에서 왔는데, 아이가 무슨 이유로 이를 알겠습니까. 사실 증거의 명백한 것이 이것입니다.

1. 형조에서 김삼의 아내 삼가(三加)를 전의(全義)에서 불러 오고, 또 장명(長命)의 아내 분이(粉伊)를 죽산(竹山)에서 불러 왔는데, 두 어머니가 이르러서 아이들을 한데 모아 앞에 죽 늘어세우고는, 두 어머니로 하여금 이를 분변하게 하였더니, 분이가 형조의 아이를 점치면서 자기 아들이라 하니, 형조에서 재삼(再三) 힐문(詰問)하기를, ‘이 아이가 아니면 어떻게 하겠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내가 내 아이를 알지 못하겠습니까.’ 하고, 삼가는 말하기를, ‘여러 아이들 중에서 내 아들은 없습니다.’ 하였습니다. 재삼(再三) 힘써 분변하게 하였으나, 이 아이는 과연 그 중에 있지 않았습니다. 또 몸에 흉터가 있는가 없는가를 물으니, 삼가는 ‘배꼽 위에 한 작은 흉터가 있습니다.’ 하였습니다. 형조에서는 그 흉터를 보지 못하였는데 이 여인이 가리켜 보이니, 그 말이 과연 맞았습니다. 분이는 그 얼굴도 알지 못하고 그 흉터도 기억하지 못하였으니, 그의 거짓이 즉시 나타났습니다. 말하는 사람이 만약 ‘삼가는 배워서 능히 말하게 되었다. ’고 한다면, 가령 삼가가 배워서 말했다면 분이는 어찌 그 아들의 얼굴과 흉터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까. 서로 떨어진 것이 비록 어린아이였을 시기일지라도 그 어머니는 그래도 비슷한 모습을 알 것인데, 하물며, 이 아이는 나이 7세가 넘어 두각(頭角)이 이미 이루어졌으니, 비록 먼 지방에 서로 떨어져서 수십년(數十年)이 지났더라도 어찌 모를 수가 있겠습니까. 그 굽고 곧은 것을 가히 알 수가 있겠습니다.

1. 김삼과 그 아내가 세상 사람들을 우롱(愚弄)하고 의혹(疑惑)한 것이 매우 심한 편이며, 장명과 그 아내는 간사하고 교활한 것이 우심(尤甚)한 자입니다. 그 말을 들어 보고 그 안색을 살펴본다면 그의 굽고 곧은 것은 알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하물며, 장명이란 사람은 그 마음이 정직하였다면 진실로 마땅히 스스로 나타나서 먼저 시비(是非)를 변명해야 될 것인데, 형조의 계하(階下)에 잠복(潛伏)해 있다가 사변(事變)을 환히 알고서 사람들에게 잡히게 되었으니, 그가 굽은 것을 또한 가히 알 수 있겠습니다.

1. 분이는 말하기를, ‘이 아이의 일은 우리 주인이 능히 말할 수 있습니다.’ 하므로, 이에 형조에서 천보(千甫)의 사유를 죽산(竹山)의 중손(重孫)에게 물으니 대답하기를, ‘신유년 부임(赴任)할 때에 천보를 그 아버지 장명(長命)에게 맡겨 두고 왔습니다.’ 하니, 그 말이 장명의 말한 바와 합하지 아니했습니다. 또 물으니 말을 변경하기를, ‘신유년 8월에 데리고 부임(赴任)했는데, 임술년 2월에 그 아버지가 데리고 갔습니다.’ 하였으니, 그 앞뒤의 말한 바가 각기 달랐습니다. 형조에서 중손을 불러 아이의 형모(形貌)를 물으니, 중손은 말하기를, ‘알지 못합니다.’ 하였습니다.’ 끝까지 힐문(詰問)하니 그제야 말하기를, ‘이 아이는 우리 집 종이 아닙니다.’ 하였습니다. 장명의 말한 바도 매우 어긋남이 많았습니다. 그 가까운 이웃의 공사(供辭)에도 천보를 본 연월(年月)이 또한 같지 않은 점이 많았습니다. 의금부로 옮겨서 국문한 이래로 중손은 말하기를, ‘내가 집에 있을 때에 이 아이가 행랑(行廊)에 있었는데, 아침저녁으로 인하여 그 모양을 보지 못하고, 죽산에 있을 때는, 일이 바빠 또한 보지 못하였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그 얼굴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고 합니다. 그러나, 집에 있을 때에 아이의 나이가 6세이므로 이르지 않는 데가 없었을 것인데, 비록 행랑에 있었다 하더라도 어찌 볼 수 있을 때가 없었겠습니까. 죽산에 있을 때는 아내(衙內)의 방사(房舍)가 눈앞에 빙 둘러 있었으니, 사무가 비록 바쁘더라도 관아(官衙)에 물러와서 밥 먹은 것은 수령들의 상례(常例)인데, 어찌 한번 보고 한번 말한 때가 없음으로써 전혀 그 얼굴도 알지 못했다고 하겠습니까. 그의 간사하고 거짓이 이보다 심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에 마을의 관령(管領)과 가까운 이웃 사람들이 모두 공모(共謀)하여 말을 모으기를, ‘이 아이를 본 지가 지금 벌써 5년이 되었다. ’고 하니, 그들의 굽은 것을 또한 알 수가 있습니다.

