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81권, 세종 20년 6월 10일 壬戌 1/1 기사 / 1438년 명 정통(正統) 3년
종정성이 송환을 청한 34명을 송환하지 않다
국역
우의정 허조(許稠)가 아뢰기를,
"금번 대마도(對馬島)의 종정성(宗貞盛)이 왜인의 남녀 모두 34명의 송환을 청해 왔사온데, 〈이들은〉 원래 도망해 온 자들입니다."
하여, 의정부 및 제조(諸曹)로 하여금 이를 평의하게 하니, 모두 말하기를,
"대마도는 잔열 미약한 무리들이라 비록 보내지 않더라도 관계없습니다. 그러하오나, 일본 대내전(大內殿)은 자칭 백제(百濟)의 온조(溫祚)의 후손이라 이르고, 본국 사신이 그 나라에 가면 재봉할 줄 아는 자를 청하여 단령의(團領衣)를 만들기도 하고, 일본국에 본래 창고와 역참(驛站)이 없던 것을 대내전이 창고를 짓고 역참을 설치하였사오며, 비록 국왕이라 할지라도 군사를 쓰려고 하면 반드시 사람을 빌리곤 하옵는데, 대내전은 천 또는 만의 병력을 징발할 수 있으니, 이는 우리 나라의 제도를 모방하여 하는 것입니다. 구주(九州)·일기(一岐) 등 여러 섬을 영유하여 그 병력이 매우 강대하온데, 대마주도 그 장악 속에 들어 있어 만약 한번 노하여 침입하게 되면 본국이 응당 그 폐해를 받을 것이니, 어찌 잔열 미약하다 해서 이를 멸시하겠습니까."
하고, 또 말하기를,
"일본은 군신(君臣) 상하가 없이 각기 흩어져 있고 명령 계통이 없다 하오나, 신의 생각으로는 일본 황제는 천지가 개벽한 이래로 혁명한 적이 없고, 또 주장(主將)이 패하여 죽으면 그 휘하(麾下)의 장사들이 모두 자살하여 충절을 본받고 있사온즉, 어찌 군신 상하가 없다고 말하겠습니까. 저 평의자의 논의로 말씀하오면, 모두 잠시 한 사단만을 보고 그 시종을 구명해 보지 못한 말들입니다. 이 34명을 감추어 두고 그의 송환을 즐겨 응하지 않는다면 큰 나라로서의 신의가 어디 있다고 하겠습니까. 평의하는 자 또, 실달모(悉怛謀)의 일을 끌어대어 송환을 저지하고 있사오나 신의 생각으로는 이 34명은 실달모에 비할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송환하게 되면 저희들이 비록 죽인다 하더라도, 그 곧은 의리는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황희(黃喜)의 의견도 역시 이와 같사오니, 이들을 송환하게 하시와 큰 나라로서의 신의를 온전히 하시고 후일의 변란을 막게 하옵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우의정의 헌의가 옳다. 그러나 이미 송환하지 않는다는 의논을 결정하였으니, 〈이 논의는〉 아직 정침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6책 81권 20장 B면【국편영인본】 4책 149면
- 【분류】외교-왜(倭)
원문
○壬戌/右議政許稠啓曰: "今對馬島 宗貞盛請還倭人男婦共三十四, 元是逃來者也。 令議政府諸曹議之, 皆曰: "對馬島殘微, 雖不送可也。" 然臣謂日本 大內殿自稱百濟王溫祚之後, 本國使臣到國, 請知裁縫者, 製團領衣。 日本國本無倉庫站驛, 而大內殿創府庫設站驛, 雖國王若欲行師, 則必倩人, 而大內殿則可發千萬兵, 皆倣我國之制而爲之也。 呑九州、一歧諸島, 兵力甚强, 對馬州亦在掌握, 若怒而一侵, 則本國當受其弊矣, 豈可以爲殘微而蔑視乎? 又曰: "日本無君臣上下, 渙散無統。" 臣謂日本皇帝, 自天地開闢以來, 未有革命之時, 又有主將敗亡, 則麾下皆自殺以效忠, 何以謂之無君臣上下乎? 彼議者之論, 皆暫見一端, 而未究始終者也。 藏匿此三十四人, 不肯送還, 則大國信義安在? 議者又引悉怛謀之事, 以沮送還, 臣謂此三十四人, 非悉怛謀比也。 我若送還, 則彼雖殺之, 直在我矣。 黃喜之意, 亦如此。 許令送還, 以全大國之信, 以防後日之變。"
上曰: "右議政之議可矣。 然旣定不還之議, 姑停之。"
- 【태백산사고본】 26책 81권 20장 B면【국편영인본】 4책 149면
- 【분류】외교-왜(倭)
세종 20년 (1438) 6월 10일
국역
우의정 허조(許稠)가 아뢰기를,
"금번 대마도(對馬島)의 종정성(宗貞盛)이 왜인의 남녀 모두 34명의 송환을 청해 왔사온데, 〈이들은〉 원래 도망해 온 자들입니다."
