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99권, 세종 25년 2월 28일 甲寅 2/3 기사 / 1443년 명 정통(正統) 8년
최완의 잘잘못을 논하다
국역
영의정 황희(黃喜)·우의정 신개(申槪)·좌찬성 하연(河演)·우찬성 최사강(崔士康)·우참찬 이숙치(李叔畤)·이조 판서 박안신(朴安臣)·예조 판서 김종서(金宗瑞)·참판 허후(許詡)·병조 판서 정연(鄭淵)·참판 신인손(辛引孫)·형조 판서 안숭선(安崇善)·참판 윤형(尹炯)·공조 판서 최부(崔府)를 불러 이르기를,
"최완(崔浣)의 잡아 죽인 왜인이 당연히 왕래할 수 있는 곳에서 잡혀 죽었으면 완(浣)을 죄주어야 할 것이요 만일 당연히 왕래할 수 없는 곳에 함부로 다니었으면 완이 잡아 죽인 것은 변장(邊將)의 임무인 것이니 죄줌이 불가한데, 나는 섬사람의 두목이 앙심을 먹을까 의심하는 것도 아니고, 또한 후일에 환난이 생길까 염려하는 것도 아니며, 또는 완을 죄줌으로써 섬놈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기 위함도 아니니, 경들은 마땅히 공정한 의리로써 의논하라."
하니, 허후(許詡)가 의논해 아뢰기를,
"비록 고기 낚는 배라도 만일 당치않은 곳[非處]에 이르면 왜적으로 논한다는 것은 이미 일찍부터 약속을 정한 것이온데, 이제 안도(安島)와 금모도(今毛島)는 고기 낚는 배가 왕래하는 곳이 아니옵고, 돈사문(頓沙文)도 또한 힘써 변명하지 않사오니, 청하옵건대 다만 완이 고기 낚는 배를 도적의 배라고 거짓으로 몽롱하게 아뢴 죄만을 논하고, 통신사(通信使)가 돌아온 후에 다시 의논함이 편할 듯하옵니다."
하고, 윤형·신인손·안숭선·이숙치·김종서·하연 등은 말하기를,
"공을 노리어 항복한 자를 죽이고 몽롱하게 아뢴 것은 그 죄가 이미 정해진 것이오나, 선군(船軍)의 공초(供招)로써 논하오면 안도와 금모도는 아마 고초도(孤草島)를 왕래하는 데에 멀지 않은 곳인 듯하옵니다. 그러나 지세포(知世浦)로부터 고초도로 가는 왕래가 굽은지 곧은지는 한두 선군의 말로써 의논을 결정할 수는 없사오니, 청하옵건대 사람을 보내서 물길의 굽고 곧음과 지세포의 증명서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정밀하게 살펴보게 하고, 또 통신사가 돌아오기를 기다려 다시 의논하도록 하옵소서."
하고, 정연·최부·최사강·황희 등은 말하기를,
"고기 낚는 배라도 부당한 곳에 함부로 다니면 도적배와 같이 논하기로 한 것은 이미 일찍부터 약속을 정한 것이온데, 이제 완이 왜인을 잡은 곳이 고기 낚는 배의 왕래하는 곳이 아니므로 함부로 죽인 것으로 논함은 불가하옵니다. 그러하오니 낚싯배를 도적배라 하여 몽롱하게 아뢴 죄만을 율에 따라 논죄함이 어떠하옵니까."