1. 장명이 천보를 죽산에 데리고 온 연월(年月)이 혹은 봄이라 하고, 혹은 가을이라 하여, 앞뒤에 말한 것이 같지 않으니, 그 속인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또한 만약 그 아들이라면 그 어머니를 따라 고을 관아(官衙)에 편안히 앉아서 음식을 먹고 의복을 입는 데에 근심이 없기를 보장할 것인데, 어찌 가난한 집에 데리고 와서 해진 옷을 입고 남에게 붙여 생계(生計)를 이어가게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것도 그의 속임을 또한 알 수가 있습니다.

1. 중손의 앞뒤에 말한 바가 스스로 서로 어긋나서 맞지 않으니, 그런 까닭으로 되풀이하면서 끝까지 힐문(詰問)할 때에, 사리(事理)가 굴(屈)하고 말이 궁해져서 능히 스스로 변명하지 못하여 밤을 틈타 옥문(獄門)을 열고 나와서 도망하였으니, 실정이 이미 드러났습니다. 뒤쫓아 체포하여 도로 가두매, 술을 가져온다고 핑계하였으니, 그 말을 믿고 들을 수 있겠습니까. 또 양동(陽東)의 일을 교묘하게 꾸며서 이를 어지럽게 하였으니, 이것이 더욱 신이 매우 민망히 여기는 바입니다. 양동의 집은 비록 신의 아버지의 집과 가까이 있지마는, 실제는 중손(重孫)과 사이가 좋으며, 양동은 강리(康履)의 처남(妻娚)이요, 중손은 강리의 매부(妹夫)이니, 그들의 정리가 범연(泛然)한 사이가 아닙니다. 하물며, 양동이 말한 전득수(全得水)란 사람은 장명과 근친(近親) 관계이므로, 이 사실을 주장하고 꾸며내어 그 옥사(獄事)를 만들었으니, 비록 달콤한 말을 하고 후하게 물건을 주어서 온갖 방법으로 되풀이하더라도 능히 마음을 돌이킬 수 없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신의 아버지가 비록 어리석지마는 어찌 감히 양동으로 인하여 득수에게 뇌물을 써서 스스로 도움을 얻었겠습니까. 비록 삼척 동자(三尺童子)일지라도 또한 하지 않을 것입니다. 신의 아버지가 양동과 더불어 말한 것은 천보의 있고 없음과 이 아이를 본 연월(年月)을 알고자 한 데 불과(不過)할 뿐이었으니, 진실로 바른말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장차 관청에 알려서 상을 주도록 할 것입니다. 다만 양동에게만 이를 말하였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이 일을 묻는 사람이 있으면, 말이 반드시 이에 미쳤던 까닭으로, 양동도 또한 이를 듣게 되었던 것입니다. 신의 집에서도 또한 득수(得水)에게 옷을 주지 못하였는데도 양동이 먼저 그 옷을 주려고 한 것은 신도 또한 그 의도를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장차 저 사람에게 사이 좋게 지내어서 그 사이를 어지럽히려고 한 것입니까, 장차 이웃집의 일로써 그 실정을 알려고 한 것입니까. 그러나, 신의 아버지의 사정(事情)이 바른 것은 또한 가리울 수 없는 것입니다.

