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61권, 세종 15년 윤8월 8일 戊午 3/3 기사 / 1433년 명 선덕(宣德) 8년
함길도 감사가 중국 사신 배준이 칙서를 가지고 알목하에 이르렀다고 보고하다
국역
함길도 감사가 급히 보고하기를,
"중국 사신 배준(裵俊)이 군인 1백 61인을 거느리고 칙서를 가지고 알목하에 이르렀는데, 영북진(寧北鎭)에 사람을 보낸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고, 인해서 칙서를 베껴 보내 왔는데, 〈아래와 같다.〉
"황제는 칙서로 건주 좌위 장위사(建州左衛掌衛司) 우도독 맹가첩목아와 아들 아곡(阿谷) 【즉 동권두. 】 과 대소 두목되는 사람들에게 유시한다. 좀 전에 양목답올(楊木答兀) 한패가 산만하게 흩어져 나갔으므로 군관이 이미 계속해 불러들여 생업을 다시 하게 하였는데, 근자에 들은즉 고조화(高早化) 등 69가구가 현재 너희 근처 지방에 거주한다 하기로, 이에 지휘인 동지(同知) 배준과 천호 조진고로(趙鎭古老)·백호 왕무(王茂) 등을 보내어 칙서를 가지고 달려가서 그들을 돌아오도록 부르라고 하였으니, 칙서가 도착되는 날로 너희들이 곧 고조화 등 69가구들로 하여금, 수대로 전부 수습하여 가지고 지휘 아곡(阿谷) 및 배준 등과 함께 원래의 처소로 돌아가서 안심하고 살면서 생업을 즐거워 하게 하면, 더욱 네가 조정에 공을 갚으려는 성심을 볼 수 있을 것이니, 너희들은 공경하여 짐의 명령을 받들어 태만함이 없게 하라. 그래서 유시하노라."
한 것이었다.
세종실록61권, 세종 15년 윤8월 8일 戊午 3/3 기사 / 1433년 명 선덕(宣德) 8년
함길도 감사가 중국 사신 배준이 칙서를 가지고 알목하에 이르렀다고 보고하다
국역
함길도 감사가 급히 보고하기를,
"중국 사신 배준(裵俊)이 군인 1백 61인을 거느리고 칙서를 가지고 알목하에 이르렀는데, 영북진(寧北鎭)에 사람을 보낸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고, 인해서 칙서를 베껴 보내 왔는데, 〈아래와 같다.〉
"황제는 칙서로 건주 좌위 장위사(建州左衛掌衛司) 우도독 맹가첩목아와 아들 아곡(阿谷) 【즉 동권두. 】 과 대소 두목되는 사람들에게 유시한다. 좀 전에 양목답올(楊木答兀) 한패가 산만하게 흩어져 나갔으므로 군관이 이미 계속해 불러들여 생업을 다시 하게 하였는데, 근자에 들은즉 고조화(高早化) 등 69가구가 현재 너희 근처 지방에 거주한다 하기로, 이에 지휘인 동지(同知) 배준과 천호 조진고로(趙鎭古老)·백호 왕무(王茂) 등을 보내어 칙서를 가지고 달려가서 그들을 돌아오도록 부르라고 하였으니, 칙서가 도착되는 날로 너희들이 곧 고조화 등 69가구들로 하여금, 수대로 전부 수습하여 가지고 지휘 아곡(阿谷) 및 배준 등과 함께 원래의 처소로 돌아가서 안심하고 살면서 생업을 즐거워 하게 하면, 더욱 네가 조정에 공을 갚으려는 성심을 볼 수 있을 것이니, 너희들은 공경하여 짐의 명령을 받들어 태만함이 없게 하라. 그래서 유시하노라."
한 것이었다.