하여, 의정부 및 제조(諸曹)로 하여금 이를 평의하게 하니, 모두 말하기를,
"대마도는 잔열 미약한 무리들이라 비록 보내지 않더라도 관계없습니다. 그러하오나, 일본 대내전(大內殿)은 자칭 백제(百濟)의 온조(溫祚)의 후손이라 이르고, 본국 사신이 그 나라에 가면 재봉할 줄 아는 자를 청하여 단령의(團領衣)를 만들기도 하고, 일본국에 본래 창고와 역참(驛站)이 없던 것을 대내전이 창고를 짓고 역참을 설치하였사오며, 비록 국왕이라 할지라도 군사를 쓰려고 하면 반드시 사람을 빌리곤 하옵는데, 대내전은 천 또는 만의 병력을 징발할 수 있으니, 이는 우리 나라의 제도를 모방하여 하는 것입니다. 구주(九州)·일기(一岐) 등 여러 섬을 영유하여 그 병력이 매우 강대하온데, 대마주도 그 장악 속에 들어 있어 만약 한번 노하여 침입하게 되면 본국이 응당 그 폐해를 받을 것이니, 어찌 잔열 미약하다 해서 이를 멸시하겠습니까."
하고, 또 말하기를,
"일본은 군신(君臣) 상하가 없이 각기 흩어져 있고 명령 계통이 없다 하오나, 신의 생각으로는 일본 황제는 천지가 개벽한 이래로 혁명한 적이 없고, 또 주장(主將)이 패하여 죽으면 그 휘하(麾下)의 장사들이 모두 자살하여 충절을 본받고 있사온즉, 어찌 군신 상하가 없다고 말하겠습니까. 저 평의자의 논의로 말씀하오면, 모두 잠시 한 사단만을 보고 그 시종을 구명해 보지 못한 말들입니다. 이 34명을 감추어 두고 그의 송환을 즐겨 응하지 않는다면 큰 나라로서의 신의가 어디 있다고 하겠습니까. 평의하는 자 또, 실달모(悉怛謀)의 일을 끌어대어 송환을 저지하고 있사오나 신의 생각으로는 이 34명은 실달모에 비할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송환하게 되면 저희들이 비록 죽인다 하더라도, 그 곧은 의리는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황희(黃喜)의 의견도 역시 이와 같사오니, 이들을 송환하게 하시와 큰 나라로서의 신의를 온전히 하시고 후일의 변란을 막게 하옵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우의정의 헌의가 옳다. 그러나 이미 송환하지 않는다는 의논을 결정하였으니, 〈이 논의는〉 아직 정침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6책 81권 20장 B면【국편영인본】 4책 149면
- 【분류】외교-왜(倭)
원문
○壬戌/右議政許稠啓曰: "今對馬島 宗貞盛請還倭人男婦共三十四, 元是逃來者也。 令議政府諸曹議之, 皆曰: "對馬島殘微, 雖不送可也。" 然臣謂日本 大內殿自稱百濟王溫祚之後, 本國使臣到國, 請知裁縫者, 製團領衣。 日本國本無倉庫站驛, 而大內殿創府庫設站驛, 雖國王若欲行師, 則必倩人, 而大內殿則可發千萬兵, 皆倣我國之制而爲之也。 呑九州、一歧諸島, 兵力甚强, 對馬州亦在掌握, 若怒而一侵, 則本國當受其弊矣, 豈可以爲殘微而蔑視乎? 又曰: "日本無君臣上下, 渙散無統。" 臣謂日本皇帝, 自天地開闢以來, 未有革命之時, 又有主將敗亡, 則麾下皆自殺以效忠, 何以謂之無君臣上下乎? 彼議者之論, 皆暫見一端, 而未究始終者也。 藏匿此三十四人, 不肯送還, 則大國信義安在? 議者又引悉怛謀之事, 以沮送還, 臣謂此三十四人, 非悉怛謀比也。 我若送還, 則彼雖殺之, 直在我矣。 黃喜之意, 亦如此。 許令送還, 以全大國之信, 以防後日之變。"
上曰: "右議政之議可矣。 然旣定不還之議, 姑停之。"
- 【태백산사고본】 26책 81권 20장 B면【국편영인본】 4책 149면
- 【분류】외교-왜(倭)
원본
세종 20년 (1438) 6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