1. 이 아이가 목천(木川)을 알지 못하는 것은 신이 그윽이 이를 의심하고 있습니다. 이 앞서 이 아이가 목천(木川)과 전의(全義)의 사이에서 말을 타고 갔던 일은 절대로 없었으며, 다만 사람을 따라 걸어갔을 뿐이었는데, 지금 말 위에 올려 태우고 빨리 달려서 갑자기 예전의 놀던 땅에 갔는데, 참으로 꿈속에 찾아간 듯하여 앞일도 아득하고 뒷일도 불명하여 능히 기억하지 못하니, 알 수는 없는 일입니다. 데리고 간 관원은 비록 공정(公正)하였다고 말하고 있지마는, 종자(從者)가 뇌물을 받고 가만히 저주하여 고의로 미혹(迷惑)하게 했는가도 또한 알 수가 없습니다. 만약 전의(全義)에서 머문 지가 겨우 7, 8일인데도 말한 바의 산천의 형세와 나무의 있고 없는 것도 또한 맞는 것도 있으니, 또한 전연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목천(木川)에서도 또한 그러했으니, 비록 신자경(申自敬)의 집을 가리켜서 목천(木川)의 관원이라 하지마는, 그가 아버지를 따라가서 환상(還上)을 받은 일이 사실이라면, 어찌 장명(長命)의 아들이 김삼(金三)을 따라가서 목천(木川)에서 환상을 받은 일이 있겠습니까. 이것이 의심할 만한 일입니다.

1. 신하가 명령을 받고 밖으로 나가면 마땅히 이른 밤에 길을 떠나야 될 것인데, 알 수 없는 일은, 이중(李重)의 무리는 무슨 이유로 용인(龍仁)으로 돌아와서 1일을 머물고는, 그래도 부족하여 또 그 이튿날 해가 진 뒤에야 복명(復命)하는 것입니까. 만약 계본(啓本)을 만들기 위해서라 말한다면, 지금 겨울 밤이 지극히 기니 수일(數日) 밤이면 능히 계본(啓本)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김개(金漑)는 중손(重孫)의 예전 매부(妹夫)이요, 이중(李重)은 김개 아내의 숙모부(叔母夫)이니, 신이 의심이 없을 수 없는 것은 또한 이 때문입니다.

1. 지금 이 아이가 목천(木川)과 전의(全義)를 명백히 알지 못한 일로써 근거를 삼아, 중손이 도망해 나온 본디 사정과 여러가지로 꾸며낸 말에 대해서는 다시 신문(訊問)하지 아니하고, 장명과 그리고 가까운 이웃의 어긋난 단서(端緖)에 대해서는 처음에 알지 못한 듯하고는, 작은 아이를 위협하여 장차 매를 치려고 하면서 그 아버지를 물으니, 또한 김삼을 일러서 아버지라고 하니, 그 진정(眞情)은 그래도 알 수 있는데 도리어 김삼을 매질하고, 또 목천(木川)의 여러 사람들을 매질하여 무복(誣服)을 꼭 받아서, 신의 아버지의 죄를 얽어서 법망(法網)에 끌어넣으려고 하니, 이것이 어찌 지극히 공평하고 치우치지 않는 의논이겠습니까. 만약 이 아이가 목천을 알지 못하는 일로써 증거를 삼는다면, 어찌 죽산(竹山)을 알지 못하는 일로써 핑계를 삼아서 중손을 국문(鞫問)하지 않습니까. 아이가 김삼을 일러 아버지라 한 일로써 도리어 그 아버지를 곤장을 친다면, 어찌 장명을 일러 그 아버지라 하지 않는 일로써 장명을 곤장을 치지 않습니까. 옥사(獄辭)의 판결은 한마디 말의 사이에 있는데도 지금까지 판결이 나지 않는 것은, 다만 이 아이가 어리석어 밝지 못하고 사건이 애매한 데 관계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목천과 전의의 행차는 명백한 증거라 말할 수 있는데, 중손의 어긋난 단서(端緖)는 끝내 신문(訊問)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1. 아이가 부모라 말할 줄 아는 것은 믿지 않으며 예전 마을을 보지 못했다는 것만을 증거로 삼아서 도리어 그 아버지를 곤장을 치게 되니, 아이가 만약 죽지 않고 장성한다면 마침내 그 어버이를 정하게 될 것입니다. 천도(天道)가 만약 앎이 없지 않다면 어찌 매우 두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하였으나, 회답하지 않았다.