하고, 신개는 말하기를,
"이제 왜인이 비록 고기 낚는 것이라 칭탁하오나, 이미 곧은 길이 아니고 증명서에도 또한 분명히 밝힘이 없은즉, 변장이 약속에 따라 잡아 죽인 것은 그 직책이므로 죄에 저촉된다 할 수 없사옵고, 다만 나라에 보고하지 않고 죽인 것만이 죄되는 것이오니, 이러한 죄로 의논을 결정한 후에 저 왜인들로 더불어 다시 약속하기를, ‘너희들은 이 뒤로 모든 왜인에게 빗길[斜路]로 다니지 말도록 금지하는 약속을 하라. 표풍(飄風)되었다는 말로 칭탁하는 자가 많으나, 이 뒤에는 비록 이런 말이 있을지라도 결코 실상으로 인정하지 않을 터이니, 너희들은 그리 알라. ’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리고 물길이 굽고 곧음은 분간하기가 어려운 것이옵니다. 망망대해에 여러 섬들이 뒤섞여 있사오니, 어떻게 그 굽고 곧음을 분별할 수 있사오며, 저 도적들이 빗길로 다니면서 혹은 바람에 밀리었다 일컫고, 혹은 곧은 길이라고 일컬어 분별하기가 심히 어렵사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마땅히 사람을 시켜서 안도와 금모도의 형편과 지세포로부터 고초도로 가는 길의 굽고 곧음을 살피게 하고, 또 의금부 도사(都事) 송계사(宋繼祀)의 문초함이 끝나기를 기다려 다시 의논하도록 하고, 우선 적당한 말로 돈사문(頓沙文)을 타일러 돌려보내게 하라."
하며, 드디어 전라도 관찰사와 처치사 및 송계사(宋繼祀)에게 전지하기를,
"안도와 금모도가 고초도로 왕래하는 곧은 길인가 아닌가를 영리한 차사원(差使員)으로 하여금 가서 살피고 보고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2책 99권 22장 A면【국편영인본】 4책 465면
- 【분류】외교-왜(倭)
원문
○召領議政黃喜、右議政申槪、左贊成河演、右贊成崔士康、右參贊李叔畤、吏曹判書朴安臣、禮曹判書金宗瑞、參判許詡、兵曹判書鄭淵、參判辛引孫、刑曹判書安崇善、參判尹炯、工曹判書崔府謂曰: "崔浣捕殺之倭, 見殺於所當往來之地, 則浣可罪也, 若橫行於不當往來之處, 則浣之捕斬, 是邊將之任, 不可罪也。 予不以島主之含憤爲疑, 亦不以後日之生患爲慮, 又不爲加罪於浣, 以悅島夷之心, 卿等當以公義議之。" 詡議曰: "雖釣魚船, 若到非處, 則論以倭賊, 已曾定約, 今安島、今毛島, 非釣魚船往來之處, 頓沙文亦不力辨。 請只論浣詐以釣魚船爲賊船朦朧啓聞之罪, 待通信使回還後更議爲便。" 炯、引孫、崇善、叔畤、宗瑞、演等曰: "邀功殺降, 朦朧啓聞, 其罪已定。 然以船軍供招論之, 則安島、今毛島, 疑是孤草島往來不遠之地, 然其自知世浦至孤草島往來迂直, 不可以一二船軍之言定論。 請遣人精審水路迂直與知世浦文引眞僞, 又待通信使之還, 更議施行。" 淵、府、士 康、喜等曰: "釣魚船非處橫行, 則以賊船例論, 已曾定約, 今浣捕倭之處, 非釣魚船往來之處, 不可以擅殺論。 然以釣船爲賊船, 朦龍啓聞之罪, 依律論罪何如?" 槪曰: "今倭人雖稱釣魚, 旣非直路, 而於文引亦不分析, 則邊將依約捕斬, 其職也, 不可以抵罪, 唯其不報國家而斬殺之, 爲有罪耳。 以此之罪論決後, 與倭人更約云: ‘汝等今後禁約諸倭, 勿行斜路。 其言飄風, 多是托辭, 後雖有言, 必不取實, 汝其知之。’ 以此說之爲便。 且水路迂直, 分揀爲難, 茫茫大海, 諸島交錯, 安能辨其迂直? 彼賊行斜路而或稱飄風, 或稱直路, 辨之甚難。" 上曰: "當差人, 審其安島、今毛島自知世浦至孤草島往來道路迂直。 且待義禁府都事宋繼祀鞫訖更議, 姑以權辭, 開諭頓沙文遣還。" 遂傳旨全羅道觀察使處置使及宋繼祀等:
安島、今毛島, 是孤草島往來直路與否, 令穎悟差使員往審以啓。
- 【태백산사고본】 32책 99권 22장 A면【국편영인본】 4책 465면
- 【분류】외교-왜(倭)
세종 25년 (1443) 2월 28일
국역
영의정 황희(黃喜)·우의정 신개(申槪)·좌찬성 하연(河演)·우찬성 최사강(崔士康)·우참찬 이숙치(李叔畤)·이조 판서 박안신(朴安臣)·예조 판서 김종서(金宗瑞)·참판 허후(許詡)·병조 판서 정연(鄭淵)·참판 신인손(辛引孫)·형조 판서 안숭선(安崇善)·참판 윤형(尹炯)·공조 판서 최부(崔府)를 불러 이르기를,
"최완(崔浣)의 잡아 죽인 왜인이 당연히 왕래할 수 있는 곳에서 잡혀 죽었으면 완(浣)을 죄주어야 할 것이요 만일 당연히 왕래할 수 없는 곳에 함부로 다니었으면 완이 잡아 죽인 것은 변장(邊將)의 임무인 것이니 죄줌이 불가한데, 나는 섬사람의 두목이 앙심을 먹을까 의심하는 것도 아니고, 또한 후일에 환난이 생길까 염려하는 것도 아니며, 또는 완을 죄줌으로써 섬놈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기 위함도 아니니, 경들은 마땅히 공정한 의리로써 의논하라."
하니, 허후(許詡)가 의논해 아뢰기를,
"비록 고기 낚는 배라도 만일 당치않은 곳[非處]에 이르면 왜적으로 논한다는 것은 이미 일찍부터 약속을 정한 것이온데, 이제 안도(安島)와 금모도(今毛島)는 고기 낚는 배가 왕래하는 곳이 아니옵고, 돈사문(頓沙文)도 또한 힘써 변명하지 않사오니, 청하옵건대 다만 완이 고기 낚는 배를 도적의 배라고 거짓으로 몽롱하게 아뢴 죄만을 논하고, 통신사(通信使)가 돌아온 후에 다시 의논함이 편할 듯하옵니다."
하고, 윤형·신인손·안숭선·이숙치·김종서·하연 등은 말하기를,
"공을 노리어 항복한 자를 죽이고 몽롱하게 아뢴 것은 그 죄가 이미 정해진 것이오나, 선군(船軍)의 공초(供招)로써 논하오면 안도와 금모도는 아마 고초도(孤草島)를 왕래하는 데에 멀지 않은 곳인 듯하옵니다. 그러나 지세포(知世浦)로부터 고초도로 가는 왕래가 굽은지 곧은지는 한두 선군의 말로써 의논을 결정할 수는 없사오니, 청하옵건대 사람을 보내서 물길의 굽고 곧음과 지세포의 증명서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정밀하게 살펴보게 하고, 또 통신사가 돌아오기를 기다려 다시 의논하도록 하옵소서."
하고, 정연·최부·최사강·황희 등은 말하기를,
"고기 낚는 배라도 부당한 곳에 함부로 다니면 도적배와 같이 논하기로 한 것은 이미 일찍부터 약속을 정한 것이온데, 이제 완이 왜인을 잡은 곳이 고기 낚는 배의 왕래하는 곳이 아니므로 함부로 죽인 것으로 논함은 불가하옵니다. 그러하오니 낚싯배를 도적배라 하여 몽롱하게 아뢴 죄만을 율에 따라 논죄함이 어떠하옵니까."
