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73권, 세종 18년 윤6월 23일 丁亥 1/2 기사 / 1436년 명 정통(正統) 1년
평안도 도절제사에게 연대를 설치할 것을 명하다
국역
평안도 도절제사에게 전지하기를,
"연대(烟臺)를 설비하는 것은 높은 데에 올라 멀리 관망하며 변경을 사찰하여, 〈유사시엔〉 각(角)을 불고 포(砲)를 놓아 이를 사방 인근에 알리고는, 혹은 싸우기도 하고 혹은 수비하는 등, 만전을 기하는 이기(利器)인 까닭에, 여연(閭延)·자성(慈城)·강계(江界)·이산(理山) 등 각 고을에 일찍이 화통 교습관(火㷁敎習官)을 보내어 연대를 설치할 만한 곳을 심정(審定)한 바 있다. 그러나, 신진인 이 무리들의 본 것이 혹시 대사를 그르치지나 않을까 염려되었으므로 즉시 시행하지 못했던 것이니, 경은 친히 가서 두루 관찰하고 그 가부를 상량(商量)한 연후에 기지를 정하여 축조하도록 하라. 대저 처음에는 근면하다가도 종말에 태만해지는 것의 사람의 상정이며, 더욱이 우리 동인(東人)의 고질이다. 그러므로, 속담에 말하기를 「고려 공사 삼일(高麗公事三日)이라.」 고 하지만, 이 말이 정녕 헛된 말은 아니다. 이 앞서에 외적 침입의 대비를 다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으나, 저 적도들이 지난 해 정월에는 여연 읍성(邑城)을 침입해 왔고, 7월엔 재차 훈두(薰豆)·조명간(趙明干)의 구자(口子)를 표략(摽掠)한 바 있으며, 금년 5월엔 다시 조명간에 침입하는 등 네 차례나 침입해 왔는데도, 변장이 한 적도의 머리도 베어 얻지 못하였으니, 이는 다름이 아니라, 모두가 비어(備禦)에 태만했던 까닭으로 그러한 것이었다. 오늘날 비록 연대를 축조한다 해도, 만일 태만히 하고 미리 대비하지 않는다면 불측의 우환을 막아내기 어려운 사태가 반드시 전일의 그것과 꼭 같을 것이다. 이것이 무장과 지사(志士)들의 분권절치(奮拳切齒)할 바이니, 경은 이미 내 의중을 잘 알고 있는 터이매 마땅히 한결같이 책임지고 심력을 기울여 이를 배치하라."
하였다.
원문
○丁亥/傳旨平安道都節制使: "烟臺之設, 登高遠望, 伺察邊境, 吹角放砲, 通諭四隣, 或戰或守, 萬全之利器, 故於閭延、慈城、江界、理山等各官, 曾送火㷁敎習官, 審定烟臺可置之處。 然此輩新進之人, 恐所見或誤, 故未卽施行, 卿須親往遍觀, 商度可否, 然後定基造築。 大抵始勤終怠, 人之常情, 尤是東人之深病。 故諺曰: "高麗公事三日。" 此語誠不虛矣。 前此禦侮之備, 非不至也, 而彼賊去年正月入寇閭延邑城, 七月再掠薰豆、趙明干口子, 今年五月, 又侵趙明干。 四次入侵, 而邊將未得一賊之首, 此無他, 皆由怠於備禦之致然也。 今日雖築烟臺, 脫有怠緩不備, 則難防不測之患, 必有如前日之事矣。 此武將志士所以奮拳切齒者也。 卿已知予意, 宜肩一心, 盡心布置。"
세종 18년 (1436) 윤6월 23일
국역
평안도 도절제사에게 전지하기를,
"연대(烟臺)를 설비하는 것은 높은 데에 올라 멀리 관망하며 변경을 사찰하여, 〈유사시엔〉 각(角)을 불고 포(砲)를 놓아 이를 사방 인근에 알리고는, 혹은 싸우기도 하고 혹은 수비하는 등, 만전을 기하는 이기(利器)인 까닭에, 여연(閭延)·자성(慈城)·강계(江界)·이산(理山) 등 각 고을에 일찍이 화통 교습관(火㷁敎習官)을 보내어 연대를 설치할 만한 곳을 심정(審定)한 바 있다. 그러나, 신진인 이 무리들의 본 것이 혹시 대사를 그르치지나 않을까 염려되었으므로 즉시 시행하지 못했던 것이니, 경은 친히 가서 두루 관찰하고 그 가부를 상량(商量)한 연후에 기지를 정하여 축조하도록 하라. 대저 처음에는 근면하다가도 종말에 태만해지는 것의 사람의 상정이며, 더욱이 우리 동인(東人)의 고질이다. 그러므로, 속담에 말하기를 「고려 공사 삼일(高麗公事三日)이라.」 고 하지만, 이 말이 정녕 헛된 말은 아니다. 이 앞서에 외적 침입의 대비를 다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으나, 저 적도들이 지난 해 정월에는 여연 읍성(邑城)을 침입해 왔고, 7월엔 재차 훈두(薰豆)·조명간(趙明干)의 구자(口子)를 표략(摽掠)한 바 있으며, 금년 5월엔 다시 조명간에 침입하는 등 네 차례나 침입해 왔는데도, 변장이 한 적도의 머리도 베어 얻지 못하였으니, 이는 다름이 아니라, 모두가 비어(備禦)에 태만했던 까닭으로 그러한 것이었다. 오늘날 비록 연대를 축조한다 해도, 만일 태만히 하고 미리 대비하지 않는다면 불측의 우환을 막아내기 어려운 사태가 반드시 전일의 그것과 꼭 같을 것이다. 이것이 무장과 지사(志士)들의 분권절치(奮拳切齒)할 바이니, 경은 이미 내 의중을 잘 알고 있는 터이매 마땅히 한결같이 책임지고 심력을 기울여 이를 배치하라."
하였다.
원문
○丁亥/傳旨平安道都節制使: "烟臺之設, 登高遠望, 伺察邊境, 吹角放砲, 通諭四隣, 或戰或守, 萬全之利器, 故於閭延、慈城、江界、理山等各官, 曾送火㷁敎習官, 審定烟臺可置之處。 然此輩新進之人, 恐所見或誤, 故未卽施行, 卿須親往遍觀, 商度可否, 然後定基造築。 大抵始勤終怠, 人之常情, 尤是東人之深病。 故諺曰: "高麗公事三日。" 此語誠不虛矣。 前此禦侮之備, 非不至也, 而彼賊去年正月入寇閭延邑城, 七月再掠薰豆、趙明干口子, 今年五月, 又侵趙明干。 四次入侵, 而邊將未得一賊之首, 此無他, 皆由怠於備禦之致然也。 今日雖築烟臺, 脫有怠緩不備, 則難防不測之患, 必有如前日之事矣。 此武將志士所以奮拳切齒者也。 卿已知予意, 宜肩一心, 盡心布置。"
원본
세종 18년 (1436) 윤6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