  • [註 146] 여씨(呂氏) : 진(秦)나라의 성(姓)은 영씨(嬴氏)인데, 시황(始皇) 정(政)이 여불위(呂不韋)의 아들이라는 말이 있음.
  • [註 147] 우씨(牛氏) : 진(晉)나라의 성(姓)은 사마씨(司馬氏)인데, 진 원제(晉元帝)가 우금(牛金)의 아들이라는 말이 있음.
  • [註 148] 짜던 베틀의 북을 던지는 의심 : 노(魯)나라 증자(曾子)의 어머니가 그 아들이 사람을 죽였다는 말을 세 번 듣고서야 비로소 의심이 나서 짜던 베틀의 북을 던지고 일어났다는 고사(故事)가 있음.
  • [註 149] 이웃 사람의 도끼를 훔쳐 갔으리라는 견해 : 아무 근거도 없이 이웃 사람의 아들이 자기집 도끼를 훔쳐 갔으리라고 의심했다는 고사(故事)가 있음.

원문

○辛亥/守集賢殿校理朴彭年上書曰:

臣父子俱以庸愚, 叨蒙聖恩, 福過災生, 臣父在獄, 已逾二旬, 抱冤鬱抑, 臣亦無以爲心, 敢昧死以聞, 伏惟憐察焉。 臣聞天下之事, 是非不兩立, 曲直不相侔。 若以是爲非, 以曲爲直, 則是變之大者也。 至於父子之倫, 本是天屬之親, 此豈人之所可變易也? 人事雖暗昧於一時, 而是非曲直, 終不得欺其天, 嬴、呂、馬、牛之變、僞朝般若之獄, 播在史冊, 駭人聽聞。 今金山之事, 其父奴金三, 與宋重孫婢夫千長命初訟於刑曹, 是非本明, 曲直自現, 而臣父無與焉。 自移鞫義禁府後, 以臣父爲奴主, 逮繫問之, 義禁府眩於是非, 將變曲爲直, 臣竊痛心。 臣父於此事, 本無阿曲, 專不說與於人。 重孫自知其非, 飾詐萬端, 眩惑衆聽, 自非至公無我者, 未免爲饒舌所誤。 重孫應曰: "吾位卑勢輕, 彼位高勢重。 吾事本是, 而將受屈於官。" 今之習俗於論議, 必抑尊而揚卑, 以示己之正大, 聞是說者, 孰無投杼之疑、竊鐵之見歟? 而況一人議一事, 定其是非? 又一人議之, 則反前所見, 古今通患。 今已先入之言爲主, 刑曹所議爲非, 凡諸立論, 悉皆反之, 一何偏也? 刑曹之議是, 則今日之論必非, 今日之論是, 則刑曹之議必非也, 曲直之變, 將必有所歸矣。 大抵鞫獄者, 當虛心聽察, 以得其情。 今欲決疑獄而先自生疑, 不解疑端而經欲鍜鍊成之, 徒以癡弱之童不記故里山川爲證, 先杖其父, 次及證人, 三日之內, 連杖二次, 期取誣服, 重孫等疑辭曲設, 皆蔽不問, 是何不公之甚也? 臣切痛心, 臣切痛心, 請一一條陳于後。 如臣父子, 文過飾非, 以瀆聖聰, 則天地鬼神臨之在上, 質之在旁, 焉敢誣哉! 伏望殿下命他大臣, 虛心聽斷, 以決刑曹義禁府之是非, 以伸冤枉, 以正天倫, 公道幸甚。

一, 臣父於甲子年丁父憂, 廬于全義縣之南村。 其年夏, 木川接奴金三率其子金山, 到全義本家置其子, 見臣父于廬次, 仍留數日。 一日, 其子亡去, 不知所之, 謂還其家, 終不追躡之, 其父還其家, 則無有也。 旁搜未得者, 于今三年矣。 今年四月二十七日, 日且暮, 有一小童行乞于臣父之家, 婢初見之, 乃前所失金山也。 其兄金祿見之, 亦曰金山也, 童亦然之, 留而不去。 臣父於是日, 人定鍾後還家得聞之, 欲徵其面, 則臣父本不見之, 問其所從來, 則皆是也。 雖然未敢保其然否也, 翌日, 令人率付其家, 童故不直指其家。 且須與里之管領同付之, 以未見管領之故, 三日乃赴之, 其文字猶在焉。 臣父若有一毫私意於其間, 則何必明白正大, 與管領保授其家乎? 此事理人情之明甚者也。