하고, 신개는 말하기를,
"이제 왜인이 비록 고기 낚는 것이라 칭탁하오나, 이미 곧은 길이 아니고 증명서에도 또한 분명히 밝힘이 없은즉, 변장이 약속에 따라 잡아 죽인 것은 그 직책이므로 죄에 저촉된다 할 수 없사옵고, 다만 나라에 보고하지 않고 죽인 것만이 죄되는 것이오니, 이러한 죄로 의논을 결정한 후에 저 왜인들로 더불어 다시 약속하기를, ‘너희들은 이 뒤로 모든 왜인에게 빗길[斜路]로 다니지 말도록 금지하는 약속을 하라. 표풍(飄風)되었다는 말로 칭탁하는 자가 많으나, 이 뒤에는 비록 이런 말이 있을지라도 결코 실상으로 인정하지 않을 터이니, 너희들은 그리 알라. ’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리고 물길이 굽고 곧음은 분간하기가 어려운 것이옵니다. 망망대해에 여러 섬들이 뒤섞여 있사오니, 어떻게 그 굽고 곧음을 분별할 수 있사오며, 저 도적들이 빗길로 다니면서 혹은 바람에 밀리었다 일컫고, 혹은 곧은 길이라고 일컬어 분별하기가 심히 어렵사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마땅히 사람을 시켜서 안도와 금모도의 형편과 지세포로부터 고초도로 가는 길의 굽고 곧음을 살피게 하고, 또 의금부 도사(都事) 송계사(宋繼祀)의 문초함이 끝나기를 기다려 다시 의논하도록 하고, 우선 적당한 말로 돈사문(頓沙文)을 타일러 돌려보내게 하라."
하며, 드디어 전라도 관찰사와 처치사 및 송계사(宋繼祀)에게 전지하기를,
"안도와 금모도가 고초도로 왕래하는 곧은 길인가 아닌가를 영리한 차사원(差使員)으로 하여금 가서 살피고 보고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2책 99권 22장 A면【국편영인본】 4책 465면
- 【분류】외교-왜(倭)
원문
○召領議政黃喜、右議政申槪、左贊成河演、右贊成崔士康、右參贊李叔畤、吏曹判書朴安臣、禮曹判書金宗瑞、參判許詡、兵曹判書鄭淵、參判辛引孫、刑曹判書安崇善、參判尹炯、工曹判書崔府謂曰: "崔浣捕殺之倭, 見殺於所當往來之地, 則浣可罪也, 若橫行於不當往來之處, 則浣之捕斬, 是邊將之任, 不可罪也。 予不以島主之含憤爲疑, 亦不以後日之生患爲慮, 又不爲加罪於浣, 以悅島夷之心, 卿等當以公義議之。" 詡議曰: "雖釣魚船, 若到非處, 則論以倭賊, 已曾定約, 今安島、今毛島, 非釣魚船往來之處, 頓沙文亦不力辨。 請只論浣詐以釣魚船爲賊船朦朧啓聞之罪, 待通信使回還後更議爲便。" 炯、引孫、崇善、叔畤、宗瑞、演等曰: "邀功殺降, 朦朧啓聞, 其罪已定。 然以船軍供招論之, 則安島、今毛島, 疑是孤草島往來不遠之地, 然其自知世浦至孤草島往來迂直, 不可以一二船軍之言定論。 請遣人精審水路迂直與知世浦文引眞僞, 又待通信使之還, 更議施行。" 淵、府、士 康、喜等曰: "釣魚船非處橫行, 則以賊船例論, 已曾定約, 今浣捕倭之處, 非釣魚船往來之處, 不可以擅殺論。 然以釣船爲賊船, 朦龍啓聞之罪, 依律論罪何如?" 槪曰: "今倭人雖稱釣魚, 旣非直路, 而於文引亦不分析, 則邊將依約捕斬, 其職也, 不可以抵罪, 唯其不報國家而斬殺之, 爲有罪耳。 以此之罪論決後, 與倭人更約云: ‘汝等今後禁約諸倭, 勿行斜路。 其言飄風, 多是托辭, 後雖有言, 必不取實, 汝其知之。’ 以此說之爲便。 且水路迂直, 分揀爲難, 茫茫大海, 諸島交錯, 安能辨其迂直? 彼賊行斜路而或稱飄風, 或稱直路, 辨之甚難。" 上曰: "當差人, 審其安島、今毛島自知世浦至孤草島往來道路迂直。 且待義禁府都事宋繼祀鞫訖更議, 姑以權辭, 開諭頓沙文遣還。" 遂傳旨全羅道觀察使處置使及宋繼祀等:
安島、今毛島, 是孤草島往來直路與否, 令穎悟差使員往審以啓。
- 【태백산사고본】 32책 99권 22장 A면【국편영인본】 4책 465면
- 【분류】외교-왜(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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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25년 (1443) 2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