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87권, 세종 21년 12월 25일 己亥 1/2 기사 / 1439년 명 정통(正統) 4년
동교에서 매사냥을 구경하고, 사람을 보내 허조를 문병하다
국역
동교(東郊)에 거둥하여 매사냥하는 것을 구경하고 환궁(還宮)하는 길에 사람을 보내어 허조(許稠)에게 문병하니, 조(稠)가 말하기를,
"도승지(都承旨)를 보았으면 하옵니다."
하니, 임금이 도승지 김돈(金墩)에게 명하기를,
"허 의정(許議政)이 너를 보려고 하는 것은 반드시 아뢸 일이 있을 것이니, 네가 곧 가서 보도록 하라."
하매, 돈(墩)이 조(稠)의 집에 이르니, 조(稠)가 동쪽으로 머리를 두고 누워서 돈(墩)을 불러들이고, 자제들을 물러나게 하면서 말하기를,
"예전에도 정명도(程明道)159) 가 죽을 때에 자제들과 더불어 국사(國事)를 말하지 않았다."
하고, 이어 돈(墩)에게 이르기를,
"신이 포의(布衣)로서 편벽되게 상은(上恩)을 입어, 지위가 상상(上相)에 이르고, 나이가 70이 넘었으니, 마음에 한(恨)하는 바가 없습니다. 다만 병으로 60여 일을 앓았으므로 살아나서 다시 용안(龍顔)을 뵙지 못할 것 같기 때문에, 그대를 보고 신(臣)의 회포를 말해 올리려고 함입니다. 우리 나라는 북쪽에 야인(野人)이 있고 동쪽에 섬오랑캐가 있는데, 만약 일시(一時)에 함께 난리를 일으키면 위태한 나라가 됩니다. 지금 여러 신하들은 다퉈 가며 태평성대(太平聖代)라고 말하니, 누가 위태하기 전에 난리를 근심하는 자가 있겠습니까. 원컨대, 위[上]에서 진념(軫念)하시어 더욱 변경을 방비하게 하소서."
하고, 끝내 집안 일을 말하지 아니하였다. 이튿날 돈(墩)이 아뢰니, 임금이 말하기를,
"실로 좋은 말이다. 내가 매우 아름답게 여긴다."
하고, 그 아들인 좌부승지(左副承旨) 허후(許詡)가 예궐(詣闕)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돌아가서 너의 아버지에게 말하라. 어제 돈(墩)의 말을 듣고 경(卿)의 아름다운 뜻을 모두 알았노라고 하라."
하니, 조(稠)가 명령을 듣고 감읍(感泣)하였다고 한다.
- [註 159] 정명도(程明道) : 정호(程顥).
원문
○己亥/幸東郊觀放鷹, 及還宮路上, 遣人問疾於許稠, 稠曰: "願見都承旨。" 上命都承旨金墩曰: "許議政欲見爾, 必有所啓之事, 爾宜卽往見。" 墩到稠家, 稠東首而臥, 引入墩, 辟子弟曰: "昔程明道臨死, 不與子弟言國事。" 仍謂墩曰: "臣以布衣, 偏蒙上恩, 位至上相, 年過七十, 心無所恨, 但患病餘六十日, 難以得活更瞻龍顔, 故欲見子以達臣懷耳。 我國北有野人, 東有島夷, 若一時俱亂, 則此危殆之國也。 當今諸臣爭謂太平聖代, 孰有憂亂於未危者乎? 願上軫慮, 益備邊圉。" 終不言家事。 翼日, 墩以啓, 上曰: "實善言也, 予甚嘉之。" 其子左副承旨詡詣闕, 上謂曰: "歸語爾父, 昨聞墩言, 具悉卿之美意。" 稠聞命感泣。
세종 21년 (1439) 12월 25일
국역
동교(東郊)에 거둥하여 매사냥하는 것을 구경하고 환궁(還宮)하는 길에 사람을 보내어 허조(許稠)에게 문병하니, 조(稠)가 말하기를,
"도승지(都承旨)를 보았으면 하옵니다."
하니, 임금이 도승지 김돈(金墩)에게 명하기를,
"허 의정(許議政)이 너를 보려고 하는 것은 반드시 아뢸 일이 있을 것이니, 네가 곧 가서 보도록 하라."
하매, 돈(墩)이 조(稠)의 집에 이르니, 조(稠)가 동쪽으로 머리를 두고 누워서 돈(墩)을 불러들이고, 자제들을 물러나게 하면서 말하기를,
"예전에도 정명도(程明道)159) 가 죽을 때에 자제들과 더불어 국사(國事)를 말하지 않았다."
하고, 이어 돈(墩)에게 이르기를,
"신이 포의(布衣)로서 편벽되게 상은(上恩)을 입어, 지위가 상상(上相)에 이르고, 나이가 70이 넘었으니, 마음에 한(恨)하는 바가 없습니다. 다만 병으로 60여 일을 앓았으므로 살아나서 다시 용안(龍顔)을 뵙지 못할 것 같기 때문에, 그대를 보고 신(臣)의 회포를 말해 올리려고 함입니다. 우리 나라는 북쪽에 야인(野人)이 있고 동쪽에 섬오랑캐가 있는데, 만약 일시(一時)에 함께 난리를 일으키면 위태한 나라가 됩니다. 지금 여러 신하들은 다퉈 가며 태평성대(太平聖代)라고 말하니, 누가 위태하기 전에 난리를 근심하는 자가 있겠습니까. 원컨대, 위[上]에서 진념(軫念)하시어 더욱 변경을 방비하게 하소서."
하고, 끝내 집안 일을 말하지 아니하였다. 이튿날 돈(墩)이 아뢰니, 임금이 말하기를,
"실로 좋은 말이다. 내가 매우 아름답게 여긴다."
하고, 그 아들인 좌부승지(左副承旨) 허후(許詡)가 예궐(詣闕)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돌아가서 너의 아버지에게 말하라. 어제 돈(墩)의 말을 듣고 경(卿)의 아름다운 뜻을 모두 알았노라고 하라."
하니, 조(稠)가 명령을 듣고 감읍(感泣)하였다고 한다.
- [註 159] 정명도(程明道) : 정호(程顥).
원문
○己亥/幸東郊觀放鷹, 及還宮路上, 遣人問疾於許稠, 稠曰: "願見都承旨。" 上命都承旨金墩曰: "許議政欲見爾, 必有所啓之事, 爾宜卽往見。" 墩到稠家, 稠東首而臥, 引入墩, 辟子弟曰: "昔程明道臨死, 不與子弟言國事。" 仍謂墩曰: "臣以布衣, 偏蒙上恩, 位至上相, 年過七十, 心無所恨, 但患病餘六十日, 難以得活更瞻龍顔, 故欲見子以達臣懷耳。 我國北有野人, 東有島夷, 若一時俱亂, 則此危殆之國也。 當今諸臣爭謂太平聖代, 孰有憂亂於未危者乎? 願上軫慮, 益備邊圉。" 終不言家事。 翼日, 墩以啓, 上曰: "實善言也, 予甚嘉之。" 其子左副承旨詡詣闕, 上謂曰: "歸語爾父, 昨聞墩言, 具悉卿之美意。" 稠聞命感泣。
원본
세종 21년 (1439) 12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