一, 凡冒認他人奴婢, 以爲己使者, 必先引誘掩匿, 猶恐人知, 或拘留之, 或放賣之, 如此無狀小人, 容或有之。 至於京都(輩)〔輦〕 轂之下, 占他童子, 執付其家, 謂曰: "此眞吾家奴也, 非爾之子也。" 爲此擧者, 是天下猾賊, 自古及今有幾人哉? 臣父雖無似, 策名淸時, 遭遇聖明, 其肯爲如此等事而不言乎? 若初有冒認之心, 當置諸遠方, 以待長養, 則人自不知之, 何必先付其家, 然後招其父辨其是非, 引木川諸人以爲證乎? 其爲設計, 不亦勞乎? 此亦事理人情之明甚者也。

一, 臣父招金三, 往復之間, 幾十餘日, 然後乃來, 令往其家, 驗其是非, 則略無疑辭。 於是呈刑曹辨之。 大抵爲惡者, 外雖不服, 而心自先屈, 此童若千長命之子, 則其家何不先呈於官, 自以爲是, 而坐待金三之來乎? 金三若疑見, 則亦先自退, 何敢呈于刑曹, 以待辨明乎? 情理之明白者此也。

一, 凡人之狀貌、事之虛實者, 未可以言語形容, 雖使耳聞而舌話, 若不目覩身履, 則鮮有不相齟齬者。 敎誘癡童於立談之間, 而欲爲他日之證, 容可保乎? 如欲敎誘, 則固當期以歲月, 使之習聞, 何急急還付其家乎? 今在臣父之家纔三日, 而在長命之家, 已數年矣。 其敎誘也, 孰得而爲之乎? 在刑曹, 其父以鄕隣皇甫恭證之, 刑曹招恭問之, 恭能識童之爲金三子也, 童亦識恭之爲介同父也。 假使恭爲不可信也, 童子何緣知恭之爲某父也? 況此童見知木川人頗多, 假使能敎誘名號, 安能預集此人, 使童子親見面目而記之耶? 若曰刑曹不公, 使童子先見此人, 則移鞫義禁府後, 此童亦知木川人曰: "此某也, 此某也。" 此童常在府內, 木川人自外至, 童子何緣知之歟? 事證之明(日)〔白〕 者此也。

一, 刑曹徵金三之妻三加于全義, 又徵長命之妻粉伊于竹山。 兩母至, 群聚兒童列於前, 使兩母辨之, 粉伊占刑曹兒爲己子。 刑曹再三詰之曰: "非是則何如?" 答曰: "吾不知吾兒乎?" 三加則: "群兒中, 吾子無有也。" 再三力辨之, 此童果不在其中矣。 且問身瘢有無, 三加曰: "臍上有一小瘢。" 刑曹未見其瘢, 此女指視之, 其言果驗。 粉伊不知其面, 不記其瘢, 其詐立見矣。 說者若曰三加學而能言之, 假使三加學而言之, 粉伊何不知其子之面與瘢乎? 相離雖在孩提之時, 其母猶可髣髴也, 況此童年逾七歲, 頭角已成矣, 雖分離胡、越, 以隔數十年, 何不知之有哉?! 其曲直可知也。

一, 金三與其妻之愚惑, 天下莫甚。 長命與其妻, 姦猾之尤者也。 聽言觀色, 其曲直不難知也。 況長命者, 其心若直, 則固當自見, 先卞是非, 乃潛伏刑曹階下, 洞知事變, 而見獲於人, 其曲亦可知也。

一, 粉伊云: "此童之事, 吾主能言之。" 於是刑曹問千甫事由於竹山 重孫, 答曰: "辛酉年赴任時, 付千甫於其父長命來。" 其言不與長命所言合。 又問之, 則變辭曰: "辛酉八月, 率以赴任。 壬戌二月, 其父還率去。" 其前後所言各異。 刑曹招重孫問童之形貌, 重孫曰: "不知也。" 至於窮詰, 則乃曰: "此非吾家奴也。" 長命所言, 甚多違忤, 其切隣供詞所見千甫年月, 亦多不齊。 自移鞫義禁府以來, 重孫曰: "吾在家時, 此童在行廊, 因早暮不見其貌。 在竹山時, 因務劇亦不見之, 以故不識其面。" 然在家時童年六歲, 無處不到, 雖在行廊, 豈無可見之時? 在竹山時則衙內房舍周匝, 眼前務雖劇矣, 退食於衙, 守令常例也, 豈無一見一語之時, 而謂專不識其面乎? 其姦回詐諼, 莫此爲甚。 於是里之管領與切隣人等悉與同謀合辭曰: "此童之見, 今已五年矣。" 其曲亦可知也。

一, 長命率來千甫於竹山年月, 或春或秋, 前後所說不同, 其詐可知也。 且如其子也則隨其母安坐縣官, 飮食衣服, 保無憂也, 何必率來貧家, 衣懸鶉之衣而糊口於人乎? 此其詐, 亦可知也。

一, 重孫前後所言, 自相矛盾, 故反復窮詰之際, 理屈辭窮, 不能自明, 犯夜開出獄門而逃, 其情已露矣。 追捕還囚, 則托以致酒, 此其說, 可信聽歟? 又巧飾陽東之事以亂之, 此尤臣之所深憫也。 陽東之家, 雖近臣父之家, 實與重孫有好。 陽東, 康履之妻娚; 重孫, 康履之妹夫也, 其情非泛然比也。 況陽東所語全得水者與長命近親? 此事實主張造飾, 以成其獄, 雖甘言厚施, 反復百端, 其不能回心也, 可知已。 臣父雖愚, 豈敢因陽東行賂得水以自助乎! 雖三尺之童, 亦所不爲也。 臣父與陽東所言, 不過欲知千甫有無及見此童之年月, 苟有直言者, 則將告官行賞耳, 非但與陽東言之。 人有問此事者, 言必及之, 故陽東亦得聞之也。 臣家亦不與衣於得水, 而陽東先欲與其衣者, 臣亦未料其意也。 將以親好於彼而欲亂於其間耶? 將以隣家之事而欲知其情耶? 然臣父事情之直, 亦不可掩也。

一, 此童之不知木川, 臣竊疑之。 前此此童於木川、全義之間, 絶無騎馬之行, 但隨人徒步耳。 今擁置馬上, 驅馳之怱遽之, 舊遊之地, 眞若夢尋, 迷前恍後, 不能記憶, 未可知也。 率去之官, 雖曰公正, 從者受賂陰詛, 故使迷惑, 亦未可知也。 若於全義所留才七八日, 而所言山川形勢樹木有無, 亦有合者, 亦不可謂全然不知者也。 於木川亦然, 雖指申自敬之家爲木川官也, 其隨父受還上之事, 是其實也, 何有長命之子隨金三受還上於木川乎? 是可疑也。

一, 人臣受命出外, 當夙夜而行, 不知李重輩何緣還到龍仁, 留一日猶不足, 又明日日沒後復命乎? 若曰修啓本云耳, 則如今冬夜至永, 可於數夜能修之也。 金漑, 重孫之故妹夫也; 李重, 漑妻之叔母夫也。 臣不能無疑者, 亦以此也。

一, 今以此童不明曉木川、全義爲據, 於重孫逃出元情及多般飾辭, 更不問訊。 長命及切隣違端, 初若不知, 然恐嚇小童, 將欲撻之而問其父, 則亦謂金三爲父, 其眞情猶可知也, 而反杖金三, 又榜掠木川諸人, 期取誣服, 羅織臣父之罪, 此豈至公不偏之論也? 若以此童不知木川爲據, 則何不以不知竹山爲辭, 以鞫重孫乎? 以童之謂金三爲父, 而反杖其父, 則何不以謂長命非其父也, 而杖長命乎? 獄辭之決, 在片言之間, 而至今未決者, 只以此童癡騃不明, 而事關曖昧耳。 今木川、全義之行, 其可謂明證, 而重孫之違端, 終不得訊歟? 一童也而知言父母則不信, 未見故里則取以爲證而反杖其父, 童若不死以長, 則終可定其親也。 天道若不無知也, 豈不深可畏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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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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